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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last modified: 2019-11-10 20:40:24 Contributors

Contents

1. 일성 이준 열사
2. 조선의 왕족 구성군(귀성군) 이준
3. 거침없이 하이킥의 등장인물 이준
4. 수호지의 등장인물 이준(수호지)
5. 아이돌그룹 엠블랙의 멤버이자 연기자
6. 대한민국의 배우
6.1. 프로필
7. 기업인쓰레기
8.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9. 그룹 솔리드의 멤버
10. 대한민국군인

1. 일성 이준 열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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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李儁, 1859년 12월 18일 ~ 1907년 7월 14일). 구한말의 검사이자 외교관. 호는 일성(一醒), 해사(海史)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근대법학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의 1회 졸업생. 1895년 졸업 이후 한성재판소 검사보로 임명되었으나 높으신 분들의 심기에 거슬려 1개월 만에 면직되었다. 그 후 독립협회 활동 중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 와세다대학 법대를 졸업한 뒤 다시 귀국하여 독립협회 활동을 하였고, 독립협회가 해체된 이후에도 여러 애국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준은 전주 이씨태조 이성계의 이복형이었던 완풍대군(完豊大君) 이원계(李元桂)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원계는 위화도 회군 이후 자살한 고려의 충신.[2]

1907년 6월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일제의 간섭을 호소하기 위해 이위종, 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서지도 못 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이준은 그곳에서 지병이었던 뺨종기가 도져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에는 이견이 많은데 일설에는 일제의 손에 독살당했다고 한다. 옛날 위인전에는 할복 자살이 많았으며, 심지어 회의장 앞에서 배를 갈라 내장을 던졌다는 흉흉한 내용도 있었다(…). 할복이 일본식 자살로 널리 알려진 것을 생각하면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전설(...)이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자살설을 보도했고 황성신문은 '자살이란 설도 있다.' 식으로 보도해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지 언론에서는 종기를 제거하다가 독이 올라 죽었다고 보도하였다. 당시 일본대사관에서 종기 제거 중 죽었다고 보고하면서 자살이라는 풍문도 있다고는 말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풍문이지 사실은 아니다.

종기가 스트레스성 난치성 질환이라는걸 고려하면 '울분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정도의 추정은 할수있겠지만 할복은 좀 심했다...

그런데 어린이용 역사만화 등에서는 아예 분에 못 이기고 분신자살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충격과 공포[3]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1963년 헤이그에 안치되어 있던 유해가 서울 유리 묘지로 이장되었다.

그런데 이 분에게도 흑역사가 존재한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지지하고, 일본군 부상자를 돕기 위해 적십자회를 조직하여 모금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결국 선동죄로 경찰에 구속되어 태형 80대를 선고받았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킨 것은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독립을 지켜주기 위해서이니 한국의 인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어이없는 동기로 이런 활동을 한 것이었다.[4] 원래 이준은 21년 전 갑신정변 주역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개혁 롤모델로 삼아 왔고, 나라의 독립을 생각했는지라 의도는 좋았다. 결국 일본이 을사조약 체결을 시도하고 있던 것을 안 뒤에야 러일전쟁과 일제의 본질을 파악한 듯 하다. 그 뒤로 헤이그로 가기까지 반일활동에 참여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참고로 서울대학교 법대가 자랑하는 선배 중 한 명. 법관양성소의 후신인 경성법학전문학교와 경성제국대학 법학과가 합쳐져서 생긴 것이 서울대 법대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 양쪽에서 존경받는 항일열사이기도 하다. 이 분의 장남인 이용(본명 이종승)이 중국 공산당의 도움을 받아 항일운동을 했고, 해방 이후에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다가 월북해 북한 내각에서 도시건설상, 사법상 등의 요직을 지냈기 때문인 듯.

북한에선 1984년에 신상옥 감독이 이준을 주인공으로 "돌아오지 않은 밀사" 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이 영화는 "혈분만국회" 라는 연극을 원작으로 하였다고 하는데, 북한에선 이 연극을 김일성이 창작한 혁명연극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주 공연되는 레파토리라고 한다.[5] 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는 유투브에서도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3m0ccMwu0Io [6]

2. 조선의 왕족 구성군(귀성군) 이준

龜城君 李浚, 1441년 ~ 1479년

세종대왕의 4번째 아들인 영대군의 아들이다. 소소한 말썽을 자주 일으킨 아버지 임영대군과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반듯하고 모범적인 왕족으로 성장했다. 25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년만에 벌어진 이시애의 난남이, 과 함께 진압한 공로로 병조판서가 되었고, 1468년 영의정이 되었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27세. 조선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정승이 된 인물. 물론 버프도 있었을 것이고, 후대인 예종의 왕권 안정을 위한 공신 견제 목적이 컸다. 흔히 남이와 함께 엮이지만 정작 남이는 세조가 지나치게 구성군만 총애한다는 주장을 하는 등 견제를 하려는 구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해 남이가 역모로 제거되자 스스로도 위협을 느껴 3년 뒤 부친상을 당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난다. 계유정난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인간들이 어린 임금을 옹립하고는 한때 병권을 가지고 있었던 유력한 종실이 정계에 존재하는 상황을 두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수양대군과는 달리 구성군의 경우 대놓고 야심을 드러낸 적은 없었지만, 훈구 대신들의 위기감은 충분했을 것이다. 세조 시대에 세조의 (사저시절) 후궁이 구성군을 보고 반해 연서를 보낸 일이 있었던 걸 보면 인물도 출중했던 듯 하나[7] 결국 그 사건과 숙직 포졸(최세호, 권맹희)들의 임금 드립 등을 빌미로 유력한 종친을 경계한 대신파에 의해 유배되었고, 10년 후 유배지에서 사망한다.

