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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last modified: 2015-08-25 15:55:18 Contributors


전북 현대 모터스 No.20
이동국 (李同國 / Lee Dong-Gook)[1][2]
생년월일 1979년 4월 29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학교 포항제철동초-포항제철중-포철공고-위덕대동국대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7cm, 83kg, A형
가족 아내, 슬하 1남4녀애국자[3]
등번호 20번
프로입단 1998년 포항 스틸러스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1998~1999,2002)
베르더 브레멘 (2000~2001/임대)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05)
포항 스틸러스 (2005~2007)
미들즈브러 FC (2007~2008)
성남 일화 천마 (2008)
전북 현대 모터스 (2009~ )
한국프로성적[4] 372경기 166골 61도움
국가대표 1998~ , 103경기 33골

200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닐손
MF
최태욱
MF
기성용
MF
김정우
MF
에닝요
DF
김상식
DF
김형일
DF
황재원
DF
최효진
GK
신화용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산토스
MF
임상협
MF
고명진
MF
이승기
MF
한교원
DF
홍철
DF
윌킨슨
DF
김주영
DF
차두리
GK
권순태

1998년 K리그 신인상
진원(대전 시티즌) 이동국(포항 스틸러스) 이성재(부천 SK 코끼리)
2009년 K리그 MVP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김은중(제주 유나이티드)
2011년 K리그 MVP
김은중(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데얀 다미아노비치(FC 서울)
2014년 K리그 클래식 MVP
김신욱(울산 현대)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2015년 수상자
2009년 K리그 득점왕
두두 (성남 일화 천마)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유병수(인천 유나이티드)
2011년 K리그 도움상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몰리나(FC 서울)
2009년 K리그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상 제정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2011년 K리그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데얀 다미아노비치(FC 서울)
2014년 K리그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김신욱(울산 현대)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 2015년 수상자

대한민국전북 현대 모터스축구선수. 역대 K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불운의 아이콘
박주영 팬들의 영원한 주적 [5]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K리그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라이언킹


Contents

1. 상세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3.1. K리그 데뷔 이후
3.2. EPL 이적
3.3. K리그 복귀 이후
3.3.1. 2008년
3.3.2. 2009년
3.3.3. 2010년
3.3.4. 2011년
3.3.5. 2012년
3.3.6. 2013년
3.3.7. 2014년
3.3.8. 2015년
3.4.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K리그에서의 활약
4. 국가대표 활약상
4.1. 98년의 혹사.
4.2. 99년의 혹사
4.3. 00년의 혹사
4.4. 혹사에 대한 세평과 언론
4.5. 01년부터 현재까지
5. 얘기거리
6. 대표팀 공격수들과 호흡
7. 사건사고
7.1. 아버지의 병역비리 청탁사건
7.2. 2007 아시안컵 숙소 무단이탈 및 성매매 룸싸롱 출입사건

1. 상세

2남 1녀 중 막내.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 중 한명. 과거에는 이승엽과 같은 라이온 킹이 별명이었으나, 미들즈브러에서 크게 삽을 푼 다음부터는 영국에서 품바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요새 국내에서는 품바라고는 안하지만 라이온 킹도 잘 안 쓰는 편. 리동궈라고 부르는 사람은 간간이 있다. 2012년 현재 다시 라이온킹, 갓동궈 등의 용어 사용중[6] 최근에는 그의 주특기인 발리 슛을 찬양(?)하듯 이발리, 발리 깎는 노인 이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슈틸리케호에서 다시 국대에 돌아온 뒤에는 노망주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동국 논쟁은 현재 박주영, 정성룡의 국대 합류 건과 더불어 한국축구의 가장 큰 떡밥거리로 동빠와 동까가 만날때마다 대규모의 키워가 벌어지며, 국가대표 발탁 그 자체도 찬반여론이 들끊는 부분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커뮤니티 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온순한(?) 아이러브사커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유지 되고 있다.

국대 발탁 찬성론자의 경우에는 그 만한 골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상당히 준수하기 때문에 뽑아야 하는 입장이고, 반대론자의 경우에는 뽑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 다만 반대론자의 경우 단순히 이동국의 안티만이 아니라 전북 현대의 팬들도 어느 정도는 그의 차출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는데, 최강희 감독처럼 국대에서 욕 먹고 오느니, 그냥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이나 나이가 많으니 몸을 생각해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내세워 국대 차출을 반대하기도 한다. 당장 이 항목만 봐도 동빠와 동까들의 무수한 반달질로 수정내역이 거의 걸레짝 수준이다... 하지만 항목 내용들을 보면 동빠들의 비율이 훨씬 높은것같다. 항목 4번의 98~00년 국가대표 활약상과 브라질 월드컵 이후의 활약, 그리고 매번 비교되는 따봉의 완벽히 대비되는 행보를 보고서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2. 플레이 스타일


포항 시절과 외국 진출 시절에 잠깐 투톱으로 뛰긴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커리어를 원톱으로 뛰었다.

가장 특징적으로 발리 깎는 노인이라는 별명에 맞게 발리슛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슈팅능력[7]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한국 축구역사상 이동국보다 슈팅능력치가 높은 선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왼발, 오른발, 헤더 가리지 않으며 거기다 본인이 어떤 자세에 있고 어떤 공이 오더라도 원투 터치 이내에 위협적인 슛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독보적인데 오프사이드를 뚫는 능력이나 등지고 있는 수비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쇄도하는 능력도 국내 선수로는 최상급이다.[8]어린 시절에는 묻지마 강슈터의 기질이 간혹 보였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개선되었다. 패싱의 정확도는 그냥저냥인 수준이지만 시야가 넓어 경기중 미드필더 존으로 내려와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동료에게 좋은 공을 연결하기도 하며, 짬이 안되던 2002년 이전에는 그의 패싱능력을 눈여겨 본 국내지도자들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내려서 사용하곤 하였다.
포항 스틸러스에 파리아스 감독이 있던 시절에도 종종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곤 했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냈었다.

드리블이나 공 다루는 기술의 측면에선 약점을 가지고 있다. 팀의 최고참인 지금은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한 볼컨트롤을 보여주기도 하나 이제는 신체 능력 전반이 하락해서 역시 기술 종합치는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활동력의 부족 역시 지적받는데 이 자료를 보면 활동량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 최근 국가대표 경기나 리그에서의 모습을 보면 활동량 부족에 대한 지적은 이미 지나간 얘기라 할 수 있다.[9]

심리적 압박에는 결코 강한 편이 아니다. 움직임 자체는 그래도 비교적 멀쩡하게 가져가는 편인데 슈팅이나 패스의 정확도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그것도 유명한 우루과이전 카페베네 슛처럼 판단 자체는 괜찮았고 차기도 적당히 찼는데 들어가기에는 아주 조금 모자란 그런 슛이 나오곤 한다.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때도 신나게 골대를 맞추다가 리드를 잡으니 그제야 득점을 터트린다던가 하는 등. 어렸을 때는 오히려 국대 해결사였는데 비난을 이길 정도까진 아니었던 듯.

현재 기준으로서는 스피드나 템포를 상당히 늦추는 면이 있지만 젊었을 때는 우당탕탕 부딪히는 식의 선수였기에 쉐도우 스트라이커 비슷하게 변한 본인의 기질과 더불어 나이와 부상 탓이 크다.

3. 클럽 경력

3.1. K리그 데뷔 이후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끈 3인방 중 한 명.

1998년에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이 시기 2월에서 4월까지 프리시즌 기간 중 열렸던 아챔에서 고등학교 졸업장도 안 나온 새내기 주제에 2골이나 넣는 등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15경기 7골, 컵 대회 9경기 4골, 그 해 신인왕을 차지, 황선홍의 뒤를 이을 공격수로 주목을 받았다. 몸이 날렵하던 신인시절, 패스를 받은 후 논스톱 180도 터닝슛으로 골을 넣은 장면이나, 골인 후 유니폼을 들쳐올려 얼굴에 뒤집어 쓰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던 세레모니는 국대경기만 보는 냄비팬들에게도 이동국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동시기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그를 볼 수 있었고, 어디에서건 활약이 빼어났다. 이 시기의 상세사항은 국가대표팀 약력에 기술. 왜냐면 이 시기는 사실 포항 선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선수였기 때문.

2000년에 이르러 이동국의 활약이 절정에 달하자 해외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청대와 올대는 지배, 리그와 아챔과 국대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하는 어린 철인 스트라이커, 관심이 갈 법도 하다. 베르더 브레멘, 샬케 04 등의 구단에서 러브콜이 있었고 특히 AC 페루자에서는 무조건 오라고 오퍼를 넣으며 이동국을 직접 페루자까지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구단 측에서 이동국의 무릎 상태를 보고 으응? 하면서 테스트를 요구하자 포항은 그 따위로 하면 못 보내겠다고 싸우며 거의 100% 확정일 것만 같던 이적이 결렬되었다. 이후 페루자는 잘 알듯 안정환을 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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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결국 2000년 K리그 시즌이 끝나고 이동국은 독일 분데스리가베르더 브레멘에 임대를 가 큰 기대를 모았지만, 고작 7경기를 출전하고 다시 포항으로 복귀하면서 첫 해외 진출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당시 이동국은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다.[10] 즉 해외진출을 꾀할 몸상태가 아닌데도 협회 차원에서 등 떠밀어 보낸 전시행정. 그래도 고작 6개월 임대였는데 부상에서 회복하며 7경기를 출전, 비록 골은 없었지만 교체선수로서 도움도 기록했고 베르더 감독도 크게 만족하며 강력히 영입을 요구했다. 거기다 당시 브레멘 팀내 스트라이커 경쟁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냐 하면 당시 주전 투톱이 클라우디오 피사로아일톤인데 2013년 기준으로 얘네 둘이 분데스리가 용병 역대 득점기록에서 나란히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11]

이에 따라 언론보도는 완전이적으로 나왔지만 월드컵을 앞둔 이동국으로서 부상을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고, 차출이 용이한 국내로 돌아오고 싶어했다. 어쨌든 감독이 영입을 요구했으니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은, 처참한 실패가 아니었던 것 같긴 하다.

사실 이 시기 고종수, 안정환, 이동국 트로이카가 k리그를 젊음과 실력 얼굴로 제패하며 경기장마다 수많은 여고생 관중을 끌고 다녔다는 걸 생각해 보면 돌아오고 싶을 만도 하다. 요즘보단 외국무대에 대한 존경이 덜하고, 국내 팬들도 실시간으로 외국 경기나 소식을 보기도 어렵고 인터넷이 없으니 선수도 국내 반응을 알기 어려울 터, 거기다 여고생 여중생 잡지에 표지모델까지 하던 인기를 생각해 보면 더 있고 싶을 리가...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 탈락하고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여 병역면제 특례를 받지 못하게되자 빠르게 상무행을 선택. 부산 원정 해트트릭을 시작으로 서서히 폼을 끌어올리더니 11골 6도움의 만능 활약을 한 이동국 덕분인지 상무는 2004 시즌 8위를 차지한다. 이는 상무가 기록한 K리그 최고 순위[12]. 참고로 입대하기 전까진 미소년 이미지가 있었는데 상무에서 뛰면서 원숙한 외모가 되었다. 상무에 복무하면서 비인기종목임에도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다른 종목 선수들을 보면서 마음가짐을 겸허히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3.2. EPL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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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이동국의 흑역사 1

2007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미들즈브러에 진출하지만,[13] 리그전에서는 무득점, 칼링컵과 FA컵에서 3,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2골만을 넣는 극심한 부진 끝에 1년뒤 방출되었다.

