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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last modified: 2016-06-27 19:58:31 Contributors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이종범은 이종범(프로게이머) 항목으로.
웹툰 만화가 이종범은 이종범(만화가) 항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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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이종범이 떠날 시간은 이종범이 정한다. 이종범은 그럴 자격이 있다. -최의민


KIA 타이거즈 영구결번
No.7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4 2,083 안타[1] 2010년

이름 이종범 (李鍾範)
생년월일 1970년 8월 15일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서림초-충장중-광주일고-건국대
포지션
유격수(1993~1997, 1998[2])
1루수 (2008)
2루수 (2007, 2010)[3]
3루수(2001)
포수(1996)[4]
좌익수(2002)
중견수(1998~2000, 2002, 2004~2006)
우익수(2003, 2007~2012)
사실상 투수 제외 전 포지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1차지명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1993~1997)
주니치 드래곤즈(1998~2000)
KIA 타이거즈(2001~2012)
응원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제4악장' [5]
YG 패밀리 '멋쟁이 신사'[6]
지도자경력 한화 이글스 주루코치(2013~2014)

1994년 한국프로야구 MVP
김성래(삼성 라이온즈) 이종범(KIA 타이거즈) 김상호(OB 베어스)

1993년 한국시리즈 MVP
박동희(롯데 자이언츠)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김용수(LG 트윈스)
1997년 한국시리즈 MVP
이강철(해태 타이거즈)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1993, 1994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계원(롯데 자이언츠)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김민호(OB 베어스)
1996, 1997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민호(OB 베어스)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유지현(LG 트윈스)
2002, 2003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이병규(LG 트윈스)
정수근(두산 베어스)
심재학(두산 베어스)
이종범(KIA 타이거즈)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송지만(한화 이글스)
이종범(KIA 타이거즈)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이병규(LG 트윈스)
클리프 브룸바(현대 유니콘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이진영(SK 와이번스)

2003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이종범(KIA 타이거즈) 정수근(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7번(1993~1997)
김종모(1982~1992) 이종범(1993~1997) 장일현(1997~2000)
KIA 타이거즈 등번호 7번(2001~2012)
장일현(1997~2000) 이종범(2001~2012) 영구결번
한화 이글스 등번호 73번(2013~2014)
정영기(2010~2012) 이종범(2013~2014)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김종국(2005) 이종범(2006~2007) 장성호(2007~2008)

4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김동수(2005) 이종범(2006~2007) 손민한(200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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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2011년 7월 26일 대 삼성전에서. 무려 14년만에 옛 해태시절 형태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하필 이날 2대 5로 패...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야구천재에서 전설로
3. 연도별 성적
4. 사건사고 및 구설수
5. 지도자 생활
5.1.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5.1.1. 2013 시즌
5.1.2. 2014 시즌
6. 해설자 경력
7. 포지션
7.1. 수비력 논란
8. 이야깃거리
8.1.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
8.2. 이종범 vs 양준혁
8.3. 보이지 않는다?
8.4. 흑역사
8.5. 사구와의 악연
8.6. 기타

1. 소개

대한민국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의 선수.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의 프랜차이즈 스타. 제 4호 성구회 회원.

별명은 바람의 아들, 야구천재, 종범신 그 외에 안티들이 부르는 별명으로[7] '종범甲'[8]과 '이졸뱀', '___선수', '보이지 않는', '빵종범' 등이 있다.

2011년 현역 최고령 선수였다. 2012년 은퇴를 선언하면서 최고령 선수 타이틀을 당시 류택현, 최동수와 후에 KIA에 입단한 최향남에게 물려주었고, 은사 김응용 감독이 있던 한화 이글스 코치를 거쳐 현재는 MBC SPORTS+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이다.

