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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민

last modified: 2015-04-11 10:36:26 Contributors


롯데 자이언츠 No.1
이우민(李雨珉) [1]
생년월일 1982년 5월 4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수영초-부산중-부산상고[2]
포지션 외야수(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1년 롯데 자이언츠 2차 2라운드 17순위 지명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2001~ )
응원가 입장시 : LMFAO 《Shots》
타격시 : 라쿠카라차[3][4]

Contents

1. 개요
2. 선수 커리어
2.1. 신인 시절
2.2. 2009 시즌
2.3. 2010 시즌
2.3.1. 호주 야구 리그
2.4. 2011 시즌 전
2.5. 2011 시즌
2.6. 2012 시즌
2.7. 2013 시즌
2.8. 2014 시즌
2.9. 2015 시즌
3. 역대 기록
4. 기타

아무것도 모르는 연예인과 이름이 비슷하다 롯데의 이우민은 아무것도 몰라요

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

KBO 최고의 노력가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불행의 아이콘


전체 포지션 통틀어서 득점 방어율[5] 1위의 위엄.JPG 덤으로 가르시아가 2위 있다

이 선수의 장점은 KBO 외야수 중에서도 Top수준으로 통하는 수비 능력. 빠른 포구 판단, 빠른 발, 넓은 수비 범위, 강한 어깨를 모두 갖추어 단연코 국내 최고의 중견수 수비수로 볼 수 있다. 특히 빠른 포구 판단 능력은 KBO 최고 수준으로 잡아내기 결코 쉽지 않은 타구를 매우 쉽게 잡아내는 듯이 보인다. 다만 홈 송구시에 지나치게 원바운드 송구를 선호하다보니 송구가 마운드에 튕겨서 빗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될 만 하다. 웬만한 중견수들이 다이빙 캐치할 걸 달려가서 쉽게 처리한 다음에 깔끔한 넥스트 플레이까지 완벽하다. 오죽하면 2할 6,7푼 정도만 때려주면[6] 롯데에서 몇 년은 주전이 가능하다 하겠는가. 완전체 중견수이기에 좌익수나 우익수 대수비로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타격은 S급의 수비 능력에 많이 미치지 못한다. 타율도 타율이지만 출루율과 장타율도 그다지 높지 않다. 선구안도 똑딱이치고는 나쁜 편이나, 커리아 하이인 2007 시즌에 타율 3할을 기록한 적이 있다[7]. 또한 빠른 발에 따른 주루 센스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편인데(2007년 불과 반시즌 출장하며 3루타를 8개나 칠 정도) 도루센스는 또 부족하여 도루자나 견제사가 꽤 되는 희한한 타입. 2할 6푼 이상의 타율과 6할대 후반의 OPS만 유지하게 되면, 팀내 주전 외야수 자리가 보장되는 선수. 그날이 온다면 롯데의 우승 꿈은 현실이 될지도

이승화를 처음 접하는 지도자들은 연습 때의 이승화의 깔끔한 스윙폼에 매료(...)되는 바람에 팍 꽂혀서 주전으로 밀어주려 하며, 극악의 성적 때문에 할 수 없이 주전에서 내리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일단 타격에서 평타만 칠 수 있다면 수비에서 만들어내는 기여도 또한 엄청나다 보니 더더욱 감독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경기에 투입되면 연습 때만큼의 스윙을 못 한다는 게 문제. 게다가 이 소리는 매년 나오는 소리라 경험이나 스킬의 부족보다는 멘탈의 문제가 큰 것으로 보인다. 부산을 6년만에 방문한 레전드 외국인 선수 참교육의 대가 펠릭스 호세도 이승화의 문제점을 멘탈로 꼽은 것을 보면 그것이 더딘 성장세의 원인임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손아섭과 함께 롯데에서 개인훈련에 가장 힘쓰는 선수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롯데 자이언츠팬들이 싫어한다기 보다는 가장 안타까워 하는 선수. 이승화의 물집이 잔뜩 담긴 손 짤은 이미 유명하다. 약간 혐짤일수도 있으니 주의 현재 이 짤은 접근 금지되었다.

