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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last modified: 2016-04-12 08:09:38 Contributors


2002년 K리그 신인상
송종국(부산 아이콘스) 이천수(울산 현대 호랑이) 정조국(FC 서울)
2002년 K리그 도움상
우르모브(부산 아이콘스) 이천수(울산 현대 호랑이) 드밀손(전북 현대 모터스)
2005년 K리그 MVP
나드손(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천수(울산 현대 호랑이) 김두현(성남 일화 천마)

인천 유나이티드 No.10
이천수 (李天秀 / Lee Chun-Soo)
생년월일 1981년 7월 9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포지션 스트라이커, 윙어
신장 174cm
체중 65kg
혈액형 A형
가족 부모, 2남 중 막내, 배우자, 1녀
등번호 10번,14번
유스팀 부평동중학교 (1994~1996)
부평고등학교 (1997~1999)
고려대학교 (2000~2001)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CD 누만시아 (임대) (2004~2005)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임대) (2008)
전남 드래곤즈 (임대) (2009)
알 나스르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3~)
국가대표 79경기 / 10골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Contents

1. 개요
1.1. 약력(~2013년 초까지)
1.2. 2013 시즌
1.3. 2014 시즌
1.4. 2015 시즌
2. 게으른 천재?
3. 사건, 사고
3.1. 축구계의 풍운아
3.2. 임의 탈퇴 논란
3.3. 2013년 음주폭행 논란
4. 기타
4.1. 언론의 희생양(?)

1. 개요


역대급 재능을 가지고도 성숙하지 못한 멘탈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 한 노력하는 천재[1]

대한민국축구선수. 1981년 7월 9일생. 야구의 김병현과 더불어 안 좋은 의미로 풍운아로 유명하다. 부평동중학교 축구부 시절부터 이미 손꼽혀 왔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부평동중학교는 그 당시의 축구실력이 지금 까지 전해져 왔다 해도 믿기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인천 내에서 라는게 함정이겠지만 가끔씩 전국대회 우승도 보여줬다는게 장점.) 그러나 현재에는 공부를 못해서 일명 '똥통'(...)학교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현재 해당학교에는 중위권이 없다고 한다.[2]

한국 축구 역사상 손에 꼽히는 천재 선수로, 2002년에 한국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천수를 박지성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고 말한 바 있다. K리그 활동 당시 전성기 별명은 K리그의 사기유닛.[3]
그 사기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어 울산 현대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때문에 인천 유나이티드를 다룬 영화인 '비상'에서는 마왕보다 더한 악역(...)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누가 그 인천에서 이천수가 재기할지 알았으랴.

뛰어난 스피드와 발재간, 프리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4]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인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말디니 뒤통수 후려까기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긍정과 부정 양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래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다.

가끔 축구에 무지하거나 국가대표 경기만 보는 사람들의 경우 이천수가 무슨 실력이 있냐 국대 경기에서 좀 한다 하는 나라의 수비수 한 명만 앞에 있으면 뚫지도 못하고 백패스 하거나 어정쩡한 드리블만 한다 이런 식의 비방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최고의 윙포워드 중 한 명인 호날두조차 탑급 수비수가 붙으면 꽃게랑 놀이를 하기 일쑤고, 국대 경기에 나오는 수비수들 중 한다 하는 나라의 수비수들은 사실 다 일류 플레이어들이다. 즉 호날두가 그 앞에 서 있어도 꽃게랑 놀이를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 물론 이천수가 훨씬 더 많이 하겠지만, 국가대표 경기는 공을 그럭저럭 다루는 사람이 공격수를 맡고 공격 잘 못하는 사람이 수비수를 맡는 하는 고등학교 체육대회나 조기축구회가 아니다.
또한 체력과 활동량도 최상급. 단적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경기당 평균 필드 이동거리는 박지성보다도 많았다.

1.1. 약력(~2013년 초까지)

고등학교 시절 이미 전국구 선수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고교축구계는 명실상부한 부평고 천하였는데, 부평고 또래 선수인 이천수, 최태욱, 박용호 셋을 일컬어 부평고 귀각 3인중이라 했다. 여담으로 이들의 1년 후배가 김정우. 대회에서 부평고를 만난 순간, 너는 이미 죽어있다[5]
또한 이들 넷은 그대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서 뛰면서 8강을 달성했다.

