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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

last modified: 2013-12-05 01:48:19 Contributors

李師道
(? ~ 819)

당나라의 세력가. 의 아들.

그림 그리기, 피리 불기를 좋아했고 지밀주사를 지내다가 806년에 이사고가 죽자 고목, 이공도가 밀주에서 맞아들이면서 절도부사가 되었으며, 당나라로부터 8월에 평로유후, 지운주사에 임명된 10월에는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오원제, 왕승종 등이 회서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815년에 이사도는 평소에 자객과 간사한 사람 수십 명을 기르면서 넉넉하게 물자를 공급했는데, 하음원에 강, 회의 쌀이 쌓여있어 몰래 가서 이 곳에 불을 지르면서 동도에서 나쁜 사람을 수백을 모집해 시장을 겁탈하고 궁궐에 불을 지르면 채주의 오원제를 토벌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 하자 그 의견에 따라 여러 곳에서 도적이 일어나게 했다.

또한 자객을 보내 무원형을 암살했고 동도의 유후원을 설치해 채주의 사람들이 섞여서 왕래했지만 관리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했고 회서의 군사들이 낙양을 침범하면서 방어하는 당나라의 군사들이 이궐에 주둔했는데, 이사도는 유후원에 몰래 군사를 숨겨 궁궐에 불을 지르고 군사들을 풀어 죽이면서 약탈하자고 모의했다.

그러나 그의 병사가 이를 여원응에게 알리면서 계획은 실패했고 이후 무원형을 암살한 것이 이사도가 한 것이 드러났으며, 이사도는 서주를 공격해 소, 패 등을 패배시켰지만 왕지흥의 공격을 받아 격파되었다. 816년 5월에 회서의 군사가 능운책에서 격파된 것을 알고 당나라에 거짓으로 충성을 보내게 해달라고 청해 검교사공이 덧붙여졌다.

회서가 평정된 것에 걱정하고 두려워해 818년에 사자를 파견해 아들을 보내면서 기주, 밀주, 해주 등을 당나라에 바치기롷 했는데, 이사도는 아둔하고 나약해 군부의 큰일은 처, 노복, 비녀 등과 모의했고 처인 위씨가 아들을 보내는 것과 당나라에 땅을 바치는 것을 반대해 이를 그만뒀다. 818년부터 당나라의 군사의 공격을 받았고 이사도는 성품이 나약하고 겁이 많아 패배하거나 성읍이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번번이 걱정하다가 병이 되자 좌우의 사람들은 모두 은폐하면서 사실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요한 지역을 잃어서 급한 상황을 알려도 좌우 사람들이 연락하지 못하게 해서 이사도는 알지 못했으며, 백성들을 징발해 운주의 성과 해자를 수리하거나 수비 시설을 고쳤고 노역이 부인들에게도 미치자 백성들이 두려워하면서 원망했다. 유오에게 군사를 주어 당나라의 군사를 막게 했으며, 유오는 병사들에게 관대하고 은혜를 베풀어 편하게 해줬지만 자주 패했다.

어떤 사람이 유오는 군법을 수행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인심만을 얻어 다른 뜻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는데, 유오는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고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면서 이사도는 붙잡혔다가 참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