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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깡패)

last modified: 2015-03-24 17:43:20 Contributors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5월 21일, 공수특전단 대원들에 의해 시내 한복판에서 조리돌림 당하고 있는 이정재(맨앞) 등 당시 깡패들의 모습. 참고로 현수막에 "나는 깡패 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니다."라고 써 있는데 맞춤법을 몰라 그렇게 쓴 게 아니고 당시에는 '~읍니다.'가 맞는 표현이었다.[1]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이 모습을 본 김두한이 나중에 회고하길, "그 때 내가 싸웠더라면[2] 정재가 저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라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왔으며, 같은 드라마에서 국회에 난입한 이정재와 한번 맞붙으려다가 참고 김두한이 물러난 적이 있었다.[3] 유지광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무풍지대에선 김두한이 "잘못했어. 그때 정재가 국회에 들어왔을때 그놈의 국회의원 뱃지고 뭐고 다집어던지고 정재를 눌러야했어....그놈의 이정재도 안 죽고, 유지광이도 안 죽고....눌러야했어...그래야만 그놈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라는 대사를 한바 있다. 그만큼 아주 비참하게 쳐다봤던 모양이다.

이정재(李丁載, 1917년 1월 6일~1961년 10월 19일)

Contents

1. 개요
2. 미디어믹스
2.1. 드라마 야인시대에서의 이정재
2.2. 고자라니에서의 이정재


1. 개요

한국조직폭력배. 이승만 정부 시절에 정치깡패로 이름을 날렸다. 단성사 저격 사건 및 야당 정치인들을 향한 정치테러 등을 지시한 배후이기도 하다.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힘이 굉장히 셌다고 한다. 마을에서 씨름대회를 개최하면 그날 상품으로 걸려진 황소는 전부다 그의 몫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 본래 처가살이로 동대문에서 광목 장사를 했으나 그 괴력이 눈에 띄어 김두한의 부하로 주먹세계에 입문, 대한청년단[4] 종로구 동부단장직을 맡게되면서 본격적으로 동대문 시장의 이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후 김두한의 정계진출로 종로파의 조직이 사실상 정리된 이후 시장점포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조열승, 차석환을 포섭하여 '가족회'라는 조직을 결성. 6.25 전쟁 이후 파괴된 시장의 중심지 일대 3000평을 '광장주식회사'로부터 매입하여 점포를 짓고 상인들을 입주시키는 한편으로 상인들을 모두 '가족회'의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이처럼 점차 자신의 세력을 강화시킨 이정재는 상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하여 과거 건달들이 폭력행위 및 협박, 공갈로 상인들에게 보호세를 뜯는 폐단을 없애고 상인들의 애로사항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해주어 한번도 상인들의 원망을 산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상인들의 원망을 사지 않는 한편으로 실은 절대 밖으로 노출되지 않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었는데, '광장주식회사'로부터 헐값에 거둬들인 땅을 상인들에게는 고가에 판매하여 폭리를 취한 것을 비롯, 시장의 전기/전화 관리세에 자가발전을 구실삼아 당시 가구당 300환에 불과하던 관영요금을 2000에서 2500환까지 거출하고 전화기 교환을 핑계로 7000환을 부과하는 등의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이러한 내막을 모르는 상인들에게서 이정재의 평판은 좋을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정재의 세력은 날로 거대해져 경마장에까지 미쳤는데, 그가 체포되기 직전까지 시장의 규모는 종로4가에서 6가까지 이르는 7만평 규모에 2900여 점포를 아우르며 상인의 수는 약 1만 2천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위세가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쉽도록 동대문파의 조직도를 기재한다. 이러한 거대한 규모 뿐만아니라 당시 혼란한 시대상으로 인하여 상당수의 총기 또한 보유하고 있었다.

