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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last modified: 2015-04-15 19:33:59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남학생 없습니다(?)
3. 특징
4. 페미니즘
4.1. 논란
5. 등록금
6. 캠퍼스
6.1. 건물 목록
6.2. 캠퍼스 주변
7. 목동병원
8. 역대 총장
9. 관련 항목


1. 개요

梨花女子大學校, Ewha Womans University.[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사립 종합 여자대학교다.

1886년 미국인 선교사였던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대한민국 여성에 대한 근대 교육을 위해 세운 이화학당이 모체이다.[2] 고종황제가 이화(梨花, 배꽃)란 이름을 내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1945년 해방 이후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이화여자대학교가 되었다. 초대 총장은 김활란 박사이다.[3] 선교사가 세운 개신교 학교인 만큼 채플을 30분씩 8학기(4년 내내)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모르고 입학했다가 당황하지만, 신자가 아닌 학생들은 그 시간에 다들 딴 짓을 한다... 얼마든지 자도 좋다. 물론 채플 시간이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니고, 유명인사가 와서 강의를 하거나 공연을 할 때도 있다. 간혹 개신교 신자인 연예인들이 오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2학기(1년) 내지는 4학기(2년)인데 비해 파격적으로 긴 시간이다. 하지만 채플의 내용은 교양에 가까운 편이고 채플 시간이 30분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매정하게 채플시작과 동시에 문을 잠가버린다.쪽문은 1분정도 더 열어주지만 대강당 계단을 뛰어와서 들어갈 확률은.... 학생들이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음료와 먹을 것은 반입할 수 없다. 대강당 로비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들어가야한다. 빠진 학생들을 위한 보충 채플이 있으며 (한 학기에 두 번가능) 그 외에 특별 채플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학년이 될수록 채플 이수를 다 못해 한 학기에 2개, 3개, 4개이상 듣는 학생이 제법 있음.[4]한 학기 채플을 개근하는 경우 선물을 준다.담요,에코백 등등. 마이보틀이 유행하자 2014 2학기 채플에서는 학교이름을 새긴 이화보틀을 채플 개근선물로 내놔서 개근자가 많았다고 카더라

2. 남학생 없습니다(?)

여자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남학생이 입학한 적이 있다는 루머가 끊이질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규정에 성별에 대한 제한이 없어서 장난삼아 원서넣은 남학생이 합격했다는 이야기. 이 루머에 따르면 그 학생은 결국 자퇴했고, 그 후로 입학 규정에 성별제한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다른 버전으로는 무용과에 여성 무용수를 받쳐주기 위해서(...) 남학생을 받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적어도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거나 확실한 뻥이다. 무용과에서도 닥치고 여자들끼리 받친다(...) 이화여대에 남학생이 입학한 적은 개교와 개벽 이래 한번도 없다. 역대 총장들은 '국회의원의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여대를 철폐하고 이화는 문을 닫을 것'이라 발언했다.

학내 신문에서 소문의 진위여부를 위한 인터뷰를 했는데, 원칙적으로 주민등록번호에서 성별이 남자코드이면 원서를 받지 않는다. 무용과 남학생 떡밥의 경우 수업 특성상 알바로 남자 무용수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이라고 밝혀졌고,강의실에 남학생이 앉아있다면 교환학생이거나 타 대학에서 학점교류로 온 학생.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는 3대학원 교류라고 하여 학점교류가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학부생들도 3개학교를 오가지만 대학원생들은 본 학교에서 개설되어 있지 않은 과목이 다른 학교에서 개설되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학점교류를 하는 비율이 잦다. 이 때문에 연세대학교서강대학교 남자 대학원생들이 이대에 오는 빈도가 꽤 높다. 대학원 세미나실에 앉아있는 남학생들은 거의 두학교 학생들이라고 봐도 무방.

외국 대학에서 온 교환학생들 중 상당수가 남학생이다. 물론 함께 수업도 듣는다.

3. 특징

김신, 최이 등 2자 성 쓰기에 앞장서는 여성이 많은 학교이기도 하다. 1970년 이전, 메이 퀸(5월의 여왕)을 뽑았었지만 했지만 1977년 들어 '여성의 성 상품화다', '이런 시국에 여왕이 가당한가'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 폐지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메이퀸이 학교의 전통이라고 반발하였으나, 메이퀸의 후보가 되는 각 단대 메이퀸을 뽑는 과정에서, 3개를 제외한 단대가 메이퀸 선출에 반발하여 단대 메이퀸을 뽑지 않음으로 인해 결국 폐지되었다.

이대는 1946년부터 학칙에서 입학자격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고교를 졸업한 자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미혼 여성자(제14조 1항)로 명시하고 결혼한 자는 총장이 제적한다'(제28조 7항)라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2003년도에 폐지되었다. 애초에 이 금혼학칙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당시 조혼 풍습 때문에 결혼을 이유로 학업을 강제적으로 중단하게 되는 여성들이 많아 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이제는 여성들의 고등 교육환경과 인식도 달라진 데다 결혼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헌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개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때문에 아주 가끔 학교로 다시 돌아온 학부생(이라기엔 어머니뻘이지만)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단, 결혼으로 인해 퇴학당한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시에 해당된다.

이화여대 총장직에 금혼규정은 없지만, 결혼 경력이 없는 여성에게만 총작직을 맏길 수 있다는 암묵적 규율이 있었으나 장상 총리가 이 불문율을 깨뜨리고 최초의 기혼 여성 총장으로 취임했다. 교내 운동권들이 농담삼아 '철의 여인'이라 부르던 총장. 전 총장 이배용은 2번째 기혼여성이다.

타짜의 정마담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로 김혜수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본인의 애드립이 아닌 대본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한번쯤 저 대사를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지만(꼭 한번씩 시켜본다) 이대생들은 매우 싫어한다. (저 드립을 듣고 마지못해 "아직 졸업 안 했어요"라고 받아주면 "그럼 이대 나올 여잔가?" 라는 개드립을 듣는 패턴도 흔하다고 한다.) 그냥 안 시키는 것을 강력히 추천.

MT 등 놀러가면 술을 마시는 대신 스무디킹에서 스무디 사놓고 논다고 한다고 위키백과에 써 있으나 스무디보다는 커피 종류를 더 좋아한다. 물론 공대 빼고. 공대는 닥치고 소주다. 다만 다른 대학보다 훨씬 적게 마시기는 하는 듯.
실제로 인문대 신입생 OT때는 열 명정도 있는 한 방에 맥주 한 병과 소주 두 병씩 나눠줬다.술이 떨어지면 음료수나 물 떠놓고 술게임한다고 기껏 MT 간다고 소주를 사와도 대부분 도로 가져오는 일이 부지기수고, 결국 과방에 처박아 두고 입이 심심할때마다 한두 잔씩 홀짝홀짝 마신다고. 다만 자연대에는 주당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류가 활발한 동아리도 추가.


ROTC는 없다(참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학과들). ROTC 유치 신청은 했지만 숙명여대가 선정되고 이화여대는 탈락했다. 부연하자면 타대에 비해 학번 간ㆍ사제 간 서열문화가 유연한 편인 교내 정서가 군대 문화에 물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ROTC에 대하여 교수진 및 높으신 분들이 처음부터 그다지 탐탁지 않아했다는 소문도 있다.[5] 첨언하자면 2010년 4년제 여대들이 모두 ROTC 유치 신청을 할 때 함께 신청했으나 선정되기 위한 조건(기숙사 설립, 운동장 리모델링 등)을 충족시키지 않아 탈락, 2011년에는 신청하지 않았다. 애초에 학교가 ROTC를 유치할 생각이 없었던 듯.