이런 부진한 활약을 본 영국 언론에선 한국의 이동국은 오지 않고 그의 탈을 쓴 유학생이 축구 선수 행세를 한다고 대차게 깠다(…). 그리고 그의 별명 라이온 킹은 거짓말이고 사실은 품바가 심바의 가죽을 뒤집어 쓴거라고 조롱하며 품바라는 별명이 탄생. 게다가 최악의 외국인 선수 1위에 랭크되면서 확인 사살까지 당했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떨어지는 피지컬.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쓰지 못하게 하면 그만인 현대 축구에서 피지컬과 경합 능력은 상대의 압박을 견뎌내며 살아남기 위한 필수요소이지만, 이동국은 거친 유럽 수비수와 몸싸움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부딪히기만 하면 나가떨어지곤 했다. 당시 미들즈브러는 스튜어트 다우닝을 제외하면 미드필더진이 완전히 전멸한 상태여서 전방 공격수들의 개인 기량과 피지컬에 크게 의존하는 팀이었기에 이동국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당시 야쿠부와 비두카가 각기 10골 넘게 넣었으며 결국은 실력으로 보여줘야 했다는 의견이 많다. 그것이 맞는 말이긴 한데 당시 보로의 주전공격수였던 야쿠부나 비두카나 연계 그런 건 잘 모르는 대신 박스 안에서만 돌아다니는 걸 대강 공 주면 피지컬로 받아내서 어찌어찌 골 넣는 타입이다. 이동국이나 카이 산리, 미도, 폰소 알베스, 레미 알리아디에르 같은 보로의 보조 공격수들의 기록은 좀 많이 좋지 않은데, 이들의 공통점은 주전 공격수들보다 기술이 좋으면서도 최소한 180이 넘는 떡대로 주전 공격수들을 기술로 몸싸움으로 보조해 줄 수 있는 역할을 기대했던 거 같은데...망했다. 덕분에 툰카이 산리는 날개로 많이 뛰었으며 그냥 좀 유망했을 뿐인 알리아디에르야 그렇다 쳐도 토트넘에서 괜찮은 모습도 보이던 미도마저 시망 상태가 됐다. 실제 비두카도 가고, 야쿠부도 가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동국도 사라져 아폰소 알베스가 뛰던 시즌 보로는 강등되었다. 막강한 피지컬과 괜찮은 슈팅력을 자랑하던 비두카와 야쿠부가 없자 제법 정확하던 다우닝의 크로스 성공률은 급락, 차라리 올리지 않는 게 공격의 맥을 끊지 않아 도움이 되는 그런 수준으로까지 떨어지게 되었다.[14] 아폰소의 피지컬이 프리미어에서도 수위급이던 야쿠부 비두카급은 아니었고, 떡대 공격수의 우산효과 없이 기술 좋은 브라질인 아폰소가 혼자 보로의 최전방에서 뭘 해보기엔 무리였다. 보조 공격수 노릇하던 반 시즌의 모습은 좋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미들즈브러 고위층의 주먹구구식 운영이 참 돋보일 뿐이다. 공짜 집어오고, 유망주 집어오고, 재활용품 주워오고, 하지만 이게 없었으면 EPL 진출하지도 못했을 거다. 시즌에 대한 큰 그림 없이 겨울 이적시장 적극 활용하고, 어엇 먹히네? 싶어서 팀의 스타일을 적극 바꾸다 실패하고... 비두카와 야쿠부가 결별 후 이내 부상으로 몰락한 걸 보면 나름의 선견지명일 수도 있겠지만, 반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준 공격수를 과감하게 신용만 하기보단 지금까지와 비슷한 스타일의 피지컬 쩌는 공격수 하나는 영입해 놨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피지컬 타입은 원래 비싸지만, 뭐... 강등보단 싸겠지!

어쨌든, 팀의 미들진은 시망상태라 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며 이동국 자신도 이점을 깨닫고 한국시절과는 달리 밑으로 내려와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링크 플레이를 해주는 등 나름대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풀타임 레귤러가 아닌 리저브의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매번 출장시간은 짧은 편이었고 결정적인 찬스에서는 종종 골 포스트를 맞추기도 하는등 운도 좀 따르지 않았다. 결국 골을 넣지 못하고 언론의 비난에 시달리게 되며 출장시간도 점점 줄어들게되자 선수본인도 골에 대한 조급증이 생겨났는지 후기에는 이런 변화된 플레이가 점차 사라지고 무리하게 골을 노리는 무모한 플레이를 일삼다가 자멸하게 된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말하길 어느 경기에서 넣어야 되는 걸 많이 못 넣었는데 그 때 이후로 동료들의 신뢰도 잃어 패스도 잘 안 왔다고.

또한, 06-07 시즌이 끝나고 아시안컵이 열렸는데 이동국은 부상과 팀적응을 위해 대표팀 소집을 거절하는 입장이었으나, 당시 프리미어리그 삼총사(설기현, 이영표, 박지성) 세 명이 모두 소집에 응하지 않아 공격진에 구멍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베어벡 감독과 홍명보 코치가 이동국을 설득하여 억지로 합류 시켰다. 그러나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아 올림픽 대표팀과 20세 이하 대표팀에까지 합류하여 훈련을 받는등 최악의 컨디션이었고 몸상태가 좋지 못해 결국 아시안컵 본선에선 많은 기회를 받지도 못했다. 결국 제대로 대회에 뛰어보지도 못하고 팀에서 시즌 준비도 하지못하는 아주 어정쩡한 휴식기로 남게되었다.

말하자면 부상 회복 이후 잠깐 출전-> 이후 k리그 휴식 -> epl 윈터 브레이크 -> 교체로 가끔 출전 -> 도무지 폼이 올라오지 않음 -> 잘하면 될듯도 해서 다음 시즌을 기약 -> 여전히 폼이 안 올라옴(...) -> 적은 기회에 조급해져 무리한 플레이 -> 시망테크.

잔인하게 말하자면 이적 실패의 정석이라 할만큼 이동국은 여러 오류를 한꺼번에 안고 떠났는데, 결과적으로 이 처참한 실패는 한국 축구 전체에 좋은 사례로 남았다. 이후 해외 진출을 하는 선수들은 가능한 위험요소를 줄이려 애쓰고 현실적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3.3. K리그 복귀 이후

3.3.1. 2008년


이동국의 흑역사 2

보로에서는 이동국을 급처분하려고 중동, 일본, 유럽 등을 알아봤지만 입질이 없었고, 이에 주급이라도 어떻게 하고 싶어서 공짜로 보낼 생각을 했다. 이때 포항이 손을 내밀었는데 포항은 이동국의 현재 기량 저하 및 선수의 의지를 존중해서 공짜로 풀어줬던 과거를 생각해 조금은 낮은 연봉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동국의 당시 상처 받은 자존심[15]에는 친정에서 서운하게 대한다고 비춰졌을 수 있고[16] 거기에 6개월 후면 프리로 풀리는 입장이라 포항과 결별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이적은 이 웹툰을 보면 알 수 있듯 포항 입장에서는 그냥 뒤통수 얻어맞은거다. 상처받은 자존심이고 뭐고 그냥 포항에 오기 싫었다고 밖에는...다만 이런 세부사정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포항팬들도 그냥 애증의 관계 정도로 얘기하지만 사정을 아는 포항팬 입장에서는 그냥 배신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해 재기를 노렸지만[17] 두두 등의 외국인 삼인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에서 밀리고 감독의 전술적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그래도 이동국을 기대하던 성남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김학범 감독이 물러나고[18] 신태용 감독대행이 부임하면서 결국 전력외 판정을 받고 이적한다.[19]

3.3.2. 2009년

결국 감바 오사카로 떠나버린 조재진의 공백을 메꿀 선수를 찾던 '재활 공장장' 최강희 감독의 눈에 띄어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전북 입단 후 리그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진-루이스, 에닝요, 최태욱-의 지원 사격과 최강희 감독의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팀 공격의 중심에 서서 골폭풍을 일으켰다. 이때 득점 페이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리그와 FA컵에서 동시에 득점왕을 석권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비록 FA컵은 실패했지만 리그에서는 20골을 작렬하며 2009 K-리그 득점왕에 등극했다. 또한 K리그 MVP까지 차지하며 여전히 국내 최고 수준의 공격수임을 증명했다.

이동국에게 몰아주는 전술로 득점왕을 먹은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패스를 몰아준다고 해서 아무나 득점왕이 될 리도 만무하다. 오히려 원톱 자원이 한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있게 원톱 전술을 밀어붙일 수 있던 것은 이동국이기 때문이었다.

이동국은 시즌 26골을 넣으며 국내파 공격수로는 K리그 역사상 가장 높은 득점률을 기록했다.

3.3.3. 2010년

2010 시즌은 월드컵 이후 개인의 심리적 슬럼프와 부상이 겹쳐 약간 부진한 와중에도 9골을 넣으며 에닝요와 더불어 전북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리그 득점 순위에서도 8위를 기록. 23라운드 울산전에서는 부상 복귀 후 첫 경기였지만 특유의 골 감각으로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동갑내기 친구인 김은중과 함께 누가 먼저 100골을 달성할지를 놓고 경쟁했다. 2010시즌이 종료된 현재 99골을 기록하며 통산 100골에 한골만을 남겨두었고 97골을 넣은 김은중을 제치고 현역 득점 1위 타이틀을 단독으로 보유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3월 20일 K리그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전반 32분에 개인 통산 100호골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이어 후반 19분 개인 통산 101호골을 집어넣어 팀의 스코어를 3:2로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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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부상 중인데 최강희 감독의 발언이 압권. 낫지 않으면 세탁기에 돌려버리겠다니(...)

3.3.4. 2011년

2011년 8월 그의 트위터에 아랍어를 모르겠다고 글을 남겼는데,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리미어리그의 알 나스르에서 그를 아시아 퀴터 1순위 영입 대상으로 삼아 홈페이지에 사진과 여러 정보를 올렸기에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2011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을 하며 전북의 4강행에 기여했다. 8강전 세레소 오사카전 1,2차전에서 무려 6골을 넣었는데, 2차전에선 4골을 넣으며 6:1로 크게 이기며 1차전 패배(3:4)를 확 뒤엎으며 팀의 4강진출에 기여했다. 현재 모두 9골을 기록하며 득점 1위에 올라 이 대회 득점왕으로서도 유력하다.

10월 3일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역대 K리그 한 시즌 최다 도움 기록을 갱신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레전드로 진화하는 중. 역대 최다 골 기록도 딱 1골 차이다!

10월 30일 정규리그가 종료하면서 도움 15개를 기록해 도움왕을 차지했다.어슬렁거리다 줏어먹기만 하지 연계 못한다고 까던 동까들 보고있나? 이로서 K리그 사상 최초로 개인 타이틀 전부 획득[20]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울산 현대 호랑이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1차전 PK를 얻어내며 원정 승리에 기여했다. 2차전 홈경기에서도 PK를 얻어냈지만, 본인이 찬 공은 그만 실축. 그래도 2:1로 승리하며 또 다시 챔피언 트로피를 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2월 7일 열린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MVP), 팬들이 뽑은 상, 도움상, 베스트일레븐 공격수 등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아 4관왕에 올랐다. 이동국은 시상대에 자주 오른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2009년에 이어 큰 상을 또 받게 돼 영광이고 감사한다'며 '올 한해 우승만을 위해서 매일 땀을 흘린, 이제는 가족과 같은 팀 동료들과 같이 받는 상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MVP에 오르며, 통산 두 번째 MVP를 차지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MVP까지 차지하면서 클럽 커리어로는 이제 이룰 것을 거의 다 이룬 셈.

시즌 후 1박 2일에 섭외되었다.

2011 시즌까지 개인통산 115골을 기록, 역대 득점 1위 우성용과 단 1골차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이상 2012 시즌 기록 경신은 확실하며, 단지 그 시점이 언제냐가 문제일 뿐이다.

시즌이 끝나고 중동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조건의 오퍼가 들어왔다. 건물 몇 채와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주위에서는 '가지 않는것은 미친짓이다.'라며 중동으로 갈 것을 권유했지만 이동국은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아내가 왜 중동에 가지 않느냐라고 묻자 감독님이라고만 대답했다고. 결국 이적하지 않고 전북에 잔류했다. 하지만 감독님이 떠나고 말았다.

3.3.5. 2012년

2012년 3월 3일 K리그 개막전에서 성남을 상대로 2골을 넣으며 개인통산 117골을 기록, K리그 통산 최다골 신기록을 달성했다.

2012년 3월 3일이후 5골과 도움을 계속하며 기록을 달성중 5월 26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2어시를 기록하며 122 득점 50 도움으로 50-50과 100-50 달성.

26골 6도움으로 데얀에 이어 득점 2위를 거두며 개인통산 리그 141골을 기록했다.

3.3.6. 2013년

전북 현대 모터스의 선수단 물갈이로 인해 주전급 선수의 최대 절반 정도가 바뀐 상황에서 조성환의 뒤를 이어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대전의 장신 용병 케빈이 영입되면서 같이 기용될 때에는 좀더 후방으로 빠지며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2년 4월 3일에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CL) 조별리그 F조 3차전 우라와 레즈와 원정경기에서 출전했다. 이날 체력 안배를 위해 선발출장하지 않았는데, 팀이 1-0으로 끌려가자 후반 교체투입되어 1골 2도움을 올리며 전북의 3-1 역전승에 기여했다. 또한 통산 19골을 달성하며 18골의 레안드로(감바 오사카)를 누르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득점 단독 1위가 되었다. 이동국의 기량이 떨어지지 않아[21] 또한 골을 넣은 뒤 이동국이 보여준 골 셀러브레이션이 화제가 되었다. 대중들에게 최근 영 좋지 못한 팀에서 착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지성을 응원해달라는 뜻으로 2010년 5월 박지성이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골을 넣고 보여준 산책 세리머니를 재현했고, 이를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한 덕분에 이동국의 이름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사이타마 둘레길로 개칭당했다

8월말에 FC 서울전에서 김용대의 태클 이후 인대 부분파열 부상으로 전치 6주 진단이 나왔다. 부상중에 최근 전북과 2년 계약연장에 합의하고 '전북에서 ACL 우승컵을 꼭 들고 싶다.' 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래도 부상 여파 속에서도 11월 28일까지 리그 13골 2도움으로 상당히 활약했다.

3.3.7. 2014년

2년 연속 완장을 차, 최강희 감독의 신임이 두터움을 보여주었다.

리그에선 제4 라운드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ACL 챔피언스리그에선 득점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드디어 3월 29일 에서 열린 제5 라운드(vs 성남)에서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22] 시즌 1호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려서(1:0 승리), 지난해의 상대 전적 2연패의 수모를 갚았다.

