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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last modified: 2015-04-14 06:30:5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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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차

1. 개요
2. 역사
3. 군사
4. 아랍과는 다르다! 아랍과는!
5. 독재자 하메네이
6. 억압
7. 외교 관계
7.1. 미국과의 관계
7.2. 대한민국과의 관계
7.3. 북한과의 관계
8. 스포츠
8.1. 축구
8.2. 풋살
8.3. 농구
8.4. 배구
8.5. 핸드볼
8.6. 다른 스포츠
9. 이란과 문학
10. 기후
11. 유물
12. 경제
13. 종교
14. 민족
15. 이란과 호메이니
16. 이란 국적, 출신의 캐릭터

1. 개요

국기
공식명칭 이란 이슬람 공화국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Jomhuri-ye Eslâmi-ye Irân)
면적 1,648,195km2
인구 76,091,000 명 (17위:2012년)[2]
수도 테헤란
정치체제 공화제, 이슬람 공화국
최고지도자 리 하메네이
국가원수 산 로우하니 대통령
명목 GDP 4,208억 9,400만 달러
1인당 명목 GDP 6,260 달러
GDP(PPP) 8,273억 4,400만 달러[3]
1인당 GDP(PPP) 10,797달러[4]
민족구성 페르시아인 51%, 아제르바이잔인 24%, 길란-마잔다란족 8%, 쿠르드족 7%
아랍인 3%, 루르족 2%, 발루치족 2%, 투르크멘인 2%, 기타 1%
공용어 페르시아어
국교 이슬람교
화폐단위 리알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대한민국:1962년, 북한:1973년)
모토 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
(استقلال، آزادی، جمهوری اسلامی)




정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으로, 영문 국명은 Islamic Repbulic of Iran.[5] 즉, '이란(ایران)'이다.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35년 공식적으로 국호를 이란(سرزمین آریاییان, 아리아인의 땅)으로 못박았다. 자세한 내막은 페르시아 항목을 참조하자. 수도는 테헤란(تهران).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테헤란로의 바로 그 테헤란이다.

국교가 정해져 있는 종교 국가로서 국교시아파 이슬람교이다. 특이하게도 이맘이라는 1명의 최고 지도자(일종의 성직자 같은 개념) 밑에 삼권 분립이 되어 있는 정치 체계를 가졌으며,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답게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준한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근방의 이슬람 국가보다 적용의 정도가 훨씬 엄격하게 주장을 하면서도 좀 앞뒤가 안 맞다(...) 우선 1명의 최고지도자 밑에 삼권분립이 되어있는것부터가 이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인근 아랍권과는 민족(아랍인 vs. 이란인), 언어(아프리카아시아어족아랍어 vs. 인도유럽어족페르시아어), 종교(주로 수니파 위주[6] vs. 시아파 위주)가 다르다.

2. 역사

이 곳에는 근현대 역사만을 기재하며 팔라비 왕조(1925~1979)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페르시아를 참고하라. 팔라비 왕조 이전에는 이란과 페르시아라는 명칭이 혼용되었으나 1935년 팔라비 왕조에 의해 이란으로 고정되었다.

1906년 혁명에 성공하여 아시아 국가 최초로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으나, 의회는 왕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선거가 조작되거나 했다.

그 후 1908년 이란(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상 기념비적인 일이 발생하는데, 이란의 사막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국가의 주도하에 이란의 석유산업을 장악해 나아갔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중립을 선언했으나 위치가 위치인지라 당연히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덕분에 10여년 전 이란의 입헌 혁명의 여파로 불안하던 정국에 더더욱 혼란이 닥쳐오자 레자 칸(رضاخان)을 중심으로 한 군부에서 쿠데타를 벌여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레자 칸을 레자 샤(رضاشاه)로 추대해 팔라비 왕조를 세웠다.[7]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에 참전은 안 했으나, 레자 샤는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독일과 거래하기 시작했고, 소련 등의 물자 수송 요구도 거부하게 된다. 이란이 소련으로 향하는 렌드리스 물자가 통과하는 보급물자 기점이어서 철도가 엄청 깔렸던 데다가, 이란인들의 반영 폭동까지 일어나게 되자 불안해진 영국과 소련이 사전 경고나 선전 포고도 없이 무단 침공, 나라가 두쪽나고 레자 샤의 퇴위, 망명하였다. 그 후 레자 샤의 아들이자 팔라비 왕조의 최후의 왕인 모하마드 레자 샤가 즉위하면서 이란은 완전히 영국의 영향하에 놓이게 된다.

레자 샤가 물러나면서, 이란인 최초로 유럽에서 법학 학위를 받은 인물로 이란의 민주화를 주도한 모사데크와 같은 정치범이 사면되었고, 모사데크는 의회에 출마해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또 이 시기에 레자 샤에게 쫓겨났던 아야톨라 카샤니 같은 종교지도자가 이란으로 돌아오면서 모사데크의 세력과 연합해 왕권에 반대하게 된다.

이 즈음 거의 9 대 1의 비율로 이익을 가져가고 있던 영국의 극심한 석유 수탈로 영국에 대한 악감정이 이란에 팽배하면서 파업이 일어나고 반대시위가 발발한다. 이란에서는 석유산업의 이익을 50:50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요구를 내세웠으나 영국에서는 이를 전면 거부하였고, 영국의 사주를 받은 샤와 수상들은 영국의 이득만을 대변하는 성명만을 발표하여 반대 여론이 팽배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꼭두각시 수상이었던 라즈마라가 암살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며, 결국 모사데크가 수상에 오르게 되고, 석유산업을 전면 국유화시킨다. 모사데크는 이 외에도 왕가와 귀족들의 땅을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는 토지개혁과 왕권의 약화와 민주주의 강화를 추구하는 등 개혁정치로 국민들에게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국유화된 석유산업은 이란에 거의 이득을 가져다 주지 못했는데, 첫번째로 영국의 기술자들이 일시에 빠져나가자 석유산업이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었고, 두번째로 영국이 강력한 해군을 동원해 다른나라와 해상을 통한 석유 교역을 봉쇄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후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들을 매수해나가며 계속적으로 모사데크에 반대하는 세력을 만들고, 정치불안을 조성했다.

그 즈음, 미국은 매카시즘 광풍이 불면서 공산화에 대한 공포가 팽배해지고 있었는데, 이란의 정치가 불안정한 틈을 타서 공산화되면 막대한 석유가 소련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조성되었다. 그렇다고 모사데크를 직접 지원해 정치를 안정시키면, 영국과 적대하게 되어 서방의 동맹관계에 금이 갈 우려가 있기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영국의 협조 하에 CIA를 통해 쿠데타[8]를 일으켜 샤를 복권하고 모사데크를 끌어내리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모사데크 수상이 체포된 후 모하마드 레자 샤는 다시 돌아왔고 왕권은 모사데크 전보다 훨씬 더 강화되었으며, 미국은 친미이자 반소련인 팔라비 왕조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미국의 비호 하에 팔레비 왕조는 서구화와 근대화, 친서방, 친이스라엘 정책을 추구해 이란을 어느 정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73년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 쇼크 때에도 전혀 국력 소모도 없이 그야말로 앉아서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고 다음 해에는 아시안 게임을 개최할 정도로 안정가도를 달리는 듯했다.(이런것 때문인지 이란인들중에서는 아직도 팔레비 왕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 많다 카더라 틀린말은 아닌게 파라 팔레비 이란 황후의 경우를 봐도(...)

하지만 팔레비 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한 탈이슬람화 정책과 노골적인 친미주의 성향을 보였고, 비밀경찰 사바크(ساواک, SAVAK)[9]에 의한 철저한 통제를 시도했다. 또 70년대 중반 팔레비 국왕이 독일 크루파사의 지분 25%를 소유했을 정도로 국왕 개인의 부패 또한 심해졌으며, 오일 쇼크로 얻은 부는 도리어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이에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정치적 재기를 노리던 이슬람 세력이 합세하여 규모는 더욱 커졌다. 급격한 전통붕괴에 당혹해 한 민심의 이탈도 더해졌다. 또한 팔레비 왕조의 친미주의 성향은 반미 감정을 싹트게 했는데, 나중에 모사데크의 축출에 CIA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밝혀지면서 미국에 대한 이란인의 반감이 뿌리깊게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 기회만 노리던 외부 세력이 얼씨구나하고 끼어들었다. 소련은 반정부 학생 운동을 지원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10]프랑스는 이슬람 세력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지원했다. 한편 미국은 카터 행정부의 어리버리한 비현실적 도덕 정치와 인권 외교 정책으로 방관하기만 했다.

78년, 학생들의 반국왕 시위로 출발한 반정부 운동은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종교 세력과 노동자들까지 합세하였다. 결국 1979년 1월 16일, 신병을 핑계로 모하마드 레자 샤 국왕이 이집트로 도피하면서 팔라비 왕조는 무너지고 이란 혁명이 달성된다. 한 달여의 짧은 임시 내각을 거치며 주도권을 잡은 이슬람 세력이 국민투표를 거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공화제 정권을 수립한다. 이후 79년 11월의 테헤란 미대사관 점령 사건으로 카터 정권을 작살내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또한 샤는 이후 이곳저곳 떠돌다가 1980년에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혁명에 위기감을 느낀 이라크가 1980년 9월 22일에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무려 8년이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후 90년대에 진보세력쪽인 하타미 대통령 하에서 개방과 경제발전, 어느정도 표현의 자유가 생겼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2005년에 이슬람 보수주의자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9년 6월 13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국가가 비상상태. 점점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시끄럽기 시작하는 가운데, 미국은 미국대로 이란이 민주화돼서 친미정권 세우면 미국에겐 좋지라는 태도인지라 이리저리 개입하려고 하니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태이다.

단 이란의 민주화=친서방, 이슬람 국가 붕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권의 세뇌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역사적, 사회적으로 가진 원한인지라[11] 이란인들의 반미, 반서방 감정은 지금도 매우 강하다. 선거 폭동 당시 시위대가 개혁정책을 추구했지만 CIA의 쿠데타로 쫓겨났던 모사데크 전 수상을 영웅으로 내걸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아흐마디네자드에게 패하여 선거 폭동을 촉발시킨 미르호세인 무사비 역시 어디까지나 이슬람 국가 체제 안에서 개혁적인 정책을 내건 야당 지도자다. 이 시위대가 친서방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을 탄압하는 수구 세력의 주장인 동시에 서방 국가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참고로 이란의 70, 80년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마르잔 사트라피 원작, 뱅상 파로노드(Vincent Paronnaud) 감독의 페르세폴리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보도록 하자. 물론 마르잔 사트라피가 만든 원작 만화책도 훌륭한 참고문헌이다.

2011년 아랍권을 뒤흔든 민중 혁명 여파로 이란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튀니지와 이집트,리비아와 달리 그 규모는 작은 편이다. 미국은 열심히 이 기회에 엎어버려! 응원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역사적인 측면에서 반서방 감정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그다지 희망은 없어졌고, 결국 별다른 영향을 주지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미국을 실망시켰다.

2013년 대선에서는 보수파의 후보가 난립한 반면 중도온건파가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켜서 결국 성직자 출신의 중도온건파 로우하니 후보가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다. 강경한 보수파가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면서 제제로 인해 경제난이 가중된것이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는 분석. 로우하니 당선자는 아흐마디네자드 치하의 억압을 풀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은근히 핵무기 문제를 해결할수 있기를 바라는 눈치. 드디어 버락 오바마와의 핫라인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 밑으로 3권분립이 되어있는(...) 이란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과연 미국 기대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2014년 시리아,이라크를 강타한 이슬람 국가에 대하여 반감을 보이며 이라크 정부군을 돕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군과 이란군이 협조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태. 하지만, 이스라엘이 결사반대하기에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3. 군사

4. 아랍과는 다르다! 아랍과는!

"이란은 중동입니까?" "예."(지리)
"이란은 이슬람입니까?" "예."(종교)
"이란은 아랍입니까?"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언어/인종)
이란을 아랍권이라고 하면 이란인도 아랍인도 화낸다. 이란은 아랍계가 아닌 페르시아이다. 즉, 중동권에 위치하고 이슬람교를 믿기는 하지만 페르시아계 민족이다.

