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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

last modified: 2015-04-02 19:45:39 Contributors

Contents

1. 프로게이머 이동녕
1.1. 경력
1.1.1.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1.1.2.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
1.2. 소개
1.3. 플레이 스타일
1.4. 연도별 경기내용
1.4.1. 이동녕/2014
1.5. 라이벌
1.5.1. vs 이승현
1.6. 기타
1.6.1. 별명
1.6.2. 기타 중의 기타
2. 독립운동가 이동녕
2.1. 활동
2.2. 추존


1. 프로게이머 이동녕

現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300px-Leenock-SF20120826-201549.jpg
[JPG image (Unknown)]
프로필
이름 이동녕
로마자 이름 Lee Dong Nyoung
생년월일 1995년 4월 1일
국적 대한민국
종족 저그
現 소속 yoe Flash Wolves
ID Leenock
2013 WCS 순위/점수 47위/1175점
2014 WCS 순위/점수 49위/1225점
SNS 트위터
소속 기록
fOu 2010-10-08 ~ 2011-07-17
FXO.KR 2011-07-18 ~ 2013-10-31
fOu 2013-11-01 ~ 2014-01-08
yoe Flash Wolves 2014-01-28 ~ 현재

1.1. 경력

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2011 MLG Pro Circuit Providence 우승자
MLG 2011 Orlando Huk 이동녕 2012 MLG Pro Circuit Winter Arena
이정훈
2012 MLG Pro Circuit Summer Chmpionship 우승자
MLG 2012 Spring Championship 박수호 이동녕 MLG 2012 Fall Championship 이승현
IPL 5 우승자
IPL 4 한이석 이동녕 - [1]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
2013 DreamHack Open Stockholm 우승자
2012 DreamHack Open: Winter 송현덕 이동녕 DreamHack Open Summer 2013
손석희

1.1.1.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1.2. 소개

스2판 귀요미 불쌍의 아이콘
FXO소년가장

데뷔때 나이가 17세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초기부터 대범한 신경으나 승부 근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프로게이머로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8~22세에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되는 선수다.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

실제로 GSL 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빠른 실력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기준으로 코드 S 에서 강등되어 코드 A 로 내려가긴 했지만 코드 A 리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2] 드디어 2011년 후반기에 돼서야 코드 S 컴백에 대성공. 특히 운영과 감염충의 잠복을 활용한 일꾼 테러, 상대의 체제를 완벽히 읽고 병력 구성을 맞추는 능력 그리고 화려한 세레모니 은 보는 입장에서도 놀라울 정도.

1.3.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꽤 공격적이며 과감함으로 자신을 어필하는데 성공하나, 이후 그것말고는 운영실력에서 딱히 뛰어난 점이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2011년 초반기 코드에이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코드에이의 임재덕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떤 종족전이든 운영에서 능수능란한 능력을 가졌음을 증명했고, 결국 2011년 하반기 코드 S에 진출해, 4강에서 그 정종현을 잡으며 준우승까지 바로 해내고마는 저력을 보여줬다.

2011년에는 어떤 종족을 상대로도 강력한 뮤탈위주의 운영과 더불어 빈집공격을 통한 이득을 챙기는 플레이가 어떠한 저그들보다 탁월했으며 이를 통해 높은 성적을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2012년 여왕패치 이후, 경기의 트렌드 양상이 다수멀티+감염충의 체제로 대세가 바뀌자, 적응을 하지 못한 모습을 2012년 초기때 보여주며 패배하는 경기가 많았었다.

하지만 중반기 이후 감염충활용, 군락운영 능력을 모두 마스터하며 더이상 번식지를 고집하지 않고, 군락단계에서 다양한 테크를 활용하는 여유로운 플레이도 펼치며 강력한 저그로 다시 급부상한다.

게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염충의 플레이를 통해, 전장에서 감염충을 사용하는 능력이나, 전투 이후 감염충을 살려내는 세심한 컨트롤, 감염충 소수로 상대방의 기지를 테러하는 것 동의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내며, 다른 종족선수들이 상당히 까다로워하고 있다.