2. 선수 시절, 야구천재에서 전설로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해태 타이거즈 126 475 .280 133
(2위)
16 4 16
(4위)
53 85
(1위)
73
(2위)
38 .432 .331
1994 124 499 .393
(1위)
196
(1위)
27
(3위)
5
(3위)
19
(4위)
77
(5위)
113
(1위)
84
(1위)
57 .581
(2위)
.452
(1위)
1995 63 239 .326 78 10 2 16 35 51 32 30 .586 .397
1996 113 449 .332
(2위)
149
(2위)
28 1 25
(3위)
76
(3위)
94
(1위)
76
(1위)
74 .566
(2위)
.425
(3위)
1997 125 484 .324 157
(2위)
28 3 30
(2위)
74 112
(1위)
64
(1위)
90 .581 .428
(4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주니치 드래곤즈 67 244 .283 69 11 3 10 29 38 18 42 .475 .387
1999 123 424 .238 101 20 5 9 33 76 24 45 .373 .310
2000 113 414 .275 114 26 2 8 37 58 11 36 .406 .332
2001 8 13 .154 2 1 0 0 0 2 0 0 .231 .15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타이거즈 45 188 .340 64 14 1 11 37 45 7 21 .601 .401
2002 123 485 .293 142 25 2 18 59 93
(5위)
35
(3위)
56 .464 .365
2003 132 524 .315 165
(2위)
43
(1위)
1 20 61 110
(3위)
50
(1위)
66 .515 .389
2004 133 493 .260 128 29
(5위)
0 17 52 100
(1위)
42
(3위)
70 .422 .350
2005 118 430 .312
(5위)
134 25
(4위)
2 6 36 69 28 58 .421 .393
2006 93 339 .242 82 18 1 1 21 41 10 29 .310 .302
2007 84 253 .174 44 6 0 1 18 23 3 15 .209 .217
2008 110 317 .284 90 19 4 1 38 38 9 33 .379 .348
2009 123 385 .273 105 21 1 6 40 63 11 46 .346 .379
2010 97 265 .245 65 16 1 4 29 36 2 18 .293 .358
2011 97 235 .277 65 15 1 3 24 27 3 23 .337 .387
KBO 통산
(16시즌)
1706 6060 .297 1797 340
(5위)
29 194 730 1100
(4위)
510
(2위)
724 .458 .370
NPB 통산
(4시즌)
311 1095 .261 286 58 10 27 99 174 53 123 .406 .334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1993년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수상, 한국시리즈 MVP
1994년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수상, 정규시즌 MVP
1996년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수상, 20-20 달성
1997년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수상, 30-30 달성
2003년 골든글러브 외야수부문 수상, 올스타전 MVP, 20-20 달성
2004년 골든글러브 외야수부문 수상

4. 사건사고 및 구설수

내용이 길어져 별도의 항목으로 분리함. 이종범/사건사고,구설수 항목 참고.

5. 지도자 생활

은퇴 후 정들었던 광주를 떠나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한 이종범은 휴식과 방송 출연, 아들 이정후 군이 재학 중인 휘문중학교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2012년 10월 8일 뜬금없이 LG 트윈스의 코치로 부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LG와는 사실 연고도 없고 여러가지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초중고를 같은 학교를 나왔고 원래 친분이 깊은 김기태 LG 감독 아래서 지도자 경력을 쌓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전격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새벽 2시에 갑자기 속보로 떠서 많은 기아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 그 자체를 겪었다. 반면 LG 팬 입장에서도 데뷔 이후 줄곧 LG를 괴롭혔던 이종범이, 그것도 지도자 연수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첫 코치 경력을 시작한다는데 불만이 많은 상황. 그러나 LG 구단 측에서 이종범을 영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기레기의 설레발, 거기에 이종범 본인도 전혀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LG 트윈스 코치행은 해프닝으로 종결되는 듯 하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난 당일 이번엔 그의 프로 시절 스승이었던 김응룡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새로 부임하면서 양준혁과 함께 코칭스태프 기용설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김응룡 감독이 이종범을 코치로 부를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며 한화 이글스 프론트도 감독에게 코치 인선 전권이 있는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5.1.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10월 10일, 공식적으로 한화 주루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링크

10월 15일 류현진이 FA를 통해 해외진출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 때문에 팀 성적 생각만 한다고 본의 아니게 까이게 되었다.

류현진에게 FA로 해외진출을 하라는 발언이 정말로 류현진을 생각해서 한 발언인지, 일명 실적을 위해 류현진을 붙잡고 굴리려는 의도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야인으로 있을 당시 류현진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김응룡이 한화 감독 부임 이후 태도를 싹 바꿔 못가게 막는 인터뷰를 해서 한화팬들이 한참 민감한 상황인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눈치없는 발언이었다는 분위기다.

5.1.1. 2013 시즌

초보 코치라서인지 주루코치로서의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다 필요없고 어느 별명 많은 돼지도 거의 투 베이스씩 진루시키고 있다. 자신의 주루능력을 모두에게 적응 시키면 곤란한데...

7월 16일 무등 KIA전에서 1루코치에서 3루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였다.

5.1.2. 2014 시즌

3루 주루 코치를 보고 있다. 그렇지만 팀 성적이 워낙 막장인지라 썩 좋은 평가는 못 듣는 편. 김응용 및 여러 코치들이 주로 욕을 먹어서 좀 묻히는 느낌이지만.

확실한 건 GO&STOP에 대해선 매우 좋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별명 많은 돼지를 비롯한 김태완, 최진행, 조인성 등 똥차들의 홈 주루사가 매우 적어진 편이다. 다만 왠만한 상황에서는 주자를 멈춰세우는 등 주자운용이 극히 보수적으로 변해 팀의 최소득점[9]에 영향이 없지는 않다는 평이다.

팀의 주루플레이 역시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다. 물론 2014년 시즌 종료후 기록을 보면 한화 이글스의 팀 도루순위는 8위로 전년보다 1계단 상승하였다.사실 8위나 9위나 똥차팀인 건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정작 도루 갯수는 70개로 전년도랑 똑같다. 부상으로 거의 시즌 말아먹은 이용규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근우펠릭스 피에같은 발빠른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개선이 없다는 것은... 그럼에도 소통이 부족했던 김응용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가운데에서도 격의없이 선수들과 어울리고 파이팅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피에의 홈런 때마다 함께한 이종범 코치의 거수경례 세리머니는 한화의 명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을 정도.