내야수 버전의 이승화인 박종윤마저 2014시즌에 터지면서타고투저와 플루크 가능성도 있지만[8] 더더욱 씁쓸하다. 김무관 코치에 이어 타격 잉여삼신기로 불리던 문규현박종윤을 갱생시킨 박흥식 코치의 항암치료매직조차 이승화를 비껴가고 말았다(...) 지못미.신종길과 이대형을 갱생시킨 김주찬의 파워 멘토링도 이승화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카더라

2. 선수 커리어

2.1. 신인 시절

2001년, 8888577이 시작된 롯데에 입단했다. 2004~2005년에 군복무를 하고 제대하여 2006년 복귀하였다.

2007년 시즌에는 0.301의 타율을 기록하여 올스타전에도 출장한 적이 있고, 2008년 시즌 이후로는 주로 대주자 및 대수비 요원으로 뛰었다. 사실 2007년 시즌 중에 생긴 부상 때문에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9]

2.2. 2009 시즌

2009 시즌에는 보통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7~8회쯤 대수비 요원으로 많이 나왔는데, 선발 투수가 우완이거나 우익수좌익수가 공격력은 뛰어난데 수비가 좀 나쁜 선수라면, 중견수 선발로 나오기도 했다. 농담삼아 롯데 최고의 마무리는 존 애킨스가 아니라 이승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2009 시즌은 타율 0.259, 홈런0, 타점 15, 도루 12, OPS 0.648의 성적을 기록.

2.3. 2010 시즌

시즌 극초반에 몇차례 선발 출장이 있었지만, 타격에서는 2008 시즌, 2009 시즌보다 더 극악한 성적을 보이면서 완전히 경기 후반에 팀내 대수비나 대주자 요원으로 자리잡는 듯해 보는 팬들을 안타깝게 만었다.[10]

9월 15일 결승타를 쳤다. 오래간만에 결승타도 쳤는데 인터뷰는 동점타의 주인공...결승타를 쳤는데 동점타의 주인공과 아나운서가 연애하는 이상한 세상

2010 시즌막바지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맹타를 휘둘렀다. 사실 2009년에도 시즌 말에 잠깐 잘쳤다.

2010 시즌 정규시즌 기록은 타율 0.244 홈런 0 타점 9 도루 2 OPS 0.613.

이승화는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3.1. 호주 야구 리그

시즌 종료후 10월 29일부로 11월 6일부터 2011년 1월 22일까지 열리는 MLB 주관의 해외 윈터리그인 호주 야구 리그의 Canberra Cavalry팀에 허준혁, 문규현, 장성우, 이정민, 진명호 등과 함께 교육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최종 기록은 타율 0.226, 홈런 2, 타점 6, OPS 0.643. 이래서야 전준우의 3루 전환에 따른 중견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 듯.

2.4. 2011 시즌 전

시범 경기를 치르는 동안 2011 시즌이 상당히 기대가 될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승화의 발목을 잡았던 타격이 2011 시즌 시범경기에서 매우 발전이 된 것으로 보였기에 그의 2011 시즌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려갈 타율은 내려간다고, 시즌이 가까워오자 그의 타율은 급격하게 하강했다.

일단은 타율과 상관없이 개막전부터 중견수 선발이 확정이었다. 2010 시즌 중견수 포텐이 터진 전준우도박3루 복귀로 인해 실질적인 경쟁자는 수비신김주찬뿐이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김주찬은 수비를 정말 못한다. 하지만 김주찬 그의 기동력와 타격을 보자니 안 쓸 수도 없고 정말 계륵인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손아섭의 부상으로 꼭 중견수가 아니라도 개막전부터 외야선발이 확정이 된 상태였다.

거기다가 신임 감독인 양승호 감독을 필두로 롯데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이승화였는데 이 기회를 잡아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모든 롯빠가 꿈꾸던 이승화 붙박이 주전 복귀는 머지않았다고 볼 수가 있었다.반대로 이번에도 망하면 퇴갤

2.5. 2011 시즌

개막전, 4타수 0안타 3삼진 1볼넷을 기록, 내려갈 타율은 내려간다라는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냥 깔 수만 없었던 것이 선구안이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였으며 류현진이 던진 공의 10% 이상을 혼자서 다 받아냈기 때문에 '투수가 류현진이라서 못했고 다음 경기는 기대해보자'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음날 역시 무안타에 폭풍삼진을 거듭해줌으로써 역시 클래스는 여전하다(...)라는것을 보여주었다. 손아섭이 복귀하는 순간 벤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중견 김주찬 우익 손아섭 좌익 홍성흔 환장의 라인업 그리고 4월 9일 17타수 무안타 기록을 갱신하면서 좀 엽기적 형태로 그걸 넘는 환상환장의 라인이 구성되었다. 좌익 홍성흔, 중견 김주찬, 우익 박종윤.