로스쿨은 있다. 로스쿨 선정 자격을 두고 법적 시비가 붙어 고등법원까지 갔는데, 서울대, 이화여대, 경북대, 전남대에 내준 로스쿨 인가는 위법하긴 하나 취소시 공익을 현저히 저해해 취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6] 참고 이 위법성은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로스쿨의 대상이 되는 학교의 교수들은 참여를 하지 못하나 서울대 - 이화여대 등의 법대 교수가 위원회에 참석하여 공정성이 문제된 사례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대에서 로스쿨을 운영하는 것이 성차별이라는 법 소원도 제기되었다. 전체 로스쿨생이 2,000명이나, 이대에서 100명을 뽑기 때문에 남성의 경우 여성에 비해 로스쿨의 문이 좁아서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 결국 합헌판결을 받았다. #

국내 대학중 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학과나 타이틀을 은근히 많이 가지고 있다. 국제학부, 자유전공, 언론홍보영상학부, 여자대학교 내 공과대학(세계 최초), 캠퍼스 투어 등등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4.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이화여대의 창립 이념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화의 FM은 '해방 이화'다. 여성을 해방하자는 소리다.[7] 이화는 서양에 소위 '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이 일어나던 시기 이후 한국에 세워졌으며, 그리스도교 교리에 입각한 여성의 교육, 전인격적 발달, 자립, 주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대의 전신인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했던 이희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재야인사였던 김대중과 결혼한 이유를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나의 소망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던 양성평등(남녀평등)을 실현할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과 함께 여성학 과정이 개설된 국내에 둘 뿐인 대학 중 하나다.[8] 이 점에서도 볼 수 있듯 이대는 국내에서 여성학 강의가 가장 많은, 또 여성학이 연계전공으로 세워져 있는 드문 학교 중 하나이다. 덕분에 여성학 관련 강좌의 질이 좋다는 평이 많으며, 또 학교의 특성으로도 취급하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재학생들 중 여성학에 관련된 수업을 하나쯤은 들은 학생이 많은 편. '여성학' '성문화연구' '글로컬시대의 아시아여성' '세계여성문학' '한국의 구비문학' 등.

운동권 페미니즘과 학문적 페미니즘은 별로 접점이 없지만 학내에 페미니즘 활동을 벌이는 단체들도 여러 단위가 존재한다. 여성위원회, 틀린그림찾기, 운동권 총학, 미대 총학, 사회대, 법대 기타 등등. 장단은 있을 것이다. 11년 춘투에서는 총학이 자신과 관계 없다고 여겨지는 외부 집단(교내 미화노동자)과 연대하여 최저임금에서 생활임금으로써의 인상, 노조의 설립과 전담자 고용, 인간적인 처우와 휴식공간 등을 요구하는 연대투쟁을 벌여 승리하였다. 틀 안에 갇힌 페미니즘이 아니라 연대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라 생각된다.

운동권 페미니즘은 이 사회를 미시적으로 조망하며 이 시대 20대 여성-나 자신과 사회의 관계 안에서 관계의 회복을 조망한다. 어찌 보면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에 모토를 맞춰 진행해 나가고, 학문 페미니즘은 국제사회를 거시적으로 조망하여 노동과 여성, 제3세계 국가와 여성, 후기 식민지주의와 여성, 여성으로써의 경계(국적, 소셜 클래스 등) 넘기 등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관찰한다.

4.1. 논란

김대중 정부 이후 이화여대 출신들의 페미니즘 활동이 두드러지고 이는 여성부 설립의 주춧돌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 중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이기주의적인 사상을 내세우거나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곡해하여 이용하는 등 왜곡된 페미니즘 활동을 한 사람들. 게다가 남성의 병역 문제[9] 대해서도 논란이 되는 주장을 한 탓에 이에 분노했던 예비역들에게는 반감을 사는 학교가 되어버렸다(…). 한발 더 나아가 된장녀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에 엮여 폭풍처럼 까인 적도 있다. 물론 이대에 된장녀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무작정 연관시키는 것은 에러다.. 인터넷 상에서는 된장녀의 본거지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대학이 신촌-이대역 근처에 있어서 그 근방에 보이는 여자들의 화려한 옷차림을 이대생과 동일시하면서 생겨난 편견 아니면 일반화의 오류일 가능성이 꽤 높다. 애초에 이 근처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인 만큼 남녀 할것 없이 화려한 사람들이 많다. [10].

매스컴에서 이대 출신의 여성에게 여권에 대해 질문을 자주 하는데, 딱히 여성학 관련 공부를 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아무 생각없이 답변을 한 것이 여성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보도되면서 이화여대와 더불어 페미니즘 전체가 까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울러 2005년도에 학생회측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짓밟는 군인들"이란 퍼포먼스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 퍼포먼스가 온라인에서 화자되었을 때 '여자들뿐인 곳에서 군복은 어디서 구했는가?'라는 의문이 던져졌었다. 거기에 대해선 '남친을 구슬려 빌려왔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 결과 (존재 여부도 확실치 않은) 애먼 남친들이 욕을 먹은 적도 있다(...) 이 퍼포먼스는 이라크 전에 관련하여 전쟁에 짓밟히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나타내는 반전 퍼포먼스였다. 아울러 이 퍼포먼스의 국방부 관련 내용은 헛소문이다. 국방부에 페인트 뿌리는 퍼포먼스는 이화여대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 서울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중앙대 여학생 7명이 모여서 했던 것. [11]

5. 등록금

우리나라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교로 널리 인식되고 있지만, 2009년, 2010년 2년 간 등록금을 전면 동결하여 2010년에 4위로 내려갔다. # 그리고 예체능이라든가 약대, 의대 쪽은 이대보다 비싼 학교가 많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된장녀 및 페미니즘적 이미지와 맞물려 이러한 사실과는 상관 없이 제일 비싼 등록금의 대학으로 이미지 굳어져 까이고 있다. 등록금 적립액이 국내 1위라고 한다. 참고기사

인문대, 사회과학대, 사범대 등 문과계열의 등록금은 370만원대, 공대는 09학번 새내기 공대 등록금이 약 550만원선으로 타 사립대학과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 약학, 공과, 예체능 계열은 이보다 약간 더 비싸다.

2년 간의 등록금 동결은 이전의 총장이 대교협 회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으며, 새로운 총장이 부임한 뒤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비친 적이 있다카더라.

강사에 대한 대접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실제로 여러군데 강의를 뛰는 강사분이 수업중에, ㅎ대,ㄱ대,ㅇ대,ㄷ아대등의 강사비를 말씀해주셨는데, 이대가 가장 많이 준다고 하셨다.) 하지만 교수 임금이나 정교수 진급 등은 꽤나 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도 루머일뿐 사실은 교수들과 강사들만 알 듯. 그 등록금으로 토목공사(…)를 벌인다는 소문도 들린다. 허나 등록금으로 교내 토목공사를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그럴 리 만무하다. 대신 조경에 돈을 쓴다는 설이 유력하다.

