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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last modified: 2015-11-08 06:47:15 Contributors

Contents

1. 두산 베어스 소속 투수
1.1. 아마추어 시절
1.2. 2008년까지의 이현승
1.3. 2009년, 에이스로 거듭나다
1.4. 두산 베어스로 이적
1.5. 2014 시즌
1.6. 2015시즌
1.7. 연도별 주요 성적
2.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2.1. 소개
2.2.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의 활약
2.3. FC 서울 이적 후
2.4. 전남 드래곤즈
2.5. 부천 FC 1995
3. MBC 기상캐스터
4. 전 프로게이머
5. 영화감독


1. 두산 베어스 소속 투수

히어로즈 시절. 살찐 임창용?


두산 베어스 No.48
이현승(李賢承)
생년월일 1983년 10월 11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서화초-대헌중-동산고-인하대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현대 유니콘스 2차 3순위(전체 26순위) 지명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2006~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09.12.30)
두산 베어스(2009.12.30~)
응원가 루팡 3세 Ost 《Super hero》

1.1. 아마추어 시절

동산고 2학년까지는 평범한 투수였으나 3학년부터 경인권에서 수위를 다투는 좌완 투수로 꼽혔으며, 연고 구단인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2차지명으로 밀려나 현대 유니콘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은 후 인하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쯤되면 완벽한 인천 홈보이.

그리고 대학에 진학한 이현승은 충실히 웨이트에 전념하며 체중을 거의 10kg 가까이 불리면서 130km 중후반대에 그치던 구속을 최고 140km 후반대에 이를 정도까지 끌어올리며 장원삼과 함께 최고의 대졸 좌완 투수로 꼽히게 된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던 현대 유니콘스로서도 이현승을 놓칠 수는 없었고, 1억 8,000만 원에 이르는 막대한 계약금을 안기며 이현승을 입단시키는 데 성공했다.[1]

1.2. 2008년까지의 이현승

입단 첫 해살도 안찌고 참 잘생겼던 시절 병풍으로 인해 좌완 공백에 시달리던 현대 유니콘스의 좌완 불펜으로 기용된 이현승은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등판하며 19홀드를 기록하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는 먼지나게 두들겨 맞으며 바로 버로우.(...)

2008년 전반기 불펜과 선발을 오가던 이현승은 후반기부터 로테이션에 확실히 정착하며 상당한 호투를 보여주는데, 2008년 9월 23일 두산전 2.2이닝 9실점만 아니었어도 더 나은 성적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2009년이 밝았다.

1.3. 2009년, 에이스로 거듭나다

2009년 4월 4일 첫 선발 등판부터 이현승의 질주가 시작된다. 전반기를 끝낸 이현승의 성적은 11승 6패 3.15에 114.1이닝 피칭. 에이스 장원삼의 시즌 아웃과 김수경의 부진, 어쩔 수 없이 스윙맨을 오가야 했던 황두성 등으로 인해 확정되지 못한 로테이션을 떠받드는 에이스 노릇을 한 이현승은 히어로즈 팬들에게 있어 일종의 희망이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후반기, 첫 풀타임 선발로서의 시즌이었기 때문인지 이현승은 완전히 꼴아박았다. (...) 정말이다, 말 그대로 꼴아박았다. 2승 4패 6.31의 초라한 성적.[2] 전반기의 에이스가 그리 되리라고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기에 팬들은 실망보다는 위로를 보냈다. 이현승은 다음 해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1.4. 두산 베어스로 이적