4월 9일 기준 타율 0.000, 홈런 0, 타점 0, 1볼넷, 7삼진, 장타율 0.00 OPS 0.056을 기록 했다.(17타수 무안타 중) 이 정도 되니 이미 타격을 잘하네 못하네를 떠나서 무안타 기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양승호 감독이 언제까지 이승화를 주전으로 기용할 지가 더 관심사가 되었다.

4월 12일까지 타율 0.000을 기록하며 롯데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걸로 20타수 무안타.
양승호 감독은 30타수 무안타가 된다해도 괜찮으니 부담가지지 말라고 언질 준적이 있지만 이쯤되면 이게 1군 선수가 맞긴 한건지조차 의심스러운 성적.[11] 초반 팀의 행보가 너무나도 안 좋았기 때문에(그렇다고 팀 타격만이라도 2010년 수준인 것도 아니었고) 부담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수가 없었다. 원래 부담감을 주면 더 부진해지는 타입이다 보니 연습 때와 경기 때의 스윙이 다르다는 소리를 몇 년째 듣고 있었다. 우선 심적 부담감을 덜어줘야 할 텐데 이렇게 무작정 밀어 준다고 해결될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4월 14일에는 1점 뒤진 2사 1, 3루에서 '대타'로 나왔고 예상대로 또 찬스를 날려먹었다. 이쯤되니 감독이 승리보다 이승화 살리는데 힘쓰고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 근데 결과만 보면 안티다. 양승호 감독이 며칠 전 아예 인터뷰로 인증까지 해 버렸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내 아들 이승화

4월 15일 LG전에선 8:2로 지고 있을 때 9회말 2아웃에 교체되어 땅볼로 광속 아웃. 그리고 경기 종료!! 이쯤되면 감독의 총알받이일지도 모른다 이걸로 22타수 무안타. 참고로 4월 15일까지 출루한게 볼넷 한번 뿐인데 그 투수가 류현진이다. 이번 시즌 괜히 안 좋은게 아니다. 4월 18일 기준으로 이승화가 1루를 밟은 횟수는 총 3번이다. 저 볼넷 한 번, 상대방 에러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주자로 한 번. 시즌 통틀어서 살아있는 상태로 1루를 밟은 횟수가 고작 3번이다 3번.
참고로 연속무안타 한국기록은 OB의 유지훤[12]이 무려 1983년에 기록한 47타수이다[13][14].

어떻게 보면 양승호 감독의 과도한 애정이 이승화를 더욱 어둠의 구렁텅이로 밀고있는 느낌도 들었다.강병철의 양아들과는 사뭇다른 케이스

사실 2007년 3할만 아니였어도 이렇게까지 기대는 안했을껀데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갈매기 마당에 롯데 2군을 자주 관전하는 사람이 올린 라인업에 중견수로 출장하고 있는 걸로 나왔다. 그리고 롯데 팬들이 바라던 첫 안타는 2군에 출장한 날 바로 쳤다.

5월 24일, 다시 1군에 승격.

그리고 6일만에 드디어 그 날이 오고 말았다. 5월 29일, 9회초 32타석 27타수만에 유동훈으로부터 투수정면 빠지는 안타로 올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다.[15] 8⅔이닝 원 아웃을 앞두고 노히트 노런이 물 건너 가고 말았다.(...) 퍼펙트 게임이 아닌 이유는 볼넷은 좀 있어서.

2011년 6월 12일 사직 롯데 대 한화 경기에서 선발출장하였다.
이날 롯데는 무려 17점을 몰아치며(21안타 3홈런을 몰아치며) 한화에게 17:2 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승화는 6번 타석에 나와서 5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타율이 0.087로 떨어졌다.(...) 이후 SK전에서 2안타로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1할은 넘겼다. 쉬어가는 타순

7월 17일 기준 타율 0.125, 홈런 0, 타점 1, OPS 0.374.

