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이시노모리 쇼타로

last modified: 2015-04-05 23:31:34 Contributors


리즈 시절의 제작모습.


거장의 풍모
이상하게 컬러사진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전인권 + 최종훈

石ノ森章太郎(1938.01.25. ~ 1998.01.28.)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 중 한 사람. 본명은 오노데라 쇼타로(小野寺章太郎).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오노데라 유스케, 가면라이더 더블의 주인공 히다리 쇼타로가 바로 여기서 따온 것.

만화의 신데즈카 오사무와 비교하여 그의 별명은 만화의 제왕. 본인은 본인 스스로를 만화가(萬畵家)라고 칭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만화(漫畵)의 만자가 질펀한 만(漫)자가 아니다. 만화는 상상뿐만이 아닌 현실을 포함해 모든 것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라며 일만 만(萬)자를 붙였는데, 그 자칭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현 개인 만화에 한정하여 최다 출판을 한 기네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복간 닷컴에서 미공개 작품까지 다 모아서 총정리 출판을 하니 500권이 나왔다. (...)

그런데 정작 본인의 꿈은 영화 감독. 그 꿈은 이나즈맨에서 이루었다.[1]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비롯, 인조인간 키카이다, 변신닌자 아라시등의 수많은 특촬물의 원작과 디자인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슈퍼전대 시리즈의 초기작 비밀전대 고레인저, 잭커 전격대의 원작과 디자인을 맡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고레인저와 잭커를 이후의 슈퍼전대 시리즈가 원작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별개의 작품으로 구분하는 견해도 많았다.

그 외에도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의 전신이라 할수있는 스컬맨과 같은 작품들을 그렸다.

참고로 괴기 막장 소설 가축인 야프의 만화판을 그리기도 했으며, 이 매니악한 소설의 팬들에게는 최고의 만화판으로 평가받는다. (...)

그의 작풍은 데즈카 오사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아이들을 위한 만화(원시소년 류, 사루토비 사스케 등)와 어느정도 성인 취향의 만화를 병행하였는데, 그의 후배이자 제자, 어시스턴트였던 나가이 고와는 달리 폭력이나 성적인 표현 등은 극도로 자제하고 기본적인 분위기를 아예 낮게 가라앉히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데 더 뛰어났다. 특촬물에서 역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색감과 디자인보다는 개성과 이형을 중시했으며 이것이 현 일본 특촬을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보였던 만큼 경제학이나 역사에 관한 만화도 많이 적었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처럼 현실에 직접적인 비판을 보인다던가 하지는 않고 객관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에만 손댄 점 등을 미루어 볼 땐 그다지 정치적인 성향은 드러내지 않았다.

데즈카 오사무 사단 중에서 유일하게 데즈카에게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동세대 만화가인 요코야마 미츠테루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모든 현역은 라이벌이라는 생각 때문에. 실제 데즈카 오사무의 다작 경향상 어시스턴트가 많이 필요했는데 이때 그의 아파트에 불러들인 인물이 이시노모리 쇼타로로서 자신의 작풍뿐 아니라 아이디어 등 많은 것을 흡수하는 그를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 본인은 데즈카를 외계인의 이미지로 많이 묘사했는데 정작 데즈카 본인도 이시노모리를 그러한 식으로 많이 묘사했다.

그런데 우라사와 나오키플루토의 뒷담화를 보면 데즈카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풍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했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 데즈카는 죽을 때까지 자기 후배, 심지어는 제자들까지 자신의 라이벌로 여기고 그들의 작품에 냉정하게 평가하면서도 정작 배울 점은 흡수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가장 대표적 타깃이었다고. 특히 데즈카는 "칭찬받을 만하다." 하면서도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풍이 자신과 비슷할 경우에는 지독하게 싫어하여 그를 지적하기도 했으며, 우라사와 자신이 그러한 소리를 듣는 그의 마음으로 연재를 하겠다는 것으로 언급한 것에 가깝다. 실제로 그 둘 사이는 나쁘지 않아서 데즈카 본인이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일정이 너무 바빠 결국 왔을 땐 결혼식이 끝나 있었다고 했다. 실제 이시노모리 쇼타로 본인은 "원래 만화가라는 게 그래. 특히 선생님(데즈카) 정도면."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고.

스컬맨 리메이크로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하러 온 사이인 시마모토 카즈히코 역시, 60에 가까운 나이로는 걸맞지 않는 아이디어와 위압감에 자신이 순식간에 쫄아버렸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원래 처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시노모리 쇼타로 본인이었다. 스컬맨에 미련이 많았던 그는 자신의 후속작을 자율적으로 시마모토에게 맡도록 했고 평소 그를 존경하던 그는 오마쥬의 형식으로 그의 작품 상당수, 특히 시마무라 죠의 등장으로 상당 부분 사이보그 009와 크로스시켰으며 이는 애니메이션 스컬맨에도 반영되었다.

데즈카 오사무의 회고록에서는 꽤 털털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근성이 강하여 이틀에서 사흘 정도 밤샘 작업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하며 골초커피 광이었다고 한다. 그니까 일찍 돌아가셨지... 실제로 커피와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문구에 "그럼 팔지 말던가"라고 투덜댔다고. 그리고 그의 만화를 맨 처음 읽어주는 사람은 그의 가족들이었다고 하며 작중 그가 코멘트를 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데즈카 오사무처럼 딱히 작업실을 갖고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실제 장남 오노데라 죠는 초대 가면라이더의 헬멧 디자인을 고른 사람이기도 했으며 가면라이더 블랙 RX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면라이더 SD에서는 RX의 성우를 맡았다.

나가이 고의 만화 '게키만'에선 보통 만화가의 5배 속도로 만화를 그렸다고 회고된다.

----
  • [1] 이전에 가면 라이더 스트롱거 최종화에서 이루었다고 되어있었는데, 사실 이전에 이나즈맨의 어떤 화(기억안남, 추가바람)에서 감독을 맡은 적 있다. 그 화에서 본인과 아들인 오노데라 죠도 특별출연.(이나즈맨이 1973년작, 스트롱거는 1975년작)
  • [2] 이시노모리 사후 라이더 시리즈 또한 오프닝에 원작자가 이시노모리로 표기되나 본 문서에서는 제외했다.
  • [3] 우리나라에서는 야구왕 펑키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알려졌다.
  • [4] 한국에서는 '원시소년 돌치'라는 제목으로 로컬라이징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