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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last modified: 2016-05-16 14:27:4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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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이슬람교의 기본
2.1. 마드하브(이슬람의 주요 학파)
3. 종교의 배경
4. 종교의 특징
5. 이슬람 문화
5.1. 이슬람의 사원과 예배
5.2. 종교와 식품
5.3. 이슬람교에서의 성관념
5.4. 이슬람에서의 여성의 권리
5.5. 남성의 할례(포경수술)
5.6. 민속 이슬람
5.7. 종교 용어의 차이
6.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와의 관계
6.1. 이슬람의 타 종교 탄압 사례
6.2. 타 종교의 이슬람 탄압 사례
7. 근대~현대의 이슬람교
8. 이슬람 국가들의 특징
9. 이슬람교의 출산율
10. 이슬람=아랍=중동?
11.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
12. 한국과 이슬람교
12.1. 문화 갈등
13. 창작물에서의 이슬람교
13.1. 이슬람에 관한 창작물
14. 읽을 거리
15. 여성인권이 그나마 발달한 이슬람일파 및 조직
16. 관련 항목

الإسلام
Islam

알라

1. 개요

5분사탐-세계사 - 07강 이슬람교_#001
이슬람(اسلام)이라는 말은 아랍어 어근 'س ل م(S-L-M)'에서 온 것인데, 이는 아랍어로 (신에게) 순종, 복종이라는 뜻이다.[1]
예언자 무함마드동굴에서 자다가 천사를 통한 계시에 의해 아내와 어린 조카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 것에서 시작되어 2010년 통계로 약 16억 1천만명의 사람들이 믿는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다. 천주교 (12억)와 범 개신교 (6억 9천만),정교회 (4억 1천만)를 분리해서 본다면 1위[2], 합친다면 1위인 기독교 (21억명)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힌두교불교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슬람의 분파에는 순니파시아파가 있으며, 순니파는 13억, 시아파가 약 2억, 나머지는 기타 분파로 나뉘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은 중동 지역의 종교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발상지는 중동이지만 엄연히 이슬람권 국가 중 가장 큰 나라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는 인도네시아이며 인도남아시아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도 이슬람교가 주류인 국가가 많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서울성전의 인터넷 주소는 http://www.koreaislam.org/. 이다

한자로 회교(回敎)라 표기한다.[3] 회흘(回吃; 현재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행정구역) 지방에서 건너온 종교라는 뜻으로 추정되며. 명나라 때에는 회흘 지방에서 건너와 중국에 정착한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회회인(回回人)이라 칭하였다.(이를테면 기독교인 십자회회(十字回回) 유대인은 남모회회(藍帽回回)등등 회회 앞에 특징을 붙여 칭함) 그러나 명나라 때에 이르자 명의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서역 출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한족하고만 혼인하도록 강제 하는 정책으로 이들을 한화시켜버렸고 이에 따라 이슬람 회회인 이외에 기독교와 유대교 회회인은 아예 한족과 동화되어 버리거나 차라리 중국 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결국에는 '회회'라는 말이 무슬림을 칭하는 말로 굳어지게 된다.[4]

2. 이슬람교의 기본

족의 종교, 즉 셈족 종교 가운데 현존하는 세번째 순서[5]이자 아브라함교 중 하나로, 아브라함의 하느님[6]을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신의 이름을 직접 일컫는 것을 금지하는 교리[7]로 인해, 그들의 유일신을 알라라고 부른다. 알라(Allah)는 아랍어로 'The God'[8]이란 뜻이다.

'알라신'이란 표현은 '역전 앞'과 같아서 틀린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알라신' 자체는 잘못된 표현이 아닌데[9], 아랍어 단어에는 동의어 반복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항목 참조. 한국 이슬람교에서는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한다.

참고로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린 천사는 가브리엘 아랍어로는 지브릴(جبريل). 단 이슬람교에서는 천사에게는 종족 번식이 필요없다. 필요에 따라 알라에 의해 생산이 된다 생각해 따로 성별을 따지지 않으나 기독교에서는 성별에 대해 논란이 있다. 다만 구약성경에서 천사가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많이 나타났다.[10]

경전은 쿠란이다. 기독교의 성경이 많은 오역에도 불구하고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자들로 인해 곡해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쿠란은 번역이 금지되어있다.[11] 다른 말로 번역한 쿠란은 쿠란이 아니라는 것이며, 쿠란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며, 번역본은 쿠란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설명서 정도의 지위만 차지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번역된 쿠란에는 항상 '의미의'라는 수식어가 붙거나 '주해서'라는 단서가 달린다. 예를 들어 한국어 번역본의 이름은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만약 번역본을 아랍어로 된 쿠란과 동급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독특한 지역적 차이로 간주된다. [12]

일반인들의 상식 상으로는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를 뿌리로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정작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아담 때부터 시작된 종교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원래의 순수한 유일신 신앙이 변조된 것으로 이슬람은 인류 창조부터 시작된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관계에서의 쟁점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신을 믿느냐 아니냐하는 논점에 따라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이나 기독교에서 주로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쪽에서는 서로 같은 신을 믿는게 맞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 선교단체 등에서는 이슬람의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슬람 교조주의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우상을 상정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고 주장을 하며 기독교인을 하나님의 적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기독교의 신도 따지고보면 하나님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하지 못한다.[13]

오 성서의 백성들[14]아 너희가 모세오경과 복음과 너희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지금 내려주신 것(쿠란)을 따라 행할 때까지 너희는 아무것도 없느니라

오 성서의 백성들아 왜 너희가 진리를 허위와 뒤섞어 의도적으로 진리를 은폐하느뇨?

그리고 스스로‘ 우리는 기독교인이요’라고 하는 자들로부터도 내가 약속을 받았으나 그들은 그들에게 보내어진 메시지 중에서 선한 부분을 저버렸노라. 그리하면 부활의 날(저들이 알라의 책을 버리고 알라의 메신저들과 그분의 질서들에 복종하지 않고 알라의 계율을 범하였을 때)까지 그들 가운데에 증오와 대립을 내가 심었노라 그리하여 곧 알라께서는 그들 자신들이 행해온 것이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알릴 것이니라.

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1) 알라를 믿지 아니하고, (2) 최후의 날을 믿지 아니하며, (3) 알라와 알라의 사도께서 불법이라 한 것을 불법으로 지키지 아니하며, (4) 진실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이 세금을 기꺼이 납부하고 그들 스스로 복종할 때 까지 싸우라 그리고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에스라가 알라의 아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알라의 아들이라 하니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노라 그들은 그들 이전에 믿지 아니한 자들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니 알라의 저주가 그들에게 있으니라 얼마나 저들이 진리로부터 벗어나 미혹되어 있는가?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에 대한 해석이 기독교와 꽤 다르긴 하지만, 사칭이니 하면서 예수를 싫어하는 유대교와는 달리 예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 이슬람교에서 예수는 25명의 예언자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예언자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급, 알라가 보낸 중요한 예언자 세 명 중 한 명으로 대우받는다. (나머지 둘은 모세와 무함마드)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를 인정하고, 예수가 행했던 모든 기적도 인정하며, 최후의 심판일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애초에 무함마드가 '예수 바로 다음에 온 최후의 선지자'라고 광고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작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위일체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안 믿는다는 데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이슬람교에서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알라가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대신 이스카리옷 유다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예수를 구해줬다고 해석한다. - 그래서 이슬람교는 기독교를 우상숭배 종교라고 깐다.

다수의 순니파와 소수의 시아파 및 기타 등등이 있는데 나라마다 파의 비율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인구의 대다수가 순니파지만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고, 이라크는 시아파 인구가 절반을 약간 넘는다.[15] 교파가 갈리는 건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 자리를 놓고 일어난 분쟁에서 시작된 것으로, 몇몇 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근데 이 순니파와 시아파의 차이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격차 따위는 상대도 못할 만한 수준이라(…). 거기다 순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분파를 인정하기 때문에 분파도 꽤 많은 편이다. 무함마드가 살아있었을 때 내가 죽고 난 뒤에 이슬람교가 몇십, 몇백개 정도로 쪼개질 것이다란 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었다(…). 과연 예언자 아무튼 저런 이유로 나름 잘 싸우고 사이도 별로 안 좋다. 중동을 고향으로 하며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2.1. 마드하브(이슬람의 주요 학파)

  • 수니파 - 샤리아법 해석에 따른 4대 학파는 다음과 같다.
    • 하나피 학파 - 중앙아시아, 터키 등지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유연한 해석을 적용하는 학파로 중세시대에는 조금이지만 술을 먹어도 좋다는 해석까지 내놓았을 정도로 관용적인 학파. 실제 중앙아시아와 터키에서는 길거리에서 대놓고 만취한 모습을 보이는 정도는 경계하지만 술은 전통주건 독한 보드카건 잘만 마신다. 다만 다른 쪽으로 유연한 해석을 적용해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처럼 되는 경우도 있다.
    • 말리키 학파 - 아프리카에 주로 분포.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 이슬람은 죄다 말리키 학파. 메카의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
    • 샤피이 학파 -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에서 우세. 하나피와 말리키 학파 사이의 중용을 취하고 있다.
    • 한발리 학파 - 가장 엄격한 꼴통 학파이자 이슬람 극단주의의 근원이 된 학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에서만 우세.[16]
  • 시아파 자세한 정보 (한겨레)
    • 열두 이맘파 - 시아파의 대다수이자 이란의 대다수.
    • 이스마일파 (일곱 이맘파) - 시아파에서 두번째로 큰 종파. 암살단으로 유명한 어새신파가 여기에서 갈라져 나왔다(!!!).
    • 자이드파 (다섯 이맘파)
  • 알라위파, 루즈파 -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왔으나 별도의 종파. 심지어는 별도의 종교로 보기도 한다. 심지어 드루즈파는 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군과 동맹을 맺고 다른 이슬람교도들과 싸웠을 정도.
  • 수피즘 (sufism) - 위의 종파 구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즉 순니파 수피도 있을 수 있고 시아파 수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수피즘 분파에선 관용을 우선시[17]하면서 비이슬람이나 무신론자와도 교류를 해왔기에 같은 이슬람에게도 이단 취급을 받고 아타튀르크도 그다지 좋지 않게 여겨서 이들의 춤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이들의 심벌이 되어버린 세마댄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금지정책을 폐지했다. [18]
  • 이바디파 - 하와리즈 운동에 영향을 받은 학파로 오만에서 유행하였다.

3. 종교의 배경

무함마드가 이 종교를 만든 것에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아랍 지역을 통합해 질서를 바로 잡으려던 의도가 있어서, 민족을 강조하는 건 아니지만 생활과 전통에 가까운 교리가 많아 민족종교적인 성격이 짙은 편이다.[19]

또한 아랍지역에 필요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외부사회의 시선과 내부의 전통이 유독 많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를테자면 후술 될 항목에 나온 것처럼 술을 금지한다던지 사막 근처라고 당장 마실 물도 귀한겁니까!!!, 거기에 더해 흐르는 물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나, 돈이나 재물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점[20][21] , 유목민족들의 성향처럼 집단의 내부통제를 위한 것들[22]이 그러하다.

쿠란에서는 무함마드에게 이슬람이 계시된 배경을 성경에 나오는 다른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맞물려서 설명한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르면 알라는 인간을 유일신 신앙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고 믿어왔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유일신 신앙이 잊혀지고 왜곡된다고 가르친다. 알라는 이러한 왜곡된 신앙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하여 사람들 사이에 예언자들을 보낸다는 것이다.[23]

인도에서의 이슬람교는 그런 교리에 의한 전통면에서 인도의 민족종교 중 하나인 힌두교와 대비적인 성격이 짙은데, 그 때문인지 그리스도교만큼은 아니어도 저 둘의 사이가 좋지는 않다. 전통적 힌두교도였던 그 유명한 간디를 암살한 건 원리주의 힌두교 신자였는데, 이는 간디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화합을 꾀하였기 때문이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사이가 안 좋은 이유가 바로 종교 때문이다. 그래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퓨전을 시도한 종교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크교.

4. 종교의 특징


- "믿는 신앙인이란 신과 선지자를 믿되 의심하지 아니하고 신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하는 자들이 바로 믿는 신앙인들이라 (쿠란 49:15)"#

- "믿는자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게하라 신은 항상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쿠란 9:123)"#

우상숭배를 매우 배척하는게 특징. 물론 이건 유대교, 그리스도교 역시도 공유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우상으로 오해될 수 있는 것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이에 성상은 물론 그리스도교십자가 같은 상징마저도 만들지 않는다. 그 덕택에 발전한 예술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아랍식 서예이다.[24] 이 우상에 대한 배척은 다른 어떤 종교도 못따라갈 정도로 매우 강력한 수준.[25] 그래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어서 좀 덜한 곳도 있다고 한다.[26]

아무리 그래도 아예 징표가 없으면 곤란한지라, 천사의 별이나 무함마드 정도는 사용하는 듯 하다. 무함마드메카에서 탈출할 때 빛이 되어서 앞을 밝혔다고 한다.

또한 특이한 예외가 있는데 바로 카바의 검은돌 신석神石이다. 이것은 단지 카바 뿐만아니라 몇개의 검은돌이 있는데 특히, 메카에 존재하던 카바의 검은돌은 무함마드당시의 온갖 아랍 제종교의 경쟁에 중심에 있는 상징으로서 무함마드가 이곳을 지배함에 따라 이슬람의 중요한 상징이되었고 숭앙의 대상이 되엇다. 이슬람에서 하루 5번 올리는 기도,살라트의 대상은 바로 이 메카에 위치한 카바의 신석을 향한 것이다.

과거 상대적으로 타종교인에게 관대했다고 하는데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066년 그라나다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가 말살되었고, 1126년 안달루시아에는 수천~만명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신자 주민들이 모로코에 노예로 팔려갔다. 10~11세기 코르도바의 학자이자 시인인 이븐 하심(994~1064)은 그리스도교를 반박하기 위해 『분파의 서(Kitab al-Fistal)』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슬람 통치 하의 타 종교인들은 이슬람 당국의 허가없이 새 교회건물을 짓거나 개축 및 보수할 수 없었고 공적인 종교 행렬도 거행할 수도 없었다. 다만 오스만 제국시절의 경우, 밀레트(종교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가능했다. 후술하겠지만 소위 관용의 상징으로서 타 종교인에게 세금을 부여했다는 것도 타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에게는 살인적인 세금 폭탄'이라는 말과 똑같았다. 그 외에도 쿠란에 기독교와 유대교 신자들에게 대한 차별 조항을 명시해 놓는 등 타 종교에게 마냥 관용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많았지만, 결국 전체 역사적으로 볼때 중근동의 수만개의 타종교 교회나 시설들이 점진적으로 파괴당했다. 단적으로 생각해서 이슬람 전성기가 막 시작될 때만 해도 중근동 지역에 매우 많던 기독교 신자들이 지금은 소수를 빼면 다 어디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따뜻한 '과 '관용의 상징인 견딜만한 세금'이 있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비이슬람 소수종교가 괴멸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종교인들은 무슬림만 보이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고, 말을 타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현대로 치면 타종교인은 자동차를 못타게 하는 수준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가시적인 차별은 많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사실상 타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극심한 불관용은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현대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이며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즉,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 지도자, 사회에 따라 달랐다.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의 경우 당시 유럽에서 온 그리스도교 성직자가 "그건 좀 아니라고" 뒤에서 비판할 정도로 무신론자도 우대했다. 오스만 제국시기에도 주류 학파인 하나피파는 법정에서 짐미(이슬람의 보호를 받는, 즉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신자들)의 증언이 무슬림과 동일한 위력을 갖는다고 보았다. 반면에 샤피파와 말리키파는 짐미의 증언은 무슬림에 비해 1/2, 한발리파는 1/8의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27] 그러나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슬람 역시 역사적으로 힘이 있을 때면 주변국을 침공해 쓸어버리는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했다. 이슬람 탄생 때부터 다신교도들과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고,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한 적도 있으며, 초기 이슬람교와 오스만 제국은 탄압의 강도가 장난 아니었다.