2014 시즌 이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하면서 코치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10] 이 와중에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KIA 타이거즈의 신임 감독 후보에 이종범 코치도 역시 언급되었는데, 아직 코치 경력이 2년밖에 안 된 초짜인 것도 있고 본인도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감독직을 고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6. 해설자 경력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중국과의 야구 준결승전 당시 KBS에서 특별 해설위원으로 초빙되어 처음으로 해설을 맡았다. 대체적으로 야구를 읽는 눈이 아직 녹슬지는 않았고 의외로 방방 뛰지 않고 차분하게 해설을 했다는 평. 다만 아직 남아있는 전라도 사투리(...)와 너무 긴장해서인지 차분하다 못해 가라앉아 있어서 본격적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려면 좀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평을 받았다.

한화 이글스 주루코치 사퇴 이후 KIA 타이거즈 측으로부터 감독직 및 코치직[11]을 제안받았으나 좀 더 야구를 공부하기 위해 야구해설자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MBC SPORTS+와 해설위원 계약을 맺으면서 2015년부터는 MBC 중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1993년 등장했던 양신과 종범신이 이젠 해설위원으로써 한솥밥을 먹게 된 것.

엠스플 해설자 위촉 기념(...)으로 촬영된 '종범神, 엠스플을 만나다'에 따르면 선수 시절 말기 때부터 야구를 보는 눈이 있고 입담이 화려한 이종범의 영입을 위해 엠스플이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사석에서 형,동생이라고 하는 한명재 캐스터도 끈질기게 붙으면서 엠스플로 오라고 했다는 설. 은퇴 이후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은퇴 이후의 행보를 설계하느라, 2013~2014년에는 은사 김응용의 러브콜로 성사시키지 못했다가, 2014 시즌이 끝나고 그 때의 정을 생각하여 해설자 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2015 시즌전 투입된 프로그램에서는 이종범 위원의 예능감(...)이 유난히 드러났다.

초반 전반적인 평가는 '정신력을 유독 강조한다' '전라도 사투리를 최대한 덜 쓰려니 말이 기어든다' 정도. 여기에 해설위원 초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전달력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지적되었다.

7. 포지션

데뷔때부터 일본 진출 전까지는 유격수로 뛰었으며 기아 타이거즈로 돌아온 이후에는 3루수를 거쳐 2006년까지 중견수로, 2007년부터는 대부분 우익수로 뛰었다. 2010년 현재 제일 많이 들어간 수비위치는 현재의 포지션인 우익수. 유격수 부문은 여담이 있는데 동대문구장에서 김재박에게 사인을 받고 유격수를 꿈꾸었다고 한다. 때문에 왼손잡이임에도 유격수를 하기 위해 우투우타를 하게 되었다. 선수로서는 정말 훌륭했던 김감독

그외에 다른 포지션으로 활약한 적도 있는데, 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으로 출전한 기록이 있다. [12] 참고로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전 포지션에서 활동한 선수는 딱 두 명이다.
이에 전 포지션 출장 달성을 위해 구단 측에서 이종범의 투수 등판을 고려하기도 했으나[13], 2009년 11월 한 포탈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기회가 된다면 마운드에 서고 싶으나, 상대팀 감독 심기문제도 있고 하니 무제한 연장제가 아닌 이상 이젠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상황. 결국 은퇴식 때 시구자로 등판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이 진기록 달성을 놓고 최정과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도 했는데, 최정은 이미 투수와 포수로 뛴 적이 있고 더 어리기에 어찌 보면 이종범보다 기록 달성에 유리한 상황.

하여간 이종범의 8포지션 출전 기록은 분명 뛰어난 야구센스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종범이 전 포지션을 소화 가능한 만능선수라는 건 아니다. 한편 안티들이 이종범이 외야 한 자리를 맡고 있어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라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아의 외야진 꼬라지를 보면 이종범이 왜 여태껏 외야수로 출전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이종범이 은퇴하기 전 시점의 기아의 외야진을 살펴보면, 풀타임으로 출전할 수 있는 건 이용규 뿐. 김원섭은 만성 간염 환자라 풀타임을 뛸 수 없고, 나지완은 수비 범위가 심히 좁은데다 과도한 체중 탓에 무릎에 물이 차 있는 상태.(...) 장성호 트레이드때 데려온 김다원은 수비력은 평균 수준이지만 빠따질이 안 되고, 신종길은 발만 빠를 뿐 야구센스가 심히 떨어지는 편. 그들을 제외한 다른 외야수들의 수비력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이런 논리라면 유망주는 올라오지도 못한다. LG의 오지환을 봐도 알 수 있는 논리. 과연 권용관선수가 오지환보다 못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올리려고 해도 누가 있어야 올리지. 결국 기아 외야진에 괄목할 만한 유망주가 전무했던 관계로 이종범이 나왔던 것. 까들은 06년도부터 하락세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아래 데이터만 봐도 단순한 하락세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6년-242 1홈런 21타점
2007년-174 1홈런 18타점
2008년-284 1홈런 38타점
2009년-273 6홈런 40타점
2010년-245 4홈런 29타점
2010년은 초반 손가락 부상 때문에 타율 까먹은게 컸고, 손가락 부상 회복된 이후의 비율 스탯은 08, 09 시즌과 큰 차이가 없었다.

