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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last modified: 2015-04-15 02:22:52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가수
1.1. 데뷔
1.2. 오덕 이승환
1.3. 공연의 제왕
1.4. 이승환의 음악
1.5. 트리비아
2. 작곡가 이승환
3. 개그맨, 기업가 이승환
4. 성우 이승환
4.1. 출연작
5. 배우 서강준의 본명

1. 대한민국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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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동안 파워동안 이 무슨 파문전사. 과...과연 50세!!
이름 이승환 (李承桓)
출생 1965년 12월 13일[1], 부산광역시[2] 부산진구
신체 166cm, B형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영어영문학과 중퇴
데뷔 1989년 1집 'B.C 603'
소속
드림 팩토리 클럽 (1989 ~ 2014)[3]
오드뮤직 (2014 ~ )[4]
드림팩토리 (2015~) [5]
별명 어린왕자, 라이브의 황제,공연의 신 이철민[6]
트위터

라이브의 황제

1989년 데뷔. 어린왕자라는 별명[7]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1989년 10월 15일 25세의 나이로 1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지금 봐도 초동안이다. 저게 어딜봐서 지천명의 얼굴인가?

1990년대의 대표적인 뮤지션 중 하나[8]였고, 그의 콘서트에 대한 열정, 생동감 넘치는 콘서트 등으로 '라이브의 황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아이돌의 시조새[9]

※공연과 음반에 대한 팩트 사항은 따로 한국어 위키피디아의 이승환 항목에 정리되어 있으니 그쪽을 참조.

1.1. 데뷔

처음엔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온갖 음반사를 다녔으나 데뷔는 커녕 물만 먹고 다녔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 하겠다고 부모님 속을 끓이다가, 유산 미리 떼준다는 심보로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둔다는 약속을 받고 이승환에게 음반 제작비로 쓰라고 돈을 내주었다.[10] 그 돈으로 이승환은 자기 제작으로 앨범을 만들게 되었고, 그 때까지도 부모님은 앨범 낸다면서 같이 다니는 친구랑 이승환을 보면서 외려 속만 더 끓었다는데[11] 결과는 1년 동안의 장기전 후에 초대박. 공중파 방송 출연도 안하고 백만장 판매를 해버렸다. 같이 작당했던 친구의 정체는 바로 199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작곡가 오태호. 오태호가 명성을 얻은 것도 이승환 1집을 통해서였다.

1.2. 오덕 이승환

일반인에게는 동안가수, 혹은 편승엽, 김태원과 동갑으로, 서브컬처의 오덕력 충만한 사람들에게는 님도 우리들 동지, 오덕가수 등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안그러겠냐마는, 본업보다는 좀 다른 의미로 유명해진 가수. 실제로 확인된 오덕계열 취미로 피규어 수집, 게임 등이 있다.

피규어의 경우는 본인이 말하길 약 1,000여 점이 넘는 피규어를 소지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홍콩쪽 유명 아티스트의 고가 제품도 있다. 방송등지에서 확인된 바로는 오! 나의 여신님베르단디, 파이널 판타지 10의 유우나 피규어도 있었다. 에반게리온 캐릭터 피규어도 있었다. 물론 그런 류의 피규어만 수집하는 것은 아니며 아메리칸 코믹스의 히어로 피규어나 이소룡 피규어 같은 것도 있었다. 피규어 수집의 경우, 요즘은 피규어를 접었다고 본인이 언급했다. 이유인즉슨 집에 계신 견공들(지구, 달)이 피규어들을 아작냈다나(...).

발매된 거의 모든 게임기를 소유하고 있다. 과거 콘서트 전국투어때 메가드라이브를 갖고 다니면서 밴드들과 내기를 하기도 했으며,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졌듯이 공중파 방송에서 MC 들과 Wii 닌텐도 위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 등의 파격적인 오덕행보를 보였다. Wii 정발 전에 방송된 것이라 정발 전까지는 Wii가 통칭 '이승환 게임기'로 불리기도 했다.

하나 있는 누나의 자식들인 조카들과 사이가 좋은데, 매번 게임기랑 게임이 나올때마다 재밌어보이면 무조건 사서 조카들에게 선물해주는게 취미라고 한다. 부럽다 이승환 조카

이외에도 하이파이 오디오, 홈시어터 구축, DVD 수집등의 매니악한 취미를 갖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 수입음향기기 코너에 가끔 안경 벗고 돌아다닌다고 전해져 있으며, 맨날 추리닝 입고 구경하러 다니니까 점주들이 돈 없는 사람인줄 알고 상담을 잘 안해주더라, 주문해서 집에 배달된거 보니까 이승환이라고 이름이 써있더라 하는 전설적인 괴담을 남기고 있다.

어느 기사의 인터뷰에서 자기 스스로 "중년 오덕후"라고 인증을 했다. 하지말지(...).

1.3. 공연의 제왕

데뷔때부터 좀 뜸했던 방송 출연[12]은, 본격적으로 발라드가 아닌 락 등의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게 된 5집 이후에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와 함께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 또한 지나가버렸고, 결국 이승환은 대중 전반에 걸쳐 사랑받기보다는 매니악한 팬덤과 주로 소통하는 유형의 가수가 되었다.

