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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last modified: 2015-04-04 19:15:17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1.1. 삼성을 만들고 키우다
1.2. 사업철학
1.3. 수집덕후
1.4. 생가
1.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1.6. 루머
1.7. 가계도
2. 이투스,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

1. 개요


21세기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을 만든 창업주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출신으로 호는 호암(湖巖. '암미술관'의 그 호암이다.)이며, 본관은 경주다. 1910년 2월 12일 ~ 1987년 11월 19일.

생전에 많이 불렸던 별명은 "병철"이었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세대는 옛날 얘기할 때 "돈병철 그 양반은 말이지..."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의 재벌인 삼성그룹, 신세계, CJ그룹, , 중앙일보, 이 다 이병철에게서 나왔고 이 기업은 범 삼성가라 불리며 재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1. 삼성을 만들고 키우다

지방 양반가 출신으로 글공부에는 소질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신학문과 장사에서 수완을 보여 부친에게 지원받은 쌀 300석분의 토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으켜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 창업을 시작으로 운수업에도 진출하였으며, 1938년 대구에 삼성상회를 설립, 1939년에는 조선양조를 인수하였다. 6·25중이던 1951년 부산삼성물산을 설립한 뒤, 1953년 제일제당(현 CJ그룹),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그룹 규모의 사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부친이 독립협회 활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친분이 있었고, 이를 이용해 이승만에게 접촉해 정권과의 연고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여러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이미 5.16 군사정변 당시에는 무시못할 재벌로 성장한다. 그래서 한때 군사정권은 이병철 창업주 등을 부패 혐의로 몰았으나 경제 운용과 성장을 위해 이들과 타협하였고, 이 회장도 군사정권과 협력 관계를 갖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 치하에서 성장한 정주영 회장 등과 달리 이미 기틀이 잡혀 있었고, 출신도 지방 양반가 출신으로 상류층의 품행과 교양을 갖추고 귀족적 사고가 강하던 이 회장은 초기 반 기득권적 성향에 교양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사적으로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화폐개혁 당시 박정희를 은근히 디스 훈수한 일화도 있고.

일찍이 한일은행·상업은행·조흥은행 등과 안국화재·동방생명 등을 인수하였고, 1961년 초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 대한암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고려병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1965년에는 중앙일보사를 설립하였다. 삼성장학회 설립, 대구대학[2]성균관대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삼성전자·성전기 등을 통해 첨단전자통신 및 반도체기술 발전에 영향을 끼쳤으며, 삼성종합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등 삼성그룹을 성장시켰다.

하지만 사카린 밀수 사건 등의 흑역사가 있다. 이때 박정희 정권과 사적 감정이 악화되었다고 하고, 이후 한때 정계 진출을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경영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으나 1968년 삼성그룹에 다시 복귀했다. 이후 장남 이맹희와 차남 이창희를 밀어내고 막내아들(삼남) 이건희삼성그룹의 후계 회장으로 지명하였다. 다만 차남과 달리 장남 이맹희 회장에 대해서는 사석에서 안타까움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군부독재정권과 이 회장의 악연은 묘하게 신군부에서도 지속되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동양방송이 강제적으로 통폐합되었을 때 당시 방송계에선 이 회장이 분해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젊은 시절 이미 일제의 패망을 경제적 흐름 등을 통해 짐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망할 뻔한 상황에서 충직한 심복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시대 통찰이나 사람 관리 등에서 재능을 일찌감치 보였던 모양이다. 후에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하마터면 사형당할 뻔했던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을 포섭해서 중앙일보를 창간해 일찌감치 자사에 우호적인 언론을 만든 것도 그렇고... 다만 아랫사람에게 상당히 고압적이고, 선을 넘으면 가차없는 냉혹한 면이 있던 이병철도 뛰어난 수재로 이름났던 홍진기는 어려워했다고 한다. 자신이 고용한 월급사장이었지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나중에 사돈 관계까지 맺게 된다. 홍진기의 딸이 이건희의 아내인 홍라희다. 이후 이건희 회장 후계 체제 과정에서 장인인 홍진기가 이병철 회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말년엔 반도체 산업의 전망을 예견하여, 당시에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던 반도체 산업에 삼성전자가 진출하도록 했다.[3][4] 이후 이 반도체 산업은 삼성이 TV와 휴대폰,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준다.

1987년 폐암으로 타계했다. 여담으로 폐암은 유전될 수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건희 회장도 폐질환 때문에 말년이 영 편치않다.

