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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last modified: 2017-01-28 19:32:40 Contributors

Contents

1. 야구선수
1.1. 개요
1.2. 프로 입단 과정
1.3. 해태 타이거즈 시절
1.4. SK 와이번스 시절
1.4.1. 2000~2007 시즌
1.4.2. 2008 시즌
1.4.3. 2009 시즌
1.4.4. 2010 시즌
1.4.5. 2011 시즌
1.4.6. 2012 시즌
1.5. NC 다이노스 시절
1.5.1. 2013 시즌
1.5.2. 2014 시즌
1.5.3. 2015 시즌
1.5.4. 2016 시즌
1.5.5. 2017 시즌
1.6. 기타
1.7. 연도별 성적
1.7.1. 투수 시절
1.7.2. 타자 시절
2.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1,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3. 스피어즈의 등장인물

1. 야구선수



NC 다이노스의 첫 만루 홈런을 친 후. .로또포

NC 다이노스 No.27
이호준(李昊俊)
생년월일 1976년 2월 8일
출신학교 광주중앙초-충장중-광주일고
포지션 투수[1], 외야수[2], 1루수, 3루수[3], 지명타자[4]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1994~1999)
SK 와이번스(2000~2012)
NC 다이노스(2013~ )
응원가
오기택 - 아빠의 청춘[5][* SK시절엔 현재 한동민이 쓰는 응원가를 사용하였다.
가사는 (야야야야야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였다. FA이후 부진하자 기회를 날려버려라, 찬스를 날려버려라등으로 패러디되었다.]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성영재(2000) 이호준(2000-2001)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승준(2001) 이호준(2002~2012) 백인식(2013.5)
김상현(2013~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김태우(2012) 이호준(2013~ ) 현역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김원형 이호준(2008)[6] 김원형
김재현 이호준(2011) 박정권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김동건 이호준(2013~2014) 이종욱

보유 기록
6연타석 볼넷 역대 한경기 최다 볼넷(타이) 및 한경기 연타석 볼넷
[7][8]

1.1. 개요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선수.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은 로또준.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34억짜리 경비원'[9]으로 불렸다. 팀에게 너무 피해를 주기에 또르노빌, 또쿠시마라고도 불렸으며, 워낙 SK 팬들의 애증의 대상으로 유명해서 야갤에서는 반어적 의미로 씹솩의 소울로 불렸다. 위의 6연타석 볼넷으로 인해 육또선인이라는 별명도 있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팀에서 최정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쓸만한 타자가 되어버려서, 진심으로 SK의 쏘울이 되었다. 그리고 그 SK의 쏘울 직책은 박재상이 가져갔다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는 또롱뇽, 또래곤 후라이트 등의 별명이 생겼다. 09년도의 창의적 병살과 귀신 같은 플라이볼 솜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찰진 별명이다.

참고로 저 두 별명 다 그의 로또본능과 FA로이드를 겪어 온 사람들이 붙여줬다.

디시 엔갤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호부지'가 있다.# 호준+아부지라는데...젊은 타자들의 아버지 역할을 한데는 데서도 그렇지만, 가장이 그렇게 하듯 꾸역꾸역 타점 벌어다가 팀 먹여살리는 사람이라 그렇다나? 마침 응원가도 "아빠의 청춘"이다.

에서는 전드라고 부른다.사실 호로준 비중이 더 높다 참고로 그의 중/고등학교 선배는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과 김기태 기아 타이거즈 감독이다.

1.2. 프로 입단 과정

1993년 말에는 고졸 선수 스카웃을 둘러싸고 프로와 대학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동국대학교로 진학하기로 되었던 주형광, 연세대학교에 가등록했다가 연세대의 일본 전훈 장소에 급파된 LG 스카우트와 계약한 김재현 등이 대표적이었지만, 김재현과 마찬가지로 연세대학교 가등록 상태였던 이호준 역시 만만치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고졸 선수 입단 교섭 마감일인 11월 15일[10]을 막 넘긴 가운데 해태 타이거즈 김경훈 스카우트가 연세대 숙소에 잠입해 계약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러한 처사에 화가 난 각 대학 팀들은 프로와 대학 사이에서 진로 문제로 물의를 빚은 선수가 속한 고교 팀의 선수들을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5년 동안 스카웃하지 않기로 결의했으나 이는 대학 팀들이 제 발목을 도끼로 자르는 격이어서 실질적으로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었고 1996년 말 프로 출신들에게 아마야구 지도자 자리가 정식으로 개방[11]되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