라이브 밴드 출신임과 더불어, 오디오덕후(...)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는지 이승환의 라이브 무대의 퍼포먼스와 음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13] 따라서 이승환의 콘서트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는 선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새로운 기술적인 시도와 더불어 절대적인 횟수, 그리고 그 수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초로 전국 공연 투어에 이름을 붙여 브랜드화하였다. 99년 무적투어[14], 01-02년 SSEN CONCERT, 05년 이승환의 난 '亂李'투어 등. 최초의 용산 전쟁기념관에서의 대중음악 공연[15], 최초의 ABR(움직임 제어가 가능한 초대형 풍선예술)의 공연도입, 국내 최초의 젠하이저 후원가수, 게스트 없이 5시간 33분의 공연시간 등등의 많은 공연관련 기록을 가지고 있다.

공연 내용에서는 갖가지 이벤트가 풍성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발라드 레퍼토리를 주로 하는 대형/연말 공연과, 록 넘버가 주가 되고 주로 스탠딩으로 치뤄지는 중소형 공연이 나뉘어 지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초심자의 경우는 연말공연쪽을 도전해 볼 것.

이리저리 공연 중간에 이벤트도 많은 편이며,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몇몇 공연외주업체와는 십여년 이상 전담하다시피 외주를 주어 일관성있는 수준을 뽑아내고 있다. 과거에는 더 뛰어다니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점프 연습을(...) 하기도 하였으며, 공연 도중에 맹장염이 나면 어쩌나 싶어서 병원에 미리 짤라버리면 안 되나요 하고 상담했다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공연 기획부터 주최, 연출까지 직접 하다 보니 공연 도중에 자꾸 이런저런 손동작으로 엔지니어들과 대화(...)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조정하기도 하며, 본인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노래 부르는것보다 "아 왜 여기서 조명이랑 노래랑 타이밍이 안맞지" 이런 생각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고 하기도.

평소 성격은 잘 알려진바가 없지만, 공연 전후로 스탭들에게는 까칠 그 자체라고 알려져 있으며, 가끔 공연 몇시간 전 공연장 근처에 가면 리허설을 하면서 엄청나게 갈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탁재훈, 신정환의 컨츄리꼬꼬와 무대도용에 대한 소송이 2008년 시작되어 2009년 여름에야 끝났다. 이승환은 지난 2007년 12월 22일부터 24일 3일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콘서트 '슈퍼히어로'를 열었고 컨츄리꼬꼬는 12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콘서트 '불후의 명곡'을 펼쳤다. 문제는 컨츄리꼬꼬가 이승환이 사용했던 무대 설비와 특수효과 등을 철거 없이 그대로 사용했던 것. 무대를 계승중입니다 이승환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상의도 없이 자신의 무대를 도용한 컨츄리꼬꼬의 공연기획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양측의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정확히는 컨추리꼬꼬의 공연기획사와 이승환의 공연기획사와의 문제였지만, 이승환이 워낙에 공연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이라 본인이 직접 대응을 하게 되어 꽤 일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제12부(재판장 양재영 판사)는 2009년 2월 6일, 이승환측의 저작권침해나 소유권침해 주장은 명시적 승낙은 없지만, 제반사정에 의해 묵시적으로 승낙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기각하였으나, 컨츄리꼬꼬측이 이승환의 명예를 훼손한 점은 인정하여 금 1,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훗날 탁재훈은 오빠밴드 녹화 관계로 이 펜싱경기장을 다시 찾게 되는데 여기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면서 몸서리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현재 신정환, 탁재훈 둘 다 일련의 사건들로 현재 방송 출연 금지 상태.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까인 적이 있다. 이승환 콘서트 그 자체가. 당시 연말에 하는 이승환의 공연은 공연의 본좌로서 다른 여타 공연과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였다.[16] 그 무엇보다 공연 시간대가 다른 공연과 차이가 났다. 보통 공연이 8시에 시작해 9~10시에 피크에 오르고 이후 끝나는 것과 달리, 이승환의 공연은 끝나고 집에 갈 때 출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 타고 있다.

당연하지만 전자가 일반적이고 보통의 것이다. 이승환이 이상할 정도로 길게 하는 것인데[17] 문제는 이승환의 공연을 접한 후 다른 가수의 공연을 접하면 이승환 공연에 비하면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니냐?는 항의가 쏟아졌던 것이다.

참고로 콘서트 때 모니터링 이어폰으로 B&O사의 오픈형 이어폰 A8을 주로 사용한다. 보통 모니터링 이어폰은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커널형을 사용하는것에 비추어보면 의외스러운 일이기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곤 했다. 이승환이 홈페이지에서 밝힌 바로는 첫째로 커널형은 외부의 소리를 차단해서 콘서트 중 관객들의 반응을 들을 수 없고, 둘째로는 어떤 이어폰을 사용해도 귀에서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에 귀 걸개가 있는 A8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격렬하게 움직이다 두세개씩 고장내기도 하고, 그 중에 알루미늄으로 된 이어폰에 귀가 긁혀 그 다친곳을 만지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매번 공연때마다 기본 2, 3개는 사용후 맛이 가버려서 쓸 수 없어 버린다고 말한 적이 있어 식호 덕후들을 열폭하게 만들었다. 정말 여담이지만, 시코 에서는 이승환 왜 A8같은거 쓰나요 별로네~ 하고 이승환과 A8을 동시에 깠었다. 진짜다. 게다가 A8은 일반적으로 저음부가 약하다는게 중론인데 이승환이 A8을 쓰는 이유중에 "저음이 좋다"고 하는 부분이 있어서 까는 사람들은 '가수라면서 귀는 폼으로 달았네'라며 까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니들이 음악쪽으로 이승환보다 잘났냐'며 키배를 떴다. 더 자세한 내용은 A8 항목 참고.

