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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사

last modified: 2018-11-06 21:06:35 Contributors

왕으로 추존이성계의 조상
목조 이안사 - 익조 이행리 - 도조 이춘 - 환조 이자춘

묘호 목조(穆祖)
시호 인문성목대왕(仁文聖穆大王)
이(李)
안사(安社)
배우자 효공왕후(孝恭王后)
아버지 이양무(李陽茂)
어머니 이강제(李康濟)의 녀(女)
생몰기간 ? ~ 1274년

李安社

Contents

1. 소개
2. 일생
3. 자식

1. 소개

조선추존왕이자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다. 묘호는 목조.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18대손으로 고려 말기 사람이다. 원래 이한은 신라 시대 사공을 지냈고 그와 부인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이자연은 시중, 손자 이천상은 좌복야를 지냈다. 이천상은 아간을 지낸 이광희를 낳고 이광희는 사도 삼중대광 이입전을 낳고, 이입전 후로 이긍휴, 이연순, 이승삭, 이충경, 이경영, 이충민, 이화, 이진유, 이궁진, 이용부를 거쳐 고려시대 내시집주 이린에 이르렀다. 이린은 이의방의 동생으로 형이 이루지 못한 임금의 자리는 결국 이의방의 방계 자손인 이성계가 이루게 된다. 이린은 대장군 이양무를 낳고 이양무는 상장군 이강제의 딸 이씨와의 사이에서 이안사를 낳았다.

2. 일생

원래 이안사는 20대 초반까지 본관인 전주에서 살았다. 이 지역의 한 기생을 좋아했는데 하루는 그 고을 별감이 그 기생을 취했다. 그래서 화가 난 이안사는 별감에게 따졌고 싸움까지 일어났는데 문제는 이게 고을 현감까지 알게 되었다. 현감은 이 문제를 도지사급이었던 안렴사에게 알리는 바람에 이안사는 투옥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는 몽골과의 전란기라 호족들은 스스로 집안과 재산, 인명을 지키키 위해 가병을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안렴사는 이 가병 때문에 직접 체포하지 못하고 조정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를 알게된 이안사는 조정에서 미적거리는 사이에 집을 정리하고 가솔과 가병, 재산을 가지고 강원도 삼척으로 떠났다.

여기까지 끝났으면 좋을련만 전에 싸웠던 그 별감이 여기 안렴사로 임명되어 온다는 소식에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번에 정착한 곳은 지금의 함경남도 원산에 해당되는 함길도 의주였다. 이안사는 여기서 나라 군사와 싸워 공을 세우고 조정에서는 의주 병마사에 임명했다.

하지만 막상 병마사가 된 이안사는 고려를 배신했다. 이안사가 있는 원산에서 가까이 있는 쌍성(영흥)에 원나라 대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원나라 산길왕은 두 번에 걸쳐 회유했고 이안사는 백성 천여 호를 이끌고 원나라에 투항했다. 이 때가 고려 고종 41년, 1252년이었다. 귀순한 이안사는 두만강변의 경흥부 알동에서 살았는데 천호 벼슬을 받고 22년 동안 그 지위를 누리다 원종 15년인 1274년에 죽었다. 고손자 이성계가 왕이 된 후 그를 목왕(穆王)으로 추존했는데 경흥부 알동에서 죽은 이안사의 무덤은 경흥성 남쪽에 마련되었다. 하지만 조선 태종 10년인 1410년에 함흥 북서쪽에 있는 달단동 가평사로 이장되었고 능호는 덕릉(德陵)으로 정해졌다. 1년 뒤에 목조로 재추존한다.

목조의 부인 이씨[1]는 효비(孝妃)로 추존되었다가 효공왕후(孝恭王后)로 재추존되었다. 효공왕후는 원래 경흥부에 장사되었다가 태종 때 덕릉과 같은 곳으로 이장되었고 능호는 안릉(安陵)이다. 현재는 덕릉과 안릉의 소재지는 함경남도 영광군이다.

3. 자식

효공왕후 이씨 사이에서 6남을 보았다.

  • 안천대군(安川大君)[2] 이어선(李於仙)
  • 안원대군(安原大君) 이진(李珍)
  • 안풍대군(安豊大君) 이정(李精)
  •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
  • 안창대군(安昌大君) 이매불(李梅拂)
  • 안흥대군(安興大君) 이구수(李球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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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여담이지만 훗날 세종이 이씨가 본관이 달라도 원래는 한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생각했기에 왕비 간택에서 이씨를 제외시켰다. 그래서 조선 유일의 이씨 성을 가진 왕비다.
  • [2] 목조부터 환조까지 추존왕들의 자식들의 군호는 나중에 1872년 12월에 조선 고종이 추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