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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

last modified: 2015-03-03 00:52:05 Contributors


왜경(倭警)

Law enforcement in Japan. 日本の警察. 일본국경찰 조직으로 일본 경찰법 2조 1항에 근거한다. 육상자위대의 전신이었던 경찰예비대는 법적 근거가 다르나 어느 정도 폭동진압경찰로 성격을 갖췄다.

Contents

1. 개요
1.1. 공안경찰
1.2. 경비경찰
2. 역사
3. 조직
4. 계급
5. 수사권
6. 자위대와의 알력
7. 무장
8. 전화번호
9. 갤러리
10. 황궁호위관
11. 미디어에서
11.1. 경찰이 나오는 작품
11.2. 가상의 경찰
12. 관련항목

1. 개요

기능에 따라 범죄 예방과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행정경찰, 이미 발생한 범죄 등을 수사하는 사법경찰로 구분한다. 그 외에도 보안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공안경찰과 특별사태에 대비하는 경비경찰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인 경찰과는 좀 분리하여 본다.

1.1. 공안경찰

公安警察. 공안(public safety)을 담당하는 곳으로 엄밀히는 아래의 경비경찰의 일부분이다. 일본 공산당의 주적... 경시청에선 공안부에 소속되며 각 도도부현 경찰본부에선 경비부에 배속된다. GHQ가 일본의 고등경찰제도를 폐지하면서 그 인적자원과 운용 노하우를 공안에 그대로 배속했기 때문에 친일경찰들이 흡수된 한국 경찰의 고문기술자들과 비슷하다.[1] 주요 표적은 극좌단체, 조총련, 시민활동가, 우익단체, 야쿠자 등이다.

치요다(チヨダ)라고 전국의 경찰조직에 소속된 특수반을 두고 있다. 정식 명칭은 현재도 불명. 이들의 지휘관은 '숨은 이사관(ウラ理事官)'이라고 하는데 조직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고위 관료가 갑자기 불명이 되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알음알이로 다 알게 된다고 한다.

대테러 활동 등은 외사과(外事課)에서 담당한다.

1.2. 경비경찰


警備警察. 위의 공안경찰도 엄밀히는 경비경찰 소속이지만 임무가 좀 특화되서 따로 볼 때가 많다. 경비경찰은 주로 폭동 진압이나 시위 등에 대비하는데 맞춰져 있다.

2. 역사

한국의 경찰이 포졸 등이 활동했던 포도청에 근거한 것처럼 일본도 에도 시대의 봉행소(奉行所) 같은 기관이 존재했다.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은 도신(同心)이라고 불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고 에도막부를 열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제 전쟁이 없자 하급 사무라이들은 실직자신세를 면하기 힘들었고 그 때문에 실직대책[2]을 겸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따라서 에도의 도신들은 원래 도쿠가와가를 섬기는 아시가루였다.

이 도신은 에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각각 100명, 총 200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경찰업무 담당자는 다 합쳐도 고작 30명도 안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사적으로 오캇비키(岡っ引)라는 수하를 고용해서 부렸다. 다만 옷카비키는 비속어로 경찰을 짭새라고 부르는 듯한 뉘앙스였고 정식으로는 고요키키(御用聞き)라고 불렀다. 오캇비키는 전기한대로 비속어였지만 사극에서 고증을 따진답시고 남발과 오용을 거듭하다가 정식호칭인 것처럼 사용하게 되었다.

이 오캇비키는 사실상 에도의 치안유지를 담당한 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정식으로 막부를 섬기는 막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녹을 먹지는 못했고 따라서 도신이 성과금을 지급하거나 식사와 잘 곳을 제공하는 등 뒤를 돌봐주었다. 다만 도신도 엄연한 사무라이지만 계급은 낮았기 때문에 사실 막부에서 나오는 급료는 적었으나 다이묘나 상인계급이 좀 잘봐달라는 의미에서 주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오캇비키를 고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래봐야 한계는 있었기 때문에 오캇비키는 그것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다른 부업을 갖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오캇비키는 자기가 모시는 도신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체포에도 동행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에도에만 해당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정식으로 오캇비키를 고용해서 운용했으나 한 편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정보제공역으로 그치기만 했다.

