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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타격상

last modified: 2014-11-28 16:16:2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상세
3. 역대 수상자 목록
4.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5. 이영민 타격상의 맹점

1. 개요

한국 야구의 원조 레전드 타자라 할 수 있는 이영민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대한야구협회가 1958년에 제정한 상이다.

2. 상세

매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대통령배 등 전국고교야구대회, 전국 체전 등에서 15경기 이상 출전하고 6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주말리그 도입 전에는 9개의 전국고교야구대회[1] 중 5개 대회 이상, 15경기 이상, 6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 중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이에게 수여되었다.

다만, 고교 야구의 특성상 에이스 투수가 4번 타자까지 함께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고도 정작 프로에는 투수로 진출하는 사례 역시 존재한다.

3. 역대 수상자 목록

프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는 굵은 색으로 표시. 이름 뒤는 프로에서 활동했던 연도와 팀.

연도 이름 당시 소속 학교 프로 팀 활동
1958년 김동주[2] 경남고
1959년 백인천 경동고 도에이-다이헤이요-롯데 오리온즈-긴테쓰-MBC-삼미 (1962~1984)
1960년 최관수[3] 동산고
1961년 조정일 성동고
1962년 정인성 광주 사레지오고
1963년 이철화[4] 부산고
1964년 김영생 대구상고
1965년 이광환 중앙고
1966년 박용해 대구상고
1967년 오영복 대전고
1968년 김영신[5] 대구상고
1969년 정장헌 선린상고
1970년 신중국 부산고
1971년 정현발 경북고 삼성-태평양 (1982~1988)
1972년 정순명 충암고 MBC(1982~1985)
1973년 김일권[6] 군산상고 해태-태평양-LG (1982~1991)
1974년 박명선 인천고
1975년 이효헌 마산상고
1976년 임정면 마산상고 해태-빙그레 (1982~1988)
1977년 이만수 대구상고 삼성 (1982~1997)
1978년 김남수 신일고
1979년 김이수 부산상고 삼성 (1984~1986)
1980년 김건우 선린상고 MBC-LG (1986~1993, 1997)
1981년 구윤[7] 경북고 삼성-태평양 (1986~1994)
1982년 김성범[8] 포철공고
1983년 한경수 군산상고
1984년 주음현 광주일고
1985년 김경기 인천고 태평양-현대-SK (1990~2001)
1986년 김현철 경북고
1987년 김훈 경남상고
1988년 곽상선 군산상고
1989년 정진식 경남고 한화-롯데 (1994~2001)
1990년 강준기[9] 공주고 LG (1995~1996)
1991년 강혁 신일고 두산-SK (1999~2007)
1992년 노상진 배명고 한화 (1997~1998)
1993년 조현 신일고 LG-해태-한화 (1995~2002)
1994년 김건덕 경남상고
1995년 박현철 광주일고
1996년 박진형 경동고 LG (2001)
1997년 신민기[10] 경남고
1998년 신민기 경남고 한화 (2003~2009)
1999년 백정훈[11] 광주일고 KIA (2005~2006)
2000년 수상 대상자 없음
2001년 황성용[12] 부산고 롯데 (2006~현재)
2002년 서정 광주일고 한화 (2007~2010)
2003년 박정태[13] 부산고 KIA-삼성 (2004~현재)
2004년 최정 유신고 SK (2005~현재)
2005년 김현수 신일고 두산 (2006~현재)
2006년 전동수[14] 덕수정보고 넥센-KT (2008~현재)
2007년 김경한[15] 장충고
2008년 이창진[16] 인천고 롯데(2014~현재)
2009년 하주석[17] 신일고 한화 (2012~현재)
2010년 유재혁 제물포고 KIA (2011~현재)
2011년 박민우 휘문고 NC (2012~현재)
2012년 김민준 북일고 넥센 (2013~현재)
2013년 조영우 제주고 한화 (2014~현재)
2014년 송성문 장충고 넥센 (2015~현재)

4.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고교에서 가장 뛰어난 타격을 보인 이에게 수여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후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인 수상자를 찾아보기 힘들며, 도리어 그 중에는 비운의 스타들이 더 많다.

1991년 수상자 강혁은 고교 시절 초고교급 천재 타자로 불렸으나 이중등록과 음주운전, 병역비리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끝에 쓸쓸히 은퇴해야 했고, 1993년 수상자이자 '제2의 김재현'이라 불리던 조현은 나무배트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스윙의 약점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결국 방출되었으며, 국제 대회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이며 국내외의 큰 기대를 모으던 김건덕은 고교시절 혹사로 인해 어깨가 망가져서 은퇴해야 했으며,[18] 고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신민기는 프로에 와서 통산 타율 1할조차 치지 못한 채 병역비리에 연루되었고 복귀 후 거의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결국 방출되었다.

