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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근

last modified: 2015-04-08 12:14:5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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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No.29
이택근(李宅根)
생년월일 1980년 7월 10일
출신지 부산광역시[1]
학력 배정초-대천중-경남상고-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24번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3~2007)
서울 히어로즈 (2007~2009.12.30)
LG 트윈스(2009.12.30~2011)
넥센 히어로즈(2012~)
등장곡 The Prodigy & Tom Morello - One Man Army
응원가 활밴드 'Forever Korea' [2]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2번(2003~2004)
멜퀴 토레스(2002) 이택근(2003~2004) 이보근(2005~2007)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1번(2005~2007)
장교성(2004) 이택근(2005~2007) 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9번(2008~2009)
팀 창단 이택근(2008~2009) 애드리안 번사이드(2010)
LG 트윈스 등번호 29번(2010~2011)
로베르토 페타지니(2008~2009) 이택근(2010~2011) 임찬규(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9번(2012~)
윤지웅(2011) 이택근(2012~) 현역

2006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병규(LG 트윈스)
리 서튼(현대 유니콘스)
제이 데이비스(한화 이글스)
이택근(현대 유니콘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이용규(KIA 타이거즈)
심정수(삼성 라이온즈)
이대형(LG 트윈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2009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카림 가르시아(롯데 자이언츠)
김현수(두산 베어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이택근(넥센 히어로즈)
김현수(두산 베어스)
박용택(LG 트윈스)
김강민(SK 와이번스)
김현수(두산 베어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역대 주장
강병식(2011~2012.7) 이택근(2012.7~) 현역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2.2. 2010 시즌
2.3. 2011 시즌
2.3.1. 11 시즌 후
2.3.2. FA 시장 역사상 최고의 반전
2.4. 2012 시즌
2.5. 2013 시즌
2.6. 2014 시즌
2.6.1. 포스트시즌
2.7. 2015 시즌
3. 기타
4. 역대 성적

1. 개요

넥센 히어로즈외야수1루수. (우투우타) 넥센 히어로즈의 주장이자 중심타선의 시작.
넥벤져스에서는 50억 갑부를 맡고 있다. 본격 50억짜리 유리몸
KBO 통틀어 유일하게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이다.

넥사스 레인져스불꽃클린업 L-P-GL을 맡고 있다.


이택근의 타격, 주루센스와 훌륭한 송구능력을 알수있는 하이라이트 영상

빠른 발, 영리한 플레이, 10홈런 언저리는 기록해주는 괜찮은 장타력, 항상 3할대의 정교한 타격이 장점이며 포수 출신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강견이다. 또한 주루 센스도 좋은데 특히 투수와 포수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하는 도루가 일품이다.
20130905 이택근의 산책 도루

그러나 외야에서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 중견수밖에 없고, 1루수의 수비가 그리 좋지 못한 점과, 2010년 이후로는 잦은 부상(고질적인 허리 부상) 등으로 풀타임 소화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받는다.[3] 또한 13년에는 선구안의 하락으로 ops가 많이 하락하였다...가 14년에 귀신같이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부활하였다! 이지풍 트레이너 코치의 적극적인 체력관리 덕으로 보인다.

2. 선수 생활

2.1.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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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상고 시절 김사율과 배터리를 이루며 팀의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유망주였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2순위(전체 2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고려대학교에 먼저 진학했다. 고려대학교에서 포수로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는 등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2003년에 졸업한 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현대 유니콘스에 계약금 2억 3천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데뷔할 때의 포지션은 포수였으나,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는 김동수, 강귀태라는 수준급 포수가 버티고 있어[4] 실질적으로 포수로 뛴 시즌은 루키 시즌뿐이었고 그 이후 1루수와 3루수를 오가다 2006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했다.[5] 다만 모든 외야 포지션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볼 수 있는 외야 포지션이 중견수뿐이다. 자신은 코너 외야가 더 어렵다고 한다. 이택근이 포수를 포기한 데에는 이택근의 포수로서의 스킬을 도저히 프로에서 써먹을 수 없다고 코칭스태프가 판단한 것이 큰 이유였다. 입단 이후 이택근은 현대 코칭스태프에게 "포구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못한 포수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2003년 입단 첫 해에는 갓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온 투수 이동학과 신인왕 경쟁을 벌였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포지션 문제로 잊혀질 수 있던 이택근은 중견수로 전향한 이후, 2006~2009년까지 4연연속 3할을 넘는 타격을 보여주면서 팀의 주전 중견수로 자리매김하고 국대급 외야수로 성장했다. 전향 초기만 해도 홈런과 도루수가 한자리였으나 점차 외야수에 적응되어 가면서 2009년에는 자신의 최다 홈런, 도루인 15홈런 43도루를 기록하며 골든 글러브도 수상했다.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케이스 중 성공적인 케이스.