1.3. 해태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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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선동열, 김기태, 이강철, 이종범, 염경엽등의 선수를 배출한 광주일고 출신으로, 처음에는 해태 타이거즈투수였으나 평균자책점이 너무 처참한 데다[12] 부상까지 입으며 1996년에 타자로 전향한다. 투수 시절 당시 LG 소속이었던 김재현에게 20홈런째를 허용, 20-20 기록 달성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김재현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시킨 계기를 마련해 준 값이라며 이호준의 FA 계약금 일부를 내놓으라고 말한다. 물론 믿으면 골룸! 특히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시절에는 타선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 김응룡 :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지만 호준이가 있어 든든하네![13]
실제로 98년도에는 4번타자로 발돋움하며 팀내 성님[14]홍현우보다 뛰어난 .303에 19홈런 77타점으로 이종범이 떠난 타선의 중추노릇을 했다. 99년에도 .276 16홈런으로 활약했지만, 워낙에 샌더스, 양준혁, 홍현우, 장성호가 수많은 대포불꽃을 수놓아, 묻혔다.

여담으로 이 시절에 2군감독이었던 김성근을 속여서 용돈을 받아서 나이트로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시절부터 먹튀본능이...

해태시절만 놓고 보면 당시는 외국인용병 초창기엔 주로 타자들을 용병으로 많이 뽑는 관계로 그 희생양이 된 케이스이기도 하다. 98년에 숀헤어외에는 없는 해태에 99년 용병이 들어오자 여러 포지션을 전전, 3루, 1루, 외야를 돌아다니며 타격성적을 손해보았다. 그리곤 로또를 부르는 SK로 가서 보란드시 로또를 지르게 된다

99년 이호준이 3루수비를 하는 모습 풋풋했던 정성훈도 보인다#

1.4.1. 2000~2007 시즌

하지만 투수진이 붕괴된 타이거즈 사정상[15] SK 투수 성영재와의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는데, 여기에는 2000시즌 초반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응용 감독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듯 이적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16][17] 이적 후에도 부진했지만 2002년부터 사실상 4번타자 자리를 꿰차고 있다. FA 이후 자주 부상을 당하니 그게 문제지만...(…)

2002시즌 26홈런을 치면서 부활을 알리더니 2003년에는 36홈런 102타점을 기록함으로써 홈런 4위에 올랐는데, 이게 대단한게 1~3위 그리고 바로 아랫순위인 5위는 각각 이승엽,심정수, 마해영 그리고 양준혁이라는 당대의 대타자들이었다(...). 2004년에는 30홈런 112타점으로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타점왕에도 올랐으며, 이는 역대 한 시즌 최다 타점 16위의 기록이다. 지금도 불리는 별명인 로또준은 원래 당시에 로또 맞은듯 홈런을 치고 타점을 쓸어담는다고 하여 붙은 것이었다. 이 별명이 생긴 계기는 2005시즌 하위권에 처진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렸기 때문인데, 6월달에만 11홈런을 쏘며 날아다녔기 때문.[18] 그러나 2003년에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기록하여 묻혔다.
그냥 2003시즌만 놓고보아도 홈런왕을 달성한 타자 중 그해 이호준보다 홈런을 많이 친 타자는 1992년의 장종훈, 1998년의 타이론 우즈, 1999년, 2001~2003년의 이승엽, 2000년의 박경완, 2010년의 이대호, 2013~2014년의 박병호로, 단 6명뿐이다. 거기에 2009년의 김상현과는 타이 기록이다.

2004년 시즌 후 프로야구 병풍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2005년까지 입영을 연기하고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장하였다. 그리고 2006년에 공익 근무를 시작했지만 근무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무릎 문제로 의병 제대했다. 이후 2007년에 팀에 복귀하여 우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FA시장의 최대어로 떠오르면서 4년간 최대 34억의 FA 계약을 맺으면서 SK에 남게 되나…

1.4.2. 2008 시즌

팀의 4번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심하게 없었다. 2008년에 무릎 부상으로 한 해를 통째로 쉰 탓에 SK 최고의 먹튀(팀내 최고 연봉)였음에도, 팀은 압도적으로 1위를 해 버린다. 그 후 복귀했으나, 없는 게 팀에 도움이 될만큼 당당한 SK 구단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자리매김했다.


