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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돌

last modified: 2016-06-16 16:30:02 Contributors



Contents

1. 특징
1.1. 음악
2. 역사
2.1. 1970년대
2.2. 1980년대
2.3. 1990년대
2.4. 2000년대
2.5. 2010년대
3. 분석
3.1. 컨셉 (여성 아이돌)
3.2. 실력
3.3. 독점 (남성 아이돌)
4. 아이돌 목록
5. 관련항목

1. 특징

한국에서는 아이돌 그룹들을 '가수'로 보는 시각이 주류인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아이돌 그룹은 '가수'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로 여겨진다. 즉 가수 활동은 일본 아이돌의 본업이 아니라, 예능, 드라마, 모델 등 다양한 연예계 활동의 일부인 것이다. 아이돌 생활을 마치고 나서 가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나 모델, 버라이어티 탤런트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본 아이돌은 가창력이나 춤 실력보다는 개개인의 인간적인 매력, 방송에서의 대처 능력(예능감), 방송에서의 캐릭터 등을 중심으로 육성된다. 가수로서의 실력만 본다면 대다수의 일본 아이돌은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

일본에서는 그라비아 모델이나 젊은 배우를 '아이돌'로 부르는 경우도 있어서, '아이돌 가수'라는 이름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1.1. 음악

일단 장르적으로는 예전에 인기를 끌던, 층쿠를 위시로 한 음악들이 평가가 괜찮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여자 아이돌 침체기 였을때는 예전과 같은 대중적인 인기는 얻기 쉽지 않았다. 여자 아이돌들은 AKB48로 대표되는 걸즈락 계통 음악이 강세로, 퍼퓸(일본)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08년 즈음 크노 팝이 잠시 흥했으나 오리지널을 빼곤 곧 잊혀졌다. 지금은 한류의 영향인지 댄스음악을 내세운 걸그룹도 늘어나는 중. 남자 아이돌들 같은 경우 댄스 음악에 슬슬 기계음이 첨가되고 있다. 하지만 쟈니즈가 워낙 실력이 바닥인지라, 여러가지 새로운 음악을 하는 팀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2. 역사

2.1. 1970년대

일본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는 가수나 배우를 대상으로 아이돌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미소라 히바리시나가 사유리처럼 인기가 있는 여성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냥 '청춘 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1970년대에 젊은층을 대상으로 대중가요를 부르는 청순파 가수를 가리키는 의미로 '아이돌 가수'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일본의 아이돌의 경우. 실적으로 남성을 지칭하는것 보다는 주로 여성을 지칭하는데 쓰였다. 50~60년에 당시 프랑스 영화와 스타들이 일본인들에게 굉장한 붐을 끌었다.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아이돌을 찾아라'(Cherchez Idole!)와 같은 영화들과 영화스타들 그리고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여가수들 ye-ye GIRL들의 붐이 일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잠깐동안 활동하기도 하였다. 실제 당시 일본 여가수들은 엔카가수들을 제외한 LP판들은 거의다 YEYE-GIRL (폰트, 디자인,패션등) LP판과 비슷했다.


실비바르탕 - (영화 "cherchez idole" 중에서 카메오 출연)

1963년, 프랑스의 Sylvie Vartan(실비바르탕):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 (1963, Cherchez l'Idole)
이들은 프랑스에서 "ye-ye GIRL" 불리며 패셔니스타로 지칭되는등 수영복 화보를 찍기도 하였다. 그리고 63년에 데뷔한 "65년 유로비전 컨테스트송" 수상자인 프랑스갈 등이 인기가 많았다.


1970년 일본 여성 아이돌 가수
당시 유럽가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유로비전 컨테스트송" 세트구성과 룰이 비슷한 일본의 "스타탄생"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게 되는데. 실질적인 여 아이돌 스타들이 이곳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아마추어가수던 데뷔하지 않았던 프로가수던 신곡을 가지고 노래불러서 경쟁하는 룰을 가지고 있다.

1977년에 데뷔한 그룹 LAZY(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보컬로 있는 밴드)도 데뷔 직후부터 1980년까지 약 3년간 아이돌로 활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그룹은 소속사의 강압에 의거해서 한 활동이었고 현재는 하드록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1980년의 헤비메탈 선언을 기점으로 하드록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물론 여기에 기존 라이브에서 하드록 커버링이 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는데 이는 1977년 데뷔 당시 나왔던 프로그램에서 부른 곡이 당시 자주빛 불꽃(紫の炎)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에서 불리던 딥 퍼플의 Burn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는 업계 내에서 엄연히 록 밴드로 분류 중.

2.2. 1980년대

아이돌의 황금기.


70~80년대에는 아이돌 산업이 엄창나게 번창하여 수많은 아이돌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아이돌 붐" 현상이 일어났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남자 아이돌은 70년대의 고 히로미, 사이조 히데키, 노구치 고로, 80년대의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 히카루GENJI 등이며 여자 아이돌로는 70년대의 야마구치 모모에, 아사오카 메구미, 마치 마리, 핑크 레이디, 80년대의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를 꼽을 수 있다. 특히 80년대는 70년대부터 시작된 아이돌붐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아이돌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80년, 82년, 85년 세 해에 데뷔한 아이돌들에 거물이 많았다. 특히 80년에 마츠다 세이코, 카와이 나오코, 시와바라 요시에, 타하라 토시히코(가수로서), 콘도 마사히코(12월 가수데뷔) 등이 데뷔한 아이돌 풍작을 기반으로 82년에는 엄청난 수의 아이돌이 데뷔해, 당시 데뷔한 아이돌들을 '꽃의 82년조'라고 불렀다. 나카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하야미 유, 리 치에미, 시카와 히데미, 츠모토 이요(신인상 수상이 82년에 행해져 82년 데뷔조로 분류)가 그 중에서도 유명. 그외에도 수많은 아이돌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후술하는 '아이돌 사대천왕'은 전원 85년도에 데뷔했다.

