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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last modified: 2016-04-13 18:31:15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축구인
1.1. 선수시절
1.2. 코치 시절
1.3. 별명
1.4. 그 외
2. 프로게이머

1. 대한민국의 축구인


옆에 있는 아이는 왠지 타임머신 타고 아기 때 이운재를 데려온 것 같다 믿으면 골룸.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이운재 (李雲在 / Lee Woon-jae)
생년월일 1973년 4월 26일
체격 183cm[1], 82kg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포지션 골키퍼
프로입단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시절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1996~2010)
전남 드래곤즈(2011~2012)
코치/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골키퍼 코치(2013~ )
국가대표 132경기

2008년 K리그 MVP
따바레즈(포항 스틸러스)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2009년 FA컵 MVP
최효진(포항 스틸러스)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염기훈(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안정환
FW
샤샤
MF
서정원
MF
고종수
MF
데니스
MF
고정운
DF
강철
DF
김주성
DF
시엘
DF
홍기
GK
이운재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나드손
FW
모따
MF
김동진
MF
따바레즈
MF
김두현
MF
김대의
DF
산토스
DF
유경렬
DF
무사
DF
곽희주
GK
이운재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1.1. 선수시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아시아 톱클래스 골키퍼

한때나마 카시야스와 부폰을 자신보다 한수 아래에 두고 월드클래스에 들어가봤던 골키퍼[2]

올리버 칸과 마지막까지 경쟁한 2002년 세계 최고 수준의 골키퍼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NO.1 골키퍼이자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이다. 퐈이야를 보고 확실히 알았다고 카더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로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수원의 골문을 지켜온 레전드. 국가대표 131경기 출전은 전 세계 현역 골키퍼 A매치 출전 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전까지는 김병지에게 밀려 국가대표팀에서 2인자에 머물렀었다.[3] 그러나 김병지2001년 1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페널티 라인 밖으로 뛰쳐나가다 실점할 뻔한 일이 있은 이후에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크게 신임을 잃자, 김병지 대신 중용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4] 2002년 야신상에 거론되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5] #

김병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정상의 골키퍼로 손꼽힌다. 김병지와 달리 안정적이고 수비적인 스타일을 추구해 어느 상황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안정감으로 유명하다.[6] 이러한 스타일 덕분에 김병지와 달리 국가대표에도 잘 뽑힌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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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특기는 페널티킥(그리고 승부차기)방어[8]로, 2002년에 스페인과의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와 승부차기에서 대결, 스페인의 4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4강전에선 미하엘 발락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고 원통함을 잊지 않고 있었는지 월드컵 종료 후 얼마 돼지않아 가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의 반칙으로 얻은 패널티 키커로 발락이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방해버리고 발락에게 복수를 이뤄내기도 했다. [9], 2007년 아시안컵 때는 8강과 4강에서 각각 2번, 1번의 승부차기를 방어하면서 팀을 3위까지 이끌었다. 이외에 K리그 승부차기 방어율 1위를 하였으며, 이번 2009년 FA컵 결승전에선 2번이나 막아서 수원의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강한 멘탈이야말로 이운재 최고의 장점. 침착성은 물론이고 과감한 판단력은 그의 단점인 반사신경을 커버할 시간과 정확성을 가져다준다. 여기에 수비라인 형성은 여러 전문가들이 손꼽는 이운재의 장점. 골키퍼로서 뒤에서 수비라인 형성을 지시, 안되면 호통까지 치면서 수비의식을 일깨워낸다.

단점이라면 끝까지 공을 보며 기다리는 타입이라[10][11] 순발력이 떨어져 프리킥이나 순간적인 중거리 슈팅에 약점을 보인다는 점.

2002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고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한 것은 아내를 위해서 한 것이었으나 그의 아내는 자기에게 한 줄 몰랐다고(...).

하지만 월드컵 이후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려서 본인 또한 상당한 부진을 보였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직전에는 부진이 극에 달해서 소속팀인 수원의 부진의 원흉으로 몰리기도 했다.[12] 이에 대다수의 축구팬들 사이에서 당시 좋은 활약상을 보이고 있던 김병지를 국가대표 주전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결국 이운재가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고 김병자기 본선 엔트리에서 탈락하자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이 아쉬운 선수 1위에 당당히 김병지가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독일 월드컵에서 적절한 선방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비난을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13] 소속팀에서의 부진은 계속되어 결국 2006년 후반기 리그에서 후보 골키퍼인 박호진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채 후보 골키퍼로 전락하며 안습한 상황을 맞이했다.[14] 2007년 시즌을 앞두고 그랑블루 사이에서는 이운재 대신 박호진을 주전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결국 이운재를 선택했고 이운재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경기력을 조금씩 회복했다.