기량을 인정받아 도하 아시안 게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하고,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면제 혜택도 받게 되었다. 팀원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매번 방을 돌아다니면서 에어컨을 끄고, 햄버거 셔틀도 마다하지 않은 모습, 사실 경기에 거의 나서지 않는 후보였기에 뒤에서 헌신 불펜 포수가 부족할 때 불펜 포수를 보는 모습[6]에서 호감을 느낀 팬들이 적지 않았고, 이 때부터 비로소 팬이 확 늘었다.

이렇게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잡는 것처럼 보였으나, 구단의 자금난 탓에 2009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 루머가 돌다가 2009년 12월 17일 병우, 박영복 + 현금 25억을 대가로 한 LG 트윈스로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다. 선수 팔기라는 논란 끝에 이 트레이드는 12월 30일 승인되었으며, 이로써 이택근은 LG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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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로 이적한 후 원래 포지션이었던 중견수는 깝대형이대형이 지키고 있고, 코너 외야나 1루수는 주 포지션인 중견수보다 수비 능력이 부족한 통에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하다가 시즌 초반 7경기를 뛰고 허리 통증을 이유로 2군으로 내려갔다. 이 부상을 두고 팬들로부터 "윤진서가 요물이다"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다(...). 실상은 2009 시즌을 마치고 무릎 수술을 받은 이후 페이스를 끌어올리려다 무리한 탓에 허리 상태가 나빠진 것이었다.

5월 25일 잠실 기아전을 앞두고 1군에 복귀했다. 수비는 계속 중견수로는 나오지 못하고[7] 좌익수 혹은 1루수로 출전, 야구에서 가장 쉬운 포지션이라지만 주 포지션이 아닌 탓인지 불안한 수비와 함께 2할 초반대의 빈타에 허덕이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지만...

박용택과 함께 후반 3개월동안 괴물같은 타율 상승폭을 보이며[8] 결국 10시즌을 타율 .303로 마무리. 역시 스탯근 어디 안간다.하지만 LG의 가을야구는 이미 하늘나라로... 여담이지만 이적 후 기아 타이거즈와의 시범경기에서 벤치에 있을 때 서용빈 코치에게 헬멧 쓴 채로 손으로 가격당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그냥 헬멧테스트.

이전의 프리에이전트(FA) 규정대로 라면 2012년 시즌 종료 후에야 FA 권한을 득템할수 있었지만 2011년 KBO 1회 이사회에서 대졸선수의 FA 연한이 8년으로 축소됨에 따라 2011 시즌을 부상으로 날려먹어도 FA 선언이 가능하게 되었다. LG 구단에서는 FA 연한이 아직 남은 이택근에게 저렴한 축의 연봉을 제시하며 상호 마찰이 있었는데, 이 연한 축소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이를 전해 들은 이택근의 반응은 "야~, 살다가 이런 행운도 오네요". 그리고 야갤에서는 이상황을 보면서 이장석의 괴물같은 매각이 또 빛을 발했다면서 찬양하였다(...).[9]

이 소식을 들은 넥센팬들은 다시 사오자라고 하고 있는 추세였다. 혀갤에서 '돌택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리고 2011시즌이 끝난 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3. 2011 시즌

시즌초 부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합류하여 그럭저럭 괜찮은 타격을 선보였더.

그러나 5월 13일 기준으로 타율이 0.270대로 떨어지고 연이어 찬물을 끼얹고 있다. 얜 또 왜이래? 5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멀티히트를 기록하면서 타격감이 살아났고 볼넷을 하나 추가해서 팀의 역전승의 단초를 마련해줬다.

그러나 그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 설상가상으로 허리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빠졌다. 언제 복귀할지 기약이 없다고 할 정도로 허리가 안좋단다. 2011시즌 홈런이 단 한개밖에 없을정도로 심각한 장타력의 저하와 도루의 실종은 이미 부상을 안고 뛰었단 얘기(...).

아무튼 두달여의 재활을 마치고 간신히 복귀, 작뱅과 손잡고 같이 돌아왔다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잠실경기 대타 출전을 시작으로 다시 경기에 나섰다. 4위권인 롯데와 SK와의 경기차가 5.5~6게임차로 벌어져 가을야구 진출이 다소 힘겨워졌지만 돌아온 이택근은 매 게임 맹타를 시전하며 팀의 활력소로 불어넣어 줬었다. 역시 명불허전 스탯근...