페르시아어를 표기하는 문자도 아랍 문자에 기반한 문자여서 글로 쓰인 것을 한국인이 봤을 때 아랍어와 굉장히 비슷해 보이고, 종교도 일단은 같은 이슬람이며, 한국인 관점에서 봤을 때 외모도 비슷한 편이라서 그게 그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에서 쓰는 언어는 인구어족 인도이란어파로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아랍어와는 어족 자체가 다르며, 같은 이슬람교라고 해도 주로 이란에 집중되어있는 시아파순니파 이슬람교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며(가톨릭-개신교의 차이, 또는 정교회-가톨릭의 차이와 같이) 아랍인들이 이들에게 이슬람을 전파하기 이전에도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등의 풍부한 종교적 전통과 유구한 역사에서 우러나온 풍습이 있었기에 이것이 이란의 이슬람에 상당히 반영되었다.[12] 마찬가지로 터키(튀르크계)도 아랍[13]이 아니다. 이란이 아라비아 만이 아닌 페르시아 만으로 불러달라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서로 라이벌 관계일 때 아랍국가들도 서로 편을 갈라서 싸웠다. 그 때문에 그 당시 페르시아나 동로마 제국은 아랍제국들을 자신들의 봉신국가로 여겼다고.근데 무함마드 사후 캐발살

5. 독재자 하메네이

이란 정식 국호의 이슬람 공화국은 이슬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성직자로 구성된 국가지도자운영회의가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며 주요 국정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 전임이자 초대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도 국민이 직접선거로 선출한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력을 쥐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의 군대가 국군이 아닌 당군인 것과 비슷하게 국가지도자운영회의가 이란 군사력의 핵심인 이슬람혁명수비대를 거느리고 있기도 한데, 혁명수비대는 석유 등 주요 산업에 진출하여 막대한 이권을 취하고 있으며 정치적 보수파에 힘을 실어 주어 개혁 세력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

6. 억압

꽤나 특이한 면도 있는 나라인데, 이란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동에서 가장 급진적인 근대화를 실시하면서 적극적인 남녀평등 정책을 폈다. 때문에 이 때의 성과가 남아 있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나라를 장악해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강화된 이후에도 여성의 의무 교육 수준을 상당히 보장해주고 있는데다, 대학생 성비는 여학생 비율이 오히려 더 높다(전세계에서 유일한 사례). 대학 캠퍼스에서 머리를 붉게 염색한 여학생과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차도르를 뒤집어 쓴 여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회다. 여성 관리나 학자 비율도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으로, 개혁주의 성향의 사이예드 모함마드 하타미(سید محمد خاتمی)의 집권기에는 마수메흐 에브테카르(معصومه ابتکار)라는 여성이 부통령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여성에게도 대통령 투표권이 있으며 여성들이 직업을 갖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반면 이란의 강력한 라이벌 국가인 수니파의 대빵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성 꾸란에 의하면 남자는 4명의 여성과 결혼이 가능하나하렘물, 이슬람 국가임에도 이란에서는 좀처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4명의 부인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라는 설이 강력하다. 따라서 1부1처가 당연시 되는 사회다.[14]

그 당시 이란사람으로 미국으로 이민가거나 망명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보면 종교혁명 며칠 전까지는 미국 최신 음악이 울리는 클럽에서 춤추고 맥주 마시면서 자유로웠고 미국식 자유연애 등은 당연한 생활방식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이미지적으로 표현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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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info.jpg
[JPG 그림 (Unknown)]
팔레비 왕조 시대에는 원래는 이런 나라였는데(…).이런 나라가 되어버린 셈(…).[15]

이제는 아예 게임 캐릭터의 복장도 규제하신단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이슬람국가들 중 여성 인권을 보장받는 면이 많은편에 속하지만, 역시 이슬람 원리주의로 인한 굴레는 아직까지 상당한 수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층이나 사람에 따라 의식과 편차도 많이 갈리는 듯. 팔라비 왕조시절에 많이 서구화 된 이란이기에 주위 국가보다 서구화된 중산층이 많은데,[16] 이런 가문의 여자들은 Islam Chic 이라고 해서 최신 청바지와 라우스 등 화려한 패션에 머리만 감싸는 스커프만 두르고 다니고, 밤에 그들끼리 모여서 속살 다보이는 원피스 드레스 입고 서양식 파티를 하는 반면, 시골이나 가난한 계층의 여자들은 보수적이고 눈만 보이고 다 가리는 아바야(차도르)를 쓰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사람과 계층간의 간격이 매우 크며, 결국은 사람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것.

페르시아 여성들은 미에 대한 선망이 대한민국 압구정역 성형 수술 거리만큼은 안되어도, 이슬람 국가 치고는 성형 수술의 비율도 상당히 높다. 특히 코수술을 많이 한다는데(...) 이슬람 교리 상으로는 성형수술이 금지이긴 한데(...) 마냥 교리를 엄숙하게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사실 코수술은 이들에게 단순히 미용을 위한 목적만의 수술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금지를 하기에는 심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란인들은 코가 상당히 높고 크다보니 그로 인한 호흡기 질환 - 특히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을 많이 겪는다. 그래서 이란인들이 코를 깎는 이유는 (우리와 반대로 이들은 코를 깎아 낮춘다) 의료적 목적 또한 크다.

히잡(스카프)은 보통 머리카락을 전부 안보일정도로 다 가려서 가족 외의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아예 못보게 하는 방법으로 쓰는게 보통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여성들을 보면 죄다 이런 방법으로 스카프를 쓰고 다닌다. 반면에 현재 이란에서는 상당 수 젊은 여성들이 화려한 패턴과 색깔의 스카프로 머리위에 대강 걸쳐 머리카락이 다보일 정도로 코디를 하는 편이다. 별로 촌스럽지 않고 환타지 영화 주인공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란영화를 봐도 여배우들이 머리카락을 꼭꼭 숨키지 않는다. 스카프를 쓰는 방법은 사실 개인차가 있긴 하다. 비교적 보수적인 나이든 또는 젊은 여성들은 여전히 머리카락을 다 가리기는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일 뿐이다. 즉 사회적으로든 꾸란에서든 스카프를 쓰는 방법 자체를 규정하거나 강요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공장소에서 스카프를 아예 안 쓰는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서 진보적인 여성 사이에서 반감을 사고 있다. 그런 열망에 힘입어 온건파인 로하니가 예상 밖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로하니는 최초로 대통령이 된 이슬람 성직자이면서도 동시에 이슬람 율법을 비교적 느슨하게 적용해서 개개인의 실제 삶을 비교적 간섭하지 않는 온건파이다. 젊은층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성애 행위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하지만 성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는 자에게는 국가가 무상으로 TS성전환 수술 비용을 대준다. 호메이니 옹께서 가라사대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자를 구제해줘야 한다."(...)라나 뭐라나. 이란-이라크 전쟁 때 한 성전환 희망자가 전선에서 부상자를 극진히 간호하면서 한 장군을 통해 호메이니에게 이런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삘받은 호메이니가 국법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17][18]

이 때문에 처벌을 피하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동성애자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이성이 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종교지도자들이 사형받기 싫으면 성전환 수술을 받으라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있고 TS물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성 지향성에 대한 이란 사회의 이분법적 인식으로 인해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에 네 명의 성전환자가 포함되었다가 퇴출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참고로, 동성애와 성 정체성 혼란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수(Bottom)역할의 남자게이라고, 성 정체성이 무조건 여성쪽일거라고 착각하면 심히 골룸하다.

하지만 중동에 안그런 국가가 어딨겠냐마는 성전환도 안하고 동성애를 하다가 걸리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성인은 물론 10대 미성년자도 얄짤 없이 사형선고를 받는다. 게다가 교수형인데 척추를 부러트리는 롱드롭 방식도 아니고 공개처형이라서 피형자에 대한 처우가 잔혹하기 그지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레인으로 교수용 밧줄을 끌어 올려 죽이기도 한다. 롱드롭으로 안 죽이는 이유는 일부러 고통을 줘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란은 딱히 사형집행장을 안 만들어둬서 그렇다. 사형이 확정되면 신속하게 날짜랑 장소 정하고 하루만에 뚝딱 사형집행장을 가설하고 끝나면 바로 해체하는 시스템. 롱드롭 방식 교수형으로 처형하려면 구조상 고정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 가는 강력한 이슬람 신정 독재국가로서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며 종교 율법에 의한 온갖 인권 유린이 벌어지는 나라면서 한편으로 전제 왕정이나 세습제 공화정(...)에일리언vs프레데터이 수두룩한 그쪽 동네에서 그나마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주기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나라기도 하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에 신 아프간 헌법을 논의하는 본(Bonn) 회의에서, 아프간 헌법에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미국 대표가 아닌 이란 대표(!)였다(…). 헌법 초안을 검토하던 이란 대표가 말하길, "이와 같은 문서라면 마땅히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미국대표는 멍때렸고(…) 나중에 미국 대표가 말하길, "내가 받았던 훈령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는 점을 특별히 언급해야겠군요." 더욱 기절초풍할 것은, 문서에 아프간이 국제 테러리즘에 대항해 협력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 또한 개혁파로서 서방과의 화해를 적극 추진했던 하타미 대통령 치하의 이란 대표였다는 사실이다.[19]

또한 이 나라의 선거 연령은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15세부터다. 이란 현지 고등학교 1학년 [20]에 해당하는 나이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 사회 진보의 가장 강력한 동력원이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발감이 적지 않고 이 때문에 빵에 들락날락하는 친구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류 또한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며 전화로 주문하면 어디선가 밴이 도착해서 물건을 주는 가구 직송 서비스(?)가 성업 중이다. 방송 또한 국가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불법으로 접시안테나를 달아 위성방송을 시청하는 집이 많다고 한다. 어찌나 숫자가 많은지(...) 단속에 걸려도 접시만 뜯어가고 만다고 한다.

금주 율법을 어긴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지도 하지만, 이웃 터키맥주 단골 고객인 나라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주변 다른 나라들은 맥주를 안 만들고 아르메니아나 조지아나 러시아 맥주보단 그래도 그나마 터키 맥주를 골랐는지, 아니면 터키 맥주가 입에 맞는지 모르지만, 해마다 32,000~45,000톤에 이르는 터키 맥주를 수입한다고 한다. 과거에 이란 쉬라즈(Shiraz)시에서 만든 와인이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나 혁명이후, 생산이 전면중단되었다가 90년대 다시 생산재개되면서, 수출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고 한다.

이란에 술을 팔아먹는 밀수업자들 이야기로는, 이란에 팔아먹는 술의 수요는 이란 정치인이나 율법학자들이 차지한다고(...) 그리고 이 이야긴 이란 민중들도 많이 알기에 그들에 대한 혐오 로 이어진다. 리 플래닛 지은이인 토니 휠러가 쓴 나쁜 나라 참조. 현지에서 만난 이란 사람들은 성직자라는 것들이 몰래 술을 즐겨 먹는다면서 호주인인 자신에게 자기네 높으신 분들을 실컷 욕했단다.

이란은 엄청 보수적이면서도 때론 그래도 그나마 이웃 아프가니스탄같은 막장 나라보단 조금은 개방적이고 너무 보수적으로 밀어붙이다간 민중 반발도 염두해서인지 약간은 풀어주는 편이다. 이란에서 유학하고 지내다 현재 이란 대사관에 근무중인 최승아가 쓴 오! 이런 이란을 보면 이란 거주 당시 본 이란 음악전문 케이블 방송 PCM(페르시안 뮤직 채널)을 보고 놀랐던 사례를 쓰기도 했는데 그냥 주구장창 전통음악만 틀어주겠지 하고 봤더니만 랩이나 힙합까지 하고 제법 뮤직비디오도 여럿 나왔다는 것. 사실 이 방송은 바로 두바이에 있긴 하지만 이란 정부 허락을 맡고 방영하는 채널이었다고 한다. 물론 과거 여가수들이 몸매도 보이며 앨범을 내던 팔레비 왕조 시절에 견주면 지금은 꽉 막힌 편이겠지만.

그밖에도 24시간 내내 드라마 방송이나 영화방송도 있었다고 한다. 때론 이란 드라마도 막장급 드라마도 있어서 이걸 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 드라마가 저질이라고 방영금지해야 한다고 논란이 된 게 이해가 갔다고(...) 하는 다른 여행자의 사례도 있다. 다만 이 사례에 나오는 방송은 이란 정부 허락을 맡은 채널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찌됐든 이란 민중들이 정말로 지지하지 않았다면 이슬람 신정국가 체체가 유지될수도 없었을것이기에 '그들도 속으론 이슬람 주의를 싫어한다'고 생각할수는 없다. 사실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엔하위키나 블로거들의 서술은 가려들을 필요가 있는게 터키,모로코,우즈베키스탄같은 나라들이 이슬람권치곤 개방적이라고 서술되어있다. 거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예멘빼고는 어떻게든 조금 개방적인 점을 찾아서 그 부분을 강조해 주는걸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앞의 세 나라가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개방적인 건 사실인데. 가만? 쿠웨이트나 이라크는 그런 거 없던데?

