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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호

last modified: 2019-06-18 18:27:45 Contributors



아아 그래... 이게 꽃이지... 엄백호

KIA 타이거즈 No.25
이범호(李杋浩)
생년월일 1981년 11월 25일
체격 182cm, 93kg
출신지 대구광역시
출신학교 수창초-경운중-대구고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한화 이글스 2차 1라운드(전체 8순위)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0~200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0)
KIA 타이거즈 (2011~2019)
등장곡 리쌍 'Yes OK'
응원가 Gipsy Kings 'Volare' [1]
유정석 '질풍가도' [2]

한화 이글스 등번호 56번
이용섭(1998~1999) 이범호(2000~2001) 레닌 피코타(2002~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심재윤(2000) 이범호(2002) 송창식(2004~2008)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조현수(2002) 이범호(2003) 송광민(2006~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7번
백재호(2001~2003) 이범호(2004~2009) 송광민(201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8번
이범호(2010)
KIA 타이거즈 등번호 25번
고우석(2010) 이범호(2011~ ) 현역

2005, 2006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한수(삼성 라이온즈) 이범호(한화 이글스) 김동주(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김상훈(2013) 이범호(2014~2016) 김주찬(2017~)

이범호의 응원가인 '질풍가도'

Contents

1.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프로 선수 시절
3.1. 한화 이글스 시절
3.1.1. 프로 입단 ~ 2회 WBC이전
3.1.2. WBC와 2009시즌
3.2. FA와 소프트뱅크 입단
3.3. KIA 타이거즈 시절
3.3.1. 한국 복귀, 그리고 KIA 타이거즈 입단
3.3.2. 2011 시즌
3.3.3. 2012 시즌
3.3.4. 2013 시즌
3.3.5. 2014 시즌
3.3.6. 2015 시즌
3.3.7. 은퇴
4. 기타
5.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국의 야구선수. 3루수.
만루의 남자[3]

한화 시절 별명은 '꽃보다 아름다운 범호(줄여서 꽃범호)', '한화의 매력남', '월드추남'[4] 등이 있다. 개그 콘서트오지헌을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붙은 별명들. 본인도 컴플렉스를 느끼는 듯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꽃범호'라는 별명은 이범호를 놀리는 것이 아닌 팬의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화의 매력남이라는 별명은 이범호 전용 응원문구에서 따 온 별명이다.(한화의 매력남은 누구? 이범호!) 웬만한 야빠들 사이에선 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듣는다.

등번호는 56번 - 31번 - 7번(이상 한화) - 8번(소프트뱅크 호크스) - 25번(KIA) 1회 WBC 때는 55번을, 2차 WBC에서는 6번[5]을 달았다. 2011년에 KIA 타이거즈와 계약하면서 KBO에 복귀하여 수많은 한화 팬이 이범호 안티로 돌변했다.[6]

한화 이글스에 있을 당시에는 <발로 차>를 개사해서 이범호! 이범호! 한화의 이범호! 로 불렀다. 또, 드라마 '꽃보다남자'가 방영할 당시에는 이범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꽃보다 남자의' 주제곡을 틀기도 했다.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2011년부터는 전용 응원가로 Volare와 질풍가도를 개사해서 총 2개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여태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해외 진출을 했을 시 진출 이전 소속팀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범호가 그런 경우를 깬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까지도 원소속 팀이 아닌 타 팀으로 돌아온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2. 플레이 스타일

잡아당기는 타격을 장기로 구사하며 공격적인 스윙을 하기 때문에 타율은 약간 낮고 특히 병살타가 많은 편이지만[7] 평균 수치를 월등히 상회하는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04년도 이후에 꾸준히 20홈런 이상을 찍어주는 활약을 보이고 있다. 다만 08시즌에 19홈런을 기록하면서 5년 연속 20홈런에는 실패하였다.

특히 플레이오프 등 주요 경기에서 한방 쳐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많은 투수들이 두려워하는 선수다. 통산 준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7개).