그 뒤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한국이 엄청나게 답답한 경기력과 골가뭄에도 불구하고 3위를 차지하는데 공헌했으나 대회 기간중 고참 선수 3명[15]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간 사실이 발각되어 술타스틱 4라는 오명과 함께 1년간 A매치 출장 정지를 당했다. 그런데 이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술 먹는 이운재가 술 안 먹는 다른 선수들보다 더 잘했다는 건데 대체 그 선수들은 뭘 한 거지????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2009년 이후로는 떨어진 운동량과 순발력 부족으로 불필요한 실점 허용이 늘고 있다. 검증 좋아하는 허정무 감독의 성향 탓에 국대 골리를 독점하고 있지만 경험을 제외한 부분에선 김용대, 김영광, 정성룡 등 젊은 골키퍼들과 비교해서 나을 게 없다는게 중론. 오히려 이운재의 지나친 독점으로 그의 은퇴이후 차기 골리 선정에서 크게 애를 먹을 것이 예상된다. 8~10년 주기로 골기퍼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독일과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다 시먼 이후 대체자를 찾지못해 고생중인 잉글랜드의 예를 생각해보자.[16][17]

참고로 상대팀의 응원가가 "운재야 운재야 뭐하니? 골먹는다!"이다. 근데 위의 음주사건 이후 골이 술로 바뀌었다.

2010년 4월 4일에 열린 서울전에선 8분동안 내리 3점이나 실점하는 삽질을 했다. 이로인해 국대 및 수원 주전 골키퍼 교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월 1일 현재, 8경기 22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이운재를 비난하는 입장에서는 이운재가 2006년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골키퍼로 김병지가 거론되던 시기에 김병지에게 '이제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님?'식의 발언을 했던 것과 함께 실점할 때마다 수비들에게 성질(?)내는 모습 등을 근거로 인간성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게다가 월드컵 이후로도 부진이 계속되면서 과거에 언론에서 후배 골키퍼들에게 했던 '실력으로 나를 넘어봐라'는 발언을 놓고도 계속 까이는 중이다.

또한 2006년 월드컵 당시 골키퍼 코치였던 정기동이 이운재를 편애해 경기력과 관계 없이 계속 주전으로 내세운다는 비판을 받았던지라 이 부분에서도 비판을 받게 되었다.[18] 비교하자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당시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정성룡을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 같다.

결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B조 예선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는 정성룡에게 밀려 후보 신세가 되었다.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월드컵이 끝나고 치러질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때 은퇴식을 가졌다. 그 업적을 기리는건지 축협에서도 이례적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하는 이운재에게 일종의 은퇴식을 치러주기로 했다.#

이렇듯 경기력에서 극과 극을 달렸던 탓에 평이 상당히 갈리는 선수로 등극했는데, 칭찬할 때는 거미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나 (2002년 이후로) 까일때는 주로 몸무게로 까이며 특히 돼운재 또는 배둘레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시기에 이운재를 까면서 나온 희대의 유행어가 바로 반반무많이. 물론 본인 말로는 물만 먹어도 몸이 부는 체질이라고. 여튼 국가대표가 자기관리도 못한다는 이유에서 꽤 비난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히딩크도 이운재를 처음 훈련에 합류했을 때, 근육보다 군살이 많다고 깠다.[19]

힙덕후들에게는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프로듀서인 Dr.Dre를 닮아, 운드레로 불린다. dctribe의 영향이 큰 듯.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 전까지 2002년의 체중으로 감량하는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수원에서 잘나가는 고깃집치고 이운재 싸인이 걸려있지 않은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다닌다.[20] 수원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생들이 싸게 먹는 곳이 아닌 근당 가격이 좀 나가는 곳에는 정말로 꽤나 많이 걸려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축구잡지 포투에서 사실임을 시인했으며 자신의 고기철학을 유감없이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07년 당시의 사건이라든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때 술도 상당히 잘마시는듯.아니 고기집가서 술마시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2006년 즈음부터 부진으로 인해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사실 아시아 역대급의 골키퍼라고해도 무방하며 전성기때는 그야말로 월드클래스의 골키퍼였다. 2002년 월드컵 때 괴물급 활약을 보이며 명실공히 세계최고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과 야신상 경쟁을 했던 게 이운재였다. 살쪘다고 까이던 06년 월드컵, 07년 아시안컵에서도 국대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 중 하나였고 자기 욕심만 강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2010년 월드컵 때 우루과이전에서 패배했을 때 의기소침한 정성룡[21]에게 가서 "이제는 네가 최고다."라며 격려해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운재는 적어도 국대에서는 항상 경쟁자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선수였다. 1994 월드컵 독일전에서 깜짝 출장을 해서 최인영의 뒤를 잇나 했지만 동명이라는 198cm의 장신 키퍼의 출현으로 올림픽 대표 시절 마지막까지 주전키퍼 경쟁을 했으며 1998 월드컵 이후에는 김병지와, 2002년 이후에도 김용대, 김영광, 정성룡 등 젊은 키퍼들과 끊임없는 경쟁을 했다. 놀라운 점은 대부분 그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쟁자들의 임팩트나 명성 등이 치솟을 때에도 결국은 경기력으로 증명해냈으며 많은 비판 여론에도 결국은 실력으로 잠재웠다. 적어도 이운재가 현역일 때는 국대키퍼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국가대표에서는 물러났고 소속팀에서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봐야할 나이(37)라 물러난 후를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최근 기사에 의하면 본인은 팀에 남아 코치가 되는걸 바라고 있으며 농구선수 출신이던 이젠 농구계 암적 존재가 되어버린 강동희 감독[22]과 함께 음식점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제 수원에 운재갈비집이 생기는건가 이후 분당 정자동에 퓨전음식점을 냈지만 2012년 현재 기준으로 망했어요...