A8 이전에는 인이어를 절대 하지 않고(상기된 관객 반응 캐치의 이유) 거의 메인 스피커만큼의 물량을 모니터에 투입했었다. 덕분에 드럼은 아크릴 벽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모니터 외에...공연시 주로 선호하는 스피커는 클레어브라더스, Adamson, 메이어사운드 등이며, 마이크는 후원해주는 젠하이저 이승환 커스터마이징 버전. 마이크스탠드는 특별 주문한 빙빙 돌리기 좋은(...) 물건.

1.4. 이승환의 음악

스스로 음악의 출발점을 들국화로 꼽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시절 '아카시아', '아웃사이더' 등의 헤비메탈밴드(!!!)를 결성하는 등 이승환 음악의 시작점은 록음악이다. 이후에도 오태호와 함께 언더그라운드의 여러밴드를 거쳤다.[18]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이 시기 가죽자켓에 쇠사슬을 매달고 무대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19]이를테면 1집의 데뷔곡 '텅빈 마음'[20]의 경우에도 분명 음악장르적 분법으로는 발라드에 속하지만, 곡 진행과 사운드의 활용에 있어 록적인 요소를 가미했으며, 동 앨범의 다른 트랙들, 특히 좋은 날이나 그냥 그런 이야기[21]는 아예 락적인 접근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데뷔 이후 계속된 음악작업에서는 전통적인 문법에 따른 록 음악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런 락적인 본색은 본인 스스로도 이오공감의 앨범에서 많이 드러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고,[22] 3집부터는 1, 2집에 비하면 락적인 접근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당시의 이승환 본인에게 있었던 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듯. 3집부터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23]

다만 메이저 데뷔가 발라드로부터 시작했으며, 이때 당시 큰 활약을 했던 오태호와의 콤비로 엄청난 대중성을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앨범에서도 록적인 요소가 가미된 곡이나 록 음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앨범의 타이틀곡은 발라드였으므로, 추구하는 장르가 어떻든지간에 대중은 이승환을 발라드 가수로 기억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 이승환 본인의 말로는 락보컬로는 자신의 음색에 강한 한계를 느껴서 결국 발라드와 락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유로는 무명 시절에 김종서를 보고 난 안 되겠다(...)라고 느껴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문세소녀가 본인을 발라드로 전향하게 만든 곡이라고 했다.

그래서 팬들도 발라드 가수 이승환을 좋아하는 팬들과, 록음악을 하는 이승환까지 좋아하는 팬들로 나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이승환 옛날엔 좋았는데 요즘은 별로야라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노래 중간중간에 나오는 메탈릭한 샤우트보컬은 곡의 전개에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24]

이에 따라 4집 Human에서는 'Fire'와 'Ice', 6집에서는 '정상'과 '비정상', 7집에서는 'Sunny Side-Up'과 'Over Easy' 등으로 앨범을 이분하여 앞부분에는 발라드를 위시한 팝 적인 분위기의 곡들, 뒷부분에는 록 위주의 곡들을 수록하여 양쪽 모두의 팬들을 끌어들이려 하였지만...음악적 퀄리티와는 무관하게 그다지 성공한 시도로는 평가받지 못한다. 발라드 팬들은 뒷부분을 싫어하고 록음악 팬들은 앞부분을 싫어하니 결국 불만은 그대로!! 게다가 음반 자체로서의 연결성과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까지. 참 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Serious Day라는 록음악에 집중한 음반을, Monglong이라는 발라드에 집중한 비정규 음반을 내고, 정규 9집에서는 잘 섞어서 한장의 음반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천 일 동안'[25] 등의 초히트 발라드곡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승환의 록음악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사운드 측면에서는. 다만 전통적(?)인 록/메탈씬에서는 발라드가수 출신인 이승환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으며, 이승환 스스로도 전통적인 문법에 따른 록음악보다는 가스펠을 도입하고 Choir를 강조하는등 변형된 록음악을 추구하고 있기에 실제보다는 낮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맞다. 데뷔 앨범만 하더라도 전 수록곡 중 7개로 넣을 정도며, 매 앨범마다 꾸준히 자작곡을 채우는 사람이다.[26]문제는 유명한 곡들 대다수가 다른 뮤지션 혹은 작곡가들의 곡이거나 아님 공동 작사/작곡이라는 것. 특히 공동작사/작곡인 경우에는 엄밀히 말해서 일단 이승환이 먼저 곡을 쓰고 그것을 공동 작사/작곡으로 명시되는 뮤지션과 공동으로 수정, 보완하는 식으로 완성하는데 문제는 이게 그 공동작곡가의 곡이라고만 알려진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본인도 내가 곡을 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27]

한편, 국내 최초로 가수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음반을 제작한 가수이다. 1집을 제작한 우리기획은 이승환이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서 만든 회사이다. 이후 1997년, 우리기획[28]을 확장시켜 드림팩토리라는 종합 연예기획사를 만들어 휘하에 공연 스탭 양성 학교, 음반 녹음 스튜디오,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부, 캐릭터 디자인 사업 등을 하였으나...국내 음반 시장의 전체적인 부진과 더불어 그리 전문적이지 못했던 경영 등의 이유로 시원하게 말아먹고 대부분 철수 혹은 분리하였고, 직접 매니지먼트하던 박신혜, 정성미, 김시후 등은 모두 다른 기획사로 이적. 현재는 본인만 남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안습. 친구인 이병우는 심각하게 잘 나가는데 다만 인디 뮤지션들의 제작과 지원의 끈은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듯 했으나... 드림 팩토리 클럽은 잠정 휴업들어간다. 그리고 윤상과 한솥밥을 먹는다고 한다.