이 시절은 야마구치 모모에로 시작해서 마츠다 세이코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야마구치 모모에는 아이돌의 필수덕목(청순함, 가련함, 적당한 가창력, 외모)을 확립했고 마츠다 세이코는 아이돌이 어떻게 롱런 아티스트로 변해갈 수 있는지(그리고 섹스 스캔들이 터져도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면서 후대의 일본 여성 아티스트의 길을 제시했다.

한편, 이 마츠다 세이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이벌로 나카모리 아키나가 있다. 한편 나카모리 아키나가 정점에 오른 것은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무기한정지한 와중이었기 때문에, 나카모리 아키나를 모모에-세이코를 잇는 후계자 격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나카모리는 82년에 데뷔한 이래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과 출산 등으로 주춤하던 시기에 여성가수 최초로 일본 레코드 대상 2연패(85, 86년)를 달성하고, 가수별 연간 매상 순위에서 총 4회(83, 85, 86, 87)의 1위를 차지해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나카모리는 대세였던 기존 아이돌의 밝고 귀여운 음악에서 탈피, 특유의 가창력을 길러 마츠다와 대적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츠다와 나카모리는 각각 2900여만, 2500여만의 총 판매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80년대 아이돌 중 최고에 달하는 수치이다. 최근의 아이돌들까지 합해도 SMAPAKB48, 아라시 정도가 이 위에 있다. 애초에 2000만장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7~80년대 아이돌은 이 두 사람이 유일.

80년대 후반에는 포스트 마츠다 세이코 세대로써, 같은 해에 데뷔했던 쿠도 시즈카, 아사카 유이, 나카야마 미호, 미나미노 요코아이돌 4대천왕 이라 불렸다. 음반 총 판매량은 나카야마 미호(1497만)>쿠도 시즈카(1487만)>미나미노 요코(563만)>아사카 유이(297만) 순이었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의 진출까지 하면서 확고한 산업체계가 구축된다. 이 아이돌 4천왕이라는 칭호는 9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이 즈음에 인기가 높았던 또 다른 아이돌이 '코이즈미 쿄코'. 쿄코는 사실 '꽃의 82년조'의 일원으로 나카모리 아키나와 데뷔 동기인데, 데뷔 후 점점 인기가 높아져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최전성기를 맞았다. 이 때 그녀는 "CM의 여왕"이라 불리며 '코이즈미 쿄코를 광고에 기용한 상품은 무조건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냈다. 일설에는 상품의 매상이 10% 가량 올랐다고 한다. 90년대 이후로는 여배우로 사실상 전향. 2010년경 코이즈미 쿄코의 CM 개런티는 무려 4000만엔 정도(…)

한편 80년대 말에는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후지테레비의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오냥코클럽이 국민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평범한 여고생들이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컨셉을 통해 남자 중고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아이돌 4대천왕의 쿠도 시즈카도 이 그룹 소속이었다. 오냥코클럽의 성공은 현재의 모닝구무스메AKB48같은 아이돌 그룹 체계를 완벽하게 다져놓았다. 그러나, 실력이 없어도 전략이 좋으면 성공한다는 전례를 남김으로써 아이돌 전체의 품질 저하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동시에 J-ROCK 밴드 붐의 부상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여성 아이돌의 인기는 저하하고, 90년대의 반 아이돌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2.3. 1990년대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JPOP
80년대 말에 이르면서 '밴드 붐'이 크게 유행하며 아이돌 붐이 가라앉아 '아이돌 암흑기'라는 말이 생겨났다. 80년대까지 대형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에 대한 반감은 인디즈 시장의 확장 및 매니아 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고, 비쥬얼계의 끝물과 함께 GLAY, Luna sea 등의 밴드가 강력한 여성팬층(+락음악의 팬인 남성팬들)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아이돌의 지분을 침식한다.

대신, 아이돌이라는 말 자체에 '특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라는 의미가 붙었다. 그래서 아이돌 여배우, 아이돌 성우, 그라비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라비아 아이돌, CF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CM아이돌 등의 단어가 생겨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이러한 아이돌 마케팅의 히로스에 료코가 국민 여동생급의 인기를 얻으며 80년대 이후 위축되어 있었던 여자 아이돌 시장을 크게 확장하였다. 또한 주로 노래도 부르면서 댄스, 작사, 연기와 예능 등에도 강한, 엔터테이너적인 성향을 중시하는 '1인 아이돌'이 대두되었던 시기기도 하다. 이 때 인기를 얻은 아이돌은 시노하라 료코, 넨 리나, 치다 유키, 즈키 아리사, 키세 리호 등이 있다.

이렇게 배우, 모델, 그라비아 아이돌 등 여러 형태의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여성 아이돌 가수 시장은 90년대 초반 잠시 위축기(아이돌 빙하기)를 맞았다. 90년대 초반 활약했던 아이돌 중 가수만을 전업으로 하는 것은 CoCo가 유일하다.

90년대 중반에는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솔로 아이돌 가수인 카하라 토모미아무로 나미에가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였으며,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스즈키 아미하마사키 아유미가 인기를 다투었다. 한편 그룹 아이돌 가수로는 SPEED가 음반 판매량 180만 장을 기록하며 거의 전설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에서 반 아이돌 기류가 가장 팽배했던 시기로, 여자 아이돌의 주고객층인 남성팬들은 애니메이션, 만화, 인디즈 시장의 고객으로 변하게 된다. 반면 남자 아이돌은 쟈니즈계열로 대표되는 특정 회사의 독식이 아주 크게 나타나며 SMAP, kinki kids, TOKIO, V6 등이 주류가 된다.