10월 2일 두산전에서 유원상의 볼이 오재원의 머리뒷쪽으로 날라가면서 오재원의 배트를 맞춰 오재원이 헬멧을 벗고 식빵거리면서 유원상에게 걸어가는중에 1루수비를 하고 있던 이택근이 총알같이 뛰어와서 오재원을 밀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97 4홈런 10도루 29타점(득타율 0.233)[10]으로 2010년의 득타율 0.241보다 더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영양가는 없고 타율만 관리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2.3.1. 11 시즌 후

시즌 후 10월 12일자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FA를 앞두고 있는 모 선수가 LG에서 100억을 주더라도 이 팀에선 못 뛰겠다(...)라고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모 선수로 이택근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11]

LG에 남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냥 이택근이 떡밥용 멘트를 했다는 설이 대세였다. 2011년 11월 14일 FA 1차협상에서 구단 제시액에 실망을 넘어 창피함을 느꼈다며 더이상 우선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대다수 팬들은 100억드립은 이택근이 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후에 스포츠서울에서 LG가 제시한 내용이 3+1년에 27억이라는게 알려지면서 LG구단은 할만큼 했다는 평을 받았다. 단, 옵션 부분에 대해선 일말의 언급도 없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LG에서 마이너스 옵션을 걸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그 후 나온 기사로는 3+1년 총합 18억, 옵션 9억이라 한다. LG 2년동안 이택근은 매년 40경기씩을 결장한데다 타율도 전형적인 스탯관리로 3할을 맞췄고 고질병인 무릎부상도 있기 때문에 LG입장에서는 돈 많이 써서 잡을 생각이 없었던듯.

LG구단에선 이택근이 50억 이하면 전화도 하지 말라 했다고 밝혔는데 상식적으로 롯데가 이대호에게 60억+a를 제시했는데 50억 드립쳤다면 제정신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하지만 KIA에서 원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봐선 이미 떠날 마음을 굳혀서 50억 드립 친 것일수도. 결국 엘지와의 협상이 최종적으로 결렬되어 사실상 타팀 이적이 확실시된 상태가 되었고 야구팬들은 이택근을 잡을 구단은 어디인지 주목하던 상황이었는데...

2.3.2. FA 시장 역사상 최고의 반전

2011년 11월 20일, 넥센과 4년 50억(보장 44억 + 플러스옵션 6억)에 사인하면서, 50억 드립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과 동시에 넥팬들이 바라던 돌택돌이 이루어졌다!!!!
총액으로는 2005년 심정수의 60억에 이은 두 번째, 그러나 순수 보장액으로는 심정수가 40억 이택근이 44억으로 역대 최고액이다. 여러모로 관련 커뮤니티는 충격과 공포의 상황.그러나 신영 언니한화 갔다... 가 결국 2013년에 넥센으로 돌아왔다! 이장석이 트레이드하면서도 이택근 트레이드를 가장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면 그 때문에 붙잡은 듯. 패닉 상태에 빠진 건 당연히 LG 트윈스 쪽. 가봐야 어딜 가겠냐고 여유있게 나왔다가, 결과적으로는 서울 입성비 퉁치고 2년 동안 재활센터, 병원비 대주고 다시 돌아가는 꼴이 됐으니 뒷목을 안 잡을 수가 있나...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FA계약 성사 직전 김대우, 윤지웅, 고종욱 등 2011년 넥센에서 활약한 유망주들이 대거 군 입대를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점에서 이미 이택근의 FA는 사전협의가 되어 있었고 위 선수들은 보상선수 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위해[12] 미리 군대를 보내버린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모두들 빌리장석에게 당했다는 반응. 오오오!! 희대의 장사꾼... 매복의 독을 시전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13] 결국 LG는 보상선수로 군입대하는 윤지웅을 지목하게 된다.

가격 자체는 오버페이라는 평이 대다수이지만 원래 이택근이 떠날 때 LG가 현금 25억을 줬다는 걸 감안하면 준수한 영입이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이미지 반전도 게다가 당시 트레이드 때 논란이 되었던 뒷돈이 정말로 있다면 넥센 입장에서는 얼씨구나 좋다가 되는 것이며, LG 입장에서는 야 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가 돼버리는 충격적인 상황.
이에 대한 박동희의 이장석 인터뷰도 있으니 읽어 보면 좋을 듯. 넥센 이장석 대표 “이택근은 트레이드용? 한심한 소리다.”

이적 후 인터뷰에서 삼성 외 모든 구단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잠실 유학 드립도 # 우선협상기간 종료 후 자정 넘어 제일 먼저 연락한 구단이 넥센이었고 이장석 대표가 직접 전화한 것도 인상깊었다고. #

그리고 영입 기념으로 공홈에 팝업이 떴는데 생김새가 영 나이트 찌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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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파. 이거 무슨 짓이야!!!