9월 3일 잠실 롯데 대 LG 경기에서 교체출장. 5:1로 이기고 있던 9회초에 김선규 투수를 상대로 2타점 짜리 3루타를 쳤다! 1, 2루에 주자가 있긴 햇지만 이미 2아웃이라 포기하고 있던 팬들이 깜짝 놀란 적시타.

2.6. 2012 시즌

4월 7일에 열린 개막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으로 이기던 6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황성용의 대타로 나와류현진에게 안타를 운좋게 쳐냈다. 말도 안돼
이승화는 이날 2타수 1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1:4로 승리하였다.

5월 11일, 투런 홈런을 쳤다! 이로 인해 롯데팬과 야구팬이 충격(?)에 빠질 했으나 이날 경기가...

6월13일 경기에서 1:0리드 2사만루 상황중 신본기의 어처구니 없는 콜 플레이 때문에 원래 신본기가 잡았어야 할 타구를 신나게 달려가면서 쫓아갔으나 결국 잡지 못했다.

2.7. 2013 시즌

시즌 초 맹타를 휘두르며 롯데 외야 마지막 퍼즐이 되리라 예상했던 김문호가 5월경 부상으로 빠지면서, 이승화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5월 28일에 대주자로 출장하여 1득점을 기록하였다.

다음날인 5월 29일에 3타수 2안타(!)를 기록하였다. 또 다음날인 5월 30일엔 3타수 2안타(!) 2타점(!!) 1도루를 기록하였다. 07 이승화의 귀환?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이토이 요시오랑 영혼을 바꾼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16]

6월 2일 삼성전까지 5게임 연속 안타를 쳤다.

6월 6일 롯데 홈경기에서 다시 3타수 2안타 3타점 2득점의 맹타를 쳐냈다. 특히 7회말 롯데가 3:7로 앞서있고 2사 만루인 상황에서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쳐내며 쐐기타를 박아냈다. 후속타자인 손아섭이 안타를 쳐내며 득점도 성공했고, 이날 경기는 롯데가 KIA 타이거즈를 영혼까지 털어버리며 3:13으로 승리했다.

6월 9일 LG전에서는 초반 흔들리는 팀 분위기를 2회 호수비를 통해 반전시켰고 타석에서는 4타수 2안타 2득점 맹활약을 하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KBSN 수훈선수 선정.

6월 12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선 4타수 3안타 1득점을 기록했고 팀도 스코어 3:6으로 승리했다. 1군에 올라와 보여주는 폼 대로라면 2007년의 재림을 넘어설 분위기.

6월 19일에는 결승타를 친 박준서의 뒤를 이어 도망가는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또다시 3안타 경기를 보여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롯데팬들은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는 모양

6월 20일 4타석 부진했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쳐 출루, 결승 득점을 올렸다.

6월 21일 문학 SK전에서 결승 역전 투런의 초석이 되는 볼넷을 얻으며 2루타 하나, 볼넷 두개로 100% 출루하였다.

6월 21일 기준 타율 0.315(73타수 23안타) 11타점 16득점 16삼진 5볼넷 3도루이며 5월 28일 이승화 콜업 이후 팀은 15승 6패로 선전하고 있다. 특히 안타를 친 14경기 중에서 팀은 12승을 거두고 있다.

국내 최고급 외야수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이지만, 웃기게도 가장 수비가 쉽다는 좌익수 포지션으로 출장하고 있다. 이유는 전준우중견수밖에 할 수 없기 때문. 가끔 좌익수 김대우 같은 창의적인(...) 라인업이 나오면 중견수로 가기도 한다. 타격 순서는 좌우놀이에 따라 정훈과 함께 2번-9번자리를 왔다갔다하며 출장 중. 게뽕 키스톤과 함께 타격에서(!) 롯데를 먹여살리고 있다.

하지만 내려갈 타격은 내려간다고 그 뒤로 기약 없는 타격 슬럼프 때문에 타율은 2할 5푼대로 뚝 떨어졌다. 7월 타율은 무려 36타수 4안타 0.111(...). 박흥식 코치가 무조건 주전보장을 약속했음에도 연약한 멘탈은 나아지지 않은 듯했다. 성적이 좀 올라가자 2번 타순으로 자주 출전하면서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듯.