2.4. 2000년대

2001년 모닝구무스메
2000년대에 들어서 솔로 여성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2001년 데뷔한 마츠우라 아야는 히로스에 료코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솔로 여성 아이돌로 평가받는다. 노래 실력도 있고 외모도 출중하며 연예 감각도 뛰어나서 각종 오락 방송과 CM을 독차지하며 소위 '국민 여동생'의 지위에 올랐다. 음악성도 있고 스타성도 뛰어난 정통파 여성 아이돌이 차지하던 시장은 하마사키 아유미,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솔로 여성 아티스트가 차지하였다. 이로서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선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정통파 여성 아이돌이 사라진 자리를 모닝구 무스메와 같은 헬로! 프로젝트 아이돌이 메웠다. 모닝구 무스메는 친근한 이미지와 방송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 등을 통해 기존의 아이돌 팬층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국민 아이돌의 자리에 우뚝 선다. 모닝구 무스메의 대성공 이후 여성 아이돌에게는 가수로서의 실력보다 방송인으로서의 센스를 더 많이 요구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국보다 약 10년 정도 빠르게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같은 컨셉의 '과거 아이돌 재데뷔 프로그램'이 나왔으나 역시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미 아이돌의 개념이 많이 바뀐 상황이기 때문에 예전 암흑기에 스러져간 유망주들을 발굴해 봤자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기 때문.

한편으로 새로운 아이돌 컨셉을 제창하며 등장한 4인조 밴드형 여성 아이돌 그룹 ZONE이 2000년에 메이저 데뷔하며, 밴드라는, 여성 아이돌계에 새로운 블루오션 영역을 개척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홋카이도의 사무소에서 결성되어, SPEED를 롤모델로 하는 댄스 그룹을 목표로 연습하던 ZONE은, 인디즈 시절에 발표한 밴드 컨셉의 PV제작을 계기로 아예 밴드 아이돌로 노선을 튼다. 그리고 소니뮤직을 통한 메이저 데뷔 이후 이게 제대로 먹혀서 10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하는등 크게 성공했다. 활동 당시 소니뮤직은 밀레니엄에 맞춘 아이돌 그룹이라며 밴돌 (밴드 + 아이돌)이라는 컨셉으로 그룹을 소개했었다. 댄스 아이돌로 연습생을 시작했던 탓에 처음에는 악기 포지션만 서로 나누어져있고, 악기를 들고 핸드싱크와 함께 춤을 추는등, 연주력은 없다시피했으나, 본인들의 노력으로 연주력과 음악성을 점차 강화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댄스 퍼포먼스를 내세우는 순수 댄스곡도 이따금씩 발표하는 등 복합적인 컨셉으로 형태를 유지했다. 아이돌이지만, 아티스트적인 요소를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고, 점차 그러한 실력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아이유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에이벡스비전팩토리 등에서 시도했던 SweetS, dream, Folder5 등의 댄스 걸 그룹들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또한 모닝구 무스메도 2002년 이후 판매량이 급감하고, 모닝구 무스메 소속사의 장기의 포석이었던 헬로! 프로젝트도 방송을 통한 대중적인 접근보다는 투어,굿즈 위주의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황금기보다는 매상이 떨어지게 된다. 이후 일본 내의 여자 아이돌은 오타쿠 전용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대중적 관심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 내에서 여성 아이돌이 침체기를 겪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여성 그룹의 침체기와 겹친다.

다만 모닝구 무스메 이후 침체기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90년대 이후 계속 침체기가 이어졌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다. 사실 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말까지 계속해서 여성 아이돌 시장은 암흑기였다. 2000년대 초반에 모닝구 무스메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인기는 여성 아이돌이라는 시장 자체의 부흥이 아니라 모무스라는 그룹 하나의 인기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가 그 기간도 매우 짧았기 때문.

2007년을 기점으로 퍼퓸이 7년 무명 끝에 큰 인기를 끌어 50여만 장에 달하는 음반 판매와 무도관 입성을 이루고, 뒤를 이어 모닝구 무스메 이상으로 까이던 AKB48이 연달은 히트, 싱글 20만매 이상 판매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여성 아이돌계 탑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 두 그룹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업계 전반적으로는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 시기 쟈니스로 대표되는 남성 아이돌은 90년대의 전성기를 이어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데뷔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아라시가 2000년대 중반부터 Love so sweet 등의 곡을 히트시키며 대중과 팬덤 모두에게서 지지를 받고 새롭게 데뷔한 캇툰이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100만 장이나 되는 판매고를 올리는 등의 성과를 올렸고, 이를 통해 쟈니스는 여성 아이돌에 비해 매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맞서 비전 팩토리에서는 윈즈, 다 펌프, 리드 등의 남성 아이돌을 데뷔시켰지만 쟈니스의 독점 등으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5. 2010년대

2013년 AKB48

AKB48의 기세는 2010년에 폭발했다. 단순히 상술과 팬덤에 의존한 싱글 판매량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전성기의 정점을 찍었던 2011년에는 번화가의 광고판마다 AKB 멤버가 한 명씩은 들어가 있어서, 'AKB라면 지긋지긋하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AKB의 성공에 힘입어 201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하였고, 매스컴들은 '아이돌 전국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성 아이돌 시장에 주목하였다.

2010년대에 등장한 무수한 아이돌 중 가장 큰 성과를 얻은 것은 모모이로클로버로, 기존 아이돌과는 다른 독특한 콘셉트와 관객들을 덩달아 들뜨게 만드는 콘서트 무대 장악력 등으로 다른 아이돌 그룹과는 차별화된 팬덤을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모닝구 무스메헬로! 프로젝트 그룹은 상술을 강화하면서 음반 판매량을 부쩍 늘렸다. 또한 미디어 홍보, TV 출연이 늘어나면서 대중 인지도도 높여가려는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안정적인 수익성과 괜찮은 실력 등으로 저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에이벡스에서는 iDOL Street를 데뷔시켰으나 다른 그룹과의 차별화에 실패,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편으로 장르적인 다양성도 싹텄다. 스캔들이나 Silent Siren처럼 밴드와 아이돌 사이를 오가는 그룹, 9nine, 도쿄죠시류, E-Girls처럼 보컬과 퍼포먼스를 중시한 그룹 등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E-Girls의 경우 여성층을 주 타겟으로 '워너비'상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자신들만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밖에 정통 메탈 음악을 내세운 BABYMETAL, 모모이로클로버의 후배 그룹인 립에비스중학교 샤치호코, 전파계로 무장한 덴파구미.inc 등의 그룹이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으며, 방송이나 잡지 등의 대형 매체에 안 드러나서 그렇지, 로컬 아이돌이나 지하 아이돌의 활동과 팬덤은 그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훨씬 커졌다.