수비는 본래 평범했지만 유승안 감독 시절 유격수로 구르면서 경험을 쌓아[8][9] 일취월장, 어느 팀에서든 주전하기에는 손색이 없다.[10]

연속출장을 이어가면서 최태원의 최다연속출장기록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2008년 6월 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선발 명단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교체출장할 틈도 없이 강우콜드 선언이 되어버려 어이없게도 615경기에서 연속출장을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이 기록은 최태원 - 김형석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3. 프로 선수 시절

3.1.1. 프로 입단 ~ 2회 WBC이전

대구고 시절 이범호는 소속 학교가 전국대회에서 부각되지 못해서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당시 한화 스카우트였던 정영기의 안목으로 발굴된 선수. 정영기가 와서 2차 1지명할거라고 했을 당시에 본인은 안 믿고 있었다가 진짜로 지명받자 놀랐다고 한다. 한편 한화이글스 구단 관계자들은 '대구이씨'가 왔다. 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대를 표시했는데, 이는 이글스에서 맹활약 했던 이정훈, 이강돈, 이상목 선수가 대구출신이었기 때문.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없었고, 연고지역선수도 아니었던 이범호가 이런 이유로 지명되었다는 카더라 썰이 존재한다..

입단 이후 2루수, 3루수로 출전하면서 2001년을 기점으로 재능을 꽃피웠다. 유승안 감독은 공격형 유격수로 이범호를 육성하려 했지만 한시즌에 그쳤고, 새로 부임한 김인식감독이 이범호를 3루수 포지션에 고정시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타율은 3할을 딱 한번 찍어본 것이 전부였지만, 20홈런은 꾸준히 쳐주면서 한화의 주전선수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07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때 오승환에게서 홈런을 때렸었는데 그 때 ESPN에서 화면에 꽃장식을 하여 꽃범호의 이미지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수뇌부가 야갤러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알리기도 했다.(당시 장면은, 배경음도 좀 다른 걸 썼다!)

이때도 좋은 선수였지만, 2회 WBC를 기점으로 한단계 더 발돋움하게 된다.

3.1.2. WBC와 2009시즌

WBC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김동주최정에게 밀려 대표에서 제외되었지만, 김동주일본 진출 시도와 그 실패 후유증 등으로 대표팀을 고사하면서 다시 내야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타율이 높은 최정과 수비가 안정적인 이범호가 3루를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결국은 박진만의 엔트리 하차로 둘 다 올라갔으며, 2회 대회에서는 이대호의 수비 불안 및 빈타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거기다 이범호가 소위 말하는 단기전 크레이지 모드에 들어섰는지 홈런 3방에 고타율(4할!)을 자랑하는 불방망이까지 휘두르면서 명실상부한 공격의 핵이 되었다.

홈런 말고도 2라운드 일본과의 승자전에서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고르는 모습과 결승 일본전에서 9회말 2사 1,2루에서 다르빗슈 유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동점타를 쳐내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줬다. 그러나 이후 고영민의 삽질, 임창용의 2실점, 이용규의 플라이아웃, 최정정근우의 삽질 등으로 인해 그의 드라마틱했던 동점타는 사실상 흑역사가 되어버린게 흠이라면 흠이다.

정규 시즌에서는 부상과 WBC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한화의 추락의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어쨋든 1년 스탯은 매년 찍어주던 성적을 찍는데 성공했다.

4월 30일, '한국의 쿠어스 필드' 청주구장에서 펼쳐진 LG와의 경기에서 2회 만루홈런, 6회 1점홈런, 7회 3점홈런을 터뜨리며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었으나, 8회 2사 1루 상황에서 오선진 대타로 교체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다리가 좀 불편하다는 이유였지만,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김인식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듯하다. 이범호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다.

3.2. FA와 소프트뱅크 입단

2009년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렸다.