관용의 상징이라는 인두세를 전 신민에게 거두려 하다가 작살난 나라도 있다. 바로 앞서 말한 그 무굴 제국. 그 전부터 국가 막장 테크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긴 했지만. 그리고 교인의 배교, 즉 개종 역시 매우 부정적인데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 이란,사우디 아라비아,수단,알제리 등을 비롯해 일부 세속적인 국가들을 제외한 이슬람 국가들 거의 전부가 타 종교로의 개종을 죽을 죄로 보고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자는 죽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개종자에게 가혹한 처벌조차 현재까지도 시행하고 있다.개종 못할 거야 아마.

특이하게도 사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는 신과 인간은 감히 만날 수 없다 생각하여[28] 그 사이를 연결해 줄 뭔가가 딱히 필요 없다 여기며, 이슬람이 주류인 지역에서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알아서 관련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사제가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이슬람교도는 전부 다 전도사사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예배 인도 역할을 이맘이 하는데, 신도들은 이맘보다 예배를 먼저 거행해선 안되고 순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예배를 할 때는 자기가 이맘이 되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할 때는 제일 웃어른이 이맘이 되는등 굉장히 유연하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슬람교 외에도 사제가 없는 종교가 몇 있긴 하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기에 목사는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로 분류된다. 이슬람교의 경우 순니파는 예배시 일반 신도들 중 한 사람이 맡는 '이맘'이라는 사회자(…)를 맡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분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준 예언자 수준의 의미를 갖는다. 율법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서 경전 해석에 큰 영향을 주는 율법학자가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이슬람에서는 평신도다. 무함마드와 같이 예언자는 신이 계시를 내리기 위해 일부러 파견한 경우가 있지만 무함마드를 마지막으로 사제가 없다는 게 명시되다 보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신 아래에서 평등성이 강조되어, 종교적인 문제라면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노예가 왕에게 "이건 이슬람에 저촉됩니다!!"라고 비판하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그때문에 라마단 금식 등 종교적인 계율을 종교에 대한 신념을 떠나 남의 눈과 지적이 따가워서 잘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이 당시 각 분야에서 미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학자의 위치와 영향력은 성과 속이 통합되어 있는 이슬람의 특성상 오히려 다른 종교문화권의 성직자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교 자체는 사제를 두지 않고 모두 평신도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이슬람 학자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한 예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이슬람 율법이 헌법을 대신하고 있는 정교일치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교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법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슬람 교리를 해석하냐에 따라 국법이 바뀌기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 한가지 예로, 일반 무슬림들과 이슬람교 얘길 하다가 꾸란 구절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면[29] 대개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이슬람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거나 만나서 얘길 해볼 것을 권하고 본인들은 더이상 논하는것을 거부하는게 일반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들은 권위있고 신망있는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또한 이슬람교도들이 하루 삼시세끼 먹는 음식인 할랄푸드도 이슬람 사제들의 축복과 인증이 없다면 나올수 없는 것이다. 즉, 할랄인증 자체가 이슬람 사제들의 주요 업무인 셈.

사제가 없다는 특징은 이슬람의 전파 양식이 상좌부 불교나 초기 그리스도교와 같은 문화적인 전파가 아닌 지배이념으로써 무력에 의한 정복 형태에 주로 의존하게 하였다. 한편 이러한 무력에 의한 전파 형태는 그리스도교 진영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하였고, 이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진출 시 응용되었다.

무슬림들은 5가지 의무를 지니게 되는데,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 자카트(자선기부), 사움(라마단 기간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그냥 '라마단'이라고도 한다), 핫지(일생에 한 번 메카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하루에 5번 이상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달 라술룰라"(알라 외에는 신적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예언자이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신앙 고백이라고 하며, 이는 이슬람의 첫 번째 의무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난한 유목민이나 노동자들도 샤하다는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루 5번의 예배(살라트) 시간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계절마다 예배 시간이 달라진다. 아랍인들이 시간 감각이 매우 무딘 편인데 시간 약속을 2시간 정도 늦는게 평균이다. 이는 아랍인들이 시간을 우리처럼 1시 2시 이렇게 24시각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보다는 5번의 예배 시간에 맞춰서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n번째 예배 끝나고 보자고 하면 시간 약속을 잘 지키려나

자카트는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구빈 희사세로 대개 순수익의 2.5%를 지불하며, 비슷한 개념으로 원하고 싶을 때 기부하는 사다까라는 기부 개념도 있다.

라마단은 1달 동안의 단식으로, 1달 내내 단식을 하면 사람이 당연히 죽으니까 해 뜰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을 행한다. 대략 새벽 3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흡연하지도 못한다. 여담으로 《흡연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이란에서는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담배를 피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결국 이란의 유력한 이슬람 분파 시아파 내에서 라마단 중의 흡연해도 된다는 율법 해석이 나왔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물론 시아파를 싫어하는 다른 아랍 나라에서는 이 일로 이란시아파를 엄청 비난했다.

핫지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규칙을 거쳐 메카에서 순례를 하는 것으로써, 정해진 기간 이외에 다른 기간에 방문한 것은 소순례로만 인정된다. 현재 성지 순례의 기착지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인구 1,000명 당 순례자 1명으로 각 나라당 순례자를 제한하고 있다. 귀화인 포함 한국인 이슬람교 신자가 15만명이고, 그중 순수 한국인 신자만 2만명이라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잘못 보고된 덕택에, 한국에서 성지순례 가기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성지순례갈 신도가 없어서 못보내며, 덕분에 한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국가 재외국민들은 하지를 몇 번이고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매년 갈 수 있는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단, 예외적으로 하지는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모든 신자가 매년 메카로 순례를 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 하려고 한다. 늦더라도 죽기 전에는 다들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순례 인파가 메카에 몰린다. 때문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던 때에는 개인 위생 문제 때문에 뉴스가 되기도 했었다.[30] 순례를 마치면 자기 이름 앞에 '하지'라는 호를 붙일 수 있고, 그 사람은 많은 존경을 받는다.[31]

그중 살라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무함마드가 천국에 있는 동안 신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는데, '모든 무슬림들은 하루에 50번씩 기도를 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뭔 깡으로 이런 맹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모세가 어이가 없었는지 "게으르고 건망증 심한 백성들이 그런걸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태클을 걸어 다행히(?) 하루 50번 기도는 무산되었고, 무함마드는 신과의 협상을 통해 하루에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지금과 같이 5번으로 줄였다. 이 글을 보는 이슬람 신자가 있다면 모세(موسى)에게 감사하자.

메카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주는 iOS, 안드로이드 어플도 나와있다. 한국인 무슬림이라면 참고하자.

5. 이슬람 문화

5.1. 이슬람의 사원과 예배

이슬람 사원은 아랍어로는 마스지드(مسجد)라고 하며 모스크(Mosqu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보통은 사원 옆에 세면장이 있으며 예배 전에 세면을 하고 들어가게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교회에 예배를 드리거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유대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다면,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을 '주무아'라고 부르며 합동 예배를 시행한다. 이 예배는 금요일 오후 1시 즈음부터 이맘이 나와서 민바르라 불리는 나무 계단 위에 앉아서 교리나 일상생활 도덕과 관련한 훈화진짜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 훈화 비슷하게 듣다가 지겨워서 자는 사람도 볼 수 있다.를 경청한 뒤 예배를 근행하게 된다.

적어도 쿠르드인들은 사원에 예배할 때 복잡한 절차[32]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사원에 앉아서 노가리를 까건 말건 상관 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예배 행위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꽤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남이 뭘 하건 상관 안 하는 분위기이다.

어쨌든 사원 내부를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방석 비슷한 융단과 비치된 쿠란뿐이다. 자세한 것은 모스크 항목 참조

그외에도 하루에 5번(순니파 5번, 시아파 3번) 기도를 해야 하니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못할 종교 같지만, 아라비안 타임으로 약간은 봐준다. 만약 빠뜨릴 경우 바로 전에 예배를 합쳐서 더 예배를 보면 된다. 또한 금요일엔 여건이 된다면 반드시 합동 예배를 보아야 한다. 중요한건 기도고, 이것만은 빼먹으면 안 된다. 굳이 사원이 아니라도 그냥 카펫(سجادة, sajjāda)하나 가지고 다니다가 길바닥에서 메카를 향해 절만 하면 되니까 다른 종교에 비해 예배드리는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기도 시간 동안 관공서까지 전부 쉬다 보니 말이 많아서 약식으로 대체하는 곳도 많다.

예배 방법은 먼저 얼굴과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것부터 시작하는데 이를 '우두(الوضوء, al-wuḍūʼ‎)'라고 하며, 사막의 경우 깨끗한 모래로 씻어도 인정해준다[33] 그 다음 코란의 제1장인 알 파티하(개경장)을 외우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무릎을 꿇고 절하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 예배(صلاة‎, Salat)는 몇 분만에 끝나는게 보통이다. 그리스도교 식으로 1~2시간씩 끌지 않는다. 금요예배에서는 이맘, 호자, 아야톨라 같은 예배를 인도하는 이가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마도 그리 길진 않은 편이다.

5.2. 종교와 식품

금지된 음식은 '하람(haram)'음식이라고 하는데 이 '하람'이라는 말은 아랍어로 '금지'란 뜻으로 하렘과 어원이 같다. 므흣한 그 하렘의 의미는 '금'남구역임에 해당한다. 무슬림이 못 먹는 하람 식품으로는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개고기, 및 맹금류의 고기와 병사한 동물의 고기가 있으며, 심지어는 사냥한 고기도 화살이나 총알로 잡은 동물의 고기는 먹을 수 없고, 오직 개나 매, 치타를 이용한 동물이 잡아서 물어온 동물의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이 하람에 관한 율법이 유대교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쉽게 설명하자면,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지만 유대교의 경우에는 장어미꾸라지 같이 비늘이 없는 물고기와 해초, 토끼고기와 낙타고기, 고기의 상체를 제외한 하체부분을 전부 못 먹는다.

반면 이슬람에서는 해산물은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을 수 없으며 채소와 농산물은 모두 허용. 고기는 상체만 먹고 하체는 못 먹고뭔가 말이 좀 므흣하다. 이런 율법은 없다. 구분 영역이 생기는 부분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 고기로, 무슬림이 이슬람식으로 잡은 고기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즉 돼지를 제외한 소, 닭, 양, 염소의 고기라도 이슬람 도축법에 의해 도축되지 않았을 경우 돼지고기랑 똑같이 금지사항이다. 뭘 먹으라고![34] 이슬만 먹으라고 이슬람인가

음주 또한 금지다. 과 관련하여 코란에서는 세 가지 계시가 나와있다.

첫 번째 계시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술과 도박에 대해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는 커다란 죄악으로서, 약간의 좋은 점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 해악은 그 이익보다도 훨씬 크다'라고 (코란 2:219)
두 번째 계시는 술취한 상태에서 예배드리지 말라는 계시로서
그대 신앙인들이여. 정신이 흐려진 상태에서는 예배드리지 마라. 적어도 스스로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코란 4:43에서 발췌)
세 번째 계시는
그대 신앙인들이여. 취하게 만드는 것과 도박하는 것, 돌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화살(을 이용해서 점을 치는 것), 그리고 맹목적인 증오는 사탄의 작품이다. 이러한 것들을 멀리한다면 너희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코란 5:90)
로서 생각보다는 간접적인 금지 문구를 담고 있다.물론 무슬림 중에는 이를 아전인수로 생까고 농담 반 진담 반 그래 번영 안해도 되 하고 마시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

술은 어느 정도 풀어주는 나라도 있지만, 돼지고기는 기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먹는다. 물론, 사막 한 가운데서 남은 음식이 돼지고기밖에 없는 경우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먹어도 된다고 이슬람계의 공식적인 율법 해석이 있다. 단 나중에 회개 기도를 올릴 것[35]. 이 때문에 한국의 음식은 이슬람 사람들에게 맞지 않을 때가 많다. 혹시 친구가 이슬람교일 경우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꼭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36]

다만 한국이나 무슬림이 소수인 나라에 사는 무슬림들 대부분은 돼지고기나 하람 음식을 먹는다. 안먹으면 한국 사람들과 부대끼는데 무리가 있기도 하거니와, 구할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 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특히 개방적인 터키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은 드러내놓고 술과 삼겹살을 먹는다. 그 밖에도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지역에서도 가끔 약용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는 일도 드물게나마 있다는 등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사실 술에 대해서는 그 엄격하다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들도 할 말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외국에 나와서 술 마시는 경우는 정말로 많다.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아랍 반도 근방의 술 조제 기술은 상당히 쇠퇴해 버렸다. 그러나 의료용 알콜[37] 을 얻기 위해 술을 증류하는 기법은 발달 했으며, 이 증류기술이 서구로 전파되어 브랜디, 위스키, 보드카 같은 증류주가 등장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술 문제 때문에 커피를 무지하게 타먹었다고 한다.[38]

또한 널리 알려진 것 중 '단식' 문화인 '라마단'도 있다. 이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월을 의미한다.[39] 하지만 단식이라고 해서 아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는 건 아니다.[40] 단식해야 하는 시간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의 약 12시간 정도. 이 시간 동안에는 음식이나 음료수 등을 일체 섭취하지 말아야 하고, 흡연도 피해야 한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면 정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먹는다. 이것을 이프타르라고 부르는데, 비이슬람인도 이 때는 꽤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기간 동안은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다들 더 찐다고 한다(...)[41][42]

라마단 기간에 터키에 놀러가면 야시장이 굉장히 볼만하다고 한다. 다만 좀 빡빡한 중동권 국가들은 라마단 기간에 여행온 신혼부부에게 '사람들 눈에 띄니까 식사하려면 화장실에서 하라'고 한다나. 변소식???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서 저런 나라에서도 좀 봐주는 이도 있다. 라마단 기간 중 이집트를 여행하던 어느 여행자는 이집트인 친구가 낮에 거침없이 밥먹는 걸 보기도 했다고.

5.3. 이슬람교에서의 성관념

이슬람교에서 여성만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쿠란은 남자도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한다고 한다.그러므로 야동이나 자위같은 행위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 이외에는 사실상 금지되어있다. 그래서 아랍지방이나 이슬람교 지역은 성적으로 많이 쇠퇴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비이슬람권 지역에서 만날수 있는 무슬림 남성들 중엔 성적으로 상당히 개방된 케이스를 꽤 볼 수 있다. 물론 무슬림 여성들에겐 해당 안되는 얘기다(...)

