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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방

last modified: 2018-11-14 00:51:46 Contributors

무신정권의 집권자
이고
이의방
정중부
이의방 정중부

李義方
(? ~ 1174)
고려무신. 무신정권의 첫번째 집권자.

Contents

1. 개요
2. 무신정변
3. 정권 장악
4. 의종 시해와 반란
5. 처참한 말로
6. 집권기에 일어난 반란의 영향
7. 무인시대에서의 모습


1. 개요

본관 전주. 전라북도 전주 출신이다. 무신정권의 첫 번째 집권자. 이고가 이의방이나 정중부보다 강했던 때가 있었으나 집권자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너무 짧기도 했고, 사실상 세 명이 서로 눈치보며 견제하고 있었던 시기로 보는 것이 맞다.

2. 무신정변

1170년 8월에 무신정변 당시 직책은 근위대 하급장교에 해당하는 견룡행수(牽龍行首)였다. 견룡군은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부대로, 로마 제국의 예를 봐도 알수 있지만 이런 근위 부대는 왕실 근처를 쓸어버리기엔 최적의 위치였다는 이야기. 그는 이고, 채원 등과 하급 장교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정중부 등 고위장군들이 온건론을 주장할 때, "문신의 관을 쓴 놈들은 한낱 서리라도 싸그리 죽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문신들을 철저히 색출, 숙청했다.

의종을 폐위하여 9월에 그의 동생인 익양공을 명종으로 옹립한 후 응양 용호군 중랑장이 되었다가 곧 대장군 겸 전준감에 올라 정권을 장악해 최초의 무신집정이 되었다.

10월에는 외가의 고향인 금구를 현으로 승격시켰으며, 정중부, 이고와 함께 벽상공신으로 책봉되었다. 1171년 1월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대장군 한순, 장군이었던 한공, 신대예, 사직재, 차중규 등이 모의하자 차중규를 유배보내고 나머지는 죽였다.

3. 정권 장악

1171년 1월에 역성혁명을 도모하던 이고를 제거하고, 그 직후 4월에 다시 모반을 도모한 채원을 제거했다. 이고와 채원의 반역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을 본다면 둘이 이의방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천하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이의방은 중방(重房)을 강화하여 고위급 무신들을 끌어들이는 유화책을 시도했다.

4. 의종 시해와 반란

1173년 8월에 동북면병마사 김보당과 살아남은 문신들이 의종의 복위를 내세워 9월에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10월에 이의민을 경주로 보내 의종을 시해하면서 이는 대대적인 역풍을 맞아 조정 여론 등이 악화되었고 승려들의 난, 조위총의 난이 일어났다. 국사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데 이의방과 이의민은 우연히 이름이 비슷할 뿐 형제 관계가 아니다. 이의방은 전주 이씨, 이의민은 정선 이씨로 본관부터 다르고 출신 배경도 매우 다르다.

1174년 1월에 귀법사의 승려 100명이 성 북문을 침입하자 이를 반격하여 해산시켰으며, 귀법사, 중광사, 홍호사, 홍화사 등 여러 절의 승려들 2천명이 모여서 성문을 공격하자 군사들을 이끌고 이들을 죽이면서 그 절들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귀법사는 광종, 홍호사는 선종이 창건한 절이다. 이 절들은 개성 부근에 위치한 근왕 사찰로서, 근왕의 의도로 이의방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말리는 형인 이준의를 죽이려고 했지만 정중부의 만류로 넘어갔다. 이후 좌승선이 되면서 딸을 태자비로 만든다.

5. 처참한 말로

집권 후 정치적으로 입김이 세지자 딸을 태자비로 보내는 등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1174년 9월에 일어난 조위총의 반란으로 절령 이북 40여 성이 호응하자 진압을 위해 보낸 원수 윤인첨이 패하자 서경 사람인 상서 윤인미, 대장군 김덕신, 장군 김덕재 등 여러 사람을 죽였다.

이후 최숙을 먼저 파견하고 직접 출진하였지만 추위로 인해 패배하면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귀환하였으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12월에 선의문 밖에서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의 부하 종참에게 암살된다. 그의 가문은 멸문당했고 딸 또한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 태자비에서 쫓겨났다(태자(강종)가 왕위에 오른 후 사평왕후로 추존한다.). 어째 우리 역사엔 장보고도 그렇고 이자겸도 그렇고 권신이 딸을 왕가에 시집보내려다 좋은 꼴 당한 인물이 별로 없다.