1.2. 사업철학

사람 욕심이 많아서 '삼성의 최고 자산은 인재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재 양성에 많은 투자를 했다.월급 빵빵하게 줄테니 노조는 안만드는 걸로 또 사업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이러한 경영이념을 집대성한 호암자전에서는 '무한탐구'와 '무한정진'의 태도를 기업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라고 언급했다.

또 호암자전에서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끝에 종합 매스컴의 창설을 결심했다"며 동양방송과 중앙일보의 설립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1.3. 수집덕후

사적으로 고미술품에 조예가 깊고 욕심도 많았다고 한다.[5][6] 호암미술관에 있거나 현재 한남동 리움미술관으로 옮겨진 어마어마한 국보급 문화재들은 이병철 회장이 주도적으로 모은 것들. 다만 이들 중에는 도굴품으로 여겨지는 것을 사들인 것도 상당수라는 소문이 고고학계에 퍼져있다. 심지어 신라 불교 사리유물이나 가야금관 유물 도굴과 연결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금림왕 항목 참조.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각이 장물 취득 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고. 미술계에서는 한국 고미술품들이 해외로 흘러가느니 차라리 삼성가에서 장물로 사들인 것이 낫지 않겠냐는 소리도 있다. 그만큼 삼성가에서 열을 올리며 모은 미술품이 엄청나다는 소리. 다만 도굴범을 후원하고 사주했다는 얘기도 있어서(...) 군사정권 시절 고고학계가 자금난에 허덕일 때 일부 도굴꾼들이 고급 장비를 갖췄었기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잭을 동원한 도굴꾼과 나무 전신주를 사용하던 교수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재벌로는 이례적으로 황룡사지 발굴 현장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발굴단에게 단지 터의 크기만을 물어보고는 당시 돈 3만원을 선물하고 떠났다고 한다.

1.4. 생가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이 회장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달성공원 건너편에 있는 옛 삼성상회 터에는 삼성상회 실물을 1:250으로 축소한 청동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CJ의 역사관에는 홀로그램으로 이 회장의 흉상을 구현해 놓았다. 삼성그룹에서 옛 제일모직 공장 부지에 기부채납한 대구오페라하우스에는 이 회장의 동상을 설치해 놓았으며, 근처 도로의 명칭도 호암로로 변경하였다.[7] 이 회장이 건설자금을 지원했다는 혜화동 경주이씨중앙화수회회관 앞에도 이 회장 흉상이 있다. 또한 성균관대학교에는 이 회장의 호를 딴 호암관이 있다.

1.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전광렬이 청년 역, 정욱이 장년 역을 연기했다. 정욱의 경우, 제3공화국에서도 이병철 역을 맡은 경험이 있어 작중 라이벌격인 정주영 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렬함이 부족한 이병철 회장의 캐릭터 구성에도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듯하다. 다만 정욱은 아들의 다단계 사기행위에 이 회장 연기경험을 이용, 이 회장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등 협조하는 바람에 구속되었던 흑역사가 있다.(...)

1.6. 루머

  • 여자관계는 모 왕회장에 비하면 점잖았다고는 하지만 일본인 소실은 그 존재가 분명하다. 적자들도 도쿄 유학시절 소실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근데 어째 집안 자체가 콩가루 집안이긴 하다.(...) 이미 당대부터 장남, 차남과 사이가 틀어졌고, 그 차남의 차남도 훗날 자살했다. LG가로 시집간 차녀와도 양사간 사업문제로 소원해졌고, 일본인 소실이 있었으니 부인과도 먼가 서먹했을테고..삼성을 물려받은 삼남 집안도 아들, 딸이 차례로 이혼하고 막내딸은 자살했다. 또 장남과 삼남은 자신의 유산을 놓고 세간에 집안 치부 다 드러내며 법정 공방까지 벌였다. 역시 돈만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건 아닌가 보다. 후술된 가계도 항목 참조.

  • 젊은 날에는 맑시즘에 관심이 있었다는 루머도 있는데, 사실이 아닌지 어째 경영 이후에는 오히려 무노조로 일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원래 전향한 넘들이 더하다 그리고 이러한 삼성의 노동 관리는 신세계 등 일족 계열사에까지 전수(?)되었다고 한다.좋은건가

  • 가끔 인터넷에 이병철이 이완용 후손이라는 그림이 떠돌기도 하는데(디시인사이드의 정보전사 글이라든지), 이완용 후손 중에 이병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 이병철과 기업가 이병철은 별개의 인물이다. 애초에 이완용은 우봉 이씨, 이병철은 경주 이씨로 본관부터 아예 다르다. 괜히 이런 루머 퍼나르다가 인실X 당하지 말자.