본인은 적정한 수준만 해주면 한화에 남겠다고 했지만 결국 우선 협상기간인 12일을 넘기고, 일주일 뒤인 11월 19일 일본 프로 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에 최대 5억 엔에 달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의 언론 플레이에 실망한 한화팬들은 새로운 별명 월추(월드추남)라고 부른다.[11]

입단 이후 경미한 어깨 부상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스프링캠프에서 아키야마 코지 소프트뱅크 감독에게 수비 능력을 계속해서 지적받았고 결국 개막전부터 원래 주전 3루수였던 마쓰다에 밀려 대타 혹은 지명타자 땜빵으로 뛰었다.[12] 그 와중에 마쓰다의 부상으로 3루 수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는 이범호의 몸 상태도 몸 상태지만 소프트뱅크 고위층에서 아키야마 감독에게 영입 의사를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아키야마 감독이 원치 않은 선수였기에 처음부터 잡음이 많았으며 주전자리 확보도 힘들었다.

그리고 팀 내에서 장타력이 부족함을 느꼈는지 고향 베네수엘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전격적으로 영입했는데, 이는 이범호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다행히도 페타지니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느라 2군에서 유예기간을 갖는 동안까지는 1군에 붙어 있었으나, 페타지니의 1군 승격과 함께 곧바로 2군으로 추락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페타지니는 내일 모레 마흔이라는 나이 + 6년간의 일본리그 공백을 상콤하게 무시하며 맹활약했다. 허나 소프트뱅크의 중심타자인 세 오티즈가 무릎부상을 당하며 외국인 슬롯이 하나 비게 되자 8월 5일 오랜만에 1군에 등록되어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아키야마 감독은 원래 3루수인 마쓰다를 오티즈의 포지션인 좌익수로 돌리고 이범호를 3루수로 잠시 기용했었다.

다만 이범호가 이렇듯 팀에서 홀대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최악의 수비력 때문이다. 타격만 따지면 2군에서 타율 .277, 출루율 395, 장타율 .535, OPS.929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수비에 대해서는 기본기가 안 되어 있다는 혹평을 받았다. 참고로 2군에서 필딩률이 .907다.[13]

때문에 이범호가 1군에서 2경기 연속 홈런 등으로 활약하자 주전 3루수인 마츠다를 좌익수로 컨버젼시키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해주었을 때도 불안한 수비와(1군 필딩률 .930) 침묵한 타격으로 팀에게 제대로 찍히면서 사실상 일본생활이 끝이 났다. 사실 수비력만 준수했어도 기회를 더 부여받았겠지만, 9할 초반대의 수비력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오로지 '돈'만 본다면 일본 진출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2년 동안 벤치만 뎁혀도 고연봉이 보장되며, 국내 복귀시 또 상당한 연봉거품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0시즌 성적은 48시합 출장 / 타율 .226 / 28안타(4홈런) / 1도루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우선 보류명단에는 포함 되었었으나 구단측에서 보유 의지가 약하다는 기사가 연이어 터지는 등 시즌 종료 후의 거취가 불안정했다. 소프트뱅크 스프링캠프에는 참가하였으나 이후에도 국내 복귀로 교섭이 계속 되었던 듯하다.

결국 소프트뱅크 측의 양해를 얻어 원 소속 팀이였던 한화와 수차례 교섭을 하였으나, 서로 밀고 당기는 병림픽신경전을 벌여온 끝에 교섭이 결렬되었다. 이 과정에 설레발 기자의 찌라시와, 팬, 구단 간의 신경전으로 제법 큰 병림픽으로 발전하는 등, 영 좋지 못한 전개가 근 2개월간 계속되었다.