2010년, 한국의 카라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기존의 여성 그룹과는 다른 절도있는 안무와 세련된 곡이 1~2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 이 두 그룹을 시작으로 K-POP에 관심을 가지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한류'의 폭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여러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진출하였으나, 마케팅 전략의 부재와 차별화 실패 등으로 인해 카라와 소녀시대 이외에 일본 시장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그룹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2012년부터 한일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한국 아이돌들이 방송에 나가기가 많이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류 고정 매니아층은 작게나마 유지가 되고 있으며 이들을 기반으로 몇몇 그룹들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남성 아이돌은 쟈니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아라시가 국민 그룹으로 활동하는 한편 후배 그룹들도 비록 아라시와 같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룹은 아직 없지만 쟈니스라는 기반이 워낙 탄탄하다보니 별 문제 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기대주였던 캇툰이 멤버 탈퇴 등의 내홍을 겪으며 부진한 가운데, 칸쟈니∞이 선전하고 있으며 Kis-My-Ft2가 신인 중에서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한편 비전 팩토리 남성 아이돌은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모모이로클로버Z의 스타더스트에서 이 시기 남성 아이돌 그룹을 여럿 데뷔시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2015년 현 시점에서 여성 아이돌 판은 AKB48, Perfume, 모모이로클로버 세 그룹이 확고한 최강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1]. AKB사단의 자매그룹들과 E girls가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2] Babymetal, 덴파구미.inc또한 아레나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면서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하로프로또한 14년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부활의 기미를 보이는 중.

3. 분석

3.1. 컨셉 (여성 아이돌)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여성 아이돌은 소위 '유사 연애대상'이라는 컨셉에 묶여있었다. 이는 연애 경험이 부족한 소년이나 청소년들에게 마치 실제로 아이돌과 연애를 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들게 함으로써 장사를 하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여성 아이돌들이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런 수법은 써먹을 수가 없으므로, 아이돌 기획사들은 아이돌 스타들이 연애를 전혀 모르는 순수한 소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했다.

청순함, 순정과 같은 깨끗한 이미지와, 첫사랑이나 짝사랑 등을 다룬 풋풋한 소재의 노래를 들고 활동하였다. 또한 방송 인터뷰에서도 '애인 같은 거 없어요'라고 대답하며 연애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이미지를 쌓았다. 아예 '연애 금지'를 내건 소속사도 많았다. 물론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처녀가 연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7~80년대 일본인들은 순진했던 건지(…) 이런 상술이 통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지속적으로 아이돌 스캔들이 터져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츠다 세이코의 경우이지만, 마츠다는 이것을 역이용해서 '당찬 여성 스타'의 이미지를 구축, 당대의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물론 안티도 많이 생겼지만... 이때문에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에는 흠집이 갔다. 또한 9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욕'이 인지되면서 '순결하고 청순한 소녀'라는 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반인들도 잘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여성 아이돌이 추구하던 '유사 연애대상' 상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90년대 초반 불어닥친 여성 아이돌 빙하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아이돌 빙하기가 끝난 90년대 후반 등장한 모닝구 무스메는 이전의 여성 아이돌과는 달리 친근하고 떠들썩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모닝구 무스메는 우타방 등의 예능 방송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면서 친한 친구같은 이미지로 다가갔다. 한정된 계층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상상 속의 연애대상'이라는 컨셉 대신 '재미있고 웃긴 여자애들'이라는 컨셉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덕분에 모닝구 무스메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등장한 여성 아이돌들 역시 성애 감정보다는 친근감으로 승부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퍼퓸이 있다. 퍼퓸은 퍼포먼스의 화려함이나 높은 퀄리티의 곡으로도 인기를 얻었지만, 멤버들이 예능 방송에서 보여준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모습 역시 퍼퓸이 인기를 얻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렇게 여성 아이돌의 컨셉이 변함에 따라 오늘날에는 일본 여성 아이돌을 단순히 '유사 연애대상'으로만 분석하기는 힘들어졌다. 실제로 오늘날의 여성 아이돌 팬덤 중에 진짜로 아이돌을 유사 연애대상으로 인식하는 팬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여성 아이돌의 환상에 그대로 넘어가버리는 극성 오타쿠들이 여전히 있긴 하다. 인기 아이돌 성우였던 히라노 아야의 스캔들때나 토요사키 아키의 스캔들이 대표적인 예. 한국에서 비슷한 예를 찾자면 아이유 스캔들 당시 과도할 정도로 아이유를 비난했던 일부 남성 팬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 연애대상'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일본 여성 아이돌 업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사 연애대상 모델이 일본 여성 아이돌 업계에 남긴 악습으로는 '연애 금지'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여성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그런 관습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7~80년대의 아이돌 팬들은 '나의 아이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인식했다는 것이지만, 2010년대의 아이돌 팬들은 '여자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연예계의 오랜 규칙이니까 지켜야 한다'라고 인식한다는 것. AKB48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2013년 들어 'AKB48에 연애 금지 룰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고 밝혔다.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시하라 리노가 연애 금지 룰이 없어지고 자기 책임제로 바뀌었다고 증언하는 등 연애에 대해 관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팬들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넘기는 분위기.

사실 아이돌의 연애를 엄격하게 보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크릿한선화내가 아이돌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결혼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힌 적도 있다. 아이유는 '깨끗한 소녀'라는 이미지로 활동하였는데, 그런 그녀가 은혁과 스캔들을 터뜨리자 대다수의 사이트에서는 '아이유 걸레' 등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내뱉었다. 단지 상의 탈의를 한 다른 소속사 연예인과 같이 있는 사진이 공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팬들이 안티로 돌아선 것이다. 2014년에는 소녀시대 멤버들이 단체로 열애설에 휘말려 팬덤이 혼란을 겪었으며 그 중 이승기-윤아 커플을 제외하고는 이미지가 매우 나빠졌다.