1.5. 트리비아

  • 편승엽이랑 동갑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은 아니다. 편승엽은 1964년생, 이승환은 1965년생. 뭐 그래 봤자 한 살 차이로는 안 보인다. 이승철또 다른 파문전사 신승훈이 한 살 동생... 더불어 김태원, 김종서[29]와 동갑(...) 각종 토크쇼에 나와서 이야기하길 본인은 실버보험이 가입되는 나이라고 한다. 보험비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사망밖에 없다는 자학개그를 열심히 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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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녕 만 50살 되는 사람의 얼굴이란 말인가...

  • 하지만 알고보면 동안 때문에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단골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가면 언제나 아줌마가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는데 이승환 본인이 약간 길게 해달라고 하면 학생이 그러면 못 쓴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저 가수인데요라고 말을 하고나니 그제서야 머리가 강제로 짧게 잘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동안 때문에 겪었던 일화를 들어보면 꽤 나오며,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1990년대에도 동안으로 유명했다.

  • 사실 2014년을 기준으로 20여 년전의 공중파 출연 당시와 지금의 패션을 비교를 해보면 코디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보면 그놈의코디 때문에 푸읍~ 하고 웃을 동영상이 꽤 많다.(...) 그리고 지금과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 목소리도.

  • 4집 《Human》 녹음 때문에 미국에 체류할 때 동양에서 왕자가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유가 녹음비에 돈을 하도 많이 투자를 해서(...)[30] 다만 본인은 이것을 그 당시에 들은 것이 아니고 윤상에게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앨범의 제작비는 공식적으로 밝힌 바로는 5억 원. 1994~95년 당시의 물가를 생각하면 집안 기둥뿌리 몇 개는 뽑았을 액수이다. 그리고 결과는 해피엔딩.[31]

  • 가장 친한 뮤지션으로 015B정석원을 자주 언급한다. 정석원과는 서로를 갈구면서도 생사를 확인하는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 실제로 정석원과도 정규 앨범 작업을 많이 했고, 1995년에는 Human 앨범의 공동프로듀서로서 활약하는 위엄까지 달성.[32] 하지만 다시는 같이 프로듀서 안 한다고 선언한 것은 함정 그리고 이승환도 015B 6집에 객원 보컬로 참여했으며[33], 이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 독재자에서 말그대로 독재자의 샤우팅을 선보인다. [34]사실 015B의 정석원, 장호일 두 사람 모두와 친해서 이 그룹의 사정을 아주 잘 알고있고, 그래서 015B와는 뗄레야 땔 수 없는 윤종신과도 지금까지 오랜 친분을 유지하는 중이다. 1995년 사이에 발매된 015B, 윤종신, 이승환 이 세 사람의 정규 앨범[35] 속지를 보면 Thanks To에 서로의 이름이 들어가있다.

  • 믿기 힘들겠지만(...) 만화가 이은혜의 인기작 중 하나인 JTA+에서 남주인공 중 하나가 이승환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리고 그 만화에서는 이오공감의 노래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 만화상에 등장하는 스쿨밴드도 아예 이오공감의 노래로 카피연주를 한다.[36]

  • 2003년 5월 24일 탤런트 채림과 결혼식(사실혼)을 올렸으나 2006년 3월 31일, 부부의 결별이 공식으로 확인되었다. 결혼과 이혼에 관해서는 수많은 루머가 있으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으므로... 참고로 7집에 실린 "...사랑하나요!?"의 MV에는 채림과 이승환이, 그것도 결혼을 테마로 등장하는데 둘 사이가 이혼으로 끝난만큼 이승환은 그 MV를 매우 불편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래방에서 "...사랑하나요!?"를 틀면 그 MV가 꼭 나온다(...) 이것에 관한 비화는 이승환이 방송의 적에서 밝혔는데, 엠넷에서 그 MV를 노래방에 파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한다.[37] 물론 엠넷이야 그 둘이 이혼할지 알았을리 없으니 이승환-채림-엠넷 삼자에게 큰 흑역사인셈.

  • 공연 중 팬들이 휴지폭탄을 던지는 경우가 있고, 워낙 화려하니 이승환 본인도 좋아하곤 했었다. 그러나 2008년 진행한 '슈퍼히어로 콘서트 전국투어' 의 테마가 환경보호인데 휴지 막 버려서 쓰겠냐- 하는 논쟁이 팬덤 사이에서 발생. 결국 소속사인 드림팩토리가 2008년 9월 27일,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청운공원에 '종로구 1사(社) 1공원 운동' 에 참여하여 소나무를 심음으로서 일단락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취지의 행사에 참여하게 됐지만, 이 이벤트로 인한 드림팩토리의 지출액은 2,000만원...지못미.

  • 9집 활동 즈음부터 근육 운동[38] 열심히 하더니 근육맨이 됐다.[39] 참고로 65년생으로, 9집 발매시 나이 42세.