이란에는 남녀공학 학교가 아예 없는 데다 만화 검열도 엄격하다. 이란에 러브히나를 들고 간 사람에 의하면 공항 직원이 유성매직으로 히로인에게 챠도르히잡을 입혀(...) 검게 만든 뒤에야 가져갈 수 있게 하였다.

7. 외교 관계

기본적으로 서방 세계와는 거의 극단적으로 척을 치다시피하기 때문에 빈말로라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단 같은 이슬람이라고는 해도 이란은 시아파에 인종도 아리안계라 아랍계인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게다가 역사적 배경도 보면 이란도 터키나 서양 세계처럼 중동 국가들을 침략한 역사가 좀 되었고 이란 스스로도 자신들이 아랍과 절대 다르며, 아랍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역사로도 배우며 인식한다. 그러기에 아랍에서도 이란은 이스라엘과 터키와 더불어 무척 싫어한다. 지리적으로 밀접하고 종교도 같지만 아랍 축구 대회인 걸프컵이나 판 아랍컵이나 걸프컵 챔피언스리그(농구 및 핸드볼같은 대회)에도 일절 나갈 마음도, 나갈 자격도 없다.

참고로 다른 22개국 아랍 연맹 국가들은 모두 아라비아 만이라고 부르는 걸 오로지 이란 홀로 '페르시아 만'라고 부르면서 아랍 국가들에게 페르시아 만이라고 불러라 이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한술 더 떠서 이란 프로축구리그 이름부터가 페르시안 걸프 컵 리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란이 억지 고집을 부리는 것 같지만, 아랍 세계에서 자존심 문제로 아라비아 만이라는 명칭을 1960년대부터 주장하고 있는 것. 따라서 아라비아 만 명칭을 유일정당한 명칭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랍의 입장에 경도된 시각이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제국 최전성기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면서, 그 시절 지배당하던 아랍 나라들을 깔보는 시각이 크다. 동시에 이슬람 제국 초기에 아랍인들이 이란을 정복한 일 역시 기억하고 있다. 만화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아랍인들이 쳐들어와서 "그들의 종교를 강요한" 사건이 언급되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듯.

더불어 미국이 허구헌날 간섭하고 이슬람권에 내전이나 여러가지로 혼란을 야기했다고 증오하며 그 미국 정치나 여러가지로 영향력이 큰 유태인이스라엘과는 원수지간. 더불어 친미 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는 터키와도 국경과 여러 문제로 원수지간이다. 물론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이슬람의 세속화, 서방세계에 대한 입장 등 현대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역사적으로도 골이 깊다. 이란인들과 튀르크인들의 투쟁은 5~6세기 사산 왕조와 돌궐의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페르시아의 신화 서사시인 샤나메(شاهنامه)에서 이것을 이란과 투란(중앙아시아)의 전쟁으로 형상화했을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현대 이란과 터키의 악감정은 근대 시절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이 박터지게 싸우던 것에서 기원한다. 물론 술 수입이나 여타 이득을 위한 교류는 논외.

또한 이란 혁명으로 친서방적인 왕정이 폐지되면서 서방 세계와도 등을 돌렸다.다 싫네 터키처럼 아르메니아인들을 마구 학살했다든지 하는 과거사가 없고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란에서도 꽤나 많이 살고 있음에도 아르메니아와 이걸 이용하여 다른 외교적 루트를 만드는 일은 그동안 없었다. 다만 고립상태인 아르메니아가 이란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고 그들이 과거에 호메이니를 지지하여 공존을 인정받았기에 이들을 통한 외교관계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이란도 터키와 이스라엘 견제를 위하여 최근에는 좀 신경을 쓰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새로운 이란 이슬람 국가가 이슬람 정통주의를 분명히 하고 무신론 공산주의 종주국 소비에트 연방을 또다른 악의 세력으로 간주해 옛소련이나 동유럽의 옛 공산권과도 소원하기는 마찬가지였다.(다만 최근에 가스공급계약을 합의하는 등 완화는 되는 듯)

시리아는 세속적 종교 정책을 취하면서 한때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지만 같이 이스라엘에 이를 갈고 터키를 견제한다는 점으로 뜻이 맞고 시아파의 성지가 꽤 많은 시리아에 이란 관광객이 많이 오는 점 때문에 사이가 좋아졌기에 2013년 시리아 반정부 사태에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중동 지역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서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으로는 바다를 낀 사우디아라비아,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 포위한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중동이나 동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미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쓰고 있다.

그나마 옛 소비에트 연방 독립국 가운데 하나인 타지키스탄과 우호적 사이를 맺기도 한다. 튀르크계 중앙아시아에서 이 나라 인구 대다수인 타지크인들은 바로 아리아계 유목민들 후예이며, 스스로도 이란과 형제 나라라고 자부하면서 이란과 형제라고 친하게 지내자고 하기 때문이다. 근데 타직인들은 정작 수니파다.(...) 하지만, 이란으로선 석유 자원 같은 점을 빼곤 그다지 나은 게 없기에,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된 이 나라를 많이 도울 여력도 없다. 석유 판 돈으로 일부 돈 빌려주거나 겨우 이슬람 성원 마스지드를 세워주는 수준인데 이거 가지고는 큰 형님 나라로 체면이 없을 듯(...)

이스라엘은 원수지간이고, 이란이 직접 이스라엘로 쳐들어갈 일은 아직 없어 보이지만 되려 이스라엘이 먼저 쳐들어 올 가능성까지 있다.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핵발전소를 공습하여 어느 정도 박살낸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 및 핵무장을 막기 위한 공습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이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뒤로 두 나라 사이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이란도 이라크를 교훈삼아 이란 전역 곳곳에 눈속임을 위한 가짜 핵시설도 만들어두었으며 지하에서 개발중이다. 덕분에 인공위성 사진으로 봐도 구별이 가지 않아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게다가 이라크의 5배가 넘는 훨씬 넓은 면적 곳곳에 위치하니 설령 공습을 하려 하나만 노린다쳐도 엄청난 준비랑 시간을 갖춰야 하는데 그게 가짜라면...

거기에 러시아에게 S-300 지대공 미사일을 들여와 공습하러 올 이스라엘 전투기를 노릴 대공망 시설도 갖추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이 러시아에게 항의했으나 러시아는 그런 이스라엘이야말로 조지아나 여러 러시아 앞마당에 이스라엘 무기를 수출하지 않았냐며 맞받아쳤다. 러시아는 주체 사이비교단같이 설득이 전혀 안 되는데다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급의 정신나간 체제를 뺀 다른 반미정권, 특히 시리아나 이란같은 미국이 악의 축 운운한 나라에 자국 대공무기를 수출하거나 수출계획을 내놔 이스라엘(미국도 같이)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이란에 대해 가장 비호의적인 나라는 조사 결과 92%가 이란에 대해 비우호적이라고 답한 이스라엘이라고 한다.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도 터키만큼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이 많아 이집트(75%)나 요르단(72%) 같은 나라들은 미국(67%)보다 이란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다.

7.1. 미국과의 관계

전까지는 대체로 반미적이었지만 이젠 그냥 완전한 반미국가다. 정작 이쪽은 가만히 있는데 미국이 일부러 시비 건다는 말도 있지만 이젠 이란이 미국을 노골적으로 건드리는 형태가 되었고, 이란-이라크 전쟁때 이란이 당한걸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에 대한 반감으로 이란 쪽이 굳이 화를 자초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례로 이란 정부는 핵개발을 진행 중이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은 대체로 이란의 핵개발은 이미 멈출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다 경제 상황이 매우 악화된 미국에겐 이란을 침공하여 친미정부를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이란으로 쳐들어가자면 사실상 이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지 오래인 이라크의 시아파를 염두해야 하는데다가 후세인이나 카다피처럼 정권 지지세력이 핵심계층 일부로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군사력만 엄청나지 실제로는 속빈 강정인데다 민심은 예전에 다 가출한 지 오래인 북한을 때려잡는 게 백 배는 쉽다.

더불어 이란이 무기 수출하여 무슨 테러를 지원한다는 명목이 없다. 물론 레바논 시아파 및 헤즈볼라 지원 문제가 있으나 우선 헤즈볼라가 레바논 합법 여당이라는 점에 헤즈볼라는 어디까지 레바논 안이나 주변에서 이스라엘과 싸운다 뿐이지 과거 80년대처럼 미군에 테러를 가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이란은 유엔에서 핵무장에 대해 변명하면서도 러시아나 중국과 손잡거나 여러 모로 외교적으로 나서고 있기에 그저 외교적으로 홀로 독불장군처럼 구는 북한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란에게 무력으로 응징한다고 해도 이란은 이라크(34만)와 아프가니스탄 면적(52만)을 합쳐도 그 2배(164만)에 가까운 엄청 넓은 나라이며 지리적으로도 아프가니스탄 못지않게 사막과 추운 기후가 어울려져 골치아픈 곳이다. 또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 인구를 합쳐도 더 많은 7800만 인구도 무시못한다. 게다가 이라크처럼 쿠르드족이 많은 것도 아니며 이들의 세력은 분산되어 힘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처럼 군벌이 난립하지 않아서 미군을 도울 것도 못된다. 되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훨씬 자국 소수 종파를 배려하는 등 통치를 의외로 잘하는 편이라 아르메니아 정교회 및 바하이교도와 조로아스터 교도들도 미국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굳이 편들 가능성은 거의 없고 되려 죽어라 미국에게 덤벼들게 뻔하다.[21]2000년대 들어서 미국이 싸워온 적들의 슈퍼 업그레이드 버전(...). 무력으로 이란을 제압하기에는 미국도 엄청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친미파 미국거주 이란인들도 무력으로 가다간 이라크보다 더 어렵다고 반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제한적 공습을 준비했었고, 실제로 실행하려고 했지만 위에 열거한대로 아무리 인공위성으로 봐도 그 넓은 이란 영토 곳곳에 퍼진 수십여개나 되는 핵시설에서 어느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못해 결국 취소했다.

또한 팔레비 왕조 시절 수입했기에 미국 외의 나라 중 유일하게 알리캣(Alicat)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F-14 톰캣을 운용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 이외의 운용국이 없는데다가 적대관계인지라 부품수입같은건 꿈도 못꾸는상황. 부품이 없어서 고장난 녀석의 부품을 다른녀석에 유용한다던지 해서 운용중. 장비가 없어서 피닉스 미사일 대신 지상용 대공미사일인 호크를 달고 다니는 엽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요즘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피닉스 미사일을 사용한다. F-14의 부품 국산화율이 40%를 넘었고 그 비율을 늘리는 상황이라 20여대 정도 유지는 큰 문제가 없는 듯.

호메이니 이슬람 정권이 생기고 나서, 팔라비 정권때 잘나가던 이란의 상류층, 중상류층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민왔었다. 대부분 돈이 많고 이슬람이면서도 굉장히 세속적이고 이란에서도 엘리트들이라서 교육도 잘 받고 생각이나 생활방식이 굉장히 서구화되어 있어 미국에서도 여전히 잘살고 잘버는 상류층, 중상류층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팔라비 왕조와 당시 이란 엘리트들이 매우 서구화 돼있었다는걸 잘 보여주며 이들이 당시 보통 이란인들과 얼마나 괴리감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예. 여담이지만 미국의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야시시한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입고 다니면서 술마시고 나이트 가고, 서구식으로 행동하는데 사실 이란계[22]고 무슬림[23]이라고 말하면 놀라는 한국인들도 꽤 있을 듯. 심지어 이들은 아리안계라 한국인이 보기에는 그냥 서방인처럼 보이는데다 예쁘다! 물론 개인 차는 있지만... 대표적인 이란계 미국인으로 테니스 선수인 안드레 아가시[24]가 있다. 예쁘다는 말에 속지 말자. 이 선수, 남자다.