눈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감염성 결막염일 확률이 있어 선수들과 떨어져 치료를 받았으며, 상황에 따라 엔트리에서 말소될 수도 있다는 듯했다.

SK와의 경기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250이나마 꾸준히 치는 걸 보고 눈물을 흘리던 롯데 팬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2.8. 2014 시즌

우천 딜레이 되었던 3월 30일 한화 이글스와의 홈 개막전에서 전준우를 벤치로 밀어내고 주전 중견수 및 1번타자로 선발 출장하였다.

5회말 2-1 으로 볼카운트가 불리한 와중에도 상대투수 케일럽 클레이의 몸쪽 변화구를 노려 깔끔한 우전안타로 팀의 2014시즌 첫 타점을 기록하였으나 바로 이어진 한화 포수 김민수의 피치아웃에 간파당해 도루자를 기록하며 아웃되었다. 이날 이승화는 교체없이 4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다.

전준우의 부상 및 컨디션 난조 때문에 1번 중견수로 자주 출전하고 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 이대로라면 전준우가 중견수 수비를 무난히 소화할 정도로 회복되었을 때 준수한이승화보다는 많이 우월한컨택과 뛰어난 선구안을 가진 김문호에게 밀릴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보다 우월한 타격을 보여주는 정훈과 김문호도 톱타자로만 나오면 삽을 푼다는 점(...) 시즌 초반 선발출장 기회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눈도장을 찍어야 할듯.

결국 타격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4월 25일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5월 7일에 자신을 대신해서 올라온 김민하가 내려가는 대신 다시 1군에 콜업되었다. 2군 9경기에서 4할대를 기록한것이 콜업의 이유인듯. 그리고 김민하는 바로 퓨처스 경기서 발을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5월 7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전날 가벼운 부상으로 결장한 전준우를 대신해서 9번타자 중견수로 출장하여, 2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하였고 3번의 출루가 모두 득점으로 연결되어 팀의 6:10 승리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타격에서 답이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고 결국 23일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이후 6월 24일에 이틀전 말소된 김주현을 대신해 다시 등록되었다.

6월 26일 대전 한화전에서 손바닥 통증을 호소하며 중간에 빠진 루이스 히메네스를 대신해 5회부터 수비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히메네스의 타순에 들어가 4번타자!가 되었다. 팬들은 당연히 자동아웃을 예상 했지만 놀랍게도 역전 2타점 결승타를 쳤다!

7월 10일 삼성전에서는 7회말 이지영의 좌익수 플라이 때 라면수비완벽한 캐치와 명품 송구로 3루주자 김상수를 홈에서 여유있게 잡아내며 9회초 대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그래도 타고투저와 박흥식 버프로 거의 모든 롯데 타자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상황에서[17] 시즌 내내 2루타 하나 기록하지 못하며(...) 주전의 길은 요원하다.지못미

이후 7월 14일에 다시 제외되었다. 기회는 자주 부여받고 있지만 본인이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실정.

시즌 종료 후 '이우민'으로 개명을 했는데 2015년 1월 4일에 가서야 처음으로 포털에 기사가 떴고#, KBO 홈페이지나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에는 아직 이승화 그대로 표기되어 있었다가 2015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야 변경되었다.

2.9. 2015 시즌

중견수 자리는 외국인 타자 짐 아두치에게 밀리고, 좌익수 포지션에서도 하준호김민하에게 밀리며 대수비, 대주자로 주로 출전하다가 4월 7일 뜬금없이 사이드암 신용운을 상대할 목적인지는 몰라도 대타(...)로 나섰다. 물론 결과는 얄짤없이 삼진. 4월 8일에도 경기 막바지에 대타로 나섰으나 하필 상대가 임창용인지라 또 삼진으로 물러났다.

