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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last modified: 2015-03-07 03:14:58 Contributors


한국바둑기사.

Contents

1. 개요
2. 상세
3. 파격, 그의 행보
4. 이세돌의 말말말
5. 기타

1. 개요


한국 바둑 최강 계보를 이은 기사

이세돌(李世乭). 1983년 3월 2일생.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 기사이다.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현존 국내 최강 바둑기사로 손꼽히며, 세계 최강을 논할때 반드시 거론되는 기사다. 현재 이창호를 제외하면 세계대회 우승을 가장 많이 한 기사이며, 조훈현과 이창호를 제외하면 입단을 가장 어린 나이에 한 기사이다. 조훈현 九단은 9세, 이창호 九단은 11세에 했다.

2. 상세

전남 신안군 비금도 출신으로 12세에 프로가 되었다. 형인 이상훈 七단을 따라 입단했으나 자신보다 기재가 뛰어난 동생을 본 형은 '나는 이창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은퇴해야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세돌의 지원에 전념한다.[1]

이름이 꽤 특이한데 그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인 돌乭자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로, 石자에 乙자를 합쳐 만든 글자다. 아버지가 지었다고 하는데 정말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중. 중국일본엔 없는 글자이다보니, 일본에선 乭만 도루ドル로 표기한 李世ドル로 표기한다. 중국에서는 '돌'자를 石(석)으로 바꾸어 이세석(李世石)으로 표기하는 경우와 최근에는 李世乭로 쓰고 乭의 음은 '스'혹은 '다오'로 읽는 경우를 병행하고 있다.

3. 파격, 그의 행보

1995년에 입단하지만 2000년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2000년에 세운 32연승은 역대 연승 3위 기록. 이후 3년간 바둑계를 휩쓸지만 당시 三단이었다. 이는 이세돌이 더 높은 단을 달기 위해 치러야 하는 승단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식에 젖어 과도한 대국수로 스타급 기사를 혹사시키는 승단대회의 문제점은 이전에도 지적되고 있었지만[2] 최초로 그 제도에 정면으로 대항한 것이 이세돌이었다. 결국 한국기원은 승단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시 三단 승단, 준우승시 一단 승단"을 두고, 다른 나라의 기원들도 비슷한 규칙을 넣게 된다.[3] 솔직히 三~四단이 八~九단을 마구 처바르고 다니면 이상하잖아[4] 이 때부터 이세돌은 이미 한국기원에 찍히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세돌은 그 후 5개월만에 세계대회 우승[5], 준우승[6], 우승[7]을 하여 九단이 된다.[8]

이후에도 2009년 5월까지 국내랭킹 1위, 10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하는 등 정상급 기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만 바둑계에서 (어찌보면) 괘씸죄로 찍혀버려서 징계를 받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이세돌이 2009 한국바둑리그를 앞두고 바둑리그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있었고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와 대국료 관련 문제도 있다. 여튼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징계를 내렸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계'를 내버렸다.[9]

그리고 한국기원과의 앙금을 청산하고 복직하자마자 파죽의 24연승과 함께 덤으로 제2회 BC카드배 결승에서 창하오 九단을 3:0으로 압살하면서 세계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했다. 세 판 모두 불계승. 참고로 이 대회 16강전에 당시 중국 랭킹 1위이던 지에를 상대로 초반에 대마가 잡혀 85집 정도를 잃은 상태에서 역전승을 했었다. 그날 인터뷰에서는 초반에 밀려서 그냥 두는데에 의의를 뒀다고. 2011년 4월에 제3회 BC카드배 결승에서 라이벌로 여겨지는 구리 九단을 상대로 3:2 신승을 거두고 BC카드배 2회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이창호의 바둑이 느긋하면서도 안정적인 계산으로 끝내기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세돌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로 난전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혼란시키고 압살해버리는 스타일이어서 아마추어와 일반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구경하는 사람이 즐거운 바둑. 묘수와 잔수[10]가 아주 강해서 전투가 많이 일어난다. 안 되는 축을 몰아서 승리한 바둑이 이런 데 올라가 있기도 하다. 영어주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을 직설적으로(좋게 말하자면 솔직하게, 나쁘게 말하자면 버릇없게)하는 걸로 유명하다. 아래의 말말말 참조. 이런 컨셉 때문인지 이세돌에게 번번히 깨지는 중국의 바둑팬들은 그를 싫어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봤자 실력이 실력이고 최강자인 건 사실이기 때문에 대놓고 뭐라하지는 못하는 모양.