1999년 청소년 대표팀 주전으로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방가방가 만두방가반두 컵[6]에 나가 준우승을 거둬들였다.이 당시 타이 올림픽 대표팀을 상대로 7:2 대승을 거둬들였는데 이 경기에서 4골을 이천수가 넣었다. 당시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까지 이기고 결승에서 일본 JFL(실업리그)팀에게 아쉬운 2:3로 마무리했지만 이천수는 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 및 대회 MVP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밀레니엄 특급" 이라는 별명까지 생기기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주전으로 오른 것은 2000년(당시 19세). 특히 시드니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2차전 모로코와의 경기 때의 일화가 나름 재밌는데, 전반 종료 직전에 한국이 페널티킥을 얻고 주장을 비롯한 팀내 고참들이 모여 누가 찰지를 정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누군가가 아무말 없이 공을 들고서 페널티 지역으로 걸어가길래 다들 황당해 하며 쳐다보니까 이천수였다. (…)[7]. 그리하여 이천수가 페널티킥을 찼는데 골키퍼의 선방에 걸려서 튕겨나온 볼을 다시 차넣어 1:0 이 되었고 그대로 결승골이 되면서 한국은 스페인과의 1차전 0-3 패배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넣었으니 망정이지 못 넣었으면 최소한 죽었을거다. 하지만 2승 1패를 거뒀음에도 골득실에 밀려 8강 탈락

이후 2001년 유벤투스 FC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

Lee_Real_Sociedad.jpg
[JPG image (Unknown)]

2002년 월드컵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3-4시즌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고 다음 시즌 누만시아로 임대되었으나 역시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 와중이었던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이란 원정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뽑아냈는데, 아직 A대표팀도 2무3패로 한번도 이기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대표팀을 통틀어 이란 원정에서 이겨본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도 출전하였으며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서는 0:3으로 뒤진 후반에 중거리슛과 페널티킥으로 2골을 혼자 만회했으나 끝내 패배. 경기 종료 직후 주저 앉아 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005년 울산으로 복귀했으나 바로 2005 K리그 MVP를 수상. 풀시즌 40여 경기를 소화한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17경기(정규시즌 14경기,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10골 7도움을 기록한 이천수가 MVP로 선정되었다. 이 시즌 울산은 수비와 조직력 면에서는 탄탄했지만 경기의 흐름을 바꿀 선수가 없었는데, 시즌 중간에 투입된 이천수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며 정말 리그의 수준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기에, 이 시즌 울산의 우승은 이천수가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즌 절반을 소화하고도 MVP에 선정될 수 있었다.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 토고전 프리킥 골을 비롯해 한국이 출전한 세 경기 모두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첫경기 토고전은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에, 두번째경기 프랑스전은 동점골을 넣은 박지성에, 세번째 경기 스위스전은 심판판정(...)에 온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경기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면, 2006년 국가대표팀의 실질적 에이스는 분명 이천수였다.

Lee_Feyenoord.jpg
[JPG image (Unknown)]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7-08시즌 송종국이 활약했던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했으나 여전히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 당시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면서 향수병이다 태업이다 말이 많았는데, 훗날 밝혀진 바로는 국내에서 사기를 당해 입단 계약금을 몽땅 날리는 바람에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8] 이적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창 적응해야 할 시간에 저러고 있었으니 네덜란드 언론이나 페예노르트 구단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결국 2008년 1년 임대로 K리그 수원으로 복귀했는데, 울산 시절 '사기 유닛'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인데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당하며 팀 전력에서 제외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축구팬들은 지금 당장은 네덜란드 진출 실패 여파로 이천수의 활약상이 저조하지만, 머잖아 심신을 추스리면 예전 기량을 되찾으리란 믿음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수원 코칭 스텝에게 항명 파동을 일으킨다. 부상을 핑계로 팀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 삼성 스포츠과학 지원실에서 재활훈련을 하라는[9] 팀의 지시조차 거부했다. 거기에 문민귀가 이천수에게 폭행당해 전치12주로 아주대병원에 눕게되자 결국 차범근 감독은 분노해 이천수를 임의탈퇴시킨다.[10]


2009년 초기에는 박항서 감독의 지휘 아래 예전 기량을 찾을 뻔했지만, 6월 후반 들어 계약서 조항 자작극이나 주먹다짐 등 평지풍파가 끊이지 않다 소동 끝에 임의탈퇴가 되어버렸다. 자세한 것은 문서 하단 전남 부분으로.