초창기 이슬람, 즉 9~14세기의 이슬람 세계만 해도 동성애에 관해서 관대하였다.[43] 샤리아법에 동성애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하지만, 동성애를 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며 상류층의 경우에는 동성 애인을 갖는게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9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배척받고 처벌받기 시작했다. 현재 들어와서는 자유주의의 확대로 비교적 처벌이 느슨해져 요르단, 터키등 몇몇 세속 국가에서는 처벌을 하지 않지만 아직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터부 내지는 중범죄로 감옥행이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주의 국가 에서는 채찍형에 처한다. 간통까지 했을 경우에는 사형이다. 이란에서는 국가 주도로 투석형까지 시행했을 정도.

5.4. 이슬람에서의 여성의 권리

이슬람교 자체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에는 사실상 여성을 차별하는 대표적인 종교이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아라비아 반도 지역 한정해서 이슬람이 오히려 여성의 인권을 끌어올린 종교였다는 점이다. 이슬람 이전의 고대 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지위는 말 그대로 남성 소유의 물건정도의 취급이었고, 그 뒤에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그보다는 좀 나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쿠란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절로, 4장의 니싸아를 보면 결혼시 지참금 지급, 재산상속, 분명한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학대 금지, 아내 편애 금지, 여성을 간음죄로 고발 시 4명의 증인 필요 등을 언급해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막았다.

또, 4명까지 아내를 얻을 수 있다고 허용했는데 이슬람 이전에는 아예 제약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아라비아 및 아프리카 부유층은 아내를 무한으로 거느리고 있었다.(일부다처제 항목을 참조하면 무려 800명씩이나 아내를 데리고 있던 아프리카 부족장의 실제 사례까지 있다. 물론 이슬람이 아니다!) 때문에 무함마드아내는 4명까지만! 이라고 법으로 정하자 아라비아 귀족들이나 부유층들은 불만을 가지고 이슬람교에 반대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한마디로 이게 그나마 너프된 것이다!하지만 걱정마라! 하렘이 있다!

그리고 얻는 것도 또 그냥 하는게 아니다. 특수한 조건(이를테면 잠자리 횟수까지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해야만 한다!), 재혼시 방해 금지 등의 제약을 달아두고,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이거 못지킬거면 그냥 하지 마."(…)라고 못박아뒀다. 쿠란에서도 분명히 너희는 그 많은 아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언급한다. 현대 서구권이나, 한국에서도 부지런히 까는 히잡 등의 여성 옷차림도 당시 막장스러운 사회 풍토로부터 여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절대 다수이다.
이러한 이슬람의 진보적인 면들은 당시 유럽사회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무하메드는 여성들의 재산소유권, 이혼권도 인정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이 몇 세기 후에 등장한다. 물론 근대에 와서 더욱 극단화된 이슬람들에 의해 오히려 초기 이슬람의 진보적인 부분들이 감춰지고 있지만

그와 관련해 4장 128절에는...

만일 한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학대와 내버림으로 두려워 할 때 그 둘 사이에 화해를 시킴은 죄악이 아니니 화해가 최선이라 비록 남성의 물심에 의한 것이라도 그러하니라 그러나 너희가 선과 정의를 실천한다면 알라는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하며 (기독교도와 유대인은 제외한 아랍의) 당시 기준에서는 파격적으로 여성에 대한 대우를 신경썼다.

이슬람이 여성을 차별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4장 38절에서는,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 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니라 <마침표는 원문에도 없음. 파하드 국왕 쿠란 출판청에서 쓴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위에서 굵게 처리된 부분은 무슬림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다. 토론때 키배소재로 쓰인다. 실제로 무슬림청년들끼리 토론을 했는데,결론이 나지않고끝났다. 어떤 무슬림의 주장에 따르면,떄리라는것은 엄마가 아들에게 엉덩이를 살짝 떄리듯이,상처나지 않게 때리라는것이라고한다.어떤 파키스탄 이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이것은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때릴 때의 에티켓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동영상도 참조.

현대의 무슬림들이 이 말을 곧이곧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종교가 법 위에 있는 이란같은 나라에서 이 구절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구타가 무죄가 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구절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위에서 '때려 주거라' 라는 문구는 '다라바'라는 단어를 이상하게 해석한 분명한 오역으로, 실제로는 '다라바'가 때려 주거라가 아닌 별거나 이혼을 제안하는 말이라고 좋게좋게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슬람교의 실질적 창시자, 무함마드는 '다라바'라는 문구를 때리라고 이해하고 아내를 때린 남편을 매우 혼냈고 그러한 남편은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러한 남편은 끔찍한 사람이라고 격하게 비난, 규탄하였다는 기록이 그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쿠란의 이 번역에 대해서는 결국 '때리다'가 맞다는 주장이 유력하다.영문 위키 참조 좀더 말하자면 아드라부 안후나 라고 쓰여있는데 이 문구는 현대 아랍어 문법에선 완벽하게 맞는 말은 아니다. (즉, 해석이 매우 애매하게 되어있단 뜻이다.) 아드라부 란 문구로 시작할 경우는 보통 멀리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뒤에 안후나라는 부분이 구분하는 한정성 때문에 사전대로라면 이 문구는 때리다라는 문구로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위키이슬람 항목도 참조하자.

7차 십자군 전쟁때 이집트에서는 여성 술탄 샤자르 알 두르가 즉위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청산하고 맘루크 시대를 열기도 했었다. 샤자르 알 두르의 즉위 시기는 80일로 극히 짧았는데 이는 7차 십자군 전쟁중 남편이던 원 술탄이 병사하자 병사의 사기를 고려해 그의 죽음을 숨긴채 대리 정치를 행한 것.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녀를 기준으로 아이유브 왕조가 끝나고 맘루크시대가 열렸으며 학자에 따라선 그녀가 맘루크 시대의 첫번째 술탄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술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슬람 교리가 아니라 중동지방의 민족전통[44]이었다.

문제는 이슬람교가 아니라 그 당시 사회적 환경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할 현실적인 방법으로 택했던 제도들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하고 그 제도 자체에만 집착하다 오히려 본래의 의미를 잃고 여성차별을 일삼는 현재의 이슬람교도들이다. 흔히 비난의 대상이 되는 히잡, 일부다처제를 얘기하려면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사회적 기준을 고려해야만 온당하지 않을까. 만약 그당시 사회에서 남녀가 완전히 평등한 현대의 양성관을 만들려 했다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법의 남녀관은 그당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양성평등을 구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구시대적 기준으로나 여성 인권 보호적이였고, 인권 개념이 진보한 현대에는 성차별종교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는게 문제다.[45]

이슬람교는 등장 당시에 상황에 비교할때 상당히 혁신적인 여성 인권 보호책을 제시하였지만, 이제 이것들은 도태된지 오래다. 여성 인권 문제가 제대로 해동되기 시작한 현대적 관점에서는, 과거에 혁신적이었던 여성 보호 조치들이 여성차별적인 요소로 바뀌었다. 시대와 동떨어지게 된 요소들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이상 여성차별적인 종교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물론 기독교에도 몇몇 성경구절에는 여성차별적인 내용이 있으나(예를 들면 남편에 복종하는 아내를 이상적으로 규정한 에페소서 5장 22절~25절 등)현재 일반적인 기독교인 중에 아내가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보편교회도, 개신교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변화해 나갔다. 더욱이 서구권의 경우는 이미 정교분리가 된지 오래라 정치와 종교는 따로 노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슬람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교리 해석을 바꾸지 않으면서[46], 먼 과거 관습보다는 나아졌다는 것만을 변명삼아 이슬람교가 여성차별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다처제히잡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라도 현재의 시각에서 그것이 (히잡을 쓰고싶지 않은)여성 개개인을 억압하고 있다면 어떤 해명을 하든 그것은 결국 여성차별일 뿐이다. 더욱이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처럼 완전한 샤리아 정교일치 체제인 국가들은 실제로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국법을 만드는데 명백하게 여성차별적인 부분이 있으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실 여성의 권리부분을 재해석하는 학파들나 학자들도 존재는 하며, 이슬람 페미니즘도 있지만 정치와 주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일부다처제의 제약에 대한 계율도 현실적으로는 여성 인권의 후진성 때문에 거의 실효성이 없고 사실상 무력화 되어 실제 이슬람 국가에서의 운용은 조선시대 축첩제와 별다를 것이 없다.

거기다 과격한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들 에서는 성폭행 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불문율이 아직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이쯤 되면 본격적으로 여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셈. 인권 의식이 성장하면서 이에 항거하는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보답받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의 잔다르크 (문화)

심지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할 가족이 오히려 자살하지 않은 피해자를 죽이는 이른바 명예살인도 명예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명예 비일비재하다. '명예살인' 유린되는 이슬람 딸들 (경향)

원래 이것은 아랍 지역의 인습이지 이슬람교의 가르침은 아니다. 문제는 현대에 와서 사실상 아랍과 이슬람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되자 많은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가르침을 명예살인의 근거로 정당화시킨다는 점이다. 명예살인을 이슬람의 가르침과 전통을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기거나 심지어는 필수적인 행위로 여기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체첸 이슬람 정부의 명예살인 옹호 (워싱턴 타임즈 원본) 체첸 이슬람 정부의 명예살인 옹호 (워싱턴 타임즈 번역)

그것도 모자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아랍계, 남아시아계 무슬림들이 인권 의식이 정착된 선진국에서도 끔찍한 명예살인을 저지르면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아프간 이민 가족 세 딸 '명예살인' (한겨레)

이슬람 이전부터 그랬든 아니든 간에 21세기 현재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지극히 낮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히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활약을 하면서 이들의 발언권이 커졌고 덕분에 여권 신장이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다. 다만 깊게 뿌리 내린 견고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벽은 쉽게 깨지지 않고 있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이집트 새 헌법, 여권 제한 논란 (동아)

어떤 나라에서는 율법해석을 기괴하게 해서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 라는 말을 세 번 외치면 성립한다고 하는 바람에(...) 부부 싸움 중에 남편이 화가 나서 아내에게 "당신과 이혼한다" 를 세 번 외치고 나니 강제이혼이 되어서 감정이 가라앉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례가 있다. 이렇게 세 번 외치고 나면 합치려고 해도 인정을 안 해주다 보니 법정 투쟁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는 듯.

일부에선 비 이슬람권의 무슬림들이 명예살인을 일으킨 사례를 들면서 이러한 악습이 한국에 함께 전파되지 않을까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우선 거의 확실한 것은 한국인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걱정은 현재로써는 기우에 가깝다는 것. 종교가 어느 나라에 완전히 같은 형태로 도입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는 걸 감안할 때, 해당 종교의 악습이 저항 없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한국의 이슬람계에선 공식적으로 명예살인을 악습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서유럽의 이슬람 이민자 집단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명예살인이나 각종 만행, 사건사고들을 보면 한국인 무슬림이 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을지 몰라도 외국에서 이민을 통해 유입된 이슬람 집단이 커진다면 그런 악습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한국인 무슬림보다는 이민자 출신 무슬림이 훨씬 많고 늘어나고 있는건 서구뿐만 아니라 한국도 똑같기 때문에 이민자들에 의해 한국에서도 충분히 명예살인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기우가 아니다. 다른 종교권에서도 명예살인은 적지 않게 일어나기에 이슬람만을 탓하면 안된다는 양비론도 있지만, 전 세계 명예살인의 90퍼센트[47] 위에 서술한 것처럼, 이슬람 교리를 내세워 자신들을 합리화시키는 무슬림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며 양비론을 내세우면서 무슬림들이 명예살인과는 관계없다고 변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될 수 없다.

중동 지역의 이슬람권 국가들 대부분이 아직 전근대사상을 가진사람이 엄청나게 많아 이러한 미개한 악습들을 당연하게, 또는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간통한 자를 사형시키는 샤리아의 법률까지 있으니 서구적인 인권이고 뭐고 보이지도 않는 것. 명예살인 뿐 아니라 근대적 보편가치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이 같은 전근대적 성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슬람권 전체에 뿌리내린 특유의 고질병이며, 한국에서만이라도 이러한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인권이 뭐고, 민주주의가 뭐고, 평등이 뭐고, 생명 존중 사상이 뭔지를 알면 악습이 줄어들겠지만 이런 상식적, 인권적인 관점조차 서구 세력의 반이슬람 사상으로 여기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이 많기 때문에 현실은 안습 그 자체이다. 당장 무슬림 여성들조차 코란은 남성의 길과 여성의 길을 딱딱 나눠서 가르치고 있으니 쿠란의 가르침대로만 살아야 하며 서구 문화에 물든 남녀평등운동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고 주장하는 답이 없는 상황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

5.5. 남성의 할례(포경수술)

이슬람교가 주류인 국가를 보면 대부분의 남성이 할례(포경수술)를 많이 받는다. 허나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أَلْقُرآن)에는 포경수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에 따라 수니파의 일종인 하나피파와 수니파시아파도 아닌 란파에서는 포경수술을 실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날 때부터 무슬림이었는데 포경수술을 안 한 경우도 있으며 비무슬림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할 때에도 포경수술은 의무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일부 무슬림의 경우이며 시아파(شيعة)에서는 포경수술이 의무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와하브파 꼴통 율법학자들은 포경수술이 의무라고 지껄이는데 이들은 여성할례마저도 신성한 의식이라고 찬양하고 다니기 때문에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기 바란다.

한편 인간의 말씀인 하디스가 다 필요 없고 신의 말씀인 쿠란만이 옳다고 믿는 란파(قرآنيون)들은 포경수술쿠란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포경수술을 매우 싫어한다.# 쿠란파들은 포경수술이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의 몸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간주하여 자기 자식들에게 포경수술을 절대로 안 시킨다.#

5.6. 민속 이슬람

사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슬람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 공동체의 문화는 결코 단 하나의 동일체가 아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무함마드 시절의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여기는건 사실이지만, 당장 민족감정이나 지역감정, 부족감정도 심하기 때문. 심지어 학파에 따라 율법을 적용하는 방법이나 기준도 다르기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 현지의 토착관습과 이슬람 교리가 융합하면서 실제 현지인들의 종교관은 쿠란, 하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제도권 이슬람교와는 영 딴판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잉태하면 무함마드에게(...) 아기의 순탄한 출산과 산모의 건강을 비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이나, 쿠란을 아무 페이지나 넘겨서 거기 나온 구절에 따라 점을 치는 풍습, 터키를 비롯한 레벤트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푸른색 눈모양의 부적(나자르본주), 신비한 숫자와 글자를 종이에 적어서 만드는 부적(무스카) 등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이나 지하디스트들이 없애고자 애를 쓰는 '민속이슬람'이다. 즉 이론과 실재는 이 바닥에서도 구분된다. 당연하지 여기도 사람사는 동넨데 어떤 풍습들은 "얘네 무슬림 맞아?"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라 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민속이슬람 자세히 보기

5.7. 종교 용어의 차이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 시절의 아랍어인 '푸스하'만을 예배용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아랍 문자의 특성상 모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구분이 어렵기도 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아랍어 음운도 지방에 따라 매우 이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꽤 크게 차이가 난다. 특히 과거 페르시아 문화권이었던 이란과 페르시아를 통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터키, 위구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종교용어는 아랍과 비교했을때 매우 차이가 크다. 개중 간단한 것들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 의미 표준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예배 Salat(쏼라트) Namâz(나머즈) Namaz(나마즈)
예언자 Rasul'lullah(라쑬룰라) Peyqambar(페이감바르) Peygamber(페이감베르)
세정 Wudu(우두) Âbdast(업다스트) Abdest(압데스트)
라마단 Ramadhan(라마돤) Ramazân(라마전) Ramazan(라마잔)
희생 Ad'ha(아드하) Qorbân(고르번) Kurban(쿠르반)
축일 Eid(에이드) Eyd(에이드) Bayram(바이람)
신앙고백 Shahada(샤하다) Šahâdat(샤허다트) Kelime-i Şehadet(켈리메이 셰하뎃)
아침기도 Fajr(파즈르) Sobh(소브) Sabah(싸바흐)
정오기도 Dhuhr(주흐르) Zohr(조르) Öğle(외을레)
오후기도 Asr(아스르) Asr(아스르) İkindi(이킨디)
일몰기도 Maghrib(마그립) Mağreb(마그레브) Akşam(악샴)
밤기도 Is'ha(이스하) Ešâ(에셔) Yatsı(야트스)
모스크 Masjid(메스짇) Masjed(마스제드) Cami(자미)

6.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와의 관계

그리스도교보다 뒤에 나온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유대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두 종교를 다른 종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낫게 인식하는 면이 강하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구/신약 성경의 일부를 차용하기도 하고, 예수무함마드 바로 이전의 예언자로 인정하는 등 유사점이 많고, 이슬람 교리에서는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하며 특별한 대우를 하라고까지 한다.