  • 위원회(최고급 간부)
    • 3인위원회 : 이정재(두목), 조열승(부두목), 임화수(부두목)
    • 7인위원회 : 상기 3인 외 오영환, 고일심, 김양수, 차석환

  • 참모부(감독반, 정치반, 사법반, 양성반, 사무반으로 구성)

  • 외곽부(임화수가 주도하는 반공예술단)

  • 행동부(서울시내 하부조직 10개 파로 구성)
    • 특수부대(이석재 외 7명)
    • 종로파(심종현 외 20명)
    • 소공동파(홍영철 외 20명)
    • 서대문파(최창수 외 30여명)
    • 광화문파(장영빈 외 50여명)
    • 종로4가파(유지광, 강승일 외 50여명)
    • 경마장파(이창수 외 50여명)
    • 동대문시장파(장세규 외 50여명)
    • 평화극장파(이천일 외 100여명)
    • 청년도장파(이창수 외 300여명)

이런 거대한 이권을 쥐게 된 이정재는 동대문 광장 입구에 당시 시가 1억환에 달하는 3층 건물을 짓고 옥상에 도장을 설치하여 부하들을 육성했다. 서북청년회 출신 상이군인들에게 점포양도를 요구하던 시라소니를 이 사무실로 유인하여 손도끼 등의 흉기로 난자한 '시라소니 린치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의형제인 곽영주가 경찰이 되고 싶어하자 이정재는 경찰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고 곽영주를 경사로 임관시켰다. 그후 곽영주가 이승만의 눈에 띄어 이승만의 경호를 담당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이승만의 최측근이 되었고, 이정재의 위세는 자유당 이기붕의 권력을 업고 정계에까지 미치게 되어 야당인사들에 대한 집회방해, 이기붕의 자유당 의장 취임 공작 등 수많은 정치테러를 벌였다.

이때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제3세력(야당인사)의 동시다발적 암살기도를 획책하기도 하였음이 혁명재판 당시 밝혀졌는데, 당시 암살대상이 되었던 인물로는 김태선, 이순용, 신익희, 조병옥, 장택상, 김상돈, 백두진, 문봉제 외 40여명 가량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당시 이정재의 참모총장격이었던 김동진이 경찰에 밀고함으로 무마되었다고 하는데, 이 보복으로 김동진은 단성사에서 영화 '형제는 용감하였다'를 감상하고 나오던 도중 조직원 이석재에게 저격을 받고 복부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이 사건이 야인시대 등 드라마에서도 주요 사건으로 언급되는 '단성사 저격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검찰의 수사도중 자유당의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이정재는 기소유예를 받고 풀려나게 된다. 이 사건은 1961년 혁명재판때 고대생 피습사건과 더불어 재수사되어 이정재의 발목을 잡게된다.

그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않고 정계진출까지 꿈꾸고 있었는데, 고향인 이천에서 민의원 출마를 계획했으나[5] 당시 지지율이 바닥이던 이기붕에게 출마를 반 강제적으로 양보하게 된다. 이때 이기붕과의 마찰로 인해 이정재는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치솟던 이정재의 권력도 이때를 기점으로 내리막을 걷게된다.

이후 직함만 1인자 자리를 유지한채 권력을 잃은 이정재는 자택에서 칩거하게 되고, 이틈에 처세의 달인 임화수가 실질적인 동대문파의 1인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임화수에 관한것은 해당항목 참조.

그러던 와중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군사정부의 조직폭력배 척결사업 대상으로 지목되어 혁명재판부에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제7조1항(단체적 폭력행위)외 11개 범죄행위로 기소되어 범죄단체 수괴로 인정,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라고 쓴 플래카드와 함께 백주의 시내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1961년 10월 1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44세.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대략 이렇다.

"나도 잘못은 있기에 억울하다는 말은 안한다. 그런데 죄다 나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자신은 억울하다는 이[6]들이 있다. 그들에게 적어도 자기 잘못은 인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랫동안 정치깡패로 욕만 먹고 묻혀졌더니만 몇몇 지인들 주장으로 그 홀로 욕만 다 먹기엔 억울하다고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야인시대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로 이런 주장이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묻혀졌다. 더불어 이정재를 두둔하는 이들은 임화수를 두둔하는 이철승같은 이들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본다. 그들 주장에 의하면, 일자무식으로 깡패 영화제작자이던 임화수를 정치계에 연결시켜 주었더니만 나중엔 죄다 이정재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오리발이나 내밀었기에, 법정에서 같은 처지이던 유지광이 "정재 형님 덕에 네놈도 은혜를 입었건만 이렇게 배신할 수가 있나?"라면서 분노에 찬 소릴 지르며[7] 욕설을 해댈 정도였다...지금도 임화수를 두둔하는 이들을 죄다 이정재 탓만 한다고 굉장히 싫어한다고.

