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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last modified: 2015-01-08 10:37:01 Contributors

Contents

1. 다른 곳,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2. 유대인이 역사적으로 비유대계 다른 민족을 부르던 말
3.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3.1. 이방인 번역 논쟁
4. 한국영화, 이방인(Taekwondo, 1998)


1. 다른 곳,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2. 유대인이 역사적으로 비유대계 다른 민족을 부르던 말

멀쩡한 남의 신도 악마로 만드는 유대인 특성상, 안 좋게 언급된다.

주로 성경에 좋지 않은 일은 '그런 건 이방인이나 하는 일이니라' 식으로 언급한다(...) 심지어 복음서에서 예수조차도 '너희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주면 상을 받겠느냐? 그런 건 이방인도 할 수 있지 않느냐? 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 문화권에서의 오랑캐의 개념과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라며 야훼가 탈출기(22:20)에서 말하거나 하지만 유대인은 나안을 정복한게 함정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전 세계로 퍼진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은 유대민족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로마서 3장 29절) 식으로 이방인들도 공동체로 포용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참고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도 비신자 외부인을 이방인이라고 부른다.

3.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L'Étranger

영역명은 The Stranger, The Outsider, Foreigner. 프랑스어인 L'Étranger 를 영어로 옮기다 보니 저런 다양한 이름이 나왔다. 실제로 다 존재하는 판본들. 주로 "The Stranger"로 알려져 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김화영 번역본)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로, 북아프리카 알제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프랑스인 뫼르소라는 남자가 어머니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를 치룬 직후엔 여자친구, 마리와 노닥거리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 주인공을 단순한 불효 패드립 자식이라고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큰 주제를 위한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다. 다음날엔 이웃집 사람 레몽이 저녁에 초대해서는 자기와 친구맺자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 불량배다... 그런데 뫼르소는 그냥 신경 안 쓰고 그러자고 한다. 그리곤 레몽이 뫼르소에게 자길 도와달라고 부탁하는데, 그게 레몽이 자기에게서 돈만 뜯어가고 양다리 놓는 정부(情婦)를 두들겨 패는 거고, 그러기 위해 자기 정부를 속일 만한 편지를 써 달라고 한다. 뫼르소는 '그를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그를 돕게 되고, 그러다 그 정부의 남자형제랑 엮이게 된다. 이 남자형제는 오빠인지 남동생인지는 프랑스어의 특성상 밝혀지지 않는다. 오빠라는 번역은 엄밀히 말하면 오역.

며칠후에 레몽이 일요일에 해변가로 뫼르소와 마리를 초대하게 된다. 이 때 뫼르소가 레몽이 사람을 쏠까봐 레몽의 권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레몽에게 보복하러 몰래 뒤따라 온 정부 형제 패거리 중 하나인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살해하게 된다. 그는 법정 등에서 처음에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로 끝날 것이라는 결과를 들었고, 국선변호사[1]나 예심판사도[2] 당신의 사건은 별 볼 일 없는 정도로 취급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당시엔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인지라 프랑스인이 아랍인을 죽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쌀 수 있었으니.

그러나 어이없게도 법정의 주요 화제는 아랍인 살해건이 아닌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무덤덤해 보이고 놀러 다니기까지 했다는 것이 된다. 마리가 법정에서 증언한다. 증언하는 도중에 이 증언 때문에 뫼르소가 불리해지는 것을 깨닫고 운다. 무난하게 풀려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건으로 인해 계획 살해범과 무자비한 인간으로 부풀려지며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종국에는 신부가 찾아와 그에게 죄를 털어놓을 것을 권하지만, 뫼르소는 신부의 허위적인 면을 꾸짖고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진실되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증명한다며 거부한다.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처형되는 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증오를 퍼부을 것을 바란다고 말하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상식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뫼르소의 행동이 삶의 부조리를 말하며, 부조리의 인식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기본조건이라고 카뮈는 표현한다. 뫼르소는 여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어머니의 죽음이나 애인과의 사랑에서도 별다른 의식을 못하고, 죽기 직전에서야 의식이 깨어나고,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이 작품의 아이러니이자, 백미이자, 비극적인 면모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뫼르소는 인간의 기본적 깨달음을 성취한다.

민음사의 뒤표지에는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라고 명시했다.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뫼르소의 성격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예컨데 뫼르소는 아랍인을 쏜게 뜨거운 태양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뫼르소의 변호사는 뫼르소의 감형을 위해 최대한 말을 맞출 것을 제안했으나 뫼르소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라며 거짓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정도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뫼르소는 그 어떤 사건에서도 혹은 서술에서도 거짓을 거부하는 정의를 따르고 작중 모든 일반인의 시점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의 고집 아닌 고집에 결국은 사형을 맞는다.