확실히 후대에 나왔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세련된 종교였다. 무엇보다 점령한 곳에 개종을 직접 강요하기 보다는 세금 우대 정책으로 개종을 유도했다.[48] 또한 성경계통의 경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는 이론적으로는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분명히 말해서 일신교를 토대로 그 일신교들을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인만큼 다른 일신교인 그리스도교유대교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용을 보이라는 경전상의 말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관용은 이슬람이 상대적으로 소수파였을 때 피정복지의 주민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고, 이슬람 통치가 확고해진 이후에는 관용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소위 '성서의 백성들'을 존중하라고 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별로 지키지 않아서 이교도에 대한 강제 개종과 탄압, 학살이 이어졌다. 세금 우대 정책이라는 것도 반대로 말하면 이교도에게는 세금 폭탄이라는 뜻이다. 즉, 이슬람이 관용의 종교라는 것은 중세시대 다른 국가에 비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순전히 필요에 의한 엄격하게 제한된 관용을 베푼다는 것. 실제로 역사를 보면 이슬람 세력이 위축될 때에는 타 종교에 대한 탄압이 약화되고, 강성해질 때에는 강화되는 고무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슬람 치하든 그리스도교 치하든 소수파는 특정한 쓰임새가 있을 때, 혹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었을 때에만 관용되었을 뿐, 그렇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배격되었다. 위 항목에서도 서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슬람 세계에서도 심심하면(십자군 전쟁 이전에도) 그리스도인나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나 추방, 노예화가 번번히 일어났다. 무슬림들은 이교도들의 도시들을 함락하면서 무차별적인 약탈과 방화 그리고 학살을 자행했고, 이는 나중에 이슬람이 침략당하는 대상이 되었을 때 똑같이 보복되었다. 그리고 이는 십자군 전쟁 수백년 전에 발생한 일이다.

과거 항목에는 무슬림들이 벌인 학살 중에는 종교적 광신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벌어진 것이 많으므로 경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으나, 학살은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학살이라는 사실은 어린아이라도 잘 알고 있는 진리이며, 이로 인하여 죄의 경중이 달라지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타 종파와 타 종교인에게 자행한 학살 상당수 역시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완벽한 자기모순이다.

이슬람이 가장 심각하게 차별하는 대상은 무신론자. 하디스에 따라 인간은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짐승과 구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을 아예 인간으로 보지를 않으며, 많은 지역에서 관습상 무신론자는 마음대로 살해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가장 서구색이 짙은 터키에서조차 무신론자를 뜻하는 'ateist'가 최고로 모욕적인 욕들 중에 하나로 쓰인다. 실제로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터키중동지역의 나라에서 '한국인들은 절반이 종교가 없고, 일본인들은 대부분 무신론자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TOP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그럼 그 사람들은 하늘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이 때문에 중동한국인 근로자들을 파견보낼 때, 근로자들의 종교는 일괄적으로 불교로 지정되었던 때도 있었다.(그리스도교와는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무슬림 중에서 무종교인에 좀더 개방적인 사람들도 있긴 하니 만나보기도 전에 무조건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만, 무슬림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자신이 무교라고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확실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슬람'이야 하나의 신앙을 일컬는 하나의 종교지만, 무슬림은 전 세계에 엄청나게 다양한 신념과 배경, 의식,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가나 종교 하나로 저런 관계를 맺는 것 뿐이지 역으로 또 종교 하나만으로 한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 태도, 삶의 방식을 다 쌈싸먹는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서구식 세속적 근대화를 안 겪은 이슬람 권에서는 아직도 저렇게 종교가 인생의 여러가지 측면 전체를 포괄하는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단적인 예로 터키나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만 하더라도 무신론적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 또한 중동에서는 굉장히 오래, 그리고 꾸준히 느끼고 있는 지방이다. 물론 이란의 경우 이슬람 혁명 이후로는 30년 넘는 이슬람 극단주의 신정독재 때문에 이제는 그런거 없다수준. 아예 공산주의 무신론 정권 아래 살아 본 중앙아시아 국가들(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자키스탄), 보스니아알바니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 무슬림들의 경우도 있고. 이들은 그나마 세속화의 정도 측면에서 골수 이슬람 국가들보다는 서구화가 잘 되어 있고 근본주의 관련 문제도 중동 국가들보다는 좀 낫다.

이슬람권 자체가 완전한 일심동체 하나라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다. 순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100년도 안 되서 험악해 졌고 지금도 극심하게 현재 진행형이다. 중세 이슬람의 전성기였던 11세기에는 이론적으로 유일무이한 이슬람 세계 전체의 영적 지도자여야 할 칼리프바그다드에도 하나, 카이로에도 하나, 코르도바에도 하나 씩이나 있었다. 범이슬람주의는 이슬람이란 정통 칼리프 시대를 통해 종교가 생기고 체계를 잡은 이후 한번도 역사적 실체를 가진 적 없으며, 이에 따라 종교적 바깥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무슬림들도 당연히 지역적, (세속)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의견을 형성하고 행동하는게 당연하다.[49]

하지만 이러한 면들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현재의 이슬람권은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의 자유가 억압된 지역이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종교의 자유 실태. 빨간색 국가들은 이슬람교에서 타종교로 개종했을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국가들, 갈색 국가들은 개종했을 경우 징역형에 처해 감옥에 보내버리거나 무슬림 남성과 이교도 여성의 결혼을 금지하고 비무슬림의 양육권을 박탈해버리는 국가들, 주황색 국가들은 무슬림의 타종교 개종 자체가 인 국가들이다. 터키 같은 특수한 세속 국가[50]나 중앙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 그리고 타종교인 비율이 높은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종교의 자유 개념이 아예 없다. 오히려 (비무슬림들의 눈치를 봐서라도)종교의 자유를 형식적으로나마 보장해주는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소수인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쿠란에 씌여있고, 이슬람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타종교와의 평화 공존 원칙이란

  1. 무슬림이 타종교인을 개종시키려 하든말든 무슬림의 자유지만, 타종교가 이슬람교도를 절대로 개종 시도해서는 안되며,

  2. 이슬람 문화권 우위의 사회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타종교인들은 이슬람 우위의 사회를 철저히 존중하고 이슬람에 대한 어떤 항의나 신성모독도 하지 않으며,

  3. 타종교인들이 무슬림에게 지즈야(인두세)를 납부하는 조건에서만

이슬람과 타종교의 평화와 공존을 허용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상술했듯이 여기서의 '타종교'란 기독교, 유대교 정도이며 힌두교불교 등 다신교 성향의 종교와 무신론자들은 관용과 평화의 대상에조차도 포함되지 않는 것이 원칙. 이러한 인식은 현대적인 종교의 자유 원칙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즉, 쿠란을 근거로 무슬림들이 제시하는 '평화와 관용' 원칙은 현대적 의미의 평화, 다종교 공존과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비무슬림들의 염원과 달리 여전히 많은 무슬림들이 여전히 이러한 전근대적 가치관과 종교 인식에 경도되어 있는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갈수록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가 무슬림들 사이에서 뿌리박혀 있고 심각해지고 있기도 하고...

이슬람 남신도가 그리스도교, 유대교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허용되나 이슬람 여신도가 그리스도교, 유대교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전통적인 남성우월적 가치관에 따라 이슬람 남성과 타종교 여성의 결혼을 전도의 일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슬람 여성과 타 종교 남성의 결혼이나, 같은 이슬람이라도 종파나 국가가 다른 남성과의 결합[51]반이슬람적이고 불명예스런 행위로 받아들이며 이것이 명예살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국인 사랑한 이라크 여성 아버지가 살해 (한겨레) '명예살인' 영국 사회문제 (한겨레)

유럽에선 종종 샤리아유럽 법에도 적용시켜야 한다무슬림들의 시위가벌어지곤 하며 영국에서 그 빈도수가 높다. 이들을 이슬람 극단주의자 쯤으로 치부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시위를 나온 절대 다수는 일부 선동꾼을 제외하면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무슬림 사회 일반에서 받아들여지는 샤리아의 가르침에 토대를 둔 것이라 이들이 무슬림 사회 기준에서 극단적 해석을 하고 행동한다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즉 극단주의자가 아닌 소위 '일반' 이슬람 신도가 생각하는 샤리아의 가르침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종교의 그것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나 근본주의자의 그것에 가깝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샤리아영국 법에 적용시켜서 무슬림의 도덕규범을 반영하라는 것인데... 여기엔 음주를 금지하고 동성애 결혼을 불허하며 자기들도 시위하면서, 현대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어서 다른 영국인들로부터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반응을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 중에는 샤리아 법을 법 전체에 적용시킬 수 없다면, 일정한 구역을 추장국(Emirate)으로 만들어 그 안에선 샤리아 법만 적용시킬 수 있게 하라는 것이어서 스스로를 게토화 하겠다는 건가(...) 이에 따라 이슬람 시위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등 마찰과 대립이 커지고 있다. 특히 동런던에선 이들이 '무슬림 자경단'을 구성하여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크리켓 방망이로 폭행하는 사건들까지 발생하며 반이슬람 기류에 힘을 싣고 있다.[52]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중앙아시아나 유럽 지역 밖의 무슬림들의 종교적 자유에 관한 인식은 심각한 편. 가령 샤리아를 국법으로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신정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무슬림의 비율이 그래도 이슬람권에서는 제일 세속주의적이라는 카자흐스탄(10%)이나 터키(12%)에서도 10%대였으며, 중동권으로 가면 레바논(29%)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과반수를 넘겼고 심지어 이라크(91%)나 아프가니스탄(99%) 같은 곳에서는 90%를 넘어갔다. 말레이시아(86%)나 인도네시아(72%)처럼 흔히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에서도 압도적인 비율이었다.

6.1. 이슬람의 타 종교 탄압 사례

분명 이슬람 초기에는 그 이후의 시대보다 타 종교에 대하여 관대했다. 중세 말 이슬람 세계 동부에서는 몽골이 서부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들어닥치고 무슬림 세계가 큰 혼란에 빠졌던 것을 계기로 하여, 이슬람 지성계와 일반 민중 모두 타 종교에 대하여 보다 비타협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 이슬람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슬람의 학자 중 한 명인 븐 타이미야는 십자군 전쟁과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이슬람 세계의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다른 종교에 대한 강경한 입장으로 유명했던 븐 타이미야는 다른 종교에 대해 보다 유연한 견해를 가지고 있던 무슬림 학자들을 비판하였다.

오스만 시절에는 정교회 교회를 이슬람 사원보다 크게 만들지 못하게 했고 문을 매우 낮게 만들도록 하여 교회문을 반지하 식으로 만들었다.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들은 레반트 지역의 아랍 기독교인 상인들을 만만하게 보고 술탄에게 무언가 불만이 생기거나 하면 분풀이로 상습 약탈을 가하였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사례로는 오스만 투르크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만 제국과 교역했던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같은 기독교인이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선호하였다. 서구 열강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간의 경제 교역이 늘어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의 경제적,사회적 입지도 점점 강화되었다. 서구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빈발하는 한 가지만으로도 서구 열강과 같은 종교를 믿는 소수자였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위험해질 요인이 다분했으며, 한 술 더 떠 이들이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정세에 맞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자 제국 내 무슬림들의 시기가 이들에게 몰린 것이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근본 원인이었다.

현재 대표적인 신정 국가 이란에서는 야지디 교인이나 기독교인들 조로아스터 교인들에 대한 사적인 차원에서의 폭력이 빈발하는 중이다.

대체적으로 유대교기독교가 일반적인 다신교나, 계통이 같지 않은 신교보다는 적은 탄압을 받았다.

불교는 불상을 우상숭배로 보아 불교 유적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뒤따랐다. 인도의 유명한 불교 대학이었던 란다 대학이 무슬림들에 의해 함락 파괴된 사건은 불교사 내에서도 인도 불교의 몰락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중앙 아시아와 인도에서는 불자들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있었다는 속설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보통 외부인들이 힌두교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진 계급 사회에 들어가면 낮은 카스트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인도에 새로 진출하는 부족들 같은 경우에는 불교로 개종했던 경우가 많았다.[53] 이슬람이 유입되자 인도로 무력을 진출하는 부족들은 평화적인 불교보다 성전을 강조하는 이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났고, 이 덕분에 인도의 불교는 결정적으로 쇠퇴하고 만다. [54]

조로아스터교는 원래 산조 페르시아의 정권과 강력하게 유착되어 있던 종교였으나, 사산조가 무너지고나서 발원지인 페르시아에서 망했어요. 오히려 조로아스터교에서 갈라져 나온 마니교,즈타크교등의 신흥 종교들이나 페르시아 내에 잔존한 스토리우스교도들은 적극 저항했지만, 정통파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 후 제대로 된 저항한 번 못하고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페르시아의 뒤를 잇는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도는 현재 15만여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고 그나마도 쉬아파 극단주의 세력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슬람에 맞서 심지어 마이야조,바스조 하에서도 포교행위를 한 마니교의 경우에는 '잔다크'(사악한 이단)라 불리우며 적극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마니교는 다른 종교들과 다르게 결국 사멸하고 만다.

인도 에서는 가즈나 조의 마흐무드가 힌두교 신상을 파괴해서 모스크의 계단으로 재활용한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힌두교와 같은 다신교 신자들을 교리상으로는 타협하여서는 안되었지만,(유대교나 기독교같은 같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면 모를까) 절대다수로 극심한 탄압이나 강제 개종은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전근대의 인도 사회는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산업이 분업화된 사회였고, 무슬림 위정자들은 이러한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한 경제력과 부를 항유하기 위하여 인도의 힌두교와 힌두교인들을 이슬람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용인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인도의 자이나교는 유일신 신앙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교리를 가진 종교이지만, 자이나교 신자들은 무슬림이 다스리는 무굴 제국 하에서 상업을 장악하며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이러한 공존은 결국 우랑제브 황제의 인두세 부활 등의 병크로 끝을 맺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명심해 두어야 할 사실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슬람에 의한 타 종교 탄압과 학살의 역사는 근대 이후 굉장히 온건해지고 순화된 여타 종교와는 달리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이슬람권이 세계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타 종교 탄압의 강도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소수파에 대한 일방적 학살과 테러 역시 빈발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 이슬람교 사회에서 이교도나 소수파들이 받는 억압과 탄압과 박해의 강도는 이슬람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고 평가되는 중세와 근대에 비해 오히려 더욱 악화된 실정이다. 심지어 같은 종파라할지라도 민족이랑 사상이 틀리기만 하면 타 종교랑 소수파처럼 가혹한 탄압을 한다. 이슬람교가 현대 사회에서 자행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타 종교 박해와 배척, 그리고 학살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곳도 옹호하지 않는다.