7월 20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경기에서 상주 상주를 상대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역사상 세번째로 60-60 클럽 가입 대기록을 세웠다. 더욱이 이날 경기는 18시즌 532경기를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는 최은성 은퇴 경기였기 때문에 전주 팬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날이 되었다. 레전드의 은퇴를 축하하는 레전드의 헌정포
그리고 7월 25일 서울에서 까마득한 후배의 마지막 경기에 나서 여전한 발리슛 득점을 기록하며 다시 기관총 세례

8월 16일 포항 원정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는데 전북이 최근 포항전 상대전적이 5경기 무승[23]을 기록하며 자칫 징크스로 굳을 뻔한 상황을 타개했고, 더구나 1위 전북과 2위 포항은 불과 승점 1점 차이였는데 단숨에 4점으로 도망가는 의미있는 승리였다. 그리고 이동국이 전북 소속으로 기록한 100호 골이기도 했다. K리그 역사상 한 팀에서 10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데얀(122골 서울) 김현석(110골 울산) 윤상철(101골 안양 LG)에 이어 이동국이 4번째인 진기록이다.
이동국 전북 소속 100호골

11월 7일자 리그 13골로 여전히 득점 선두. 그 나이에 아직도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몇 경기를 앞두고 종아리 부상으로 시즌 아웃(......). 게다가 산토스도 13골로 현재 공동 득점 1위에 그 뒤를 11골로 임상협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런데 37라운드에서 전남 드래곤즈스테보가 2골을 넣으면서 13골로 동률이 되어, 스테보가 득점왕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24] 하지만 스테보가 결국 골을 넣지 못 하여 이동국과 산토스의 득점왕 대결이 이어졌다. 만약에 산토스가 골을 넣지 못 한다면 출전 시간이 이동국이 더 적기 때문에 이동국의 득점왕이 확정된다. 결국 산토스가 포항을 상대로 골을 집어넣으면서 이동국은 아쉽게 득점왕을 놓치게 되었다.
득점왕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끈 활약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2014 K리그 클래식 MVP, 팬타스틱상을 수상했다. 둘 다 2009, 2011 시즌 이후 3번째 수상이다. 이로써 K리그 MVP 최다 수상자가 되었다.


3.3.8. 2015년


카이오가 임대 복귀를 하고,[25] 에두가 팀에 합류했다. 에두가 수원 삼성 시절에 상당한 클래스를 보여줬기에 이번에는 지난 시즌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 예상. 최강희는 이동국 - 에두 투톱도 기대하고 있다며 다양한 전술을 시도할 것이라 밝혔다.

2월에 허벅지 부상을 당해 아챔 1라운드 경기인 가시와와의 경기, 2라운드 산둥 원정, 그리고 K리그 개막전인 성남과의 경기에서 뛰지 못 했다. 그 사이, 에두는 산둥 원정과 성남과의 경기에서 연속으로 골을 넣으며 맹활약 중. 3월 14일 FC 서울과의 K리그 2라운드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처음으로 전북 4가 전부 출전했다. 그리고 3월 17일, 아챔 3라운드인 번즈엉과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며 2골을 넣으며 에두와의 치열한 경쟁을 예상하게 했다. 막, 부상에서 회복한 데다 복귀전 후, 훈련에서 또 가벼운 부상을 당해 3월 국가대표 평가전에선 김신욱과 함께 제외되었다.

4라운드에서는 다시 후보에 있었는데 에두의 골 결정력이 물이 오른 데다가 상대는 미드필더들이 매우 탄탄한 포항 스틸러스라 투톱을 쓰는 것은 무리라 판단되었기 때문. 53분, 문상윤과 교체투입되었고, 71분 멋진 크로스로 에두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여전한 클래스를 입증했다.

3.4.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K리그에서의 활약

이동국이 대표팀이 아닌 소속 클럽에서 이룩한 수많은 업적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전북에서 득점상을 차지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 MVP에 올랐고 2011년 도움상, K리그 통산 최다 득점 및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였다. 신인상과 득점상, 도움상을 모두 기록한 것도 K리그에는 이동국 선수가 유일하다. 그밖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2011년 준우승과 최다득점,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 통산 최다 득점 기록도 현재 이동국 선수가 가지고 있다.

이러한 K리그에서의 활약과 동료 선수들과 축구전문가들의 후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안티들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K리그 득점상을 차지했더니 '줏어먹기만 하고 패스도 할 줄 모른다.' 고 비난하고, 도움상을 차지했더니 '어차피 국내용이다.' 고 비난하고,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맹활약했더니 이젠 '그래봤자 아시아용' 이라고 비난하는 식이다. 그럼 더이상 어쩌라고

이런 K리그에서의 어마어마한 활약상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유럽진출에서의 부진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K리그, 그리고 최근 몇년간의 활약상을 봤을때 '아이러브사커'나 포털사이트 댓글에서 불거지는 이동국vs박주영의 논란은 이동국과 박주영을 비교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정론이나 박주영은 프랑스리그에서의 활약상이 있었지만물론 아스날에서는 주멘으로 등극하였지만[26][27] 이동국은 베르더 브레멘에서도, 미들즈브로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미들즈브로에서는 계속해서 주전으로 나왔음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28] [29]

허나 분명한 것은 이동국의 K리그에서의 업적이 유럽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까내린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물론 아시아용이라는 평가는 여러모로 논란이 많을 수 있지만 최소 K리그나 아시아에서 이동국과 비교할만한 현역 아시아 스트라이커 가운데에서는 몇 없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그와 마찬가지로 유럽무대에서의 부진 역시 사실이기도 하다

4. 국가대표 활약상

K리그에서의 활약에 비해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은 뭔가 좀…. 묘하게 국대 경기에서 부상과 불운이 많은 선수다. 사실 이런 평가도 붙박이가 아닌 요즘이나 나오는 거지, 각급 대표팀의 대표 노예시절만 해도 국가대표로서의 활약 >> 리그에서의 활약이었다. 리그에서 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국대에서 잘했다. 또 너무 자주 차출되어서 리그에서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고.

다만 월드컵 본선과는 인연이 없다. 월드컵에서 삽질을 하면서 평생까임권을 획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본선 중요한 무대에서 이동국이 기용되었던 건 우루과이 전 한 경기 후반 교체, 슈팅 한 번 실수뿐이다. [30] 1998년 월드컵 네덜란드전 자포자기교체 뜬금포 이후, 2002년 월드컵 엔트리 탈락, 2006년 월드컵 부상 탈락, 2010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전 자포자기 교체출전과 우루과이전 교체출전. 이렇게 12년을 벼르고 별렀던 월드컵 무대는 고작 38분을 뛰고 끝났다. 안습. 그런데 이 기록이 가장 긴 기간 사이에 월드컵에 출전한 기록이다. 슬픈건 축구선수로서 가장 왕성하게 뛸 나이에 국가대표에 차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2002년 만23살, 2006년 만27살.)

이처럼 기회 자체가 극히 적었던 월드컵 본선을 제한다면, 대표팀에 집중적으로 소집되던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까진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수없이 집어넣은 승부사다. 올림픽 본선에서도 골을 넣은적이 있다. 2014년 12월 현재 A매치 33골을 기록중이며 이는 역대 공동 4위[31]안에 드는 성적이다. 비아시아권 상대 득점 기록을 봐도 준수한 편이다. 현역 가운데 박주영과 함께 유이한 랭커. 나이가 있기에 결국 박주영에게 추월당할 확률이 높다. 릴로 이적을 준비하는 박주영에게 갑자기 처음 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그리고 리그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결국 2014년 월드컵에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었다. 그리하여 이동국이 국가대표로서 월드컵 본선에서 뛴 시간 총합이 고작 51분에 불과했다. 이는 한경기 풀타임의 절반만 살짝 웃도는 수준에 불과했다.

월드컵이 폐막 한 이후 A매치가 시작되었다.
이 때도 이동국은 A매치 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
월드컵 이후의 A매치였는데, 9월 5일 대한민국의 첫 상대는 2014년 9월 10일 현재 FIFA랭킹 29위의 남미의 복병?베네수엘라였다.
이 경기에서 그는 1:1의 상황중 역전골과 쐐기골(개인 A매치 31,32호골), 두 골을 연달아 백투백?! 성공시키며 라이온킹의 부활을 알리기 시작했다.(...라고 언론에서 언급되었다.)

4.1. 98년의 혹사.

우월한 피지컬과 기술을 앞세워 이미 어렸을 때부터 청대에 선발되다, 이미 97년부터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대 상비군에 포함되고, 프로 1년차 19살의 나이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긴 했지만, 황선홍최용수에 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5:0으로 패한 네덜란드전에 교체출전하여 간담을 서늘하게하는 중거리슛을 날렸다(다만 노골).

이 기세를 바탕으로 이 해 10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u-20 대회에 소집된다. 김은중과 투톱을 결성한 이동국은 6경기 출전 5골을 뽑으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중국과의 경기에서 1골, 이라크에게 2골, 일본에게 2경기에서 2골을 뽑았다. 일본과는 두 경기를 치렀는데, 예선 경기에서 김은중과 이동국이 골을 뽑으며 2:1 승리, 결승전에서도 김은중과 이동국이 골을 뽑으며 2:1 승리를 차지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이동국의 터닝슛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며, 월드컵에서의 활약과 이 결승골을 바탕으로 이동국은 일약 국민적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11월, 이동국은 올림픽 대표팀으로 소집, 허정무 감독의 첫 경기인 카리브해 올스타팀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넣으며 확실하게 눈도장을 박는다.그리고 12년에 걸친 애증의 시간이 시작된다. 22일 한중 정기전 상하이 원정에서도 올대 자격으로 참가하나 중국의 순지하이와 리웨이펑의 분투로 0:0 무승부.

같은 해 12월에 열린 방콕 아시안 게임 예선은 김병지, 최용수, 유상철, 윤정환 등 호화멤버. 대회 기간 동안 최용수가 아시아를 짓밟는 위엄을 과시했으나 이동국은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최용수의 파트너 자리를 김은중에 넘겼다.[32]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홈팀 태국과의 8강전에서 한국은 연장혈전 끝에 패배하고 만다. 태국은 2명이나 퇴장을 당하는 결사방위 끝에 승리를 사수한다.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흑역사. 누가 좀 최용수 감독에게 인터뷰 좀 했으면.

4.2. 99년의 혹사

99년 1월, 이동국은 올대에 소집된다. 사실 이 즈음 올대 국대를 겸임하던 허정무 감독이 각급 축구대표팀을 상시 소집해서 훈련시켜 팀의 경기력을 높이자는 건의를 축협에서 수리, 국대는 한 달마다 한 번씩 올대는 주일에 한 번씩 훈련하자는 계획을 수립, 쓸데없이 몸만 바쁜 나날이 이어질 것은 안 봐도 자명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 때 올대를 초청해 벌어질 던힐컵이라는 대회 및 본게임인 시드니 올림픽에 대비, 호주 전지훈련에 나섰고 이동국은 평가전에서 4경기 3골을 집어넣으며 주전 낙점을 받았다 한다.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던힐컵 경기는 날씨가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등 한국과는 정반대의 날씨를 자랑했다. 이동국은 중국을 2골 1어시로 농락, 말레이시아는 김도균, 최철우와 함께 1골 씩 터트리며 3:0 승리, 어시스트는 박진섭. 불가리아는 5:1로 우주에 보내주며 이란과의 4차전에 돌입, 이동국과 설기현이 보란 듯 1골씩을 터트리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허나 이 시기 포항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예선 기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이 빠지는 통에 3위로 조별예선을 탈락하고 만다.

던힐컵 결승상대는 지난 대회 우승팀인 중국, 1차전에서 2골 1어시로 짓밟았던 이동국을 맞아 중국은 소림축구의 심후한 내공을 선보인다. 소림 무공의 손속이 지독히도 잔인함에 격분한 이동국은 후반 초반, 당시 소림 사커의 선봉장 리웨이펑성님과 쌍방 팔꿈치를 교환하고 심판의 앞에서 동반 레드카드로 합의, 퇴장을 당한다. 경기는 연장전 최철우의 골든골로 1:0 마무리.[33]

이후 이동국은 잠깐 소속팀으로 복귀, 아챔 알바를 뛰고 이번에는 호주에 있는 청대에 합류해 1달간의 전지훈련에 참가한다. 절친 김은중도 함께였는데 이동국이 좀 심하긴 했지만 비시즌 기간 이딴 거 없기는 마찬가지라 둘 다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지만 조영증 감독은 특별 훈련을 통해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시키겠다고 자신한다.

4월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다. 조의 구성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말리, 한국.[34] 포르투갈 전에서엘리트 fm 선플 선생 히카르도 소사가 1골, 시망 사브로사가 2골을 넣으며 김용대가 지키는 한국 골문을 유린, 한국은 3:1로 패배한다. 우루과이전에선 3분 경 들어간 1골을 넘지 못하고 패배한다.[35] 조영증 감독은 신나게 두들기고도 골이 안 들어간 경기에 격앙, 유명세로 축구하지 말라 운운하며 이동국을 닦달한 후 해이해진 정신력 문제 및 칼을 갈던 서브에게 기회라는 명목 아래 이동국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나희근, 서기복 등을 투입한다.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한 말리와의 마지막 경기, 한국은 설기현의 2골과 나희근의 pk로 앞서가나 후반 55분이 지나 3분 만에 말리의 연속골이 터지며 아프리카 리듬이 살아나자 조감독은 서기복과 나희근을 바로 빼버리고 이동국과 우진석을 투입한다. 그리고 경기는 70분에 이동국의 1골로 마무리, 4:2.