  • 뮤직비디오에도 꽤나 신경을 쓰는데[40], 김남주, 김현주, 장혁, 상효, 김남진, 신민아, 정화, 박신혜, 김시후는 모두 이승환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연기자들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인정을 받았는지 1999년 엠넷 영상음악대상에서 당부가 대상을 받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시의 가요계가 HOT젝스키스로 대표되는 10대 취향의 댄스 음악이 대세였던데다 이들의 뮤직비디오의 수상을 다들 유력하게 보던 상황에서 이승환의 대상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41] 참고로 뮤직비디오는 스토리텔링 방식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 앨범 자켓에 꽤 신경쓰는 편인데, 1997년에 나온 5집 "CYCLE"은 CD 자켓이 3D였다.(테이프는 그런 거 없다) 1999년에 나온 6집은 2CD가 아닌 주제에 CD 케이스가 2층식으로 나왔다.

  • 5집 수록곡 '애원'의 뮤직비디오에 지하철 기관사의 옆에 정체불명의 하얀 소복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담겨 귀신이 찍혔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링크, 토요미스테리극장에도 실린 적이 있다. 참고로 장소는 광나루역. 이라곤 했지만 중간에 남태령역도 나온다! 처음에는 자작극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승환 측에서 원본필름까지 공개해가며 자작극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42] 하지만 대중은 이를 흔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치부해 버렸고, 이에 '천 일 동안'을 잇는 대형 발라드 넘버였던 이 곡은 시장에서 철저히 묻혔다. 이 해프닝으로 인하여 심적 상처를 입은 이승환은 6집에서 '귀신소동'이라는 곡까지 만들게 된다. 사실 본인은 이 사건으로 은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당부도 바로 이런 심정으로 만들었던 곡이었다고 한다.#

  • 앨범에 '○○○ n집'이 아닌 앨범 자체의 이름을 지은 최초의 국내 가수이다. 또한 대중음악 공연시 와이어리스 인이어 모니터링을 사용한 최초의 국내 가수이기도 하다.[43]

  • 2001년부터 매년 자선공연인 '차카게 살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환 외 친분이 있는 여러 가수/DJ 를 초대하여 펼쳐지며, 모든 출연자들은 개런티 없이 출연. 공연상의 최소경비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등의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상기 공연 외에도 이승환의 공연장 한켠에는 항상 모금함이 준비되어 있다. 이승환 개인은 한국 백혈병 어린이 재단의 홍보 대사이기도 하다.(홍보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맡게 된 홍보 대사(...)라고 본인 입으로 얘기한 바가 있다.)

  • 얼리 어답터로도 유명. 소니의 로봇애완견 아이보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몇백만원 하던 시절의 초기모델을 갖고 있다. 이름은 소속사 드림팩토리에서 따 왔을 '백돌이'.

  • 가장 감명깊게 본 만화책으로 이나중 탁구부를 꼽는다. 9집앨범 부클릿에 보면, 잔뜩 분위기잡고 있는데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이나중 탁구부 일본 원판(!)

  • 6집의 노래 '애인간수'가 EZ2DJ SPECIAL EDITION 에 My Honey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 Dcinside 에 남자 솔로 가수로는 최초로 개인 갤러리가 생겼다. 그리고 갤러리 생긴지 하루만에 와서 본인이 인증글 올렸다. 갤러리가 생긴 이유는 디씨뉴스 인터뷰에서 가수 본인이 갤러리를 만들어달라 해서(...) 확실히 오덕 맞다. 하지만 DC 특유의 비아냥 등에 상처 받은 몇가지 일들로 드림팩토리 팬덤은 DC 쪽과 크게 갈라진 상태(...). 이승환 본인도 갤러리에 가지 않는다고 드림팩토리 게시판에 글을 쓴 적이 있다.(지금은 환느 까면 사살! 을 외치는 효도갤로 갱생했다. 믿어주세요. 효도할게요.)

  • 사실 여장남자이다...는 페이크고. '착한 내 친구' 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장을 한 적이 있다. 드림팩토리 소속가수 편집앨범인 'Long Live Dreamfactory'에도 같은 여장사진이 들어가있다.

  • 데뷔 당시에 기획사의 횡포에 질려서 아버지 돈을 빌려서최초로 1인 기획사를 세우고 앨범을 만들었다. 이미 그 전에도 당시 아마추어로는 흔치 않게 홈스튜디오 장비가 있어서 김종서를 비롯한 당시의 아마추어들이 자주 녹음하러 다닌, 명물이었다고 한다. 또한 최초로 보너스 트랙이란 것을 도입하기도. 2집 Always의 수록곡 중 하나인 이 세상은은 CD에만 수록된 곡이다. 즉 카세트 테이프에는 수록이 안 되었다는 뜻.

  •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2의 멘토로 확정 되었으며 네티즌 팬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승환의 성질머리가 드디어 공중파에서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에 대한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방영 이후의 활약은 무난한 모습.

  • 촛불집회와 MBC 파업 콘서트 등과 같은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1980년대 시대 흐름과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 조용히 대학 생활을 해왔던 것에 대해 모종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2012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26년의 제작에 10억 원을 투자하면서 그의 스탠스를 다시금 보여줬다. 영화 제작 환경이 불확실했던 데다 드림팩토리의 사세가 낙관적이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어려운 결정을 내린 셈.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과거 'His Ballad II'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꽃'이 삽입되었다.

  • 2014년 11집을 발표하면서 노무현 前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헌정곡도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이다. 도종환 시인이 작사했고, 수익금은 백혈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한다고.