6.2. 타 종교의 이슬람 탄압 사례

  • 스페인가톨릭 : 카스티야와 아라곤 주도의 레콘키스타로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이 스페인에게 넘어갔을 때, 1492년 이베리아 반도 최후의 무슬림 정권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자마자 항복 조약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해 놓고, 1년 뒤 개종자 이외의 무슬림을 추방했다. 개종한 무슬림인 모리스코들한테 이슬람풍 복식 금지, 식생활 금지, 아랍어 출판 금지, 아랍어 사용 금지를 했으나 이들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1600년대 초반에 개종자를 포함한 무슬림 후손 전원을 강제 추방시켰다.

  • 소비에트의 마르크스주의 : 구소련에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영토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뭐 소련 치하에서 탄압받지 않은 소수민족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많은 무슬림 성직자들의 목숨을 잃고 현재까지도 과거 소련의 영토였던 지역에서는 무슬림들이 많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이슬람 원리주의의 힘이 매우 약한 편이다. 체첸은 제외하고 허나 소련은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스탈린 시절 러시아 정교회를 제외하고는 모든 종교가 탄압을 받았다. 따라서 이슬람만 차별했다고 보면 안된다.

  • 공산 알바니아 : 위의 소련과 비슷한 경우. 이쪽은 아예 무신론 국가를 선포했다. 현재 알바니아 역시 구 소련 지역처럼 종교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이다.

  • 프랑스 :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통치는 어떻게보면 소련의 그것보다 더 악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름 평등한 입장 하향평준화 에서 대우하고자 한 소련과는 다르게 프랑스의 경우에는 자국민들에게는 인권과 민주, 학문을 강조하면서 정작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의 아랍인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6%가 나올 정도로 철저한 우민화와 차별을 시행하였다.[55] 알제리 전쟁 항목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은 지금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거와 매우 유사한 양상이다.

  • 시오니즘유대교 : 이스라엘 항목 참조

  • 인도 공화국힌두교 : 현재 인도의 무슬림들은 인도 사회 내에서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차별받는 계층에 속해있다. 2014년 총선에서 승리한 모디 총리의 경우 자라트 지방에서의 무슬림들에 대한 집단 린치를 덮어주었던 전력 때문에, 인도 무슬림들은 현재 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 하지만 차별받은 이들의 처지도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의 비무슬림들의 처지보다는 한참 괜찮은 수준이라서 어디 하소연을 못하고 있다.

  • 미얀마불교 : 미얀마의 독재정권의 묵인 하에 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들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의 이슬람 반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많이 경계하는 편

  • 중국유교 : 근대부터 중국의 유학자들은 불교에 대해 "있지도 않은 천당과 지옥을 가지고 민중들을 농락한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으며, 불교를 혹세무민의 종교라고 비판했었다. 이러한 그들의 종교관은 불교처럼 천국지옥 관념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명나라 황조 치하에서는 "무슬림들은 무조건 한족과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 정해졌다. 덕분에 현재 중국에서는 더 이상 이슬람을 믿지는 않지만 무슬림이었던 조상들한테 제사 지내는, 사실상 한족이나 다름없는 회족들이 많이 존재한다. 현재 중국에 있는 회족들이 아무리 대단위로 이주해 왔던 아랍 무슬림들의 후예였다 하더라도 신체의 외양에서 한족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한동안 중국에서 무슬림들은 사회에서 나름 역할을 하고 사회 상류층에 많이 진출해 있었지만, 청나라 때부터 중국 무슬림들의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되었다. 18세기 무렵 자흐리 교단이라는 수피즘 교단이 청나라에 대항해 폭동을 일으켜서 힙겹게 진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나라 조정은 청나라 내의 모든 회족들에 대해 억압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펴게 되었다. 이러한 차별은 19세기의 숙성, 서성에서 대규모 민 반란을 야기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회민 반란으로 인하여 반란 전에는 회족들이 100만명 단위로 밀집해있던 중국의 서북 변경 지방 감숙성과 섬서성은 지금도 회족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회족들이 씨가 말랐다. 청나라 조정이 회민 반란 진압에 지나치게 많은 경비를 지출한 것 때문에 19세기 중반에 발생한 대기근을 대처할 경비가 부족하여, 화북지방의 대기근 당시 2천만명 이상이 아사하는 대 병크가 발생한 건 덤(…)[56]

재밌는 사실은 중국에서 무슬림들이 부유한 무역상, 천문학자, 의사 등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무슬림 중에서도 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유교와 이슬람은 사실 같은 종교!"(…)이라고 주장하는 무슬림들이 많았지만(…) 청나라 때부터 이러한 경향은 점점 옅어지고 오히려 원리주의적이고 공격적인 교리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신장 지역에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같은 테러 단체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테러활동을 벌이는 탓에 중국 정부가 많은 군경을 배치하여 막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무슬림 위구르인들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라며 취업에 큰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 터키세속주의 : 터키는 오늘날에도 무슬림 인구가 98%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집권기부터 종교의 영향을 점차 줄여나가기 위해 거의 박해에 준하는 정책을 가했었다. 1925년 모자법 도입으로 페스를 비롯한 전통모자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한 이래로 아잔과 이슬람 예배를 터키어로 하도록 강요하고, 터키 내에서 통용되는 쿠란도 한때 아랍어 사용을 금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오스만 제국의 복권이나 반세속주의를 주장하는 이슬람 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도 세트로 가해졌다. 오늘날 반케말주의 성향의 이슬람 지식인들이 득세하는 것도 그 당시 세속주의 정책이 터키인들에게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 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 1980년 케난 에브렌 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로는 교육장소에서 히잡이나 종교적 상징을 하고 다니거나, 공무원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도 완전히 금지시켜 버렸다. 그 때문에 오늘날 터키의 학교들은 종교학교인 이맘 하팁학교조차도 남녀공학이 원칙이며, 2000년까지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터키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무너지기 시작하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유행함에 따라 세속주의는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7. 근대~현대의 이슬람교

근대 이후 과학적, 사회적 발전은 전부 기독교 문화권이 주축이 되어서 일어났기에 기독교의 경우 새로운 가치관들과 분쟁은 많아 보여도 새로운 가치관들의 뿌리 역시 기독교적 인식인만큼 상호간의 합의점을 나름이나마 밟아가고 있다. 반면 이슬람의 경우 서구 열강의 침입에 대한 기억 탓에 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는 힘든 반면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근본에서 나온 것들이기에 배척하기는 더 쉽다는 점 때문에 이와 관련한 교리적인 발전은 타종교에 비해 한참 미진하다고 볼 수가 있다. [57]

한국처럼 서구의 문화를 발전된 것으로 받아들인 문화권일수록 이슬람교와의 충돌 요소는 더욱 많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인식이 아닌 실제적인 접근에서도. 말하자면 기독교에 의해 왜곡돼서 한국에 들어온 것이 맞긴 하지만,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기독교와 달리 현대문명과의 충돌 자체를 비켜 나갔기에 현대문명을 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진보적 이슬람교도들은 이런 현대 사회와 교리 사이의 모순점을 풀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이중에는 쿠란을 신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쓴 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도 생겼다. 이 논리는 무함마드는 예언자로 선택될 만큼 비범한 인물이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이라서 신의 말씀을 완벽하게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신의 말씀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쿠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쿠란은 신의 말씀 그 자체라기 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만한 신의 말씀의 번역본 같은 셈이므로 세월이 꽤 지난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모순점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도 가장 기초적인 신에 대한 자세 등에서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다만 이 이론에 따르면 주요 종교 교리, 그러니까 과거부터 내려온 종교법이 현대 사회와 안 맞을 수 있으니 현실에 맞게 재해석 해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이 이론은 아직 완전하지도 않으며 진보적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도 논란이 될 만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무함마드 이전에 신의 말씀을 전한 이사(=예수) 등의 예언자들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무함마드와 쿠란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전에 전해진 말씀'들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왜곡 변형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슬람의 입장이다. 따라서 쿠란도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된다거나 쿠란 자체가 원래 온전하게 전해진 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슬람교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게 될 수 있는 것이다.

8. 이슬람 국가들의 특징

이란 같은 이슬람교의 종교법(샤리아)이 매우 엄격한 나라는 맥심 같은 여성의 살이 많이 드러난 잡지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중엔 만화도 포함된다. 굳이 가지고 들어가려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공항 세관에서 유성매직을 덧칠해 맥심의 여성들과 만화의 여성캐릭터에게 챠도르와 히잡을 입혀서 눈만 나오게 한 다음에 가지고 갈 수가 있다. 경험자의 말로는 이란에 러브히나 전권을 가지고 갔다가 세관원이 한시간 동안 유성매직으로 모든 히로인들을 전통 이슬람풍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봐야만 했다고(...)

술이 몽땅 금지되어 있을 것 같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쿠란의 해석에 따라 술이 완전 금지인지, 부분적인 금지인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엄격한 한발리파의 경우 소독용 알콜조차도 금지하지만, 이외의 학파들은 술을 마시되 취하진 말라는 쪽과 금지(하람)하는 쪽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7~8세기 아랍에서조차도 포도주를 금지하는 대신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만든 술은 허용했고[58] 유목민 이슬람인들도 젖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즐겨마셨다.

사실 유목민들에게 낙타나 양, 염소의 젖으로 만든 술을 금지하는 건 이슬람교에 대한 반발만 일으킬 미친 짓이었다. 사막에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유목민들에게 가축젖은 물이나 다름 없었지만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에 장기 보관을 위한 발효주는 필수품이었으므로 이걸 금지한다는 건 종교를 넘어 생존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59] 또 평시에는 술을 금지하지만, 마실 물이 없다면 아무 술이나 허용했다. 자살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슬람에서 죽는 것보다는 술이라도 마시고 살아난 다음 나중에 알라에게 사과하는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60]

유럽의 무슬림들은 포도주든 맥주든 잘 마시며, 북아프리카에서도 많이 마신다. 쿠웨이트에서도 관대하다. 술에 가장 엄격한 나라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긴 하다. 여긴 심지어 술을 마신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트와라는 종교경찰이 출동하여 주사기로 피를 뽑아 피 속에 들어있는 알콜까지 적발해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부자들은 비행기타고 뿅 날아가서 실컷 마시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로 맞붙어있는 바레인아랍 에미리트두바이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오죽하면 술에 대하여 보수적인 카타르가 영토 문제를 두고 갈등이 큰 이웃 바레인을 씹을 때도 술이 자원인 나라라 하고, 알자지라까지도 바레인에 와서 술마시는 사우디 왕족들이나 부유층을 몰카로 찍으면서 대놓고 "뭐? 이래놓고 자국에서 와하비즘이라고 으스대냐?" 라고 비웃듯이 비난하는 통에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난리가 났던 적까지 있다.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서민들도 몰래 온갖 과일을 발효시켜 만드는 토종술을 대대로 전수하며 밀주를 만들어 몰래 실컷 즐긴다. 하지만 이런 경우까지 술마신다고 대대적으로 경찰이 집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외국인 선교사들을 잡고자 할때 종종 술이 있다는 이유로 무트와를 동원하여 억지 명분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이라크처럼 기독교인들이랑 여러 종교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경우에는, 비이슬람교도에 한해서 주류 판매와 음주가 가능하다. 물론 미국 침공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하는 판에 예전 같지는 않지만... 꽤 큰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61]의 경우 빈땅같은 맥주업체[62] 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술을 마시는데 별다른 제제가 없다.[63] 다른 이슬람 다수 나라인 터키나 이집트, 말레이시아도 자국에서 맥주나 여러 술도 만들어 팔고 있으며 터키같은 경우 맥주회사인 페스 필센이 꽤 대기업이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고유술인 라크를 즐겨 마시기도 하고 각 지방 고유술도 은근히 자주 마시는 전통이 이어져오며 술에 대해선 꽤나 개방적인 곳이다. 터키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가 한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터키인들에게 입맛에 맞는 걸로 추천하던 게 바로 복분자술이었단다. 이슬람신자인 자신이 한국에 와서 소주나 막걸리, 청주, 복분자 등 다양하게 마시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는데 터키에선 취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한 이렇게 마시는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는다고 썼다. [64]

종교 꼴통인 이란호메이니도 각 지방술을 취하지 않게 몰래 마시는 건 봐주도록 지시해서 서북부 산지로 가면 온갖 산열매로 발효시켜 만든 고유 술제조법을 대를 이어 전수하고 있으며 베두인들도 양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자주 마신다.

다만 외국인에게 자유로이 판매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술이 떡이 되어서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다니면 종교 경찰이 반가운 얼굴을 하며 경찰서로 인도하곤 하니 조심할 것. 국내인들도 "전혀" 안 마시지는 않는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다(...) 가볍게 몇 잔을 마시는 정도를 문제삼지는 않으며 취한다고 해도 조용하게 집에서 취하여 잠을 자는 것까지 뭐라고 안한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종교적으로 잘못된 문제는 서스름없이 위아래 상관없이 지적하는 문화 때문에 본인이 술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접대를 받는 자리에 신자가 둘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안마시는 경우가 많다.

관습법적으로 술 마시는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들에서도 적어도 모스크 근처에 위치한 식당, 상점에서는 술을 취급하지 않는다. 터키의 경우 술을 마시려면 대형마트에 가서 사오거나 아니면 술집에서 마셔야 한다. 동네 슈퍼에서 팔기도 하지만 술 판매 허가를 받은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고(터키어로 TEKEL BAYİİ라고 쓰여있거나 담배, 술 광고가 붙어있다), 이때는 주위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항상 검은 봉지에 담아준다.

돈놀이를 금하는 이슬람 교리 특성상 공식적으로는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현대에는 여러가지 편법을 통해 사실상 금융거래 상 이자가 성립한다.[65] 가장 흔한 방식으로는 만기일을 엄청 짧게 설정해두고 '이자'가 아닌 '벌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며, 예금에 대한 이자를 받는 대신 투자라는 형식으로 돈을 맡기고 이익을 배당받기도 한다. 어쨌든 교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금융업무를 해결하려는 이슬람 금융권은 상당히 흥미로운 모델이며, 21세기 들어서는 해외 투자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이자 규칙은 이슬람인이 비이슬람인에게 빌려주는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비 이슬람인을 이슬람과 동등으로 여기지 않기에 예나 지금이나 철저하게 피를 빨고 있다...
때문에 "이자가 안 붙는 이슬람머니"에 혹했다가 깨갱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9. 이슬람교의 출산율

이슬람의 또다른 강점은 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이슬람 다수 나라치고 인구가 적어서 고민인 나라가 정말 없다. 되려 인구가 넘쳐나서 문제인 나라가 태반이다. 이슬람 아랍 동맹 최다 인구 나라인 이집트만 봐도 20세기초 1,500만 수준이던 인구가 지금은 8,000만 이상으로 늘어나 있다. 이처럼 이슬람권 나라 상당수가 100년 사이에 인구가 3~6배나 늘었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는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영아사망률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슬람 보수파가 피임이나 낙태같은 것을 결사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도 크다고 한다. 다만 이는 꾸란과 하디스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아니라서[66]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 같은 극단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낙태를 어느정도 금기시하는 성향은 있으나 피임은 용인하는 경우가 다반수이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에선 콘돔을 그냥 나눠주면서까지 인구 증가율을 줄이고자 했으나, 나눠주던 공무원들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까지 당해서 아예 저런 계획을 없애버렸을 정도이다.