2009년 12월 30일, 이현승은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된다. 10억 원의 이적료와 동산고등학교 후배 좌완투수인 금민철을 상대로 해서.[3] 히어로즈 팬들은 장원삼/이택근/이현승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된 데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두산 베어스의 팬들은 내심 즐거움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4] 다니엘 리오스 이후 확실한 이닝 이터가 부재했던, 흑역사로 가득 찬 좌완의 역사를 가진 두산 베어스 팬들로서는 150이닝을 소화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한 좌완 이현승의 영입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발 이현승은 두산 베어스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까웠다. 당시 이현승은 아직 미필이라 아시안게임 대표에 뽑혀야 되는 부담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만 강했을 뿐 선발로서 완벽하게 개죽을 쑤고 말았다. 결국 그 해 부진했던 지승민을 대신하여 좌완 불펜으로 밀려난 상태. 그나마 불펜에서 좌완 메리트로 어느정도 던져 주지만 안정감을 주지 못해 두산이 고창성정재훈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진한 피칭으로 인해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조차 들지 못해 군 입대가 확정됐다. 그래서 야구팬들은 10억짜리 군인을 데려왔다고 조롱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0년 9월 3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1차전에 이어 베스트셀러를 집필하신 정작가에 이어 팀이 스코어 4:1로 10회초 1사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⅔이닝 15투구수 1피안타 1볼넷을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스코어 4:1로 졌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2010년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2:2인 5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⅔이닝 21투구수 2피안타 1몸에 맞는 공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6회초에 1점, 9회초에 8점을 뽑아 스코어 11:4로 이겨서 이현승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현승은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⅓이닝 3피안타 1볼넷 1몸에 맞는 공 무실점, 1승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인 6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3⅔이닝 57투구수 1피안타 1몸에 맞는 공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날은 장원삼도 삼성의 마지막 투수로 나와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후 삼성이 11회말에 박석민의 끝내기 내야 안타로 스코어 5:6으로 이기면서 승리투수가 되었기에 이 두 투수의 호투를 본 히어로즈 팬들은 그저 피눈물을 흘렸다.

이현승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나와서 7이닝 5피안타, 3볼넷, 1몸에 맞는 공, 11탈삼진,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29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이현승은 2010년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7경기에 등판하여 9⅓이닝 8피안타 4볼넷 2몸에 맞는 공 11탈삼진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0.96, 1승을 기록하여 비록 페넌트레이스 때는 대차게 말아 먹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밥값을 하였다. 그럼 뭘 해,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는데

시즌이 끝나고 이현승이 2011년에 예정되어 있던 군 입대도 미루고 부활을 위해 이를 갈고 있다고 했지만 잘 될지는 미지수였다. 왜냐하면 롯데 자이언츠만큼은 아니더라도 두산 베어스 투코진도 엉망인 걸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2012년까지 참았으면 스승인 정명원이 올 수 있었는데…ㅜㅜ

2011년 8월 31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2:2 동점 연장전 상황에서 등판하여 2점 홈런을 쳐맞고 오늘의 역적으로 등극했다. 이것만으로 까일 판인데 홈런 쳐맞은 후 덕아웃에서 벤치에 다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미치도록 까이고 있다. 결국 2011년에도 부진했다.

2011 시즌 종료 후 상무에 합격하여 2013년 9월에 제대했다. 그러나 제대를 5개월 앞두고 2013년 4월 토미 존 서저리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당연히 2014년 시즌 중에야 복귀가 가능하다고 했다.

10억 먹튀의 임팩트와 정규 시즌의 극심한 부진으로 인해 돡갤 등의 두산 베어스 팬커뮤니티에서는 그가 '현퀴(현퀴벌레)'로 불렸다.

토미 존 후유증으로 2014 시즌 중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2014 시즌 전 연습경기에 등판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1이닝 1실점했다. 무사 2-3루를 만들고 땅볼로 1점만 주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1.5. 2014 시즌

4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1차전에 구원 등판하였지만, 2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2실점하고 아웃 카운트는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내려와야 했다.

4월 5일에는 한술 더 떠서 아웃 카운트를 잡지도 못하고 3실점을 했다. 시즌초라 섣부른 판단일수 있지만 이쯤되면 이혜천이 다른사람으로 환생한 수준.