한편 예선에서 준우승했던 일본은 뻥글과 같은 조에 소속, 뻥글이 살신성인 3전 전패를 헌납한 끝에 4팀 중에 3팀이나 토너먼트에 진출해 준우승까지 차지한다. 이 대회 우승국은 훗날 유로와 월드컵까지 제패할 스페인.

포항은 2월, 이동국이 올대에 차출된 기간 동안 치러진 아챔에서 탈락한 것에 분개, 이동국이 나이지리아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모로코행 비행기에 태워 아시아 챔스 우승팀과 아프리카 챔스 우승팀이 붙는 경기인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에 참가시킨다. 저저번 대회에서 성남이 통합 5:0으로 가볍게 컵을 따냈지만 포항은 저번 대회 이집트의 자말렉에게 원정골 득실로 패배했고, 올해도 이동국이 청대 때문에 불참했던 4월 11일의 홈경기에서 2:2로 비겼기에 독이 올라 있었다. 그래봤자 4월 25일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지만...

언론은 이때까지도 대표팀 지상주의라, 이동국의 혹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긴 있었으나 오히려 그 초점이 어긋나 있어, 갖은 돌림빵을 당하며 주전 스트라이커를 써먹지도 못하는 포항에게 너희들이 양보하고 이동국에게 휴식을 준 다음에 올림픽 대표팀에 양보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아챔 탈락하고 아프로-아시안컵도 날린 포항은 무슨 죄여...

이동국은 리그와 아프로-아시안컵 등 잠깐 소속팀 알바를 뛰고 나서 허정무 감독의 올대에 합류한다. 5월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1차 예선, 이동국은 25일 스리랑카, 27일 대만, 29일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 출전해서 6골 1어시를 작렬하며 뛰어난 양학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6월 2일 sk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다시 소속팀으로 복귀한다.

10월 다시 올림픽 대표에 소집되었으나 이동국은 몸이 좋지 못해 평가전과 중국과의 1차전을 소화하지 못했으나 18일 바레인 원정에 교체되어 들어오자마자 1:0 경기의 결승골을 터트리고 29일 중국과의 2차전 원정경기에서도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는 1:1 무승부를 거둔다.

이미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한국은 11월 13일 바레인과의 경기에서도 SES와 군악대, 코요태를 초청하고 이미 시대사의 영역 고종수와 이동국을 노리는 여학생들을 무료입장을 시키는 등 축제분위기였다. 경기는 역전승, 3승 1무로 올림픽 본선 진출. 이동국은 조별예선에서 총 8골을 넣는다. 훌륭한 양학능력 과시.

12월, 이동국은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 역시 휴식기 비슷한 것도 부여받지 못한 채 올림픽대표팀의 국내 전지훈련에 참가한다. 휴가랍시고 며칠 정도 놀고, 올림픽 대표팀 멤버를 모아 금강산 관광이나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언론은 어린 선수의 혹사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올림픽 대표팀, 휴가도 반납하고 태릉에서 구슬땀 따위의 기사나 내보내며 혹사를 돋우기고 부추겼다.어째 서울 소재 모 야구구단 냄새가 나는데...

4.3. 00년의 혹사


2000년 밝자마자 이동국은 올림픽대표팀 자격으로 호주 4개국 친선대회에 참가하러 출국한다. 9일 이집트와의 경기는 설기현과 이관우의 골로 2:0, 12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이동국, 설기현, 최철우의 골로 3:0, 15일 호주와의 경기는 이동국과 설기현의 골로 호주를 잡았다. 박지성이 막내이자 뉴페이스로 참가했으며 아직도 허정무가 박지성을 발굴했다고 떠벌이는 계기. 올대는 전훈장소를 뉴질랜드로 옮겨 21일, 23일 뉴질랜드와도 연습경기를 가졌다.

2월은 성인대표팀의 멤버가 되었다. 한국은 북중미 골드컵에 참가, 캐나다와 코스타리카와 한 조에 속했다. 첫 경기인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기고, 코스타리카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이동국의 선제골로 한국은 1:0으로 리드를 잡으나 완초페의 동점골이 터진다. 이후 이민성의 중거리가 작렬하며 본선진출이 코앞이었으나 동점골이... d조의 3팀은 모두 3무이고 특히 캐나다와 한국은 득실차뿐 아니라 득점과 실점까지 모두 같은 상황, 한국은 동전던지기에 의해 고배를 마시고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동국의 무릎은 이때부터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잇따른 강행군 앞에서는 인간의 무릎이 버틸 수가 없는 법이다. 1년 새에 국대, 청대, 올대, 주요 예선 본선이 아닌 전지훈련, 시범경기, 시시한 국제컵대회, 클럽, 리그, 컵, 올스타전, 아챔, 아프로아시안컵,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중동, 동남아, 북미, 추웠다, 더웠다, 추웠다, 더웠다... 호날두도 이러지는 않는다.

결국 골드컵 대회 중에서는 무릎에 붕대를 감고 뛰었고 대회 기간이 끝나자 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끝내는 선진의료의 혜택을 받기 위해 독일로 날아가 재활을 하게 된다.

00년 전반기는 골드컵 출전을 제외하고는 독일에서 재활, 이탈리아에서 페루자의 오퍼를 받아 돌아다니며 통짜로 날렸고, 7월부터는 다시 프로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며 올대와 국대에서도 친선 경기 등 잡다한 경기에 출전한다.

8월에 이르자 9월 올림픽을 대비한 평가전이 한창이었고, 9월에는 본격적인 올림픽 무대가 열렸다. 당시 멤버 중 굵직한 멤버만 해도 김용대, 홍명보, 김상식, 이영표, 박지성[36], 송종국, 고종수, 이천수, 김도훈, 이동국 등이고 다른 멤버들도 당시 컨디션이 좋았으며 본프레레의 나이지리아를 평가전에서 5:1로 뽀개는 등 분위기도 좋았다.

그러나 수비핵심 홍명보가 부상으로 이탈함에 인해 수비 라인에는 큰 혼란이 일었다. 첫 게임 스페인전, 마르체나와 알벨다, 사비의 중원 라인 앞에 이천수와 고종수, 김도균 등 한국의 미드필더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당시 밀란에서 뛰던 호세 마리와 유명한 공격수들인 라울 타무도와 앙굴로 등에게 안드로메다행 열차를 타며 벨라마잔, 호세 마리, 사비에게 거의 10분 터울로 전반에만 3골을 내줬고 경기 양상은 더 처먹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무릎에 붕대를 감았던 이동국은 이 경기 후반 20분께에 교체출전했고, 허정무는 그 경기력에 만족하여 필승의 의지를 다지며 모로코전에 선발출전시킨다. 경기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빨대 꼽고 빨다가 김도훈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천수가 차고, 골키퍼에 막힌 것을 다시 이천수가 재차 차넣으며 1:0 승리한다. 이동국은 리드를 잡자 교체되었다.

다음 상대는 스페인을 3:1로 이긴 칠레. 이천수가 넘어진 상대의 얼굴을 발로 까면서 경기 초반부터 퇴장당하나역시 밀레니엄 특급! 이동국이 어떻게든 골을 우겨넣었다. 한국은 이후 결사방위 태세로 들어가며 1:0 승리를 따냈고 이동국은 풀타임을 뛸 몸상태가 아니었던 탓에 경기 중반에 교체.

한국은 2승 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모로코가 3전 전패 조공을 바치는 바람에 득실차로 탈락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스페인전 이후 한국축구 헛물만 들었다, 말만 잘한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고 칠레전에 이긴 후에도 왜 스페인전에 이런 투지를 발휘 못했냐고 비난했지만...사비 축구 앞에 투혼 발휘해 봤자 당시 스페인이 에투의 카메룬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고 칠레마저 동메달을 땄던 걸 생각해 보면 홍명보의 공백이나 이천수의 퇴장이 아쉬웠던 대회.

이후 10월 이동국은 국가대표에 소집, 두바이에 날아가 lg컵 4개국 친선대회에 출전한다. 5일, 선발출전했으나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는 1:0으로 지던 경기를 이영표의 골로 간신히 따라잡았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배, 7일, 호주와의 경기에도 선발출전해 2:0으로 지다 4:2로 지던 경기에서 마지막 4번째 쐐기골 성공하며 준우승을 거두고 본격적인 아시안컵 무대를 위해 레바논으로 건너간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올림픽 8강 탈락 때문에 국대마저 경질 위기에 놓였던 허정무는 사퇴를 선언하는 실갱이 끝에 유임, 올림픽 8강의 한을 반드시 아시안컵 우승으로 풀겠다고 언플을 풀어놓는다.

10월 13일에 열렸던 중국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 이영표와 노정윤의 골에도 불구하고 홍명보가 억울하게 퇴장하고 pk를 받는 등 사우디 주심의 오심과 중국의 만리장성 축구를 뚫지 못해 2:2로 무승부. 이어지는 쿠웨이트와의 16일 경기는 소나기 슈팅을 퍼부었으나 1:0 패. 이로서 한국은 벼랑 끝에 몰리나 19일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이동국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조 3위 와일드카드로 8강에 올라간다. 결과적으로는 비기기만 했어도 올라갔지만 당시 상황상, 국민정서상 다득점이 필요했기에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 3위의 대가는 8강에서 저번 아시안컵에서 6:2로 개처럼 털렸던 이란과의 만남. 언론들은 저번 대회 한국전에서 홀로 4골을 처넣으며 바이에른 뮌헨 진출까지 한 알리 다에이를 두려워했다. 팀이 1:0으로 후달리게 되자 무릎 때문에 벤치에 있던 이동국은 교체를 자청했고 허정무도 승인한다. 후반 45분, 코너킥 상황에서 이동국의 슈팅을 이란 골키퍼가 간신히 막아낸 걸 김상식이 주워먹으며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하고 연장 9분 노정윤의 땅볼 크로스를 받아먹으며 이동국은 이란을 털어버리는 결승골을 작렬한다.

26일 벌어질 4강은 전대회 준우승팀 그리고 이번대회도 준우승할 팀 사우디와의 일전. 팀은 2:1로 패배했다. 이동국은 선발로 출장,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와중에 어떻게 어떻게 한 골을 집어넣었다.

29일 벌어질 3, 4위전은 중국과의 일전. 이번에는 무승부 이런 것도 없는 외나무다리 승부였고 여기서 진다면 허정무의 지도자 생활은 불보듯 뻔했다. 허정무는 이동국을 선발 투입했고 이동국은 어김없이 보란듯이 골을 넣는다. 경기는 1:0으로 끝나고 3위로 마무리한 대회에서 이동국은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한다. 허정무는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며 국대 감독에서 내려간다.

훗날 허정무와 이동국이 이 사건에 대해서 술회하기를 허정무는 이동국이 뛸 수 있다고 해서 내보냈다, 이동국은 감독님께 뛸 수 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뭐 그러나저러나 이제 이동국의 무릎은 맛이 갔고 떨어진 스피드는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4.4. 혹사에 대한 세평과 언론

98년에서 00년까지 이동국의 대표 경기를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적은 이유는 첫째 이 시기 청대와 올대의 경기를 대략적으로나마 남기고, 둘째 후진적이던 한국 축구의 행태를 얘기하고, 셋째로 혹사당하는 와중에서 언론과 여론이 어린 선수에게 어떤 대접을 했는지 잊혀지지 않도록 소개하기 위해, 넷째는 도대체 이동국이 국가대표에서 해준 게 없다는 비난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후진적 행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당장 시드니 올림픽 때 홍명보 대신 선출된 강철만 해도 청대 올대 국대 돌림빵의 산증인이다. 이후로 이천수가 2002년 직후 '개사기유닛'으로 통하다가 2006년 이후 폼이 뚝 떨어졌고, 최근엔 지동원이 맛이 가고 있다(...) 이 새기들아 작작 좀 해라 애들 다 죽는다

첫째 둘째를XX 솔까 처음 찾아보면서도 이 정도라곤 예상을 못했는데 뭔 양파도 아닌게 까고 또 까도 경기가 계속 나오는 게 너무 길지만 오히려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 얘기했으니 언론과 여론에 대한 취급을 논하자면, 이동국이 스타 취급을 받았던 건 두말하면 입아픈 얘기지만 스타에 안티 없기도 어렵고 이동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99년 초인 U-20 대회 시절부터 따라붙은 상투적인 비난문구는 실재 이동국의 경기 스타일과[37] 무관한 낙인을 찍어버린다. 게으른 천재라고.

골잡이란 스피드와 피지컬로 문전을 유린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은, 사실상 90년대 초반 축구지능으로 대표팀 No.1 공격수 자리를 차지한 황선홍의 등장으로 깨진[38] 상태였다. 하지만 언론은 서서히 변해가는 축구계의 흐름을 대변하기보다, 당장 대중의 입맛에 맞는 희생양을 만들어내 조지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그리고 제버릇 개 못준다고 이 구태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치지 않았고, 오늘도 찌라시는 매의 눈을 번뜩이며 마녀사냥을 나선다[39]

혹사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 치료를 위해 독일에 체류할 때 비난이 그 절정을 맞이한다. 페루자 진출의 실패가 계기였다. 성사나 다름없던 상황이라는 보도와 이동국의 설레발성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무릎 상태와 포항과의 트러블로 이적이 실패하고 언론이 친국내리그적, 스타 유출 방지 언플을 시도하자 이동국은 슬슬 온갖 욕을 처먹기 시작한다.