1989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무풍지대제2공화국, 제1공화국에서는 조경환이 이정재를 연기했었다.[8] 그리고 유명한 드라마인 야인시대에서의 이정재 담당 배우는 청년기 김혁, 장년기부터 마지막까지는 김영호가 역할을 맡았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시라소니와 맞먹을 정도의 실력자로 비춰지는데 실제 싸움 실력은 이 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9] 실제 이정재는 주먹패의 이미지보다 모략가의 이미지가 강했다고 한다.

2. 미디어믹스


mbc 드라마 왕초에서는 정준호가 연기하였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김혁, 김영호가 연기하였다.

2.1. 드라마 야인시대에서의 이정재

1부의 배우는 김혁[10], 2부의 배우는 김영호. 전용 테마는 달의 약속(피아노 버전).

이천씨름꾼 출신으로 본래 지방 주먹패 장도리의 부하였다가 김두한의 부하가 되었다. 첫 등장 시 김무옥과 팔씨름을 하는데 그를 압도할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먹세계의 선후배 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지기도 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라는 고학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 등 다른 주먹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무전과에 고보 출신이라 김두한 덕분에 형사가 되어 가라데 교육 중에 사범과 제자를 능욕한다거나 [11] 신영균의 부탁으로 문달영의 신상을 파서 증거를 확보한 다음, 두번째 첩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같이 현자타임을 갖고 있던 문달영을 체포해서 거꾸로 매달고 밤새 때린다. 더 나아가 사법계 팀장과 미와 경부 앞에서 문달영을 심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 1부에서는 그럴 듯한 활약이 없었으나, 2부에서는 김두한, 시라소니와 함께 3강 체제를 펼치며 극의 진행에서 대단히 중요한 흐름으로 급부상한다. 6.25전쟁 후 김두한우미관패를 해산하고 정계로 진출한뒤에는 아무래도 주먹에서 손을 씻게된 김두한의 활약이 줄어드는 대신 이정재의 극중 비중과 심리묘사 부분이 상당히 늘어나, 사실상 이정재가 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할정도이다.

더불어, 그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만큼 2부부터는 극의 재미를 위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미화되었음을 유의하면서 읽어야 한다(...). 지금 당장 위의 항목만 읽어봐도... 또한 이정재의 싸움 실력이 실제보다 과장되었음도 유의할 것. 이 작품 내에서도 비슷하긴 하지만.

1편에서 일부러 김무옥과의 팔씨름에서 져 준다거나, 2편에서 린치를 당하고 복수에 나선 시라소니에게도 일부러 져 준다거나.. 물론 가장 크게 실패한 전략은 자유당과 손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멍청한 것은 그나마 똑똑하고 동대문 중 가장 통찰력이 뛰어난 김기홍의 말을 무시하고 자유당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지저분한 짓을 도맡은 것이다. 그 지저분한 짓 덕분에 이정재는 사형의 빌미를 만든 셈. 주위에 제일 똑똑한 유지광이나 낙화유수는 야인시대에서 책략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그 둘은 서열상 고문 위치에 서지도 못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이정재에게 도움이 되었을 정도의 능력이 될 지는 몰라도 그럴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정재의 계획에 수동적으로 일관하기만 한다.

1부 마지막 무렵부터 경찰에 몸담아온 사람[12]으로서 2부 시작쯤의 해방정국에서도 경찰 일을 계속한다. 네티즌들에게 합성관련으로 많이 알려진 아래 항목임화수, 곽영주의 첫 출연이 바로 이 당시의 일.

해방 전에는 김두한의 부하였기 때문에 김두한에게 형님 대접을 하였으나 해방이후 김두한이 이정재에게 '나이도 나보다 한 살 더 많으니 그냥 친구 먹자'고 해서 김두한의 부하에서 탈피, 김두한과 대등한 관계가 된다.[13] 이후 김두한과 말을 까고 지내게되는 바람에 한때 같이 동등한 위치에서 김두한을 모셨던 신영균을 비롯한 김두한의 부하들에게 눈총을 받기도.[14] 그 외에도 6.25 당시 시라소니와 부산에서 연을 맺어 의형제가 되기도 한다. 참고로 이전까지는 이정재는 시라소니를 은근히 무시했었다.