이미 천주교와 더불어 이슬람 순니파가 12억 인구를 넘은지 오래이며 빠른 인구증가률을 가진 인도 힌두교(약 8억에서 9억 추정)와 더불어 10억 신도가 넘는 거대 3대 종교 종파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구 증가세가 떨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알바니아[67], 이란, 아제르바이잔처럼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진 국가도 등장했고 사우디 아라비아''', 알제리, 우즈베키스탄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등의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도 출산율이 2명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高출산국으로 손꼽히던 이라크,예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은 감소세이다. [68]

그러니까 무슬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쑴풍쑴풍 낳아재끼기만 하는 것은 이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그 동안의 인구증가세가 엄청났었던데다가 출산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유럽인(물론 국가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한다.)에 비하면 출산율이 높은건 사실이어서 유럽국가에선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극우정당이나 단체에선 이를 이용해 흑색선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미얀마에서도 이슬람교인들이 출산율이 높다는 편견 때문에 이슬람교인에 대한 탄압이 벌어지고 있는데 미얀마 당국에선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출산율이 유난히 높다는 것 자체는 편견이 아닌 사실이 맞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출산율을 비교해보면 무슬림의 출산율이 더 높다. 무슬림이 어느정도 존재하는 나라들 중에, 비무슬림의 출산율이 더 높은경우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몇몇국가와 인도네시아, 서안지구 를 빼면 전무하다. 일부 선동성 자료에 나오는 것처럼 급격하게 종교인구가 변화하지는 않겠으나, 이슬람교도의 출산율이 유별나게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슬람권에서는 종교 자체가 태어나자마자 부여되며 이슬람교도를 그만두거나 종교를 바꾸는 것 자체를 금지하기 때문에 이슬람 인구 역전설을 한낱 괴담이나 도시전설 혹은 반이슬람 선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집트의 경우 1900년대만 해도 기독교도의 인구가 8.14%였으나 1996년엔 5.6%로 점점 쪼그라 들고있다. 인도의 경우에도 1961년도의 8.69%였던 무슬림이 2001년들어 13.43%로 증가하였다. 인도나 이집트의 경우 외부인구 유입이 많이 없어서 변화가 적었다고 쳐도 서유럽의 경우, '이때까지 누적된 저출산'+ '매년 서유럽으로 이민오는 무슬림 이민자'+ '무슬림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이 누적되면 이번 세기 안에 이슬람교 우세 지역이 될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위의 인구 강점은, 터키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처럼 공업화에 어느덩도 성공한 나라에 한정한다. 그외 상당수 무슬림 국가의 국민성은 중세시대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는 공화정인 국가들도 부정부패가 일상다반사이며, 왕정인 국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막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로 인해 인구 많아봐야 가난의 대물림이 지속되는 현실이다. 물론 이것이 이슬람만 그런 것은 아니긴 하지만(기독교에서 인구가 대폭 늘어나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도 똑같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상황과 독재자라든지 자원을 독점한 지배층이라든지 여러 모로 비슷하다).

단적인 예로 석유 펑펑 나와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는 그 부를 소수의 왕족들이 점유하여 향락과 사치로 일관하며, 정권 유지 차원을 위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금전 지원을 국민들에게 할 뿐이며, 국민들은 그돈 받고 그냥 하루하루 처묵처묵하는 돼지로 살며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의 석유 시추와 정재를 위해 짓는 모든 공사 현장 노동자는 외노자들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해도 사우디 현지인들 일들을 안한다. 결국 인구 많아봐야 잉여에 불과할 뿐(...)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이걸 바꾸고자 대대적인 외노자 추방을 선언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노동자들이 아예 폭동까지 일으켜 정부군이 출동하여 총살도 저지를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10. 이슬람=아랍=중동?

제일 흔하게 오해하는 부분.흔히 이슬람 문화와 아랍문화, 중동문화권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큰 잘못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아랍, 중동 국가들을 가리킬 때 이슬람권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말 자체가 종교차별적으로, 유럽이나 미국을 기독교권 이라고 안하면서하는데? 유독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에게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렇게 쓰는 경우가 많다. 유럽 북미 등을 기독교권이라고 부를 게 아니라면 가급적 특정 지역을 가리킬 때 이슬람권이라 표현은 삼가도록 하자.

아랍인들의 총 인구는 3억인데 비해, 전체 이슬람 인구는 16억이나 된다. 즉, "이슬람 = 아랍인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고정관념은 "기독교 = 유럽/미주사람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인식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서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고 비서구 지역의 신자들이 더 많은 것처럼, 이슬람의 경우에도 오히려 비아랍권 신자들의 수가 더 많다. 터키(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계) 사람들은 전혀 아랍인들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나 파키스탄, 말레이인들,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인 무슬림들도 역시 아랍인이 아니다. 아프리카 흑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이슬람 신도들이 다수인 나라가 많다.물론 이 지역은 기독교인들도 상당하다. 그래서 종교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또 이슬람과 중동 문명권을 등치시키는 것도 잘못된 인식인데,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들 중 최다 신자 국가는 동남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다. 이슬람은 민족종교가 아니라 전세계에 분포한 세계종교이므로, 이슬람 신도를 보고 무조건 아랍 사람, 중동 사람일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금물. 게다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등 유럽국가이면서도 이슬람 신도들이 다수인 나라도 있다. 그 외 코카서스 3국(대부분이 정교권 지역)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신도(시아파)들이 다수다. 또 다른 유럽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20세기 들어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그 전 시대에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생겨난 이슬람 신도들도 있다. 이들은 20세기 이후 증가한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이슬람 신도들이 많아진 프랑스 같은 나라와 다르게 원래부터 역사적으로 이슬람국과의 접촉으로 이슬람이 꽤 오랜 전통종교로 자리잡고 있었다.

즉,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 유럽권 이슬람 신도도 있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근데 금발에 푸른눈은 이슬람 본고장인 중동이나 남아시아에도 있다는게 함정.

아래 표는 2011년 1월 현재 이슬람교 신자가 가장 많은 10개 국가의 목록이다.

국명신자수신자 비율
인도네시아204,847,00088.1
파키스탄178,097,00096.4
인도177,286,00014.6
방글라데시148,607,00090.4
이집트80,024,00094.7
나이지리아75,728,00047.9
이란74,819,00099.6
터키74,660,00098.6
알제리34,780,00098.2
모로코32,381,00099.9

보다시피 1억을 넘는 1-4위 국가를 포함해서 상위 10개국 중에서 7개나 비아랍 국가이며, 비중동 국가도 중동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지만 4~7개나 된다.

12. 한국과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오래 전부터 회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정수일(무함마드 깐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미 9세기~10세기 아랍 세계 지도에서 신라가 그려져 있고(다만 섬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 아랍 학자인 이븐 쿠르다드니가 신라에 와서 머물고 신라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중세 이슬람 세계의 저명한 지리학자겸 역사가 알마수디는 그의 저서 금초원과 보석광에서 "신라이 넘쳐나서 개줄이나 원숭이줄도 금으로 만들며, 사람들은 무병장수한다."며 지상 낙원이라고 나와 있다. 근데 이 묘사는 그리스인들이 에티오피아인들을 묘사한 문장과 너무 흡사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죄수들을 금으로 만든 족쇄로 채우며 100년 이상 장수한다는 지상 낙원이라는 등등

고려 전기에는 이슬람 상인들(튀르크계나 아랍계)이 3차례 개성을 방문하며 교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를 보면, 현종 15년(1024년) 대식국(아랍)에서 온 상인 수백여 명이 개성에 머물러 교역을 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원나라의 침략을 받고 고려원나라의 점령이 된 시기부터는, 한국과 이슬람 사이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당시 몽골인들은 자기들만으로 나라안팍을 관리가 힘든데 중국인을 쓰자니 믿지를 못하겠고 말도 안 듣고 해서 쓰려하기보다는 없애버리려고했고 반대로 많이 싸우면서 그 위력을 실감하게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위구르인들을 행정 관료로 적극 활용했다. 회회인(回回人)으로 통칭되던 위구르인 중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나 불교 신자, 마니교 신자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수가 이슬람 신자였으며, 몽골인 다루가치의 수행원으로 많은 위구르 무슬림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고려 말에 귀화하여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 장순룡(張舜龍)을 들 수 있으며, 학계에서는 그가 지금의 장 위구르 지방에 해당하는 회회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무슬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외에 색목인으로 규정해서 여러 이슬람인들을 자기들보다 바로 다음가는 인종들로 구분하고 여러 고위직에 앉히면서 자연스럽게 고려와도 주기적인 접촉이 이뤄졌다.

회회교인(回回敎, 즉 이슬람) 자치구역도 있어 개성 한복판에 이슬람 성원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들은 한반도에 남아 살았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회교인들이 세종대왕의 생신 잔치나 새해를 맞이하는 궁중 하례 의식에도 초청을 받아 정례적으로 참석하여 꾸란 낭송이나 이슬람식 기도를 통해 국가의 안녕 및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했으니 이를 '회회송축'이라 했으며, 이슬람풍 노래와 음악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회회조례'라 불렀는데, 이걸 두고 유학자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서 세종 이후에 없어졌다고 한다. (출처는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근대 최초 한국인 신자는 샤밀 박(1912~2005)이라는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때, 터키인 아브뒬하크 누만(Abdülhak Numan)이 하던 알타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누만 사장에게 신용을 얻고 양복 재단 기술을 배운 사람으로 한국 이름은 박재성. 사장이 일찍 자식없이 죽은 바람에 양복점을 물려받고 미망인인 사장의 아내와 재혼하면서 이슬람교로 귀의해 샤밀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터키로 가서 귀화해서 살다가, 2002 한일 월드컵 관련 당시 터키 방송에서 나온 바 있다.

이슬람이 조금이나마 한국에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때이다. 당시 토이기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터키군에서 고아원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슬람을 가르친 적이 있었으며, 무슬림인 김진규나 신백현 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1955년 제6터키 여단 소속이던 이맘(이슬람 종교인) 압뒬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Abdülgafur karaismailoğlu) 대위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55년 9월 15일 서울 농협대학 강당에서 70여명의 한국인 무슬림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이슬람 협회'가 결성됐고 회장에 김진규, 부회장겸 사무국장에 윤두영이 선출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는 불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진학원'을 열어 무료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이 학생들 중 일부가 이슬람을 수용하였다. 1956년 10월 압뒬가푸르에 이어 군(軍) 이맘 쥐베이르 코치(Zübeyir Koç) 대위가 부임 이후에도 이슬람을 알리는 활동이 계속되었다. 터키군 지원으로 이문동에 막사 형태의 작은 마스지드가 만들어졌는데, 첨탑도 함께 세웠다. 그 당시 한국인 이슬람 신자는 208명이었다고 한다.

그 후 석유전쟁이라든지 여러 자원 문제로 이슬람 성원을 크게 짓자는 의견이 나와서 1975년 본격적으로 이태원에 중앙이슬람성원이 세워지게 되는데, 땅은 한국 정부가 그냥 내주고[77] 건설비는 터키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지원했다.

알다시피 한국아랍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해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의존한다. 원유 및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원 대부분을 이슬람 국가들에게 의존하여 한동안 이스라엘과 국교를 끊기도 했으며, 2012년에도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86%를 넘는다. 원유 중동의존도 사상 최고 (문화) 해외건설 수주에서도 이슬람권인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에 이른다. 중동 무너지니 해외 수주 '최악' (조선) 아랍이 기침하면 한국은 경기를 일으키니 이슬람교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2011년 논란이 된 수쿠크법과 관련해 이슬람에 대한 한국의 거부감이 알려질까봐 한국 기업들은 노심초사하였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이슬람권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슬람 신자를 찾는 것은 외국인이 아니면 어려운 편이다. 15만명은 된다고 하는데, 아마 이민자들도 모두 포함한 것 같다. 다만 이슬람의 기도 특징상 수를 측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걸 알고 얘기해야 한다. 다만 그렇다 해도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에서 이민을 온 이민자들의 수가 합쳐봐야 해봐야 5-6만명 내외로 잡히고있어서 15만명이라는 수치 자체가 자료가 있지 않으며 신뢰하기 어렵다. 이게 쿠란의 한국 판매량인지, 한번 들렀다 간 사람의 숫자인지 뭔지도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실제로 부산시에는 1986년에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규학교로써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슬람교 미션스쿨인 알리고등학교가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지원을 받아서 부산진구 당감동에 일반계 고등학교 형태로 설립된 적이 있었다.# 교명은 이슬람교의 제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부산시일반계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이라 일반계 고등학교 선택권이 없는데다가, 이슬람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션스쿨을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논란[78]으로 인하여 결국 2년도 채 안되어서 미완성 상태의 알리고등학교를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학 재단으로 사실상 강제로 넘겨버리면서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교명까지도 평범한 교명으로 변경하여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로 남게 되면서 한국에서 이슬람교 미션스쿨은 2년만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한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교 미션스쿨이 신설된 사례는 없다.

되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권 나라에 개신교 선교를 나서면서[79] 한국 정부와 기업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영향이 크고 한국에 신도가 없어서인지 이슬람을 테러 종교로 인식하는 것도 적지 않다. 게다가 외신보도들도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하는터라 더욱 좋게 보지 않는다.이슬람의 지하드가 하는 것이든 중동이 하는 것이든 테러를 하는 것은 사실이잖아? [80]

인천시에 이슬람 박물관이 세워졌다가 2년도 안돼 갑자기 문을 닫았던 일[81]이 벌어진 바 있다. 그밖에 중동 문화원도 문을 열었다가 반발로 문을 닫았더니만, 이번에는 아랍권 반발과 기업들의 반한 감정 문제에 대한 반발까지 연루되자 부랴부랴 재개방하는 추태도 벌어진 바 있다. 중동문화원 해프닝

여담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이슬람 중학교가 세워질 당시 포털에선 욕설들이 가득했는데, 당시 이 중학교 개교 행사에 참가한 세뇰 귀네슈 감독을 비난하던 일부 무개념도 보였다. 그래서 일부 귀네슈 팬들은 이런 비난에 FC 서울부터 테러리스트 감독을 해임하라고 건의하고,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도 아랍산 석유를 일절 불매하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비싸게 주고 사오자고 비꼬기도 했다.

