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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last modified: 2015-02-21 18:53:02 Contributors



현재.

Contents

1. 선수 시절
2. 은퇴 이후

1. 선수 시절

대한민국 씨름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씨름계의 황제.
역대 최고 승률[1]의 보유자

한라급 체급으로 백두급 선수들을 제치고,[2] 천하장사 10회를 기록한 인물이다. 백두장사는 18회[3], 한라장사 7회를 기록했다.

원래는 한라급 선수여서 화려한 기술씨름을 구사한데다가 경기에서도 정파 고수다운 깨끗하면서도 매너있는 씨름으로 씨름팬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씨름 외적으로도 군살이 없는 근육질 몸매에다 여배우들하고 스캔들도 많이 날 정도의 준수한 외모로 씨름계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준수하면서도 순진한 외모와 씨름선수다운 강한 힘의 심벌 때문인지, 여성들 특히 아주머니들한테 그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4] 어르신 세대가 갖는 천하장사에 대한 호감이미지는 전부 다 이만기 한명이 쌓아올린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 강호동은 가장 큰 수혜자.

그리고 초창기 프로씨름이 이만기 선수 한 명 덕분에 국민스포츠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2미터가 넘는 거인 씨름선수 봉걸과 이만기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비유되며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불어 라이벌인 이준희와 숙명의 결승 대결도 여러번 치룰때마다 지금의 야구나 축구 더비 못지않은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80년대 당시 이만기의 인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서울대에 붙으려면 이만기를 몰라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즉 이만기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세상과 담 쌓고 공부해야 서울대 간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김연아가 누군지 몰라야 좋은 대학 간다" 정도 되겠다. 물론, 요즘에야 세상 물정도 잘 알아야 좋은 대학 가지만, 어쨌든 그랬다.

본인의 목표였던 천하장사 10회 달성 뒤 정점을 찍고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려던[5] 그의 발목을 잡은 선수가 다름아닌 우리들이 아는 전 씨름계의 왕이자, 현 국민MC인 강호동. 이만기의 편을 들자면 이미 당시에는 이만기는 대학 교수 임용 등을 이유로 은퇴를 준비하던 상태였고 그래서 이미 다른 선수들(황대웅,김칠규 장사등이 해당)이 정상권에 부각되기 시작했던 상황인데다 강호동이 당시 120kg으로 체중이 더나갔던 면도 있다. 반면, 아무리 은퇴준비시기라고해도 아직까진 27세의 한창 나이였던 이만기가 그렇게 쉽게 당할수 있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이후 복수전에서 제대로 강호동을 이기고 은퇴를 했다고 한다.

2. 은퇴 이후

현재, 인제대학교에서 사회체육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씨름연맹에 바른 소리하다가 영구제명[6]을 당했다. 덕분에 씨름협회는 개막장 소리를 들었고 이만기는 더더욱 존경받게 되었다나 뭐라나...

사실 중간에 씨름 연맹의 경기 운영때문에 편파 판정이 나자 이만기가 화가 나서 경기 중간에 퇴장한 일이 생중계된 사건도 있어서 이래 저래 연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예능인 무릎팍도사에서는 그냥 넘어갔지만 보통 언론매체와 인터뷰때 꼭 이 흑역사가 들어간다.

2010년 1박 2일에서 거의 20년 만에 강호동과의 리매치를, 자신이 다니고 있는 인제대학교의 씨름판에서 벌였다. 결과는 2:1 이만기 승이며 1박 2일 2010년 11월 14일 방영분에서 방송되었다. 그리고 강호동의 약속으로 그 유명한 씨름부 회식장면을 온국민이 볼수 있었다.

김유동, 최순호 등과 함께 정치로 제대로 피를 본 케이스. 2000년 한나라당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고, 이 후 2004년 총선에선 열린우리당 후보로 마산에 출마했는데, 탄핵 역풍 바람으로 초반에 앞서가다가 막판에 역전당하면서 낙선했다. 이 때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십억대의 빚을 졌다고. 이만기 인생의 진정한 흑역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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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무릎팍도사에서 나온 그의 장딴지. 전성기 (사진 가운데에 가장 튼실한 허벅지의 인물이 이만기. 만만치 않은 왼쪽 허벅지의 인물은 강호동, 오른쪽 구석탱이에 쳐박힌 비교도 안되는 허벅지의 인물은 올밴.)시절 이만기의 장딴지 둘레는 28인치(71cm)였다고 한다.# 이는 웬만한 성인 남성의 허벅지 둘레보다 더 굵으며 여성 중 마른 체격인 사람의 허리보다 더 굵은 수준이다.


국민 약골 이윤석과의 비교...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이윤석 허리허벅지 만한 장딴지의 소유자.

무릎팍도사에 나온 이후 뛰어난 말솜씨와 마스크, 그리고 그 이후로 끊어진 민속씨름의 명맥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씨름홍보차원에서 TV출연을 많이 하고 있으며 예능에 출연해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릎팍에 나온 뒤 스펀지의 고정 패널이 되어 출연 중이었었는데 주로 이휘재의 깐죽에 당하는 역할로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기야 백년손님에 출연을 하는데. 장모님과의 티격태격거림과 함께 짜증을 잘 내서 앵그리 만기로 불리고 있다.

덩치에 안맞게 겁이 매우 많다. 몸보신에 좋은 소머리를 보고 놀라지 않나(소머리 국밥도 못먹는다). 뱀을 보고 화뜰짝 놀란다거나. 흔한 케이블카를 타고도 떨어진다면서 호들갑 떤다거나(...) 장모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놀때 무서운것도 못타고 500원짜리 장난감차 타고 싱글벙글... 예체능에서는 물까지도 무서워 했다.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소속으로 김해시장 예비 후보로 출마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김정권 전 의원에게 패했다.(선거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한 김맹곤 현 시장이 재선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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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일한 통산승률 80%
  • [2] 이 당시 한라급은 체중 85~95kg, 백두급은 95kg 이상 무제한이었지만, 대체로 가장 무거운 선수도 120~130kg 정도였던 시절이다. 그리고 이만기 역시 처음 몇 번의 대회에는 한라급으로 출전했지만 그 이후에는 백두급으로 체급을 올린다. 전성기 그의 신체조건은 180cm 105kg.
  • [3] 최다 기록이었으나 이후 이태현과 타이를 이룬다. 그리고 이태현이 은퇴 이후 복귀해서 2회 백두장사를 더 기록하여 20회 기록이 깨진다.
  • [4] 나중에는 여성 속옷 광고에 나오기도. 단, 이 여성 속옷 광고는 '이만기가 아내의 속옷 사이즈를 기억했다가 딱 맞는 속옷을 사준다'는 컨셉의 것으로 씨름선수의 힘과는 크게 관계 없었다. 캐치프레이즈는 "아내에게는 저 이만기도 넘어갑니다."
  • [5] 천하장사 10회 달성 이후 인제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 [6] 정확히는 영구제명 확정이 아니다. 이만기 교수 본인 말에 의하면 영구제명을 위한 심의가 열렸다는 통보를 받은 뒤, 절차 상 소명의 기회를 주게 되어 있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서 찾아갔더니 조직자체가 공중분해 되어서 이후 절차를 진행할 사람들조차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