울산 현대 축구단 시절에는 김정남 감독체제의 공격의 핵이었다. 울산이 그저 수비를 단단히 굳히고 있으면 몇 안 되는 인원을 이끌고 나가 적의 진영을 붕괴시키고 골을 넣은 후, 그저 잠궈버리는 수비축구의 선봉장. 해외에서 돌아온 시즌에는 리그 절반만 뛰고도 울산에게 리그 우승을 가져다주고 본인은 리그 mvp를 차지한다. 반면, 수원 팬들에겐 애증이 섞인 선수. 비싼 돈을 주고 데려왔는데 제대로 활약도 못 하고 전남으로 가버려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 대단한 애증은 아닌 게 얼마 뛰지도 않았고 수원은 그런 선수들 트럭으로 담아도 트럭이 작으면 트럭이 비좁을 지경이다. 첨언하자면 이천수라는 선수에 대해서 '증'만 크게 가지고 있던 수원팬들이 막상 이천수가 수원에 오게 되니 자기 선수 욕하긴 뭐하고 '그래 뭐가 어쨌던 네 실력은 인정. 사실 우리가 욕했던 것도 네가 실력이 뛰어나서 질투한 것도 있다' 정도로 정신 위안(?)을 시전하며 멘탈 정리를 하던 와중에 문민귀 폭행 사건 후 임의탈퇴 되자 '아 그냥 꾸준히 욕할 걸 저딴 놈 뭐하러 받아들여줬지' 정도의 멘붕을 일으켰다. 애증이라기엔 애<<<<<<<넘사벽<<<<<<<증 정도의 비율이려나. 사실 저 '애'가 있는 지도 의문

전남으로 이적을 한 이후에도 여러가지 사건 사고에 휘말렸으나, 준수한 활약으로 역시 이천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2009년 6월 이천수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마는데... 그 과정이 복잡하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남에서 뛰는 도중 사우디 클럽인 알 나스르에서 이천수에게 오퍼가 왔다. 한창 6강 싸움 중이던 전남은 이천수를 잔류시키고자 했고, 이에 불복한 이천수는 전 소속팀 페예노르트와의 이면계약을 이유로 알 나스르로의 이적을 확정 짓는다. 이천수를 보내게 된 전남은 마지막으로 고별경기를 뛰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천수는 거부한다. 명목은 사타구니 부상이었으나, 이천수의 몸상태를 알고 있는 김봉수 코치가 이의를 제기하자... 이천수는 코치진과 맞짱을 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몸상태가 아니라 이적이 확정돼서 테스트 때문에 경기 안뛰는거라는걸 다 알고 있는 일이고 페예노르트에서 경기 뛰게 하지 말라고 공문까지 보냈는데 코치진이 일방적으로 성질낸것....맞짱이란 표현 보다 코치 쪽에서 컵을 벽에 투척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천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2군 캠프로 옮겼다는 반론 역시 있다.

이천수는 그날로 숙소를 이탈했고 전격적으로 알 나스르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그 후 이천수의 에이전트였던 김민재 대표의 이면계약은 없다는 폭풍의 기자회견이 나오며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이중계약도 아닌 거짓계약으로 이적을 한 이천수는 임의탈퇴 처분이 내려지지만...사우디에서 뛰게 되었으니 당사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듯 하다.[11]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천수는 알 나스르에서 임금체불을 이유로 다시 무단이탈 이후 J리그 오미야로 이적한다. 명불허전 이천수. 정말 이런 캐릭터도 드물다. 2011년 J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쟈에서 방출된 이후 2013년 초까지 무적 상태였다.

끊임없이 K리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으나, 임의탈퇴 조치를 한 전남구단은 입장 변화가 없다. 지금도 전남 구단과 이천수와의 위약금 문제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단은 프로연맹에서도 사인한 에이전트가 내야하는 것이기에 그 에이전트는 손해를 보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지 않는다는 기사가 있었고, 재판도 그리 진행되었다. 진짜 위약금이 발생할 상황이라면 계약당사자인 페예노르트에 물려야겠지만 문제가 없었고 그걸 이천수에게 물린다는 계약내용 자체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던 것이다.