2011년 12월에 미군 무인정찰기 RQ-170가 이란 내에서 요격되어 이란군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미국은 이에 대해 당연히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이란이 좋아라 멀쩡한 정찰기를 방송으로 보여주면서 '뜯어서 잘 쓸게 ㅎㅎ. 더불어 원하면 어느 나라라도 같이 뜯어서 기술력 공유하자~'라며 약올리자 미국이 부랴부랴 반환을 요청하면서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물론 이란은 시크하게 생까는 중. 이게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동안 이란이 이스라엘 및 미군 무인정찰기를 여럿 요격하여 보유중인 주장이 거짓인가 아닌가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12월 말에 이란이 무인정찰기를 미국에 반환하겠다고 하긴 했는데(...) 1월에 실제 정찰기가 아닌 1/80 축소모델을 보내주겠다는 역사에 남을 희대의 개드립을 쳤다.(...)

2013년 2월에는 자국 기술로 스텔스 전투기를 만들었다고 방송을 때렸다. 그러나 방송에 나온 걸로 보면 이번은 정말 뻥이라고 분석된다.

결국 미국이 그에 대한 보복인지 핵개발을 문제삼아 금융 및 석유 수출을 아주 막겠다고 나서면서 한국까지 원유 수입 문제를 두고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이란 측이 수출 루트까지 봉쇄해가면서 미국과 대치 중이고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면서 미해군이 전투기를 출격시키겠다고 하는 등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 미국이 이란 전선의 전쟁까지는 아니라도 시리아 문제 등으로 인해 한번쯤 기를 꺾을 필요성은 갖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은 시점에 한판 붙긴 붙을 것 같지만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보면 어렵다.

게다가 친서구파인 이란 이민자들도 이란에 대한 미국의 무력 방침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위에 열거한대로 미국이 고전할 조건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라크 전쟁 항목에도 나오듯이 전후 처리를 개판으로 한 미국이 이란을 쳐들어가서 이긴다고 해봐야 이라크 이상으로 이란이 더 복잡할 수 있고 미국이 원하는 친미 정부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에 전쟁벌어봐야 승자없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2013년 11월 24일. P5+1 (UN 안보리 5개국 + 독일) 과의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일단 그간의 경제재제를 해제하고, 대신 이란은 핵 무기화를 포기하는 조건. 이란과 사이가 안좋았던 이스라엘은 대놓고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일단 미국입장인 중동 개입에서 발을 빼는 목적을 어느정도 이루고 있고, 이란은 경제제재에서 벗어나고 미국과의 과도한 군사적 충돌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또한 이란의 원유나 기타 경제적인 부분에 미국 기업이 다시금 진출 할 수 있다는 점도 성과.

2014년 들어 이라크 및 시리아에서 미쳐 발광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를 보며 미국이 어쩔 줄 모르자 이란은 수니파 지역과 손잡고 이슬람 국가와 싸우고 있는 중. 오죽하면 미국에서도 일시적으로 이란과 손잡고 이슬람 국가랑 싸우자는 의견까지 있었다. 물론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척 반대하여 이뤄질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이 내전 또한 미국이 개판처리한 이라크 전쟁 여파가 크나큰 원인인지라 이란에 대한 전쟁을 미국이 일으키는 건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따위로 처리해봐야 또 전쟁이 나서 미국 뒤통수를 신나게 두들겨 패줄 뿐이니. 하지만, 이슬람 국가를 응징하겠다는 미국의 발표 직후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라는 법칙에 따라 직접적으로 수교까지는 아니어도 군사작전에 있어 은밀한 공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무엇보다 적어도 이란은 IS같은 정신병자 집단과 차원이 다르며 이란인 대다수가 믿고 있는 시아파를 무차별로 학살하는 수니파 중에서 제일 꼴통이자 이단자들인 IS는 이란에게 미국이나 이스라엘 이상의 적이다. 키보드 워리어와 살인범의 차이 현재 이란 대통령이 온건파인 하산 로우하니 라는 점에서 최소한 아마디네자드 시절과는 다르게 실리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로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는 이라크가 불안해지면 미국이나 이란이나 얻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5년, 핵협상이 타결되어 이란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제재가 풀리게 되었다. 이 영향으로 예멘 사태 때문에 올라가던 유가가 다시 떨어질 전망. # 물론 이스라엘은 악악대지만(...) 국제적 이익에 있어 IS가 깽판을 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료가 하나라도 늘어나는 게 국제분쟁에 있어 훨씬 유리하기에 아마도 이스라엘의 불만은 국내용 정도(...)로 후퇴하고 IS 격퇴가 시급한 게 현실이다.

7.2. 대한민국과의 관계

1977년 6월 17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의 서울특별시 방문을 기념해 서울특별시에 '테헤란로'를, 테헤란에는 '서울로'를 명명했다. 팔레비 왕조 시절의 일이지만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계속 명칭이 사용되고 있고,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교역을 했다. 북한이 이란에 무기를 팔아먹는단 첩보를 입수한 당시 청와대가 즉시 이란에 필요한 군수물자(팔레비 시절 사들인 무기들을 유지하자면 미제 부품이 필요했다)를 팔기도 했다. 꽤나 용자짓이었지만, 당시 미국이나 이라크도 이런 저런 이유로 대놓고 태클 걸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저냥 넘어갔다. 이외에도 전쟁통에도 이란에서 인명피해를 감수해 가며 각종 공사를 해낸 전적도 있다. 이런 인연 덕인지 지금도 이란은 친미 성향 국가인 대한민국과 교역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게 '악의 축'으로 찍힌 이상, 북한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란의 자본과 북한의 기술이 만나 태어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은 대한민국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군사적 부분 한정이고 민간무역의 규모는 대한민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과의 무역규모는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이며 대한민국은 이란에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을 수출하고 있다. 그냥 수출 정도가 아니라 이란의 국민차가 프라이드 베타의 현지 생산판이다. 테헤란에 돌아다니는 차들 중 절반 가량이 프라이드 베타일 정도(...) 참고로 2006년까지는 기아자동차 마크와 프라이드 명칭을 썼지만, 기아자동차에서의 기술 이전 및 상표 라이센스 계약이 완료된 2007년 이후부터는 현지 생산자(사이파자동차) 마크를 붙이고 Saipa131, Saipa141 등의 명칭을 쓰고 있다.

대한민국이 4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인 만큼 이란의 입장에서도 대한민국은 중요하며, 대한민국도 이란산 원유가 원유수입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만큼 이란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이슬람 국가라도 아프가니스탄같은 헬게이트 너머의 세계와는 달리 치안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어서 술을 마시는 등의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외국인에게는 관대하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곳이라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란항공에서 인천국제공항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직항노선을 취항하기도 했지만 2010년 1월경부터 한국 직항노선이 수익성 문제로 운휴되어 대한민국에서는 두바이, 베이징, 쿠알라룸푸르 등의 경유지를 거쳐서만 이란에 갈 수 있게 된다. 이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

중동 국가임에도 드라마 한류 열풍이 엄청난 몇 안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MBC 드라마 대장금이 2007년에 이란에 첫 방송되며 시청률이 90%라는 대박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85%라는 시청률로 전작인 대장금 인기의 명맥을 유지함과 동시에 이란의 국민 드라마로서 완벽히 자리잡았다. 드라마 주몽이 이란에서 방영되던 2009년에는 10대 이란 청소년이 주몽에서 소서노 역할을 맡았던 한혜진을 너무나 흠모한 나머지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내비쳤는데 아버지가 무시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정말 한국으로 가서 청혼하겠다며 집안 재산인 이나 여러 가축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아버지가 반대하자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었다.

문화적인 코드가 다를 것 같아 보이는 이란에서 대한민국 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리게 된 이유는 저녁 시간대에 외출보다는 집에서 가족들끼리 TV를 보는 이란인들의 습관이 드라마에 집중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중동의 사극이 짧아야 2,3년이라는 길고 늘어지는 구성을 지닌데 비해 상대적으로 전개가 빠른 한국의 사극이 이란인들을 사로잡았다는점, 더하여 대장금이나 주몽의 경우 한국의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의상을 입고 배우들이 출연하며, 역동적이며 인간감성을 자극하는 한국 드라마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기에,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란인들에겐 거부감이 드는 서방의 전통의상보다 한국의 전통의상에서부터 친근감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드라마 주몽은 완벽한 인기와 유명세를 타게 되어 주몽 역할을 맡은 송일국이 특별히 이란에 방문하기까지 했고, 그가 이란에서 전속모델로 찍은 CF 및 홍보물은 해당 한국 브랜드과 숙명의 라이벌 관계에 있는 L모 그룹이 이란에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을 정도다. 이런 한류 열풍 덕분에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인상이 좋고 대한민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참고로 이란에는 TV 채널이 1개라서 한류의 인기가 많아보인 것 뿐이라는 말이 있던데 전혀 아니다. 이란의 국영방송IRIB만 해도 다섯 개의 전국 TV 채널과 여러개의 지역 방송국을 갖고 있으며, 그 밖에도 이란 법상 불법인 국외 송출 페르시아어 민간 방송들이 있다. # 점 더 자세한 것은 대장금 항목 참조.


경제적으로는 2008년에만 120억 달러에 달하는 교역량을 보이며, 이는 중동 국가를 상대로 한 교역량 중 가장 많다. 2011년에는 17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햇으며, 이란 입장에서도 한국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중요한 교역 파트너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2010년 8월, 미국이 유엔을 통해 이란을 마침내 악의 축으로 만들고, 추가적으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에 대한민국도 동참할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 정부는 9월 8일 이른바 '사전 허가제'를 도입해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멜라트 은행 등 102개 단체 및 24명 개인과 거래시 한국은행의 허가를 거치도록 했다. 또 제재 대상이 아닌 이란 기관과 거래할 때도 4만 유로 이상의 금융 거래는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멜라트 은행은 자신들이 빌미를 제공하기는 하였으나(서울 지점을 통해 비밀 자금을 관리한 전적이 있다), 대 이란 무역결제 업무의 70%를 담당해오던 곳이라 충격이 컸다.

반면 석유와 관련해서는 하나도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정치적 의미의 경제 제재'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냈다. 정부 당국자들의 인터뷰를 보아도

問 : 역(逆)으로 경제 제재가 이루어지면 어찌할 계획입니까?
答 :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을 봐야만 알 것

딱히 대단한 대책은 없는 모양이다.(...) 대다수의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건설 관련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많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또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듯.

한편 이란 측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제재할 땐 반드시 경제적 보복하겠다' 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러기에는 이란이 더 손해고 이란은 개념과 상식이라는 게 없는 주체 사이비 교단처럼 융통성 없고 자기중심적이기만 한 체제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국가고, 경제 제재 형태 자체도 자기 이마에 자기가 꿀밤 때리는 격인지라 실질적으로 별다른 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년 넘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하지만 2011년 12월 미국이 NDAA에 의거한 추가제재를 하면서 또 문제가 생겼다. 경제적 여파가 클 듯. 결국 2012년 7월 1일 부로 이란산 석유 수입이 중단되었고, 이란과 거래하던 기업들이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이란은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한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겠다며 경고하였으나, 그 이상의 대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이란 측에서 이란 소유의 유조선으로 대신 운송해 줄테니 수입 재개하라고 한국에 요청했으나, 미국이 이란의 국영 유조선회사까지 제재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다만 한국과 이란의 교역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고, 석유 수입량을 일정 부분 줄이는 조건으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이러한 경제 제재는 이란 스스로 자국의 외교 정책을 전환하지 않는 이상 한국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제재가 강화되면서 교역액은 계속 축소되었다. 2011년 174억 달러였던 것이 2012년에는 148억 달러, 2013년에는 (10월 현재) 84억 달러까지 급감하였다. 그러나 온건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집권 이후 2013년 11월 이란과 서방의 핵 협상이 타결되어 경제 제재가 다소 완화되었으며,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 무역에도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7.3. 북한과의 관계

북한과는 1973년 수교를 하였고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북한이 이란에 군사지원을 하게 됨에 따라 양국간의 친교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으며 특히 미국을 적대적으로 보는 공통점 때문에 친밀적인 면도 갖고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가 북한과 이란을 '악의 축' 이라 싸잡았을 때 사실상 동병상련 격.