8,90년대에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항간에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이들은 결국 망가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는데, 이것이 일명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이다.

2000년대 들어 2004년 수상자인 최정이 프로에서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2005년 수상자인 김현수[19]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로 자리 잡으면서 2000년대에 들어와 드디어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풀렸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시궁창. 2006년 수상자인 전동수는 프로에 올라와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한 채 경찰 야구단에 입단했다가 복귀 후 1년만에 방출됐으며, 2007년 수상자인 김경한과 2008년 수상자인 이창진은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20] 2013년 수상자 조영우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 4번 타자 겸 에이스를 했는데, 한화에 입단한 뒤 타자로 1군에 올라가려면 2-3년이 걸리고 투수로 1군에 올라가기가 더 쉽다는 말을 듣고 아예 투수로 전향한 뒤. 송진우 2군 투수코치에게 체인지업을 전수받아 14시즌 1군에 콜업된 뒤 몇 경기 선발출장 뒤 2군으로 내려갔다...

2000년대 이후 최정-김현수 이외 살아남은 사람은 박근홍(개명 전 박정태)과 박민우 정도. 2003년도 수상자인 박근홍은 투수로 데뷔해 1군에 좌완 원포인트나 추격조 등으로 자주 비치나 확실한 1군멤버는 아니다. 2011년 수상자인 박민우는 2014시즌 주전 2루자리를 꿰차더니 신인왕을 탔다. 앞으로 어떨지는 두고 볼 일.

결국, 최정김현수가 특별했던 것일 뿐,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5. 이영민 타격상의 맹점

운만으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만큼 역대 수상자들이 뛰어난 실력과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 그것이 곧 고교 최고의 타자를 뜻은 아니란 지적이 줄곧 이어져 왔으며, 이를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생긴 원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이유인즉슨, 야구 대회의 수가 적고 경기 자체도 많은 편이 아니다 보니 신뢰할 만한 통계치를 만들기 힘들며, 더욱이 투수마다 실력 편차가 큰 고교 야구의 특성상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한테 한껏 몰아쳐서 타율을 높이는 유형의 타자도 무척 많다는 것이다.

이는 프로야구 스카우터들이 고교 타율을 무시하는 경향과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2000년대부터는 고교 시절 아무리 높은 타율을 유지했다고 해도 주력(走力)이나 파워 같은 부분이 부족하면 아예 지명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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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청룡기,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대통령배, 봉황대기, 대붕기, 무등기, 미추홀기, 전국 체전.
  • [2] 두산 베어스김동주와는 동명이인.
  • [3] 후에 군산상고 초대 감독을 맡으며 군산상고를 고교야구 최고의 팀중 하나로 만든다.
  • [4] 롯데 자이언츠 단장 역임.
  • [5]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이자, 전 OB 베어스 포수였던 고 김영신과 동명이인.
  • [6] 사실 김일권은 타격보다 도루로 더 유명했다.
  • [7] 아마 때는 유명한 선수였지만 프로에서는 무릎인대 부상으로 기량을 잃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
  • [8] 당시 2학년.
  • [9] 동국대 졸업 후 LG에 입단했지만 김동수, 김정민 등 기존 포수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은퇴 후 공주중 감독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사망.
  • [10] 당시 2학년.
  • [11] 당시 2학년. 프로에서는 별 활약 없이 은퇴. 발은 빨랐다고 한다.
  • [12] 2013시즌 종료 후 황동채로 개명했다.
  • [13] 롯데 자이언츠박정태와는 별개의 동명이인으로 2012년 박근홍으로 개명했다.
  • [14] 당시 2학년. 2012년 말 '전민수'로 개명
  • [15] 당시 2학년.
  • [16] 당시 2학년.
  • [17] 당시 1학년.
  • [18] 실제 보직은 투수였으나 타자로서도 크게 활약했다. 사실 대학 진학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재활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나(한양대 진학 당시 1년 동안은 마운드에 서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재활 중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다시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 어깨가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 [19] 다만, 김현수도 결국 프로 지명은 받지 못했다. 자세한 건 김현수 항목을 참조하자.
  • [20] 김경한은 원광대로 진학했으나 1년만에 야구를 그만두었으며, 건국대로 진학한 이창진은 2014년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에 2차 6라운드로 지명되어 뒤늦게나마 프로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 [21] 다만, 이럴 경우에는 신고선수로 입단할 것을 권유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