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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

last modified: 2014-01-18 01:47:3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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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7월 17일 ~ 2008년 3월 10일
전직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출신의 외야수.
2008년 일가족 살해 사건으로 흑역사화 된 선수.

Contents

1. 선수 시절
2. 은퇴, 그리고 몰락
3. 살인 사건
4. 최후
5. 인터넷에서의 이호성

1. 선수 시절

연세대학교 출신. 해태 타이거즈로 활동했으며 등번호는 27번이었다. 1990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했으며 90년과 91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팀을 한국시리즈 4번이나 우승시키는 등 우승주역으로 떠올랐으며 해태 타이거즈의 4번타자의 한 축을 담당했다.

<앗! 시리즈> 중 87권인 <야구가 야단법석>에서 꽤나 많이(3~4번) 언급된 선수이기도 하다(글러브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모자로 공을 받아서 상대팀 주자들을 3루 진루시켰다든가…).

힘이 무지막지해서 신인 때는 라커룸 벤치에 튀어 나온 못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서 박았다고 한다.# 홈런을 쳐서 무등구장 바깥의 무등수영장 기둥까지 공을 날렸던 선수. 싸움 실력이 대단해서 광주 시내에서 조폭 4명과 붙어서 4:1로 순식간에 조폭들을 때려잡은 전설도 있다.#

김기태와 함께 5적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선수협을 거부하며, 프런트의 지시에 따라, 선수협에 찬성하는 해태 선수들을 불러다가 군기반장이었던 자신이 직접 빠따로 때렸기 때문.
나중에 3대 선수협 회장을 지낸 바 있다.# 다만 예상 가능하듯 사실상 어용 회장이었다. #

강병규의 트위터에 따르면 자기가 주장인데 왜 애들을 멋대로 부르냐며 양준혁을 때린 적이 있다고 한다.

1990 ~ 2002 시즌까지 1090 게임에 출장. 통산 타율 0.272, 홈런 102, 타점 526, OPS 0.780을 기록. 커리어 하이인 91 시즌에는 타율 0.288, 홈런 21, 타점 84, OPS 0.887을 기록.

2. 은퇴, 그리고 몰락

하지만 2001년 해태에서 기아로 바뀐 뒤 시즌 종료 후 은퇴 그 후 예식사업에 뛰어들어 2004년에 호성 웨딩문화원을 설립하여 직원은 70여명에 연간 매출액이 70~80여억원에 달할 정도로 번창하였고, 장성호를 비롯한 기아 선수들도 결혼식을 할 때 호성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이것이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사업실패는 무리하게 마권사업에 뛰어든게 원인이다. 순천에서 실내 화상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00억정도가 소요되는 마권사업에 자본금이 모자라자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해 10억원을 빌렸고 그것도 모자라 은행에 담보를 잡고 35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주민들의 도박장 반대 여론에 밀려 경마장 사업은 백지화되었고, 이호성은 청와대에까지 탄원서를 올려보았으나 무소용이었다. 결국 100억원이라는 초대형 부도를 내고 사업을 말아먹게 된 것.# 도박장 사업은 말 그대로 복불복인데, 철저한 사전준비나 조사가 없이 남의 말만 믿고 사업자금을 '몰빵'한게 컸었다고 한다. 그냥 웨딩홀 사업에만 매진했으면 그가 이렇게 몰락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족이지만, 사건이 화제가 될 당시 일부에서는 그가 소위 '바지사장'에 불과했고 휘둘린 결과가 도박장 사업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또, 웨딩홀 사업이 해가 갈수록 잘 안되어서 도박을 한 결과라는 말도 있었다.

그는 후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운동선수만 하다 사회 물정을 너무 몰라 벌어진 일이다. 사회 경험이 없어 아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라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사실 운동선수나 군인, 공무원, 연예인 같은 직종은 타 직종과의 연계율이 매우 낮아, 자기 일엔 프로라 해도 자기 분야만 벗어나면 생초짜나 다름이 없다. 특히 운동이나 연예계처럼 중고등학생 때부터 그것만을 목표로 두는 경우엔 다른 진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막상 어른이 되어 은퇴하면 사회성이 떨어져 사고를 치기 쉽다[1]. 게다가 한국은 서열을 중시하는 나라인지라 선수의 경우 학생시절 때부터 선후배간 구타 같은 악습이 유난해 사회성에 더욱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도 있다.

물론 본인의 문제점을 놔두고 모두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악조건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많고, 순조건 속에서도 막장화한 인간도 흔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과는 별도로 그가 만족을 모르고 과도하게 욕심을 냈던 것도 사실이고, 선수 시절 군기반장을 해먹었을 정도로 천성이 터프했던 것도 사실이다. 설령 아무리 궁지에 몰렸었다 해도, 그에게 최소한의 윤리관이나마 있었다면 적어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판단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3. 살인 사건

4. 최후

동거녀의 일가족을 살해한 이호성은 결국 자살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5. 인터넷에서의 이호성

호성드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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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야구협회에서는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은퇴선수를 위한 직업교육, 구직 활동 지원을 하고 있으나 한국은 이런 제도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