그래서 그런지 반미, 반서방에 있어서는 국제사회에서 서로 짝을 이루고 긴말한 관계를 유지하는 성향이라 자칫 친북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쿠바나 주변국 시리아 같이 완전히 친북으로 간 것까지는 아니고 대한민국과 같은 주적인 미국의 맹방(盟邦)과 동시수교를 맺었다는 점에서 보면 완전한 친북 성향까지는 아닌 듯 싶다. 또한 무기거래나 상거래 등에 있어서도 미국의 제재와 경고 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긴밀히 거래하였던 전적도 있었다.

8. 스포츠

8.1. 축구

"압박. 역습. 침대." (By 칼카나마)
이란의 국가이미지에 먹칠하는 가장 큰 요소중 하나
전후 아시아 축구의 정상권에서 밀려나본 적이 없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란 역시 오랫동안 중동의 강호로 군림해왔다. 특히 이란 축구는 70년대에 최전성기를 맞았는데 이 시기에 국대-청대 가리지 않고 각종 아시아 대회를 대부분 휩쓸었다. 전후 아시아 축구의 역사에서 한국-이란이 전통 강호에 속한다면 일본-사우디는 80년대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강호로 분류된다. 이란 국대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그런데 국대와 달리 자국 프로리그는 70년대까진 없었다.하긴 아시아에서 60년대만 해도 프로리그를 갖춘 나라가 40년대에 이미 2부리그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 축구계 최초의 해외 진출 사례를 남긴 홍콩 단 한 곳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참고로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른 아랍 지역도 통합 프로리그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각 지역 도시 챔피언쉽에 참여했다. 타즈와 페르세폴리스가 60년대 중반을 휩쓸었고 파스(Pas), 사힌(Shahin), 타즈(Taj), 다레이 FC(Daraei FC)는 테헤란 리그 강호들이었다.

그러다가 1972년, 탁트 잠시드 컵이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통합 프로리그라 볼 수 있다.주로 테헤란 지역 팀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참가했으며 파스가 2번 우승을 거뒀다. 그러다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1980년부터 89년에 이르기까지 지역 컵대회와 일부 지역 리그 챔피언쉽이 개최되었다. 종전 클럽들이 팔레비 왕조와 연관이 컸고 호메이니가 축구를 그다지 안 좋아했다는 점도 큰 원인이었다. 더불어 종전 프로축구팀들은 이름을 강제로 바꿔야 했는데 페르세폴리스는 피루지,타즈는 에스테그랄로 이름을 바꿔야했다. 이런 프로리그의 축소로 인하여 이란 국대도 타격을 맞이했다가 1989년 쿼즈(Qods)리그가 개최되었으나, 일부 지역 통합리그라 한계가 있었다.1991년에는 리그 이름을 아자데간 리그로 바꾸고 1991/92시즌부터 시작하는 전국통합 프로리그로 새롭게 문을 열게된다.그러다가 1995년에는 리그 이름을 이란 프로리그 (IPL=Iranian Pro League)라는 바꾸었다.

90년대 후반에는 주요 스타들의 해외 이탈(98년만 해도 유럽 리그에선 1,2부리그 합쳐서 35명이나 되는 이란 선수들이 유럽 중상위리그(분데스리가터키 쉬페르 리그,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벨기에 주필러 리그같은 리그로 이는 당시 아시아 최다 유럽진출국가였다.)에서 활약했을 정도였다.)로 국내 축구인기가 급감하기도 하는 등 한국에 비하면 꽤나 부침이 심했다. 이대로 가다간 안되겠다 싶어서인지 다시 2006년부터 이름을 페르시안 걸프컵 (Persian Gulf Cup)으로 바꾸고 해외로 떠난 이란계 축구지도자 재입국을 허락하며 리그 발전과 인기를 힘을 기울이게 된다.그 결과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최다 관중 기록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이란이다. 이란 피루지가 9만 5225명 관객이 보러온 분요드코르와 2008년 경기.

세파한-파스, 에스테그랄-피루지는 리그 라이벌이자 더비로 알아준다. FIFA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더비에 유일한 아시아 쪽 더비로 들어간 에스테그랄-피루지 경긴 이란에서도 문제시되었는데 경기장이 무려 10만석이 넘는 관중석이다보니까 폭동이 날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2009년 리그에선 1-1로 경기를 서둘러 끝내던 적도 있는데 자칫하면 10만에 이르는 관중들이 충돌할 위기가 있었기 때문. 때문에 관중들은 더 흥분해 날뛰었다.

이란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달리 부유한 국가가 아니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돈빨로 운영되는 여타 중동 리그들과는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물론 이란 쪽이 훨씬 건전한 시스템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꽤 훌륭한 리그 기반과 자신들만의 독특한 축구색, 또 아시아에 속하지만 유럽에 더 가까운 우수한 피지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침대 덕분에 한국은 늘 이란의 압박과 높이에 고전해야 했다.

8.2. 풋살

실내 축구인 풋살은 아시아 최강이자 세계적인 강호. 한국에선 낯설고 풋살 월드컵조차도 못 나가며 아시아에서도 하위권 수준으로 밀려난 풋살이지만 해외에선 풋살은 실내축구 겸 축구선수도 나와 하는터라, 브라질이나 스페인같은 축구 강호들도 풋살은 강호들이다.그런데, 이란이 아시아 풋살컵 대회를 연속 우승하고 있다. 게다가 풋살 관심도가 크고 투자도 큰 일본이나 중국까지도 7-0 정도로 깨부술 정도로 압도적이다.이란은 2000년 초반부터 이미 14개의 1부 풋살리그와 3부리그까지 갖춰 승강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기와 인프라도 상당하다. 1999년부터 시작된 AFC 아시안 풋살 챔피언십에서 한국을 9-1로 제치고 우승한 뒤로 13번 치뤄진 대회에서 10번 우승한 최다 우승국가이다.(일본이 나머지 3번 우승) 2012년 대회 조예선에서 한국은 이란(이란은 이 대회에서 3위)에게 1-14로 대패했다.

더불어 2008년 브라질에서 열린 6회 피파 풋살 월드컵에서 이란은 8강(16개 나라 참가)까지 올라 아시아 유일 토너먼트 진출 성적을 거뒀다(한국은 진출조차 못했다). 조예선에서 이 대회 우승 2번을 거둔 강호 스페인과 3-3으로 비겼고 체코와 우크라이나같은 나라들도 이겼다. 8강에서 개최국이자 대회 우승한 브라질도 고전 끝에 이란을 1:0으로 이겼을 정도로 강하다.

참고로 피파에서 발표한 2010년 풋살 세계 랭킹(1위가 브라질,2위가 스페인,3위가 이탈리아) 4위가 바로 이란이다. 하지만 이란에선 우린 풋살론 세계 3위는 된다고 이 랭킹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2009년 이후로 벌인 이탈리아와의 풋살 경기에서 2승 1무(5:5,2-1,1-0)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니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1회 리그를 시작한 FK리그 자문으로 초빙한 게 바로 이란 풋살 지도자들이다.

2012년 11월 타이에서 열린 7회 풋살 월드컵에서도 2승 1무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와일드 카드없이 조 2위로 16강에 올랐으나 콜롬비아에게 연장 끝에 1:2로 패하여 8강에선 탈락했다.콜롬비아를 이겼더라면 4년전 조예선에서 이긴 바 있던 우크라이나(와일드카드로 올라온 일본을 6:3로 이기며 8강 진출)와 격돌할 수 있었기에 이란에서 아쉬워하는 반응이다. 참고로 조예선에서 이란과 2:2로 비긴 스페인(다른 5경긴 다 이겼다)이 결승까지 올라갔으며 콜롬비아가 4강까지 올라가 브라질과 격돌해 졌고 브라질이 대회 우승했다.

그러나 엄청난 돈다발로 투자하고 인기가 꽤 많아지는 일본이나 중국 풋살도 나날이 발전되어가는 상황에 2014년 베트남에서 열린 AFC 아시아 풋살 챔피언십에서 이란은 일본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해 준우승했다. 참고로 15골을 넣으며 득점왕이 된 호세인 타이베디를 비롯하여 골득점 순위 1,2,3위(2,3위는 공동)를 죄다 이란 선수가 차지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13번에 걸쳐 치뤄진 대회에서 이란이 모두 10번 우승하며 최다 우승팀이지만 2012,14년 대회를 일본에게 연이어 우승을 빼앗겼다. 다만 이란은 두 대회에서 모두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졌고 크게 진 적은 없다.

8.3. 농구

축구 외에는 다른 구기종목은 도통 관심도 안 기울이던 나라였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 농구나 배구에 큰 관심을 두고 외국 코치진을 영입하거나 준실업리그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활발한 건 농구. 농구라면 아시아권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편이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 및 유럽과 관계 개선으로 미국코치들을 끌어오기도 하고 농구나 야구가 제법 인기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1959년에는 유로바스켓에 특별참가하기도 했다. 비록 오스트리아에게 49-60,스페인에게 42-71로 동네북처럼 털렸고 최종 순위 17위 꼴지를 기록했지만.

하지만 이슬람 혁명으로 친서구 정책을 취하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의 더러운 스포츠로서 야구와 농구는 푸대접을 받으며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서서히 농구에 관심을 가지고, 2000년대 와선 아시아 최강급 강호로 달라졌다. NBA로 진출했던 하메드 하다디(전 멤피스 그리즐리스) 같은 선수(하다디는 이란 리그로 돌아왔다가 2014년 기준 중국리그에서 뛰고 있다.)까지 있다. 그런데 하다디가 미국 언론에게 한 인터뷰를 봐도, 그 이전 이란에선 농구가 어떤 대접 받았는지 알만하다.

"내가 어릴적에는 이란에서 농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나도 축구선수를 꿈꾸었고, 지금은 농구선수인 나도 어릴적에는 농구라는 말과 실내에서 하는 종목이라는 말을 듣고 뭐야? 실내 축구야? 이랬으며 농구장을 처음 보았을때, 이상하다, 골대가 뭐 저렇게 좁아? 저걸 어떻게 발로 차서 공을 넣으란 말야?" 이랬을 정도다."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최다 우승을 거두던 중국을 2000년대 와서 우승을 막은 게 2010년 초반까지 이란 밖에 없다. 2007년 중국의 5회 연속 우승을 막으며 우승(이땐 중국이 4강도 못 진출했으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매달리고자 2진급을 보냈기에 이 탈락은 중국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했고 2009년 대회에선 바로 중국에서 열린 대회였고 1진급이 대거 출동했던 중국을 결승에서 70-52로 작살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인들은 야오밍이 없었다곤 해도 안방에서 압도적 응원을 보내고도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이 정도로 대판 깨진 건 오랜만이라며 대폭발했다. 이전까지 1993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거둔 4위가 대회 최고성적이었던 이란은 2007,2009년 대회를 우승하며 중국과 더불어 아시아 최강을 다투는 농구강호로 발돋움했다.

점프볼이나 월간 루키같은 농구잡지들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농구에서 중국과 더불어 가장 무서운 금메달 후보로 꼽으며 분석했었는데, 결과는 동메달이지만 금메달을 받은 중국의 판정 깽판으로 이란과 은메달을 받은 한국에서 말도 많고 불만도 있었다.참고로 아시안 게임에서 주력들이 나오지 못한 걸 생각하면 동메달도 상당한 것이다,

이란 농구의 진정한 무서움은 아랍 농구 강호인 요르단이나 카타르와 달리 귀화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꽤 짧은 기간동안 자국 유망주를 키워 이 정도로 성장한 것.하다디는 NBA에선 벤치 멤버이지만 아시아 무대에선 최강급 선수이며, 2011년 NCAA에서 활약하는 아르슬란 카제미가 미래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터키에서 열린 2010 농구 세계 대회에선 비록 미국같은 강호들에게 크게 졌으나 튀니지를 이기며 1승 5패를 기록했으나 아쉽게 16강은 탈락했다. 성적만 보면 에게? 싶겠지만 아시아 최강이라는 중국도 다른 조에서 똑같은 1승 5패를 거두고도 운좋게 16강에 겨우 진출했을 정도이다. 그동안 국제농구대회 동네북이던 앙골라도 1승 5패를 거두고 모처럼 16강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는데 이란과 레바논(캐나다(농구론 무시못한다.)를 이기며 역시 1승 5패를 기록했으나 탈락했다)은 운이 좀 안 좋았다. 참고로 2000년대 이후 한국 농구 킬러가 되어버린 요르단은 이 대회에서 6전 전패로 탈락했다. 더불어 한국은 이들 네나라에게 밀려 대회 참가조차 못했다(...)