뫼르소는 세상 일에 별 관심도 없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새로 생기는 파리 지점에 보내 준다고 하니깐 기뻐하기는 커녕 그냥 거절한다... 딱히 갈 이유가 없어서. 심지어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대수롭잖게 여긴다. 이러한 뫼르소의 무감성을 현대인의 모습에 투영시킨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정작 카뮈 본인은 스스로를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실존주의가 본질에 선행하는 실존(사르트르)을 강조했던 반면, 카뮈는 인간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존재 자체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인간의 자세를 탐구했기 때문.

이 중편 하나로 카뮈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20대라는 나이서부터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1957년, 44살이라는 무지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역대 2번째로 최연소. 가장 최연소는 41세로 정글북의 키플링)

또한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로서 판매량도 엄청나다. 현재까지 100가지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세계 판매량이 수천만 부에 달한다. 프랑스 내에서 700만부, 일본에서 4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의 이름 '뫼르소'가 '살인(meurtre)'과 '태양(soleil)'을 의미하는 단어의 앞부분을 따 조합한 것이라는 사실.

번역본으로는 잘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은 문어체(단순과거)가 아니라 구어체(복합과거)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래서 그 당시 이와 같은 표현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어에서는 현재와 관련없는 과거를 표현할 때에는 단순과거를, 현재와 관련있는 과거를 표현할 때에는 복합과거를 사용한다. 회화에서는 단순과거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날 단순과거는 문어체, 복합과거는 회화체에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소설은 현재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단순과거를 사용한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프랑스어의 용법. 소설에서 복합과거를 사용했다는 것은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카뮈는 다른 소설인 페스트에서는 문어체를 사용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대차게 깐 소설이기도 하다. 이유는 인종차별적 내용. 진짜로 인종차별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에 유학생이고 문학수업을 이 작품으로 나간다면 건투를 빈다... 여느 문학이 안 그렇겠냐마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카뮈의 작품이나 철학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런다. 하지만 문장 자체는 간결하고 구어체로 쓰인 덕분에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워낙 분석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아주 까다롭진 않다. 수많은 작품 내 상징성과 부조리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이 깔려 있기에, 일반인은 이를 그대로 읽으면 그냥 부모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고 사람을 죽인 후레자식 그 이상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하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카뮈의 철학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고 여러 전문가의 서평을 참고하여 책을 해석하는 것이 좋다. 이방인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은 저자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이며 이 두 권을 같이 읽는 것이 이방인을 이해하기에도 카뮈 철학을 알기에도 좋다. 이 에세이도 역시 만만하지는 않다. 심도 있게 읽으려면 서평이나 해설서와 함께 며칠 붙잡고 읽거나 아예 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원한다면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을 엮어서 설명해줄 것이다.


3.1. 이방인 번역 논쟁




번역자(=사장)와 출판사의 정신세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명짤

2013년즈음해서 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이정서'(필명)라는 사람이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존 〈이방인〉의 번역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했다. 이후 2014년 5월 새움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새로운 〈이방인〉 번역본을 출간했고, 블로그에 있던 연재분은 삭제된 상태다. 김화영 교수는 알베르 카뮈 전집을 번역했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카뮈 번역으로 가장 권위 있는 불문학 교수이다. 이정서는 김화영의 권위에 눌려 기존의 독자들이 〈이방인〉을 읽을 때 작품이 난해하고 재미가 없어도 번역본의 탓이 아닌 자신의 탓으로 잘못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김화영의 번역본이 내용적으로도 심각한 오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기사)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예를 들면, 뫼르소가 태양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기존 번역은 "소설의 개연성을 무시한 오역"이라며 비판한다. 소설 속에서 뫼르소가 태양빛 때문에 쏘았다고 재판에서 그렇게 증언한다. 국선변호사하고 이 증언을 그대로 하느냐 마느냐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이 부분을 뫼르소의 정당방위로 인한 살인으로 번역한 일이나, 레몽의 등장/성격 해석 등이 있다.

한겨레에서는 이정서의 새로운 번역본을 의문스럽게 바라보는 기사를 내보냈다. 여기에 이어 경향신문과 소설가 장정일새 번역본이 주장하는 것만큼 이전 번역이 잘못으로 점철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장정일 삼국지 보면 딱히 남 말 할 처지는 아닌데..