  • SBS에서 선배가수와 후배가수가 협동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인 슈퍼매치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제작했는데 거기서 CL과 함께 엄정화의 D.I.S.C.O를 불렀다.유튜브 영상[44](출연자 중 개코가 '거의 시상식 무대 수준이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실제로 이승환 공연의 모든 퀄러티가 집약된 무대였으며 시상식 무대 중에서도 이만한 퀄러티를 보여주는 무대는 없었다.)

  • 매니지먼트를 할때 소속 연예인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박신혜와 김시후와는 나이차도 많이 나고,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데도 계속 존댓말을 한다고 한다.

  • 11집 발매를 앞두고 일렉기타 사이트로 유명한 뮬(사이트)본인 인증을 했다! 11집 타이틀곡 파트별 음원 공개라는 대인배적인 행동으로 확인사살. 이로서 기타덕후임을 몸소 알렸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음향쪽에 워낙 신경을 쓰다보니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에선 "나는 방송국들의 음향설비를 믿지 못한다."라 말하며 확고한 의지로 립싱크를 한 적이 있다. 오덕계에선 꽤나 화제가 되었던 일. 하지만 이런 양반이 립싱크는 진짜 더럽게 못 한다. 특히 예전의 가요 프로그램 출연시의 립싱크, 뮤직비디오상의 립싱크를 보면 어색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45]

  • 2014년엔 그의 노래인 개미혁명이 투니버스 방영 신작인 아라타칸가타리의 엔딩곡으로 타이업되기도 했다. 장금이의 꿈 이후로 상당히 오랜만.

  • 2014년 10월 25일자 히든 싱어 시즌 3에 출연, 모창 능력자들과 경쟁을 펼쳤는데 다른 가수들처럼 MR을 쓴게 아니라 밴드를 데려와서 연주를 하고, 일부 공연 시설까지 갖다놓는 차원이 다른 무대를 보여줬다. 1라운드 탈락자[46]를 제외하는게 아니라 1라운드 탈락자도 광팬인이었고 이승환 본인이 말했듯 오히려 3라운드 탈락자인 예비 과장인 분이 다른 출연자에 비해 아닌듯 싶지만 모두가 이승환 광팬이라 훈훈한 무대가 펼쳐졌으며, 비록 이승환이 1표 차이로 우승을 놓치긴 했으나[47] 4라운드 경연이었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는 히든 싱어 역대급 무대였다는 평. 말그대로 누가 우승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닌, 스타와 팬이 하나되는 무대였다. 우승은 놓쳤지만 방송 이후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가 온라인 음원차트에서 예토전생하고 콘서트 예매율이 올라가는 등 이승환 본인에게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 히든 싱어 방송 이후 페이스북에 대기실에서 모창 능력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왕중왕전에서 우승자인 김영관씨를 응원한다는 메세지를 남겼고, 홍대 모처에서 모창 능력자들과 같이 모여 히든 싱어 본방을 시청하는 사진도 남겼다.

  • 2015년 설 연휴 특집으로 2014년 연말 라이브 실황이 공중파를 탔다! 데뷔 26년 만이라고(...) 광고가 95% 팔린 것을 봐서는 반응[48]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 경사났네 경사났어

  •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팝 음반, 최우수 팝 노래 등 3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리고 올해의 음악인 부분 수상!!!!!!그리고 이 소식에 팬들은 말그대로 온몸으로 울었다.

2. 작곡가 이승환


위의 가수와는 동명이인으로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은상을 받았던 '우산과 아이'로 데뷔했다. 필명인 '더 스토리'로도 알려져 있다.

가수로도 활동했지만 작곡가로서의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대표곡으로는 이소라바람이 분다가 있다.

나는 가수다에서 이소라의 무대를 주로 편곡했으며 이소라 탈락 후에는 자문위원단으로도 활동했다.

3. 개그맨, 기업가 이승환


1976년 7월 6일생. KBS 공채 개그맨 13기로, 갈갈이 삼형제의 일원.

박준형, 정종철과 같은 코너를 하면서 느끼남 컨셉으로 활동했다. 갈갈이 3형제 영화도 같이 찍었고...그러나 이후 박준형, 정종철이 개그계에서 역할을 확고하게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개그계에서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이후 사업에 뛰어든 그는 몇 번의 실패를 거쳤지만 벌집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고깃집을 차렸고, 현재는 240여 개의 체인점을 가진 점포로 성장했다. 연예인이지만 일부 지역광고 등을 제외하면 점포 홍보에 본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렇다. 벌집삼겹살이 이사람 것이다!

개그맨은 물론, 여타 연예인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위너로 꼽히고 있다. 개그계에서 물러난 후 공중파에서의 활동은 사실상 접었지만, 오락성이 약한 케이블 프로그램이나 TV쇼 진품명품 등에는 가끔씩 출연한다.

4. 성우 이승환

MBC 10기 성우. 1959년생 ~ 2011년 사망. 1985년에 입사하여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였다. 김강산, 김동현(성우), 김영훈, 손원일, 정미연, 황미영과는 동기.

주요작은 닌자 거북이의 레오나르도 말고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드라마에도 출연했는데 제4공화국(드라마)에서 허삼수 역으로 나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1년 1월 16일에 별세했으며 성우 이승환의 아들이 성갤에 방문해서 부고 소식을 알려주었다. 사유는 불명.