K리그 복귀는 요원한 상황에서 이천수도 해외리그 재진출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잘 안되는 듯 하다. 2012년 7월 7일 QPR에서 아시아 선수를 영입한다고 공언하여 알싸등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천수가 아닌가 말이 있었지만... 그 대상은 박지성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카더라였지만 꽤나 반향이 있었다.

2012년 9월 호주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K리그에서 용서받기 위해서 K리그에서 다시 뛰고 싶다고 밝히면서, K리그계에서 이천수 논란을 재점화했다(참고). 이후 10월에 전남구단 홈그라운드 경기가 열린 날 경기장을 방문, 관객들에게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이천수 본인은 용서받을 때까지 홈그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는데, 축구인들 상당수는 '진정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평하고 있다(링크).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2월 5일. 마침내 K리그가 다시 그를 받아주게 되었다. 임의탈퇴 신분을 풀어주기로 결정된 것. 관련기사

그리고 2013년 2월 22일. 전남 드래곤즈도 그의 임의탈퇴를 풀어줌으로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고향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10번.

1.2. 2013 시즌

4년만에 드디어 K리그에 복귀하는 만큼 각오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렇게 놀기 좋아하던 선수가 아버지가 주시는 술도 거절하는 등 절주를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황하던 기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거기에 K리그에 복귀한 2013년에 득녀까지 한 상황. 오로지 가족과 축구에만 모든걸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2013년 3월 31일 K리그 클래식 4R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교체선수로 복귀전을 치렀다. 4년 만에 돌아온 선수치곤 나쁘지 않았다는 평. 그러나 팀은 2-1로 패배했다.

4월 16일에 치른 7R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본격 이천수 더비에서 선발로 출전해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전성기 때를 방불케 하는 활약을 펼쳤다. 데드볼 상황에서의 킥이 다소 부정확했다는 게 흠이지만, 지는건 죽는것보다 싫다는 특유의 악바리 근성과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활동량으로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비며 '역시 이천수 ㄷㄷ'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인저리 타임에는 골대 하단을 노린 강력한 중거리슛을 때렸지만 김병지의 선방으로 데뷔골 무산. 결과적으로 경기는 0-0으로 비겼으나 본인의 크랙 기질을 유감없이 선보인 승부였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전남 서포터석을 찾아 깍듯이 인사했다는 후문.

그리고 원정 온 전남 서포터들은 그에게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약 2년 간의 공백기가 있는데다 30대 초반이기 때문에 보통은 전성기 시절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지만, 경기에 출전할수록 점점 경기력이 올라갔기에 팬들의 기대는 높아졌다. 4월 20일 8R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홈경기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면서 팀의 막판 역전승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는 2009년 5월 23일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이후 1428일만의 공격포인트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친정팀이라 할수있는 울산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9R 경기에서도 0:1 지고있던 상황에서 동점골을 어시스트.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서서히 예전 전성기 시절의 폼을 끌어올리는 중.

이날 역시 이천수는 전남전과 마찬가지로 정중히 친정팀의 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고 울산 홈팬들도 'K리거 이천수를 보고싶다'라는 걸개까지 내걸며 집나간 아들이천수의 K리그 복귀를 축하하고 격려해주었다.

다음 상대는 어찌보면 '이천수 사건'의 모든것의 시작이라 할수있는 수원 삼성. 전남, 울산, 수원까지 1달동안 연속해서 이천수의 과거와 밀접하게 얽혀있는 팀들과 대결하는게 흥미로웠는데 전남팬,울산팬들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이제 됐다 생각했으나 더 큰 산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역시나 수원 홈팬들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뤘다. 이 경기에서 이천수는 90분 폴타임 출전하며 고군분투 했으나 팀은 0:1로 패배했다. 이후 팀동료 김남일과 함께 수원팬들을 찾아가 인사를 하며[12]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사를 어느정도는 청산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다.[13]

친정팀과의 대결 이후 마음이 가벼워진건지 5월 12일 K리그 클래식 11R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거의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하는 시즌 최고의 경기력으로 시종일관 골문을 두드렸으나 이 날 MVP에 선정된 박준혁 골키퍼의 미친선방과 골대불운속에 아쉽게도 득점은 올리지 못했다.