AKB48의 경우 악수회나 투샷회처럼 아이돌과 팬들이 직접 만나는 이벤트를 열고 있는데, 이는 유사 연애대상 모델의 변종으로 볼 수 있다. AKB48의 멤버들은 악수회에서 팬들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팬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따라 인기에 영향이 미친다. 와타나베 미유키하타 사와코처럼 악수회에서 오타쿠들에게 웃음을 잘 지어주고 말을 잘 해주는 멤버들은 소위 '神'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수 백 수 천 명을 상대하는 악수회에서 지치지 않고 연기를 하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지만, 정작 본업인 가무보다는 이런 부수적인 곳에서 인기가 좌우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07년대 퍼퓸의 브레이크와 곧이어진 한류걸그룹 러쉬로 인해, 기존 여성 아이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사연애보다는, 가수로서의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 아이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큐트, 9nine, DiVA, 페어리즈, 도쿄죠시류, E-Girls(Dream, Happiness, FLOWER, bunny)~~,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아울러 모모이로클로버 Z 도 있긴있다. 이들이 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유사연애 노선을 약간 변형한 쪽에 가깝다. 기본 실력이 부족한데도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

유사연애보다는 가수로서의 능력을 앞세운 이런 그룹들은 자신들이 아이돌임을 자칭하고 아이돌이라 볼 수 있는 속성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긴하다. 10대 초중반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정도 예능활동을 겸업하며, 자신들의 비주얼 또한 적절히 활용한다. 이들은 AKB사단과는 달리 노골적인 상술이나 유사연애 등을 배제하는 편이다. 실제로 '퍼포먼스형 아이돌을 자칭'하는 그룹들의 경우, 그라비아악수회, 음반 사양별 장난질 같은 상술을 거의 벌이지 않고, 대신 공연활동에 집중하는 등 가수로서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 활동한다. 이들은 기존 AKB사단을 비롯한 유사연애를 바탕으로 오타쿠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는 아이돌 산업에 염증을 느낀 대중, 혹은 비주얼과 가무를 겸비한 여성 가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며 비록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차츰차츰 팬층을 확보해 가고 있다. 한일관계의 냉각으로 한류 아이돌들의 인기가 식어가는 중이라 비슷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이들의 성장이 기대되는 중.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비주얼과 남성팬'vs'가창력과 음악성'을 무기로 한 노선의 대비가, 이미 마츠다 세이코나카모리 아키나때 이미 이뤄진 구도라는 점.

물론 이런 새로운 형태의 컨셉은 한국에서 더 일찍, 그리고 더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돌에게도 일정 이상의 실력을 요구하는 한국에서는 '가수로서 실력'에 비교우위를 가진 걸그룹들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팬덤확보가 약했던' 그룹이나 '가수로 데뷔했지만 아이돌로 어필할 요소를 지녔던'그룹들이 시장의 이점을 위해 하이브리드적 컨셉을 사용하게 되기도 했다. 이런 아이돌과 뮤지션의 특성을 동시에 어필해서 성공한 그룹이 기존 걸그룹 클리셰의 안티테제를 내세운 2NE1이나, 아브라카다브라의 히트를 바탕으로 아이돌 걸그룹의 색채를 가미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 보컬그룹이지만 아이돌스러운 비주얼과 활동을 겸업하는 다비치 등이 있다. 일본의 퍼포먼스형 아이돌들은 한국의 이들처럼 기존 아이돌판의 결점을 가수로서 특성을 차용해 탈피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다만 한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의 경우 SPEED라는 걸출한 여성 그룹의 선례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걸그룹 레전드인 핑클이나 S.E.S가 여성으로서 유사연애적 속성이 강한 편이었던 것과 달리, 스피드는 해외의 아티스트적 걸그룹의 성향이 더 강했다. 여성으로서 매력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보다 가수로서 비교우위에 더 큰 비중을 둔 것. 물론 SES도 활동후기에 접어들면서 음악적 부분에 무게추를 더 두기도 했고, 멤버들도 자신들의 '음악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SPEED의 경우 강렬한 댄스음악이 메인이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 그래서 가수를 전면에 내세운 일본 (여성) 아이돌은 이 스피드의 계보를 이어가는 데 목표를 둔다는 점이 한국과 조금 다르다. 페어리즈같은 경우 SPEED의 직계 후배인 데다가, 동일 소속사에서 MAX아무로 나미에라는 걸출한 여성 아티스트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을 계승하겠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으며, 퍼퓸은 아예 결성동기가 SPEED같은 걸그룹이 되는 것이었다.

다만 이러한 퍼포먼스 노선을 타기 위해서는 아티스트에 준하는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컨셉을 쉽사리 선택할 수 있는 그룹도 드물고, 설령 퍼포먼스형 아이돌을 표방한다고 해도 대중이 이를 납득할 만큼 뛰어나지 못하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큐트가 아직까지 실력파 그룹이라는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하로프로특유의 방송,예능을 통한 홍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며, 페어리즈는 안무 실력만큼 보컬을 좀 더 보완해야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여러모로 '유사연애'형 아이돌보다 리스크가 큰 셈.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은 아이돌의 실력에 대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말로 일반 대중이 보기에 "얘들 노래 좋네? 무대도 좋고."하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유효한 유사연애대상인 아이돌과 비교해서 우위를 얻을 수가 없다.