1.7. 가계도

가계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삼성을 비롯 한국의 내로라 하는 재벌들이 그의 후손이다. 이들은 경제적 영향력에 있어 현대 정주영 일가와 함께 한국 굴지의 재벌가를 이루고 있다.

  • 이병철, 母 박두을[8]
    • 1남 이맹희 前 제일비료 회장, 妻 손복남
      • 1녀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 1남 이재현 CJ그룹 회장[9], 妻 김희재[10]
        • 1녀 이경후, 夫 정종환
        • 1남 이선호
      • 2남 이재환 CJ 상무, 妻 민재원 前 국회의원 민기식 딸
        • 1남 이호준
        • 1녀 이소혜
      • 이외에 영화배우 박모 씨에서 얻은 이재휘
    • 2남 이창희 前 새한미디어 회장, 妻 나카네 히로미(귀화 後 이영자)[11] 새한그룹 회장
      • 1남 이재관 前 새한미디어 부회장, 妻 김희정 동방그룹 회장의 1녀
      • 2남 이재찬 前 새한미디어 사장 (2010년 자살), 妻 최선희 동아그룹 회장의 딸
      • 3남 이재원 前 새한정보시스템 대표, 妻 김지연 (주)서영주정 회장의 2녀
      • 1녀 이혜진, 夫 조명희 前 라이프그룹 회장의 1남
    • 3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妻 홍라희[12]
      • 1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前妻 임세령[13]
        • 1남 이지호
        • 1녀 이원주
      • 1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前夫 임우재[14]
      • 2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夫 김재열[15]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 3녀 이윤형 (2005년 자살)[16]
    • 1녀 이인희, 夫 조운해[17] 前 강북삼성병원 명예이사장
      • 1남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 妻 이정남
        • 1녀 조연주
        • 2녀 조희주
        • 1남 조현준
      • 2남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妻 이미성
        • 1녀 조은정
        • 2녀 조성진
        • 1남 조현승
      •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妻 안영주
        • 1녀 조나영 리움미술관 큐레이터, 夫 한경록 김앤장소속 한상호 변호사의 장남
        • 1남 조성민
      • 1녀 조옥형, 夫 권대규 HS창업투자 부사장
        • 1녀 권애영
        • 1녀 권이주
      • 2녀 조자형, 夫 빈센트 추[18]
    • 2녀 이숙희 LG家로 출가[19], 夫 구자학 아워홈 회장
      • 1남 구본성, 妻 심윤보
      • 1녀 구미현, 夫 이영렬 한양대의대 교수
      • 2녀 구명진, 夫 조정호[20]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 3녀 구지은 아워홈 전무
    • 3녀 이순희, 夫 김규 서강대 영상대학원장
      • 1남 김상용
    • 4녀 이덕희, 夫 이종기 前 삼성화재 회장
      • 1녀 이유정
    • 5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夫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
      • 1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前妻 고현정(배우, 2003년 이혼), 妻 한지희[21]
        • 1남 정해찬
        • 1녀 정해인
      • 1녀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夫 문성욱 신세계I&C 부사장
        • 1녀 문서윤
        • 2녀 문서진
    • 이외에 일본인 처에서 얻은 이태휘[22], 이혜자가 있다.

2. 이투스,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

경제와 윤리과목을 가르친다. 경제 수강생 보유 1위였던 최진기가 사회문화에 주력하는 틈을 타(...) 경제 수강생 1위의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상당수의 경제학 서적을 출판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 과목을 대표하는 강사가 되었다. 다만, 공무원 사회의 경제와 사회문화 일부를 가르치며, 법과 정치 분야는 머리 큰 자기 동생이라고 하는 이법진이라는 다른 강사가 맡는다. 물론 이 분도 설명을 잘 하시는 편이다.