5월 19일 K리그 클래식 12R 강원 FC에서는 전반전 프리킥 상황에서 안재준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하며 시즌 3호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원정경기를 나서는 강원의 빗장수비탓에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는데[14] 강등권에 처한 상황에서 처절한 수비를 보여준 강원을 상대로 꾸역꾸역 공격포인트와 승점을 챙기는 이천수의 클래스를 볼수 있었던 경기였다.

5월 25일 K리그 클래식 13R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드디어 터진 시즌 첫 골을 포함해 1골 1도움 맹활약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어냈다. 이로서 인천은 6승 5무 2패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무리. 기분좋게 휴식기를 보낼수 있게 되었다.

6월 딸을 득녀하며 그도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덕분에 올스타전에서 득녀세레모니를 하였다.
후반기가 시작됐지만 급작스런 현역 복귀로 몸이 적응을 못했는지 발목 부상이 도져 줄곧 출전을 못하고 있다. 전반기부터 통증이 계속 있었다고. 일단은 이석현을 비롯한 후배선수들에게 자리를 맡기고 차분히 다시 몸을 만드는 중이다.

8월 3일 K리그 클래식 21R 울산 현대전에서 오랜만에 다시 복귀전을 가졌다. 과감한 움직임으로 전반전 골대를 한번 맞추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 날 경기를 지배했던(...) 심판의 벽을 넘지 못하고 2:2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옛날 성격은 못버렸는지 참다참다 주심에게 판정에 관해 항의를 하다 경고를 받기도 했다.사실 경고 하나로 끝난것만으로도 정말 사람된거다. 옛날같았으면...ㄷㄷ

8월 10일 K리그 클래식 22R FC 서울과의 경기에도 선발 출전. 전반전 설기현의 골을 어시스트 하며 K리그 통산 32번째로 30-30 클럽에 가입을 했다. 다만 경기는 아쉽게도 2:3 인천의 패배.

8월 28일 K리그 클래식 25R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오랜만에 멋진 활약을 보이며 3:1 완승. 상위 스플릿 리그 진출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직접적인 어시스트는 없었지만 날카로운 프리킥과 넓은 시야로 사실상 두 골을 만들어낸거나 다름없없다.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가 상위 스플릿 라운드에 올라간 뒤에도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선 골까지 기록하였다. 하지만 아래에 후술할 음주폭행 논란으로 10월 6일 FC 서울과의 홈경기가 그의 2013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2013시즌 총 기록은 19경기 출전 2골 5도움

1.3. 2014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가 시즌 전체적으로 강등권에 위치하면서 이천수 본인도 부진한 시즌이었다. 28경기 1골 3도움. 이천수 하면 떠오르는 미친 활동량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가 있다.

1.4. 2015 시즌


시 지원금이 줄어들어 재정난이 심각해진 인천에서 고액연봉자로 분류되어있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끝난터라 타팀으로 갈꺼라는 예상이 많았지만[15]. 연봉삭감을 감수하고 인천과 재계약을 했다!! 본인말로는 "내가 한참 어려운시기일때 인천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줬는데 이제와서 팀이 어렵다고 외면할수는 없다"라고 재계약 이유를 밝혔다 이런게 으리다!!

때마침 얼마전 갑자기 은퇴한 같은 팀이었던 전 동료 설기현과 멘탈면에서 많이 비교되고 있다. 본인도 이런 시기를 엄청나게 지내다보니, 이제야 말로 진짜 철이 든 듯???? 그러니까 이제 논란 탭 좀 뺍시다. 논란 탭 없어도 사고 내역 화려한 항목들 잔뜩 있는데

개막 첫경기에서 날카로운 패스로 김도혁의 첫골을 어시스트하여 시즌 첫 어시스트와 K리그 클래식 2015시즌 첫 득점 기록에 일조한다.

2. 게으른 천재?