7.1. 수비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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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사실 이종범 하면 외야수보다도 유격수로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데, 실제로 그의 커리어에서 유격수로서 소화한 시즌은 그가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한 15시즌 가운데 93-97년의 5시즌과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첫해인 98년의 반시즌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 5년간 그가 공수양면으로 남긴 족적이 워낙에 화려한 탓이다.

하지만 수비의 경우엔 평가가 꽤나 갈리는 편인데, 현재에 와서는 '수비만큼은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 빠른 발과 반응속도덕분에 좌우수비범위는 톱클래스였지만 기본기에서 한계를 드러내었기 때문에 전후수비범위는 좋지 않았다. 엄청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스틱한 호수비를 펼치는 것에 반면에 정면타구에 약한 편이라 전진수비 능력이 부족했으며 바운드는 거의 무조건에 가까울 정도로 뒤로 물러나서 포구 한 후 강한 어깨힘에만 의지하여 송구하는 식의 모습을 보였다. 허나 활약할 당시의 수비가 워낙에 퍼포먼스가 강하고 화려했던 탓에 당시의 이종범 관련 기사에는 그의 수비력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물론 자신의 강점은 강견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정도로 40대에 들어선 현재도 송구능력은 발군이다. 일본 진출 때도 이것을 어필했다고.

그러나 일본 진출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는 이종범을 두고 '유격수의 기본조차 안 된 놈'이라는 혹평을 내렸으며 결국 부상까지 겹쳐 유격수로 한 시즌도 채 채우지 못하고 외야수로 강제 전향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원래 호시노가 말을 좀 막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 진출 이후 얼마 안 가 구지에게 유격수자리 경쟁에서 밀려나고 외야수로 컨버전 된 것으로 볼 때 기본기를 중시하는 일본야구인들의 관점에서 이종범은 그저 부족한 기본기를 운동신경으로 때우려는 선수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주니치는 이바타 카즈히로가 자리잡게 된 2001년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후쿠도메 역시 수비력에서 많은 문제를 보이며 외야수로 전향했던 것. 흔히 후쿠도메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이종범을 외야로 보냈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종범이 외야로 전향한건 98년 후반기이기 때문에 99년에 프로데뷔한 후쿠도메가 이종범을 밀어낸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굳이 일본까지 갈 것도 없이 동시대의 유격수들인 유지현, 김민호, 김민재, 류중일, 김태균 등이 전진수비를 해서 러닝스로로 연결하던 것들에 비해선 분명히 투박하다.

이종범의 수비력에 대해서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실책 개수. 93, 94, 97년도에 실책 1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93년과 94년도의 경우에는 기록원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는 실책 개수로 수비력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이는 당시 기록원들이 인터뷰 '93년 이종범이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부터 문제였다. 기존 유격수의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을 뛰어 넘는 이종범 때문에 실책과 안타의 기준이 헷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김제원 기록원은 '당시 이종범이 능력이 출중해 손해보는 일이 생겨 우리 내부적으로 회의를 많이 했다. 그래서 객관적인 기준을 다시 마련했다.'라고 언급하였었다. 또한 양준혁이 신인시절 자신의 타구가 안타가 아닌 에러로 기록되자 기록원실을 박차고 (말 그대로 문을 발로 차버리며) 들어갔던 사건도 생겼던 터라 양신 성깔있네, 기록 선진화 차원에서 94년의 회의 및 조정 과정을 거쳐 95년부터 에러 규정을 기존의 '건드리기만 하면 에러'가 아닌 기록원 판단하에 불규칙바운드성이나 말 그대로 안타성을 건드려서 튕긴공들은 안타로 처리하기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방위병 제대후 제대로 된 풀타임이었던 96년에는 에러 개수가 많이 줄었지만...97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14] 결국 한 시즌뿐이네