3.3.1. 한국 복귀, 그리고 KIA 타이거즈 입단

2011년 1월 27일,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 입단으로 매듭지어졌다. 소프트뱅크 측에서는 내년분 연봉인 1억 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종료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복귀하였으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당장 KIA 타이거즈의 포지션 이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한화 이글스 팬들은 KIA와 계약한 이범호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능한 한화 이글스 프런트를 까는 데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살펴보면 이면계약으로 다년계약을 요구한 이범호와 KIA의 잘못이 맞다.[14] 한화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를 했을 뿐이니 뒷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격이었다.
KIA 입장에서도 타자가 워낙 급해서 편법을 써서라도 영입한 것일 뿐, 따지고 보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불법요구를 한 이범호의 잘못이 가장 크다지만, 신분 조회 없이[15] 이범호와 비밀 협상을 벌인 한화도 규약을 따지고 들 처지가 아니다. 협상이 불발된 후 사실 9차례나 만났지만 이범호 측의 다년계약 요구를 받아줄 수 없었다고 언론에 대놓고 '우리 사전접촉 했어요' 터뜨린 바람에 결국 KIA측이 한화에 양해전화 한 통하고 명분을 얻게 된 것.[16]

표면상으로는 계약 기간 1년에 계약금 8억 원, 연봉 4억원 등 총 12억 원에 계약하기로 합의하고, 이범호가 신변을 정리하고 일본에서 귀국하는 즉시, 최종 계약을 하기로 했으며 1월 29일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에 합류, 시즌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그런데 윗부분에 언급했듯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전두환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한 이범호가 전두환이라면 치를 떨 광주 시민들이 응원하는 팀으로 오게 되었으니 상황이 묘하게 되었다.

이범호 본인은 KIA 입단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 KIA가 손을 내밀었다."라고 말한 대목을 봐서는 한화와의 협상이 실제로도 매우 험난했던 것으로 보인다.[17]

한편 한화의 보상선수 지명권에 대해 신인이 자동보호 되는지의 여부로 인해 시끄러웠지만 KBO가 신인선수는 1년 이내에 트레이드를 제외하고는 이적을 금지한다는 야구 규약 109조를 인용해 유권해석을 하며 자동보호가 되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화에서 장고 끝에 지명한 보상선수는 안영명. 이로써 안영명은 트레이드 8개월 만에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였다.

3.3.2. 2011 시즌

이범호/2011년 항목으로.

3.3.3. 2012 시즌

3월 17일 SK 와이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손목 통증을 호소하여 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후 좋아지나 싶더니 왼쪽 허벅지 통증이 일어나며 전력 이탈. 별다른 3루수 대체 자원도 없었던 데다 김상현마저 손바닥 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 때문에 4월 기아의 구멍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김기아 타선의 귀환
팬들은 이러다 먹튀가 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였다. 심지어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며 두더지라고 까였다. 뜬금없이 태국 마사지 기사까지 뜨면서 팬들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18]

5월 초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몸을 가다듬으며 복귀를 준비하였다. 그간 지명타자로만 출장하다가 5월 13일에는 시즌 첫 3루수 선발 출장을 하였다.

5월 17일 오랜만에 1군 선발 출장을 하였다. 5타석 4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을 기록, 아직은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5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1홈런 1득점을 기록, 이어서 5월 20일에는 3타수 3안타 3타점 1홈런 1득점 1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으나, 팀이 연패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그나마 이범호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팀에게는 위안이 될 듯.

복귀 후 클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며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다만 햄스트링 부상이 워낙 재발성이 높고 위험한 부위이다보니 무리한 베이스러닝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부상 여파로 인해 타격폼이 불안해져 시간이 갈수록 방망이도 시들해지는 상태.

결국 햄스트링 부상을 완치하지 못한 탓인지 7월 9일 다시 2군행.

담당의사의 말에 따르면 부상부위는 완쾌되어 운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다시 다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제대로 뛸 수가 없다고. 햄스트링 부위 자체가 한 번 부상을 입으면 회복된 후로도 심심찮게 재발하는 부위긴 하지만, 하필 팀이 타선의 침체로 4강의 문턱에서 꼴깍꼴깍하던 와중이라 순전히 본인의 '느낌' 때문에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팬들로부터 먹튀라며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결국 이 부상 때문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은커녕 2군에서도 더 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고, 마무리 캠프 합류도 늦어지게 되었다.# 11월 21일 늦게나마 캠프에 합류. #