그러나 소속팀과의 코치직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못해 선수로 뛸수있는 다른 팀을 찾았고 2010년 1월. 전남 드래곤즈 입단이 결정되었다. 전남에서 10kg을 감량했다는데 그덕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선방들을 보여주고 있다. k리그 3라운드까지 3경기 1실점.

여담이지만 상당히 자존심이 강한 선수이고 인터뷰때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김병지의 대표팀 합류설이 나왔을땐 대놓고 직설적인 말을 쏟아냈을 정도였으며 네티즌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내가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언제라도 옷을 벗겠다 라고 밝혔을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보인바가 있다. 그리고 2012년 12월 5일 은퇴했다.


1.2. 코치 시절

2013년 12월 10일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2 국가대표팀(이광종호)의 골키퍼 코치로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듣기로는 카리스마가 넘친다고..국대합류가 시급합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끝날 때까지는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광종호코칭스태프(골키퍼 코치)로 합류해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다. 특히 660분간 무실점으로 단 한골도 허용하지 않은 김승규 등의 수비라인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5년 킹스컵에서 오랜만에 모습이 비춰졌는데, 살이 많이 쪘다.(...)세월무상 이 대회 온두라스전에서 골키퍼 김동준이 페널티킥 세 번을 연달아 막아내는 신기를 선보이고, 이창근이 편파판정을 등에 업은 태국의 일방적인 공격과 슈팅을 모조리 선방한 것으로 보아 코치로서도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다.

1.3. 별명


별명도 다양한 편인데 잘할땐 갓운재 운재신이지만 못할때는 돼운재 반반무갑 등등으로 부르며

그의 강력한 수비조직 조율능력에서 기인한 "펀칭후 패드립"[23] 이라는 특이한 별명이 있다.

오죽하면 이런 짤방도 생겼을 정도.

1.4. 그 외


구글에서 영어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는 블로그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강제개종

이상하게도 그가 첼시 FC에서 뛴 것으로 아는 초딩들이 가끔 있다. 이운재의 수원 삼성 시절 유니폼과 첼시의 유니폼이 비슷하고 스폰서까지 같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듯. 이런 기사도 있다. 다만 진짜 첼시에서 뛴 적은 없었다. 만약 진짜 갔었다면 존 테리한테 패드립쳤을지도 모른다.

