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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last modified: 2017-08-20 04:50:30 Contributors

Contents

1. (기록상) 조선 최초의 영세 가톨릭 신자
2. 대한민국독립운동가
3. 대한민국의 공무원
4. 대한민국의 가수
5.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6.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7. 보이밴드 WINNER의 멤버

1. (기록상) 조선 최초의 영세 가톨릭 신자

1756~1801. 조선 후기의 관리로 천주교 신자였다.

1783년 조선인 최초로[1] 영세를 받아와 천주교 전파에 나섰다. 세례명은 베드로.

아이러니 하지만 세례명인 베드로처럼 3번을 배교했다가 다시 믿었다고 한다. 이래서 처음에 세례명을 잘 지어야 한다 아버지가 천주교도라는 걸 알고 아들이 믿느니 내가 죽겠다고 칼을 들자,울며불며 아버님이 종교보다 소중하니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여 성경과 십자가 등의 성물(聖物)을 불태웠으나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다시 천주교를 믿었다.고인통수

대조적으로 사촌이던 이벽 세례자 요한(1754~1786)도 천주교 신자이다. 그는 이승훈과 달리 천주교를 못 버린다고 하자 분노한 아버지가 자살하겠다고 하자 그도 부랴부랴 천주교를 버리겠다고 하였으나(버리는 방법은 글로 나는 천주쟁이였으나 이젠 아니다고 글을 써서 붙이고 일절 기도 모임에 나가지 않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오래안가 33살 나이로 요절했다.[2]

그러나,제사를 거부하자 제사는 아버지를 신으로 믿는게 아니라 조상에 대하여 고마워하는 것뿐이라고 또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욕도 먹곤 했다.

그러나, 정작 신유박해 때는 물러서지 않고 천주교인으로서 죽었다. 정약용 가문과도 친인척 관계였으며 천주교인이다가 신유박해 때 죽은 정약용 형인 정약종과 마지막을 같이 보냈다. 다만, 마지막 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로서 순교한 것인지 아니면 정쟁에 휘말려서 처형된 것인지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관계로 최근 추진중인 125위 시복시성 운동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2. 대한민국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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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들과 같은 세밀한 사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강이 소개될 때는 대부분 이 사진 (그림일지도?) 으로 소개된다.

李昇薰 1864.03.25~1930.05.09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호는 남강

1번 항목의 이승훈과 많이 헷갈려 이 사람이 33인 민족대표에 천주교 대표로 나갔다고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은 개신교인이다.

평안북도 출생으로, 양민 출신에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었지만 16세에 유기상 알바를 시작으로 10년만에 대상인이 되었다. 근데 하필이면 청일전쟁의 스테이지가 평안도..그 탓에 재산을 모두 잃게 된다.

그 후 불굴의 의지로 다시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참봉직을 사서 여태 못해봤던 양반행세를 하다가 안창호의 교육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의 화려한 말빨에 감동을 받아[3] 신민회로 들어가 교육기관인 오산학교[4], 강명의숙 등을 설립하여 본격 교육자의 길을 가게 된다. 서적 출판을 담당하던 태극 서관도 이 사람의 작품.

그 후 악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를 가고, 105인 사건으로 인해 유배중에 감옥으로 끌려가 10년형을 선도받고 5년만에 가출옥하였다. 그 동안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었으며 1919년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가 되어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고 또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 33인중 가장 늦게 출옥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 오산학교 교장으로 살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조만식과 함께 물산장려운동에 힘쓰는 한편 농촌 진흥에 노력을 기울이다 1930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성격은 능동적이고 유쾌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서열을 정하는 것도 순탄하게 처리하였으며 학교 기금을 위해 평안도의 광산업자들을 포섭하는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또 세상을 보는 안목이 있어 어디에 땅을 사두라고 하면 어김없이 땅값이 오르게 되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애시당초 사업가로 성공한 분이니.

독실한 개신교인이지만 3.1 운동 당시 승려이던 만해 한용운 선생을 늘 위에 명단을 쓰고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이 그걸 안 좋게 말하자 그들을 이렇게 꾸짖었다고 한다.

"나라가 있어야지 종교가 있지! 그럼 일본이 종교만 인정하면 일본이라도 상관없는 거 아니냐? 제발 경솔하게 종교부터 따지지 마라!"

그 외에도 자신의 학생들을 매우 아끼고 좋아했었는지 많은 말을 남겼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인들을 앞지르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다."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학 표본을 만들어 내 사랑하는 학생들을 위해 쓰게 하라"[5]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오산학교의 화장실은 그 당시에 재래식이었고, 그 때문에 겨울이 되면 쌓인 똥이 얼어버리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이승훈 본인이 직접 얼음똥을 도끼를 들고 와서 손수 깼다는(…) 일화다. 학생들을 아끼는 마음이 드러나는 좋은 일화긴 한데 좀 깬다(…).

여담으로, 이 분이 세운 오산학교의 후신은 현재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오산고등학교.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학교를 재건한 경우다. 의사양반의 모델인 백인제 선생도 이 학교를 나왔다.

역사학자 이기백과 친척이다.

3. 대한민국의 공무원

1955년 1월 10일생으로, 서울대학교를 나와 wkik:"행정고시" 행시21회로 임관해 중소기업청 차장,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 충청북도 정무부지사 등을 지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청주시장에 당선, 같은 해 7월 1일 취임했다.

4. 대한민국의 가수

'비오는 거리'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69년생.

5.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자세한 사항은 이승훈(프로게이머) 항목 참조.

6.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자세한 사항은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항목 참조.

7. 보이밴드 WINNER의 멤버

자세한 사항은 이승훈(WINNER)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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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노예로 잡혀간 이들도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세스페데스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으나 그 이름들이 전해지지 않는다.
  • [2] 다만 이벽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페스트로 죽었다는 설에서 아버지 이부만이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정말 자살해버려 불효자로서 집안과 일가 모두에게 절연당해 죄책감 끝에 술에 매달려 폐인이 되어 자살했다는 주장(90년대 소설 목민심서에선 이게 나왔다), 집안에서 몰래 죽였다는 주장같은 여러가지가 있다.
  • [3] 비슷한 예로 여운형과 조만식이 있다. 여러모로 안창호는 놀라운 인물이다.
  • [4] 지금의 오산중고등학교.
  • [5] 물론 지켜지진 않았는데 일본의 방해였다는 설도 있으나 애시당초 유교적 윤리가 남아있던 조선에서 고인의 유해를 함부로 하긴 어려웠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