강사들 간의 인간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다. 최근 촬영한 한 홍보 동영상에서 수많은 강사들이 출연해 주었는데, 저마다 각 분야에서 스타강사인 사람들이다. 박문각 남부고시학원에서 이동기 (영어), 신용한 (행정학), 정채영 (국어), 그 밖에 수능강사들로 최진기, 삽자루, 설민석 등등... 놀라운 사실은 공무원계에 뛰어든 지 3년 정도 밖에 않았음에도 많은 강사들이 시간을 내 주었다는 것이다. 공무원계는 수능과 달리, 주 단위 혹은 월 단위, 2달 단위로 매우 타이트한 스케줄이 짜여 있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어 홍보를 해 주었다는 것은 그 만큼 신뢰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특히 이동기, 신용한과는 매우 친한 사이여서 수업 때 자주 사례로 이용하기도 한다. 두 분 모두 각 과목의 대표 스타강사이다.

다만, 다소 악필이라 판서를 보기엔 어려움이 많다. 또한 방대한 지식을 보유하셔서 간혹 다른 이야기로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도 워낙 강의력이 뛰어나 약점을 모두 커버하는 듯.

그런데 예전에는 부모님께 그 강의력을 항상 검증받았다고 한다. 검증 방법은 부모님 앞에서 직접 강의하는 것. 그래서 부모님이 사회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뛰어나시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의 동네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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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자세히 보면 아들 이건희보단 손자 이재용과 훨씬 더 닮았다. 격세유전
  • [2] 지금의 대구대학교와 다른 대학이며, 영남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이다. (현재의 영남대학교는 이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통합한 학교다.) 유명한 경주 최씨 일가와 협력하였다. 여기서도 박정희와는 악연... 더불어 최씨 일가 지못미...
  • [3] 사실,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 시절, 반도체 산업 진출을 위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가 경영 위기를 맞자 이병철이 삼성전자로 하여금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회생시켰다. 그리고 이건희는 자기 아들 이재용이 IT버블로 인해 커리어에 상처를 입게 되자 자신의 부친처럼 이재용의 회사들을 계열사들로 하여금 인수하게 했다.
  • [4] 사실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병철 회장이 일본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산업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그였기에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빨리 캐치할 수 있었던 것. 이건 와세다 대학 졸업하고 수시로 일본 들락거린 이건희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아들은 중국에 관심이 많다.
  • [5] '이건희 스토리'라는 책을 보면 이병철 회장은 양복도 일반 브랜드 양복이 아니라 어느 개인 양복점에서 맞춤식으로 지은 양복만을 입었고, 만년필은 항상 워터맨을 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 나오는 모델을 찾아서 썼을 정도로 일류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었다. 그러한 이념은 현재의 삼성그룹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6] 성문영어 시리즈의 저자 송성문도 대표적인 수집덕후였다고 한다. 자신의 성문영어책 인세를 모아 고미술품을 수집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을 정도라고 한다.
  • [7] 323(-1)번이 다니는 남침산네거리와 홈플러스 대구점 사이의 도로.
  • [8]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라고 한다.
  • [9] 고대 법대 졸업후 씨티은행 공채에 지원해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으나 할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남의 집 잘되게 놔둘 수는 없다며(...) 삼성의 주력계열사인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지시.
  • [10] 이화여대 미대 출신, 대학 재학시 미팅으로 이재현 회장을 만났다고 알려져있다.
  • [11] 일본 아이치현 출신, 구 화족 명가 영애이나 이병철 회장은 내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결혼이 와전되어 이건희 회장이 일본인과 결혼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 [12] 故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자 홍라희 여사의 동생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홍석조 BGF리테일 대표이사이다. 홍 여사의 가문은 현대家와 혼맥이 연결되어 있다.
  • [13] 임씨의 부친은 임창욱 대상그룹(조미료 '미원'으로 알려져 있다.) 명예회장, 모친은 故 박인천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딸인 박현주 씨이며 맏딸이다.
  • [14] 삼성그룹 평사원 출신으로 이부진 사장이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밀어붙여 신데렐라 스토리로 세간에 미화되기도 했으나, 결국 2014년 이혼소송에 돌입하며 빛이 바라고 말았다.
  • [15] 동아일보 故 김병관 전 회장의 차남
  • [16] 집안의 결혼반대와 외로운 유학생활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동기는 불명.
  • [17] 경북대 의대 출신
  • [18] 타이완계 미국인
  • [19] 혼인 이후 삼성이 당시 금성이 장악하고 있던 가전 제조로 진출하면서 양 가문 관계가 매우 험악해졌으며 그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돈 앞에선 사돈관계도...
  • [20] 한진그룹 故 조중훈 전 회장의 막내아들
  • [21] 플루티스트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 한상범 씨는 전 기업인으로, 대한항공 출신이다.
  • [22] 한때 이병철 회장이 후계자로 생각했었다는 소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