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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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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17년
소속 리그 인천권
감독 계기범
연고구단 SK 와이번스
우승 기록[2] 5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1회(2004) 1회(1985) 5회(1973, 78, 79, 94, 2003)
청룡기2회(1953, 54) 3회(1955, 57, 58) 1회(1985)
황금사자기2회(1954, 89) 3회(1955, 77, 79) -
봉황대기 - 2회(1979, 96) 2회(1976, 90)
협회장기 - - -

1953년, 1954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중등학교[3] 인천고등학교 동산고등학교
1954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중등학교[4] 인천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198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산고등학교 인천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2004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고등학교 인천고등학교 동성고등학교

Contents

1. 연혁
2. 출신 선수

1. 연혁

1930년대 인천상업

일제시대인 1917년에 창단해서 전신격인 인천상업학교(인상)가 고시엔에도 출전했을 정도로 일제시대 한국 야구를 선도했던 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1950년대 인천야구의 전성 시대에 그대로 폭발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재개된 1953년 청룡기에서 우승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인천고는 1954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모두 석권하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부산에서 열린 쌍룡기(화랑대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쉬울 정도의 성적이었다. 이는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서동준과 훗날 인천야구의 대부 소리를 듣는 유격수 김진영의 활약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1955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우승에 도전하지만, 1955년 청룡기에서는 동향의 라이벌 동산고에게 패하면서 무릎을 꿇었고, 황금사자기에서는 경남고에 지면서 모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 때를 기점으로 동산고의 전성기가 열려 동산고의 청룡기 3연패를 지켜봐야 했다.

임호균

그리고 동산고와 함께 사이좋게 30년 간 우승 없이 망했다(...) 그래도 동산고보다는 사정이 좀 나아서 1970년대 간간히 4강에 오르기도 하고, 결승전에도 올라가기도 했다. 훗날 삼미 슈퍼스타스의 주축이 되는 임호균,양승관 ,최계훈 같은 선수가 바로 인천고 출신이다. 그나마 가장 정상에 가까웠던 시절은 1979년으로 에이스 최계훈의 역투를 앞세워 정상에 도전했지만, 대통령배 4강과 대붕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전국체전 모두 준우승하는 그야말로 콩라인의 전설을 쓰고 말았다.

인천고가 다시 정상을 차지한 것은 1989년으로 에이스 허호석[5]최상덕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다. 사실 1989년 인천고는 봉황대기에서 초반 탈락할 정도로 그리 강한 팀은 아니었지만, 동산고가 인천 지역 대표가 아니라 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황금사자기에 출전해서 인천 지역 대표로 운 좋게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극적으로 우승에 성공하며 35년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복귀했다.

1996년 이근용[6] 김수경을 앞세워 봉황대기 결승에 올랐지만 정대현의 군산상고에 패한 후, 2000년대 초반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하며 고교무대의 정상에 다시 올랐다. 2004년 2학년 배터리 김성훈-이재원을 앞세워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한 것. 여세를 몰아 투수 3인방(김성훈-김용태-김영롱)과 포수 이재원, 내야수 김남형, 외야수 이명기 등 정말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고, 당시 고교 팀을 전력을 다해 경기를 벌였던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우승하며, 2005년을 인천고의 해로 만드는가 싶었다.


하지만, 대통령배 8강에서 대회 준우승팀 신일고에게 패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황금사자기에서 김광현 한 사람에게 무너지면서 안산공고에게 지며 1회전 탈락하고 만다. 최후의 기회였던 봉황대기에서 대회 우승팀 유신고에게 지면서 인천고 최고의 전성기가 될 것 같았던 2005년이 다소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 뒤로는 간간히 8강 정도에 들어가는 팀 정도의 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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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고등학교와 동일한 학력을 인정하는 학교도 포함된다.
  • [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3] 1950년 우승팀으로 1951년과 1952년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미개최
  • [4] 1949년 우승팀으로 1950년~1953년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미개최
  • [5] 프로가 아니라 실업야구로 진출해서 프로무대 기록은 없다.
  • [6] 현대97년 지명
  • [7] 리그베다위키에 등록된 선수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