동갑내기 축구선수이자 같은 시기에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과 비교되며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노력하는 수재 박지성과 노력하지 않는 천재 이천수. 이러한 비교가 흥하게 된건 두 선수의 축구인생이 상당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대학 축구 최고 명문인 고려대에 입학하고, 히딩크와 박지성조차도 박지성보다 이천수가 뛰어나다고 말한 사실 때문에 천재 이미지가 강했고 박지성은 어렸을때부터 축구선수로선 치명적인 평발에다 받아주는 대학도 없었고 천재로 유명했던 이천수와 달리 거의 무명선수로서 안습한 시절을 보낸뒤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며 '노력끝에 성공한 수재' 이미지가 있었던것. 거기다 두사람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했는데 이천수가 적응 실패 이후 귀국하여 여러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일이 꼬인데 비해 박지성은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맨유로 간 이후에도스캔들 천국에서 거의 도닦는 스님 수준의 멘탈을 보였으니 두 선수는 비교될수 밖에 없었다. 스타에서 출발하여 여러가지 스캔들등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와 무명 듣보에서 출발하여 현세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국민적 스타가 된 선수의 대비이니 축구인생 자체로만 놓고보면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으른 천재vs성실한 수재의 전형이었던것.

하지만 이천수는대표적인 노력파 선수이다. 부평고 시절 고교 축구계를 씹어먹던 동갑내기 최태욱에게 실력의 벽을 느끼고, 최태욱을 이기기 위해 미친듯이 연습했다고 한다.[16]
반면, 박지성은 전국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초등학생 6명에게 주는 범근 축구상을 받은, 그야말로 떡잎부터 남달랐던 천재이다.

3. 사건, 사고

3.1. 축구계의 풍운아

한국 축구계의 풍운아, 악동 등이라는 별명들이 설명해주듯 심심할 때마다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휘말린다. 다음은 이천수의 숱한 사건사고들 중 일부.




  • 감자바위 사건 - 자신이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자 심판에게 감자바위를 먹이고 총쏘기를 하는 바람에 기수로 나가는 징계를 받았다.




3.2. 임의 탈퇴 논란

자세한 것은 이천수 임의탈퇴 논란 항목을 보시길.


3.3. 2013년 음주폭행 논란

2013년 10월 14일에 새벽 한 술집에서 폭행시비에 휘말렸다.#기사 그러나 이후 기자와 전화 인터뷰로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고 옆에 와이프와 지인들도 같이 있었다. 어떻게 싸울수가 있는가. 혼자 참느라 손이 그렇게 됐다. 그 정도(폭행이 발생할 정도)도 아니었다. 내가 폭력을 휘두른것처럼 여겨져서 정말 미치겠다. 솔직히 예전에 이런 일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전에 잘못했던 일들은 내가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이천수라는 사람은 달라졌다. 달라진 이천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고 취객들이 아내에게 시비를 건것이 분쟁의 원인이였으며 뺨을 때렸다는 피해자측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7]

그리고 이천수의 주장처럼 피해자측이 술에 취한채 뒷통수를 때리고 폭언을 퍼붓는등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었다고 밝히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왔다. 증언이라고 올라오는 글들이 워낙 많았는데다 선수 본인이 확신을 가진채 폭행이 없었다고 주장한통에 구단측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차후 경찰의 조사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할 듯 싶었으나 결과는 폭력혐의 입건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은 결과 이천수의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본인 역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한다. 경찰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그의 폭행 혐의는 인정되었으며 이천수가 주장한 폭행시비의 이유(아내를 욕보여서 맥주병을 깼다) 인 아내는 본인의 주장과 달리 사건 당시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천수의 아내가 나타난 것은 사건이 종료되고 경찰이 올즈음, 즉 이천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현장을 찾아온 것이지 술자리에 합석하지조차 않았던것.