위에서 보듯 시즌 초에 삽을 푸고 실점을 하며 말아먹는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4월이 지나도록 승리조와 추격조 사이에 애매하게 껴서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에 가리지 않고 등판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시기 평균자책점은 6.14로 높은 편이었으나 4월을 지나면서 이혜천모드에서 벗어나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조금씩 이기는 경기에 주로 등판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역할은 윤명준과 더불어 6,7회를 막는 역할과 상대 타순이 좌타자일 때 구원등판하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6점대이던 평자책도 3점대로 낮아지며 5월 17일까지 2승 4홀드 ERA 3.21을 기록 중.

그러다가 5월 24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 아웃카운트는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2실점하며 불을 질렀다. 그 다음날 25일에도 이용규를 잡기 위해 표적등판했으나 볼넷을 내주고 강판당했다.

29일 KIA전에 등판, 0.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다.

30일 롯데전에 8회 등판. 좌타인 손아섭과 히메네스를 잡기 위한 표적등판이었다. 그 결과 10구만에 손아섭을 삼진으로, 히메네스는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며 승리를 챙겼다.

6월에도 변함없이 경기 후반 상대 좌타 라인을 봉쇄하러 줄곧 등판했다.

6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8회 등판한 오현택이 나바로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가자, 2번 박한이, 3번 채태인, 4번 최형우의 세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등판했다. 결과는 박한이 희생번트, 채태인 삼진, 최형우 좌익수 플라이. 경기는 칸투의 홈런포와 니퍼트의 호투 덕분에 6:4로 승리, 시즌 7홀드를 올렸다.

1,2점차로 이기거나 지고 있는 접전일 경우 8회 즈음해서 좌타자가 1~3명 정도 포진해 있는 타순이 되면 거의 매번 등판해서 좌타자들을 저격하고 내려간다. 혹자는 잘던지는 이현승이 1타자만을 상대하고 내려가는 게 아쉽다고 하기도 하지만, 등판 횟수가 많고 1이닝이나 그 이상 막는 경우도 종종 나오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한 건 사실.

1.6. 2015시즌


스프링캠프에서 5선발로 낙점되었으나, 시범경기에서 손가락 미세 골절상을 입어 재활까지 최소 2~4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선발로서 많은 준비와 노력을 했을 본인도 낙담이 크겠지만 팀 입장에서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대체 5선발 후보로는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진야곱 선수로 정해졌다.

패넌트레이스에서는 주로 불펜에서 뛰었는데, 시즌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포스트시즌에서는 당초 믿을 불펜이 부족하던 두산에서 가장 훌륭한 불펜으로 거듭나 팀의 천금같은 우승에 이바지하였다.

1.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6 현대 유니콘스 70 40⅓ 2 0 0 19
(3위)
3.79 44 16 43
2007 45 22⅔ 1 2 0 5 7.15 33 9 1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우리 히어로즈 40 120 6 8 0 1 4.58 132 58 78
2009 히어로즈 30 170
(5위)
13
(4위)
10 0 0 4.18 161 71 120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10 두산 베어스 46 77⅔ 3 6 2 4 4.75 80 28 50
2011 50 74⅔ 3 5 4 6 4.82 85 31 50
2012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무
2013
2014 65 55 3 3 0 15 5.07 68 26 39
- 통산 346 560⅓ 31 34 6 50 4.61 603 239 394

2.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부천 FC 1995 No.88
이현승 (李弦昇 / Lee Hyun-Seung)
생년월일 1988년 12월 1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수원시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신장 172cm
등번호 88번
프로입단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2006~2009), 59경기 7골
FC 서울 (2010~2011), 1경기
전남 드래곤즈(임대) (2011), 24경기 3골
전남 드래곤즈 (2012~2014), 78경기 3골
부천 FC 1995 (2015~)

2.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수원공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전북 현대 모터스 최강희 감독의 스카웃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5],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 골을 넣으며 K리그 역대 최연소 득점 기록[6]을 세웠고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2.2.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의 활약

2006년 당시 K리그 역대 최연소 골기록과 클럽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주목을 받게 되며 U-20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2007 U-20 세계 청소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U-20 국가대표팀에서는 이상호이청용에게 밀려 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하며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2007년에는 2년차 슬럼프에 빠지며 활약이 미미했다가 2008년부터 기량이 다시 살아나며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데 기여를 했고 2009년에는 하대성과 루이스, 서정진과 주전경쟁을 하는 와중에서도 그럭저럭 활약을 했다.