1.4.3. 2009 시즌

2009 시즌에 결국 소원대로(?) 팬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최종성적은 타율 .298, 16홈런, 55타점. 4번타자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55타점이라는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주로 1번으로 나온 정근우, 하위타선인 나주환보다도 적다. 타석대비 타점수는 아주 나쁜편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위협이 되어야 할 4번타자치고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성적이다. SK팬들은 09시즌 이호준이 4번 타자로써 날려먹은 기회/실책으로 인한 패배만 아니었으면 정규시즌 1위도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타점이 적기는 하지만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까이는 이유는 FA로 08년을 날려먹은것이 크다. 의외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SK는 FA제도가 시작되고 나서 쪽박을 차본적이 없는 팀이다. SK가 FA로 다른팀으로 보낸 선수도 밥값은 하는편. 그러다보니 SK팬들의 FA먹튀에 대한 면역력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다.

시즌 후반 SK가 13연승을 달리는 동안 줄곧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어 있었다가 선발로 출장한 9월 16일 잠실 LG전에서 SK는 연장혈투 끝에 2-2로 비겨서 연승 흐름이 한번 끊겼다. 전날 경기에서 15안타를 친 SK는 이날 8회까지 단 3안타의 빈공에 시달렸다. 결국 이게 다 로또효과 때문이라며 또 까였다. 부연하자면 로또효과는 이호준만 없으면 팀 타선이 괴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또, 로또함수라는것이 있는데 이는 상대팀과의 점수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호준의 타율이 올라가는 공식이다. 상대팀과의 점수차가 10점차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이호준은 배리 본즈급 타자로 돌변한다. 지독할정도로 영양가 없는 성적을 보고 비꼴때 쓰는 말이다.

시즌 내내 대차게 까였지만 한국시리즈 6차전 선제 홈런포를 날리면서 윤석민 지못미! 한국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갔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깐다.

1.4.4. 2010 시즌

2010시즌 복귀해서 대타로 나올 때마다 안타를 쳐냈다. 고원준에게 노히트 노런으로 지고 있을 때 안타를 쳐내 팀을 굴욕에서 구출하기도 했다. 홈런도 적절할 때 몰아치기도 하는 등 명불허전 로또였다.7월 5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희생플라이로 팀을 승리하게 만들었다. 물론 로또타임. 양신의 은퇴경기에서는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나가던 팀의 승기를 굳히는 타점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2010시즌 후반기에 살아나면서 명실상부 팀의 4번타자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1루수 겸 4번타자로 출장하여 13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154, 출루율 .21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1.4.5. 2011 시즌

이호준/2011년 항목으로.

1.4.6. 2012 시즌

이호준/2012년 항목으로.

1.5. NC 다이노스 시절

한줄로 요약하자면 NC 입장에서는 경기 외적으로든[19] 경기 내적으로든 신의 한수였던 영입이었고, SK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꺼솟(...)
SK에서의 첫번째 FA 먹튀 이미지가 있던지라(...) 두번째 FA인 NC에서는 어떨지 주목되었으나, 오히려 중심 타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고 주장답게 젊은 선수단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1.5.1. 2013 시즌

이호준/2013년 항목으로.

1.5.2. 2014 시즌

4월 5일 팀 시즌 첫 그랜드슬램을 때려내며 4타점을 올리는 대활약을 했지만 팀은 이민호, 임창민, 손민한이 차례대로 털리며 팀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후 한동안 부진했으나 5월 7일 넥센전에서 5타수 4안타(2홈런) 7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첫번째 홈런은 NC 창단 사상 첫 백투백투백 홈런이었고 두번째 홈런은 시즌 2번째이자 개인 통산 8번째 그랜드슬램, 그리고 NC의 첫 원정 그랜드슬램이었다.

5월 20일 마산 SK전에서 다시 친정팀에게 대못을 박는 결승 스리런 홈런을 때려 2-8 대승에 일조했다.안그래도 바람 잘날 없는 친정팀은 또다시 멘붕(...)

6월 17일 마산 롯데전에서 김성배의 공을 받아쳐 나성범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로 통산 1000 타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11번째 기록.

10월 19일 LG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려냈으나 이미 3:13으로 크게 지고 있던 9회말에 나온 홈런이어서 묻혔다.
10월 24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6회초 2:2 동점 상황에서 역전 솔로 홈런을 때려냈고, 이 경기의 결승타가 되었다. 개인 통산 10번째 포스트시즌 홈런이 되었다.

시즌 이후 주장직을 이종욱에게 넘기게 되었다.

1.5.3. 2015 시즌

4월 5일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한 배영수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쳤다.그리고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정의구현포 참교육포라는 드립을 쳤다

시즌 성적은 타율 0.294, 24홈런 110타점, 출루율 0.381을 기록했다.