3.2. 실력

원래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아이돌은 솔로 위주였다. 80년대까지 활동하던 솔로 아이돌들은 오늘날의 아이돌과는 달리 가수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활동했다. 스스로 작사에 참여하는 등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아이돌도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재색을 겸비한 가수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시대를 풍미했던 나카모리 아키나는 미모 이전에 뛰어난 음악성 자체가 무기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야마구치 모모에에 이르면 엔터테이너적 성격보다는 '아름다운 뮤지션'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한때 아이유가 일본에서 데뷔를 했을때, 80년대 일본 여성 아이돌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던것은 이러한 당시 아이돌들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오냥코클럽의 데뷔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음악쪽으로 경험이 없는 일반 여중고생들이 전략과 마케팅의 승리로 인기를 얻은 것이다. 오냥코클럽의 성공은 이후 모닝구 무스메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모닝구 무스메는 라이브 실력이 비교적 괜찮긴 했지만 ASAYAN이라는 오디션 방송의 힘, 그리고 친근감을 무기로 내세운 마케팅의 힘 등이 없었다면 당시의 큰 인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형태의 아이돌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실력도 있고 아이돌성도 있는 정통파 여성 아이돌의 계보는 끊어졌다. 하지만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여성 가수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모에-세이코-아키나로 이어지는 여성 솔로 가수의 계보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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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그룹 멤버수가 늘어나고, AKB48처럼 수십명 단위로 이루어진 그룹들도 늘어났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솔로 아이돌 시대 이후 나타난 아이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개 가창력이 현격하게 부족해 떼창으로 이를 커버할 필요가 절실했다. 업계에서는 '사운드를 풍성하게'라는 말로 둘러대지만, 실상은 '가수'로서 활동하기 위해선 부족한 가창력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음반을 '음악을 듣기 위한' 소스로 쓰기엔 너무나 수준이 떨어졌고, 결국 노출같은 다른 분야에서 승부를 보려 들 수 밖에 없게 된 탓이 컸다. 이 점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아이돌인 AKB48에게서도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처참한 가창력이지만 16명(미디어 선발)을 모아 떼창을 시키면 단점이 묻힌다. 단적인 예로 이타노 토모미의 솔로 라이브와 팀 본체의 라이브를 비교하면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물론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장점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멤버가 많다고 비난하기만 할 수는 없다. AKB48은 아예 그 점을 이용해 창단스러운 편곡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원래 잘하는데 그걸 증폭시킨 것과, 못해서 저렇게라도 커버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 퍼퓸같은 경우는 변칙적 방법으로, 한사람의 목소리를 쪼개 한명이 여러명분의 화음을 구사하게 만드는 레코딩을 활용했다.

사실 일본 아이돌, 특히 여성 아이돌은 구성원들의 부족한 실력 그 자체를 내세우는 면이 있다. 미숙한 아이들이 아이돌로서 노력하는 그 과정의 스토리 자체를 상품으로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국에서 말하는 아이돌과 일본에서 말하는 아이돌은 의미가 완전히 다른 셈. 실제로도 한국에서 진출한 동방신기, 카라는 시작부터 준 아티스트로 분류되었을 정도.

또 아이돌 오타쿠들은 특유의 '소극적인데 지배욕만 강한 기형적 심리구조'가 있어서, 아이돌 산업이 '성장'과 '스토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실력파 아이돌'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로 꼽힌다. 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귀염성이 없어정도 뉘앙스다. 일본 아이돌 문화는 마치 소년만화의 주인공 성장 스토리 처럼이웃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아이가 노력을 통해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이미 실력 성장이 완료되어 더 나올 이야기가 없는 이미 평범한 소녀가 아닌아이돌에 대해서는 감정이입이 어렵고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아이돌 졸업. 실제로도 외모가 괜찮으면 처음부터 배우나 모델로 데뷔하고 노래를 잘 부르면 가수가 되지, 아이돌이 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아티스트로 데뷔한다. 그래서 실력이 뛰어나면 아이돌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의외로 이런 케이스가 좀 된다.

예를 들자면, AKB48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멤버 중 한명인 사시하라 리노의 경우, 대단히 예쁜 외모도 아니고, 연기력이나 가창력이 빼어난 편도 아니지만 어설픔과 허접함을 어필함으로서 '친근감'을 만들어냈다. 그냥 흔한 동네 예쁘장한 애 정도 수준인 소녀가 어렵고 힘든 연예계에서 고생하고 구르면서 점점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는 과정 자체를 어필했다.(완전히 점프주인공이다). 사시하라는 원래 아키P가 버린 카드였음에도 이런 어필덕분에 아키P가 직접 오시멘을 선언할 정도로 푸시를 받아 대성했지만, 정 반대로 마스다 유카의 경우, 이미 가창력과 안무소화력, 무대 장악력에서 완성된 '이미 잘난 애' 같은 이미지로, 팬덤이 감정이입이나 대리만족을 느낄 여지가 전혀 없어서 실력이나 AKB덕후들사이에서의 인기와는 반비례하게 거의 푸시를 받지 못했다. 그에 따라 마스다는 줄곧 병풍 신세가 되고 말았고, 결국 2012년 12월에 소속사에서도 공식 부정했던 스캔들을 스스로 밝히며 졸업을 선언했다. 실제로 마스다가 AKB에서 졸업한 이유에는 본인이 뮤지컬쪽에 전념하고 싶어 했던 점도 있지만, 이런 일본식 아이돌 체계에 대한 염증이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리고 AKB 유닛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난 DiVA는 싱글 판매량 10만장도 넘지 못하고 AKB 유닛 중 최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다른 유닛인 노스리브스의 다카하시 미나미코지마 하루나, 프렌치키스의 카시와기 유키, 이동복도의 와타나베 마유, Not yet의 오오시마 유코사시하라 리노 등은 선발급 멤버들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반면 DiVA 자체가 AKB에서 중위권 정도의 인기를 가진 멤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판매량이 다른 유닛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애초에 DiVA 멤버들의 인기가 상위권이 아닌 이유 자체가 이들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룹의 예를 들어보면, 모모이로클로버는 퍼포먼스 이외에는 보통 정도의 비주얼과 부족한 가창력을 갖추었지만, 이것이 오타쿠에게 먹혀 친근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고, 햐다인이라는 든든한 프로듀서를 바탕으로 오타쿠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밑바닥부터 고생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 + 홍백가합전에서 탈퇴한 전 멤버를 상징하는 물건들과 가사를 그대로 들고 올라감으로서 스토리성마저 대폭발했다. 바로 푸른색 전구가 들어간 의상과 무대 피날레에서 뿌린 푸른색 리본. 멤버별 이름을 부르는 가사를 탈퇴 전 오리지날 버전으로 부른 것.