레퍼토리는 10년이 지난 지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청대 조영증 감독이 일갈했듯 건방지다, 스타 의식에 차 있다, 국내용이다, 중앙에서 처박혀서 움직이지 않고 게으르다, 열심히 뛰지 않는다, 몸싸움을 싫어한다, 후반으로 가면 급격히 체력이 저하된다, 반사신경이 느리다, 개발이다 등으로 10년은 온갖 욕을 처먹는다. 국대에 승선하려고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며 언플도 많이 겸손해지고 실력이 더욱 일신한 09년 즈음에 이르러서는 건방지다는 욕 하나는 사라졌으나, 득점왕 이후 뜬금없이 패스 안 한다는 새로운 레퍼토리로 욕을 먹었다. 결국 11년 도움 신기록을 세워버리자 이번엔 국내용, 아시아용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그냥 이유는 없지만 까고 싶어서 깐다고 톡 까놓고 말하지 그래?

혹사의 최전방에 서 있을 때 비난과 칭찬은 마치 밤과 낮이 오가듯 찾아왔다 물러났다를 반복했다. 예컨대, 불같은 비난을 받던 시드니 올림픽 기간, 마지막 경기 때 숫적열세에도 딛고도 이동국의 선제 결승골을 바탕으로 팀 전체가 결사항전 태세를 보임으로 탈락에도 불구하고 사함을 받았으나, 아시안컵 조별리그 때 부진하자 볼 것도 없었다. 스타플레이어의 숙명이라면 숙명일 수도 있겠지만.

이동국이 일시적으로나마 게으른 천재라는 세평을 불식하는 데 성공한 것은 길고도 혹독한 혹사의 일정을 끝을 아시안컵과 대회 득점왕으로 끝마치고 나서였다. 국내용이라는 낙인 또한 벗어던졌다대신 아시아용이라는 낙인 대회 기간 동안 거의 내내 붕대를 감고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언론은 투혼에 집중하기보단 헐... 일본이 우승했네 헐... 쟤네 막 청대도 우승하고 준우승하고 막 그러던데 우리 이렇게 성적이 나쁘면 02년에 개망신당하는 거 아냐 헐... 이런 수준이었고 말도 안 되는 일정 속에 무릎을 망가트린 어린 스트라이커의 투혼이나 부상, 혹사에 대한 동정 혹은 염려는 찾기 어려웠다. 쑥쑥 커라 정도가 좋은 반응이었고 이제야 그나마 열심히 뛰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둔하네 등의 반응도 넘쳐났다.

이동국이 리그라면 몰라도 대표팀에서 달성한 업적이 뭐가 있냐는 견지에서 본다면, 사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제대로 뛰어본 적도 없고, 각종 세계대회에서도 우승이나 준우승은 커녕 토너먼트까지 올라본 적이 없으며, 기껏해야 아시안컵 3위와 득점왕 정도를 이뤘을 뿐이다.

또 혹평들 역시 그 당시에는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성격이 약간 소심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는데다 젊은 나이라 멋대로 일정을 바꾼다거나, 스타 의식 소리가 나올 만한 일도 있긴 있었다.[40] 게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정말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중앙에 쿡 처박혀서 공 오기만을 기다리는 경기도 꽤 있었다. 또 경기장 내에서도 경기가 안 풀리면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41]

그러나 조금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가 참여한 모든 팀-청대.올대.국대를 예선을 통과시키고 본선까지는 올렸으며, 세계대회에서는 우루과이나 스페인 같은 강호를 상대로 득실차니 동전던지기니까지 하는 곳까진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 탈락은 탈락이지만.

4.5. 01년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국가를 위해 몸바치고 그 능력도 아시아를 떨쳐울렸으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한민국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허정무 호의 졸전을 본 축협은 축구계 대표인사를 긴급 소집하며 회의에 들어가고 거스 히딩크가 한국 감독으로 선임된다.

널리 알려졌듯 히딩크는 2년 동안 온갖 선수들을 다 실험해 보며 선수들의 조합을 고심하고, 이동국은 혹사에선 벗어나지만 냉혹한 주전경쟁 앞에 서게 된다. 02 골드컵에서도 이동국은 교체멤버로 뛰는 등 마지막까지 경쟁했으나 팀 엔트리 밸런스를 이유로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된다. 이후 거의 폐인처럼 생활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그동안 각급 대표팀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어린 나이에도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는데, 한국인이었으면 정에 끌려서 안 넣기가 어려웠고 이동국 자신으로서도 당연한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나이도 어렸고.[42] [43]

어쨌든 월드컵이 끝나고 이동국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주장을 맡아 출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 군복무가 면제되는데 4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결국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군복무를 했다. 이때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키커로 나왔던 이영표이동국 군대가라슛으로 실축해서 졌다. 네티즌들은 이영표가 이동국을 군대 보내버렸다고 했고, 패배 후 이동국이 우는 사진엔 '엉엉 군대가기 시러~'하는 댓글을 달았다.

2004년 중국 아시안컵에서도 출전했다. 안정환과 투톱을 이뤘으며, 대한민국은 8강에서 이란과 피를 토하는 혈투 끝에 4:3으로 분패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란에게 합계 4골을 넣어 득점 3위에 올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A매치 33경기에서 14골 4도움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끄는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K리그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또 한번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원톱으로 이동국 대신 뛰었던 조재진은 한국의 16강 진출이 좌절 된 뒤 '동국이 형만 있어도 달랐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당시 KTF가 이동국을 내레이션으로 섭외해 월드컵 광고를 내보냈는데 이로 인해 많은 동빠들 및 축구팬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카더라.



미들즈브러에서 부진을 보이던 2007년 당시는 이렇다할 공격수가 없던[44][45]아시안컵 대표팀에 발탁되었지만, 대표팀이 6경기에서 고작 3골을 넣는 총체적인 부진 속에서 이동국은 무득점을 기록. 또한 대회기간 도중 이운재, 우성용, 김상식과 함께 무단으로 숙소를 이탈하여 룸살롱에서 을 마신 것이 들통나 국가대표 자격정지 1년, 대한축구협회 주관 경기 출장정지 2년을 처벌 받았다.[46]

2009년부터 이근호의 급격한 부진 등으로 출전 기회가 늘어나 국가대표에서 점점 폼을 되찾기 시작하며 A매치 4경기에서 3골을 기록한 끝에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2010년 3월 4일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수비수의 머리에 맞고 방향이 바뀐 크로스를 특기인 발리슛으로 자신 있게 성공시켜 기선을 제압. 2010년 5월 16일 있었던 에콰도르와의 친선경기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그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해, 2~3주간 아웃. 그러나 결국 이근호를 제치고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남아공 월드컵 B조 조별예선 2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 이미 골은 골대로 다 먹고 다른 선수들은 지쳐 뛰지도 못하는 안습한 후반 상황에 교체로 출전했다. 그리고 본인도 짧은 시간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이래저래 아쉬운 월드컵 복귀전이 되었다.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이 나이지리아를 위해 준비된 카드라며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예전 같았으면 동빠와 동까 사이에서 키배가 벌어질 주제였겠지만, 염기훈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워낙 삽질을 한지라 부디 오염라인만 좀 빼주세요...라는 의견이 지배적.

하지만, 패배라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네티즌과 달리 대표팀 전술상 이동국을 기용하는 것은 아주 큰 모험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대표팀은 그간 박주영-염기훈 투톱체제를 고수했지만 실제 운용은 박주영이 원톱으로 포스트 플레이를 해주고 염기훈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미드필더를 지원하는 형태였다. 아시아팀과의 경기와는 달리 한국이 공격적으로 나갈수 있는 팀은 단 하나도 없는 월드컵 본선을 맞아 나온 전술로 여기에 킹으로 써야 효율이 나오는 이동국을 쓰기는 힘들다. 염기훈이나 김남일의 기용에 대한 비판은 다분히 결과론적인 주장으로 그 자체로 큰 실수라고 보기는 힘들다.[47]

16강 우루과이전에는 언론의 예상과는 달리 박주영과 김재성이 전방 투톱으로 나왔다. 이동국은 후반 15분경 김재성과 교체투입 되어 빈자리를 찾아들어가며 나름대로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줬으며 1-2로 뒤진 후반 42분경 박지성의 절묘한 스루패스로 결정적인 일대일 찬스를 잡아냈다. 그리고 이동국의 슛은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이동국이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골키퍼의 몸에 맞고 힘을 잃은 공은 축축하게 젖은 그라운드에 달라붙어서 속도가 아주 느려졌고, 그야말로 달팽이 같이 느린 속도로 골라인을 향해서 기어갔다. 골라인을 단 수십센티미터 남겨놓고 우루과이 수비수가 걷어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천금같은 동점골 기회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것이 그토록 회자되는 이동국 물회오리 슛이다.(...)

그리고 경기종료와 함께 동국대 갤러리는 폭발했다(...). 당연하지만, 부인 이수진씨의 미니홈피는 이동국의 헛발질로 찬스를 날리는 순간 빛보다 빠른 속도로 폐쇄되었다. 새벽 2시 33분 현재 4만명이 넘는 화풀이 대상을 찾던 네티즌들이 헛발질을 하고 돌아갔다.[48]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가며 힘들게 출전한 월드컵이었으나 아무 것도 하지 못한채 쓸쓸히 끝마친 것. 한 국가에서 손꼽히는 스트라이커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한 경기는커녕 합쳐서도 45분 이상을 출장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참고로 이동국은 이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어 가장 오랜 기간동안 월드컵에 불참했다가 다시 나온 선수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1998년 ~ 2010년이였으니 이동국의 공백기간은 장장 12년.

월드컵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직은 월드컵 출전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2011년 이후로는 국가대표 재발탁에 관해서 '후배들에게 더 기회가 갈 것'이라는 미온적인 태도만 보여주었다.

결국은 클럽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줌으로써 조광래 감독은 그를 차출시켰다. 이동국 본인의 도전 의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기도 하였고,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더 이상 동국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 라며 국가 대표팀에 뽑지 말아 줄 것을 개인적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1년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45분을 소화, UAE와의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는 후반 종반 교체투입되어 10분 남짓을 소화했다. 결과적으로만 놓고 봤을 때 이동국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폴란드 전에서는 박주영-이동국-지동원의 3톱이 가동되었는데, 박주영과 지동원의 측면이 살아나지 못하여 이동국이 고립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49] UAE전에선 뭘 보여줄 시간조차 부족.[50]

허나 분위기를 보면 예전과는 달리 이동국이 까이기보다는 조광래 감독이 까이고 있다. 이동국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술을 준비하지도 않은 채, 뽑아 놓고 그냥 원톱 자리에 박아 넣기만 했다는 것. 물론 이동국은 역시 안 된다, 하는 식의 시선도 아예 없지는 않다.

두 차례 국가대표팀 경기에 대하여 이동국 본인은 말을 아꼈다. "입을 열면 말실수를 하게 될까봐."라는 것이 이유. 안습

국가대표팀에서 조광래 감독이 삿포로 참사로 인해 경질되고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사령탑을 최강희 감독이 맡게 되자, 누구보다 이동국을 잘 아는 최강희 감독이니만큼 이동국의 활용 여부도 역시 주목되었는데 12년 2월 2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2골, 2월 29일 쿠웨이트와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전반전이 0-0으로 부진하자, 은퇴하는 안정환에게 갈굼 좀 먹고나서 후반전이 1골을 기록하며 한국을 최종예선으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포탈 댓글에는 역시 동까 지분이 더 높았다.

이어 최종예선 3차전인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역전골을,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두 경기 모두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안습

카타르전에서는 특기인 발리슈팅으로 손흥민줏어먹기 극장골을 넣는데 도움을 줬고, 그전에도 인상적인 헤딩경합, 움직임등을 보여 주었다, 막판 손흥민이 극장골을 넣은 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손흥민이 만들어준 기회를 하나 날렸다고 그동안 답답했던 대표팀의 경기를 뒤바꾼 활약(한 외신에서도 '이동국이 들어온 후 경기분위기를 가져왔다.'라는 인상적인 평을 남겼다. 실제로 이동국에게 높은 평점을 줬다.)은 사실상 없는 취급이 되었다.

레바논 전에서는 근래 들어 최악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김치우의 득점골 이전에 레바논의 수문장인 하산 골키퍼가 그야말로 체흐로 빙의해버렸고 수차례 찾아온 결정적인 득점 기회들을 모두 무산시켜 버렸다. 그 기회들 중 적어도 하나만 성공시켰어도 경기가 그렇게까지 어렵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움직임이 좋아도 골을 못 넣는 공격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만 이동국 외에 레바논전에 투입된 공격자원인 김보경, 김신욱, 이근호, 이청용, 손흥민 전원이 최소한 한 번 이상 키퍼와 단독으로 마주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는데도 단 한명도 이를 살리지 못하고 모조리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오죽했으면 당시 중계를 맡았던 허정무 해설위원이 '뭐에 씌인 것 같다'며 할말을 못찾았을 정도.