국내 정상급 유격수로 평가받던 박진만인터뷰에서 이종범의 수비에 기본기가 부족했냐는 질문에 "종범이형은 누구보다 화려한 플레이를 했지만 누구보다 기본에 충실했다. 어떤 공이던 잡으려고 애썼다. 그게 기본기다. 따라가 잡고 던지고 정확히 던지는게 기본이다. 잡지 않고 던질거부터 생각하고... 그건 아니다. 내 기준에서 종범이형은 누구보다 기본에 충실하려했던 유격수다."고 언급한 전력이 있다. 다만, 던질거부터 생각하고 수비하는 유격수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에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주자를 잡을 수 있을지 판단하기 보다 우선 잡고 던져서 아웃시키겠다는 이종범의 플레이스타일을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범은 던지지 않으면 호수비도 없으며 에러를 두려워하지 말고 잡아서 던지는 것이 좋은 수비라고 생각했다. 이는 주자의 상황을 판단한 후 던질 것을 요구하는 정석적인 수비와는 거리가 있다. 이종범의 야구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이종범 수비 논란이 불거져 나온 뒤 이종범과 자주 비교되는 선수가 유지현이다. 고교 시절에 항상 비교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국가대표 키스톤 콤비기도 하였기 때문. 주전 유격수를 이종범이, 2루수를 유지현이 보았다. 이는 유격수에서 이종범이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타격능력을 보이는 수준이란 조건하에서 국가대표 2루수로써 이종범보다 유지현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어깨의 문제도 있었으며 푸쉬번트의 대처능력이 전진수비에 약한 이종범보다 유지현쪽이 더 우월했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수비는 93년 갓 데뷔 당시 기존의 류중일이나 김민호에 비해 사이즈가 크면서도 비슷하거나 우위의 스피드로 수비해서 강한 송구로 보살하는 장면을 통해 신기한 수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상단의 기록원들의 인터뷰도 그런 부분에서 나온 것. 좌/우의 수비범위가 엄청나 타 유격수보다 한 두 걸음 뒤에 대기하다가 특유의 운동신경으로 좌/우로 빠져나가는 타구를 잡아 빨랫줄 송구로 연결시키는 등, 동시대 다른 유격수와는 수비 범위에서 우위를 가졌다. 반면 유지현에 비해 수비 스타트가 느린 점, 정면 타구의 처리와 글러브질, 그리고 글러브에서 볼을 빼는 속도, 부정확한 송구라는 약점이 분명히 있었다. 단지 실책을 하더라도 그 전에 안타성 타구를 캐치하는 장면 등 워낙 화려한 수비를 보여줬기 때문에, 또한 압도적인 공격력에 묻혀서 나쁜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그 다음 해에 등장한 유지현은 이종범보다는 좁지만 그 역시 빠른 발을 이용한 좌-우 수비범위가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깨부상으로 3-유간의 깊은 공을 캐치한 후 송구하는 것에는 다소 약점이 있었다. 1루수 서용빈의 포구능력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원바운드 송구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었다는 점에서 이종범에 묻힌 케이스. 사실 수비이론적으로는 매우 당연하고도 다이렉트 송구보다도 효과적인 플레이었지만, 그 당시 국내의 야구 수준은 그러한 송구를 대단히 나쁘게 봤다. 어쨌거나 90년대 유격수로 활약했던 이종범, 유지현, 류중일, 김민호등의 수비논란은 안정성, 수비범위, 송구 등에서 그들 모두 뚜렷한 특징이 있고, 수비 실력 판단이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열을 확정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커뮤니티에서 수비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경우는 이들 중 억지로 한쪽을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리려다가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

어쨌거나 당대에는 전문가와 현역 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던 이종범의 수비력이 요즘 야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든 해설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일성같은 경우엔 그냥 조금만 잘하면 무한 칭찬하던 경향이 이 때는 더 했기 때문에 닥치고 하악하악이었지만, 허구연같은 경우엔 소위 말하는 '잘난 척'해설이 더 했기 때문인지, '결과는 좋은 플레이었지만 그러면 안 돼요 궁시렁궁시렁' 등...토를 꽤 달았던 게 사실.

대체적으로 타이거즈vs비 타이거즈 팬들의 구도로 타이거즈팬들은 언제나 실책으로는 수비력을 나타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비 타이거즈계열의 팬들은 실책 개수를 토대로 주장하는 구도로 나아간다. 정작 이종범의 수비가 형편 없다면서 끌어오는 김민호유지현 역시 이종범과 마찬가지로 20개 이상 실책 시즌이 3번이나 있었지만 김민재, 김민호나 유지현의 경우엔 그 당시 수비로써는 하향곡선을 지나쳐 최저점에 가까웠던 공필성/안경현/송구홍을 3루수로 두고, 2루수에도 수비가 좋지 못했던 박정태/이명수/이종열,박종호를 둔 것에 비해 이종범은 홍현우, 김종국을 두고 신경식 이후로 엄청난 학다리 포구를 보인 최훈재 등을 두고 수비한 결과 환경적으로 매우 유리하긴 했다.