1.5.4. 2016 시즌

비록 후반기에 체력 한계로 인해 3할을 유지하진 못했지만 0.298의 3할에 가까운 타율에 출루율도 0.396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나테이박' 클린업 쿼텟에서 성적 이상의 존재감으로 굳건한 중심 축을 담당.

1.5.5. 2017 시즌

2017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을 선언하였다.

1.6. 기타

참고로 이진주(속칭 펄녀)를 앞장서서 내쫓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34억짜리 구단경비원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팀캐미스트리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각광받는 유망주의 타락으로 통하는 길 하나를 막아버렸다는 얘기니까. 이래서 성큰옹만수르 둘 다 성적이 바닥을 칠 때도 로또를 계속 밀어준 것 같다. 그리고 NC도. 이게 농담이 아닌게 같은 팀내 고참이었던 김재현과 함께 둘이서 쌍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반농담이긴 하지만 찰리 쉬렉이 심판한테 욕한 건 사실 이호준이 NC의 어린 선수단에 접근하는 펄녀에게 욕하는 거 보고 배운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또한 이호준의 아내 홍연실씨가 아주 미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확실히 이런 부인이 있다면 이진주가 소개하는 연예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면서 이진주를 앞장서서 내쫓는 원동력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하지원 + 성유리 + 김유미을 닮은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KBO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반론이 없을 정도다. 인천대학교 출신 스튜어디스로 꼬실 당시에 자기 연봉을 사기치고 외제차를 뽑았다고 뻥쳐서(...) 꼬셨다고 한다. 이게 잔혹한 현실이다. 미녀와 결혼할려면 돈을 벌어라. 그것도 억대로 그 당시엔 연봉이 적었겠지만 FA로 대박친 이후의 연봉은 5억. SK에서 박경완, 김재현과 함께 최고연봉수령자이고 KBO 전체에서도 양준혁-김동주-손민한-박진만-장성호 다음가는 고액연봉자. 당시엔 거짓말이었겠지만 이후 현실이 되었으니 팀은 몰라도 부인에겐 진실된 남자.

최동수와 닮은꼴로 유명한데 딸조차 최동수에게 달려가 '아빠!~~'라고 할 정도.(…)

고향 팀에 지금도 애착이 있는 듯하다. 기아가 연패에 빠질 때 인터뷰에서 기아가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 09시즌 기아와의 여러번의 벤치 클리어링이 터질 때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20] 성적 역시 유난히 기아전 성적이 처참하다.

그리고 이미지에 가려 잘 안보이는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통산 성적은 꽤 좋다. 2012시즌 종료 시점에 통산 타율은 2할 8푼, 통산 출루율 3할 5푼, 통산 OPS는 8할 5푼(!!)이나 되는 인물. 여기에 통산 홈런도 242개! 어찌 보면 심재학과 비슷한 상황. OPS만 놓고 따지만 3000타석 이상 뛴 선수들 중에서도 16위나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우승과 2008년 야구붐 이후 SK 팬이 된 사람들은 그 이전에 보여준 이호준의 전성기 활약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까인다. 실제로 2007년 우승 후 FA가 되었을 때는 SK 팬들이 "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꼭 FA로 잡아야한다."라고 팬 게시판에서 서명운동까지 했다.[21] 그 때 팬들의 반응 덕분에 이호준은 예상보다 훨신 높은 금액의 FA 로또를 터트릴 수 있었으니, 지금 반응과 비교하면 흠좀무. 사실 SK시절 말기에 보여준 로또와 먹튀 이미지(...) 때문에 꽤나 저평가를 받고 있는 타자로, 현역 타자들 중에서는 이승엽, 송지만, 김동주 다음으로 홈런 4위에 랭크되어 있고(2014년 5월 14일 기준 270홈런), 역대 홈런 순위도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9위) 2014 시즌에는 1000타점도 달성하여 은퇴한 마해영의 기록까지 넘었다. 특히 송지만과 김동주는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나거나 부상 때문에 1군에 거의 비치지 않았고, 둘 다 은퇴를 했기 때문에 현역 1군 타자들 중에서는 이승엽 다음으로 홈런이 많다. 특히 NC에 이적해와서는 거의 회춘했다고 평가받을 정도.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300홈런까지 달성할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나 일단 2014년까지 통산 285홈런을 때렸고, 300홈런까지 15개가 남아있기에 잔부상 없이 뛴다는 가정하에서 빠르면 2015 시즌에 300홈런을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횡령 등으로 무너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차기 회장으로 박재홍을 떠밀면서 존재감을 다시금 입증했다. 처음에는 자존심 강하고, 개인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던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많았으나, 예상외로 박재홍이 선수협을 잘 이끌어 나가자 덩달아 이호준의 평가도 올라가고 있는 중. 이호준 요정설 어쩌면 사람 보는 눈이 선구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은퇴하고 스카우트 시키자![22]