4.1. 출연작

5. 배우 서강준의 본명


자세한 내용은 서강준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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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67년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히 1965년생이다. 윤상두 살 속여봤자 67년생이라고 디스했다. 액면가는 76년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는게 함정 또한 이전엔 1966년이라고 알려저왔으나 그마저도 호적상 생일이다. 즉, 그동안 1967년생으로 알려진데다 신승훈과 동갑내기로 알려져 왔지만 동갑이 아니다. 과거 1992년 잡지 인터뷰에는 동갑내기로 알려지긴 했다. 아님 이승환의 착각일지도.
  • [2]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이게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니 경상도 말투나온다고 잡아내면서 본인이 인증.
  • [3] '우리기획'으로 시작된 이승환의 1인 기획사로, 2014년 재정난으로 일단 문을 닫았다.
  • [4] 윤상이 소속된 그 기획사 맞다.
  • [5] 오드뮤직과의 계약만료로 다시 드림팩토리로 복귀. 현재는 매니저와 계산직공만 근무하고 있다.
  • [6] 토이 4, 5집에 객원 보컬로 참여할 당시에는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한 바 있다. 비슷한 예로 신경필이 있다.
  • [7] 하지만 본인은 이런 별명이 스스로에게 음악적인 면에서 족쇄가 된다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항간에서는 이것도 데뷔 당시에 기자인 친구가 기사를 쓰면서 붙여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확한 내용 추가 바람.
  • [8] 조규찬의 표현대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그 시절은 TV 출연을 열심히 안 해도 라디오 방송횟수와 공연, 입소문으로도 100만장 판매가 가능한 앨범들이 있던시기였다.
  • [9] 왜냐면 한창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시기에는 아이돌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0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었다. 여기에 대학가에서도 인기도 장난이 아닌 시기였다.
  • [10] 정확히 말하면 계속 퇴짜를 맞다가 17번째로 간 곳에서 드디어 성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획사에서 내세운 조건이 3년에 3장의 앨범을 내고 매년마다 홍보비 2000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이에 이승환은 좀 아닌 것 같다 생각은 하면서도 여기에 응해서 녹음 시작을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영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아버지께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드린 후에 그 때까지 소비한 녹음비 800만원은 다 지불하고 계약 파기. 결국 유산으로 받은 500만원으로 본인이 직접 데뷔 앨범 제작을 한다. 계산하면 1300만원으로 데뷔 앨범을 제작한 셈.
  • [11] 아버지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1집이 대성공을 거둔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다고 한다. 아들이 가수인 것을 아버지 친구들이 모른다고 하시면서 TV 활동은 안하냐고 하셨다고. 수입 관리도 해주셨을 정도니 나름 전략도 세워주신 셈이다. 그래서 본인 명의의 도장과 통장은 39살에 처음 가졌다고 한다. 왕자는 왕자였던 셈?
  • [12] 초창기 시절의 TV 출연 영상을 보면 시선 처리를 엄청 못 한다. 본인 스스로도 TV에서 라이브는 공연시보다 엄청 못 한다고 스스로 말하고 다닐 정도라면... 다만 요즘은 시대가 시대라서 TV 출연을 안 하면 영업이 불가능'''해서 이전보다 TV에 자주 나오기는 한다.
  • [13] 라스에선 아예 "방송국 음향스텝을 믿지 못해서 방송국에선 라이브를 안한다." 라고 하기도 했다. 항상 음향 엔지니어를 데리고 다니는데, 방송국에서도 그러면 방송국 스텝들이 싫어해서 그냥 방송국에선 립싱크를 한다고 한다.
  • [14] 97~99년 사이의 투어를 3CD 형태로 99년 무적전설이란 타이틀로 발매. 참고로 이 앨범은 패키지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로 극찬을 받은 앨범이다. 이승환 초심자라면 구해서 꼭 들어보자.
  • [15] 이 실황은 끝장 라이브로 DVD 발매.
  • [16] 관객, 흥행, 음악, 무대매너 모두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정말 독보적이었다고
  • [17] 관객이 열광하다 지쳐 쓰러지고, 앉아서 쉬며 기운을 차린 뒤 다시 환호가 반복된다.
  • [18] 이 시절 오태호는 기타리스트. 훗날 둘이서 만드는 발라드를 생각해보면 상상이 안간다.
  • [19] 이 시절 소극장 공연에서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무대에 멋지게 등장했는데 제일 앞자리 여자관객이 어머 여기는 중학생이 보컬인가봐!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좌절해서 이후 발라드로 전향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냥 믿거나 말거나...
  • [20] 다만 본인은 이 앨범, 특히 이 당시 본인의 보컬톤을 상당히 부끄러워 하는 듯 하다. 스스로 바람난 중딩이라면서 디스한다. 하지만 이런 초창기 시절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
  • [21] 그래서 라이브에서는 아예 락으로 싹 뒤엎어서 부른다.
  • [22] 그래서 이오공감의 앨범은 오태호의 발라드곡 때문에 많이 팔렸다고 스스로 확인사살(...).
  • [23] 그래서 3집의 타이틀이 My Story.
  • [24] 4집 수록곡 너의 나라와 6집 나의 영웅 참고. 골수팬들이야 좋다고는 하지만 발라드 가수로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뜨악스럽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4집에서 다수 수록된 락적인 트랙을 듣고 변절자라면서 돌아선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1, 2집 시절의 이승환을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예상외로 많은 편이다.