매직글러브[15]를 유지현은 이종범이 일본으로 간 뒤부터 수상 받기 시작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부분. 그리고 유지현 본인 역시 아이 러브 베이스볼의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종범의 수비가 자기보다 나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16]

이와는 별개로 외야수로써의 수비능력은 매우 수준급. 일본에서 외야수 전향을 한 첫 해에는 외야수로 7개의 실책을 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KBO복귀 이후로는 기본 운동 능력이 타고난지라 금세 적응하여 국가대표 외야수로도 활약했다. 타고난 강견과 빠른 주력을 이용한 수비 범위로 단 숨에 A급 외야수로 컨버전 성공. 한국 복귀 첫 해에는 3루수로 주로 뛰었지만 2002년부터는 중견수로 주로 활약. 다만 국가대표에서는 이병규에 밀려 주로 우익수로 뛰었으며, 2006년 WBC에서는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다. 그 이후로 국내에선 타격에 심각한 부진을 보이며 외야백업으로 전락했지만 수비능력은 그대로였다. 타격에서 다시금 어느 정도 활약을 보인 08, 09년엔 거의 기아의 준 주전급 붙박이 우익수. 다만 2010년엔 괜찮던 수비력까지 바닥을 치며 수많은 기아팬들을 고민에 빠지게 했다. '수비하는 거 보면 까고 싶은데 이종범이라 까진 못하겠고...' 그런데, 기아에서 이런 이종범보다 수비가 나은 외야수가 없어서 결국 쓸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유격수로서의 수비는 말이 많지만, 외야수로의 수비는 흠 잡을 곳이 없는 수준.

8. 이야깃거리

8.1.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

전성기 때는 화려한 성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후에는 KIA 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과 여러 가지 사건으로 유명한 이종범이지만, 특히 2009년부터는 야갤정사갤을 중심으로 퍼진 홍어드립을 비롯한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항목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살펴보면 이종범이 잘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으며, 비판받을 만한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이종범이 인터넷 상에서 받는 비난의 대부분은 여기에 호남 비하를 중심으로 한 지역드립을 덮어씌운 경우다. 실제로 타이거즈의 선수가 아니었다면 화제도 되지 않았을 일들이 확대 재생산되어 사실과 매우 동떨어진 소문으로 퍼지기도 한다.

8.2. 이종범 vs 양준혁

선동열 vs 최동원만큼이나 오래 묵었으면서도 끝나지 않은 논쟁의 주인공이다. 각각 기아와 삼성,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대 선수라는 점에서 종종 비교되는데, 그러나 둘은 각자 대단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포지션도 다르고 타선에서의 주어지는 역할도 전혀 다른 선수이다. 비교를 해도 무의미한 논쟁을 낳을 뿐이다.[17] 웬만한 야구 사이트에서는 일단 이 논쟁이 벌어지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요새는 something invisible(…)과 지역드립까지 가세되면서 보통 인신공격으로 비화된다. 하지만 비록 양준혁이 1994년의 이종범처럼 리그 MVP를 타거나 한적은 없지만, 통산기록에서 워낙에 넘사벽으로 차이가 나기에 적어도 타격분야에 있어서는 대개는 양준혁을 더 우위로 쳐준다.


8.3.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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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면 당신도 훌륭한 야갤러!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등지에서 틈만 나면 까이고 있으며, 투명드립의 필수요소(...)로 쓰이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종범 항목으로.

이렇게 까이게 된 데에는 소속팀이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KIA 타이거즈인 탓도 있겠지만, 이종범을 신격화하는 극성팬들이 타격 스탯이 우월한 양준혁과 동급의 선수였다거나, 아니면 그 이상의 초월적인 존재였다고 주장한 이유도 있다. 유격수 수비부담이 있었던 이종범이 양준혁보다 더 높게 평가받아야한다든지. 다만 09 시즌 돌입 이후에는 기아 팬이 직접 vs 드립을 치는 경향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기아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따른 기아팬의 활동과 그에 대한 야갤러들의 반감, 그리고 야갤의 반 전라도 정서가 혼합되어 09 코시 이후 호남과 기아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선수인 이종범은 야갤에서 까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09 시즌 이후의 이종범 vs ○○ 드립은 야갤러들의 낚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주된 피해자는 엠엘비파크.

이종범이 투명드립의 희생양이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극성 이종범 팬들의 "다른 선수에게는 없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주장에서 유래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것이 '팀 캐미스트리 강화'나 '남다른 임팩트, 포스' 등과 같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인데다, 비슷한 성적을 찍은 선수와 비교했을 때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종범이 더 낫다!"라는 무리수를 던지기도 했으니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극성팬의 소위 Something invisible론은 조롱거리가 되면서 두고두고 까이게 되었다. 이말년 만화에도 패러디로 사용되었다. 이말년 항목 참고.

야갤러들은 이에 착안해 이종범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롱했고, 나아가 이종범 사진이 올라오면 "왜 야구장 사진 올리냐?"라며 비웃으며 경기 중계 중에도 이종범이 타석에 있을 때 투수는 캐치볼만 하는데 "왜 광고는 안나오냐"라거나 수비 중에는 우익수 자리가 비어있다, 공이 우익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사진에 이종범이 투명인간마냥 존재하고 있다는 조롱도 나오고, 아예 "종범"을 사진이나 동영상이 에러로 인해 나오지 않을 때라는 뜻으로 명사화시키기도 했다.