6. 캠퍼스

본관을 중심으로 통일성이 있으며 오랜 역사속에서 깔끔하게 관리해서 아름답고 운치있다. 건물들도 건축 양식이 옛스러워서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대학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그런데 무슨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대학안에 옮겨놓은 듯한 ECC도 존재한다. 보통 잔디밭이 없다고 한탄하는 대학이 정말 많은데 이대는 입구부터 잔디밭이 매우 넓게 퍼져있다. 그래봐야 못 올라간다. 다리 위에 잔디만 심은거라 나무도 못심고 행사도 조심조심 해야한다. 올라갈 수 있다. 대동제 때 여기 무대 설치해서 공연도 하고 날씨가 좋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도 볼 수 있다. 다만 돗자리 깔고 누워있으면 지나가는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볼지도...흔한 캠퍼스 로망

이화교.jpg
[JPG image (Unknown)]

이화교

과거 정문에는 원래 이화교(중랑천에 있는 그 이화교가 아니다)라 불리는 다리가 있었고 그 아래로 신촌기차역과 연결되는 경의선 철로가 있었다. 등굣길에 이화교 아래로 기차가 지나가면 그날은 재수가 좋다며 학생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문 앞에는 이대 다니는 여친을 둔 남자들이 여친을 기다리는 장소라 하여 '바보 벤치' 라는 명칭으로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던 벤치도 있었으나, 정문 공사를 하면서 철로는 복개되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벤치도 없어졌다. 대신 정문 경비실 옆의 '바보 스테이지(바보 광장)'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새로 바뀐 정문은 원래는 이화인들의 사진이 새겨진 유리기둥 같은 것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가 지금은 다 없애고 왼쪽에 큰 흰색 배꽃조각 하나만 붙어있다.

왠지모르게 금남의 구역으로 알고있는 남자들이 제법 되는 듯. 심지어 남자화장실도 없는 거 아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카더라 (그런데 아직도 옛날 건물에는 모든 층에 남자 화장실이 있지 않고 두 층 건너 하나씩 있음). 옛날에는 실제로 그랬고, 매의 눈으로 정문을 염탐하다 전력질주로 잠입 아닌 잠입을 시도한 괴학생도 있었다고. 헐.

90년대부터 자유로워지는 분위기에 발맞춰 캠퍼스를 남성에게도 개방했다 한다. 실제로 정문에서 경비아저씨에게 잡히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남성이 볼일(영화관이라거나)이 있어 들어간다면 어색함에 몸부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12]

6.1. 건물 목록

  • ECC (Ewha Campus Complex)
    과거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세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복합단지 캠퍼스. 현재 운동장은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왼쪽에 있는 작은 축구장이 대신하고 있다. 설계자는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이고 디자인 모티프는 모세의 기적이다. 외양도 멋지고 태양광이나 채광등 친환경적 요소도 많아 2008년 서울시 건축대상을 수상했다. 마치 계곡(Valley)과 같은 모양이어서 ECC 밸리라고 자주 불린다. 학교에 처음 온 사람들이 계곡 같은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가까이 가보지 않으면 건물인 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 때는 ECC는 Ewha Chonna Vissa의 약칭이라면서 학내의 운동권 학생들에게 까였다.[13] 삼성이 후원했는데, 이 때문에 지하4층에는 이화-삼성 아트홀이라고 넓고 휑한 공간이 있다. 신식이라서 멋지긴 하지만 구조가 상당히 복잡해서 길 잃어버리기 쉬운 게 흡사 개미집을 연상하게 한다. 양쪽 건물 위에는 선큰가든 형태의 잔디밭과 산책로가 있다.[14] 별명은 꼬꼬마동산

    스타벅스(커피숍), GS25(편의점), 신한은행, 교보문고[15], 아트하우스 모모(예술영화관)[16] ,꽃집, 리치몬드, 푸드코트 등의 상업 시설과 강의실, 세미나실, 열람실, 각종 학생 편의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때문에 외부인들의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ECC는 지하4층만 외부인 출입 가능구역이다.그 위는 강의실과 열람실 등이니 왠만하면 올라가지 말자.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들에 표지판이 생겼다. 근데 무시당하는 게 함정 지나친 구내 상업화와 비싼 물가로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계단이 매우 압박스러우므로 되도록이면 엘레베이터를 이용하자.

    참고로, 02학번은 ECC의 공사가 시작될 때 입학하여 졸업한 후에도 공사 중이었다. 또한 04학번은 공사할 때 입학해서 공사 끝나니 나간다는 말이 있었다. 04학번 졸업 이후에도 정문 공사를 비롯하여 여러 공사는 여기저기서 행해지는 중. 아무튼 이래저래 구설수는 많지만 캠퍼스 내에 강력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여했다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듯하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공동으로 건축가들에게 실시한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여론조사에서 총 15표로 최고의 건축물 7위에 뽑혔다. 하지만 동시에 시행한 방 이후 최악의 건물들 조사에도 2표를 얻었다. 최악의 건물 쪽에 투표한 사람들의 의견은 기존의 역사성과 캠퍼스의 맥락을 커다란 회칼로 크게 썰어놓은 듯하다.라고. 틀린말 아닌데?~ 뉴스 기사

    최근 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처럼 되어버려서 학생과 학교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八의 모양처럼 생겨서라고들 한다. 문제는 사진을 찍는 것뿐만이 아니라 ECC 내의 교실이나 열람실 등을 구경하고자 하는 열의가 상당하다는 것. 때문에 공부 중에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ECC 특유의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는 중국인들과 아이컨택하고 깜짝 놀라는 학생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관광객들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결국 영원히 고통받는 이화인들. 최근에는 더 안쪽의 건물들까지 침투하고 있다!! 고만해 이것들아. 뉴스에서 여러번 보도된 이후 건물 출입문들에 외부인 출입금지를 써붙였지만 효과는 그다지…

    딴 소리지만 이와 동일한 이름의 컴퓨터 동아리(Ewha Computer Club)가 있다. 기존에 있었던 동아리로 새 캠퍼스 이름과 겹치게 되면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동아리는 학생문화관에 있다.(기존 헬렌관에서 08년도에 이사. 엘레베이터가 있다. )

  • 대강당
    채플이 열리는 대형 건물. 신입생 환영회 등 공식 행사 뿐 아니라 공연 관람하기 딱 좋은 구조라서, 각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문에서 이곳까지 올라가는데 계단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ECC 이전에는 멋모르고 처음 정문을 통해 이화여대에 들어온 사람들이 이 계단에 좌절한다. 채플 시간이 임박하면 여학생들이 힐을 신고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오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17] 별명 이대오르기(이데올로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월요일에 귀를 기울이자. 노련한 언니들이 계단 올라가고 나면 다 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요휴업일이 아닌 토요일마다 이대부고와 이대부중 학생들이 오전에 와서 예배를 한다.
    '이게 바로… 시련이고… 십자가다!'이러면서 올라가시는 분도 꽤 됨. 예수가 내려오셨나
    대강당.jpg
    [JPG image (Unknown)]

    ECC 공사 전 대강당 가는 길의 모습. 참고로 계단까지 가는 길이 엄청난 오르막길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큰 나무는 신단수라고 불렸는데 공사하면서 온데간데 없어졌다. 돌려줘

  • 중앙도서관
    약칭 중도라고 불린다. 책이 굉장히 굉장히 많은 건 좋은데(오래된 책들이 많으며 신간 구입에는 예산을 아끼는 형편.)[18] 건물 구조가 괴악해서[19] 책 빌린 경험이 얼마 없는 사람이라면 가운데 빈 공간을 끼고 빙빙 돌면서 헤매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신입생을 상대로 도서관 투어라는 것도 개최한다. 장서 한계량(?)을 넘어서서 새로이 건물을 증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전혀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장서 때문이 아니어도 열람실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증축이 반드시 필요한데… 지하에 생협과 컴퓨터실, 열람실이 있는데 지하라 환기사정이 좋지않아 답답함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특이하게 자정부터 새벽5시까지는 안전상의 이유로 중도 출입이 제한된다. 중도 자체가 꽤 높은 곳에 있고 외진 편이다. 따라서 12시전에 안 나가면 못 나간다. 밤샘 공부를 위해 일부러 중도로 가는 학생들도 많다. 가끔 공부하다 잠든 학생들이 갇히기도 한다.