그 이후 2013년 FA시세 폭등이 이택근 50억으로 인해 생겼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택근은 넥센에서 50억 이전에 기아와 롯데에서 40억을 준비했다고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상황이었고 넥센이 프렌차이즈대접+구단 이미지 세탁으로 10억을 더 준것이기 때문에 명분이 있어서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2013년 FA 거액을 받은 야수중에 이택근보다 누적 성적이 좋은 선수가 없다. 비교[14]

한편 2012년 김주찬의 경우에는 기아가 명분도 없이 그저 김응룡 감독이 말한 50억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한 것 때문인지 그냥 50억에 계약을 해버렸다. 정확히는 58억그 이후 여러가지 상황[15]으로 인해 FA값이 오른것이다. 그리고 2013년 FA계약으로 KIA 타이거즈가 제대로 호구 구단임을 증명해냈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2011년 이택근의 계약 이후 fa시장이 과열되고 몸값이 치솟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김주찬의 50억 또한 김응용감독의 발언 이전에 이미 이택근을 기준으로 삼아 50억 근처가 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실가치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 이후 이제 웬만한 선수는 50억을 기준으로 삼는 fa시장이 되었다. 이택근의 계약이 50억이라는 액수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을 깨는 계기가 되고, 김주찬이 재확인했으며, 이종욱 이용규 등이 줄줄이 50억 이상을 받으면서 시장에 그 액수를 정착시켰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2.4. 2012 시즌

넥센으로 다시 돌아와서 팀의 중견수와 3번 타자를 맡았다. 사실 돈값을 따진다면, 일단 4월달 성적은 썩 좋은 상황은 아닌 편. 하지만, 높은 득점권 타율과 도루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팀 타선의 구심점 자체가 없던 넥센 입장에서는 팀 타선의 구심점[16][17]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덧붙여서 온갖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게 된 선수 중 하나가 돌아왔다는 것으로도 넥센 팬들에게는 감격 그 자체.

그런데 12시즌 LG와의 경기마다 야유가 쏟아졌다 시범경기부터 시작된 야유가 424 대첩에서 절정에 달았다. LG팬들의 야유는 LG팬 생각에는 LG 나름대로 후한 제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FA협상이 결렬된 것에 대한 분노와 인터뷰에서 LG팬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대인기피성향이 생겼다는 발언에서 온 서운함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야유를 보낸 것 자체는 팬으로서 일면 이해가 가는 행위이지만 문제는 야유에 그치지 않고 도를 넘어서는 비난이 뒤따랐고 심지어는 인신공격까지 이루어 졌다는 점.
다만 선수 스스로 유학드립을 친것도 감안해야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포화 속에서도 야유를 무색하게 하는 3안타 2타점을 기록, 424 대첩을 만드는데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426 대첩에서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확인 사살.

5할에 달하는 득점권 타율과 준수한 타율, 출루율을 보여주며 넥센 타선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다. 팀 타선 전체에는 준수한 우산이 하나 씌워진 셈. 넥센 타선의 강화에 있어 박병호라는 거포의 활약과 강정호의 재도약 외에 이택근의 존재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5월 첫 주 동안 24타수 1안타를 치며[18] 극히 부진(그동안 팀은 1승 1무 4패)했으나 LG를 만나면서 귀신같이 부활, 5월 9일 현재 타율 0.298, 허나 대 LG 타율 0.588...혹자는 LG에서 부진한 이유가 다 있었다고도 하였다.[19]

혹자는 2011년 탈쥐효과의 산증인이 박병호라면 2012년의 산증인은 이택근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 심수창은?

5월 23일, 탈쥐효과를 온몸으로 입증이라도 하듯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내야안타와 솔로홈런을 추가하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친정사랑은 어쩔 수 없었는지 게임 중반 타구판단을 잘못하여 1점을 헌납하는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택근의 활약에 힘 입어 넥센은 2008년 팀 공식 창단 이래 첫 1위를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6월에 접어들며 타율과 득점권 타율 등 많은 부분에서 부진을 보였는데, 검진 결과 손바닥 부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6월 6일부터는 선발에서 빠졌다.