이정서의 번역본이 좋고 나쁘고를 넘어서 내용과 출판사의 문제 제기 모두 도발적이기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다. 번역 자체는 읽기 편한 문체라는 평, 이전 번역에 비해서 과도하게 해석한 무리수라는 평, 김화영 번역을 비난하면서도 단어 선택 등에 있어서는 오히려 김화영 번역을 참고한 흔적이 있다는 평, 읽기는 편해졌을지언정 독자의 문학적 상상을 막아버렸다는 (문학적인 맛이 덜하다는) 평, 바로 잡은 해석이라고 제기하는 문제들이 사실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평 등, 여러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태. 번역의 질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출판사의 문제 제기 방식이 너무 단정적이어서 논란을 부를 수 있는 태도라는 점은 문제이다. 본인은 번역 논쟁을 하고 싶다고 부르짖었으나 정작 홈페이지에서 번역 논쟁이 시작되자 잦은 글 수정과 불리한 댓글 삭제,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기 등의 스킬 시전으로 인해 정상적인 논쟁이 불가능했다.

번역자 이정서가 새움출판사의 대표인 '이대식'이라는 주장이 나왔고(로쟈(이현우)의 문제제기. 한겨레 기사 참고), 이정서는 다른 글을 통해 이 사실을 인정했다. 이정서/이대식은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저서가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의 표절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가 교수 사회에서 반쯤 매장되었었던 서울시립대 이명원 교수의 사건을 다룬 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쓰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정서/이대식은 이 번역 논쟁을 "25년 문단 권력"의 바른 소리 죽이기, 혹은 문학권력(수구세력)에 고용된 알바들의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일정 부분 있었고, 그런 점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과 오버랩된다는 점. 그런데 이명원 교수 때는 맞는 말이었고 이건 아니잖아

로쟈(이현우)는 이정서가 영어판을 중역했다고 주장, 논란이 되었다. 이대식은 자신이 프랑스어 회화는 못하고 읽을 줄만 알아서 사람들이 다들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블로그에 썼다.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더 신빙성있게 들린다. 외국어를 배우는데 독해만 하는 것도 아니고 기자가 전화 걸어서 프랑스어 번역가 바꿔줄까봐 실드치는 거 아닌가 번역의 질이 이러쿵 저러쿵 한들, 이 같은 화제와 논쟁 속에서 새 번역은 대형 서점에서 눈에 띄는 곳에 전시되고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도발적인 카피와 번역 논란의 의도가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대성공인 셈.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번역자 이정서는 절대번역론을 주장함으로써 트위터에 상주중인 일선 번역가들에게 폭풍처럼 까였다. '원작자의 의도 따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도 나오는 마당에 역자의 주장처럼 다른 세계의 언어를 무오하게 옮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위라는 것. 그 와중에 역자 본인은 카뮈가 접신하였기에 세계의 그 어느 번역본보다도 카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각자 알아서 판단해 보자.

이에 많은 지적이 빗발치자 이정서는 갈리마르 출판사에 전화 한통 걸어서 자신이 주장하는 독창적인 번역(레몽에게 맞은 사람이 레몽의 여자와 형제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 여자의 기둥서방이라고 주장)이 맞느냐고 물어보면맞지. 문학선생한테 맞지.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는 못봤다. 모든 궁금증이 다 풀릴 거라고 주장했다. 만약 자신의 해석이 틀렸다면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 할 것"이며,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움 출판사 대표직에서 물러날 것이며 독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세무민'했다고 석고대죄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이방인〉 논쟁 본문 이게 회사 블로그여 사장 싸이월드

그러나 결국 '고마해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댓글러역자는 고마해라가 문학동네판 이방인의 역자 '이기언'이라고 주장하다 거짓임이 탄로나서 또 다시 욕을 처먹음가 실제 위 문제에 관해 프랑스 카뮈 연구회(SEC;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에 문의하였다. 사실 출판사인 갈리마르와 공식적인 학회인 프랑스 카뮈 연구회의 권위를 비교할 수는 없다. 프랑스 카뮈 연구회 회장 아녜스 스피켈(Agnès Spiquel)은 갈리마르에서 발간하는 플레이아드 전집의 카뮈편 편집에 참여한 사람이다. 문학에서 플레이아드 전집의 권위는 세계 최고다. SEC의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인 조반니 가에타니(Giovanni Gaetani)로부터 "그러한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마저도 출판사 블로그 관리자는 <뭘 어떻게 물어봤다는 거죠? 본인이 방구석에서 할일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뭘 어떻게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반발하였고, 논쟁에 참여하여 문제제기를 해오던 indifference라는 유저가 페이스북에서 보낼 문의 메일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하고 같은 답변을 받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불리하게 전개되고, 번역 논쟁에 있어서도 시종일관 예의를 지킨 indifference에게 떡실신을 당하자 새움 사장=역자는 쪽팔렸는지 이후에 관련된 댓글들을 모두 삭제하고 독자들에게 '바퀴벌레'라는 욕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indifference의 이글루스 블로그하지만 이미 알라딘에 누군가 지운 댓글들을 다 기록을 해 놓았다고 한다.이방인 사라진 댓글들 사태가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으나 번역계에 지울 수 없는 희대의 촌극으로 남을 것이 기정사실로 보인다.