    여담으로 이 곳에서 한계량 때문에 도서들을 내놓는(다고 쓰고 버린다고 읽자) 경우가 있는데, 학문관에 있는 생활도서관에서 구출해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사실 생도 대부분의 도서가 그렇다카더라.

  • 학생문화관
    줄여서 학문관이라고도 한다. 학생 편의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각종 동아리방이 곳곳에 숨어있다. 동아리 모집, 각종 행사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새 학기 시즌에 신입 학생을 구하는 동아리 홍보 활동이 이곳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ECC가 생겨나서 신한은행이 그곳으로 옮겨간 관계로, 컴퓨터실이 대신 들어섰다. 여담으로 학문관의 생협이 교내에서 제일 크다.

  • 학관
    인문대 건물로, 일명 이대의 호그와트. 교양강의가 많이 열리는 곳이므로 재학생들이 한 번쯤은 가보는 곳이기도 하다. (필수교양인 '기독교와 세계' 과목이 대표적) 건물이 꽤 오래되었는데, 건물 구조가 상당히 괴악하다 못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장 괴상한 것은, 포스코관에서 내려와 학관에 난 문을 열면 계단이 있는데, 그 기점에서 위로 올라가면 4층이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1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4층에서 계단을 더 오르면 5층이 아니라 6층이 나온다. (…) 그 외에도 화장실이 내리막길 사이에 있다거나 낮아보이는데도 8층이 존재하는 등 구조가 매우 이상하다. 1층과 연결된 화장실을 통과하면 3층이 나온다든가. 2층은 어디로? 신입생은 강의실 못 찾고 헤매기 쉬운 건물이니 주의 요망. 입학시즌마다 강의실 못 찾아서 지나가는 선배들을 붙잡는 학생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옛날 건물이라 보온이 안 돼서 그런지 여름에도 서늘하고 겨울엔 춥다. 여름에 화장실에 서리가 끼거나, 대형강의실의 경우 에어컨을 틀지 않았음에도 오슬오슬 떨기도 한다. (일명 학관 화이트 드래곤 전설)
    특이하게 귀신 봤다는 소문이 제일 많은 건물이다. 구조가 특이하기도 하고, 실제로 5층부터는 건물 분위기가 매우 싸늘하다.
    하도 괴상한 건물이라 심지어 이상이 설계했다는 풍문도 나돌고 있다. 실제로 이상이 설계하진 않았고, 건물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헌데 어떤 이대생이 리포트 주제로 조사한 결과 이상이 죽은 1937년에서 23년 후인 1960년도에 마종유(馬鍾濡)씨에 의해 세워졌다. 그리고 2009 대학 설명 팸플릿에는 이상이 지었다고 나오기도 했었다.
    위에서 기술한 대로 필수교양 수업 및 대형강의가 많아 웬만한 이대생은 한 번쯤 가보는 곳인데, 1층이 3층과 이어지는 경사면 모양인 관계로 1층 강의실들은 모두 경사진 괴악한 모양을 하고 있다. 공연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장점이라면 교수님과 스크린이 어느 자리에서나 잘 보인다는 것이겠지만, 단점이라면 간혹 뭐라도 떨어뜨리면 그대로 또르르 굴러갈 위험이 있다는 것. 그것도 그것이 만일 음료수 캔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끔 데자와캔이 굴러가도 교수님들은 대개 "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있는 일"이라며 시크하게 반응하신다. 흠좀무
    학관 고양이도 있는데, 대강당 고양이와 비슷한 고양이로서 학관 110호 근처에 상주하던 고양이다. 새끼까지 낳으며 이대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젖먹이들을 남겨둔 채 의문사하여 많은 슬픔을 남겼다. 이에 이대생들은 영정사진과 꽃다발 등을 놓아두며 추모했다. 남겨진 아깽이들은 착한 이대생들에게 입양되어 왕노릇 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후 학교 커뮤니티사이트에 잘 살고있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 생활관
    식품영양, 의류디자인 학과쪽 건물이다. 우체국, 보건소, 사진촬영소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밀집되어있다. 과거에는 안경점과 구내서점도 있었는데 ECC가 이를 대체하면서 없어졌다. 현재 이 자리에 이대 버전의 "아름다운 가게"인 "이화인의 나눔가게"가 들어서 있으며 기부로 들어온(교내 곳곳에 수거함이 있다.) 헌옷, 가방, 심지어 커피 세트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물건을 염가에 판매하는 중. 안 팔린 학교 기념품도 제법 있으니 체면치레 할 일이 있다면 한 번쯤 가봄직하… 려나? 지하에 학생식당이 있어 3, 4교시에는 매우 붐빈다. 화장실이 건물들 중에서 가장 낡고 좁은 편인데, 이 곳 화장실만 들어가본 사람은 이화여대가 부자라더니 화장실은 후졌다고 소문을 냈다고 한다. 음대 화장실의 뺨을 때리고 허리에 기술을 거는 정도. 흠좀무. 2010년 여름에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깨끗하게 바뀐 상태. 매우 넓다. 이화여대에서 최대 화장실 아닐까 싶을 정도. 그리고 불쌍한 음대는 후진 화장실과 함께 남았다. 마지막 리모델링은 1989년이라고. 그 때 태어난 사람들이 졸업하겠다 음대여… 너네 돈도 있을 텐데…

  • 인문관
    명칭으로 봐서는 이곳이 인문대인 것 같지만 이 곳은 인문학 교수들의 연구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인문학 관련 학술대회가 이곳에서 자주 열린다. 인문대생 수업은 대부분 인문관 옆의 학관에서 많이 열린다. 한편 학관과 가깝다 보니, 학관과 직접 연결된 구름다리가 존재한다고 한다.[20]

  • 교육관
    사범대학 건물. 교육관 A동과 B동이 있다. 학관을 넘어가야 보이는 건물이기 때문인지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이화인도 있는 듯 하다. 솔직히 멀긴 멀지. A동은 매우 오래전에 지어서 낡아보이는 데 비해 B동은 지은지 몇 년 안 되어 깨끗하고 최신 설비가 갖춰져 있다. 이 둘은 2층에서 4층까지는 서로 연결된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곳곳에 적혀 있다.