특히 어떤 팬이 경기장의 플래카드로 신을 神이 아닌 申으로 바꾼 병크를 저지른데다, 이걸 야갤의 누군가가 이 申글자를 甲(갑)으로 읽는 바람에 별명이 종범신에서 종범갑이 됐다. 이종범 본인도 종범갑이라는 별명을 싫어한다라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덕분에 같이 플랜카드에 씌어있던 이용규는 묻혔다. 이용규한테도 용申이라고 썼었는데 이종범 효과가 너무 큰 탓일거다.의 임팩트가 어찌나 컸던지 이후 갑은 야갤의 대표격 유행어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채종범에게는 "종범乙"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8.4. 흑역사

이종범의 3대 흑역사는 기쎈비타 TV광고, 금종범, 선동렬과 같이 낸 음반이 있다.(...)
주의: 이 광고는 시청자에게 상당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 금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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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종범, 은종범, 동종범

    이종범 리즈시절=금종범.jpg 금종범은 불암콩콩코믹스에 소재로도 나왔다. 그것도 4번씩이나. 2009년 8월 20일, 2010년 6월 10일[18], 6월 16일, 이종범 은퇴만화(옷을 벗기는 남자 편), 마구마구 레전드 열전 은퇴기념 레전드 카드 발매만화.

  • 음반발매
    93년 우승 당시 모기업 해태는 우승을 해도 포상금을 두둑하게 챙겨주지 못했고 결국 단장이 김응룡 감독 몰래 추진한 일이 음반 발매였다. 연습과 녹음을 병행하느라 코피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재고만 3만장 쌓였고, 감독에게는 두고두고 까였다고 한다. 선동렬, 이종범이 다치기만 하면 코치에게 '나이트 자리 알아봐라'고 했다고. 참고로 그룹 이름은 투애니원 '투 앤 원'이다. 당시 인기가수였던 양수경씨가 같이 한 앨범. 앨범 보기


8.5. 사구와의 악연

몸에 맞는 공으로 부상도 많고 헤드샷도 많이 당한 선수. 끝내기 헤드샷을 맞은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8.6. 기타

  • 등번호 7번은 원래 김종모가 쓰던 번호였다. 1992년에 그가 은퇴하면서 물려준 것.
  • 해태 타이거즈에서 구타를 제거한 인물이다.[19] 이종범이 하지 않으니 아래의 후배들(김종국 등)도 안하게 되니 저절로 사라지게 됐다는듯.

  • 해태 타이거즈 선수생활 당시 이종범의 응원가는 펩시맨~!!! 다만 그냥 이름구호만 외치는 단순한 응원구호였다.

  • 원래는 축구 선수를 하려고 했던 모양. 근데 축구부가 해체돼서 야구로 전향한 듯.. 실제로도 축구를 꽤나 했다고 하는데, 해태에서 뛰던 시절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박종환은 이종범이 축구하는 걸 보더니 1년만 빡시게 굴리면 국가대표 승선도 가능하겠는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립서비스 성격이 강하겠지만 어쨌든 흠좀무.

  • 2009년 11월 23일 열린 야구인 골프대회에서 우승. 총 타수가 핸디캡[20] 12타를 더하고도 80타다.

  • 이종범은 몸쪽으로 오는 공을 당겨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몸에 맞는 공으로 두차례나 큰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고. 2009시즌 타격폼을 바꾼 이후로는 몸쪽공 공략이 나아진 편.
  • 2009년 11월 25일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이종범 편 1부가 방송되었다. 개인사와 프로야구 데뷔부터 일본 진출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했으며 그의 흑역사인 음반발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 1997년에 결혼하여 이듬해 정후라는 아들을 얻었고, 초등학교때부터 아버지를 본받아 야구를 하고 있다. 좌타를 못한게 아쉬워서인지 좌타로 가르치려고 하는 듯. 근데 양현종 선수가 노리고 있다고 한다. 아들 정후뿐만 아니라 2013년 신인드래프트NC 다이노스에 지명된 외조카 윤대영 군(즉 이종범이 외삼촌)도 야구선수라고 한다.# 이정후 군은 2016년에 넥센 히어로즈에 신인 1차 지명을 받았고, 이장석 구단주의 눈썰미 때문에라도 많은 넥센 팬들과 야구팬들이 기대하였다.

  • 2010년 10월 30일(천하무적 야구단 2010년 11월 20일 방영분), 당시 유일한 현역으로 일구회 멤버로서 천하무적 야구단과의 뇌경색으로 쓰러진 기아 타이거즈 김동재 코치 돕기 자선경기에 출전해 희생 플라이로 1타점을 올렸다. 천무단 멤버들이 전원 경악했다. 일설에는 정말 작정하고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무적 야구단에게 5점이나 뒤져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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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은퇴기념으로 레전드 카드를 출시 하였다. 기본 우익수 카드에 유격수로 듀얼포지션 훈련이 가능하다.