당연히 이천수와 자칭 목격자들의 증언만을 믿고 그를 옹호해줬던 구단측과 팬들은 모두 황당해했고 구단은 매우 당황스럽다고 하며 일단 선수와 피해자측의 합의를 도운뒤 징계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천수의 인터뷰가 기사화 된뒤 자신이 경찰조사에 출두한 목격자라고 주장하며 이천수의 주장과 비슷한 증언을 올리는 네티즌들이 있었는데 자연히 이 증언들도 모두 허위 소문임이 입증되었다. 사실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원본 출처는 대부분이 댓글이나 커뮤니티의 게시글, 즉 카더라 통신이 대부분이다. 평소에도 목격담, 현장증언담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관심종자들의 거짓말등이 판을 치는 게 인터넷 댓글란이고 경찰 조사 결과 진짜 목격자들의 증언과는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들이었으니 사실상 선수의 인터뷰를 듣고 자기들끼리 지어낸 소설에 가깝다. 그런데 인증샷이나 구체적인 증거 없이는 별로 신빙성 있는 소스가 아니었는데도 십중팔구는 뻥이라 보면 된다 기자들은 그걸 현장증언담이라는 이름으로 인용을 많이 했었다.

피해자측과는 어찌 저찌 합의가 되었지만 벌써 폭행사건에 휘말린 것만 총합 4번째이기 때문에 후폭풍은 상당히 거셌다. 특히 반복되는 폭행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후 거짓말로 인한 분노가 더 극심한 상황이라 축팬들에게도 "더이상 믿을수 없다"며 양치기 소년으로 완전히 찍혀버렸다. [18]

사실 사람이 없는데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종업원 및 손님들이 즐비한 바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격자도 넘쳐나는 상황에, 경찰 조사 조금 해보면 금방 밝혀진 일인데 왜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거짓말을 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많았는데 만취 상태에서 기억이 얽혀버렸던 것 같다는게 중론. 실제로 경찰조사에서도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냥 처음부터 솔직하게 기억 안 난다고 말했으면 그나마 넘어갔을 일을 본인이 키웠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인천 구단 내 징계가 결정 되었다. 2013 시즌 잔여경기 출전정지, 2000만 원 벌금, 사회봉사 명령 100시간, 재발방지 각서 및 사과문 게시였다. 여담으로 이천수와 동석한 같은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후배 선수들 2명에게도 구단 엄중경고와 선수단 회칙에 의거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를 두고 축구계 영구 추방을 해야느니 네티즌들 반발도 있었고 심지어는 최성국같은 이들을 옹호하는 이들까지 누군 가벼운 실수(...)한 것으로 영구추방하고 이천수는 이리도 봐주냐 이딴 개드립을 치며 승부조작에 관여한 천하의 개쌍놈보다도 못하다고 까였다. 잘못한건 맞지만 승부조작 쓰레기보다 더하다고?

그러나 인천은 이전에 이미 숙소 이탈해서 술먹고 행인과 시비가 붙은 강수일과 이세주얘는 나중에 조작질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임의탈퇴 먹인건 올바른 판단이었지만에게는 초범인데도 불구하고 임의탈퇴라는 중징계를 먹였는데 이천수는 알다시피 술집에서 폭행시비 붙은것만 3번이고 폭행 전체로만 따지면 4번인데 구단 최고위 징계랍시고 저런 내용의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 욕먹어도 솔직히 할말은 없다.[19] 임의탈퇴가 아니라 영구제명 징계를 내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

4. 기타

4.1. 언론의 희생양(?)

이천수의 별명이 악동이나 무법자라면, 반대로 언론의 희생양이라는 말도 항상 따라다닌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잘못보다 부풀려지고 과장된 언론보도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독 이천수에게만은 가혹한 듯한 느낌도 사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계 인사들이 이천수에 관해서 실드를 쳐주기보다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우회적인 발언만을 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 이천수 사태는 진실게임 이전에 거액의 이 걸려 있고, 여기 얽힌 이해당사자가 한둘이 아니다. 극명한 예로 김연아를 떠올려보자. 속사정을 모르는 제삼자가 너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단칼에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게 계약문제다.