  • 본관-파이퍼홀
    이화여대에서 가장 고전적인 모습의 건물.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3층에 있는 에이다 기도실은 경건한 분위기의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수많은 교회 등등의 한국 개신교 예배 장소 중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곳이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

  • 이화-POSCO관
    포스코관, 줄여서 포관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사회과학대학 건물이며, 영어 교양강의는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졌었으나 현재는 ECC로 옮겨져서 이루어지고 있다. [21] 사회과학대학 건물이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공식적으로는 종합강의동이며, 종합과학관까지 오르기 힘든 부분[22]을 배려해서인지 자연대 강의도 많은 편이다. 종합과학관에는 학부 강의실은 매우 적은 편이고 대부분이 연구동이라 그러지 않은가도 싶다.
    • 이화사랑 : 지하1층에 위치한 카페 겸 쉼터이다. 커피, 김밥이 유명하다. 특히 김밥 중에 노멀이자 스테디셀러는 참치김밥이며, 마요네즈를 위에 뿌려먹을 수 있게 계산대 옆에 구비해 놓고 있다. 참치김밥과 유부초밥을 넣은 참유부라는 메뉴는 가격이 싸서 인기. 점심시간이 되면 카페 안의 소파들을 한 바퀴 휘도는, 혀를 내두르게 긴 줄이 선다. 하지만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제법 빠르기 때문에 아주 바쁜 게 아니라면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끔 독특한 신메뉴를 내놓기도 한다. 양배추김밥(간장소스 필수) 샐러드 김밥은 채소 특유의 아삭거리는 맛이 좋다는 평. (주말에 가면 다시마말이 김밥이나 뭐 이런 이상한 메뉴를 발견할 수 있다.) 칠리치킨 김밥은 맛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편이다. (닭강정이 들어있는 김밥에 가깝다.) 계란말이 김밥은 간장과 함께 먹으면 초밥 비슷한 맛이 난다는 평도 있다. 다만 독특한 김밥들(샐러드, 양배추, 칠리치킨, 김초밥, 계란말이 등)은 조기품절되는 경우가 많아 학기중에는 사 먹기 힘들다. 특징으로는 재료를 아낌없이 쓰기 때문에 참치김밥의 경우 참치와 밥의 비율이 거의 1:1에 이르며 치즈김밥의 경우 무려 치즈를 2종류(모짜렐라와 슬라이스)를 사용해 만든다. 덕분에 이곳 참치김밥에 길들여지면 다른 분식집의 참치김밥은 참치향 김밥으로 느껴지는 단점도 존재한다(…) 또 치즈김밥은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있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에 데워야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김밥이 된다. 다만 이 치즈김밥은 2013년도 2학기부터 단종되었다. 2014년 여름방학에 치즈김밥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금방 없어지니 오전에 일찍 가서 사먹는 것을 추천.

  • 헬렌관[23]
    간호학과의 수업이 많은 건물이다. 헬렌관의 구내 식당은 학생식당보다 저렴한데 메뉴는 한식, 양식(이라 쓰고 언제나 돈까스), 스파게티 3종류 뿐이다. 우동면에 스파게티 소스를 뿌린 미묘하고도 호불호가 엇갈리는 스파게티(일명 헬렌게티)는 마치 고무줄과 같은 탄력성으로 유명한 메뉴… 그런데 08학번 이후로 없어졌다. 안습.(하지만 2010년에 다시 부활했다. 만세!) 사람들이 학관만큼 안 와서 소문은 별로 안 났지만 이곳도 은근히 학관과 같은 안드로메다급 건물이다. 계단을 올라가서 건물을 쭉 돌아다니다 보면 매우 좁은 복도가 미로같이 얽혀있는데다가 동아리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미묘한 느낌을 준다. 건물 구조가 이런 이유는 원래 도서관 건물인 헬렌관을 80년대 후반에 현재의 중도가 들어서면서 강의실로 개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교수님 증언) 참고로 헬렌관의 생협에는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라면이 없다. 2014년 하반기 현재 절찬리에 판매중.

  • 아산공학관, 신공학관
    공과대학 건물. 가는 길이 힘겨워 정작 이대생들도 공대생 아니면 잘 안간다고 한다. 멀리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도 허다하다. 정문에서 매우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래 쪽 건물에서 수업 들을 경우(특히 교양수업이 많은 학관) 지각이 불가피하므로 이전 수업이 공대건물 수업이었다면 지각했어도 제 시간에 온 걸로 인정해준다. 가장 최고봉은 ECC 다음 공대 연강일 경우. (웬만하면 시간표 이렇게 짜지 말자.) 공대생인데도 힐을 신는다면 이는 용자 축에 속한다. 신공학관 지하에 새로 식당이 생겨 견학 겸 와보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풍문. 공대식당 밥은 맛있지만, 학생식당치곤 비싼 편에 속한다.[24]

  • 종합과학관
    주로 자연대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상주하는 종합과학관. A, B, C, D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A, B 2개 동은 로보트 팔 같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3층이 연결통로) 각각 1-5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과, 화학과, 물리학과, 수학, 통계학과 등의 실험실, 교실, 연구실, 교수실 등이 있다. 2010년 여름부터 A동과 B동 사이에 D동 신축을 시작하여 2012년 완공하였다.[25] 이쪽도 역시 외관이 전부 유리창인 계단형태로 설계되어있다. ECC 짓더니 유리창에 맛들였군 공사 때문에 정식 입구를 막아놓고 B동 아래에 임시 계단을 만들어놨는데 좀 좁아서 대형강의실에서 수업 끝날 때 병목현상이 쩔어준다(…) '종과 고양이'라 불리는 갈색 얼룩무늬 고양이가 있었는데 공사 때문에 현재 공학관 쪽으로 이사갔다. 종과 고양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길 듯하다. 공학관 3층 현관에 밟기 딱 좋게 앉아있는 그 고양이 맞다. 2013년 7월에 종합과학관 D동이 종합과학관 현대자동차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한우리집
    기숙사로 주로 1학년 신입생들이 무작위 추첨을 통해 들어오며, 2학년 되면 입주 거의 안 받아서 당첨되기 매우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나가야한다. 대학생 기숙사인데 점호제도가 있어서, 지각하면 벌점 받고 벌점이 10점 이상이면 퇴사하게 되어있다. (2014년 현재 점호제도는 거의 사라졌다.) 1학년 되어서 흐트러지기 쉬운 생활을 잡아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개인 사정이 있으면 외박신청서를 끊어야 하므로 번거롭다. 워낙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시내까지 나가 돌아오기 번거로와서 방에 틀어박혀 있기 쉽다. (셔틀버스가 있긴 한데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기숙사 앞은 경치가 좋은데, 북아현동 일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멀리 남산타워도 보인다. 야경이 특히 일품. 다행히 새 기숙사를 지어 2015년부터(2016년이 될지도 모름) 1학년은 그 쪽 기숙사로 배정하기로 하여, 좀 더 많은 헌내기와 고학년들이 이용할 수 있게될 것 같다.

  • 솟을관
    법대 관리 하에 있는 기숙사이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입법고시, 외무고시 등 국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로스쿨 도입 이후로 로스쿨생들도 받고 있다. 1년에 2번 입사시험이 있는데, 각 시험의 1차 시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시험을 치른다[26]. 한우리집과 함께 저~기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다. 같은 기숙사 건물 내에 위치한 한우리집은 학부생 중심으로 나름 자유를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솟을관은 시험 서포트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식당, 운동시설 등은 같이 사용하고 있으나 관리주체, 관리방식 등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한우리집은 외박신청이 온라인으로 가능하지만, 솟을관은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서 자필로 외박신청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 법학관
    법대 건물로 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법학관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매우 가팔라서 겨울에 눈이 오거나 얼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 ('데스로드'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구관과 신관이 서로 이어져 있는데, 신관에서는 핸드폰이 잘 안 터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거슨 수업시간에 공부만 하라는 학교의 음모 와이파이로 하니까 좀 낫더라 법학도서관, 모의법정 등이 있고, 수유실도 있다.