일설에는 십팔자위왕의 도참설을 신봉하여 왕이 되고자 하였는데 정작 자신은 왕이 되지 못하고 역적으로 죽었지만 그의 동생인 이린이 이의방이 척살당한 후 동북면으로 도망가 전주 이씨 집안을 존속시켰고, 결국 이린의 집안에서 태조 이성계가 탄생고려를 무너뜨리면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6. 집권기에 일어난 반란의 영향

무신정변의 주동자이자 무신정권의 첫번째 집권자이기도 해서 그런지 무신정권 후대의 집권자들과 비교해봐도 비정상적으로 이의방의 집권기간 동안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

평양이 1174년 9월에 일어난 조위총의 반란으로 완전히 초토화되어 묘청의 난 이후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서경세력이 산소호흡기를 제거당해 완전히 몰락한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진압은 정중부 집권기에 되었으나 이미 이 시기에 고려 제2 도읍이라는 타이틀은 없어지고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종교가 국가 정책에 정면으로 클레임을 걸어 집권자를 살해하려 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의방 집권기 때부터이다.

이의방 집권기에 수많은 반란이 일어나고 진압당해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과 이에 동조하는 기존의 구세력들이 세트로 사라지면서 후대의 집권자들은 '민란'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반란을 접하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반란이 중앙정부에 반감을 가진 지방 핵심 세력에 동조한 지방군대의 군사행동이었다고 정의한다면, 민란의 성격은 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주동자부터 군대를 형성하고 있는 병사들까지 전부 백성들인 형태였다.

진압 과정 또한 달랐는데, 기존의 반란이 주동자를 포함한 핵심 세력만 제거하면 의외로 쉽게 진압되는 형태를 지니는 반면, 민란의 경우에는 핵심 세력을 제거한다고 해서 진압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반란군의 세력이 불어나는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단순히 김보당, 조위총 같은 반란 수괴들만 잡아 죽일 궁리만 하면 되었던 이의방의 경우와 달리 함부로 진압했다간 반란 규모가 눈덩이 처럼 커질 수도 있는 민란 진압 방법을 놓고 골머리를 앓았을 후대의 무신정권 집권자 중 누가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까?

7. 무인시대에서의 모습


KBS에서 방영한 전 사극 무인시대에서는 서인석이 연기를 맡았다. 공홈의 설명에 의하면 "공포정치의 철퇴를 휘두른 고려의 로베스피에르이다". 극중에서는 주무기인 도깨비 방망이 철퇴를 들고 다니면서 숱한 사람들의 머리를 박살냈다. 이 사실은 정도전 제작발표회 당시 출연자인 서인석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WANG☆ 光★ 취ㅣ☆. 여→기→ 대렿하였소히따↗

환관 왕광취의 목을 들고 의종에게 찾아가 "폐하, 왕광취를 기다리고 계셨사옵니까?"라면서 말하는 것과 의종에게 왕광취의 목을 던지며 "왕광취, 여기 대령하였소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꽤 유명하다. 그 후 삿대질을 하며 내뱉은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포스 역시 후덜덜하다. 특히 이 대사는 한 때 상당히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명대사였다[1]. 하지만 모 드라마로 인해 개그장면으로 전락하였다

동영상 1분 무렵부터 차례대로 나온다.

처음은 이고, 채원과 함께 황제 의종을 폐위시키고 자주적이고 강한 고려를 만들기 위해 거병했다는 대의를 관철하려 하나, 점차 품었던 대의를 잊고 권력을 탐해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거병 직후 의종 대신 역량 있는 대령후 왕경을 옹립하려고 하나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익양후를 왕위에 올리게 된다.[2] 초반부에는 상당히 인간적이고 청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천민 출신이라며 동료들에게 따당하는 이의민을 보살펴 주거나 강직한 문신 문극겸을 눈여겨 보고 살려주는 한편 정치적으로 보호해주거나 다른 무인들의 부인들과 함께 사치를 부리는 아내를 꾸짖는 등의 모습이 그 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자신을 믿고 의종을 죽인 이의민을 버릴려 하기도 하고 조강지처인 아내는 나몰라라하고 전왕의 간사한 애첩과 수작을 부려 왕위를 찬탈하려 하는[3] 권력을 탐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나중 일이지만 이의민도 애첩에 빠져 조강지처를 나몰라라 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초반부 이의방의 처와 이의민의 처가 당시 무신집안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형님, 아우하며 의지하며 지내는 안습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남편들이 흑화하면 할수록 아내 쪽도 마찬가지여서 이의민이 의종을 죽여 이의방도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남편은 어차피 내 남편은 당신 남편 명령을 따른 것 뿐이니 우리들을 내칠 순 없는 것이다고 하는 이의민의 처에게 이의방의 처는 겉으로는 약도 챙겨주고 잘 대해주지만 속으로는 물귀신처럼 끌어들이는구나하면서 불쾌해한다. 하지만 권력에 타락해 가긴 해도 인간성이 완전히 소멸한게 아니라 이의방의 정치적 입지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는 무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정에 휘둘려 의종을 죽인 이의민을 버리지 못하고 태후(공예왕후)가 이의방을 다루기 위한 목줄로 쓰기 위해 첩으로 온 임씨가 정균을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임씨를 해방시켜주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양면성이 무인시대의 이의방의 특징이다. 때문인지 이의방이 죽고 측근들도 대부분 죽거나 정중부에게 줄을 설 때도 이의민과 그의 처는 이의방의 남은 가족을 도와주었다.