건국 직후에는 경찰에 몸담으면서 정진영을 비롯한 좌익들을 소탕하다가 그 나름대로 생각하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반민특위에도 참가하였으나 도리어 노덕술의 예언대로 반민특위의 해체 과정에서 고문만 당하다가 나오게 되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경찰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흑화되기 시작한다. 김두한과의 술자리에서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해"라고 푸념했고, 그 뒤에는 종로회관에서 만취한 상태로 무대 위에서 희망가를 부르는데 그렇게 망가지는 모습을 본 김두한이 옆에 있던 김영태에게 딱하다는 듯이 "정재가 저러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라고 했을 정도.

자기가 경찰에 몸담고 있던 시절 대준 연줄로 드디어 경찰에 들어간 곽영주에게도 "연줄을 잡았으면 끝까지 잡고 놓지 마라"[15]는 충고를 남기고, 이것을 새겨들은 곽영주는 이승만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아 출세 일로를 걷게 된다.

경찰을 그만둔 뒤로는 완전히 세상만사에 대한 미련을 떨친 듯 당시 여자나 하는 직업으로 취급되었던 포목점을 개업하고 소탈한 삶을 살지만 오래가지 않아 6.25 전쟁이 터졌고 그는 괜찮겠지, 괜찮겠지 어영부영 하다가 피난 기회를 놓치고 만다. 결국 한때 경찰에 몸담았던 경력으로 인해 인공 치하 서울에서 또 다시 고초를 겪고 사형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후에 부하가 될 김기홍의 활약으로 구조된다.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군수물품 가게를 하며 계속 조용히 살기를 희망했으나 이때 부산 패거리가 찾아와서 깽판을 놓는 통에 한차례 싸우기도 했으며 밀리는 중에 시라소니가 난입했다. 실제로 이 때 이정재는 부산 깡패 5명에게 당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5명을 쓰러뜨리고 난 후 20명이 몰려와 밀리다가 시라소니가 끼어들어 둘이 함께 힘을 합쳐서 20 명으로 제압하게 나온다. 물론 실제는 시라소니가 5 명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이정재를 구해줬었다.

이후 김기홍을 비롯한 지인들과 임화수, 도끼를 비롯한 부하들의 거듭된 설득도 있었고 자기 자신도 마침내 내면에 숨어있던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가 발동, 곽영주의 빽과 이정재의 명성을 듣고 몰려온 주먹패들을 규합해 동대문 상인 연합회를 조직하여 회장직에 오른다.

이후 세력을 늘리기 위해 이기붕의 부탁으로 자유당 정권과 결탁하여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이정재 자신은 정치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 이천의 민심을 얻는 작업을 병행한다. 그러나 김기홍은 조만간 자유당이 망할거라며 이기붕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조언했다. 그 조언을 듣지 않자 김기홍은 이정재와 결별해 동대문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켈로 부대원들에게 점포양도 및 자본금 500만 환을 요구하는 시라소니가 부하들에게 다굴을 당해 반병신이 되어[16] 명동파와 대립하게 되었고, 자유당에 맞서 싸우는 김두한과 사이가 엄청나게 나빠지기도 했다. 예전만 해도 김두한과 서로 같이 식사도 할 정도로 친했으나, 나중에는 아예 국회의사당에 쳐들어 가서 김두한과 박터지게 싸우는현피 지경에 이른다.

자유당과 곽영주의 힘으로 명동파에 승리하여 삼우회로 주먹계의 통일까지 이루는 등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으나 차기 부통령 선거에서 가망이 없어진 이기붕이 경찰력을 동원하여 이천 선거구를 빼앗아가자 토사구팽 당한 분노로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해 자유당에 복수하려 하나 마침내는 곽영주의 설득과 권력의 힘에 굴복, 입후보권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고 만다.