전북 팬들의 이현승에 대한 중론은 '예상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라는 평.

2.3. FC 서울 이적 후

2009년 전북 현대 모터스는 우승했지만 이현승은 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고 결국 하대성&이현승과 우연&승용을 바꾸는 2:2 트레이드 형식으로 FC 서울로 이적했다. 하지만 FC 서울에서도 2010시즌 소속 팀이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처럼 구경만 해야했다.

2.4. 전남 드래곤즈

그러던 중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새로 부임한 해성 감독의 요청으로 1년 임대를 오게 되는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전남으로 완전 이적하여 현재 전남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2.5. 부천 FC 1995

2015시즌 부천 FC 1995로 이적하였다.


3. MBC 기상캐스터


생년월일 : 1985년 2월 9일
키/몸무게 : 162cm, 46kg
학교 :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사시기 : 2010년 9월
MBC의 기상캐스터로 활동 중이며 글레머러스한 몸매로 많은 남자팬들을 거느리며 박은지가 떠난 기상캐스터계의 새로운 여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3년 여름에 커플이 되었다. 남자팬들은 멘붕

4. 전 프로게이머

삼성전자 칸 설립 멤버인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주 종족은 랜덤 - 프로토스. ID는 ggon.

랜덤 플레이를 한 마지막 선수로 라스트 랜덤이라는 별명이 있다. 정확히는 상대에 따라 상성종족을 선택해 플레이하는 선택랜덤.

프로게임리그 태동기에는 그래도 제법 활약했고 마지막 랜덤유저라는 점 때문에 은근히 인지도가 높았던 선수. 거기에 4차원적 외모와 성격 때문에 컬트하게 인기가 있기도 했다.[7] 삼성전자게임단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던(...) 시절에는 프로리그에서 팀의 주력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프로토스로 종족을 고정했지만 팀 내에 강력한 프로토스 선수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후 군복무 문제 등의 이유로 소리소문 없이 은퇴. 개인리그에서는 듀얼토너먼트나 마이너리그에 여러 차례 진출했지만 마지막까지 본선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송병석?

서지훈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한다. 실제로 서지훈과 같은 YG클랜에 적을 두었던 적도 있다.

황영재 해설의 친구이다.

5. 영화감독


1961년생. 영화감독. 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그대 안의 블루(1992)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
시월애(2000)
여섯개의 시선(2003) 제작지휘
이공(2004)
시선1318(2009)년
푸른소금(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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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장원삼은 2억 5천만원을 받았다. 11라운더가 출세했네 어허라디야
  • [2] 심지어 한 번은 9-0의 리드 상황에서 한 회에 7점이나 실점(...)한 적도 있었다. 팀은 결국 한화에게 11-9로 패하며 최다점수차 역전 타이기록의 희생양이 되었고 이 날로 히어로즈의 마지막 남은 4강의 희망마저 사라졌다. 여담으로 이 날은 정민철의 은퇴식 날이었다.
  • [3] 그나마 지금 생각해 보면 두산 베어스는 완전 대인배였다.
  • [4] 두산이 이런 소위 돈질을 하는 것을 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현금 10억을 실제로 주고 트레이드한 것은 뻥이고, 돈 없는 히어로즈가 서울 연고 가입금을 두산과 LG에 내는 대신 선수 하나씩 무료 증정한 걸로 모두가 믿고 있다.
  • [5] 2006년에는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다.
  • [6] 17세 4개월 26일
  • [7] 특히 그가 팬까페에 직접 쓴 글들이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