태업하며 놀러다니기만 한다는 일부 팬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즌 내내 재활을 게을리하지는 않은 듯하다. 12월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와 재활에 전념한다고. 한 달동안 처가살이하면서 재활 2013년에도 재활이 계속 이어지지 않기를

3.3.4. 2013 시즌

몸상태가 괜찮아졌는지 시범경기부터 출장하기 시작. 하지만 3월이 끝날 때까지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아 많은 팬들이 걱정하였다. 또한 햄스트링 부상을 의식해서인지 주루나 수비 플레이가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클래스 어디 안 간다고 4월부터 서서히 타격감이 올라오기 시작. 4월 21일 문학야구장 SK 와이번스전에서 팀이 4:0으로 앞서던 7회초 2사 1, 2루 상황에 2타점 2루타를, 9회초에는 마수걸이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더불어 6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는 팀의 승리를 위해 6년만에 희생번트를 댔다.

이후 한동안 부진하다가 5월 중반 들어서 서서히 타격감이 올라오고 있다.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13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 3득점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6월 6일 이후 잠시 부상 때문에 경기에서 빠지다가 6월 15일 SK 와이번스 전부터 다시 복귀하였으며, 6월 16일 SK 와이번스전에 선발 출장하여 7회 7:6으로 추격당하는 상황에서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팀 승리에 큰 활약을 하였다.

6월 이후 타격감이 많이 올라온 듯 하다. 6월 동안 홈런 6개를 쳐내고 타율도 3할을 달성했다. 1할대에 머물던 득점권타율도 올라오는중.
7월 6일 롯데전에서 투런홈런과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모처럼의 역전승에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기아의 하락세와 맞물려 병살타를 엄청나게 치며 팀내 병살왕(13개)이 되었다.

8월 16일 두산전에서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노쇠화에 대비하기 위해 1루 수비도 겸하려는 듯. 하지만 팬덤의 분위기가 워낙 흉흉한지라 무슨 뻘짓을 하느냐며 까는 목소리가 더 컸다.(...) 그러고 보니 김한수도 선동열이 온 후 1루로 갔다

9월 3일 삼성전에서 1회 릭 밴덴헐크를 상대로 시즌 20호 홈런을 치는 등 맹활약했으며 팀도 5:2로 오랜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9월 8일까지의 경기에서는 17타수 2안타 1득점으로 부진한 활약을 보인데다가 기회때마다 3개의 병살타를 치며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저 20호 홈런으로 국내 통산 199홈런이니 아홉수라 그렇다

9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쓰리런 홈런을 치며 드디어 국내 통산 200호 홈런 달성에 성공했으나, 팀은 6:9로 털리며 2년 연속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9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6회말 김사율을 상대로 오랜만에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팀은 7:1로 승리. 다음 날 26일에 롯데전에도 3회말 이상화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때려냈으나 팀은 1:2로 패배.

9월 28일 SK전에서 백인식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시즌 24호째.

최종 성적은 122경기 출전, 436타수 108안타 타율 0.248, 출루율 0.350, 장타율 0.452, 73타점, 56득점, 24홈런을 기록. 시즌 내내 득타율이 낮고 뜬금포나 날리고 만루상황에서 절대 기회 못 살리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하락세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각도 있지만 BABIP이 0.249밖에 안 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그냥 지독하게 운이 안 따라줬던 시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타자의 BABIP는 기량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며, 따라서 라인드라이브 비율과 같이 확인해야한다. 라인드라이브 비율이 커리어 평균인대 BABIP가 저 꼬라지면 운이 없는거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못 한거다. 근데 스탯티즈가 닫혀서 LD비율을 못 보잖아...

시즌 후 내년 시즌 팀의 새로운 주장을 맡게 되었다.KIA 새 주장 이범호 "내년엔 욕 대신 칭찬 받겠다"

3.3.5. 2014 시즌

3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1회초 2루 주자 김주찬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쳐 2014년 프로야구 1호 타점을 기록했다.