하지만 결혼도 했고 복직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까칠하게 보였던 성격은 많이 순화되었다. 2010년대 들어서 방송에 보여지는 모습에선 과거의 포스를 상상하기 힘들다. 위 인터뷰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화제가 되곤 하는데 바둑 보는 사람들에는 다 옛날 이야기. 이제는 나이도 중견기사로 올라서면서 여러모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스트 바둑왕에 나오는 고영하의 이미지와 잘 매치가 되지만 사실 홍수영의 모델이 이세돌이라고 한다. 또 애니판이 한국에 방영되었을때 해설을 맡았다. 九단씩이나 되어서 바둑돌 어디다 놓는지부터 설명하는 모습은 많은 바둑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목소리가 매우 깬다. 가히 데이비드 베컴급. 목소리만 듣고는 여자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변성기 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성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있다. 당시 14살이었던 이세돌은 프로기사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매니저였던 이상훈 프로는 군대엘 갔고 부모님은 신안에 계셔서 이세돌 본인이 병원도 제대로 못갔다는 후문이 있다.

2012년 12월 13일, 성화재배 결승 3번기에서 구리 九단을 2: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성화재배는 통산 4번째 우승한 것. 구리 九단과의 상대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약간 회복했다.

2012년까지는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실상부한 1인자의 위치를 지켰으나 이후 나이 때문인지 부진하고 있다. 한국 랭킹은 3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동갑이자 최대의 라이벌인 구리와의 10번기를 시작했다. 이세돌-구리 10번기는 제한시간이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월드컵 기간인 6월을 제외하고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되며 먼저 6승자가 나오면 종료된다. 승자는 우승상금 500만 위안(약 8억 4000만 원)을 독식하고,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약 3500만 원)의 여비가 지급된다. 단 최종 성적이 5승 5패일 경우 상금을 절반씩 나눈다. 자세한 내용은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는 6승 2패로 승리했다.

4. 이세돌의 말말말

(세계 최강의 기사는 누군가?) 이창호 ,조훈현, 요다 정도겠지.[11]기자가 당시 자리에 앉아있던 마샤오춘을 끼워넣자, "아! 마샤오춘은 빼주세요." 다들 경악. 그리고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대사가 되었다.

(그대 자신은?) 물론 내가 최고다.

(마샤오춘의 바둑은?) 놔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오청원[12]의 바둑은?) 공부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차세대 중국의 유망한 기사는?) 그들의 이름도 잘 모르는데 바둑을 어이 아나?

(중국 음식은 잘 맞나?) 너무 기름져서 입에 안 맞다. [13]

(한국에선 안티 이세돌 사이트도 생겼다던데?) 나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신경을 못 쓰는데 그들에겐 당연히 신경 끈다.

“어떤 각오로 대국을 시작하느냐고요?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지요.”

“아, 싸울만 해서 싸워요. 수가 보이는데 어쩌란 말이에요.[14]

“큰 누나가 빨리 시집을 가야 할텐데? 보낸다고 가나요? 자기가 알아서 가야지.”

“나도 여자 친구가 없는 걸 보면 인기가 없나봐요. 큰일이에요.”

“비금도(이세돌의 고향) 인구 수 잘 몰라요. 내가 뭐 면장도 아니고.”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내가 우승해서 미안합니다.”

“히카루의 바둑에 나오는 그 바둑 귀신이요? 에이, 그거 별 거 아니더라구요. 그 때는 초읽기도 없었는데,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요.”