이란전에서는 상대선수와 몸싸움 경합하면서 코피까지 흘리며 4명의 공격수를 가동한 시스템하에서 연결고리를 맡고 헤딩을 따주는 등 여러모로 열심히 뛰었으나 슈팅기회조차 한 번 찾아오지 않으며 아쉽게 경기가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 3연전으로 이동국에 대한 비난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동국은 현재 대표팀 최고령 공격수이고 결정력으로 이름이 높은 만큼 결정을 지을 때 지어줘야 했으나 짓지 못했다. 또한 K리그 득점왕으로 리그의 명예라는 간판을 짊어지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하니 비난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부당한 건 사실이다. 세계 1류급 공격수조차도, 파투, 토레스, 즐라탄, 2010년 월드컵의 야쿠부처럼 우리집 할머니라도 넣을 것 같은 골을 놓칠 수 있다. 골을 놓친 것에 대한 비난은 그 장면으로 끝나야지 결코 그 장면 하나만으로 그 선수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승패는 병가지상사고, 경기는 또 다음이 있다. 물론 4년에 한 번씩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축구 보면 다음이 좀 멀긴 하겠지만 귀신처럼 첼시에서 골을 놓치던 토레스도 바르샤를 무너트리는 결승골을 작렬했고, 탐욕을 부리면서도 pk를 비롯한 결정적 기회를 여러 차례 놓치며 뮌헨과 네덜란드의 결승전 패퇴를 몇 차례 가져 왔던 로벤도 12/13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비록 이동국이 이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도 역시 기본적인 기량과 다음 경기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동국을 절대 다음 경기에서 보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그라운드에 출장해서 숨만 쉬거나 공만 잡아도 갖은 인격모독을 비롯한 비난이 도를 넘어선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3연전에서 절대 잘 한 건 아니다. 단적으로, 주전급으로 출장한 대회에서 6경기 동안 1골이라는 기록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클러치 능력이 없다느니, 나이만 먹고 경기만 많이 뛰었지 국대에 기여한 게 없다느니 등으로 이어지는 게 정당한 비난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면 3연전에서 넣었어야 할 기회를 마무리하지 못했으며, 국대의 고참으로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등 아주 부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 비판을 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선수 본인도 받아드려야 마땅하나, 사실을 곡해하고 도를 넘어 이동국 선수의 친지들에게까지 인격적인 모욕을 퍼붓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이동국에게 향하는 비난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전 세대부터 이어왔고, 지금까지도 끊지 못한 이 악습을 이후로도 끊지 못한다면 손흥민과 같이 이동국보다 더 많은 다음 경기가 남아있는 젊은 선수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근데 요즘 손흥민이 하는 플레이를 보면 이동국과의 비교조차 미안하게 될 정도로 국대에서도, 소속팀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이 국대란의 좀 위로 올라가서 이동국 젊은 시절이나 읽어본 다음에 30대 중반 선수하고 20대 초반 선수 비교좀. 손흥민이 무릎에 붕대 감은 채로 1년 사이에 청대도 뛰고 올대도 뛰다가 성인 국대 아시안컵 득점왕 했으면 인정.

94년 황선홍과 마찬가지로 그저 대한민국 대표팀 공격수란 까임의 최전방, 오직 씹히기 위해 존재하는 자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중. 그리고 그 영광스런 자리는 6월 11일 우즈베키스탄전에 선발출전한 손흥민이 이어받았다(...)

다만 이동국 본인은 국가대표팀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상당한 듯 하다.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 2013년 6월 30일에 경남과의 경기에서 두경기 연속 멀티골을 작렬한 이후 인터뷰에서 국대와 전북에서의 활약이 다른 이유로 심리적인 부분을 꼽았을 만큼 국대에서는 부담을 상당히 느끼는듯 하다. 전북에서는 자기 말고도 해결해줄 사람이 많아 편안한데 비해 국가대표팀에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뛴다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7월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한 선수의 뒷담화 파문이 일어나면서 그래도 이동국은 국대 마크의 무게감을 아는 마지막 세대다라고 재평가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래봤자 또 국대 뽑히면 동궈라고 욕먹겠다만

2013년 7월 8일 인터뷰에서는 월드컵 예선 이후의 까임에 대해서 나는 원래 비난을 많이 받는 선수니까,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서 동료들이 비난을 덜 받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생불

홍명보호 출범 이후에는 김신욱, 김동섭, 조동건, 서동현 등 K리그의 젊은 공격수들이 우선 선발되며 국대와 멀어진 모양새다. 다만 김신욱 말고는 전부 다 욕만 먹었고 활약이 변변찮아서 국대에서 다시 보기 힘들거라는 의견이 많다.

결국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엔트리에서 짤렸다. 이로서 이동국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역사상 가장 비운의 선수로 남게 되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막내로 엔트리에 들어가서 네덜란드전에서만 활약했으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거스 히딩크의 눈 밖에 나서 엔트리에 포함되는 데에 실패했다. 거기에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엔트리에 뽑히긴 했는데 막판에 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또다시 퇴출당했다.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엔트리에 들어가는 데에 성공하긴 했으나 나이지리아전 등 몇 경기 뛰지도 못했다. 결국 이동국의 국가대표 출전시간 총합은 고작 51분에 불과했으며 이는 한경기 출장시간조차 되지 않는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가 개최될 때 이동국의 나이는 40살. 이미 끝나버렸다.# 이는 운이 나쁘기로 악명높은 에르난 크레스포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다. 적어도 크레스포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8강 독일전과 조별리그 네덜란드전 이외의 3경기에서 풀타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기라도 했다. 또한 크레스포는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었으며 이로 인하여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뒤를 이어 실버슈를 수상하기까지 했다.

결국 2006년의 부상이 안타깝게 되었다. 2018 월드컵 때 나이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로저 밀라의 월드컵 출전 나이와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예 기능성이 없는건 아니지만... 문제는 공격쪽으로 갈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축구선수의 특성상 가장 수명이 짧은 포지션인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이동국이 2018년 월드컵에서 다시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2014년 8월 26일, 9월에 있을 평가전에 대비해 국대에 승선했다. 덕분에 센추리 클럽에는 무난히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K리그에서의 성적을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하지만 가생이닷컴에 자칭 축빠라는 놈팽이들은 왜 동국이 뽑느냐고 GR을 일삼고 있다.

그러나 9월 5일 베네수엘라전, 후반 7분 김민우의 코너킥을 수비를 슬그머니 떼어놓은 뒤에 여유로운 위치에서 그대로 헤딩골을 연결하여 역전골을 만들며 4시즌 연속 리그 두자릿 수 골을 우습게 아는 안티들에게 일침을 먹였고 후반 18분엔 이명주의 크로스가 수비머리에 맞고 떨어지자 마자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까지 기록 하여 안티들은 그대로 데꿀멍.
특히 두번째 골을 자세히 보면 크로스가 떠오를 때 수비 둘과 붙었다가 무슨 냄새를 맡은 건지 상대 골대로 몰리는 수비를 먼저 보내고 수비 머리 맞고 덜어진 공을 여느 공격수와는 다르게 낮은 바운드로 떨어질때 지체 없이 슈팅을 날려 골을 연결 하여 그야말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런 활약으로 당분간 대표팀의 공격수는 이동국의 독주체제 완료[*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였던 김신욱이 아시안게임 도중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더더욱 대표팀 내 입지가 굳건해졌다. 라고 생각되었는데 파라과이전에서 조영철이 톱으로 출전하고 이동국보다 더 나은 연계력을 보였다. 여기에 김승대까지 국대에 뽑혔으니 여전히 어린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할 상황인듯 했으나...김승대는 출전하지 못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로 이동국을 꼽았다

9월 8일 우루과이전에서는 당시 월드베스트 수비로 꼽히던 디에고 고딘에게 막혔다. 전반전에는 전술적으로 수비적으로 가자[51] 스피드가 느린 이동국으로서는 연계에 집중해야할 상황이였고,공이 오면 나름 연계플레이는 했지만, 그 공조차도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고 이근호와 교체되었다. 다만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내려오기 보다는 전방에서 싸워주는 플레이를 지시했다고 한다.

변함없는 리그에서의 맹활약으로 2015 아시안 컵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박주영은 새 팀에서도 여전히 부진한 데다, 김신욱마저도 아시안 게임에서 부상으로 시즌 아웃당해 아시안 컵 합류가 거의 불가능 이었기 때문에 뽑을 만한 공격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즌 말에 당한 부상 때문에 이동국도 아시안 컵 합류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졌고, 제주 전지 훈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 하더니 결국 아시안 컵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 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거의 마지막 국대 메이저 대회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마저도 운이 안 따라준다. 이 정도면 사실상 영고라인 확정이다. 국대 한정이지만

5. 얘기거리

  • 2005년에 미스코리아 출신 이수진과 결혼했다. 2007년에는 쌍둥이 자매를 득녀. 참고로 2010년 결혼한 은지원의 前 부인이 이동국 부인의 언니인지라 이동국과 은지원은 동서지간이 되었다. 1박 2일에 출연했을때 자막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은지원이 2012년 경 이혼을 하면서 지금은 남남사이. 2013년 또 쌍둥이 자매를 득녀하며 4자매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힐링캠프 녹화분에서 최근 아내가 또 임신해서 자녀를 다섯 둔 아버지가 될 예정라고 밝혔고, 2014년 11월에 득남하게 되었다. 3 유효슈팅 5+골. 그런데 아내가 자식 욕심이 많은편이다(..) 이러다 축구팀 만들지도 모르겠다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가 끝난지 1~2년 정도 후 당대의 인기가수였던 김현정(롱다리)과 열애설이 퍼지기도 했다.

  • 한상균의 사진으로 인해 가장 많이 웃음거리가 된 사람.

  • MD5 배틀에서는 최약의 이름 중 하나.

  • 미들즈브러에서 리턴한 뒤로 골을 못넣는 스트라이커에게 ~동궈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동궈라든지 벨동궈라든지 09/10시즌의 즐동궈라든지...

  • 포항 팬들에게는 애증의 존재. 까임은 받아도 자기 새끼라고 열심히 실드를 쳐줬지만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하고 K리그 복귀할 때 자신들이 제시한 연봉보다 더 낮은 금액에 성남으로 가버려서 까로 돌아선 팬들이 많다. 당시 파리아스 감독이 팀에 자리 없다고 안 받은 거긴 한데 애초에 포항은 감독보다 프런트가 영입 권한을 갖고 있던 팀이라[52] 데려올 수 있었으면 데려왔을 것이다. 이 문장은 말이 안된다 포항이 처음부터 안데려오겠다고 제시를 안한것도 아니고 제시를 했다. 그런데 선수가 거절했고 그보다 더 낮은 가격에 다른 팀과 계약했다. 즉 포항이 이동국을 내친게 아니라 이동국이 포항에 오기 싫었다는 말 밖에 안된다. 포항은 무조건 이동국이 부르는 가격만큼 돈을 줘야 하는가? 항목이 너무 이동국에 편향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물론 국대혹사 때문이긴 하지만 포항 소속으로 득점왕이나 우승컵 등 수상을 하지 못했다. 신인왕이 포항 소속으로 얻은 유일한 수상. 뛰어난 공격수고 K리그 레전드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포항 레전드라 얘기하기는 무언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선수 본인이 포항 출신에다가 아직도 포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는 포항팬들도 꽤나 그리워하고 우호적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그것은 포항과 이동국의 관계를 잘 모르는 어린 팬들이나 라이트 팬들이고 적어도 30세 이상의 헤비팬들이면 이동국을 좋아할리가 없다. 애당초 포항에 애정이 있는데 왜 포항보다 더 낮은 연봉을 제시한 팀으로 이적을 하겠는가? 심지어 당시 이동국은 구단에서 호의로 0원에 영국에 보내줬는데 처참하게 실패해서 돌아온 마당이었다. 그래도 구단은 떠날때와 차이가 없는 오퍼를 했는데 그것을 걷어차고 더 낮은 몸값에 다른 팀과 계약을 했다. 물론 개인사정이니 그게 잘못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이과연 정말 포항팬이라면 이동국이 곱게 보일까? 게다가 이동국이 포항에서 이룬 것도 없다. 물론 뛰어난 공격수이고 한국축구에서 중요한 선수이긴하지만 그렇다고 포항팬이 그를 무조건 우호적으로 띄워줄 이유는 없다. 항목이 이동국에게 대단히 우호적으로 편향되게 작성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반면 성남 팬들에게는 증밖에 없는 존재이다. 08년 여름에 우승권 경쟁을 하던 성남이 야심차게 꺼낸 카드지만, 그 카드때문에 성남은 완벽히 붕괴하였고, 김학범 감독마저도 사퇴하게 만들었다.