윌리엄 존스컵 국제 아시아 농구대회도 4회 연속으로 우승하고 있다. 2011년 8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이 대회에서도 한국과의 예선에선 59-77로 졌으나 정작 결승에선 66-59로 한국을 제치고 4번째 연속 우승을 거뒀다. 비록 중국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한국이나 이란이나 국대 1진이 나온 대회였다.결승에서 김주성이나 문태풍같은 한국 주력들은 이란 에이스 하다디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9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결국 이 대회에서도 이란은 한국을 조예선에서 79-62로 이겼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8강에선 요르단에게 84-88로 지는 바람에 탈락했다. 일단 이란은 요르단이 잘했다는 평을 내렸으나(참고로 결승까지 올라간 요르단은 중국에게 겨우 1점차로 아쉽게 졌을 정도로 잘했다.) 중국 기자가 노골적으로 요르단을 응원하는 등의 이란 견제를 보였기에 이란 여론에선 분노하고 있다.

2013년 7월에 열린 윌리엄 존스컵 예선에서도 4연승 행진을 달리던 한국을 71-68로 이긴 게 이란이다. 이 경기에서 하메드 하다디는 34득점을 올리며 이란의 농구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우습게도 현재 그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선 벤치 멤버이지만 아시아 최강 선수 중 하나로 중국에서도 두려워하는 선수가 되었다. 결국 이란이 대회 우승하면서 2000년대 와서 이 대회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 뭐 비록 이 대회가 매해 열리는 이벤트 대회이며 중국이 참가하지 않는(대만에서 열리기에) 대회이긴 하지만.

그런데 2013년 8월 2일에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한국은 이란에게 65-76으로 또 지고 말았다. 전 경기에서 중국을 16년만에 이길때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인지 모르지만(...) 결국 이란이 3번째로 대회 우승하고 한국은 16년만에 대회 3위에 들어서 2014년 세계 대회 진출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0년 터키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에서 첫 국제 농구 월드컵 출전을 했는데 튀니지를 71-58로 이기며 1승을 거두고 미국,브라질,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에게 패했다.최종 순위는 19위.

2014 스페인 농구 월드컵에선 A조에 속해 스페인, 이집트, 세르비아, 브라질, 프랑스라는 상대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집트 빼면 죄다 농구강호로 상당한 팀들인지라 고전이 예상됐고 결국 이집트를 이긴 거 빼고 1승 4패로 탈락했다. 최종순위는 20위. 그러나 4강에 진출한 프랑스를 상대로 76-81 선전을 벌였으며 세르비아와 브라질 경기에서도 꽤 선전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에서도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준결승전에서 카자흐스탄에게 고전하며 80-78로 겨우 이기긴 했지만 어찌됐든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 결승에 진출하여 개최국 한국과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결국 결승에서 한국에게 77-79로 패하면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란으로서는 아쉽지만 사상 첫 남자농구 은메달이다. 1951년 뉴델리 대회와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남자 농구 동메달을 받은 게 여지껏 이란 남자농구 최고성적이었다. 아쉬운 패배이긴 했어도 2018 남자농구에서도 우승후보로 거론될 듯 하다.

8.4. 배구

아직 세계적으로 강호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역시 농구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와서 이란 남자배구도 장족의 발전을 일궈냈다. 아시아 배구 남자선수권 대회에서 1993년,2002년 4강에 든게 최고성적이던 이란은 2009년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1,2013년 연속 우승을 거둬들이며 아시아 최강급으로 확실히 거듭났다. 아시아 성적말고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발전하여 2013년 FIVB 세계 남자배구 랭킹이 12위로 아시아 최강이다. 그 다음이 일본(17위), 중국(18위), 대한민국(21위)다. 2013년부터 승강제를 도입한 FIVB 월드리그에서 아시아 유일의 10위권(8위)성적을 기록하며 아시아팀 유일의 디비전 1(1부)에 속해있었다.(2013 대회에서 한국은 15위,일본은 18위 꼴지)

그것도 모자라서 참가국이 28개로 대폭 늘어난(2013 대회는 18개국 참가) 2014 월드리그에서는 디비전 1에 속한 팀 중 랭킹이 가장 낮았음에도 대회 2위를 거둔 브라질, 3위를 거둔 이탈리아, 7위를 거둔 폴란드와 같은 조를 이뤄 다같이 6승 6패를 거뒀다. 이란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안방에서 2승 2패를 주고 받았을 정도였고 이런 선전에 힘입어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4강까지 진출했으며, 결국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참고로 이란을 준결승전에서 막은게 우승한 미국이었다. 그 덕분에 2014년 세계랭킹도 11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젠 점점 세계 강호가 되어 가는 중. 여담으로 같이 나간 한국과 일본은 공동 19위, 중국은 23위였다. 이로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의 전망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결국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예선전에서 이란에게 남자 배구는 1-3으로 패하면서 금메달 전망은 불투명해졌고 한국은 한일전에서 패해 결승이 좌절됐다.결국 결승은 이란이 중국을 쉽게 처바르며 진출해 일본과 금메달을 다투게 되었는데 이란으로선 아시안 게임 사상 첫결승진출이다.(2002,2010년 대회 동메달이 최고성적) 결국 일본을 3-1로 이기고 사상 첫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금메달을 획득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배구에 대하여 세계적인 큰 손이자 시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기와 여러 모로 압도적인 일본조차도 2008년 대회 6위(참가국 16개국)가 최고 성적이다. 그마저도 그 일본도 2000년대 와서 10위권에서 헤매다가 모처럼 잘한 게 이 성적.(1990년 자국 대회에서 6위했지만 이 당시 참가국이 8개 나라였다 그리고 12개국으로 늘어난 1993년 대회에서 6위)더불어 일본은 21번 이 대회에 나갔던 반면, 이란은 2013년 사상 처음으로 나가 8위, 2014년 4위를 거둔 것. 단 2번만으로 4강진출. 게다가 일본조차도 연속 대회 10위권 진출이 아예 없다. 덤으로 16번 이 대회에 나간 한국팀의 최고성적은 1995년 대회 6위. 게다가 이 대회에서 1990~2014년 대회까지 모두 25번 개근을 한 나라가 브라질과 이탈리아 뿐인데 바로 2014 대회에서 이란은 이 2나라와 조예선을 이뤄 조예선 2위였다.

공교롭게도 이란 국대감독으로 기여한 게 1970~80년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이자 한국 선수 최초로 이탈리아에 진출했던 박기원 감독으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이란 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종전에는 4강에도 못 올라온 이란 남자배구가 은메달을 따게 했다. 참고로 이 대회 우승팀은 대한민국이었다. 이 여파로 이란에서 배구 인기가 높아지고 유럽 지도자들까지 초청하면서 이란 배구가 나날이 성장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박기원 감독은 2011년 한국 남자배구 국대감독으로 활약 중인데 2011년 이란에서 열린 아시아 배구선수권 대회 4강전에서 이란을 만나 1:3으로 졌다. 이란에서 열린 대회이니 불리하겠다고 하지만 참고로 2008년 이후로 한국남자배구는 이란에게 6연패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선수권 결승에서도 중국을 3:1로 이기고 우승했다. 덕분에 박기원 감독이 대회때문에 이란에 가게 되면 경쟁팀 감독임에도 체육관에 있는 모든 이란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라고 한다. 이란 배구의 히딩크 같은 존재라면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

201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배구 월드컵에선 이란 남자배구는 9위를 기록했지만 안방팀인 일본이 10위, 중국이 11위로서 아시아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진출 최종예선에서도 한국을 3:0으로 이겼고 일본도 3:0으로 뭉갰다(중국에겐 3:2 승) 다만 호주에게 1:3로 지면서 이게 타격이 되어 올림픽 2차 토너먼트를 넘진 못했다. 이 때 세르비아에게 0:3으로 완패했지만 1년전 배구 월드컵에선 세르비아를 상대로 3:2로 이겼기에 유럽 세에 어느 정도 맞설 실력을 보여줬다.

2013년 10월 2일에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도 한국을 3:1로 이겼는데 공교롭게도 한국 감독이 바로 박기원 감독이라 이란 제자들에게 한방 먹었다. 게다가 10월 6일에 벌어진 결승에서도 한국은 0-3으로 또 지면서 이란전 7연패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9월 29일에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1-3으로 또 지면서 이란전 8연패 기록(...)

2010년 초반에 이란 (지진으로 엄청나게 파괴된)을 둘러본 여행자가 본 것에 의하면 이재민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축구 아니면 배구를 하고 놀 정도로 배구붐이 이란에서 상당했다는 느낌을 쓸 정도.

8.5. 핸드볼

핸드볼도 그다지 강호가 아니던 이란은 역시 2000년대 와서 급격하게 강해졌다.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에게도 져서 4위를 하던 게 최고성적이었으나 2006년 한국을 31-27로 이기고 첫 남자핸드볼 동메달을 받았다. 물론 핸드볼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이 2006년 대회에서 쿠웨이트에게 억지로 패배했던 한국이었지만 적어도 3,4위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2010년 광저우 대회 결승전에 처음 올라온 이란을 한국이 32-28로 이기고 금메달을 받았지만 2014 바레인 아시아 선수권에서 이란과 비기면서 4강진입에 실패한 한국 핸드볼 대표팀은 세계 대회 진출조차 이란에게 넘기며 탈락했다.

핸드볼 항목봐도 알겠지만 한국이 나날이 선수층이 얇다는 문제가 타격이다. 그러나 위에 배구와 농구만 봐도 90년대만 해도 한국으로선 그다지 어렵지않던 이란이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하자 아시아 최강급으로 탈바꿈했다. 게다가 다른 아랍권이 핸드볼 또한 유럽 선수 귀화로 단시간에 발전된 거랑 다르게 핸드볼도 이란은 귀화선수보단 자국선수 위주로 발전하고 있기에 머지않아 핸드볼도 아시아 강호로 발돋움할 여건이 크다. 알다시피 이란은 유럽계 백인 인종이 많아서 아랍이나 다른 아시아권보다 힘이나 키에서 압도적인 면이 크기에 이 점으로도 배구와 농구가 발전된 것처럼 핸드볼도 강해질 듯 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프랑스 및 쿠바같은 다국적 용병(...) 귀화선수로 무장하여 한국까지 제치고 금메달을 받은 카타르에게 21-29로 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일부 해외 귀화 선수들을 여럿 가진 바레인에게 25-28로 져 4위를 차지했지만 3회 연속 대회 4강에 진출한 만큼 이란 남자 핸드볼도 이제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8.6. 다른 스포츠

구기 종목과 복싱 레슬링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는 태권도. 한국 다음으로 태권도를 하는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거기다 종주국인 한국에도 없는 프로 태권도 리그가 매주 열린다. 한국 킬러로 악명 높은 이란의 태권도 영웅 하디 사이 베네코할이 테헤란 시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2011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도 한국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1973년 대회 이후로 38년동안 종합우승을 독차지한 한국을 제쳤다. 이란에선 이 우승을 두고 월드컵 우승 분위기급으로 환호했다고 한다. 아시안 게임 태권도에서도 1986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70개 금메달을 받은 한국에 이어 이란은 모두 39개 메달을 받으며 2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 6, 은 2, 동 2개를 받은 한국에 이어 이란은 금 4, 은 2,동 1개로 태권도 메달 2위(다만 전체 메달에서는 금 2, 은 4,동 3개인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가라테도 상당한 강호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받으면서 금 3,은 1, 동 2개를 받은 일본을 바싹 추격했다. 역대 가라테 아시안 게임 메달로 금 26개,은 10개, 동 7개를 받은 일본에 이어 금 12개, 은 8개, 동 7개인 이란이 추격 중이다.

카바디도 꽤 강호이다. 카바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인도가 아시안 게임이나 월드컵까지 모조리 남녀 동반 우승을 하는 와중에 이란은 남자 카바디 은메달 최다 수상국가이며 카바디 월드컵 준우승도 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 인간 거중기라 불린 아테네 올림픽 역도 무제한급 금메달 리스트 레자자데가 이 나라 출신. WWE 최초의 중동계 레슬러 아이언 쉐이크( 본명 후세인 호스로우 알리 바즈리)도 이 나라 출신이다.

현재 서구 웨이트 트레이닝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전통 근력운동 체계인 주룩하네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중무장 전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레슬링선수를 키우기 위한 시스템이 되었다. WWE의 이란인 선수 아이언 쉐이크가 이 주룩하네 방식으로 운동한 레슬링 선수이며, 항상 링에서 이 주룩하네 운동 중 하나인 클럽벨을 시연해서 잠깐 유명해지기도 했다.