5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정현욱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쳤다! 부상에서 복귀한 후 첫 안타이자 첫 홈런 그리고 개인통산 8호 그랜드슬램

5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앞선 수비실책을 만회하는 투런홈런을 쳤다. 실책이 호투하던 임준섭의 실점으로 이어졌기에 더 가치있는 홈런이었다.

6월 26일에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김광현을 상대로 시즌 9호 홈런을 때리는 등 3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5경기 406타석 350타수 94안타 19홈런 82타점 47득점 2도루 52사사구 타율 0.269 출루율 0.360 장타율0.497 OPS 0.857으로 마무리하였다.

3.3.6. 2015 시즌

올해도 작년에 이어 팀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또한 올 시즌이 끝나면 2번째 FA.

기아 입단후 4년간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활약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좋은 활약을 보였다고 할 만한 시즌은 2011년뿐이며, 1년에 20홈런 내외를 까 줄 수 있는 장타력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햄스트링 부상 이후로 잔부상이 급격히 늘며 기아화유리몸화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저 장타력과 함께 안정적인 수비력과 꾸준함이 장점이었던 이범호라는 선수에게 있어 자신의 최대 무기를 잃은 셈이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이다.

2013년과 2014년에도 어찌어찌 20홈런 내외는 쳐 줬지만 햄스트링과 잔부상 이후의 여파, 노쇠화 등이 겹치면서 수비범위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고 잦아진 지명타자로서의 출장이나 2014년에는 100경기 남짓으로 출장경기수가 줄어들며 4년간 2013년 한해밖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하는 등 엉망으로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범호라는 이름값과 받는 연봉을 생각하면 썩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사실.

아직 장타력은 살아있으니만큼 햄스트링 부상에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만큼 부상의 여파를 걷어내고 이전까지의 꾸준한 수비력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팀에게도, FA를 맞은 선수 본인에게도 중요해지는 한 해.

3월 28일 개막전 5번타자 3루수로 선발출장해 7회 소사에게서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팀 첫 홈런이자 본인 올해 첫 홈런으로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3월 29일 개막전 6번타자 3루수로 선발출장해 3타수 무안타로 부진하였다.

4월 4일 KT 위즈전에 3루수 선발출장해 5타수 2안타 2홈런 6타점 2득점으로 이날은 이범호의 날이었다. 이날 친 만루홈런은 현역선수 통산만루홈런보유자 11개로 1위가 되었고 통산만루홈런 보유자 심정수(12개)에 이은 2위가 되었다.

3.3.7. 은퇴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간 뒤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자 결국 고심끝에 2019시즌 중인 6월 18일에 은퇴를 결심하였다. 타이거즈 구단에서는 18일 시점에서 1군 무대 1995경기 출장을 한 이범호의 2000경기 출장 기록을 돕겠다고 발표했다.

4. 기타

유독 다르빗슈 유에게 상당히 강했다. WBC 결승에서 연장까지 승부를 끌고 간 것도 이범호였고, 시즌 중에서는 멀티히트까지 때려댄 적 있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그에게 반한 조교가 등장한다? 야라나이카 하지 않겠는가#

인터뷰에서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전두환 대통령 덕분에 프로야구가 만들어졌잖아요. 야구선수들이 큰 은혜를 입은 거죠. 누군가 나서 돔구장을 짓는다면 선수들이나 팬들은 그분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라고 대답[19]을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랬는데 기아로 가버리는 바람에 그를 옹호하던 야갤러들은 모두 데꿀멍 상태에 빠졌다. 지켜보던 한화 이글스 팬들은 배신자라고 하며 욕하고. 그리고 야갤러들은 그를 이범홍어라고 하면서 깠다...