서인석의 연기력이야 두말할 것 없었지만 무인시대의 방영 시작 날짜가 태조 왕건이 종영한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서인석 하면 견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의방 연기에 대해서도 "견훤이랑 똑같다", "견훤이 부활했다" 는 평이 많았다. 이의방이 의종이 폐위된 후 비어있는 용상에 앉아 망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왠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왠지 "이보시게 파진찬"이라는 대사가 나와야 할 것 같다. 또는 "신검이가 또 졌어!!라고 화내는 대사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초반에는 과격한 액션씬이 많다보니 견훤의 모습과 많이 겹치지만 아무래도 황제의 이미지와 그냥 권력을 좀 가진 무신의 이미지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의방 집권기 후반으로 갈수록 견훤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는 한다. 실제로 서인석도 그 견훤 얘기 안 들을려고 많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이 무인시대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사극에서 서인석만 보면 무조건 견훤 얘기부터 꺼내는 걸 보면 아마 한동안은 견훤 꼬리표를 떼기는 어려울 듯하다. 더구나 태조 왕건 이후 11년이 넘어서 출연한 사극인 대왕의 꿈에서도 견훤 드립이 나올 정도다. 비슷하게 김영철씨도 사극에 나올 때마다 꼭 궁예 얘기가 따라나온다. 하지만 이쪽은 심영덕에 김두한소리를 많이 듣는다

생각보다 빠른 51회에 퇴장했다. 시신으로의 등장까지 치면 52회. 각색을 거친 장면이기는 하지만 죽을 때는 혼자서 정균의 군사를 수백 명 쳐죽이며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하루 종일 사투를 벌이다가 탈진하여 죽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드라마에 나온 대부분의 무인 집권자들의 죽음이 상당히 미화 혹은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이의방은 특히나 드라마틱하게 각색되었다. 그냥 칼 한 번 맞고 죽게 만드는 것은 별 재미가 없어서였는지(...) 극중에서는 정균의 칼에 찔리고도 죽지 않고 도망치며, 정균의 군사들에게 발각되었을 때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몸에 또 병사들의 칼을 여러 번 맞으면서도 혼자서 다 물리친다. 수백 명이 죽고 병사들이 겁을 먹어 접근조차 못하는 상황이 오자 궁수를 불러서 쏴죽이려고까지 했지만 이미 기력을 다 소모한 이의방은 그대로 주저앉아 사망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 내뱉었던 마지막 대사 "누구도…… 대 고려의 벽상공신의 목을, 가져갈 수 없다."는, 이의방이 마지막까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 혹은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균의 칼에 찔린 후 도주한 동굴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다 꿈속에서 이고에게 난신적자란 비난을 듣고 자신의 행보를 돌아보며 울부짖은 점이나 죽기 전 이고와 채원과 고려 부흥의 결의를 맺을 때 만든 백마털 장식을 여한이 넘치는 눈으로 바라본 것을 보면 적어도 지금의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각했던 것 같다. 단지 권력에 대한 집착이 더 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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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드라마가 끝난지 10년이 넘어서도 구글 같은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황제라는 말만 쳐도 자동완성 검색어로 뜨며 무인시대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도 뜰 정도였다.
  • [2] 이는 대단히 그럴 듯하고 고증을 살린 묘사이나, 실제로 당시 대령후 경은 의종 11년 의종에게 반역 누명으로 천안부로 귀양 보내진 후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의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무인시대에서는 정중부에 의해 몰래 살해당한 것으로 묘사. 김경응이 대령후 역을 맡았다. 이수광의 동명의 작품에서는 정중부가 옹립하려는데 이의방이 막는 것으로 묘사. 결국 셋째인 익양후 왕호(고려 명종)이 보위에 오르게 된다.
  • [3] 정확히는 애첩의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