  • 조형예술관
    정문 근처에 조형예술관 A, B, C동이 있다. 등록금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컴퓨터실이 턱없이 부족하며, 단대 안에 있는 화방은 비싸고 재료비 지원도 없다. C동 건물은 깔끔하고 새 것인 편. A동, B동 건물은 엘리베이터도 없다. 여기서 눈물을 닦아주자. 이대 미대를 나온 그 많은 재원이여, 왜 엘리베이터 하나를 놔주지 못허구! [27]
    웬만하면 엘리베이터 좀 달자는 이야기는 매년 있으나, 10년 가고 20년 가고 40년 버틴 이상에야 그냥 살자는 슬픈 체념이 교수진을 필두로 퍼져 있으며, 건물이 워낙 오래 되어먹어서 엘리베이터를 달 바에야 다 부수고 새로 짓자는 꿈과 희망 때문에 쉽게 부수지도 못하는 상태. 미대 부수면 미대생들은 어디 갈 데도 없다. 강의실을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구 실기실은 어디다 만들려고…
    5월달마다 하는 개교기념일 기념 메이데이 전시나 졸전 시즌 때 놀러오면 다양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디자인 학부는 2011년부터 학부제가 폐지되었다.

  • 이화신세계관
    경영대학 전용 건물인 이화·신세계관은 지하 3층 지상 6층 연면적 15.640m2 (4,740평)규모의 무선랜과 인터넷정보통신망이 갖춰져 원격화상회의가 가능한 강의실과 강당 3개의 원형강의실 교수연구실 대학원연구실 등으로 구성된 복합 인텔리전스 건축물이다. 빗물을 이용한 중수사용 태양광전지판을 이용한 발전설비 소음방지벽재 등 친환경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큰 특징이다. 미래의 여성경영인 양성에 큰뜻을 가진 신세계의 기부로 지어졌으며 여성 경영학도의 꿈과 비전을 키울 수 있는 첨단 교육환경의 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화여대에서 몇 안되는 신식건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경영대 건물이 필요했던 학교가 신세계 이명희 회장에게 연락하자 흔쾌히 지어주기로 했다고 전해진다.뉴스기사 카더라에 따르면 다만 건축가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추천하는 사람으로 해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고도 한다 새로 건물을 짓게 되면서 학교는 주변 토지를 정리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지금도 현존하는 경영대 옆 빨간벽돌 하숙집은 알박기가 성공한 사례로 회자된다.

  • 음악관
    음악대학 학생들이 사용하는 건물로 조형예술관과 중앙도서관 사이에 위치한다. 건물이 상당히 위에 있고 경사가 있어서 올라가는데 힘들다. 아침에 악기 들고 뛰는 음대생들을 보면 애잔하다고 1층에 김영의 홀, 지하1층에 국악 연주홀이 있다. 많은 동아리 공연들이 열리는 곳

6.2. 캠퍼스 주변

이대역에서 정문까지 내려오는 대로변을 따라 양옆으로 각종 상업시설이 밀집해있다. 명동이나 연대앞 신촌거리, 대학로 등해 비해 비교적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거리가 조성되어 있기에 이대생들 말고도 다른데서 쇼핑하러 오는 사람도 많아 유동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그리고 밥집이 꽤 적다.많이 적다.게다가 가격대도 높다

정문 바로 옆에 럭키대현아파트의 진입로가 있다. 딱 붙어 있다.그 아파트가 본가인 이대생들은 제대로

가게들의 대부분은 카페, 옷가게, 음식점, 대형 브랜드들의 체인점 등이며, 그 수가 워낙 많아 어떤 브랜드들의 경우 이대 1호점, 2호점 이런식으로 지점을 여러개 내기도 한다. 특히 화장품 가게의 경우 그 업종 회사의 회사란 다 볼 수 있다 밥집이나 좀 생기라고!! 올리브영은 반경 300m도 안되어보이는 거리내에 지점이 3개나 있다. 흠좀무. 술집이나 고깃집 등은 거의 없으며 신촌 쪽으로나 내려가야 있다. 대형 브랜드들의 1호점이 위치해있기도 하다. 스타벅스미스터피자 미샤가 이대점이 1호점이다.

한낮에도 옷 사러 나온 여고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교는 안가고 여기서 뭐하니?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데, 요새 보이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이화를 중국어로 읽으면 'lihua'가 되는데 '이'는 이익의 'li'와 발음이 비슷하고 중국인들이 재물복이 터진다는 의미의 '파차이'의 'fa'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화에 가면 '돈복이 터진다'라며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다. 중국어로 이화는 'li hua'로 발음하는데 파, 즉'fa' 발음과 비슷해서 좋아한다고.

다만 중국에는 여대가 별로 없어서 신기하게 생각하는데,[28] 이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딸이 대학교를 잘간다거나 시집을 잘간다거나 하는 둥의 소문이 돈다는 이야기가 있다.[29]

당초 알려진 이러한 소문과 달리 한국관광공사가 2014년 9월 이화여대를 방문한 중화권 관광객 150명을 대상으로 방문 목적을 조사한 결과 절반(47%)은 '캠퍼스 전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3명 중 1명(34%)은 '한국의 명문여대를 방문하고 싶어서'라고 답했고, 흔히 아는 '방문하면 부유해진다는 소문을 듣고'는 10명 중 1명(9.2%)도 안되었다고 한다.

중국인을 필두로 한 관광객 수가 너무 증가한 나머지 정문에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달라'며 관광객의 양해를 구하는 문구를 3개국어로 써놓은 현수막이 걸리고 ECC의 각 게이트에도 관광객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붙어있지만 그 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명절이라도 걸리면 학교는 흡사 테마파크 수준으로 정말 관광지처럼 사람이 많아진다. 건물 출입문 앞에서 돗자리 펴고 앉아있는 가족이 나타나는가 하면,건물앞에서 자는 관광객까지 나타났다!또한 일부 관광객들은 양해도 구하지 않고 본교 학생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촬영, 모자이크도 하지 않고 얼굴이나 간혹 다리만 확대한 사진까지도(!) 중국 블로그에 게재하거나,학생증이나 신분증이 없으면 본교 학생들마저 출입이 안되는 도서관에 멋대로 출입하여 사진을 찍고 학생들의 학업을 방해하는 등 문제가 많아, 학생들은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전설의 뉴스 인터뷰 같은 아시아인인데 뭐 어때요

후문 주변에는 이대부속 초ㆍ중ㆍ고등학교가 나란히 있으며, 후문 바로 앞 하늬솔빌딩 지하에는 필름포럼(예술영화관)이 있다. 넷상에서 화제가 된 불청객이 이곳에서 단독개봉하기도 했다.

  • 셔틀버스 : 2010년에 새로 생겼다. 이대역에서 신촌기차역을 경유해 공대삼거리까지 가는 노선과 경복궁역에서 사직터널을 지나 후문쪽으로 도는 노선 두개가 있다. 잘만 맞춰타면 캠퍼스 내부를 이동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힘든 공대언덕길을 단숨에 주파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이용객은 공대생들. 수업이 임박했을때는 이용객수가 매우 많아 가축수송을 방불케 한다. 학보에 셔틀버스가 수송인원 기준치를 훨씬 초과해서 운행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기사까지 실렸다.

7. 목동병원

양천구 목5동에 본교 부속병원인 이대목동병원이 있다. 의과대학 및 의학도서관도 이곳에 위치해있다.