화장품 광고를 찍은게 아닌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폼 클렌징을 했을 뿐인데 키무라 타쿠야가 되어있었어. ㄷㄷㄷ 그런데 사실 이범호는 2008년에 강민호, 이용규와 함께 왁스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왁스를 바르고 나니 더 예뻐진 것 같네요. 그러니까, 화장품 광고를 찍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위의 광고에 나올 수 있던거다. 오오

그 외에도 이범호는 소속팀 모기업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2012년 기아자동차희생번트편에서 번트를 대는 선수로 나왔다. 목소리로 나오는 사람은 김상훈이 출연한 광고와 마찬가지로 베어스의 레전드 박철순.[20] 그런데 이범호가 실제로 번트를 잘 대지 않는 선수라는 건 에러.[21]

그리고 라이언 사도스키가 깨알같이 깠다.(...)

2013년 마구마구 kbo패치가 되었는데 파워 79의 스페를 받았다. 그보다 적게 홈런을 친 강정호나지완이 레어를 받았는데 문제는 이들보다도 파워가 낮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할4푼의 낮은 타율인 것 같다.4년전의 브룸바도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그쪽은 레어가 나왔다 그러나 기올유저들은 환영하는 입장.. 구름속인 김상현과 플레툰이 가능하므로..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한화 이글스 69 74 .162 12 7 0 1 3 11 1 11 .297 .267
2001 71 138 .196 27 7 1 3 16 22 2 13 .326 .263
2002 111 296 .260 77 20 2 11 35 41 5 27 .453 .320
2003 107 323 .238 77 19 1 11 38 46 2 52 .406 .343
2004 133 481 .308 148 35
(1위)
3 23 74 80 6 51 .536
(4위)
.371
2005 126 444 .273 121 27
(3위)
1 26
(3위)
68 69 6 62 .514
(4위)
.357
2006 126 421 .257 108 25 1 20
(4위)
73 53 0 72 .463 .363
2007 126 418 .246 103 14 0 21 63 57 2 77 .431 .361
2008 125 434 .276 120 21 3 19
(5위)
77 80 12 70 .470 .374
2009 126 436 .284 124 21 0 25 79 64 3 60 .505 .369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48 124 .226 28 4 0 4 8 11 1 12 .355 .29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1 KIA 타이거즈 101 318 .302 96 21 0 17 77 63 2 82 .528 .440
2012 42 140 .293 41 7 0 2 19 17 1 28 .386 .404
2013 122 436 .248 108 17 0 24
(4위)
73 56 0 71 .452 .350
2014 105 350 .269 94 23 0 19 82 47 2 52 .497 .360
한국 통산(13시즌) 1490 4709 .267 1256 264 12 222 777 702 44 728 .469 .362
일본 통산(1시즌) 48 124 .226 28 4 0 4 8 11 1 12 .355 .294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5년 골든글러브 3루부분 수상
2006년 골든글러브 3루부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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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범호! 오오~ 이범호! 오오오오~ 파워히터 이범호~x4 오재일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 그쪽은 훨씬 우울하다
  • [2] 기아의! 이범호~ 한화있던파워히터 이범호!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잘생겼다 이범호! 기아의! 이범호~ 파워히터 이범호! 꽃보다 멋진 너! 이범호~ 가사에도 꽃이 들어간다
  • [3] 이것만으로도 이범호가 왜 만루의 남자인지 설명이 가능하다. 현역 선수 통산 만루홈런 1위이다. 무려 11개, 거기다 통산 만루홈런 1위인 심정수(12개)와도 1개차로 2위. 그리고 작년 만루 시 타율 667할이였던 건 덤
  • [4] 소프트뱅크 입단 당시 언론플레이에 실망한 한화팬이 지어준 별명.
  • [5]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 뛰고 있는 양동근과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한정으로 이 둘의 번호를 서로 바꿔 달았다. 이범호는 2009년 WBC 때 6번을, 양동근은 국가대표에서 7번을 달고 뛰었다.