퇴물 먹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롯데만 만나면 전성기로 돌아와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로나쌩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 이후의 SK는 롯데한데 뭘 해도 이기는 팀이라서 팬들에겐 호구 상대로 스탯쌓기만 한다고 오히려 까였다.(…) 이 때문에 2007년 FA 당시 롯데에서 영입하려 했지만, 영입 실패로 돌아가면서 꼴런트 어디 안 간다고 욕을 먹었었다. 알고보니 신의 한수.

201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뒤 SK와 협상이 결렬되며 NC로 갔을 때 솩갤에서는 아름다운 이별행이라면서 섭섭함보다 기쁨이 크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호준이 NC로 가면서 먹튀짓을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마다 SK에게 비수를 꽂자 모두 뒷목을 잡았다고 한다. 이호준을 까는 데 앞장섰던 솩갤의 경우 엔전드라고 부른다. 그리고 2013년 겨울 정근우가 팬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떠나면서 좋게 떠난 이호준은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는 재평가가 잠깐 일어나기도 했다.

야구 팬들 사이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호준의 FA대박건도 있고, 무엇보다 이호준의 아내 사진을 보면 왜 이러는지 답이 나온다. 처음에 쓰일때는 먹튀와 유사한 조롱이었는데, NC행 이후 준수한 활약으로 인해 거진 야구계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워낙에 유명해서 네이버 자동완성에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말해줘서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는데, 이 말이 왜 생겼는지 고려한다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23]. 그리고 NC는 이 구절을 인쇄한 티셔츠를 7월부터 판매한다고 한다.#

자신도 이 별명에 자부심이 있는지 '인생은 조인성 처럼'이 나오자 발끈(...)했다.기사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 2013년 인터뷰


1.7. 연도별 성적

1.7.1. 투수 시절

1994년 8경기 12⅓이닝 평균자책점 10.22

1.7.2. 타자 시절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해태 타이거즈 17 18 .167 3 1 0 1 3 6 0 6 .389 .375
1997 54 126 .278 35 9 1 8 20 26 0 8 .556 .321
1998 121 422 .303 128 27 1 19 77 64 5 33 .507 .354
1999 107 312 .276 86 16 1 16 55 48 5 27 .487 .333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와이번스 61 190 .232 44 9 0 10 25 23 1 16 .437 .291
2001 80 286 .234 67 17 5
(3위)
8 30 44 4 21 .413 .287
2002 129 444 .288 128 24 2 23 64 76 5 49 .507 .358
2003 133 473 .290 137 20 1 36
(4위)
102
(5위)
86 9 78 .564 .389
2004 133 497 .280 139 22 2 30
(3위)
112
(1위)
87 7 73 .513 .368
2005 105 354 .271 96 16 1 21 65 59 5 55 .500 .367
2006 공익근무요원 복무[24]
2007 101 351 .313 110 22 1 14 71 56 3 34 .501 .368
2008 8 25 .200 5 2 0 0 2 1 0 1 .280 .231
2009 103 299 .298 89 14 1 16 55 40 0 36 .512 .369
2010 85 194 .278 54 9 0 8 46 19 1 21 .448 .342
2011 114 368 .253 93 12 0 14 62 41 2 45 .399 .333
2012 127 426 .300 128 26 0 18 78 55 3 77 .488 .40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NC 다이노스 126 442 .278 123 25 1 20 87 46 2 61 .475 .362
2014 122 424 .271 115 20 0 23 78 59 3 70 .481 .371
통산 1726 5651 .280 1580 291 17 285 1032 836 55 711 .488 .358