중동 내에서 동계스포츠가 활성화 된 나라이기도 하다.겨울과 추운 지역이 공존해 있기에 그렇게 된 것이고 다른 동계스포츠 나라에 견주면 약체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랍 지역에선 강호(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가 동계스포츠 종목 선수들을 두고 있으나 기후적으로 불리해서인지 이란에게 압도적으로 진다.동계아시안 게임에서도 이들은 나왔다가 대패를 당하거나 불참한다.) 참고로 흔히 이란하면 더운 나라로 알지만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중부와 북부지방은 겨울되면 강원도급으로 눈이 오는 지역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란이 올림픽을 포함해 어떠한 마라톤 경기도 주최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도시전설로 보인다.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페르시아아테네 간의 전투로 페르시아가 패전했던 마라톤 전투라 자국의 역사적 수치를 기리는 경기나 다름없는 관계로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고, 그로 인해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마라톤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란 선수의 마라톤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면(이란 육상연맹의 기록) 이는 도시전설로 보인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에는 마라톤 항목과 1974년 아시안 게임 항목에 언급이 있는데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특별히 언급이 없다. 다만 1974년 아시안 게임 항목에 마라톤이 아예 없고, Asian Games champions in men's marathon틀에 '1974: not held'라고 적혀있긴 하다. 정확한 건 관계자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야구는 미국이 본고장인 농구와 배구와 달리 여전히 푸대접을 많이 받는 편. 그래도 90년대 와서 인식도 많이 좋아졌으나 인프라 부족 및 여러가지로 약체 수준이다. 종종 이란 야구관계자들이 한국에 와서 둘러보고 가기도 한다.

9. 이란과 문학

이란 사람들은 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뉴스 아나운서가 시를 한 수 읊는다든가(...),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유명한 시인의 생가가 무사한지의 소식을 꼭 전하거나 시인의 묘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을 지경. 실제로 잘랄루딘 루미 등 전통적으로 유명한 시인을 수없이 배출해낸 나라. 루미의 시집은 페르시아어로 된 쿠란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의 영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대시인 이태백이 이란계라는 설마저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설이지만 중국 역사, 특히 나라 시대에는 많은 민족들이 뒤엉켰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건 아니다. 그 외에도 중동인들은 시를 매우 사랑하여 시 낭송으로만 이루어진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10. 기후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215만)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인도-카자흐스탄-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남한 면적 16배가 넘는 나라답게 엄청나게 더운 사막성 기후(인류가 온도를 측정한 기록에서도 가장 최강 무더위 기온을 기록한 곳,섭씨 73도가 측정된 루트 사막이 바로 이란에 있다.)와 같이 눈이 엄청 내리거나 춥고 시원한 날씨를 가진 알브로즈 지역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알브로즈 지역에 위치한 이란 최고봉인 다마반드 산을 겨울에 보면 그야말로 히말라야급으로 눈이 와 쌓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 또한 사계절이 뚜렷하고 숲이 우거진 지역도 꽤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가장 더운 나라라는 생각을 날려버릴 정도로 무진장 추운 지역도 있다. 이게 이란을 남북으로 나누면 북부지방은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고 이란 최북단은 북한의 남부지역과 비슷한 위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쪽인 것도 아니다. 당장 수도인 테헤란만 해도 일본의 도쿄, 전라북도 전주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과 거의 같은 위도에 속한다. 단, 남쪽은 대한민국보다 분명히 남쪽에 있다.

여담인데 이란에선 분뇨나 생활쓰레기를 그냥 루트 사막에 뿌려서 처리한다고 한다. 워낙에 더워서 세균이며 뭐며 금세 죽고 말라버린다고.

11. 유물

역사적으로 한 때 아랍 대부분 지역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까지 다스리던 넓은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들이 엄청나다. 그리고 이란에선 알렉산더에 대한 감정은 아주 나쁘다. 페르시아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인물이기에 다른 아랍 나라에서의 칭기즈 칸에 대한 것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리스 학자들이 알렉산더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이란에 올 때 꽤나 고생한다는 말까지 있다.

12. 경제

13. 종교

국가 공인 종교는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이다.

종교는 시아파가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주류(전세계 시아파 인구 70%가 이란에 산다). 내부적으로 바하이교조로아스터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유대교 등 많은 소수종교가 있다. 물론 이들은 차별을 받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많아 나아졌다고 한다.

최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스파한아르메니아 정교교회가 큰 것도 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와서 예배를 보게 한다고. 물론,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들에게 한하여 많이 개방적일 뿐. 외국 선교사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건 같다. 1979년 혁명 당시에는 이란 전국에서 천주교 사제 및 개신교 목사들이 끔살당하며 교회가 불태워지는 테러가 벌어졌음에도 아르메니아 정교회들은 대체로 무사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팔라비 왕조 시절 유대인 우대정책 덕에 도외시된 점에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교회들이 많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막상 가본 기독교계열 선교사들이 이란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 견주면 기독교에 대하여 꽤아주 쪼꼼 양호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원수라 유대교를 부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호메이니조차도 살아 생전 말하길, 우린 히틀러같은 미친 놈과 다르다고 강조하고 유대인들 증오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엉터리 유대인들이 정권잡고 유대인 괴롭히는 이스라엘이란 짝퉁을 증오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슬람 혁명 이후 자국에 살던 유대교인에 대하여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25] 유대교는 이란에서 엄밀한 국가 공인 종교중 하나이다. 중동국가에 비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편이며, 이스라엘 국적이라도 이란계통이라면 비자를 얻어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해외 거주 유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 행사를 껄그럽게 여기는 것도 적지 않다.

14. 민족

페르시아어를 쓰는 페르시아인(이란인)들이 인구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에서도 페르시아인 피가 걸쭉하게 섞인 아제리 튀르크가 과반수를 차지한 탓에 특히 유럽인 처럼 보이는 이들이 꽤나 많고 [26]페르시아가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무렵 아랍은 이럴다할 문명도 없이 여기저기 산재한 아랍인, 베두인들이 부족단위로 떠돌이 유목생활을 해왔는데, 이제는 석유로 인해 아랍이 더 잘나가자 당연히 더욱 더 이를 갈고 있다.

투르크인 지배를 오래 받은 역사 때문에 동양인들도 은근히 무시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2004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예선 때 한국과 중국과 붙게 되자 선수들이 동양인이 찢어진 눈이라며 퍼포먼스를 한 사진이 있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히 아시아 인들만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인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인종의 분포가 다양한 캅카스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민족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을 무시하는 성향 덕에 대놓고 몽골형질이 나오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국가들이나 유럽인과 혼혈되었지만 기원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터키는 상당히 고깝게 본다.

그래서 이란에선 헐리웃 영화 "300"을 아주 왜곡이 가득한 영화라고 이를 갈아대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미국이 아프리카에 있고, 창칼 든 흑인이 조지 워싱턴에 백인이랍시고 나오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긴 했지만.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이란인들에 대한 페이지를 보다 보면 금발이나 갈색 머리칼에 흰 피부를 가진 완연한 유럽인처럼 생긴 이란인들 사진을 모아 놓고 '이것이 오리지날 아리아인/이란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이 과해져서 '순수 아리아인 혈통을 지켜야 한다'거나 '아랍 놈들이 이란을 지배했기 때문에 이란이 지금 이 모양이다'라는 나치스러운 주장, 혹은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재건하자'라는 환빠스러운 주장까지 이어지는 병크가 벌어지곤 한다. 물론 환빠들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치기어린 네티즌들의 헛소리이지만, 문제는 환빠들 망상 속의 환국과 달리 페르시아는 엄연히 실존했던 대제국이며 이란인들의 전반적인 아랍인들에 대한 악감정도 뿌리깊다는 것이다. 지금은 억압적인 신정국가 체제에 억눌려 있지만, 이란은 막대한 자원과 인구, 영토가 있으므로 꿈을 현실로 만들 잠재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이런 위험한 주장들이 득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란 시민 사회의 성숙이 필요할 것이다.

이란인, 곧 페르시아인이, 원래 이슬람교도가 아니였으며 이슬람교는 외세에 의해 개종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나마 이란에선 아랍이 거의 믿는 순니파가 아닌 시아파를 믿은 것도 아랍과 같은 믿음을 가기 싫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사실이 현대의 이란인 골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안 좋아보였는지 조로아스터교를 페르시아인의 진정한 종교라고 밀고 있다.정작 배화교는 망했어요 이런 이란인 골수 민족주의자들은 이란의 지도자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데 이유는 이란이라는 국가가 워낙 페르시아인이라는 민족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이며 이들의 고유 문화를 숭상하는 자들이다.그렇기때문에 조로아스터교를 밀고있는 골수 민족주의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자니 대놓고 국법에 어긋나고 처벌하자니 굉장히 씁쓸하고 불쾌해지기때문이다. 그래서 이란 지도부는 그냥 대놓고 무시했다. 이 골수 민족주의자들이 뭐라고 하건 그냥 상관안했고 실제로 젊은 층 사이로 이란을 갈아 엎을 기세이던 이 운동은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자 그냥 아무것도 달성 못하고 끝났다.(...)조루[27]

그리고 아직도 이란인들중에는 페르시아인의 후예라는 자부심때문에 보수적인 늙은 사람들도'위대한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나온 아랍인이 우월합니까 아니면 고대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페르시아인이 우월합니까?'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질문하면 십중팔구 '페르시아인이 당연히 더 우월하지, 그리고 우리는 그 페르시아인의 후손이고'라고 답할 것이다. 이 정도로 이란인들은 페르시아인의 후손이란 자부심이 크며 정작 자신들은 이슬람 율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체제를 본인들도 알고있지만 수백년 시간이 흐른뒤라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냥 적응해서 살고있다.(...)

이에 대해서 아랍인들은 '결국 종교와 문화에서 아랍인인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굴복한 주제에 뭔 페르시아 대제국 운운거리냐? 또라이 이란 색히들'이라고 신나게 비웃는 건 물론이다. 뭐 이런 비아냥에 대하여 그나마 늬들이 대다수인 순니가 아닌 소수 시아파를 믿으니 같은 이슬람이라도 늬들과 다르다고 애써 항변중(...)[28]

1971년, 팔레비 왕조는 페르시아 제국 2500년기를 맞아 성대한 건국절 행사를 진행했다. 굉장히 규모가 큰 리인액트먼트도 하며 페르시아의 수천년 역사를 성대히 축하했는데, 당시 이라크에 망명 중이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악마의 축제라고 맹비난을 했다. 이에 대한 당시 대중들은 넌씨눈을 시전했다고 한다. 나름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던 호메이니조차 저 소리 듣고나서 바로 여러분들 다 오해임. 페르시아 제국을 축하해서 악마의 축제가 아니라 너무 낭비가 심해서 악마의 축제임이라고 발언을 수정했다. 심지어 저 발언은 나중에 공식적으로는 와전됐다. 혹은 무지한 대중들이 오해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적으로는 "그때 내가 무슨 깡으로 그런 개소리를 했지?"하고 했다.(...) 이 정도로 이란인의 페르시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이라크, 터키와 함께 쿠르드족이 100만명 이상으로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나라. 터키처럼 쿠르드인이나 소수민족 통계를 자세히 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지만 인구 8%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인구가 7,100만이 넘는 이 나라에선 500~600만에 이르는 무시못할 수치. 1946년에는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서부, 마하바드(مهاباد)라는 도시에 '모하바드 공화국(جمهوری مهاباد)'이라는 정부가 잠시 세워져 독립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가혹하게 진압해서 터키나 이라크와 달리 저항 세력이 아주 개발살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쿠르드인 탄압에 팔라비 왕조가 큰 기여를 했던 점도 있다. 더불이 차별도 여전하고 대다수가 서북쪽 춥고 서늘한 산악지대에 모여살아 하루 벌어 먹고사는 수준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감시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더불어 아르메니아인들도 상당히 많이 거주하는 나라이다. 아르메니아 본토보다 많은 300만 이상이 거주한다는 말까지 있다. 아르메니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르메니아 인종 자체부터 이란계 인종이라 이란에서도 같은 형제급으로 우대하는 편이고정작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쿠르드족 문제같은 일로 이란 측이 소수민족 문제는 덮어버리기에 자세한 내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터키처럼 허구헌날 아르메니아인들이 강제 이주하던 것도 적었고 되려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에서 꽤 노른자위 땅에서 상업적으로 무시못할 위치에 오르며 살아가는 게 많다.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경제적인 군자금 지원까지 맡았고 호메이니를 오랫동안 지지했기에 종교 꼴통인 호메이니조차도 아르메니아인들을 후하게 대우했기에 이런 게 더더욱 가능했다.