8. 역대 총장

  • 스크랜튼: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로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조선으로 건너온 미국인 선교사[30] 중 1명으로, 종교는 개신교 중 북감리교 계열이다. 조선 말기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은 것을 보고 개인 저택에 소녀들만을 위한 미션스쿨을 설립하기로 결심, 중구 정동에 학당을 설립했다. 단 1명의 여학생으로 학당을 시작,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운영한다. 이화여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 학교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분의 이름을 딴 "스크랜튼 학부"라는 것도 있다.

  • 자신의 제자를 정신대로 내몰았던 김활란(金活蘭): 활란은 Helen이라는 이름을 비슷한 음의 좋은 뜻을 가진 한자를 덧대어 한자어 이름처럼 삼은 것이다. 베델이 배설(裵設)이 되고, 오언(Owen)을 오원(吳元)과 같이 쓰는 것과 비슷.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행적, 여권향상 운동 등의 이유로 여러 방면에서 까이고 까이는 총장(...) 영어식 이름은 미국유학과 해방 후 각종 외교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편의상 지은거고,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학교를 살리기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했다는 항변도 있지만 그녀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중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조선총독부가 지원하는 조선부인연구회, 방송선전협의회, 애국금차회에 참여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언론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을 통해 강연하며, 《동양지광》, 《조광》에 대한 기고로 일본 제국의 전쟁 지원을 선동하는 친일 및 전쟁지원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 제국의 한민족 말살정책인 신사참배 강요에 협조하고, 징병을 권유하는 강연에도 앞장섰다는 것이 그녀의 과오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연세대학교윤치호 총장과 비슷한데 더 까이는 듯.[31] 여기에서 공적을 살펴보면 이화여대를 엄청나게 크게 키우고 서울 신촌 캠퍼스를 확장하고 해방 이후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냈으니 총장역할에 굉장히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상당히 좋았다고 하며[32] 여권향상 부분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선한 뒤로 민중들의 여권인식을 향상시키기위해 YWCA 활동을 열성적으로 추진하였다. 실로 여권운동 향상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허나 앞의 친일행적이 뒤의 업적을 다 덮어버리는 것이 현실. 최근에 이대생들을 중심으로 동상 철거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 장상: 왕년 철의 여인. '총장은 기독교인 비혼 여성이어야 한다'라는 룰을 깨트린 인물. 정치계로 나가 있다. 학교 있을때는 운동권마저 (나쁜 뜻이라도)의 여인이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재오에게 발리며 빵상(…)이란 별명까지 붙는 등 눈물과 수모의 정치생명사를 쓰고 있다.

  • 김옥길: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의 친누나. 최규하 대통령 시절 문교부장관을 지냈다.

  • 신인령: 이화여대의 그 유명한 금혼규정을 없앤 인물. 법대 출신이며, 로스쿨 유치에 힘 좀 썼다. 희귀한 여성 법학자였으며, 그와 별개로 학창 시절엔 '내가 서울시내 경찰서 중 안 들어간 곳이 없다' '내가 숨어지냈을 때' 등등의 자랑을 하곤 한다. 후자는 지명수배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파쇼적인 면을 보여주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망은 더욱 컸다.

  • 이배용: 2010년 8월까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인문대학 사학과 출신이다. 총장 임명 전에 역사스페셜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다. 이분 이후로 총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기존 총장은 학생과 거리가 먼 사무적인 총장이었다면, 이 분은 학교 이미지를 대표하고 학생들과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가끔 총장님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문자가 오기도 한다.(사랑하는 이화인 여러분♥개강을축하합니다. 신종플루도 조심하길 바래요. 화이팅! 같은. 하지만 보낸 사람은 총장비서실 소관이라는 소문이 있음.) 학생들 사이에서 배드래곤(Dragon)이라고 불리는 모양. 다만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2년이나 동결했는데 이 정도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거 아님?"이란 말을 하여 '우리나라 등록금 정도면 조낸 싼거라능'이란 말을 한 이기수 고려대 총장과 함께 까이고 있다. 핑크색, 옥색 등 현란한 색깔의 정장을 입고 채플에 등장하는데, 옆에는 항상 총장님의 자그마한 토드백을 드는 비서(가방셔틀)와 함께 나타남 그 때문에 '이핑총(핑크총장)'이라고도 불렸으나, 총장 취임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오히려 파란 옷을 많이 입고 학내 행사에 등장하여 '불총(블루총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퇴임 후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취임. 현재는 자주색 의상을 즐기시는 듯. 참고로 행정고시 강사 정원준에게 까인다.

  • 김선욱: 2014년 8월까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법대 출신이며 제26대 대한민국 법제처 처장(2005-2007)을 역임하였다. 전임 이배용 총장에게서 전체문자스킬을 배웠는지 가끔 문자를 날린다. 시험기간에 열람실에 예고없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편지와 가벼운 먹을거리를 돌린다.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때문에 엄총(엄마총장)으로 불린다. 전임 이배용 총장이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았다면 (이화 커리어 르네상스 인증, 이화 문화기획단, 이화 문화 예술기획아카데미 이런 거 다 이분 작품) [33] 김선욱 총장은 이화의 아웃풋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고 보여진다. 법대 교수 출신이었던 이력을 보아 [34] 총장 직위에 있는 동안 학생들의 고시 및 각종 시험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후임총장 성향에 따라서 또 바뀌겠지

  • 최경희: 현재의 이화여대 총장. 사범대 학장 출신이시다. 2014년 총학생회 '시너지 이화'에서 대동제를 위한 예산이 부족하니 대동제 예산을 확충해달라 학생처에 요구하자 총장님이 직접 흰 봉투에 100만원을 넣어 남몰래 총학생회장 품으로 보냈다는 웃지못할 사연의 주인공. 그 때부터 별명 백만원. 총학생회가 이를 비판하며 대자보를 붙이자 순수하지 않은 학생들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공개면담 약속한지 이틀만에 박살내셨다는 전설이 있다.