  • [6] 그냥 안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적대시하는 사람도 생겼다. 지나친 언플 이후 한화와 안 좋게 결별한 탓에 팬들의 기대가 한순간에 배신감으로 바뀐 게 크다. 사실 언플은 FA시절부터 계속 해댔지만... 심지어 2011시즌 첫 대전한화전에서 한화팬들이 이범호 욕하는 소리가 중계에 다 들렸을정도.
  • [7] 2008시즌 18개로 병살 1위.
  • [8] 2004년에 유격수로 출전, 3할을 찍긴 했으나 실책이 무려 30개. 이는 1986년 유지훤의 31개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 [9] 이는 몇 안되는 명백한 유승안의 공이고, 김인식 시절에 2군이 황폐화되면서 오늘날의 암흑기를 잉태한 것도 사실인지라 한화 팬덤들은 암흑기의 시작을 놓고서 유승안 시절이 시작인지, 김인식 임기말년이 시작인지를 놓고서 종종 내전을 벌이곤 한다.
  • [10] 2009년 WBC나 일본 진출을 통해 수비가 성장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체 단기전으로 숨가쁘게 치뤄지는 국제전에서 무슨 실력 향상을 이뤄진다는 걸까? 이시기 이범호는 이미 완성된 선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 진출했다가 실패해서 1년만에 리턴했다. 그게 다다.
  • [11] 이때의 언론플레이에서 한화팬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한화에 남기 싫다는 티를 냈다. 인터뷰에서 '우승 할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거나 '롯데도 좋다'라거나 FA기한이 다 되어가고 김태균이 '돌아올 땐 한화로 돌아오겠다'는 인터뷰를 하자 급하게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면 한화에 남겠다'고 인터뷰를 한 뒤 다음날 에이전트를 교체한다거나... 그리고 결국 한화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한화 팬들과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 [12] 그 이전에 아키야마 감독은 3루수 영입 의사가 없었다. 기존 3루수 쓰다 노부히로가 기복이 심하고 출루율이 낮은 약점이 있지만, 주루 능력과 장타력을 겸비한 인재고 실재로 2010년 올해도 19홈런 71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팀의 간판타자인 고쿠보와 마쓰나가가 나이와 부상 문제로 기량이 떨어지자 대체 전력으로 쓸 거포 1루수를 필요로 했던 것을 이범호가 1루를 볼 줄 안다는 말에 영입했던 것이다.
  • [13]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비율이냐면, 데뷔 초창기 타격은 천재, 수비는 둔재 소리 듣던 밀워키 브루어스라이언 브론이 112경기 나와 26개의 에러를 기록하며 기록한 필딩률이 .895였다. 3루수로서 저 에러개수 자체가 경악할 만한 숫자인데 문제는 이범호는 1군도 아니고 2군에서 저 실력이라는 것. 보통 수비 평균적으로 못한다고 보는 선수들 필딩률이 .950이하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이다.
  • [14] 원칙적으로 다년계약이 불가능함에도 이면계약을 맺었다가 개털될 위기에 처한 SK와 박경완과 마찬가지 사례다.
  • [15] 그냥 넘어간 것뿐이지 당연히 템퍼링에 해당한다.
  • [16] 다만 이에 대해서도 일본 진출전 에 별의별 언론 플레이를 해가며 한화에 남지 않으려 했던 점도 있으므로 그냥 이범호가 한화 돌아오기 싫어서 밀부러 억지부렸다는 의견도 있다.
  • [17] 다만 이면계약이 사실일 경우에는 그저 이범호가 한화 구단을 물맥인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언론플레이의 신
  • [18]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태업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몸이 다 낫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장하여 부상 재발로 골골대느니 완벽히 몸상태를 갖추고 나오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래도 뜬금없는 태국 마사지는 좀 거시기하다
  • [19] 정치적 성격을 떠나 크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전두환은 의도치 않게 얼떨결에 야구리그를 만들게 된 것 뿐이다.
  • [20] 공교롭게도 김상훈과 이범호 둘 다 FA계약 선수이다.
  • [21]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이범호는 기아 입단 후 2013년 4월 21일에 처음으로 번트를 댔다. 근 6년만에 댄 번트라고. 하지만 2013년에 들어선 번트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