6월 9일에는 대타로 나와 3타석에 나왔으나 무안타. 하지만 12회말 4:3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대수의 타구가 중견수 쪽을 향해 날아가자 펜스까지 죽어라 뛰어서 나이스 캐치를 선보이며 경기를 마무리, 문자 그대로 팀을 구원하는 수비를 해냈다.그리고 불안불안하던 오재영도 구했다.
동영상 링크

손바닥 부상이 심해져 1주 결장한 후 6월 26일부터 다시 출장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결장하는 동안 침체된 타선으로 인하여 고생하던 소속팀은 6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1회에만 5득점하는 등 방망이가 불을 뿜으며 13:3으로 크게 이겼다. 그리고 6월 27일 경기에서 그는 적시타를 치고 도루를 성공시키고 보살을 기록하는 등 원맨쇼를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정수빈을 홈에서 아웃시킨 보살은 두산의 추격의지를 꺾어버리는 중요한 순간이었고, 그는 이 경기에서 MVP로 선정되었다.

2군에 오래 내려가 있던 강병식을 대신해 7월 11일, 넥센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7월 24일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후반기 첫 경기에서 투런홈런을 쳤다. 시즌 6호 홈런. 이 날 최종 성적은 4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

FA 총액 50억의 임팩트가 커서 뭔가 할 때마다 수식어로 50억이 붙는다. 50억 땅볼, 50억 삼진, 50억 테러 등등. 초반에는 50억에 맞지 않는 저조한 타율로 우려를 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기 페이스를 찾고 넥센 공격을 이끌고 있다. 6월 말에는 타율을 3할 언저리까지 끌어올렸다. 본인 또한 돈값을 하기 위하여 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여 출전하는 등 나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넥센 타선의 리딩 히터로 뛰면서 넥센에 우산 효과를 씌워주고 있지만, 이 상황은 때론 넥센에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이택근이 부진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넥센 타선 자체가 점수를 못 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특히 이택근이 주자를 여럿 두고 찬물이라도 끼얹는 경우에는 더더욱. 이런 날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잔루에 시달리다가 패배하거나, 그냥 아예 상대팀 투수들에게 말려버리거나, 역전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났다. 그 정도로 넥센 타선에서 이택근의 비중은 크다는 말.

2012년 8월 후반부터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다시 제외되었다. 50억짜리 유리몸 팀 또한 DTD를 제대로 당했고, 그 또한 8월 24일 이후 1군경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2.5. 2013 시즌

이택근/2013년 항목으로.

2.6. 2014 시즌

3월 30일 SK 전에서 시즌 1호 홈런을 때려내었다. 이는 넥센의 시즌 1호 홈런이기도 하다.

4월 5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7회초 무사 만루 강정호의 적시타 때 재치있는 주루플레이로 홈에서 세이프, 동점 득점을 올렸다.
이택근 : 나의 개나리 스텝을 봐라!!
각종 변형 움짤도 쏟아져나왔다. 복고풍 움짤 스텝밟는 주장님 백스텝의 달인

4월 9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중견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석 4타수 2안타 2홈런 1볼넷 4타점 2득점을 올려 팀의 스코어 7:10 승리를 견인하고 이날의 수훈선수가 되었다. 직관한 혀갤러는 "주장님 웨이트 했다더니 쿠크다스 몸에서 웨하스로 바뀌신 듯, 가루는 날리지만 잘 부서지진 않을 것 같다"는 후기를 남겼다.

다음날인 4월 10일 기아전에서도 멀티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번 시리즈 12타석 9타수 5안타 2홈런 3사사구라는 경이적인 출루율을 보여주며 절정에 달한 타격감을 과시했다.

4월 15일 LG전에서 0-1 뒤진 6회초 2사 상황에서 우규민을 상대로 시즌 5호 홈런을 기록하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이 날 홈런으로 이택근은 시즌 초반 잠시 뿐이긴 홈런 1위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오오 택븨 오오

이후 4월 타율 .243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2번 타순으로 주로 출장하면서 다시 타격감을 회복해가는 모습이다.[20]

5월 8일 NC전에서는 박병호와의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였다. 이후 동점 상황에서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기록한다. 이날 1100경기 출장 기록도 세웠다.

5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5:0으로 뒤진 상황에서 3점 홈런을 기록, 이후 강정호의 만루포와 함께 이날 역전승의 주역이 되었다. 이날 넥센이 득점한 7점이 바로 이 두 방의 홈런으로 나온것.

6월 6일 두산전에서는 6타수 무안타로 극악의 타격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다음날 3안타를 치면서 할 일은 했다.

6월 7일 현재 9홈런 44타점으로 자신의 전년도 홈런 기록을 이미 넘어섰으며, 희생플라이 역시 8개로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떨어졌던 선구안이 회복된 덕분일지도. 타율은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지만 유한준과 마찬가지로 장타력이 크게 늘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2일 SK전에서 김민성이 1루 주자로 나가있을 때, 1루수 박정권이 멀리 떨어져있는 걸 보고 덕아웃에서 리드폭을 늘리라고 하던게 카메라에 잡혔다. 덕분에 김민성은 평소같았으면 3루까지밖에 못 갈 것을 홈까지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이날 본인도 3안타를 치면서 활약.