또한 테란전에서 후반 땅굴망의 활용능력은 그만이 보여주는 전매특허.
누구나 꺼려하고, 발각당할 확률이 높다고 안쓰지만, 이동녕은 멀티태스킹을 통해 상대의 관심이 분산된 틈을 타서, 상대방의 본진같은 뻔히 보이는 곳에 땅굴을 뚫는데 성공시키며, 다수의 감염충을 이동시켜 감염된 테란 다수로 테란 본진의 인프라를 쓸어버리는거나, 상대방이 진출할때 땅굴을 뚫어서 자신은 소수병력만 쓰고서 상대의 진출을 봉쇄해버리는 등, 이를 통해 보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재밌는 경기를 만들어 내는 선수로도 평가받는다.

커리어를 보면 해외대회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GSL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인데, 이는 플레이스타일에서 기인한다. 전반적으로 기본적인 운영을 만들어놓고 여기에 살짝살짝 센스를 가미해 비틀거나 정석적인 운영을 하는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이는 단시간에 많은 경기를 치루는 해외대회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단기간에 특별한 스나이핑을 준비하기 어려우며, 특유의 정석 스타일이 안정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긴 텀을 두고 충분한 준비시간을 가지고 펼쳐지는 GSL에서는 상대편 입장에서 고착화된 운영을 저격하기 위한 날빌이나 운영법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다가도 한 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비슷한 성향의 선수로 테란의 윤영서, 토스의 송현덕 등이 있다.

1.4.1. 이동녕/2014

  • 2014 WCS Korea Season 1·HOT6 GSL Season 1
    김영진에게는 승리했으나 주성욱, 조성호에게 패하여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 ACER TeamStory Cup Season 3
    결승전 vs Alien Invation 전에서 에이스인 조지현의 기세를 끊었다. 해당 대회는 시즌 1 당시 FXO로 출장할 때에도 예선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나 본선 진출 바로 앞에서 시즌 1 우승팀인 MVP의 기세에 밀려 본선 입성에 실패한 과거가 있었기에 이 대회의 출장은 꽤나 의미있는 사례가 된다. 특히 해당 경기는 9전 5선승이고 조커를 사용하는 것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동녕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본선 2번째 경기 vs NewRoSoft의 경기에서 Welmu에 2연승을 거두고 선봉올킬을 기록했다. vs Col-Dignitas의 경우는 팀 동료 2명의 손으로 1승을 따냈고 해당 시점은 더블헤더의 성격이었기때문에 지금의 활약은 꽤나 의미있다. ACE인 강초원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득실 관리도 수월해졌고, 12개팀 중 단독선두로 치고 올라간 상태.

  • 2014 WCS Korea Season 2·HOT6 GSL Season 2
    코드S 32강에서 김준호, 이신형에게 패하여 16강 진출에 실패했다.[3]

  • 2014 WCS Korea Season 3·HOT6 GSL Season 3
    코드 A에서 하재상,김정에게 패하여 코드 B로 내려갔다.[4]

1.5. 라이벌

1.5.1. vs 이승현

이동녕과 이승현은, 모두 각자 16살의 나이[5]에 천재적인 저그 플레이어라고 불리우며 급부상을 하기 시작한 점부터, 엄청난 상승세를 타며 MLG 대회[6]에서 우승했다는 점까지 꽤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 두 선수는 꽤 중요한 길목마다 맞붙은 경우도 많았기에 은근한 라이벌 기믹이 생기는 중이다.

대회 라운드 스코어 결과
IPL 4 온라인 예선 1:2 패배
2012 무슈제이 GSL Season 3 코드 A 2라운드 2:0 승리
2012 MLG Fall Championship 결승전 3:4 패배
IPL 5 승자조 3라운드 2:0 승리
2012 Blizzard Cup 4강 1:3 패배
Iron Squid Chapter 2 16강 2:3 패배
MANGOSIX GSL 32강 2경기
32강 최종전
2:0
0:2
승리
패배
2013 HOT6 GSTL Season 2 페넌트레이스 9경기 6세트 1:0 승리
2014 DreamHack Open: Bucharest 플레이오프 16강 1:2 패배
Dragon Invitational Tournament #2 4강 0:2 패배
Dragon Invitational Tournament #3 결승 2:3 패배