12.1. 문화 갈등

가족 제도 문제에서는 중혼, 근친혼 같은 문제로 인해 한국 사회와 갈등을 빚는다. 2007년에는 사촌과 결혼한 이슬람교도 임란 알리가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한국에서는 8촌내 결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아내를 한국에 초청할 수 없다는 것에 항의하고 언론 보도를 탄 사건이 있었다. 사촌과 결혼… 귀화인 혼인무효 위기 (한겨레)

2011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출신의 무함마드 아심(36)은 한국인 신미선(29)과 이슬람식으로 결혼하였다. 하지만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에 이미 아내가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4명까지 부인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만 한국 민법은 중혼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무슬림 (한겨레) 그러나 알고보니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 탈레반 출신의 중범죄 테러범이었다다문화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후 신미선씨는 죽음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호주 여성난민의 집에 피신했다고 한다.##[82] 이처럼 과격한 이슬람교도와의 결혼에서 피해 받은 한국인 여성들의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심지어 한국 대사관에서는 결혼 사기에 대한 위험성 경고 글을 공지에 올리기까지 했다.

참고로 미국에서 유명해진 사건이 하나 있다. 다정한 매너를 가진 인텔리 아랍인 의사와 결혼한 미국 여성이 남편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모 국가로 돌아갔는데, 귀국하자마자 남편은 마초 아랍남성으로 사람이 돌변해서 아이들(특히 딸을) 아랍 방식으로 세뇌교육을 하려 했다. 미국인 아내가 이에 항의하자 "그럼 혼자 떠나고 아이들은 두고 가라"는 협박을 받았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해서(잡히면 남편 가족에게 명예살인 당함)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 쓰여졌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솔로몬의 딸 (Not Without My Daughter, 1991)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가 바로 그것인데 한국개봉당시 극장 간판에 호메이니를 괴물같이 그려서 주한 이란 대사관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덕분에 서울 상영관에서 이 간판이 내려지고 새로 고쳐 그리던 소동이 일어난 바 있다.

영화만 보면 "너무 인종차별적 내용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원본 책을 읽어보면 더하다.[83] 심지어 영화를 보면 그래도 이란이나 이슬람교인에 대하여 조금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예를 들면 남편이 미국에서 살면서 이란인, 무슬림이라고 차별당하여 미국생활을 지겨워하던 묘사가 나오긴 한다. 뭐 중반부 넘어가면서 남편이 악마같이 돌변하는 묘사가 나오고 비록 결말은 미국으로 가면서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결말이긴 하지만. 참고로 2002년 Without My Daughter라는 다큐멘터리영화가 만들어진 바 있는데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실제 남편의 증언과 주장으로 솔로몬의 딸에 대하여 반론하는 영화이다. 더불어 제작은 미국이나 미국인이 아닌 핀란드에서 제작했으며 감독도 핀란드인(이란에서 협조를 하긴 했지만). 더군다나 감독은 이런 영화의 배경 때문에 관객들이 무조건 이슬람은 악마, 미국은 정의라고 오해하기 딱이라 사전에 이란에 가서 그 남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 문제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같은 기획보도에서 2003년 한국에 귀화한 무함마드 아심은 한국에 이슬람 학교를 세우고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학자까지 데려왔으나, 교육청에서 대안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2007년 말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무함마드 아심의 장남 알리는 2003년 당시 16살이었고 차남 모하스는 14살이었는데, 늦게 입학한 탓에 각각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교과를 따라가지 못해서 매일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쿠란 공부만 챙겼으며, 집에 있는 책이라고는 쿠란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고 많은 네티즌들은 현실적으로 학력 사회인 한국에서 아동을 방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라며 무함마드 아심을 비판했다. 굳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이슬람 교육만 받고 현대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결국 이들은 사회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알아둘 점은 무함마드 아심의 고향인 파키스탄탈레반이 생겨난 곳이며 이슬람 국가들에게도 맛탱이 간 이슬람 변종이라는 비난을 받는 곳이기에 파키스탄과 서남아시아 이슬람인들의 이런 태도를 보고 모든 이슬람인이 이렇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터키인도네시아에서 중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나마 다른 아랍 국가들과 가까운 터키 동부쪽에서 중혼이 종종 있지만 법적으로 금지되어, 밤중에 서둘러 결혼하거나 아내가 아닌 친척이라고 정부기관 조사에서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걸리면 엄격하게 처벌받고 결혼도 무효화된다. 그러나 터키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도 증오를 사고 있는 별종 국가이고[84],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에서도 변방인지라 이 역시 일반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이슬람교 국가의 낙후된 여성 인권 문제는 하루 이틀 이어진 문제도 아니고, 중혼 등의 문제 또한 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제사 문제의 경우, 제사가 전통인지 아닌지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슬람교에서 제사는 쉬르크로 취급된다. 한국에서 이슬람교는 이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슬람교에서 제사는 부정적이다. (순니파에서) 수피즘에선 제사가 허용된다고는 하지만... [85] 제사를 드리는 무슬림도 있지만 한국이 비이슬람사회니까 가능한 일이다.[86]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13. 창작물에서의 이슬람교

창작물 내에서의 이슬람교의 위상은 미묘하다. 사우스파크같은 미국의 tv 방송에서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다루기도 한다.[87]

원래도 이상한 종자 취급을 하는게 일반적이였지만 9.11 테러 이후 전반적으로 무슬림이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더 강해졌는데,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를 보면 중동 어디 국가 출신으로 묘사된다. 한편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이슬람교의 묘사에 굉장히 호전적으로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경우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살해위협을 받기 때문에[88] 창작물에서도 가급적이면 묘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89]

대표적인 사례가 악마의 시 사건인데, 1988년에 인도 출신의 작가인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출간하자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작가를 포함해 악마의 시를 번역, 출판하는 것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파트와(종교적 판결, 선언)을 내렸다. 그 뒤 일본에서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으며, 루시디 본인을 포함해 출판 및 번역에 관계된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이후 1998년에 이란 정부에서는 루시디에게 이제는 괜찮다는 듯한 요지의 외교적 발언을 했으나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가 198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선언자만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파트와 자체는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 일본제 서브컬쳐에서는 이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봐야 겨우 몇몇 캐릭터의 프로필에 '출신: 중동 어디어디 국가' 라는 식으로 묘사하는게 전부이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이슬람계 캐릭터는 무함마드 압둘우루무드 압둘이 전부였고 그나마 무함마드 압둘도 이슬람적 느낌은 잘해야 캐릭터 디자인에서 조금 드러나거나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모습 정도가 전부. 스트리트 파이터 4하칸은 터키 출신이라면서 아예 대놓고 중동스럽게 생기지도 않았다(미국인이나 러시아인이라고 해도 말이 될 정도)[90]. 종교에 관해서 다루는 대표적인 라이트노벨인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작가인 카마치 카즈마와 전격문고 편집부는 이슬람에 대해 자료가 방대하고 테러리즘의 위협을 예로 들며 짧게 언급했다. 기독교에 대해 거의 왜곡으로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이다.

대부분의 일본제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에로게, 만화에서는 기독교의 수녀를 모에 아이템으로 활용하면서 이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잘해봐야 하렘이나 무희 정도[91] 풀 메탈 패닉의 주인공 사가라 소스케 정도가 이슬람교도 주인공의 전부. 쿠란을 암송할 정도라지만 작중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딱히 부각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92][93] 기동전사 건담 00의 주인공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중동 출신이지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는 아니다.

한가지 특이한 사항으로는, 에로게 메이커인 앨리스 소프트가 챔피언 소프트라는 이름을 쓰던 당시에 마지막으로 발매된 PC-98용 게임이 이슬람교를 다루었다. 리뷰를 보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메이플스토리자쿰은 이슬람교의 지옥에서 자라나는 나무인 زقوم(Zaqqum)이 유래다. 그래서인지 자쿰퀘스트 관련 NPC들은 죄다 이슬람쪽 복장을 하고있다.[94]

이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은 의외로 스페인 미니어쳐 게임인피니티 정도다. 여기서는 이슬람이 근본주의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슬람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크게 재해석해서 등장시켰다.

15. 여성인권이 그나마 발달한 이슬람일파 및 조직

비록 소수이지만, 여성인권을 강조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 이슬람 군벌 지도자도 있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참조.

헤즈볼라의 경우 장교급 간부 중에는 여성도 있으며[97], 헤즈볼라 여군들이 니캅 같은 베일을 입고 쓰는 것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한다고. 헤즈볼라 소속의 여성 정치인도 있다. 이 때문에 IS알 카에다같은 많은 극단주의 조직과는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다. 애초에 종파부터가 다른 것도 있고...

터키의 공화인민당

이쪽은 아예 세속주의다. 사민주의를 제창하는 터키 정당이다. 터키의 제1 야당이고, 당 총재 자체가 이슬람교 이단인 알레비파이다.

드루즈파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다.