  • [25]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김동률 작사/작곡이라고 알고있는데 이 곡은 이승환이 가사를 쓰고 김동률이 멜로디를 쓴 곡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9년 선후배 사이. 누가 연장자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고김동률은 본인이 고등학교 2학년때 당시 학교 가요제의 손님으로서 이승환을 본 기억이 있다고 회상. 참고로 천 일 동안은 김동률이 이승환 집에 놀러와서 피아노로 멜로디를 연주해줬을 때 이승환이 그 자리에서 다만이랑 함께 이 곡을 수록하겠다고 바로 알려줬다고 한다.
  • [26] 다만 5집 이후부터 작곡 부분은 공동으로 하는 비중이 많이 늘고 있다.
  • [27] 유희열의 인터뷰에 의하면 전체적인 아이디어의 대다수는 해당 뮤지션(이승환, 윤종신)이 하고 본인은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
  • [28] 더 클래식마법의 성, 그게 이 양반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을 감춘 것은 그 당시 가수가 왜 제작을 하느냐는 주변의 눈총(그 시절에는 가수가 제작은 하는 것에 대해서 시선이 고운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때문에 숨긴 것이라고. 소속가수로 따지면 더 클래식이 바로 우리기획 소속가수 1호.
  • [29] 김종서는 무명 시절부터 이승환 집을 수시로 드나드는 친구라고 한다. 서로를 율동락커(이승환), 액션락커(김종서)로 까는 사이라고...훗날 19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게 되는 신해철, 김태원, 김종서, 이승환, 유영석, 김건모, 김현철 등등은 이미 1980년대 무명시절부터 서로 절친이거나 한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 [30] 세션에 참여한 사람들이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이라면 어머나!!!를 외칠 이런 사람들이 다수였다고 그래서 발매 당시에 화제가 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아서 생각보다 지출액이 많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경제 부흥으로 달러 환율이 낮았던 이유도 한 몫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승환 본인이 스스로도 말하듯이 꽤나 잘 살았던 집안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 [31] 더불어서 앨범 자체가 후배 가수들에겐 하나의 지표가 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앨범이었고, 이승환의 보컬톤도 이 앨범에서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다. 또한 4집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으며 무엇보다 타이틀곡이 천 일 동안.
  • [32]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데이빗 캠벨, 뮤지션 의 아버지인 그 양반 맞다.
  • [33] 나의 옛 친구, 참고로 편곡은 유희열
  • [34] 들어보면 숭배하라!!! 하고 외치는 이 인간이 이철민이 아니라이승환이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사실을 알고 놀란 사람들도 있었다.
  • [35] 순서대로 The Big 5, 공존, Human
  • [36] 하지만 이 만화는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보고 설레었다가 나이가 다시 들어서 보니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를 느껴서 별로였다는 평도 많다. 아니 이은혜 자체가 평가가 좋은 만화가가 아니다보니...
  • [37] 이 뮤직비디오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그때 짧은 뮤직비디오 클립이 나오는데, 채림은 아예 블러 처리했다.
  • [38] 공중파에서 공개한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MC인 유재석이 놀랄 정도로 마른 체구였다. 사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운동을 하고 있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근육까지는... 본인도 여기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가 있었는지 우리의 체형을 적들에게 알리지마라를 신조로 삼고다녔다.
  • [39] 힐링캠프에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밝혔는데 이것은 직접 보는 것을 권한다.
  • [40] 신인이 아니면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를 한 바가 있다.
  • [41] 당시 PD들이 최고로 꼽았다면 어느 정도 수상 가능성은 있던 셈이다.
  • [42] 원래부터 루머 관련해서는 본인의 결백함을 증명하는 것을 중시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언론 대응을 참 못하는 편이라는 것이 문제. 스포츠 신문상의 카더라 통신도 본인이 빡쳐서 이거 나 아니라고 글까지 PC통신상에 올릴 정도면... 이것 외에도 1995년에 이승환도 백마스킹 루머에 연루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아예 공중파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니라고 증명까지 할 정도로 루머 자체에 엄청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았다. 다만 이 사건과 애원 뮤직비디오 사건은 발생 이후의 후폭풍이 달라서...
  • [43] 일단 그는 1989년 1집부터 명칭을 사용했으니...
  • [44] 참고로 이 영상에는 CL의 인기때문인지 외국인들의 댓글이 많은데, 그중에 "who is the boy, i like his voice"라는 댓글에 다른 유저가 친절하게 "He is a MAN not a boy but a MAN that is 47 years young"라고 답글을 달아주었다.
  • [45] 사실 이런 립싱크를 못하는 가수들 엄청 많다. 당장 아이돌중에도 김희철 같은 경우는 라이브도 미묘하지만 립싱크할때 싱크가 엇나가는듯한 립싱크로 대충한다고 엄청 욕먹기도 했고 일종의 자존심 문제 때문에 립싱크에 신경안쓰는 가수들도 많다.
  • [46] 본인은 아니고 아내가 이승환 광팬이었다고
  • [47] 우승자인 김영관씨가 90년대 초중반 이승환의 목소리와 창법을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히 재현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후반부에서 보여주듯 성량의 차이가 좀 있긴 했지만.
  • [48] 라이브를 갔다온 사람들은 3시간이 넘는 공연이 90분으로 짤리고 카메라가 발이라고 궁시렁거렸지만 일단 공중파 타는 것만 해도 어디냐 라면서 좋아하는 모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