6월 26일 삼성전에서는 공격면에서도 4안타를 치며 활약했고, 수비에서도 여러 차례 까다로운 타구를 안정감있게 처리했다. 타율도 .296으로 어느덧 3할을 바라보게 되었다.

6월 27일 두산전에서 6회 말 대타 박건우의 2루타성 타구를 포구하려다 땅에다가 내리꽂았다.택시카 덕분에 타자는 그라운드 홈런. 안습



7월 1일 목동 롯데전에서는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로 출루, 이후 공이 뒤로 빠질 때 모두들 3루에서 멈출 거라 예상했지만 적극적으로 홈까지 내달려 달아나는 점수를 얻어냈다. 해설위원들도 저런 게 바로 기록에는 남지 않지만 주장으로서 솔선수범 팀을 이끄는 허슬플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7월 2일 목동 롯데전에서는 멀티히트를 기록하면서 3타점을 쳐냈다. 2번 타자로 나오면서도 야금야금 타점을 먹다보니 100타점 페이스가 되었다. 흠좀무..

7월 8일 청주 한화전에서 폴 근처로 넘어가는 타구를 날렸고 비디오 판독을 통해 홈런이 인정되면서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하였다. 팀은 17:3으로 강우 콜드 승리.

7월 9일 청주 한화전에서도 어제에 이어 중견수 쪽 담장 위 구조물을 맞추는 타구를 쳤고, 이 역시 비디오 판독으로 홈런 인정이 되었다. 시즌 11호.

7월 27일 문학 SK전전에서는 6:4의 점수에서 이한진 투수의 3구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기는 라인드라이브 홈런을 때려냈다. 시즌 13번째 홈런.

7월 30일 목동 한화전에서는 승부를 결정 짓는 1회 선제 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시즌 14호. 이후 담장 상단에 맞는 3루타와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사이클링 히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3루 땅볼로 물러나면서 아쉽게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날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8월 9일 목동 삼성전에서는 1회 말 솔로 홈런(15호) 포함 3안타 3타점 2득점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 최다 타점(66타점, 2009년·2013년)을 넘어섰다.

유한준이 임창용에게 손목 사구를 맞고 결장하는 동안 3번 타순으로 종종 나오고 있다. 과거의 LPG 타선이 다시 부활한 셈?

8월 11일 목동 삼성전에서는 2홈런(16호·17호)을 치면서 활약했지만 팀은 1점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자신의 커리어 최다 홈런(15개, 2009년)를 갱신했다.

8월 14일 목동 두산전에서는 3회 말 투런 포(18호)를 쏘아올렸다. 멀티히트도 기록.

8월 19일 목동 LG전에서는 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8월 22일 마산 NC 2차전에서는 1회 초 솔로홈런 포함 멀티히트를 치면서 분전했으나 팀은 1점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쉽게 패했다.

8월 29일 대전 한화 2차전에서는 홈런 포함 무려 4안타를 때리면서 3타점 4득점으로 맹활약했으나 불펜진의 방화로 한화에 패배했다.

8월 31일 대구 삼성 2차전에서는 2안타 3타점으로 팀의 7:0 승리를 견인하면서 개인통산 1200안타를 달성하였다. 역대 48번째.

어째 좀 내용이 대충대충 기록되고있다(...) 무한준은 아예 올해 항목이 분리됐는데 그쪽하곤 연봉하고 기대치가 다르잖아

9월 4일 목동 NC 1차전에서는 오랜만에 1번타자로 선발출장했다. 사구 두개를 맞으면서 테이블세터의 본분에는 충실했다(...).쿠크다스 깨질라

9월 9일 한화전에서 홈런 포함 4개의 안타를 때려내면서 활약했다.

그러나 이후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42타수 5안타 타율 .119로 부진했다. 이로써 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306 21홈런 91타점 87득점 11도루 출루율 .386 장타율 .526. 지난 시즌 하락한 선구안을 되찾으면서 커리어 첫 20홈런과 장타율 5할을 포함한 각종 개인 기록을 갱신했다. 줄어든 도루 수가 아쉽지만 이쯤되면 나름 커리어 하이 시즌.

2.6.1. 포스트시즌

10월 26일 미디어데이에 염경엽감독, 강정호와 같이 참석하였다. 플레이오프가 몇차전 까지 갈것 같냐는 물음에 강정호와 같이 손가락 3개만을 펴 3:0으로 끝내버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었다. 또한 미디어데이 끝에 포부를 말하는 강정호에게 주의를 주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였다.