  • 전북 팬들에게는 이장님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는 존재이다. 조재진이 전북에도 스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선수라면 이동국은 전북에서 부활하고 현재까지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호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진철 전 전북 선수 이후로 선수로선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인지라, 국대가서 멘탈 깨어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국대로 보내지 말자, 나 국대 안볼래같은 입장을 보이는 팬들도 있다. 물론 반대로 최강희 감독이랑 이동국 때문에 국대를 본다는 팬들도 있다. 어쨌든 현재 국대와 그 국대(만 보는)빠들을 향한 전북팬들의 증오에 최강희 감독과 함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수원의 곽희주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번은 곽희주vs이동국 스페셜 영상이 나온적도 있다. 곽희주 뿐 아니라, 경기내내 일대일로 들러붙고, 돌아서지 못하게 파울불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수비를 펼치는 유형과의 매칭에 상대적으로 약한데 심리적 견제에 약한 특유의 유리멘탈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K리그 경기를 보면, 대부분의 팀들이 전북과 붙을 때 이동국을 이런 방식으로 마크를 시키곤 한다. 문제는 전북은 리그 수위권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이 포진한 팀이기때문에 이동국을 수비수 한명이 전담하다보면 공간이 나고 그 공간을 누군가가 파고 들어 골을 넣는다는 점이다.
  • 1998 월드컵 이후 한동안 한국축구의 희망이자 아이콘으로 인식되어 미디어에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았다. 스피드왕 번개에서는 박찬호와 투톱을 이루고(...) 그래서 5-0으로 진 것 같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선 일장기를 달고 일본 대표로 나오는 모습이 나온다.

  • 2013년 2월 말 이동국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

  • 피파 온라인 3에서는 능력치가 지나치게 좋다. 한국선수 중에는 차범근다음으로 골 결정력이 가장 높으며, 몸싸움, 발리 슛 등의 능력치도 수준급. 다만, 발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 2013년부터 전주 서신동에서 브런치 카페인 카페 아마떼 전주 서신점을 운영 중이다. 사실상 운영은 부인이 하는 듯 하지만. 비시즌기에 가면 종종 보이는 듯?

  • 트위터 이용이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 글이 올라오며, 자폭성 개그를 즐기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 나가수 초창기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임재범의 '너를 위해'란 곡과 관련된 자신의 자폭성 이야기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기사

    • 2014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의미를 잊지 말자는 글을 올렸는데 반성하는 의미라면서 자기 입대 사진을 올렸다(...)
    • 독일과 브라질의 4강 경기 후 독일 승리에 걸었다가 만원을 딴 사실을 올렸는데, 해쉬태그에 "불법베팅" "만원벌기" "점쟁이동국"이 있다(...)

  • 최근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40살이 되어서도 몸 상태가 좋으면 계속 뛰면서 골을 넣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센츄리 클럽 가입 기념으로 두골을 폭격했다.듣고 있냐, 따봉박?

  • 최근의 인터뷰로 다시 모 따봉매니아와 묵직하신 분과는 차원이 다른 멋진 멘탈을 증명해주셨다.

  • 독일과 영국 무대에서 실패를 겪고 돌아왔지만, 몸값 때문에 K리그 보다 못한 리그에 가지는 않았다. K리그와 A매치에서의 활약 덕분에 왕서방네와 기름쟁이들의 열열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생까고 K리그를 묵묵히 수호하고 있다. 한창때 이동국과 같은 세대의 선수들이 '가자, J리그로~' 노래를 부르고, 후배들도 중동과 중국에서 몸값 비싸게 준다면 냉큼 이적하는 것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위에 언급된 힐링캠프에서도 관련 부분을 언급했는데, 그 쪽에서 제시한 급료가 말 그대로 빌딩이 왔다갔다하는(...) 수준이라서 매우 고민이 많이 되었다고.

  • 2014년 9월 4일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앞둔 전날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중 사진을 찍어달라는 어린팬 엄마의 요청에 아이들에게 드루와를 시전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NIOH0cAm_xY&feature=youtu.be

6. 대표팀 공격수들과 호흡

많은 입축구 전문가들이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원톱만 가능한 공격수 운운하지만, 이동국이 한참 대표팀 붙박이이이던 초창기 시절 대세는 당연히 투톱이었고 이동국도 소속팀에서나 국대에서나 투톱으로 뛰었다. 그렇다고 원톱을 아예 뛴 적이 없던 것 정도도 아니고 원톱으로 더 긴 세월을 뛰긴 뛰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동국의 플레이 특성상 적성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지만 국제 대회에 데려갈만한 공격수 가운데 몸빵이 되고 짬이 쌓인 지금은 사실 원톱 전문이고 투톱도 가능함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황선홍 은퇴 이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를 꼽아보자면 제일 먼저 안정환이 있다.[53]이 시기는 코엘류와 본 프레레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의 혼란기였다. 또한 안정환 역시 최전방 바로 밑에 위치시켜야 진가가 나오는 공격수이다 보니 계속 동선이 겹처서 안정환-이동국 투톱은 본 프레레 시절 잠깐 시험해보고 금방 폐기해버렸다. 사실 이 때는 안정환과 이동국 선수 개인들의 부딪침도 있고 대표팀 상황 자체가 공격수에게 잘 보급해주지 못하는 개판이라서...

김은중과는 연령별 대표팀에서 많이 뛰었는데 서로가 몸싸움이 되며 센스도 좋았기에 서로를 잘 이용하였고, 이 투톱의 활약덕에 대한민국은 1998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다. 다만 이 때를 제외하면 공식적인 경기에서 서로 투톱을 서본 적이 거의 없기에 진정한 꿈의 투톱이다. 현재도 김은중과는 매우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으며 이마발이란 1979년생/1998년 청소년 대표 모임에선 이 둘이 항상 투톱을 본다.

박주영이 어린 시절에는 몇 경기 같이 뛰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맞는 듯했다. 당시 박주영은 몸빵이 전혀 되지 않는 전형적인 날카로운 움직임을 장기로 삼는 처진 공격수였고, 전방에서 몸빵으로 비벼줄 수 있는 이동국과 적당히 잘 맞았다.

최강희호에서는 박주영과 이동국 투톱이 줄곧 선보이고 있으나, 역시나 효과는 전무하다.
유럽진출 이후 박주영의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져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애매해졌다. 거꾸로 이동국이 사이드로 빠지며 주변 선수와의 연계를 중시하는 선수로 바뀌어 이동국이 오히려 쉐도우 스트라이커에 적합해졌다.[54] 이렇게 애매해진 상황때문에 둘이 같이 경기를 뛸 때마다 한쪽이 침묵하거나 동반으로 침묵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특히 2013년 2월 6일 벌어진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에서는 그간 나쁜 여론을 인식한듯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플레이로 일관하며 각자 장점마저 내다버린 최악의 결과를 빚었다. 박주영은 지나치게 아래로 처져서 플레이를 하면서 공격에 가담할 기회 자체가 대폭 줄어버렸고, 이동국은 2선 공격수에게 패스 하느라 바빠 변변한 슛도 못날렸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최강희 감독도 두명을 조합하는 것에 대해 실패했다고 인정했으며 앞으로 박주영-이동국 투톱은 국대에서 볼일이 없을 것이다.

한편 이근호와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동국의 오프사이드 라인 깨기, 패스 배급은 이근호의 활동량과 승부욕, 저돌적 돌파를 살리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으며, 이근호도 울산에서 김신욱과 콤비를 맞출 때 보다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파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신욱과는 선발 출장보다는 경기 중후반에 서로 함께하는 편인데 김신욱이 완급 조절과 좌우 연계에 능하고 헤딩 싸움도 가세해 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다른 공격진이 속도와 활동량으로 측면을 파괴해주지 않으면 답답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동시에 선발 출전했었던 이란전의 경우에도 둘 다 할 만큼은 했는데 좋지는 않았다. 김신욱은 헤딩 경합을 했고 이동국은 내려가거나 내주거나. 전술 자체가 1선이 이렇게 내주면 2선에서 해결해 주는 식이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이청용과는 같이 뛸 기회가 많지는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지만 나쁘지 않은 그저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박지성은 은퇴하고 박주영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공격 파트너들이 이청용의 움직임에 맞춰서 볼을 보급해주는 공격수가 필요해졌는데, 여기서 이동국이 좋은 모습을보여주지 못했다.

손흥민과는 무척 적은 기회가 주어졌으나 한준희는 따르면 이제까지 써 본 적이 없는 조합인데 의외로 이동국이 받고 뿌리면 손흥민이 달리는 그림으로 괜찮은 조합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평가했었다. 그리고 홍명보가 사퇴한 이후 처음으로 소집된 베네수엘라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실제로 슈틸리케호에서 손흥민과의 조합은 흥민이한테 폐를 끼친다는 얼치기 팬들의 비난과는 달리 중앙에서 받으며 수비를 끌어당기고 측면으로 뿌려주는 이동국과 그 공을 측면에서 받으며 속도를 붙이는 손흥민으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이동국이 없는 손흥민은 고립되며 무득점 행진을 이어가다 상대의 체력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생긴 공간에서 골을 넣는 등 둘은 잘 맞는 편이다.

홍명보 감독 체제서는 역시나 신임받지 못하였고, 이후 홍명보는 사퇴하였으나 이미 나이도 있고 해서 장기적으로 국대서 재기용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폼이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부활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지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멕시코의 블랑코처럼 진짜 40살 넘은 나이에도 대표팀에 들락거릴지도...일단 슈틸리케 감독이 중동 원정 대표팀 선발 관련 인터뷰에서 현 대표팀에서 가장 확실한 공격 카드로 인정 받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아시안컵에 참가 못하게 되었다.

7. 사건사고

7.1. 아버지의 병역비리 청탁사건

아버지가 98년도에 병무청 직원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수법으로 병역비리를 청탁해 적발된 바 있다. 기사 이동국의 아버지인 이남기씨는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최초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유치되었으며, 최종적으로 2천만원의 벌금형으로 판결 받았다. 이동국 아버지의 병역비리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대선후보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최초 제기하였던 김대업이었다. 관련기사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동국 아버지는 아주 적극적으로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비리, 불법, 청탁행위를 저질렀고 심지어 병역비리계의 대부였던 박노항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상당히 악질적인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했기에 초범에 전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 구속되고 나중엔 2천만이라는 거금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았다. 이동국 본인은 연루가 없다고 했으나 특별한 상해나 질병이 없었음에도 몇차례나 아버지의 병역비리 행각에 재검으로 화답했다는 점에서 의혹을 떨치기만은 어렵다. 범죄의 정도에 비해 아는 사람이 적고 언급이 덜 되는 것은 이회창, 스티브 유 등의 한국 사회를 들썩거리게 한 병역비리 파문이 일어나기 직전 시기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7.2. 2007 아시안컵 숙소 무단이탈 및 성매매 룸싸롱 출입사건

2007년도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아시안컵 대회 기간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사롱에서 밤늦게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취재에 따르면 이동국은 룸싸롱에서 접대부과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2차'까지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동국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이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성추문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