이 오캇비키를 거느리는 도신은 소수정예로 에도의 치안을 지켜야했기 때문에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져서 조사부터 체포까지 단독으로 정할 수 있었다. 도신의 상사로 요리키(与力)가 있었지만 이 요리키는 전에도에 고작 50명밖에 없었을 뿐더러 검찰겸 판사인 관료였지 실무담당자가 아니었다. 즉, 요리키의 앞에 끌려나온 시점에서 죄인은 유죄가 확정된 셈이었고 거기에 필요한 조사는 모두 도신이 행했다. 즉, 용의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것도 유죄로 만드는 것도 도신에게 달려있었다.

도신은 실제로 서민과 부대끼로 활동한다는 점이나 경찰업무를 담당한다는 점때문에 평민들에게는 꽤 인기있었고 그런 강력한 권한이 더불어져서 부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신은 원래 유래가 유래인 만큼 세습제였으나 표면적으로는 신규채용의 형태를 취했다.

에도시대내내 막부의 관리들은 에도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 50명의 요리키, 200명의 도신, 3000명의 오캇비키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잘알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하급이라고는해도 사무라이인데다가 세습이니 함부로 늘릴 수도 없었고 에도 막부의 재정은 대를 거듭할 수록 악화되어 증원이 불가능했던 한 편 에도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기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막부에서도 자위를 위해 민간이 와키자시정도로 무장하는 것은 허용했다.[3]

다만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 경찰인력을 늘린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취하지는 못한 탓에 에도의 치안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막부의 폐쇄적인 정책이나 외국의 위협등에 반막부 여론이 거세지고 그것이 마침내 행동으로 나타나자 신센구미같은 보다 강력한 권한과 실동력을 지닌 조직이 나타나게 된다.


메이지 시대의 경찰관.

메이지 유신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면서 각 번은 번 소속의 군대에 치안을 맡겼는데 이들은 군인이었지 경찰은 아니었다. 사쓰마 출신의 카와지 토시요시(川路 利良, 1834-1879)는 유럽을 방문하여 프랑스 경찰에 인상을 받았고 일본으로 돌아와 프랑스 경찰을 기반으로 일본 경찰을 만들게 된다. 1874년에 도쿄 경시청이 생겼다. 경찰은 내무성에서 관리했는데 일본의 특성상 내무성 직속의 경시청과 각 도부현지사들이 관할하는 지방 경찰로 나뉜다.

일본 경찰은 일본군과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33년에 일어난 오사카 고스톱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일은 군부가 국가의 주도권을 쥐어가는 과정의 한 사건으로 평가되는데 내무성 소속인 경찰이 군에게 전혀 힘을 못 썼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GHQ는 중앙집권적인 경찰 제도를 개혁했다. 미국처럼 지방마다 경찰청을 둔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 다만 미국처럼 순경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는 시스템을 확립하진 못 하고 캐리어조라 불리는 고시 합격자 간부 출신들이 일본 경찰을 끌고 나가게 된다.

3. 조직


일본 경찰은 내각부의 외국(外局)이다. 국가공안위원회 하에 특별기관으로 경찰청이 놓인다. 일본 만화에는 주로 경시청으로 나오지만 도쿄의 경찰본부만이 경시청이라 불리며[4] 다른 일곱 관구의 경찰국은 경시청이라 불리지 않는다. 도호쿠(東北), 간토(關東), 주부(中部), 긴키(近機), 주고쿠(中國), 시코쿠(四國), 큐슈(九州)가 7대 관구이며 각 관구마다 경찰국이 설치되어 있다. 도쿄경시청 외에 홋카이도도 관구대와 별도로 있다.

미국의 영향 때문인지 지방 경찰은 자치경찰로 보지만 경찰청에서 지휘명령권을 지녀 어느 정도는 국가경찰[5]의 모습도 나타난다. 경시청의 경우 도쿄도지사의 지휘를 받지 않으며 국가공안위원회 소속의 경찰청에게 지휘를 받는다.

4. 계급

일본의 경찰계급을 참고할 것.