5. 기타

최정상급 기사중 담배를 피우는 유일한 기사다.[15] 그럼에도 타고난 체력으로 인해 기사들 간의 달리기류의 체육대회가 있으면 언제나 1등을 맡아놓는다고 한다. 특히나 장거리는 독보적이라니... 타고난 복이 너무 많다. 그러나 경향신문와의 인터뷰에서 금연을 선언했다. 이유는 딸이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라고.관련기사 이 사람도 딸바보로 가는가

타도 이창호를 내건 소장파 기사의 선두이다. 이세돌 본인도 타도 이창호에 매우 열심이었던 듯. 모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 입단하기 전 기원에서 바둑공부할 때 이창호가 가끔씩 기원에 와서 바둑을 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 옆에 앉아 이창호의 손만 빤히 쳐다봤다고 한다. 2000년대 초중반 이창호vs이세돌의 승부는 바둑계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2003년에 열린 제 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 승부에서 이세돌이 이겼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당시 이창호는 제 1회 춘란배 결승에서 조훈현에게 패한 이후 4년간 국제대회의 결승에서 무패행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2001년에 제 5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세돌을 리버스 스윕으로 꺾고 우승한 적도 있다. 즉 이세돌에게 이창호가 최초로 진 것이기 때문. 그때 양쪽 모두 사력을 다한 승부였기에 이긴 이세돌도 탈진, 진 이창호는 생전 안하던 술을 마시며 쓰라린 마음을 달래야 했을 정도였다. 이후로 이창호를 이기는 후세대 기사들이 나오는데 이세돌이 (세계대회에서는) 그 시초격인 셈.[16]

중국 바둑리그에 용병으로 참가하면서 이기면 돈을 받고 지면 돈을 받지 않는 계약을 최초로 한 한국바둑기사다.2006년 중국갑조리그 관련기사 이후 한국기사들도 용병으로 참가할 때 이러한 조건을 비슷하게 달고 출전하는 경우가 늘었다. 심지어 5빵(이기면 5만위안, 지면 없음), 7빵이라는 프로기사들 사이의 은어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

2013년 1월 합천군 초청 '2013 새로운 물결, 영재 정상 바둑대결'에서 유일하게 승리했다. 최연소 프로기사 신진서 初단이 이창호를 불계승으로 꺾어 파란을 일으킨 이 대회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승리한 것. 대회 후기 '카더라'에 의하면 넉넉하게 이길 수 있었는데 일부러 반집승으로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요즘 애들은 왜 다들 이렇게 똑같나"라고 했다고... 정말이라면 그다운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기사

최근 경향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17].(!!!) 미국으로 건너가 기러기 아빠 생활도 청산하고[18] 바둑도 보급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계획의 첫번째로 go9dan.com을 열었다고. 한국 바둑의 현실에 대해서는 입단이 너무 쉬워졌다며 이대로는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19], 한국 바둑계의 창의적이지 못한 바둑교육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는 바로 위에서 영재 정상 바둑대결 후의 인터뷰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후계자로 김지석 九단을 지목하기도 했다. 전문 그런데 김지석 九단 성적이 별로 안 좋은데 저주되는 건 아니겠지?