이들의 이란 거주 역사는 1000년을 헤아릴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과거 아르메니아 왕조와 갈등으로 전쟁도 벌였지만 튀르크 세력 견제를 위하여 서로 손을 잡았던 과거가 있어서인지 아르메니아 왕조가 멸망하고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와 더불어 많이 이주한 곳이 이란이다.페르시아 시절에도 아르메니아계들은 꽤 관대하게 공존했으며 이란의 중요한 종교 성지인 이스파한만 해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및 아르메니아 가톨릭 지부까지 수백여년 역사를 가진 채로 공존했는데 앞서 말한대로 호메이니도 아르메니아 기독교에 대하여 매우 관대하게 처분하였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과 과거사로 이를 가는 거와 달리 이란의 전신 페르시아와는 물론 충돌이니 전쟁도 있었지만 대학살이 벌어진 게 없어서 아르메니아에선 이슬람이라도 터키보단 이란이 훨씬 낫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한다. 2004년에는 아르메니아 우익들이 이란과 군사훈련 및 우방으로 교류를 맺자는 의견을 보였다가 미국과 이스라엘 눈치 때문에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아르메니아의 원수 터키에게 오냐오냐하기에 이란과 꽤 교류는 늘어날 듯.

그리고 위에 종교 항목에서도 서술했듯이 소수이긴 해도 유태인도 대대로 거주한다.뭐 의외겠지만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던 이집트요르단에도 오랫동안 거주해온 유태인들은 떠나지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물론 이들은 전쟁에는 일절 중립을 지키고 조용히 살아갔다고. 이스라엘에선 전쟁 참패이후로 이들을 분풀이로 학살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와서 나가라고 야유하거나 돌을 던지는 수준은 있어도 학살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현지 거주 유태인들의 증언이 있었다. 그리고 이란에서는 이들 아랍권 나라보다 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친미 및 친서구 정책과 같이 이스라엘과 외교적으로 동맹국급으로 지냈기에 이란 내 유태인들이 꽤 상업적으로 높은 위치였으나 호메이니의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유태인들은 죄다 상업적 특권을 아르메니아계들에게 빼앗기는 일이 있긴 했어도 학살이나 강제 개종같은 일 없이 공존했다. 애니로도 나온 페르세폴리스만 봐도 주인공네 이웃에 유태인 식구가 살아서 같이 친하게 지냈는데 이라크군 공습으로 온 식구가 끔살(...)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제르바이잔과는 기묘한 관계이다. 아제리인들은 이란에서도 1000만명이 넘게 살고 있을 정도로 무시못한다. 하지만 아리아계와 혼혈이 많이 이뤄졌고 아제르바이잔 본국을 그리 고향같이 여기지 않은 이들도 많다. 더불어 아제르바이잔은 항목보면 알겠지만 이란과 껄끄러운 터키랑 매우 사이가 좋기에 이란으로서도 사이좋기 굴긴 껄끄럽지만 그렇다고 원수지간같이 지내지 않는다. 하긴 아제리인이 워낙 많이 살고 있으니까. 즉 이란도 아제르바이잔을 신경쓰긴 하는데 그 예로 2000년 중순 이란에서 어느 만화에서 주인공이 집에 같이 사는 바퀴벌레에게 대화를 하다가 바퀴벌레가 딱 한마디, 아제르바이잔어로 "알았어." 이거 한마디했고 아제리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을 바퀴벌레로 봤다고 분노해 해당 출판사 앞에서 엄청나게 반발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하여 차별이니 종교적인 반목은 그리 없기에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반이란 도구로 쓰일 틈이 적다.

축구선수들을 보면 의외로 비아리안 혈통 선수를 많이 볼수 있다. 예를 들자면 호다다드 아지지(خداداد عزیزی)는 대놓고 동양인처럼 생긴 몽골군의 후손인 튀르크계의 하자라인혈통, 알리 다에이(علی دایی)는 아제르바이잔 계통의 튀르크 혈통,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آندرانيک تيموريان)은 아르메니아 혈통, 메디 마다비키아(مهدی مهدوی‌کیا)는 인도 혈통이다.

15. 이란과 호메이니

이란에선 우선 국부급으로 존경을 받지만, 주변 나라들이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이스라엘에선 악의 축. 좀 더 좋게 평가해도 비현실적인 꼴통이슬람 근본주의자 정도로 대우받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호메이니에 대한 내용은 해당 항목에서 참고하길 바란다.

16. 이란 국적, 출신의 캐릭터

※ 해당국가 작품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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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www.0404.go.kr/country/mapView.do?menuNo=1050100&country_code=176
  • [2] 자료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
  • [3]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GDP_(PPP)
  • [4] 1인당 PPP 출처
  • [5] 줄여서 I.R.Iran(IRI)로 표기.
  • [6] 아랍권 쪽에서 시아파가 상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드문 경우가 이라크, 바레인이며 시리아, 레바논에도 시아파의 수가 상당한 비율을 점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수니파가 훨씬 많다.
  • [7] 정식 명칭은 레자 샤 팔라비로 팔라비 왕조의 왕(샤) 레자 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의 명칭은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로, 팔라비 왕조의 왕(샤) 모하마드 레자라는 뜻이 된다. 이란 왕조 명칭에 대해 정확히 아는 분 추가 바람.
  • [8] 작전명 Operation Ajax 로 불렸다. 별 실적이 없던 CIA가 타국의 정치에 개입하여 성공으로 이끈 첫번째 비밀 작전이다. 이를 계기로 CIA가 과테말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의 정치에 계속적으로 개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전은 정작 영국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미국의 석유이권 개입으로 이란에서 처음 제시한 50:50에도 못미치는 20%의 이득만을 가져가게 된다.
  • [9] 사바크의 최대 협력자는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모사드였다.
  • [10] 당시 국왕이었던 모하마드 레자 샤(محمدرضا شاه)는 이란이 향후 사우디를 뛰어넘어 이슬람 세력의 맹주가 될 것임을 공언하고 다녔고 이에 이슬람 탄압까지 겹쳐져, 아랍 세계의 중심 국가이자 이슬람 최대 성지 메카를 품고 있어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11] 이것이 주체교단과 핵심계층 일부만 제때 잘라내면 나머지는 새 지배자를 환영할 만큼 민심이 떠난 북한과의 근본적인 차이다. 심지어 이란 망명자들조차 현 이란 정부가 아무리 막장이라 해도 스스로 붕괴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서방이 붕괴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잘라 말할 정도다.
  • [12] 이집트 역시 이란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문화와는 별개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지만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는 이란인의 모습과 자신들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아랍어를 쓰고 자신들의 전통 문화마저 잃어가고 있는 이집트인의 모습이 참 대비되는 대목이다.
  • [13] 터키인들은 본인들이 유럽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 [14] 근데 이건 이란이 그 세계에서 진보적인 국가라서가 아니라 웬만한 이슬람 국가는 다 마찬가지인 사실이다. 튀니지, 터키 같은 나라는 법으로 중혼을 금지하고 있고, 1부4처 율법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도 아내가 여러 명 있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여성 억압으로 악명 높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일부일처제가 자리잡고 있는 추세로 아내가 둘 이상 있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생각보다 드물다는거지 없다는건 아니다. 당장 만수르만 봐도 부인이 여러명이니
  • [15] 단 이 모습은 비교적 엄격한 학교 내에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일 뿐이다.
  • [16] 그래도 레바논이나 이집트 같은 나라랑 비교하면 극히 이슬람적인 편.
  • [17] 역설적으로 팔라비 왕조 시절 호메이니는 반대파로부터 동성애자라는 음해(?)를 당했다.ang?
  • [18] 다만 사회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한 인식이 그리 관대한거까지는 아니라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에 가족들로부터 의절받거나 하는 사례는 꽤 있는 편.
  • [19]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자국내의 시아파를 탄압했기 때문에 이란과 매우 적대적이었고, 특히 이란 외교관을 처형하기도 해서 이란과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으며, 그에 따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는 미국에 정보협력을 해주기도 했던 터라, 아프간에 대한 이런 태도를 다르게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 [20] 이란은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의 11년 학제이다. 이란에서 고등학교 1학년은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
  • [21]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지켜주던, 오래전부터 이라크에서 살아오던 소수종교에 대하여 지켜주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답은 뻔하다. 결국 야지디교, 기독교인같은 이들은 지옥이 열렸고 사담 후세인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란 소수종교인들이 당연히 이걸 모를 리 없다. 미국이 쳐들어와 이란 정부가 무너지면 자기들 미래가 바로 그 꼴이 될게 뻔하니까 그 이란 정부를 위하여 죽어라 싸울 게 당연하다.
  • [22] 물론 국적은 미국인들이다. 팔레비 왕조 망할 때 망명/ 쫓겨온 이란 사람들 당연히 대부분 지금이면 미국 영주권/ 시민권 얻고도 남았다. 정치적 망명이 인정된 케이스도 꽤 됐고.. 그렇지 않고 지금 한국인 취업이민처럼 어렵게 생각한다고 해도 벌써 이란 혁명 일어났던 지가 30년이 넘었다. 미국 넘어온 이란인들이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취업이민 두세 번은 끝내고도 남았을 시간.
  • [23] 물론 무슬림은 술이 금지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술마시는 무슬림들도 많다. 술 마시면 무슬림일 수가 없다라는 기준은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것. 하지만 이슬람교 항목만 봐도 같은 술도 종파에 따라 허용하고 고유 술은 술이 아니라며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이란만 해도 겉으로 술은 금지하면서 위에 나온대로 터키 맥주를 엄청 수입하고 포도주를 수출하며 각 지역에서 지방 토속주는 그냥 봐준다. 하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발효된 술을 물 대신 먹어야 하는 척박한 지역에선 호메이니나 이란 이슬람 보수파들도 술을 엄격히 금지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 [24] 아버지가 이란에서 유명한 가수였다고 한다.
  • [25] 근데 이건 '자르 왕국 유대인 설'로서, 이미 유전자 조사 결과 논파된지 오래됐고 요즘은 반유대주의자들이나 믿는 유사역사학에 불과하다.
  • [26] 그런데 사실 아랍인도 사우디나 예멘 등 걸프 연안국 아랍인이나 수단의 흑인 아랍인과 달리 시리아,레바논,요르단의 레반트 아랍인은 아랍에서 오래 살던 사람도 유럽인과 구별이 어렵다. 어느 여행자는 시리아-이란 국경을 지나다가 만난 이란 군인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꽤나 유럽인 느낌의 미남이 많았다고 한다.물론 시리아가 오랜시간 헬레니즘 제국이나 로마 제국의 변방임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랍인은 아랍어를 쓰는 사람의 총칭으로 각국마다 인종도 전통도 심지어 사투리도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아랍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종족 개념이 아랍인으로 마치 청나라 때 만주에 사는 여진족과 몽골족,한족을 묶어 만주족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든것과 같다.
  • [27] 비슷한 경우가 그리스에도 있다. 정교회를 믿는 대다수 인구와 그리스 기득권에 반발하면서 원래 그리스인은 그리스 신화로 알려진 제우스와 여러 신을 믿는 민족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서도 그리스 측은 이란과 똑같이 무시하고 있다.
  • [28] 그런데 이게 이슬람이라고 해도 시아와 순니는 사이 무척 나쁘다. 2019-09-20 현재 벌어지는 이라크 내전을 봐도(...) 물론 종교적으로 골통인 이슬람 국가이긴 해도 시아파 이슬람 모스크는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다. 그리고 정말로 이란은 세계 최대 시아파 나라이며 전세계 시아파 인구 6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랍 수니파에서는 이란은 같은 이슬람이라도 역시 우리랑 다르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 [29] 공식적으로 페르시아 출신이라고 못박아놓은것은 아니지만, 이름이 '페르시아인'에서 온 '파르시'이기도 하고, 사용 문양 중 페르시아 느낌이 나는 문양도 있다. 시온 엘트남 아틀라시아이집트인이 아니냐는 추측과 유사한 사례.
  • [30] آزادی : 페르시아어로 자유,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