이로서 남자로서의 모든 야망을 포기한 이정재는 부와 권력의 허무함을 느끼고 신변을 정리하고 유지광에게 임화수를 따를 것을 부탁한후에 회장직을 임화수에게 넘겨준 뒤 자신은 회장직에서 은퇴, 교외에서 흉가를 헐어 작은 저택을 짓고 직속 경호원이었던 이억일과 함께 농사일로 소일한다. 이 때의 나레이션이 "그는 다시금 야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직후 임화수와 자유당이 개입한 3.15 부정선거에 의해 4.19와 5.16이 연달아 터지며 3번이나 연달아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시라소니가 자신이 다굴당한 일을 없었던 일이라고 증언해주고,[17] 유지광이 스스로 이정재의 죄를 뒤집어 쓰려고 했고, 이전에 저지른 일들만으로는 사형감은 아니라서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임화수가 회장일 당시의 악행까지 덤터기를 쓰고, 임화수가 전부 이정재가 시킨거라면서 화랑동지회 등등을 낱낱이 불어버리는 바람에 사형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그 이후는 조리돌림후에 마지막회 바로 전 화에서 담담하게 교수형을 받고 허무하게 사망. 유언은 "내가 키우다시피 한 몇몇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증언으로 나를 무고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을 거요. 이미 엎지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아들대에서도 원수로 살지 않는 것이 나의 마지막 바램입니다."[18] 그의 죽음을 접한 김두한이 시라소니, 이화룡과 함께 술을 마시며 남긴 눈물 섞인 평은 "정재...이정재...! 넌 그렇게 죽을 놈이 아니었어, 임마!".

2.2. 고자라니에서의 이정재

안된다고 했잖소!

많이 합성되지는 않지만[19] 그 역시 고자라니와 관련이 있다. 김두한이 중앙극장을 습격했을때, 경찰들을 이끌고 와서 사태를 수습했다. 이때 김두한을 보고도 그냥 눈감아 주는 바람에 심영이 다시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 뒤 심영의 행방을 알아낸 동료형사에게 심영이 고자가 됐다는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비웃고, 심영을 취조하기 위해 병원에 가서 심영을 우롱한다. 심영은 그에게 보호를 요청하나 그는 골아프다며 거절한다.

심영에겐 김두한과 한패로 비치겠으나[20] 이건 이념을 떠나 자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행동할수밖에 없다는걸 유념하면 그렇게 처신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경찰 수뇌부가 친우익적이라는걸 감안한다면, 이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선 심영을 그냥 방치하는것이 이정재 입장에선 적절한(?) 처신이라고 할수 있겠다. 거기다 애초에 이정재는 좌익을 싫어했고 김두한이 심영을 죽일거라는것도 이미 알고 일부러 방치한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김두한과 한패였다는거. 심영이 원망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하지만 이정재에게는 씹어도 상관없는 것.

그리고 얼마 후, 정진영이 찾아와서 심영이 어디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했으나, 이정재는 쿨하게 씹으면서 오히려 정진영에게 왜 공산주의 따위를 해서 김두한과 싸우냐며 욕을 한다.