2.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1,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3. 스피어즈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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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94년 데뷔 때, 결국 불만 지르다가 타자가 됬다.
  • [2] 해태 시절은 외야수로도 뛰었다.
  • [3] 해태 시절인 1999시즌 홍현우가 2루수로 이동하면서 정성훈과 같이 3루를 보기도 했다.
  • [4] SK 시절 첫 FA 계약을 맺은 2008년 전까지는 주전 1루수였으나 이후 무릎 부상으로 박정권에게 서서히 1루를 내주고 지명타자가 되었다. NC 이적 후에는 쭉 4번 지명타자. 1루수 수비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부상 전력과 나이 문제 등으로 사실상 수비 측면에서는 거의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다.
  • [5] 다이노스 이호준 엔씨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엔씨 이호준 이호준!(홈런!) 이호준!(홈런!) 엔씨 이호준.
  • [6] 시즌 초부터 부상으로 아웃되며 김원형에게 주장직을 다시 넘겼다.
  • [7] 한 경기에 6번이나 볼넷으로만 출루했다. 그것도 연타석으로...그러나 6번이나 출루하고도 그날 경기때 이호준의 득점은 0.(...) 이걸 보면 한국시리즈 5차전때 최정오승환한테 선두타자로 3루타를 쳐도 홈으로 못집어넣은게 살짝 이해가 가기도 한다. '1경기 제한'을 없애면 홍문종의 9연타석 고의사구가 최다 기록.
  • [8] 2013년 4월 28일 김태균이 7타석 6볼넷을 얻어 이호준과 타이를 이루긴 했지만 이는 6연타석 볼넷은 아니었고,고의사구가 하나 포함된 것이다.(이호준의 경우에는 고의사구가 하나도 없는 모두 순수한 볼넷.) 김태균의 이날 기록은 볼넷-볼넷-고4-안타-볼넷-볼넷-볼넷.
  • [9] 여기에 엮여서 생긴 김성근감독의 별명으로 나니욘쥬라는것도 있다. 대충 3억짜리 경비원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던 김성근에게 이호준이 40억이라고 알려주자 놀라며 나니?! 욘쥬?!(...)라고 말했다는 드립이 흥하면서 생겼다.
  • [10] 당시 고졸 선수들은 연고 지역 선수들에 한해 무제한 스카웃이 가능했으나 계약 기간을 11월 1일부터 15일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 [11] 이후 프로선수 출신 아마야구 지도자 1호가 한대화다.
  • [12] 불펜투수로 뛰면서 올라올 때마다 불쇼를 했다.
  • [13] 칰끼리가 이호준이 김재현에게 홈런을 맞는 모습에 빡쳐서 직접 타자로 전향시켰다고 한다.
  • [14] 사실 이 시절의 이호성이 하락세가 시작되는 시점이긴 했다.
  • [15] 당시 타이거즈는 제대로된 투수가 없었다. 그나마 최상덕, 오봉옥 정도만이 쓸만한 선수였었고, 그 외 곽채진,곽현희, 오철민 등의 선발투수들은 좋은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99시즌을 날리고 복귀한 이대진은 마무리로 보직변경되더니, 2000시즌 끝나고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팀내에는 잠수함 투수가 없었다. 이강철은 FA로 삼성갔고, 보상선수로온 박충식은 재활중이였기 때문에 잠수함투수 부재를 해결해야했다. 이렇게해서 성영재와 이호준 트레이드가 성립한것
  • [16] 대신 이적하면서 강병철의 양아들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다행인 이적이었지만...
  • [17] 그리고 트레이드로 타이거즈에 온 성영재는 병역비리 논란으로 2000시즌 종료후 은팔찌를 차게되고, 2001,2002시즌을 말아먹고 방출되어 LG행, 반면 이호준은 펄펄 날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한 트레이드.
  • [18] 하지만 2005 시즌의 마무리는 좋지 못했는데,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LG와의 경기, 만루에서 병살타를 치며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멱었고, 시즌 내내 2위였던 SK는 3위로 떨어진 후 4위 한화에게 패배하며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 [19] 반쯤 농담이긴 하지만 일단 신생팀의 어린 선수들을 펄녀로부터 보호해주니깐(...)
  • [20] 벤치 클리어링은 투수 몇몇을 제외하곤 무조건 나가야한다. 안나가면 벌금도 내야하고 팬들한테 욕도 먹고... 자세한 것은 벤치 클리어링 항목 참고.
  • [21] 이호준이 지금은 사라진 용틀임마당에 술을 먹고 쓴 글(...)이 계기가 됐다.
  • [22] 참고로 이호준 본인은 해설을 하고 싶다고 한다. 방송국에서도 몇번 섭외 시도가 있었던듯 하고...
  • [23] 기록의 사나이로 불리지만 아직 미혼인 그 분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양준혁vs이종범 누가 더 낫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아니, 이건 차원이 다르잖아.
  • [24] 병역비리 연루로 입대 후, 1년 만에 의병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