그렇게 말버릇이 고약한 선수는 아니지만 언론의 왜곡으로 입만 살아있다고 입천수, 혀천수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의 베컴'이라는 별명 탓에 혀컴, 입으로 축구를 한다하여 오랄사커(…) 등의 별명도 갖고 있다.
한마디로 기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까대는 선수다. 박지성은 인터뷰가 모범답안철저한 편이라 흠잡힐 구석이 없고, 박주영은 인터뷰를 회피해서 까일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행동으로 까일 뿐이지 하지만 이천수는 인터뷰가 서툰감이 있는데다 직설적이고 별 생각없이 툭툭 내뱉은 말을 기자들이 좋다고 달려들어 대서특필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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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노력하는 천재는 후술 참조
  • [2] 실제 해당 학교 재학생의 말에 의하면, "우리학교의 전교석차가 n%인 학생은 타 중학교에서 2n% 이거나 혹은 그 이상"이란다(...).
  • [3] 사기유닛 시절에는 국가대표 경기를 뛴 후 상대 감독이나 선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로 이천수를 꼽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반 브롱크호스트는 다른 일로 내한해서까지 인상 깊었다고 언급할 정도.
  • [4]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일은 생기지 않는다.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보다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PK의 경우 06년 A3대회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은 그 경기에선 PK실축으로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알 샤밥전에서 이천수를 앞세워 6-0으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 [5]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골을 넣은 후 세레모니로 유니폼을 들어올렸는데 그 안에는 자신의 이름과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가 있었던 적도 있다. 참조
  • [6] 이상하게도 방가반두컵을 검색하면 국내 인터넷 블로그나 기자들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대회로 적었다. 틀림없이 방가반두는 방글라데시에서 열렸던 대회이다. 그나마 1999년 연합뉴스를 찾아보면 제대로 나와있다.
  • [7]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미국전 당시 페널티킥을 얻었을때도 이떄와 비슷하게 원래 본인이 차려고 했었다. 물론 이번에는 저지당해서 게임 시작 전부터 전담키커로 지정되 있었던 이을용이 찼지만 실축한다(...).
  • [8] 훗날에도 이적을 둘러싼 불상사, 특히 돈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걸로 봐서는 축구 외적으로는 비상식적으로 허술하고 매니저에게 휘둘리는 사람인 것 같다.
  • [9] 특히 야구팬이 이곳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을 텐데, 삼성의 재활센터는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 [10] 차범근 감독의 말에 따르면 임의탈퇴를 시켰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하는 생각으로 임의탈퇴를 풀고 받아들일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천수의 정신자세가 모자라다 판단, 다른 팀에서라도 뛰는 편이 좋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분노해서 방출했다고 보긴 어렵다.
  • [11] 임의탈퇴는 징계가 아니다. 연맹에서 징계 먹였으면 페예노르트, FIFA와 싸웠어야 할 판이다.
  • [12] 김남일 역시 팀을 떠날때 큰 갈등을 빚어 수원팬들과 사이가 좋지않다. 자세한 내막은 항목참조
  • [13] 정확히 말하자면 이때 수원팬들과 완전히 화해한 것은 아니다. 김남일과 이천수가 손잡고 수원 서포터 응원석으로 올 때에 경기 마친 수원선수들도 마침 같은 응원석 쪽으로 오던 터라 자기 선수들에게 쳐준 박수가 제 3자가 보기엔 김남일과 이천수에게 쳐준 것으로 보였던 것. 그리고 실제로 이천수에게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올렸던 수많은 수원 팬들은 자기 선수들에게 욕하는 것 같은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 [14] 지난시즌부터 불거진 우려였는데 인천은 공격적으로 나서는 팀을 상대로 역습을 하는데 강하지만 시작부터 걸어잠그는 팀을 상대로는 이상하리만치 약한모습을 보여주었다. 개막전 경남 FC와 시즌 첫패를 안겨줬던 대전 시티즌이 대표적인 예
  • [15] 중국, 중동쪽의 여러 구단에서 고액연봉 오퍼가 날라왔다고 했다
  • [16] 그리고 이천수와 최태욱이 3학년이 된 해에, 부평고는 학성고, 포항제철고, 풍생고, 강릉농고 등 전통의 강호들을 그야말로 압살해버린다.
  • [17] 당연히 이것이 폭행이 없었다는 확실한 근거가 될수는 없다. 경찰 입장에선 이천수가 유명인이기도 하고 소재 또한 확실했기 때문에 굳이 체포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기 때문.
  • [18] 음주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있지만 13일 연습경기후 김봉길 감독이 선수들에게 14일 하루 휴가를 주었기 때문에 술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문제될 일은 아니다.
  • [19] 사실상 의미가 없는 징계인게, 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었고 인천은 스플릿 A 진출로 사실상의 목표를 달성한 상황에서 이천수가 남은 경기를 뛰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