반면, 비슷하게 밑바닥에서부터 고생하고, 활동 중에 멤버가 빠져나가 팀이 재편되는 스토리 자체는 큐트9nine에게도 있다. 큐트는 소속사 푸쉬가 거의 없다가(음악 방송도 못나간 적이 있었음)최근엔 모닝구무스메 다음 정도로 푸쉬는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TV에선 보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 오카이 치사토라는 멤버가 나름 재미있기 때문에 기회만 더 주어진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모모치도 처음부터 주목받진 않았던 것처럼). 또 9nine은 진짜 지하 아이돌부터 시작했고, 리뉴얼 전까지는 거의 방치 상태였다. 리뉴얼 후에는 그 전에 비해 어느 정도 푸시를 받기 시작했지만, 음반 판매량이 2013년 현재도 15,000장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은 2014년 기준 결성 9년차인 중견 아이돌이다.

현역 일본 걸그룹 중 큐트9nine보다 오래 활동한 팀은 SPEED, 모닝구 무스메, 퍼퓸, Dream, 베리즈코보 정도밖에 없고, AKB48과는 동년배이다. 게다가 이들은 오랫동안 활동한 만큼 레퍼토리가 축적되면서 가창력과 퍼포먼스에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성장 스토리'를 내세울 수 없게 되면서''' 부족함을 좋아하는 일본 아이돌 오타쿠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워졌다. 또 활동 경력은 큐트, 나인은 물론 모모이로클로버보다도 짧지만 가창력과 퍼포먼스, 비주얼의 삼박자를 제대로 갖추고 데뷔한 도쿄죠시류도 역시 오타쿠들에게 어필할 음악적 특성과 '아이돌로서 내세울 수 있는 성장 스토리'가 부족하여 소속사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이 팀들은 실력이 좋아서 아이돌로서의 매력이 적다는 것 외에도 모두 각자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DiVA는 유닛이라는 한계상 본체그룹인 AKB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으며, 큐트는 예능감이 바닥이고, 도쿄죠시류는 오타쿠는 물론 대중에게도 어필하기 어려운 음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9nine은 팬층을 확대할 컨텐츠가 너무 부족하다.

이런 틈새시장 공략 사례가 있기 때문인지, 걸 밴드를 표방하는 스캔들이나, 'EXILE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슬로건으로 데뷔한 E-Girls도 데뷔 초부터 아이돌이라기 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운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되도록 그라비아나 노출같은 성적 소구를 배제하며, 음악을 바탕으로 한 공연 위주 활동이나 남성이 아닌 여성층에게 소구할 만한 컨셉 및 노선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E-Girls의 경우 여자 아이돌이라는 시장의 이점을 위해서 아이돌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팬덤확보에도 신경을 쓰는 듯하다. 단, 페어리즈의 경우,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 노래 자체를 내세우는 아티스트 노선을 걷기에는 가창력이 부족해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

모닝구 무스메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실력은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고, 그 위에 성장스토리를 만든다는 형식이여서 실력적인 부분은 일본 아이돌 중에서는 괜찮은 편에 속했다. 때문에 다른 아이돌들의 등장으로 침체기가 길어졌던 상황에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스토리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완전히 빈틈없는 실력파 아이돌 컨셉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모두가 따라춤추기 쉬운 안무, 노래를 하던 모닝구 무스메가 이제는 아무도 따라할수 없는 음악을 한다.' 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고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 '모닝구 무스메가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어쩔수 없이 실력으로 무장할수 밖에 없었다.' 는 성장스토리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져 이를 계기로 약 10여년 만에 상승세를 타고있는 중이다.

특이하게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한국에도 있긴있다. 카라는 데뷔 초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엄청난 혹평을 받았으나, 멤버들이 근성과 노력으로 실력을 기르고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팬들을 매료시켰다. 일단 그룹 자체의 인기는 한국에선 안타까운 DSP의 관리능력을 넘어선 한승연소녀가장활약으로 반지하돌 비슷하게 그룹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소수의 팬을 쌓아나가다가 미스터의 히트 + 일본시장 어필 성공으로 물꼬가 터진 케이스지만, 멤버들 개인팬덤은 이쪽 사례에 부합한다. 대표적으로 강지영. 데뷔초에는 연습생 3개월만에 초고속 데뷔해서 5초는 커녕 3초도 제대로 노래를 못하는 음치수준이던 소녀가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럴싸한 가수가 되는 과정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은 아이돌이건 아니건 가수의 '실력'에 상당히 민감하다. 때문에 만만하고 친근한 이미지로도 어필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하기 상당히 힘들며, 너무 잘한다고 인기를 얻지 못하지도 않는다. (한국시장에서 데뷔했다고 가정하면 큐트,마스다 유카9nine은 성공가능성이 조금 올라간다.) 때문에 카라의 경우와 완벽한 반대사례는 없지만 천상지희는 오히려 인위적인 실력파컨셉으로 인해 남성팬에게 어필이 되지 않은 것과 더불어, 동성팬층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기 못하게 되어, 소속사의 전폭적인 푸시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자세히 말해보면 천상지희가 실패한 것은 당시 SM의 대표였던 김경욱의 매니지먼트상 실책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서태지 시절부터 한국 그룹 가수들이 완벽한 실력과 컨셉으로 승부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천상지희의 실패는 '실력파'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실력파라는 '어필 과정'에서 나온 인위적인, 즉 가공품으로서의 냄새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하다. 이쪽은 오히려 과한 실력어필과 푸시가 일을 그르친 케이스로 볼수있다.

물론 적절하게 아티스트와 아이돌 줄타기 + 히트곡의 인기에 힘입은 음원과 공연흥행으로 활동하는 가수는 한국에도 있다. 대표적으로 다비치씨스타같은 걸그룹들은 팬덤인기보다는 곡의 인기와 가수로서 무대 공연능력을 바탕으로 선전하고 있고, 일본의 E-Girls퍼퓸(일본)도 이런 세일즈 포인트로 재미를 보는 중이다.