스스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 만한 눈치도 있었고 재능 역시 출중했으나, 바로 그렇게 재능있는 왕족이었기에 제거당한 전형적인 예.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다가 예종(과 구 공신들)에게 제거당한 남이와는 달리 나름대로 신중하게 처신을 했지만 결국 유배당하고 말았던 점에서 어찌보면 기구한 운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끔살당한 남이보다는 비록 유배를 당했으나 천수를 누리고 갔으니 낫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사실 천수를 누렸다는 말도 뭣한것이, 구성군이 불과 40살도 안되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구 공신들의 지나친 견제에 대한 스트레스와 10년간의 유배생활에 따른 상심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듯 하다.

세조가 그를 중용한 것은 넓게 보면 왕권강화책이었다. 이시애의 난 당시에 이시애 군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양팔이나 다름 없는 한명회신숙주를 들먹이면서 내통 운운 드립을 쳤고, 세조는 이들을 투옥하거나 구금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보였다. 이 때부터 기존의 공신들에게 신뢰를 잃은 세조는 이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친족인 종친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 때 토벌군 최고 사령관이 임관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26세의 종친 이준, 부사령관이 당시에도 70대 노장 강순, 넘버 3가 역시 종친이며 임관 1년차인 26세의 남이였다. 이들을 이렇게 밀어줘서 공신과 대립시켰으나, 결국 세조에 이어서 예종도 빨리 죽으면서 일이 틀어진 것이다. 결국 공신들은 남이에 이어서 이준까지 제거하고, 결국 성종 5년 반포된 경국대전에 종친사환금지법이라 하여 종친들이 벼슬자리에 나가는 것을 막아버리게 된다. 이후엔 왕실의 가까운 종친들은 종친부 등 소소한 명예직 외에는 벼슬을 할 수 없었으며, 촌 수가 8촌 이상 멀어져 왕실과는 사실상 연관이 없어진 뒤에야 과거 시험 등을 볼 수 있었다.

3. 거침없이 하이킥의 등장인물 이준

이민용신지(거침없이 하이킥)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아직 아기이다.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인 민용이 키우게 되지만, 신지가 귀국한 이후 가끔식 신지에게 맡겨져, 엄마 얼굴도 볼수 있게 되었다.

아기이긴 하지만, 1화 첫부분에 성장한 모습이 잠깐 나오기도 했다. 성장한 준의 배우는 개그맨 서경석. 부모님의 유전자는 어디로...?(다만 우주비행선에서 일을 하는데 정확한 직책 및 맡은 일을 확인 불가이나 굉장히 성공한 듯...)

4. 수호지의 등장인물 이준(수호지)

항목 참고 바람.

5. 아이돌그룹 엠블랙의 멤버이자 연기자

6. 대한민국의 배우


1984년 6월 14일 출생.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본명은 이준이나 예명으로 이란 이름을 사용한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드라마나 영화의 어린이/청소년 배역에 자주 출연했다.
박카스 광고의 유명한 문구인 "(군대에) 꼭! 가고 싶습니다!"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7. 기업인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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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같이 생겼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주범 중 한 명으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참조해라.

8.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이준(프로게이머) 항목 참고.

9. 그룹 솔리드의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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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그룹 솔리드의 랩을 담당했다.

솔리드 및 소울타운으로써의 활동 이외에도 룰라 6집, 업타운 4집, 김진표 3집, 신나라판 2000 대한민국, 이현도의 'The New Classik' 등의 앨범에 참여했다.

무한도전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2014년 현재는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하면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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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56년 학계와 언론계에서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할복자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라는 용어 사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준의 병사설을 실은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은 '반세기 동안의 열사는 어디로' 였다. 1962년, '할복자살설은 근거 없는 것이지만 나라를 위해 일을 하다가 타국에서 별세한 만큼 분사(憤死)라는 용어 대신 (殉國)이라는 용어를 사용' 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 [2] 그의 이런 면모는 용의 눈물 1화 첫 장면에서 '아우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게'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노장의 모습으로 영상화된 적이 있다. 최영과 이성계의 대면이라는 명장면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 [3] 홧병으로 사망하다는 뜻을 가진 분사(憤死)를 분신자살의 뜻으로 잘못 아는 경우로 추정된다.
  • [4] 실제로, 구한말 많은 이들이 러일전쟁이 "동양과 서양의 대결", "백인종의 침략에 맞선 황인종의 성전(聖戰)"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는 바람에 일본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었다. 안중근 의사도 여기 포함된다. 특히 이완용이 이 일을 계기로 골수 친일 매국노흑화하였다.
  • [5]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처음으로 만든 영화가 "돌아오지 않는 밀사" 인데 이 작품을 첫 작품으로 택한 이유가 김일성, 김정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 [6] 이 유투브 영상에선 크레딧에 감독의 이름이 빠져있는데 신상옥 감독의 탈북 후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북한에서 크레딧에서 신상옥 감독의 이름을 없애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북한에서는 이 영화를 원래 다른 감독이 연출하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신상옥 감독이 이 작품을 뺐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7] 세조는 그 여자가 잘못한 것이며 구성군에겐 죄가 없다고 사건을 무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