3. 역대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2001 롯데 자이언츠 16 9 .111 1 0 0 0 0 6 0 .111
2002 49 154 .188 29 5 1 1 10 15 2 .253
2003 23 56 .214 12 4 0 0 5 6 3 .286
2004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
2005
2006 89 112 .188 21 5 0 2 12 12 7 .286
2007 75 269 .301 81 4 5
(3위)
1 23 31 11 .364
2008 87 145 .214 31 1 3 1 13 27 4 .283
2009 102 162 .259 42 7 0 0 15 25 12 .302
2010 92 82 .244 20 4 1 0 9 13 2 -
2011 70 75 .120 9 1 1 0 3 12 3 .160
2012 65 84 .214 18 2 0 1 5 12 1 .274
2013 60 217 .253 55 5 0 0 16 30 5 -
통산 - 728 1365 .234 319 38 11 6 111 189 50 -

역대 기록
년도 기록내용
없음
2011년 27타수 1안타 1볼넷 완봉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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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2008 시즌까지 이원석과 함께 후로게이 커플로 유명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선 아예 허수아비로 묘사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극악의 성적 때문.

이대호, 추신수와는 수영초등학교 동기다. 참고로 이대호의 별명중 하나인 '공주(공포의 주둥이)'는 이승화의 미니홈피에 이대호가 남긴 (장난)악플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타격 전성기가 너무 일찍 오신 타격1위 그분(...),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는 추신수. 그리고 초대형 유격수인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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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개명 전 이름은 이승화(李承和).
  • [2] 현 개성고등학교
  • [3] 과거 박현승 코치가 현역시절 쓰던 곡이었다. 그 뒤 박종윤이 썼지만 새 응원가가 생겼고, 주인이 없던 이 곡을 이승화가 개명하면서 받아가게 되었다. 원래 응원가는 The Beatles의 《Ob-la-di Ob-la-da》.
  • [4] 가사는 이우민 안~타 이우민 안~타 안타안타 이우민~x4.
  • [5] 해당선수가 1시즌동안 얼마의 점수를 수비로써 막아냈냐를 알아내는 지표
  • [6] 물론 2할 6푼 이상 때리는것도 프로에서는 힘든 일이다.
  • [7] 다만 2007 시즌은 내야안타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는 있다. 후반부의 부진도 내야안타에 대한 상대의 대응이 좋아지면서 어려워졌다는 것으로 이는 이대형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는 점이 잘 보여준다. 자세한 사항은 이 글을 참고.
  • [8] 그러나 스윙 교정에 성공한 것이라 이럴 가능성이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다. 오히려 좌익수 겸업과 팀의 개판5분전 사태로 후반기 성적이 떨어졌는데 그 정도. 다만 포텐이 터졌더니 노쇠화가 얼마 안 남았다.아직 안 터진 이승화는 워째
  • [9] 사실 07년 시즌에 생긴 부상여파로 인해 타격폼이 바뀐 이유가 크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고의 해를 보낸 2007년 시즌과 비교해서 현재(2011년 4월 6일)까지 타격폼을 보면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타격폼의 차이도 그렇고, 정말 잘맞은 타구가 상대 외야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는등 운도 지지리 없다.
  • [10] 거기다 중견수 경쟁 상대였던 전준우가 타격과 수비 양쪽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 출전 기회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 [11] 롯갤에선 혼자서 노히트 노런 만들어 주냐며 까였다.
  • [12] 결코 LG의 유지현의 오타가 아니다.
  • [13] 양승호 감독이 공언한 30타수로는 한참 부족하다. 30타수 무안타는 2009년 이승엽이 한참 부진할 때 성적이 대충 그정도였다.
  • [14] 참고로 일본의 무안타 기록은 타자가 57타수, 더구나 용병이었다고. 투수까지 포함하면 90타수였다. 아, 아시아 기록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 [15] 그리고 이 날은 장성우가 정말 오랜만에 적시타를 치기도 했다. 타격이 너무나도 안 되던 두 선수가 모두 안타를 친 날.
  • [16] 실제로도 이토이 요시오와 얼굴이 닮았다. 투/타 스타일도 같은 우투좌타에 포지션마저 똑같이 외야수.
  • [17] 같이 잉여삼신기로 불리던 박종윤, 문규현이 확실하게 터지고 나이 어린 신본기와 오승택도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상황. 그나마 이승화의 경쟁자인 김문호의 타격이 다소 부진해 이승화가 겨우 1군에 붙어있다.대신 박종윤이 좌익 알바를 뛰어서 여전히 주전은 못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