9.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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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women's가 아닌 womans를 쓴다. 이화여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최초 스크랜턴 여사가 여학생들을 모집할 때 힘들게 부모와 주변을 설득해 1명씩 1명씩 데려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최초에 womans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한다. 또한 여성 한명 한명을 전인적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뜻에서 그와 같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설립당시에는 womans 도 문법적으로 혼용되었다고하는데 확인바람 그럴 듯한 설명이나, 외국 유학이나 취업 목적으로 영문 자기소개서를 쓸 때 womans라고 쓰면 문법 틀렸다는 비웃음과 함께 고치라고 하는 경우도 꽤 있다(...). 스스로가 여성 '교사'였던 설립자 스크랜턴 여사가 직접 지은 교명이라고 하니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고.
  • [2] 현재 중구 정동의 이화학당 터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935년에 정동에서 현재의 신촌으로 이사왔다.
  • [3] 이화학당을 세운사람이 메리 스크랜튼 여사이고, 이화학당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신분은 김활란 박사 이다. 홈페이지에 김활란 박사가 7대 총장이라고 되어있지만, 자세히 보기를 누르면 초대총장이라고 나온다.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많으신 분이지만, 이화의 발전에는 큰 기여를 하신분이다(....) http://www.ewha.ac.kr/mbs/ewhakr/subview.jsp?id=ewhakr_010105000000 참고.
  • [4] 문제는 채플의 내용은 1주일 단위로 바뀌므로 3개 이상을 넘어간다면.....그래서인지 고학년들 중 종종 친한 후배를 대상으로 땜빵 한번에 3~4만원의(!!!) 매우 높은 보수를 주는 채플 대타 알바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걸리면 엄청 강한 징계를 먹는다고 한다.
  • [5] 예를 들면 타대에 비해 학번제를 강제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몇몇 소규모 학과나 동아리의 경우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학번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존대한다.
  • [6] 이를 사정 판결이라 하며 행정소송의 특유한 판결 형태다.
  • [7] 여기에는 여성해방 이야기가 아니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FM인 자주관악·통일연세·민족고려가 함께 모여 "자주통일민족해방"으로 만든 것이라는 카더라도 있다.
  • [8] 단 두 학교 모두 학부 과정은 아니고 대학원 과정. 물론 여성학과에서 개설하는 수업들을 학부생들이 자유롭게 들을 수는 있다.
  • [9] 9급 공무원 시험 시 군필자에게 부여되는 5%의 가산점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5명의 이대생과 1명의 장애우가 제출하였는데, 이것이 1999년 12월 24일에 위헌결정이나서 폐지되었었다.
  • [10] 위의 주석을 다시 읽어보자.(...) 첨언하자면 인터넷이 있기 전인 90년대 초반에 뉴스위크에서 '돈의 노예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라는 기사를 이화여대생 5명의 사진과 함께 보도한 사건이 있었다. 길가던 아무 여대생의 사진을 찍어 모자이크도 없이 저런 기사에 무단으로 포함시킨 것이었다. 얼굴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피해자들은 당연히 명예훼손과 초상권으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뉴스위크는 결국 9천만원을 배상하였다.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보도사진에 의한 초상권 침해를 인정한 최초의 판례가 되었다.
  • [11] 사실 학생회에서 행하는 퍼포먼스나 시위 참가에 대해서는 재학생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며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이)크게 "참여하자"와 관심없는 나머지로 이뤄지는 편이다. 미화노동자 문제의 경우 대체로 학생회의 편이었으나 기타 정치적 사안이 섞인 뜨거운 감자의 경우 당연히 학생들의 정치 성향에 따라 갈린다. 가끔 시끄럽다고 까는 사람도 있다(...) 대학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다 다를 수밖에.
  • [12] 실제로 교내로 진입한 남학생들의 경우 1. 진짜 여자가 너무 많아서 2. 남자가 정말 안보여서 3. 거의 모든 학생들이 왜 자길 보고 지나가는지 에 대해 몹시 불안해한다(...) 정작 남학생을 쳐다보는 학생들은 글자 그대로 "어?? 남자사람이 있네??" 하면서 슥 보고 지나갈 뿐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그러니 그럴 수밖에(...) 그나마 옆에 이대생 지인이 있으면(여친이건 누나건 동생이건 아는사람이건) 다행이지만 포스터 부착 등으로 남자들끼리 닥돌한 경우엔 답이 없다. 이 경우 학생들의 경계도 느는 편. 뭐야 왜 남자가 있어
  • [13] 중간에 ECC 개장(?) 전에 ECV(Ewha Campus Valley로 잠시 명칭을 바꿨던 시기였다. 즉, ECC → ECV → ECC 로 삼단변화. 흔한 이화의 변덕 카더라에 따르면 ECV를 다시 ECC로 바꾼 이유가 '학생들이 자꾸 이氏val이라고 불러서'였다고도 한다. 사실 ECV라고 부르던 시기는 건물이 완공되기 전이었으므로, 자신이 졸업할 때까지 건물이 완성되지도 않을 텐데 등록금만 잔뜩 들이붓는 공사 때문에 먼지를 잔뜩 마시고 흙길을 걸으며 다니던 학생들의 불만이 꽤 있었다.
  • [14] 도미니크 페로가 원래 설계했던 도안에는 양쪽 선큰가든 사이를 잇는 다리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최종적으로는 다리가 없다.
  • [15] 교보문고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서점이어서 책이 적은 편이라, 전공서적 구비된 건 차라리 과거 생활관 지하의 구내 서점이 훨씬 나았다는 악평을 듣고 있다.
  • [16] 영화사인 백두대간에서 운영한다. 광화문의 씨네큐브도 운영했으나 씨네큐브는 현재 손을 뗀 상태.
  • [17] 일부 남성들은 멋모르고 여대생에 대한 환상을 안고 이화여대를 구경하러 왔다가 채플 시간에 임박한 여대생들 무리가 무시무시한 포스로 계단오르기를 시전하는 장면을 보고 무서웠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 [18] 도서관에서 졸업실습을 했던 문헌정보학과 학생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국내 신간이면 웬만한 건 대부분 구입하며 구매 요청이 있는 경우에도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사주는 모양이다. 다만 외서의 경우에는 예산이 배 가까이 든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 [19] ㅁ자 형이다.
  • [20] 학관 3층과 인문관 2층 사이에 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 [21] 그전까지는 대다수 필수 영어교양강의가 포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회대생은 자기 단대 건물을 활용할수 없고 여타 단대생들도 불만을 품는 등 서로가 불만이었다. 타 단대생의 경우 포관이 언덕 위에 있어 전공이 섞인 연강(전공-포관-전공/포관-전공-포관)일 경우 죽음의 행군을 방불케 한다. 당시 영어교양수업이 5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 단대-(언덕)-포관-계단을 돌파해야 하나 학기가 끝날 때쯤엔 전공서적이 담긴 숄더백을 맨 채로 힐을 신고 언덕과 계단을 가뿐히 뛰어 올라갈수 있는 스킬을 획득하게 된다고 한다. 여하튼 모두에게 헬게이트였다고 한다.
  • [22] 엘레베이터로 포관4층으로 간뒤 4층 출구를 통해서 가는 방법치트키가 있다고 한다.
  • [23] 헬렌 켈러와는 아무 관련 없다. 예전 총장 김활란의 세례명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 [24] 그러나 학생복지를 위해 적자임에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 [25] 건물이 4개나 되지만 정작 학부생들이 사용하는 건 실험실 몇 개와 D동 뿐이다. 전공 수업은 대부분 포관에서 한다(…)
  • [26] PSAT 같은 경우는 1차 합격보다 어렵다고 한다. 흠좀무.
  • [27] 신세계 회장이자 이대 미대 졸업생이고 이건희의 여동생인 이명희도 과를 배신하고 경영대에 경영관을 지어줬다.
  • [28] 베이징에 중화여자학원(中華女子學院)이라는 여대가 있긴 하다.
  • [29] 그래서인지 웨딩촬영을 감행하는 관광객들도 있다(...) 최근에는 학사모 들고 와서 무려 졸업 사진 찍으려는 관광객들도 늘어나고있다!경비아저씨가 말려도 역부족
  • [30] 아펜젤러, 알렌, 언더우드, 클라크, 크랜튼.
  • [31] 여권운동가로서의 공적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일제 말기 정신대 모집을 위한 강연에 참석했다는 이야기 등, 그녀 자신이 걸었던 길과는 상반된 일까지 하면서 친일을 했다는 것이 일종의 비웃음을 닮은 질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32] 한국 여성 최초의 박사. 유관순 열사도 이화학당 시절 김활란 선배를 보고 진짜 대단하다고 평했다 한다.
  • [33] 물론 이배용 총장이 직접 기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방향 제시는 했다고 보여진다.
  • [34] 법대 특성상 사시 합격자수가 최대의 관심사이며 커리큘럼 및 학생지원도 그쪽이 중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