노래 실력과는 별개로 일본 아이돌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어쩌면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영역이 있는데, 바로 문장력이다.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이 팬 조련 (?) 의 일환으로 블로그나 구글플러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

3.3. 독점 (남성 아이돌)

일본 내 남성 아이돌은 90년대 이래로 쟈니스가 독점하고 있다. 이는 쟈니스가 철저한 견제 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경쟁사의 남성 아이돌이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뇌물이나 보이콧 등을 사용하여 방송사를 압박하기 때문. 이때문에 일본에는 '남성 댄스 아이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비전 팩토리 계열의 w-inds.DA PUMP가 있지만 방송에 나오지 못하니 인기가 늘어날 수가 없다. 특히 w-inds는 꽤나 피해를 많이 봤다. 이 외에는 사실상 '남성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이 없는 실정이다. EXILE 같은 그룹도 있지만….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무섭다

사실 여성 아이돌과는 달리 남성 아이돌의 시장이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도 않다. 여성 아이돌은 90년대 이후로 오타쿠 계층을 노린 마케팅으로 그들만의 시장을 형성하였지만 남성 아이돌은 그런 열성적인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쟈니스가 사실상 남성 아이돌을 독점하다보니, 쟈니스가 몰락하면 일본 남성 아이돌 자체가 몰락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 내에서 남성 아이돌을 소비할 만한 계층, 즉 젊은 여성층은 비주얼계 밴드를 소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주얼계 밴드는 밴드라지만 멤버들의 외모와 같은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기 때문에 아이돌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EXILE이나 AAA처럼 댄스와 보컬 실력을 겸비한 그룹들도 일본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비주얼계나 댄스&보컬 그룹은 아이돌과는 엄연히 별개의 노선으로 취급된다. 어떻게 보면 비주얼계와 댄스&보컬 그룹이 건재한 탓에 남성 아이돌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쟈니스가 데뷔시킨 아이돌 중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1999년 데뷔한 아라시가 사실상 마지막이고, 그 이후 데뷔시킨 NEWS, Kis-My-Ft2, 캇툰, Hey! Say! JUMP 등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NEWS는 멤버들이 사고를 쳐서 팀을 탈퇴함에 따라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고, 캇툰은 강력한 팬덤의 화력에 힘입어 한때 밀리언 셀러를 만들기도 했지만 현재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황. Hey! Say! JUMP는 야마다 료스케에게 인기가 너무 편중되어 있으며, 칸쟈니8은 최근 포스트 아라시로 부상하고 있지만 멤버들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들의 싱글 판매량은 쟈니스 전체팬덤의 힘으로 캇툰빼고 20만장씩 나오지만 앨범판매량 성적은 이미…. 거의 절반쯤은 그들만의 리그로 들어가 버린 게 아니냐는 평이 있다. 실제로 쟈니스 신규 그룹의 팬덤은 대부분 다른 그룹 팬질을 하다가 치비 주니어 시절부터 곁다리로 봐 온 멤버들이 데뷔했을 때 팬심이 이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지, 비 쟈니스 팬덤이던 사람이 새로 유입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2000년대 초~중반의 하로프로 역시 당시의 여성 아이돌 시장을 독점에 가까운 형태로 장악하였으나 소속사의 삽질 및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투어 위주의 활동, 경쟁자의 부각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다가 최근 약간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쟈니스의 경우 팬덤도 하로에 비해 훨씬 강하고, 소속사가 멍청하지 않아 경쟁자를 효율적으로 차단해버린지라 하로프로처럼 침체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장사를 추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런 식이라면 아직은 괜찮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유입인구가 이탈인구 수 보다 줄어들어 전체 팬덤 크기가 감소할 텐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서서히 죽어간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 이미 연기(시청률 + 연기력)에서는 음반보다 훨씬 더 저조한 성적을 내는 실정이니…

대중들의 반응은 한류 아이돌의 등장으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이에 힘입어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 2PM 등의 한류 아이돌이 일본에 진출하여 어느 정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때문에 일본에서도 '쟈니스는 한류 아이돌보다 못하다'라는 시각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 그러나 한류 아이돌의 인기는 어디까지나 '한류 팬'이라는 특정 계층에 한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쟈니스의 벽을 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2년 11월 14일, 쟈니스의 비교적 신인 그룹인 Kis-My-Ft2과 한류 아이돌 2PM이 동시에 싱글을 발매했을 때 2PM이 판매량에서 키스마이보다 더 떨어졌다. Kis-My-Ft2가 초동 약 25만 9천 장으로 위클리 1위를 차지했고 2PM은 키스마이 판매량의 절반인 초동 약 13만 장으로 위클리 2위를 차지했다. 다만 음원차트에서는 쟈니스가 풀음원을 잘 공급하지 않기때문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공개하더라도 주로 드왕고라고 하는 특정사이트에서 공급하며 쟈니스의 대부분의 가수는 벨소리만 공급한다.

2012년 들어서 한일간의 정치적 관계가 냉각되었고, 이에 따라 한류 아이돌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응도 사그라들었다. 일본의 음악이나 오락 방송에서 한류 아이돌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음반 판매량도 폭삭 주저 앉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쟈니스아이돌들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도 아니다. 한류 남성그룹이 가지고 있던 파이는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고 있으나, 이들의 니즈를 보면 쟈니즈 팬덤으로 영입될 확률은 거의 없다. 춤과 노래가 뛰어나고, '남성'으로서 어필이 강한 남자그룹, 즉 '댄스음악을 하는 잘생기고 세련된 아티스트 집단'을 추종하던 사람이라면, 대체제로 EXILE이나 비슷한 아티스트 팬으로 전향하지, 쟈니즈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 아이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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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세 그룹은 모두 아레나 투어는 물론이고 도쿄돔에서 2일 이상 공연이 가능하다. 모모크로는 스타디움 2일, 퍼퓸은 도쿄돔 2일+쿄세라돔 2일 콘서트를 매진시켰다.
  • [2] 이 팀들은 아레나 투어나 작은 돔에서의 단발성 공연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