이외에도 이슬람 사회주의,세속주의,좌익적 이슬람교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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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좀 더 설명하자면, 이 SLM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중 하나가 비무슬림에게도 유명한 'salaam'이다. 흔히 평화라고 번역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신에게) 복종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안식과 평온함'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이 인사할때 '앗살라무 알레이쿰'(평화가 당신께 함께 하기를) 이라는 인삿말이나 유대인들이 쓰는 동일한 의미의 '샬롬 알레이헴', 성경에서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셈족언어의 전통에서 이해하면 된다. 예수가 생전에 썼던 아람어도 셈족계통의 언어다.
  • [2] 다만 이슬람의 분파인 순니파와 시아파도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만큼이나 큰 차이가 나므로, 집계할 것이라면 양쪽 모두 합치거나, 아니면 따로 나누는 것이 옳다. 그래서 양쪽 모두 분리해서 본다면 순니파가 13억 명으로 1위, 천주교가 12억 명으로 2위가 된다.
  • [3] 다만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서는 '회교'는 잘못된 명칭이니 이슬람교라고 불러줄 것을 요청한다.# 비신자는 '그게 무슨 차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사자들이 요청하는 만큼, 가급적이면 이슬람교라고 불러주자.
  • [4] 고려가요 쌍화점에 "회회(回回)아비"가 등장하는데 회족 출신이거나, 이슬람(회교) 신자로 고려에 온 장사꾼(그러니까 회족이 아닌 민족일수도 있음)이라는 등 견해가 갈린다. 엔하위키 쌍화점 항목에서는 위구르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서양인이라면 국적 불문하고 죄다 미국사람이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참고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한족을 제외한 56개 소수민족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회족(후이족으로도 표기)과 위구르족은 별개의 민족으로 분류한다. 성(省)과 동등한 행정단위인 민족자치구로 닝샤 후이족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도 별개로 존재한다.
  • [5] 네번째는 바하이교 쯤 될 것이다
  • [6] 기독교에서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부르는 그 하느님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하느님과 알라는 같은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 [7] 다른 종교에서도 가장 위대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금지되거나 꺼려하는 행위인 경우가 많다. 유대교에서 창조주를 아도나이(주)로 돌려 말한다던가, 고대 그리스에서 제우스를 크로노스의 아들로 칭하는 등.
  • [8] 연속되는 자음을 처리하는 언어의 특성상 축약되어 ALLH로 표기, '알라'라고 읽힌다. 신비주의자들은 이 세 글자인 알리프(A), 람(L), 하(H)를 성스러운 글자라고 생각하기도해서 터키에서는 튤립(터키어로 Lale)을 신성한 꽃으로 여기기도 했다.
  • [9] 다만 유대교나 기독교의 유일신 역시 보통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하지 '신'을 붙여서 '야훼신', '여호와신' 등으로 표현하지 않듯이, '알라신' 자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알라'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있다.
  • [10] 천사의 모습에 대한 기독교의 가장 보편적인 인식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필요에 따라 여러 모습을 취한다'이다. 즉 필요에 따라 남성의 모습으로도, 여성의 모습으로도, 혹은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 [11] 본래 한 종교의 경전은 처음 쓰여진 이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터부시 된다. 불교 경전 중 중요한 구절은 중국어의 음차를 이용해 표기하거나,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는 근본주의 천주교도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12] 대표적인 예로는 중앙아시아를 들 수 있다.
  • [13] 하지만 한국인 무슬림측에 따르면 그들의 공동체에서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정의하며 같다고 주장한다.
  • [14] 유대인과 기독교인
  • [15] 이란과 이라크는 이슬람권에서 시아파가 다수인 몇 안 되는 국가들이다.
  • [16] 이슬람권에서 가장 세속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예외적으로 페르가나 계곡 지역은 와하브파가 득세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동부, 키르기스스탄 남부 일부가 해당한다. 하지만 이 쪽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성향이 있지만 우즈벡과 키르기스라는 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세속적 성향이므로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꽉 막힌 사회까지는 아니다.
  • [17] 시조격인 메블라나 루미(1207~1273)가 지은 시를 봐도 이렇다. "오라 그대가 무엇을 믿든 믿지않든, 불을 섬기든, 뱀을 섬기든, 신을 많이 믿든, 십자가를 섬기든 누구든지 오라…. 여기는 절망의 문이 아니다. 모두가 신에게 가는 길이자 모두가 용서받고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며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존중받아야 하는 곳이다."
  • [18] 여기서 아타튀르크 집권기에 수피종단을 금지화 시킨 맥락을 좀 더 설명하자면, 오스만 제국 당시 예니체리들이 가장 많이 따르던 종단이 바로 이 수피종단이었다. 특히 벡타쉬파 같은 경우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전통을 융합시켜 발전해왔기 때문에 원래 기독교인이었던 예니체리들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파였고, 그래서 예니체리가 사라지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한동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자꾸만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며 충돌을 일으키자 금지먹은 것.
  • [19]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만들기 이전, 아랍인들은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를 믿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랍 신화 항목 참조
  • [20] 현재의 은행들 중에도 맡기는 사람은 이자를 받는 쪽과, 보관 수수료를 내는 쪽이 있다. 그것을 유목민족이 생물인 말 따위를 맡긴다고 한다면 이자를 받기보단 차라리 수수료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21] 상업과 금융을 배척하자고 이자를 못 받게 했다고는 하기 힘든 것이 무함마드가 성공한 배경중에는 부유한 부인의 영향도 있다.
  • [22] 가부장적인거야 원래 그랬다고 하지만, 그걸 바꾸지 않았다는 점
  • [23] 이를테면 쿠란과 하디스에서는 예수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이 왜곡하는 것을 시정하러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 [24] 때문에 종교개혁 이후 나온 신흥 그리스도교 종파들, 즉 개신교 종파들의 경우 이슬람의 영향으로 우상으로 오해되거나 변질될 수 있는것 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성상과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거부하는 것도 이 영향. 물론 개신교 신자들에게 말하면 기분 나빠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 [25] 이슬람교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국가에서는 인형(人形)의 반입도 금지되며, 허락이 된다 해도 목을 떼어내야 한다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 빅잠은 가능하지만 건담은 불가. 라스트 슈팅의 건담은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라마다 기준이 다른건지 이집트에서는 넨도로이드도 반입이 가능한 모양이다. 사실 이집트 국내에서도 야시장이나 백화점 등지에서 고대 이집트를 소재로 한 피규어들을 팔기도 하는 걸보면 이집트는 확실히 기준이 느슨한듯.
  • [26] 시아파의 경우에는 성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 [27] 그래서 정교회나 유대교 밀레트에서 해결하기 힘든 재판의 경우, 무슬림이 아닌 경우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피파 법관에게 가서 재판을 받곤 했었다.
  • [28] 같은 아브라함 종교계열인 그리스도교와 달리, 쿠란에서는 신과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 [29] 특히 성차별적이거나 전근대적 또는 비합리, 비윤리적인 구절 등
  • [30] 대부분의 신자들이 '알라께서 지켜주실 것이니 질병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며 신경을 안썼기 때문.
  • [31] 한때는 지하드, 즉 성전이 들어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 [32] 예를 들어 양말을 벗어야 한다거나(...) 단 필수는 아니다
  • [33] 경건한 것도 좋지만 건조한 지방에서 물을 헤프게 쓰다간 진짜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34] 때문에 이슬람교의 세력이 어느정도 있는 나라에는 거의 항상 할랄 푸드를 다루는 가게가 있다. 이태원 이슬람 성원 옆에도 할랄 육류 판매점이 있다.
  • [35] 이건 종교적인 것과 실질적인 어려움이 합쳐진 것. 종교적으로는 예수가 악마를 가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는 사막이라 안그래도 먹을게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과 동일한 먹이를 먹는 경쟁관계의 동물을 키우기는 어려웠다는 점. 소나 낙타처럼 풀만 먹고 노동력이라도 제공하면 모를까, 고기만 얻는 짐승을 굳이 귀한 음식 먹여가며 키우려면... 게다가 돼지는 때때로 진흙탕에서 굴러 몸을 씻어야 하기때문에 물도 엄청나게 필요하다.
  • [36] 한국 이슬람 중앙성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질문자가 중동 출신인지 동남아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외국인 무슬림인데, 한국에 와서 사귄 친구에게 선물로 초코파이를 받았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받은 첫 선물이라 일단 받고서는 이게 이슬람 율법에 허용되는지 확인해보려고 질문한 것. 그런데 초코파이 마쉬멜로우에 돼지기름에서 추출한 성분이 섞여 있으니(...)
  • [37] 사실 알콜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랍어 알쿨(الكحل, al-kuḥl, "화장먹, 아이라이너 같은 가루")에서 나온 단어다(...)
  • [38] 보통 '밖에서 공식적으로' 먹는 것이 기피되는 편이다. 율법의 원칙과 현실의 욕구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것.(...) 당연히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술이나 돼지고기을 먹을때 "이 정도는 알라께서 봐주실거야. 그 분은 자비로우시니까." 하면서 먹는 신도들도 많다. 물론 이건 이 음식들을 쉽게 구하는 한국에서의 얘기다. 아랍국가에서도 이 음식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렇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참고로 이집트나 시리아, 레바논 같은 경우 기독교인이 공존해서인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돼지고기임을 알고도 거리낌없이 먹는 이슬람인들을 본 한국인 거주자 글도 있다.(…) 캐나다 등 비이슬람권 국가에 온 젊은 무슬림 유학생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사례도 있다. 유학 오기 전까지는 돼지고기 맛을 몰랐을 텐데 어찌 맛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답하기를 "중국인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돼지고기 맛있는 줄 알게 됐다"나.
  • [39] 가을이 아니다! 이슬람력은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한 순수 태음력이라 반드시 태양력(그레고리력)의 9월 및 계절의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슬람력과 태양력은 대개 1년에 10일씩 오차가 발생하므로 해마다 오차가 누적되면서 라마단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어느 계절이든 거치게 된다. 이슬람력 항목 참조.
  • [40] 한달동안 아무것도 안먹고 버틸 인간이 어디있을까.
  • [41] 애초에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단식을 함으로써 정신 상태를 맑고 순수하게 만들면 천사의 속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고, 또 굶주린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줄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게 된 것이다.
  • [42] 굶으면 살찌기 더 쉽다. 몸이 양분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양분이 들어올때 축적해두려고하기 때문. 굳이 식사량으로 살을 빼려면 단식하지 말고 차라리 소식을 하는게 효과가 있다.
  • [43] 실제로 코란엔 동성애 금지 조항은 없다. 참고
  • [44]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절에도 나온 걸 보면 이슬람이 생기기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 [45] 참고로 인도만 봐도 인도에서 오랫동안 있던 인도 토속 종교가 카스트와 지참금같은 힌두교가 가진 신분제도,여성 인권침해같은 안 좋은 걸 죄다 받아들여 여성차별 종교가 되어버린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슬람교가 없다고 해도 아랍 전통적 여성 차별 인식을 받아들여 여성탄압종교가 되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 [46] 쿠란의 해석은 후대의 해석을 따르도록 쿠란이 지시하고 있어서 쿠란을 자기멋대로 해석하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비판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해석의 갱신을 쿠란 자체가 장려하는데, 여성 인권 문제를 아직까지도 재해석하지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 [47] 1년 평균 약 5000여명의 무슬림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죽어나간다.
  • [48] 어느 지역에서는 이 혜택을 노리고 너무 많은 사람이 개종해서 개종을 금지하기도 했다는 웃지못할 사례가 전해진다. 셀주크 튀르크 술탄 클르츠 알르슬란이 개종한다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들은 돈을 아낀다면 얼마든지 신과 믿음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비꼬는 말을 한 기록이 있다.
  • [49] 그리고 바로 이런 문제로 인해 그리스도교가 비칼케돈파, 가톨릭, 정교회로 마구잡이로 분열되었다. 순니-시아 분열보다도 심각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동서 대분열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수위권 분쟁은 세속에서 조직을 유지하다보면 십중팔구 터져나오는 문제로 어느 종교에서나 심각한 문제이고, 이슬람이라고 다른 것은 절대로 아니다.
  • [50]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쪽 국가들은 보통 세속주의적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는 이슬람을 포함한 모든 종교가 엄격하게 통제받고 있는 쪽에 가깝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동네라 보긴 힘들다.
  • [51] 근데 사실 이슬람 내 세속주의가 힘을 잃지 않았던 20세기 중후반만 해도 중동에서조차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사이의 결혼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도 "같은 무슬림인데 뭐 어때.."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말았다고. 그러나 갈수록 이슬람 근본주의가 부상하고 수니-시아파간 종파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지금은...
  • [52] 실제로 한 80대 영국인은 동런던 술집에서 맥주마시다가 이슬람교들이 쇠야구방망이로 구타해 죽였는데 이 영국인을 살해한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권역에서 술 마신 영국인 잘못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술집은 런던에서 150년동안 있었던 술집이고 죽은 영국인은 그 술집 60년 단골이었다. 정작 살인을 저지른 이슬람교도들은 이민온지 얼마안된 사람들이었다
  • [53] 중국의 오호십육국 시대 당시 비한족들이 유교 대신 불교를 선호했던 이유와 같다.
  • [54] 그 대신에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슬람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무굴 제국은 타 종교에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이것도 아우랑제브 황제 시기가 되어서는 얄짤 없이 탄압받았다. 그 때분에 시크교도들도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는 혼란(...)
  • [55] 사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열강들도 식민지에 이런 방식을 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
  • [56] 토벌시에도 대규모의 병력을 배치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신하들도 나왔을 지경이다.
  • [57] 대표적인 예가 무슬림의 순진함. 물론, 이 작품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감독의 신성모독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동안 기독교가 신성모독적인 매체에 보인 태도와는 격이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라는 권위가 약해지고,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러한 풍자화는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다 유연한 적응이 필요해보인다.타종교인들은 종교 비판/왜곡 매체에 반대할망정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지 않는가
  • [58]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에서도 그렇지만, 당시 아랍인들에게 술이란 '포도주'가 전부였다. 나머지 알콜음료는 술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실제로 무함마드도 생전에 차갑게 만든 대추야자술을 즐겨마셨다는 하디스의 전승이 있다.
  • [59]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무관한 몽골이 말젖을 발효시킨 술인 아이락(보통 쓰이는 마유주라는 일본 한자어는 옳지 않는데 아이락은 말젖 말고도 양젖이나 염소젖으로도 만들기 때문이다)을 애들이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물처럼 마신 것도 비슷한 경우다. 즉 유목민들에게 술은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은 어디건 같은 셈이다.
  • [60] 2005년 10월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7만여명이 목숨을 잃을 당시 부상을 입고 매몰된 건물이나 산사태로 묻혀진 사람들은 하필 라마단 기간이라고 음식을 거부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당시 인명 구조를 위해 해외 각지에서 파견된 구조대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사정을 잘 아는 터키 구조대가 "라마단에 스스로 죽으려고 단식하는 건 이슬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자살이다."고 설득하자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받아먹었다. 당시 한국 구조대가 쓴 책인 <슈끄람! 파키스탄>에서 발췌.
  • [61]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명목상은 세속국가다. 하지만 사실상(de facto) 국교가 이슬람이니...
  • [62]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시절에 있었던 하이네켄 공장이 시초라고 한다.
  • [63] 맥주 정도는 어느 식당이나 길거리 매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수도 자카르타 일부 지역에는 바와 클럽이 넘쳐나는 모양새가 다른 세속국가의 유흥가와 별반 다를바가 없다.
  • [64] 터키의 경우 전통적으로 튀르크족이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기도 하지만, 수피즘과 알레비즘같은 이슬람 신비주의가 정착해 토속화된 결과 술에 대한 금기가 많이 흐려졌다. 특히 오스만 제국시대 그리스도교를 믿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같은 타 민족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술집출입이 자유로워진 경향도 있다. 사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스탄불 인구의 거의 40%는 비무슬림이었고 그중 대다수가 그리스인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대거 쫒겨나고 그 이후로도 계속 쫒겨났다.
  • [65] 방글라데시 사채업자들은 살인적인 이자로 인해 돈을 못 갚는 집안의 아이를 데려와 아동노동을 시켜 임금을 이자 대신 가로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한다는 교리를 무시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웃기는 것은 그런 사채업자들과 그들의 뇌물을 받아먹은 성직자들이 그라민 은행이 이자(정해진 이자)를 받는다고 비난하는 것.
  • [66] 낙태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 [67] 공산정권 치하에서 강력하게 세속화가 되었다지만 알바니아는 이슬람교인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 [68] 다만 일부 이슬람국가에서 되려 출산율이 상승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을 예로 들수있다. 다만 이쪽은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가 경제사정이 어느정도 풀리자 다시 증가한것에 가까웠다. 한편 알제리도 출산율이 2000년대 초반 2.4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이 2000년대 후반들어 2.8명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 [69] 프랑스령 마요트를 포함
  • [70] 약 200만명이 넘는 이슬람인이 살고 있다
  • [71] 이태원등에서 살고있으며 한국거주 이슬람인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 신자는 3만명 정도 된다
  • [72] 위구르인과 회족, 후이족등의 소수민족. 2퍼센트정도 된다. 하지만 소수라고 해도 중국의 인구가 너무 많은 탓에 1000만명이 넘는다.(...)
  • [73] 파타니 나라니왓 송크흘라등의 말레이인 거주지역은 이슬람교 지역이다.이 지역은 원래 소규모 에미르국가가 존재했는데,타이가 삼켰다!! 그후로 독립세력과 이슬람세력등이 싸우면서 혼란을 겪고있다.심지어는 승병도있다!!!
  • [74]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라는 아랍상인의 후손인 무슬림이 있다! 미얀마는 지금 무슬림과 불교도간의 갈등이 있다.
  • [75] 참족이 무슬림이다.참족은 베트남 캄보디아에 거주하며,참파를 세웠던 민족이다.
  • [76] 재일터키인..
  • [77] 당시 아랍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꽤 안 좋았는데,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시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아랍권 지지 성명, 아랍권 국가 9개국과의 수교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한국이슬람중앙성원 부지 제공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 [78] 하지만 당시의 알리고등학교는 이슬람교 미션스쿨이기는 했지만 논란과 종교강요 금지로 인하여 개신교계열 미션스쿨 처럼 학생들에게 이슬람교를 강요하지는 않았고, 일주일에 한번 있는 교양수업에 강제성이 없는 이슬람 교리, 쿠란 낭독 정도나 신청자에 한해 이슬람교 체험 활동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걸 신청하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 [79]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다. 인구 비율로 보면 미국을 압도한다!
  • [80]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책자에서도 "한 손에는 쿠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묘사가 그대로 나왔다(초기판). 학습서에서도 이런 걸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그런 묘사를 찾아볼 수 없다.
  • [81] 사람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음에도
  • [82] 하지만 이 글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신미선씨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신미선씨인 것 처럼 글을 썼다는 것.
  • [83] 다만 그 책은 피해 당사자인 엄마가 쓴 책이므로 엄마의 시선으로만 작성되어 있음을 유념할 필요도 있다.
  • [84] 오히려 터키 정도의 정교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슬람교 계열 국가야말로 극소수다. 이슬람교 국가들 입장에서 터키는 굉장히 이질적인 국가라는 거.
  • [85] 참고로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무슬림은 대부분 순니파이다. 시아파는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해서 해외 다른 국가들에게 동화되기 힘든고로 해외 진출이 어렵다(기껏해야 고향에서 시아파 믿던 사람이 해외로 갔을 경우 정도). 실제로 아랍 국가 중 그나마 해외와 교류가 있는 국가들(사우디, 이집트, 터키 등)은 순니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 [86] 동시에 이슬람 극단주의의 행패가 존재할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 [87] 트레이 파커와 멧 스톤은 이에 대해 무슬림 전체를 비하할 의도가 아니였다고 해명했다.
  • [88] 오죽하면 이슬람 비판한 유럽의 언론인들이 경찰한테 신변 보호를 받을까.
  • [89] 혹은 사우스파크처럼 여기에 역자극을 받아 더 악랄하게 하는 경우도...
  • [90] 다만 스트리트 파이터는 원래 되도록 무국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 [91] 근데 사실 하렘은 아랍 이슬람보다는 투르크 문화권에서 따온 부분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동의 무희 역시 아랍이 아니라 페르시아쪽에서 따온 부분이다. 외부인들이 현대 이슬람의 여자를 보는 시선이 부르카를 뒤집어 쓰고 다니는 걸어다니는 인간 천막 수준인데 이런걸로 모에요소가 나올리가 있나(...)
  • [92] 돼지고기를 꺼리낌없이 먹긴 하나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돼지고기를 맛있게 뜯는 지역(예: 터키)이 있으므로 나이롱 신자라고 하긴 힘들다. 결혼하고 육식하는 일본의 불교 승려보고 땡중이라고 하지 않듯이 다만 소스케는 돼지고기와는 달리 술의 경우엔 매우 완강하게 거부한다. 물론 종교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건강상으로도 입맛으로도 너무 안맞아서 안마시는 것이지만.
  • [93] 하지만 얘는 아프간 출신이다.
  • [94] 자쿰이 있는 엘나스는 메이플에서도 추운지역이라 이해가 안갈수도 있지만 자쿰은 폐광의 깊숙한곳에 있다. 엄청 깊숙해서 용암이 다 드러날 정도이니 이슬람쪽 복장을 하는게 당연하다.안그러면 쪄죽지(...) 근데 엘나스 시장의 창고기지는 뭐지?
  • [95] 이 경우는 이슬람이라기 보다 중동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볼수도 있다.
  • [96] 정확히 이슬람교를 차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교를 모티프로 한 종교가 작중의 주요 종교다. 특히 문화나 고유명사(자카트나 샤하다 등)들은 이슬람의 것을 따온 곳이 많다.
  • [97] 이는 헤즈볼라의 특성이 이슬람주의 단체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실상은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같은 세력보다는 온건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