5. 수사권

검찰에 수사권이 종속된 한국 경찰과는 달리, 일본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정 시기에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수사의 주체적인 역할은 경찰이 담당하고 검찰은 공소를 담당하도록 개편되었기 때문이다.기사자료

법률적으로 경찰과 검찰은 '대등한 협력관계'임이 명시되어 있으며,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 전에는 검찰이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도쿄지검 특수부' 등 몇몇 검찰청의 특수부에서는 직접 수사를 하기도 한다.

6. 자위대와의 알력

자위대는 경찰의 급료체계를 따른다. 준장이나 대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경시감과 경시총감이라는 경찰 계급을 장성급 계급으로 바꾸며 장보(將補)와 장(將)으로 바꾼 탓이었다. 그나마 막료장 때문에 4성 장군은 존재하지만 1성 장군인 준장은 아직도 없다. 여단장에 소장인 장보가 보임되고 사단장에 중장인 장이 보임되는 상황. 자위대 특히 육상자위대의 형성과정에서 경찰예비대엔 내무성 출신의 관료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내무 군벌이라 불렸고 일본군에서 흡수된 간부 자원들과 알력을 빚었다. 특히 합동막료회의의장을 10년이나 지낸 하야시 케이조(林敬三)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에 소련미그기가 귀순할 땐 경찰이 자위대가 진입 못 하게 막는 바람에 자위대는 밖에서 구경만 하기도 했다.

7. 무장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진 군도와 단검을 소지했으나 현재는 곤봉권총을 휴대한다. 전후 일본 경찰은 미군이 일본군을 해체시키면서 일본 육군에서 압류한 남부권총을 지급받아 사용하기도 했지만 몇년 후에 남부권총의 후손인 뉴 남부 M60(ニューナンブM60) 리볼버를 채용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6]

8. 전화번호

110이다.

9. 갤러리

10. 황궁호위관


皇宮護衛官. 경찰청 소속의 별도 경찰로 황족을 호위하는 경찰을 말한다. 특별사법경찰로 경찰관은 아니다. 정원은 920명 수준이다.


약간 사연이 있는데 일본군은 항복할 무렵에 근위기병대 등의 군사조직을 남겨두어 일본군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맥아더가 무시하고 일본 경찰에게 황실 호위를 맡겼다. 그때문에 군대가 근위대를 맡는 다른 입헌군주국과 달리 일본은 경찰이 호위를 맡는다.

11. 미디어에서

일본에서 탐정물이 워낙에 인기가 있기 때문에 그와 관계되기 쉬운 경찰도 뻔질나게 등장한다. 다만 한국 영화처럼 주인공 보정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 경찰들은 항상 상황끝나면 달려와서 뒷정리만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매체도 있지만.

12. 관련항목

  • 로바이 - 주로 교통 단속 업무에 활용하는 오토바이의 명칭. 정식명칭은 아니며 하얀색으로 도색된 데에서 유래된 별칭이다. 한국으로 치면 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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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공교롭게도 한국군자위대의 탄생배경도 비슷하다.
  • [2] 실제로 이 때 전업에 실패한 많은 하급 사무라이들은 로닌이 되어 사관을 꿈꾸며 각지를 방랑하게 되는데 사실 이들이 하는 짓은 무장강도나 다를 바가 없었다.
  • [3] 칼이 비싸고 거추장스럽기도하니 보통사람들까지 차고 다녔던 것은 아닌듯 하지만 도박꾼이나 양아치들은 위협을 받는 일이 많고 치안이 악화되는 밤길을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많이 차고 다녔는데 자기들의 뿌리가 에도시대의 도박꾼등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야쿠자들이 칼을 들고 다니는 것도 다 거기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예전부터 폭력단은 있었지만 현재의 야쿠자라고 할 만한 조직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에야 생겨났으니 완전히 헛소리고 단순히 싸움을 할 때 날붙이로 사람을 잡기 위하여 들고 다니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러시아나 북한, 중국등에서 권총을 밀수입하고 일본이 법율을 정비하여 폭력단에 가중처벌을 하도록하자 실제로 들고 다니거나 사용하는 예는 매우 감소했다.
  • [4] 경시청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지방경찰청과 같다.
  • [5] 대한민국 경찰청이 전형적인 국가경찰이나 최근 제주도 자치경찰이 독립했다.
  • [6] 2006년 경에 조달된S&W M360J(SAKURAサクラ)로 교체되었다.
  • [7]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