댓글 삭제하고 "이제 앞으로 〈이방인〉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라는 댓글을 직원을 시켜 올리게 하였으나, 불과 하루가 다 지나기도 전에, 가만있는 김화영 교수를 다시금 물어뜯는 글을 올려 사람들의 어처구니를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있다. 여기에 이어 MBC뉴스의 한토막으로 번역 논쟁이 다뤄지는 과정에서, 김욱동 교수와 한국출판물마케팅 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이 김화영 교수 번역본이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과 번역 논쟁이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이용된 것이라고 인터뷰한 사실도 시비를 걸었다. 김욱동 교수는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영문학 전공자. 다수의 영어문학 번역과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를 널리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다수의 번역서를 내는 동시에, 번역과 오역 문제 자체에 대한 저서도 여러권 내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도 댓글을 통해 지적된 자신의 오역에 대한 해명은 일언반구도 없는 상황이며, 덧글도 막아버린 상태. 이대식 네이버 블로그

한편 프랑스 카뮈 연구회에 문의 메일을 보낸 indifference는 연구회의 학회장인 아녜스 스피켈로부터 받은 답변을 공개하였다. 내용은 현 번역이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번역자는 듣보잡 단체에 문의 메일을 보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비난하고 다시금 김화영 교수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상황이며, 동시에 뫼르소의 살인이 정당방위였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라고 교묘한 말돌리기로 면피를 행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항상 권위에 눌리지 말라고 역설하면서, 김화영 교수나 로쟈 등, 이름이 알려진 상대로는 열심히 답변글을 쓰면서도, 직접 문의를 시도한 indifference에 대해서는 <이분, 한창 공부중인 불문학도생이 분명해보입니다. 배우는 학생이라면 벌써부터 허명을 쫓기 보다는 좀 더 진지한 자세로 학문에 임해주길 선배로서 부탁드립니다.> 라고 언급하며 꼰대질을 시전한 것. 권위를 내려놓자면서 자신은 권위에 의거한 대응태도를 보인 셈이다.

번역서 출간 후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대응은 별 차이가 없었고, 출판사는 결국 제기된 의문에 대해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번역자 역시 별 다른 답변 없없고 본인은 답을 한 질문이라고 주장.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 소설이라는 명목으로 번역 과정과 논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정말 소설로서 완성도를 갖고 있기는 하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도 공식적인 답변 없이 창작물이라는 방패로 자기 변명을 하려는 태도로 보이는 문제에, 지금까지 번역 문제를 제기한 이들의 어이를 쏙 빼놓았다. 특히 소설 연재 초기에는 프랑스어를 거의 모른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je(나)'와 'il(그)'마저 착각하는 주인공(사장)이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프랑스어 뉘앙스까지 꿰뚫어보며 김화영 번역을 비판할 수 있는 수준의 번역가로 묘사되는 건 코미디다. 그뿐이 아니다, 프랑스어에서 adieu는 이태리어와 달리 완전한 이별 인사로 사용되는데, 유창한 한국어로 카뮈가 역자에게 '하하. 아니, 나도 모르게 유쾌해져서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덧붙였어요. 이제 정말 Adieu!' 라며 편지를 끝마친다. 말하지는 못해도 읽을 수 있는 불어면 이래도 되는 건가... 무협지도 아니고 소설의 개연성을 중시한다는 본인의 평소 문학관(?)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차라리 무협지는 주인공이 어디서 무공비급을 찾던지 영물을 잡아먹던지 하기라도 하지

4. 한국영화, 이방인(Taekwondo, 1998)


문승옥 감독, 안성기 주연의 한국영화.
안성기가 폴란드에 거주하는 태권도 사범으로 나온다. 작중에 오래된 태권도라고 해서 택견을 상정하고 대한택견연맹의 연단18수를 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태권도의 원형은 송도관 공수도에서 출발했음을 생각하면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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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뫼르소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고 또 필요를 못 느끼겠다고 하니 예심판사 쪽에서 법은 법이라고 선임해줬다.
  • [2] 이 사람을 심문하던 예심판사는 이 사람을 종교적으로(물론 기독교) 감화시키려고 하지만 뫼르소가 무신론자인 것을 알고 뫼르소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자 포기하고 나중에는 그냥 가볍게 적그리스도씨 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