그러나 2번 타선에서 부진하면서 7번까지 내려갔으나 결국 포스트시즌 내내 타격감을 되찾지 못했다.

2.7. 2015 시즌

4월 3일 목동 SK 1차전에서 첫타석에서는 적시 2루타, 5회에는 우중간을 넘기는 홈런포를 쳐냈다.

4월 7일 잠실 두산 1차전에서 짧은 타구를 슬라이딩으로 잡아내려다 턱에 공을 맞는 실책을 범했다. 그래도 5회초에 투혼의 솔로포를 쳐냈다.

3. 기타

  • 이름 때문에 대표적인 별명이 만화 "로보트 태권 V"를 본뜬 택근브이. 한편으로 득점권 찬스나 주자가 있을 때에는 그다지 위압감이 없어서(주로 LG시절. 디씨 히어로즈 갤러리 내지 LG갤러리에서는 잉택근 혹은 스탯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있다.[21] 게다가 여자친구 윤진서와 속옷 광고를 찍은 이후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 팬티근(끈) 혹은 빤스근(끈)이라는 조롱섞인 별명도 생겼다.

  • 쥐찰청 LG에서 2년동안 열심히 부상당한 몸을 치료하고 몸을 추스려 슈퍼먹튀 이택근, (개)씹택근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한다. 특히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아예 금지어수준까지 올라갔다. 2년 동안 성적 못낸 것도 문제지만, 넥센 복귀 후에 유학드립, 팬들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 대인기피증에 걸렸다는 등의 무개념 인터뷰를 하면서 말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김상현처럼 말조심을 못해 욕먹는 케이스다. 2012년 LG와의 3연전에서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LG 관중 쪽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 넥센에 돌아온 뒤로는 50억에서 따 온 오시벅, 시벅이형,택주(장) 등으로 불렸다. 물론 못할때는 당연히 가차없이 까인다. 주로 LG시절에 만들어진 조롱섞인 별명으로... 팀 주전 중 나이가 있는 편이라 노친네라던가, 낡은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 영화배우 윤진서와 연인 관계였고, 둘이서 키스를 하는 사진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함께 속옷 화보도 찍은 적이 있다. 속옷 화보치고는 노출이 적은 편이지만 어쨌든 야하다. 구글에 검색하면 한방에 나온다. 2010년 11월 5일에 결별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사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여름에 깨졌다고 하는 카더라가 돌았는데 그것이 이제서야 기사가 난 것.

  • 2011년 11월 11일 슈퍼스타K3 결승전에 관람온 사진이 찍혀서 까이기도 했다. 도대체 왜?

  •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매우 존경하며, 그의 타격폼은 노마의 타격폼과 유사하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맷 켐프와 굉장히 유사한 면을 보인다. 둘 다 우투우타 외야수(것도 중견수!) 그리고 2000년대 후반의 전성기 그리고 유명 여배우와의 열애 및 갈라섬 등등. 그래서 켐프는 켐택근 또는 맷택근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그러나 류현진 해외진출 후 켐프가 삽질해서 맷진행으로 바뀌었다(...)

  • 2012년 12월 언론에 이택근이 2013년 1월에 재일교포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 갑자기 2014년 12월 7일에 한국인 치과의사와 1년 간의 열애 끝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네티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재일교포 여성과 약혼을 맺었다가 파혼되었다는데, 구단 측의 보도가 나오면 추가바람.

4. 역대 성적

  • 타자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3 현대 유니콘스 101 212 .278 59 11 0 4 17 26 2 11 .350 .387
2004 41 57 .211 12 1 0 2 8 9 0 5 .297 .333
2005 71 139 .331 46 9 0 2 14 20 2 19 .440 .439
2006 118 419 .322
(2위)
135 21 2 9 66 58 8 45 .396 .446
2007 116 438 .313 137 15 1 11 56 74 6 39 .398 .42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08 우리 히어로즈 110 372 .317 118 19 1 12 58 59 18 48 .398 .470
2009 히어로즈 123 456 .311 142 26 0 15 66 84 43
(3위)
64 .407 .46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10 LG 트윈스 91 337 .303 102 17 1 14 50 66 14 38 .377 .484
2011 85 317 .297 94 17 0 4 29 44 10 40 .377 .38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출루율 장타율
2012 넥센 히어로즈 94 345 .275 95 20 1 8 55 54 13 31 .335 .409
2013 123 477 .287 137 31
(1위)
1 9 66 73 29 39 .345 .413
2014 122 441 .306 135 32 1 21 91 87 11 51 .386 .526
통산 - 1195 4010 .302 1212 219 8 111 576 654 156 430 .379 .444

