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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

last modified: 2019-09-01 01:48:14 Contributors

이름 이홍렬(李洪烈)
출생 1954년 5월 22일, 서울특별시
신체 163cm, 65kg, A형
데뷔 1979년 TBC 라디오 가요대행진
가족 관계 1남 2녀 중 둘째
학력 서울공업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MBC 방송대상 코미디 부문 대상
이경규
(1992)
이홍렬
(1993)
이경실
(1994)

Contents

1. 소개
2.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코미디언. 1954년생. 1980년대, 1990년대 작은 키와 특이한 외모,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서울공고를 졸업하고 DJ로 활동하다가 허참의 권유로 개그, MC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콩트로는 1980년대에는 김병조와 콤비를 이룬, 청춘만만세의 카운셀링 개그코너 '어찌 하오리까'. 1990년대는 임하룡과 함께 했던 '곡산장'.[1]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홍렬쇼' 라는 토크쇼로 나름대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당시 코너에 참참참이라는 코너가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스타가 나와서 밤참[2]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이였고,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또 이홍렬 하면 빼놓을수 없는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코너였던 한다면 한다.
세계나 국내에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며 도전하는 프로그램 이었는데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상격인 프로라 생각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번지점프는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당시 40대였던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 를 외치고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은 많은 중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3]

"뺑코" 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이는 이경실의 콩트 '도루묵 여사'에서 이경실의 권유로 콧구멍에 500원 짜리 동전을 성공적으로 넣었다 뺐던 것에서 유래한다(...돈 트라이 디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넓은 콧구멍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코에 뭔가를 넣는 행위를 대단히 불쾌해 한다고 한다. 다만 별명이 "촉새"에서 "뺑코"로 바뀐 것은 만족해 하는 듯. 그러다가 MBC 케이블 프로그램 '가족이 필요해 시즌2'에서 15년 만에 코에 뭔가를 넣는 개그를 시도했다(동전이 아니라 고무줄이었지만).

MBC 생방송에 가야 하는데 경비가 "주차장에 자리 부족해요. 나가세요."라면서 진입을 막았고, 이홍렬은 결국 길에 차를 버리고 들어가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비의 대응에 서운함을 느껴서, 내가 MBC에 바친 열정이 얼만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SBS로 옮길 때는 SBS에 전용 주차석을 요구했다고. 경비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없는 자리를 어쩌라는건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다.

2014년 4월 중순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의 길로 복귀하여 MBC 19기 개그맨 김용재와 콤비로 모큐멘터리 형식의 코너를 하고 있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이디어를 짜고 어린이 분장으로 PD 앞에서 코너 검사를 받는 등 분투하는 중. 김용재는 이상민 주연의 음악의 신에 등장한 개념없는 매니저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2014년 7월 6일에는 환갑기념 출판기념회가 방송되었다. 전유성, 최불암, 이경실, 전영록, 황기순 등 많은 스타들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2015년 현재 서울교통방송에서 이홍렬의 라디오쇼를 진행하고 있다.

2. 기타

2007년부터 크라제버거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해서 방문하면 가끔 볼 수도 있다고 한다. 3번 망하고 4번째로 낸 가게라고. 지금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영 중단을 천명해 놓은 상태다.

점심 시간에 홍대 앞을 지나면 담배 피는 이홍렬을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워낙 연예인이 깔린 동네라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게 함정...

과거에 음악활동을 한적이 있으며 음반을 낸 적도 있다. 일종의 자선 음반으로 기획하였고, 일부 기존 노래를 커버한 노래(ex. 트로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좀 있다. 마지막 트랙인 발라드 넘버 '다시 한번 해봐요'는 그를 비롯한 당대 유명가수들과 합창했는데, 함께 한 아티스트가 열아홉이나 된다. 그러나 흥행은 흑역사. 지금은 정반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영희네 담벼락에 누가 써 놓은 이야기>라는 곡은 그럭저럭 유명하다. 들어보기 [4] 대인배스럽게도 앨범 전곡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해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들어보자. 몇몇 곡의 경우 이홍렬의 라이너노트도 곁들여져있다.
이외 음악활동의 경우 '초콜렛'이라는 남녀혼성 듀오에 거의 모든 곡을 제공한적도 있으나 그룹이 망해서 자선음반보다 더 잊혀졌다(...).

결혼은 비교적 늦게 했으며(결혼 당시 34세. 아내는 26세), 33세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한 것으로 유명한 만학도. 그래서 그런지 상당한 다독가라고 하며, 2년간 일본에 체류[5]한 경험에 바탕해서 쓴 일본, 일본어 서적도 있고,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하기는 어렵다"라는 자녀 교육서를 쓴 적도 있다. 그 외 아버지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당연히 일본어에 매우 능통해서 일본인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

또한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냥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날짜를 정확히 쓰고 중요한 사건을 간단히 소회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뒀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태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 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이경실이 지나치게 괄괄한 여걸이라서 이성미가 그런 이경실을 기피하자 이홍렬이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화해시켜서 둘을 절친으로 만들어놓은 일화가 있다.

주병진(1977년 데뷔) - 강석(1978년 데뷔) - 이홍렬(1979년 데뷔) 순으로 선후배 사이이다. 이 시점 이후로 MBC의 개그맨은 공채를 하기 시작하여 기수대로 표시한다. 즉, 이 세 사람은 특기수에 해당. 알다시피 개그맨계는 선후배 사이를 철저히 따지는 쪽이라....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집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며 교회의 창조과학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전영록과는 중학교 동창.

한창 인기있던 1995년에는 '뺑코형사 특급추리왕'이라는 어린이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

유럽의 모 축구감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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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태~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 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절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 [2] 말 그대로 밤참이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에 이 책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 [3] 무려 20년 전인만큼 예능프로도 지금과 비교가 불가능할만큼 점잖고 얌전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야 이놈들아아아아아아!' 처절한 저주의 외침을 토하며 뛰어내렸으니 당시 시청자들이 받았던 쇼크는 상상을 초월했다.
  • [4] 참고로 해당 넘버의 작곡자는 그 유명한 김창완 선생.
  • [5] 당시 한참 잘 나가던 시점에서 갑자기 일본으로 공부한다고 떠난 경우였다. 때문에 전유성같은 이들은 대단히 높이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