여담으로, 이영도의 소설 피를 마시는 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대장군이자 국수급 기사인 엘시 에더리의 모티브나 이름은 이세돌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세돌을 적절히 변형시켜서 이름인 엘시 에더리를 만들고, 엄청난 바둑 솜씨를 따온 것으로 추측되나 어디까지나 사석에서의 소문이 퍼진 것으로 공신력 있는 출처는 아직 없다. 아니 그 전에 이름은 그렇다치고 바둑은 이창호에 가까워 보이는데 성격을 따온 것은 아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바둑 종목이 추가되었고, 이세돌 九단도 한국 선수로 참가하였다. 결과는 다 알고 있다시피 한국이 전 종목(남자단체, 여자단체, 혼성페어)을 석권하였고(금3, 동1), 이세돌 역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바둑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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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상훈 七단도 어린 나이에는 동명이인인 이상훈 기사와 구별되기 위해 '비금도 이상훈'이라고 불리며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던 적이 있다.
  • [2] 단적인 예가 89년 당시 이창호 四단의 111국 기록. 존재하던 모든 기전에 출전하고 승단대회까지 참여하던 끝에 나온 다시는 나와서는 안될 기록적인 혹사다.
  • [3] 중국을 예로 들자면, 세계대회 우승 1회, 혹은 세계대회 우승 2를 거두면 그 즉시 자동으로 九단이 되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의 대표적인 수혜자는 제7회 응씨배 우승자인 판팅위 당시 三단. 17세의 나이에 九단이 되었다. ㅎㄷㄷ
  • [4] 1971년에 서봉수 당시 二단이 조남철 당시 八단에게서 명인위를 털어온 사례가 있었다.
  • [5] 이창호를 꺾은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 [6] 제2회 KT배
  • [7] 제16회 후지쯔배. 이세돌의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이었던 제15회 후지쯔배와 더불어 2연속 제패
  • [8] 2003년의 일로 이는 당시 역대 최단기간 九단 승단이다.
  • [9] 당시의 정황은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기원의 자체징계가 아닌, 우리나라의 모든 프로기사들이 모인 "기사회"에서 징계를 의결한 것이었다. 사실 바둑의 인기가 예전같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1인자이자 최고 인기기사인 이세돌의 바둑리그 참가는 모든 걸 다 떠나서 필수적이었으며 심지어 신안군의 경우 그의 고향 비금도가 속한 기초자치단체로 이세돌의 참가를 바라며 "신안 천일염"으로 바둑리그의 참가를 결정한 상태였음에도 돌연 불참한 것이다. 당시의 징계를 주도한 사람이 이세돌을 그토록 아끼던 조훈현 九단이었음을 볼 때 이세돌의 태도 또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 [10] 꼼수같지만 꼼수와는 달리 프로기사가 와도 파해가 잘 되지 않는 수를 잔수라고 한다.
  • [11] 제다이 요다가 아니라 요다 노리모토. 하지만 왠지 성격상 제다이 요다가 들어갔어도 그다지 놀랍지는 않을 것 같다.
  • [12] 대만 출신의 일본 원로 기사. 보통 기성으로 불린다. 우칭이엔이라고도 말하며 린하이펑의 스승이기도 하다. 유명한 정석해설서인 '오청원 전집'도 있다. 무엇보다도 조훈현에게는 먼 사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 세계 바둑 팬들이 역대 최고의 기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기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 [13] 옛날 이야기. 이후엔 중국 요리를 매우 즐긴다. 특히 술에 있어서는 독주를 좋아하는 애주가인데, 맥주는 입에 대지도 않고 소주는 와인보다 조금 독한 정도라 하여 빼갈을 몹시 애호한다고 밝히기도(...). 술 담배 펑펑 하면서 강한 이유가 뭐냐
  • [14] 웹툰 에서도 패러디 되었다. #
  • [15] 대부분의 기사들은 체력문제로 피우지 않는다. 조훈현 九단도 엄청난 골초였지만 금연 했을정도. 내제자였던 이창호에게 패하기 전까지 그의 담배 애호는 대단해서, 평창동 자택 지하실에 장미 담배 1만보루를 사다 재놓을 정도였다 한다. 이창호도 젊은 시절 스승의 모습을 "가느다란 장미 담배를 문 날카로운 인상"으로 기억할 정도
  • [16] 국내 대회에서는 제 19회 KBS 바둑왕전 결승에서 목진석이 이창호를 이긴 적이 있다.
  • [17] 이걸 비유하자면 메시가 올 시즌 끝나고 은퇴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격.
  • [18] 현재 이세돌의 아내와 딸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이세돌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도 기러기 아빠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지 않나 추측된다.
  • [19] 90후, 95후 세대가 계속 합류하는 중국 바둑에 비해 한국 바둑의 인재층이 얇다는 문제 때문에 당장의 해결책으로 입단폭을 크게 늘린 점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