역대수상
연도 수상내용
2006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2009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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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장군 출신. 출생 당시에는 경상남도 양산군이었다. 참고로 기장군은 1995년 1월 1일부로 양산군의 해안지역 일부를 분할하여 부산광역시에 편입하면서 신설된 행정구역이다.링크
  • [2] 히어로 이~택근~ 히어로 이~택근~ 승리를 위~하여 오오오오오x2
  • [3] 외야가 과포화되어 이택근을 1루수로 쓸 수밖에 없었던 LG 시절에는 이것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 [4] 2002년 말 박경완SK 와이번스에 넘겨 주고 난 후 현대 구단의 구상은 강귀태와 이택근을 번갈아 기용하고, 이미 노쇠한 것으로 여겨지던 김동수를 백업 및 대타 요원으로 쓴다는 것이었는데, 강귀태가 2003 시즌 초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택근의 포수 수비가 시망 수준으로 드러나면서 김동수에게 기회가 돌아와 결국 김동수의 부활로 이어졌던 것. 즉, 시즌 시작 전에만 해도 SK에서 방출된 뒤 현대에 입단한 김동수는 퇴물 취급을 받았고, 강귀태는 그때나 그 이후에나 수준급 포수라고 봐 주기 어려운 선수였다.
  • [5] 경기 전 훈련때마다 간간이 포수마스크를 쓰면서 공을 받아준 적은 있다.
  • [6] 쿠바와의 결승전 때 강민호가 퇴장을 당하자 대신 올릴 포수로 이택근을 준비시키려 했으나... 진갑용이 햄스트링 부상이 있었음에도 스스로 나섰고, 결과는...
  • [7] 당시 이대형의 페이스가 3할대 중반의 몬스터급 활약이었던지라...뭐 결국 시즌 후반에 원위치를 넘어 바닥을 파고 들어갔지만.(...)
  • [8] 7월 0.299, 8월 0.325, 9월 0.431
  • [9] LG 트윈스넥센 히어로즈에게 이택근을 30억+서울입성금 20억 퉁치는 조건으로 영입했는데 만일 넥센이 2011 시즌후 이택근의 FA 보상금 9억을 주고 사오게 되면 물경 41억이 남는장사...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10] 부상당한 이대형보다도 득타율이 1리가 낮다.(...) 참고로 이대형의 11년도 타율은 0.249. 타점은 24타점.
  • [11] 혹은 송신영이라는 추측도 있긴 하다. 송신영이 트레이드 된 후에 LG 분위기가 안좋다고 언급한적도 있었고, 실제 시즌이 끝나자마자 FA신청후 폭풍처럼 한화 이글스 이적. 그러나 FA이적이후 해당 발언은 자신이 아니라고 억울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즉 이택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 [12] 군입대자도 보상선수로 받아갈 수는 있지만, 받아가 봐야 당장 2년을 못 써먹는다.
  • [13] 삼국지 시리즈 참조
  • [14] 윗쪽부터 김주찬, 이종욱, 이용규, 이택근 순서이다.짤방은 이용규와 이종욱 금액이 바뀌어있다.
  • [15] NC, KT 창단으로 인한 수요 증가, 류현진 포스팅비용으로 인해 한화 총알 장전.내가 김주찬보다 한게 뭔데! 난 못하기는 한데...
  • [16]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에서부터 오래 뛰었고, 커리어도 어느정도 있으며, 나이도 중간급. 이숭용이 자신의 은퇴이후 팀을 이끌 인물로 꼽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택근이었다.(다른 한 명은 정성훈)
  • [17] 이택근이 돌아오기 전까지 히어로즈의 구심점을 맡아줄 사람은 다들 한가지씩 부족한 상황이었다. 송지만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김민우는 커리어가 부족했으며, 강정호는 그런 역할을 맡기엔 아직 어렸다. 그외의 선수들은 외부출신(박병호, 허도환)이거나 커리어가 너무 부족했다.(오윤, 장기영, 유한준)
  • [18] 타율은 0.0417이었다. 0.417이 아니다!!
  • [19] LG로 가기 전에도 대LG전 타율이 유독 상당히 높았다. 반면 LG에 있었을 때 대넥센전 타율, 목동구장에서의 타율은 형편없이 낮았다. "엘넥라시코"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택근의 대 LG전 타율은 LG팬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좋았다. 이런 점 때문에 FA때 이택근과 계약해서 2군에 박아놨어야 됐다고 말하는 LG팬도 간혹 있다(...).
  • [20] 실제로는 3번 타순에서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로티노의 부상과 공격의 흐름을 위해서 2번 타순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 [21] 혀갤에서 주로 쓰던 표현이다. 쥐갤에선 훨씬 나쁜 별명들을 만들어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