  • 은퇴가 발표되자 각종 논란과 루머가 들끓을 때 나온 은퇴기념 불암콩콩 코믹스#

  • 마구마구 레전드 카툰 - 이종범 편

  • 은퇴 후 90년대 이종범의 가장 큰 피해자최훈이 그린 은퇴기념 만화#

  • 일본에서의 프로생활과 대학교생활만 제외하면 전부 광주광역시서 보낸 광주 토박이였으나, 2012년 봄, 의 교육 문제 등으로 인해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 빵 사건의 용의자 중 한명으로 지목받았지만 은퇴 후 출연한 방송에서 스스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오히려 누군가 빵을 먹는 걸 봤다면 체하지 말라고 마실 것을 줬을 거라고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빵 사건 범인에 대해 슬쩍 단서를 던져줬는데, 덕분에 이 사람이 진범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였으나 다시 한번 반전이 일어나며 다른 용의자가 진범으로 밝혀지자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갔다며 까임 아닌 까임을 당했다.

  • 프로야구매니저에서는 레전드 이종범 영입 재료로 8그룹에 박재홍과 기아시절 마해영을 집어 넣어 빵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이종범이 프로야구 매니저의 모델이 되었을 당시 한 GM이 공지사항에 이종범과 프야매 측이 모델 계약을 체결하는 사진을 올려놓고 거기다 보이십니다라는 드립을 쳐서 유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과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21]과는 충장중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염경엽 감독은 인터뷰에서 1998년에 사망한 그의 아버지가 자신과 이종범을 많이 비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김기태 감독과는 어린시절부터 친한 형-동생 사이었다고 하니, 김기태가 그를 기아 타이거즈로 오라고 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는 수준.

  • 이상하게도(?) 엠스플 해설위원으로 위촉된 이후에는 원형탈모(...)의 대명사로 밀어주려는 느낌이 강하다. 이석재 PD가 평하기를 이종범의 활약은 원형탈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드립을 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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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KBO 1,797 + NPB 286
  • [2] 부상당하기 전 56게임을 유격수로 플레이했다.
  • [3] 대수비로 출전했다.
  • [4] http://www.youtube.com/watch?v=QrcDTB8DUtA 96년 8월 23일 대전 한화전에서 있었던 일. 임창용의 공을 받았다.
  • [5] '신세계 교향곡'으로 알려진 교향곡. '이~종범 이~종범 안타 이종범' 2회 반복. 원래 이전에 정경배가 사용하던 곡을 기아에서 가져다 써서 알력이 생겼었는데 당시는 SK팬이 소수라 묻혔다.
  • [6] 2011 시즌에 사용.
  • [7] 대부분 야구 갤러리에서 나온 별명. 2009년 시즌 이후에 급격히 늘었다.
  • [8] 神(신)을 申으로 쓴 피켓을보고 그걸또 申을 甲으로 잘못읽은 야갤러 때문에 종범甲(갑)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 [9] 팀의 타격순위는 7위이지만 득점은 압도적 꼴찌다.
  • [10] 정확히는 김응용 감독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자 스승이 물러난 곳에 남아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 짐을 쌌다고 한다. 구단 내부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고. 기사
  • [11] 김기태 신임 감독이 직접 이종범에게 코치로 올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 [12] 다른 포지션이야 그렇다 치고 포수 출장은 그의 강견과 유틸성을 보여주는 단면. 90년대에 경기 중 포수 부상으로 교체 포수가 없어 포수로 두 경기 교체 출전한 적이 있다. 이 때 2루로 도루하는 주자를 잡기도 했는데 그 주자가 바로 걸사마 김재걸. 짝퉁 포수 우습게 보다 횡사 그래서 이종범의 도루 저지율은 통산 100%다.(1회 시도/1회 저지)
  • [13] 본인도 언제든지 투수로 등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 [14] 기록된 실책은 총 27개로 유격수 실책 시즌 1위. 이 때문인지 프로야구매니저에서 97년도 이종범은 수비 히든이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다른 능력치가 워낙 좋기 때문에 수비에만 몰빵으로 투자하면 어느 정도 무마가 가능하긴 하다
  • [15] BEST9을 뽑는 것이 골든글러브라면 매직글러브는 수비를 잘하는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 수비 코치들의 투표로 정해진다. 다만 이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부상 이후 수비가 그다지 좋지 못했던 박정태, 그리고 수비를 못하기로 유명한 공필성이 수상했단 점에선 생각을 해봐야 할 부분. 결국 수비를 위해 만든 상인 주제에 공격력의 네임밸류에 묻힌 평가를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폐지됐다
  • [16] 물론 후배인 유지현이 본인이 더 잘했다고 방송에서 대놓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유지현도 이종범>유지현인걸 인정했다!" 라고 하기보단 예의상 한 말로 보는편이 옳다.
  • [17] 비교를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한 쪽의 가치가 폄하된다.
  • [18] 안영명을 환영하는 선수들 사이에 끼어있다. 허구연돔구장 사랑 못지 않은 불암갑의 금종범 사랑 기승전금
  • [19] 김성한이 은퇴하기 전까지 해태에서는 구타가 거의 일상이었다!
  • [20] 실력이 낮은 선수에게 과거의 시합기록에 기초하여 더해주는 것
  • [21] 참고로 두 사람은 충장중-광주제일고 동기동창인 절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