  • 총 전적 : 이동녕 17 : 21 이승현

1.6. 기타

1.6.1. 별명

  • 동녕어린이 : 이영호의 별명이였던 소년가장 비슷한 기믹으로, FXO의 엔트리가 얇았을때 혼자서 멀티킬을 올리며 팀을 이끌었기 때문에 별명으로 붙여졌다.
  • 고동녕 : 같은팀의 고병재선수와 무척 닮았다. GSTL에서 이동녕이 패배한 후 고병재가 나오면 각 커뮤니티에서는 이동녕이 테란으로 재도전한다(...)라는 드립이 나오며 고동녕이란 역사전인 단어가 탄생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두명이 FXOpen팀을 책임지는 에이스 듀오인 덕에 고동녕듀오로 아예 굳어졌다. FXO팀의 GSTL 경기 분위기는 고동녕 듀오중에 한명이라도 제대로 활약을 했냐 아무도 활약을 못했냐로 갈라진다. 그게 결국 FXOpen팀의 장점이자 단점도 되는게 포인트. 그러나 fOu 해체 후 고병재는 CJ 엔투스로, 이동녕은 강초원이 활동 중인 yoe flash wolves로 이적하면서 고동녕 듀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이동녕이 프로리그 2014 2라운드 종료 후 Prime의 용병으로 프로리그에 참전하면서 프로리그에서 고동녕 매치를 볼 가능성이 생겼다.


[7]

  • 육동녕 : Sony Ericsson GSL 오픈 시즌 2 16강에서 이윤열 선수에게 6못을 통한 1승을 따내는 모습에 많은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이동녕의 존재감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후 공식전 경기에서 때때로 6못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류동녕 : 최근 스갤 등지에서 부르고 있는 별명. 야구선수 류현진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1.6.2. 기타 중의 기타

  • 일명 도랏나 사건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데, 오픈시즌 당시에 이동녕이 개인방송을 하던 도중에 레더에서 IM효종[8] 선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근데 박효종 선수가 이동녕 선수에게 광자포 러쉬를 하자, 화가 난 이동녕이 방송 중임을 잠시 잊고 삐삐련이 도랏나라고 무심코 말해버렸고, 이를 보던 시청자들은 모두 들었었다.(...)
    이동녕 선수의 개인적인 흑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다행히도 이후에는 대부분 이에 대해서 크게 화자되지는 않고 있다.누구나실수는하는법이니깐

  • MLG Summer Chmpionship 에서 우승한 직후,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며, 일명 리녹스타일로도 불렸다.[9]
  • 여담이지만 아이디가 Le'enock'fOu라서 오픈시즌 초기 당시에는, 일본에서는 종종 엘 샤다이관련 드립이 튀어나오곤 했다. "가장 좋은 6못을 부탁해" 라든지...
  • 감염된 테란 너프 이후, 저그의 심정을 대변한 주옥같은 한마디를 남겼다.
    1411894.jpg
    [JPG image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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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경영 악화로 IPL이 문을 닫음.
  • [2] 당시 코드 A의 임재덕이라고 불렸을 정도
  • [3] 대만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32강을 뚫고 한국에 오래 남고싶다고 인터뷰했으나 결국 대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박상현캐스터는 중계중에 대만을 보면 안되고 박대만을 봐야 한다는 드립을 쳤다
  • [4] 삽라인에 가입은 덤으로..
  • [5] 이동녕은 2011년에 만으로 16세, 이승현은 2013년에 만으로 16세가 됐다.
  • [6] 이동녕은 2011 Providence, 이승현은 2012 Fall Championship
  • [7] 이것이 원본.
  • [8] 이 선수의 아이디가 삐삐였다.
  • [9] 이후 2012 HOT6 GSL Season 4에서도 상위라운드에 진출할때 말춤을 한번더 추며 국내,외 모든 곳에서 강남스타일을 춘 선수로 기록됐다.(...)


2. 독립운동가 이동녕

657.jpg
[JPG image (Unknown)]

李東寧(1869 ~ 1940)
조선 후기의 개화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

2.1. 활동

을사조약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간도만주 지역의 독립 기지 건설과 신민회 등 계몽 운동에 참여하였다. 국권 강탈을 전후하여 연해주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엔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는데, 특히 1923년 국민 대표 회의 이후 많은 독립운동가가 떠나버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켰다. 김구, 홍진 등과 함께 국무총리직 등을 역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까지 임시정부의 항쟁 대열에 함께 하였으나 1940년 쓰촨성에서 병사하였다.

2.2. 추존

그의 장례식은 임시정부 국장으로 치러졌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