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이종열

last modified: 2015-03-12 14:26:14 Contributors

Examp0le.jpg
[JPG image (Unknown)]


이름 이종열(李鍾烈)
생년월일 1973년 1월 2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장충고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91년 고졸연고 자유계약
소속팀 LG 트윈스(1991~2009)

"LG에 단 한 명 프랜차이즈 선수가 있다면 이종열" - 이상훈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은퇴 후

1. 소개

LG 트윈스의 전 야구선수이자 코치. 대표적인 별명은 단추. 눈이 단추구멍만큼 작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또한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맡아가며 묵묵히 활약하는 모습으로 아래에서도 소개될 변신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비록 특출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LG의 소금 같았던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LG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산 증인이기에 더더욱.

누가 뭐래도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심각한 부상들을 이겨내고 한 팀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즌 초반에는 90년대~2000년대 초반 LG의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에 밀려 보이지 않다가 후반으로 가면 2군이나 부상 등으로 사라진 그 스타플레이어들을 대신해 내야 어딘가에서 꼭 활약을 보였다는 면에서 엘지 내야의 단추 구멍들을 막아준 선수. 21년간이란 한 팀 선수 생활은 송진우 선수에 이어 2번째이고, 야수로는 으뜸이다.[1]

2. 선수 시절

91년 장충고를 졸업하고 바로 LG에 입단했다. 당시로서는 고졸 선수가 대학이 아닌 프로로 직행하는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하필 이종열과 함께 LG에 입단한 선수가 동대문상고의 우승 주역이자 당시 청소년대표팀 주장이었던 우수였기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입단 초엔 존재감없는 그저 그런 내야수였지만, 그나마 수비에 강점을 보였기 때문에 백업 2루수, 3루수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다가 주전 3루수였던 윤찬의 부진을 틈타 본격적인 레귤러 멤버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입단 당시 이종열보다 훨씬 주목을 받았던 우수가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본 포지션인 유격수를 포기하고 2, 3루 백업을 서며 잡초처럼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던 이종열과는 달리, 프로에 와서도 전문 유격수로 길러지던 이우수는 유지현이라는 거목을 끝내 넘지 못했다.[2]

문제는 타격이었는데, 주전 3루수가 되고 나서도 2할 5푼도 힘든 수준이었다. 게다가 94년에는 한대화까지 입단하며 주전에서 밀려났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 이종열은 1995년, 김용달 코치의 조언에 따라 스위치 히터로 변신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그가 스위치 히터를 선택한 건 단순히 타격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2번 타자로서 작전수행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우직하게 내야 전 포지션을 넘나들며 붙은 별명이 '변신 괴물'.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로 다양한 활용도를 자랑하게 된 그에게 썩 어울리는 별명이다. LG 암흑기(...) 시절에는 외야수를 본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투수, 포수를 제외한 7포지션 플레이어 타이틀 획득!

99년엔 타율 0.291, 9홈런 55타점으로 타격도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2002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영광도 누린다. 이후 감독추천으로 2005, 2007년에 올스타에 뽑힌다.

99년 이후 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팬들 사이에서 철밥통이라고 까이기도 했는데, 2007시즌에 타율 0.285, 4홈런 53타점의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이 시즌에 한 이닝에 양타석에서 안타를 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이종열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2008시즌에 타율 0.232의 부진한 성적을 내고, 2009시즌엔 베테랑 박종호를 비롯해 박용근, 김태완 등에게 밀리면서 거의 2군에만 머무르게 된다.

결국 2009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LG 육성군 코치로 지도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47, 1175안타, 52홈런, 131도루.

2011년경, LG에 서동욱이 등장해 이종열의 뒤를 잇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3] 이종열이 내야의 어느 포지션을 봐도 평균 이상의 수비를 해줬던 점에 비해 서동욱은 수비고 타격이고 유틸리티 플레이어라고 보기엔 여러 모로 어중간했다. 결국 서동욱은 이후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3. 은퇴 후

2011시즌후 김기태로 감독이 바뀌면서, 김영직,최계훈,허문회 등의 코치들과 같이 해임되고 2년간 미국 대학야구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 되었다. 미국에서 리틀야구 코치서부터 시작.

2013년부터 미국의 고교 야구팀에서 코치를 맡게 되었다. 오하이오주 블링그린 하이스쿨 야구팀 타격코치 이종열

2014년 11월에 자신의 페이스북 메인사진을 LG 트윈스에서 뛰던 현역시절 사진으로 바꿔서 팬들이 코치 복귀하는거 아니냐고 이래저래 설왕설래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디시 쥐갤엠팍에서 코치 복귀설이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라 복귀한다면 제발 최태원 좀 1루나 다른 코치로 보내고 3루 코치 맡아달라고 할 정도. 그런데 결국 두 자리나 공석이 생긴 SBS Sports 해설을 맡게 되었다.

----
  • [1] 야수 두번째는 태평양-현대-넥센에서 18년간 뛴 이숭용이다.
  • [2] 신문기사에서도 나왔지만 이우수의 멘탈에 문제가 많기도 했다. 재활훈련 때도 너무 힘들다며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잦았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 탓도 컸다. 이게 이우수가 실패한 결정적 사유.
  • [3] 2011년 활약이 이종열을 닮았다 해서 트랜스포머2라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