심영 사건이 진정된 후, 미군들은 이정재를 파면하라며 난리를 피웠지만 결국 이정재는 자기 자리를 지켰다. 이정재는 경찰 들어가게 빽좀 써달라는 곽영주의 애걸복걸을 씹는 상황에서 심영의 상태를 알려준 김 형사의 말을 통해 심영의 퇴원과 함께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합성시 김형사와 이정재가 이불을 들쳐 심영의 그곳을 보는 장면이 가장 많이 쓰인다. 물론 합성물이 다 그렇듯이 라치오 장면이나 자꾸 이불을 들쳤다 내렸다하는 성추행(...)장면으로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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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88년 한글 맞춤법을 고시하면서 '~습니다'로 바뀌었다. 때문에 386세대-대략 90학번-이전 어른들은 필기를 할 경우 습관적으로 '~읍니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내용은 읍니다 항목을 참조할 것.
  • [2] 그리고 다시 깡패일을 하지못하도록 박살을 내서 주먹계에서 손을 씻도록 하였더라면
  • [3] 유지광이 이정재의 말씀이라며 권총을 은밀히 보여줬고 이를 본 김두한은 씁쓸하게 웃으며 유지광과 이정재를 깐다.
  • [4] 1948년 10월 4일 창립된 반공주의 우익청년 단체이다. 단장은 신성모. 감찰국장 겸 건설국장은 김두한이었는데, 당시 김두한의 부하들중 가장 고학력이었던 이정재를 김두한이 높게 평가하여 이 직책을 맡겼다. 참고로 이정재는 휘문고보-오늘날의 휘문고등학교- 출신.
  • [5] 이정재는 오래전부터 이천에서의 정계진출을 꿈꾸었는지 부하들에게 '길가다 이천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으면 발벗고 도와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 [6] 영화판을 주름잡던 임화수까지도 재판에선 난 이정재가 시켜서 학생들을 구타하게 했다고 주장했을 정도이니...다른 정치인들이나 그의 부하들이야 오죽할까.
  • [7] 아예 당시 유지광은 뚜껑이 올라갈대로 올라간 상태로 달려가서 임화수를 패던지 하다못해 두 눈깔에 손가락을 박아 장님으로 만들어버릴까 할 정도로 이성을 잃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곁에 있던 4.19 당시 발포를 명령한 내무부장관으로서 임화수나 이정재와 같이 교수형으로 죽게되는 최인규가 말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봐야, 이정재만 역시 정치깡패 왕초라면서 더 욕먹이는 짓."이라는 말에 참았다고 회상했다.
  • [8] 조경환은 이전까지 MBC에서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비롯하여 전속으로 활동하다가 이 드라마로 KBS에서 처음 나오게 된다고 토크쇼에 나와 이야길 했다. 무풍지대를 찍을 당시 이정재를 기억하던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은 대체로 드라마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는 투로 보았다고(이철승이 무풍지대나 야인시대를 왜곡이라고 발악거리던 거와 대조적) 회고했다.
  • [9] 부산 깡패 5명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이정재를 시라소니 구해주었고 이정재를 납치하였던 켈로부대원은 4명이었다고 한다.
  • [10] 지구용사 벡터맨 제1기 베어다(...).
  • [11] 제자와의 결투에서 씨름 기술 비슷하게 상대를 공격하더니 마지막으로 파일드라이버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사범과 한 판하자고까지 말했으니..
  • [12] 1부에서 김두한은 헌병대사건에서 무사히 목숨을 건져나온뒤 조선의 주먹들이 징용에 끌려가는 것을 막기위해 총독부와 협상을 하게되는데, 이를 통해서 얻은 총독부와의 연줄을 이용해 미와 경부를 엿먹이기위해 자신의 부하들 몇몇을 경찰쪽에 집어넣게 된다. 이정재는 그중 한사람으로 등장한다. 뭐 이정재의 첫등장은 김두한의 부하로서가 아니라 조선 주먹들의 징용대책회의에 참석하기위해 경성으로 올라온 지방주먹들중의 하나로서였지만.
  • [13] 실제 서열은 김무옥이나 문영철과 비슷한 수준이다.
  • [14] 단 이정재가 경찰에서 일할 때는 별 일이 없었고, 이정재가 주먹패 두목이 된 이후의 일이다.
  • [15] 이후 이정재가 흑화되었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정재가 붓글씨를 쓸 때 구겨버리거나 가위표한 무풍지대나 사필귀정이 그렇고, 김동진 사건 이후 이폭역폭 (以暴易暴)도 그렇다.
  • [16] 야인시대 드라마상에서는 이후 시라소니가 재활해서 이정재에게 도전, 막상막하로 겨루던 중 이정재가 스스로 시라소니에게 항복하고 사죄를 하자, 시라소니는 마음을 바꾸고 이정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물러간다. 실제 시라소니는 총으로 이정재를 죽이려다가 마음을 바꿔 포기하고 종교에 귀의하였다.
  • [17] 원래 이 때 이정재는 시라소니의 용서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만 드라마상에선 눈물을 삼키는 장면으로 나왔다.
  • [18] 이 부분은 드라마 무풍지대에서 나온 이정재의 유언와 같다.
  • [19] 대표적인 출연작(...)은 역시 고두익의 숨겨진 명작 중주.
  • [20] 물론 이정재는 한때 김두한 밑에 있었고 처음부터 김두한이 심영을 죽일거라는것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