2. 프로게이머

MBC 게임 히어로 소속의 전 프로게이머 및 코치이다.
이운재(프로게이머)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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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위너지만 (골키퍼 기준으로) 작은 키다. 무슨 말이고 하니, 보통 골키퍼 키는 190대고, 2cm 더 큰 김병지도 작다고 선수팀 못들어갈 뻔 했다.
  • [2] 2002년 이야기. 2002년의 이운재는 그야말로 월드클래스였다. 야신상 2위에 랭크된 것만 해도...
  • [3] 단, 국가대표 데뷔전은 더 빨리 치뤘다. 경희대학교 3학년 때 1994 FIFA 월드컵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됐고 마지막 독일전 후반전에 최인영과 교체되어 투입된 게 월드컵 데뷔 첫 경기였다. 당시 22세의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 기량 또한 뛰어나서 차기 국가대표 골키퍼감이라는 평가답게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결국 졌지만 그래도 전반전에 3골 털린 최인영에 비하면야.. 하지만 간염에 걸리면서 1998년 월드컵에 출장하지 못했고, 상무에 입대했다. 유명해진 건 2002년부터지만 실제로는 그전에도 리그에서 경기당 실점률 등을 볼때 탑클래스였다. 다만 국대 축구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대한민국 성향상 2002년에 기용됐을 때는 듣보잡 취급을 당했었다. 각 게시판에서 도대체 왜 기용하는지 모르겠다는 게시글이 공공연히 올라올 정도.
  • [4] 다만 일방적으로 이운재만 기용된 것은 아니고 월드컵 본선 직전까지 이운재와 김병지가 주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월드컵 본선에서 김병지가 아닌 이운재를 주전으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이운재의 컨디션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5] 당시 수상자가 올리버 칸이라는 걸 생각하면...
  • [6] 다만 그렇다고 김병지가 경기 때마다 돌출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적지만 가끔 벌어지는 몇몇 상황이 사람들의 인식에 크게 박힌 것.
  • [7] 김병지와 골키퍼 대결은 2004년 K리그 챔피온 결승전(포항VS수원)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경기는 전설 아닌 레전드 수준인데, 1, 2차전은 두 골키퍼의 활약으로 무승부, 그리고 2차전 끝나고 연장전으로 들어가서도 득점이 안나서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이때 포항측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온 것이 김병지였다. 김병지로서는 이것이 이운재와 결판을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슈팅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2004년 우승은 수원에게 돌아갔다.
  • [8] 무려 승률이 90%대다! 신문기사에서 승부차기는 오히려 골키퍼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왜냐하면 키퍼는 여러번의 기회가 있지만 키커는 한번밖에 기회가 없으므로 심리적으로 유리하다고 언급하였다.
  • [9]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러 수원 2군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사우디 클럽과 맞붙었다. 그 경기에서 수원은 한국산 침대의 위대함을 중동의 침대꾼들 앞에 보여주었고(...) 승부차기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필드로 오른 이운재가 사우디 슈터들의 공을 죄다 막아버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치러진 건 월드컵이 막이 내린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
  • [10] 이런 특성이 패널티킥 방어시엔 강점으로 작용한다.
  • [11] 이운재와 정반대 특성의 골키퍼가 2010 월드컵 당시 지역예선 포함해서 거의 30점 다되게 실점한 바 있는 세르히오 로메로다. 로메로는 공이 하프라인만 넘어오면 바로 예측해서 공을 막는다. 때문에 코파아메리카 2011에서 우루과이 상대로 승부차기를 했을때 한번도 선방을 해내지 못했다. 안그래도 골키퍼가 이런 스타일이라 수비수의 보좌가 누구보다도 필요한 로메로였는데 그런 로메로한테 제대로 된 수비수가 마스체라노 하나뿐이었으니 독일전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 [12] 참고로 당시 수원은 전반기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 [13] 다만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나온 티에리 앙리의 골이 이운재의 실책으로 인해 나왔다는 의견도 있었다.
  • [14] 게다가 수원은 후반기에 들어서 전반기의 부진을 털어버리고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운재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 [15]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
  • [16] 잉글랜드는 월드컵과 유로컵에서 골키퍼의 실책으로 매번 경기를 날려먹고 있다. 2012년 들어서 조 하트가 슈퍼세이브로 활약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 [17] 이건은 20대 후반의 정성룡김영광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국가 대표팀 보다는 박호진이 반짝한 2006년을 제외하곤 10년 이상 이운재 천하였던 수원 삼성에게 더 큰 문제였다. 근데 역시 수원답게... 정성룡을 그냥 사갔다.
  • [18] 게다가 김병지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김병지와 이운재가 함께 있으면 국가대표팀에서의 이운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이운재를 위해서 정기동 코치가 김병지를 내쳤다는 것이 지배적이어서 더욱 까였다.
  • [19] 하지만 이후 파워 프로그램을 잘 소화해서 김병지와 더불어 훌륭한 골키퍼가 되었다고 칭찬했다. 출처 : 마이 웨이(히딩크 자서전)
  • [20] 이 소문을 최불암은 불암콩콩코믹스 남아공 월드컵 편에서 써먹었다. 이운재가 남아공에 도착하자마자 후배들을 데리고 톰슨가젤 고깃집이라는 남아공 맛집부터 도착해서 식당 주인에게 싸인을 해준다는 내용;;;
  • [21] 우루과이의 선제골은 그의 미스가 컸다.
  • [22]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
  • [23] 유래가 상당히 특이한데 경기중 수비수가 정신줄 놓고 플레이해서 상대팀에 골찬스가 나서 슈팅을 하면 일단 어떻게든 급하게 펀칭해내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격양된 표정과 목소리로 수비수들을 강하게 질책하는일이 많은데 마치 그 모습이 패드립 치는거 같이 격한 모습이라 이런 별명이 붙었다. 독일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인 올리버 칸 역시 이런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