당시 이동국 와이프는 임신중 지못미

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은 국민에게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했다. 이후 이동국은 국내 입국뒤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당시 룸싸롱 출입사건에 대해 침묵하였고, 몇 년뒤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 룸싸롱 출입을 일반 술집에 출입한 것에 불과하며, 아시안컵 대회도중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해 룸싸롱 접대부들과 맥주 한잔 마신 것이 어떻게 큰 잘못이 될 수 있냐고 자신의 행동을 비판한 사람들을 도리어 비난했다. 당시 현지 취재와 룸싸롱 접대부들의 인터뷰가 존재함에도, 아직까지 이동국은 자신의 룸싸롱 출입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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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는 李東國 이었는데 2007년에 개명했다. 원래 음을 그냥 내버려두고 한자만 개명하는 경우는 사주팔자에 의해서 개명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동국의 저 한자이름은 작명사주상 최악의 획인 26획(李(7획)+東(8획)+國(11획)=26획)이며 아마도 그 때문에 계속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다고 판단해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개명한 同은 東보다 2획이 적은데 이러면 이동국의 한자 획수는 총 24획이 된다. 24획은 33획(참고로 모든 선거마다 당선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가 33획(朴(6획)+槿(15획)惠(12획)=33획)이다.)만큼 극강의 획은 아니지만 나름 잘나가는 획수로 본다.
  • [2] 참고로 개명신청에서 음은 내버려두고 한자만 변경하는 개명신청은 호명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해준다.
  • [3] 참고로 겹 쌍둥이에 남동생이다. 3샷 5킬 이동국의 며느리가 될 사람은 네 명의 시누이 밑에서 살아야 한다.
  • [4] 컵대회 포함.
  • [5] 우리나라의 대표 축구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사커의 대표팀 토크 방의 가장 뜨거운 떡밥은 이동국 VS 박주영이다. 10년 넘게 유지되는 떡밥. 그래서 절대 끝이 안 난다.
  • [6] 중국 축구팬들이 중국을 상대로 할 때 활약한 그를 중국식 발음으로 부르던게 한국에서 놀림거리로 된 경우.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빠도 까도 다들 동궈라고 부른다. 심지어 축구 후배들조차 동궈형으로 부른다... 많이 쓰다보니 아예 동궈란 말 자체가 이동국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것.증거 사진
  • [7] 국대에서는 여느 대표팀 공격수가 그랬던 것처럼 개발, 똥발같은 모욕적인 별명을 얻었다. 허나 현 전북이 리그 강호라는 것을 감안해보아도 리그 내에서 슈팅 당 골 비율이 가장 높은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이동국이 개발이라면 리그 내 모든 용병들도 개발, 아시아에서 개발이 강을 메울 것이다. 다른 능력이 지적받아도 순수 결정력만큼은 절대 나쁘지 않다.
  • [8] 곽희주 등 아예 이동국만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의 선수에 약하긴 하다.
  • [9] 이제 와서는 활동량이 적다고 까는 사람은 그냥 국대조차 제대로 안 보는 사람으로 취급해도 될 정도다. 허정무는 이동국이 박혀 있으면 공격진의 활동량 부족을 지적하는데 막상 이동국이 내려오면 언급은 안 한다. 이동국의 무릎을 작살낸 장본인이 그런 소리를 하면 쓰나 전체적으로 어린 시절 묻지마 강슈터 기질과 그 둔해 보이는 움직임이 이런 편견에 기여한 바가 크다
  • [10] 이때 얼마나 몸상태가 최악이었냐면 메디컬 테스트에서 베르더의 팀 닥터가 '이런 무릎을 가진 선수는 처음본다. 이 무릎으로 어떻게 뛰었냐'고 했을 정도.
  • [11] 힐링 캠프 당시 이동국 증언에 따르면 브레멘으로 이적 당시 에이전트에게 주전 투톱이 있긴 한데 별 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갔다고 한다. 이적하고 나서 어느 정도 몸상태가 올라오니까 이적 1년차였던 피사로와 2년차였던 아일톤이 갑자기 골을 넣기 시작했고, 쟤네 못한다던데 왜 저러냐고 되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 [12] 다만 정규리그가 아니라 K리그 컵대회까지 포함한다면 삼성 하우젠컵 2007에서 기록한 7위가 최고 순위.
  • [13] 보로 측에서 5억원이라는 똥값 이적료를 제의했다. 포항은 k리그 내에서 팔아도 그거 두 배는 너끈한 이동국을 팔 리 없었으나 선수 개인의 의지와 구단의 이미지 때문에 K리그 복귀시 포항으로 복귀 팀이적시 이적료 50% 라는 조항을 달고 그냥 공짜로 보냈다.
  • [14] 에이 받아라 크로스 외엔 보로가 마땅한 수단이 없기도 했지만.
  • [15] 선수들은 연봉을 자존심으로 생각해 가격을 낮추거나 비지니스 식으로 협상하려는 프론트와 의견 대립이 심한 경우가 많다.
  • [16] 다만 포항이 보로에 간판스타인 이동국을 이 항목에도 상술 되어있듯 K리그 복귀시 포항과 계약이라는 항목을 걸고 공짜로 보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돌아올땐 거액을? 선수만 자존심이 있고 구단은 자존심이 없나? 그리고 계약건에 대해서는 아래 웹툰을 참고하자.
  • [17] 계약금도 있고 8억이라는 연봉이 거액이라면 거액이고 리그 최상위 정도이긴 한데, 어지간한 용병들은 다 8억 이상씩은 받고 있기도 했다.
  • [18] 김학범 감독은 애초에 이동국의 영입을 바라지 않았지만, 성남이라는 팀은 특성상 곽모 사장님의 파워가 절대적이라 그냥 사다줬고, 억지로 써야만했다. 이는 훗날 김학범 감독 인터뷰에서도 밝혀진 내용.
  • [19] 당시 부진의 주범으로 지적되었던 고참급들과 함께 이적하는데 신태용은 이들의 이적에 반대하면서 전부 팔든가 전부 남기든가 둘 중 하나라고 했는데 쿨하게 전부 팔았다고...
  • [20] 신인상(1998), 득점왕(2009), 도움왕(2011), MVP(2009)
  • [21] 이런 농담이 나올 정도로 골을 넣고는 있지만 이번 시즌 들어 기량이 슬슬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것이 시즌 초라서거나 국대에서의 심리적 압박에 의한 것일 지도 모르겠으나.쓸모없는 걱정이였어
  • [22] 18일 광저우 패배 이후 상주와 무를 썰었고 포항에 패하며 가라앉는 중이었다.
  • [23] 기록상 1무 4패지만 1무도 FA컵 승부차기 끝에 패한 것이라 사실상 5전 전패나 다름없다.
  • [24] 마지막 라운드에서 산토스의 수원은 포항 스틸러스와 원정 경기를 가지고, 이동국의 전북은 홈 경기이지만 울산 현대와 상대하는 반면, 전남은 인천 유나이티드와 홈 경기를 갖는다. 상대적으로 스테보가 골을 넣을 확률이 높았다.
  • [25] 그 뒤,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
  • [26] 하지만, 박주영의 활약이 프랑스리그에서도 꾸준히 좋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모나코에서도 10-11 시즌에는 본인도 영 좋지 못 했으며 골의 대부분이 PK 득점이었다. 아스날 떠난 이후에도 셀타 임대, 왓포드 임대 등 어디서도 박주영이 유럽 리그에서 활약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27] 전 항목에서는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확실한 벤치 멤버라고 적혀 있었으나 이것도 정확히는 틀린 얘기다. 확실한 벤치 멤버는 마루앙 샤막이었다. 박주영은 사실상 샤막에게도 밀려 벤치에서도 샤막에게 밀리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박주영이 샤막과의 경쟁에서 이겼다 해도 확실한 벤치라 보기 어려운 것이 왜 박주영이 확실한 벤치 멤버였다면 티에리 앙리를 단기 임대하는 수까지 썼겠는가???
  • [28] 실패가 맞긴 하지만, 이동국에게도 불운했던 것이 브레멘 시절에는 밑에 후술하는 혹사 탓에 무릎 상태가 상당히 좋지 못 했고, 미들즈브로에서는 이동국만이 아니라 팀이 죄다 못 했다. 이동국 외의 공격수인 미도, 레미 알리아디에르 등이 죄다 부진했고, 그나마 리 툰자이만이 제 몫을 했었다. 결국, 폰소 알베스를 거액을 들여 샀으나 싸게라도 영입한 이동국과 달리 이쪽은 먹튀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런 이유로 단순히 유럽 무대의 활약만 보고 박주영이 이동국보다 무조건 낫다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 [29] 하지만 이같은 이유라면 무작정 이동국을 옹호하는건 어렵다. 박주영 역시 AS모나코시절 네네, 루피에르를 제외하면 팀전체적으로 경기력이 안좋았고, 그런상황에서 팀에서 두번째로 많은골을 넣은선수였고, 10-11시즌에서는네네가 떠난 안습상황에서 시즌 10골을 돌파했다. 그리고 만약 박주영이 프랑스리그에서 못했다면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한 과 잉글랜드 명문 중 하나인 아스날이 오퍼조차 하지 않았을것이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한이유는 한때 한국을 대표한 스트라이커가 지금은 많은 논란을 낳고, 실력조차 그때만 못하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프랑스리그에서의 박주영의 활약을 까내리는건 어렵다.
  • [30] 하지만 그 한번의 기회를 못잡은 것 역시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2002년에는 어디까지나 실력으로 배제되었다.
  • [31] 1위는 차범근, 2위는 황선홍
  • [32] 최용수와 투톱을 이뤄 선발출장한 첫 경기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2-3 뜬금패를 당하는 바람에...
  • [33] 훗날 리웨이펑이 k리그에 입성하고 이동국은 그 때뿐 아니라 번번이 중국을 괴롭혔다, 너무 미웠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친구일 뿐이다...라고 인터뷰했고 이동국 역시 리웨이펑은 내 오랜 친구라고 답변했다. 세월이란....
  • [34] 그 때는 포르투갈 ㅋㅋㅋㅋ 우루과이 ㅋㅋㅋㅋㅋ 말리 ㅋㅋㅋㅋㅋ 이런 분위기였지만...
  • [35] 골을 넣은 선수는 레체의 돌풍을 이끌며 모나코에서도 잘 나가다 세비야에서 훅 갔던 체반톤. 한 때 위닝 마스터리그에서 키웰, 체반톤, 이천수 유망주 트리오로 우승하던 시절이 있었다...
  • [36] 이 때가 박지성의 첫번째 국가대표 데뷔. 이름날린 유망주도 아니고 인맥으로 뽑혔니 마니 말이 많았지만 이 후 박지성은...
  • [37] 이동국은 타고난 체격과 달리 몸싸움을 싫어한다. 대신 공이 왔을 때 슛을 때릴지 패스를 돌려 공격작업을 계속 이어갈지 빠르게 결정하기 때문에, FA 근처에서 활동할 때가 더 위협적이다. 청대 시절 공간 침투가 뛰어난 김은중과 투톱을 이뤘을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보인 점도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축구감각을 보고 쉐도우로 키우는 게 낫지 않겠느냐란 말도 있었지만 아시아 정상급 피지컬인 터라 걍 최전방에 박았다.
  • [38] 이 시기 리그에서는 이미 김도훈.김현석.노상래 등 피지컬과 스피드 외에 센스와 지능을 무기로 삼는 공격수들이 활약하며 독일식 축구의 헤게모니가 약해지고 있었다.
  • [39] 박태환이 잠시 부진했을 적에 건방져졌느니 싹수가 없느니 게으르니 레파토리마저 똑같은 걸 떠올려 보면 세월이 지나도 인걸은 유구한 듯 하다.
  • [40] 간단한 사실을 적은 기사로부터 추측한 거긴 하지만, 본인이 원해서 성립된 행사가 아니었을 거 같긴 하다. 노래행사라든가 뭐 그런 거...
  • [41] 사실 한 팀의 주장 완장을 찬 지금도 국대에서 죽쓰거나 욕을 먹고 오면(사실 요즘엔 잘해도 욕먹는 처지이다...안습)리그에서도 폼이 폭망하고, 다시 리그에서힐링폼을 끌어올리고 국대가면 다시 어떻게든 꼬투리가 잡혀 욕을 먹고 돌아와 축 쳐져있는 모습이나,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팀 경기가 잘 안풀리면 딱 봐도 심리적으로 압박을 엄청 받고 있다하고 써붙힌 듯한 모습을 보면 썩 활발하거나 낙천적인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끔 전북팬들에게도 멘탈이 유리장같다고 놀림아닌 놀림을 듣기도 한다.
  • [42] 김남일이 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술먹다가 도로에 대자로 나자빠져서 동국이가 불쌍하다고 울었다고 한다.
  • [43]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력으로 배제된 것이다. 아무리 그동안 팀에 공헌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지금의 팀에 넣자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 판단을 한 것은 감독인 히딩크였고, 결국 이룩하게 된 건 4강신화였다.
  • [44] 당시 아시안컵 대표팀의 공격진은 거의 붕괴되다시피한 상황이었다. 주축이던 해외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부상에 시달리는 바람에 대표팀구성에도 난항을 겪어야했다. 찬스를 만들어줄 선수도 측면수비를 책임져줄 선수도 심지어 결정을 지을만한 선수도 모두 부상을 당해 쓰러져있었던 상황 2002년 월드컵대표팀을 거의 고스란히 쓸 수 있었던 2004년 대회보다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거기다 이동국은 미들스브러에서의 부진으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으니...
  • [45] 이것도 이거지만 베어벡의 전술 자체가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 두고 중원에서 진흙탕 축구를 지향했다. 게다가 한국은 비겨도 아쉬울 게 없잖아? 이운재가 있는데.
  • [46] 사실, 술을 마시러 간 것 자체가 잘못이긴 한데, 술을 마시러 간 것 자체는 놀기보다는 고참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의견을 나눠 팀을 이끌어나갈 방향을 찾으려는 의도였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굉장히 이동국 편향적인 의견이긴 한데, 이동국이 또 이 고참들 중에서는 가장 막내고 나이터울이 꽤 된다. 즉, 먼저 가자고 했을 리는 없고, 가자고 했을 때 안 가겠다고 거절하기도 어려운 그런... 사실 술을 마시러 갔다고 해도,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했었다면 그냥 벌금으로 때웠을지도 모른다.
  • [47] 다만 김남일 교체의 경우 공세를 취하는 상황에서 교체로 경기의 맥을 끊고 나이지리아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줬다는 측면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 [48] 근데 이 때는 이동국을 그렇게 까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시 경기장 잔디상태는 월드컵 경기장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뻘밭이었고 경기내내 차범근해설이나 경기전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왔던 상황이었다 깔라면 경기장 관리를 못한 남아공 월드컵 운영위원회를 까는것도 나쁘진 않을듯. 잔디가 왜 그랬냐면 경기장 위치가 해안가에 위치해있는지라 경기장 자체가 습해있고 그리고 당시 남아공 날씨는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선선했다... 그상황에서 경기장에 물을 뿌려댔고 후반전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 흙이 단단하게 자리를 못잡고 뭉쳐서 일어나게 됐다.
  • [49] 측면이 살아나지 못하였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오른쪽 측면에서 서정진이 활발하게 움직여주었고, 박주영도 좋은 움직임에 2골을 넣을 정도였다.
  • [50] 피파같이 포지션에 구애받지않는 게임에서 보면 최고겠지만 축구 좀 볼줄 아는 사람이면 이게 얼마나 뻘짓인지 잘 알텐데... 우선 박주영,지동원,이동국 모두 중앙공격수에 본인이 해결하려는 스타일이다. 아무리 이동국이 2선에 내려오는 플레이가 늘었다고 해도 전북 현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전형적인 골잡이인데 이 셋이 무한 스위칭에 서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이에 스피드가 떨어지는 이동국은 당연히 급속도로 공기화...
  • [51] 카바니도 마찬가지로 지워져서 후반에 교체아웃당했다
  • [52] 단적인 예로 팀 레전드인 황선홍 감독이 있는데도 팀 주전이었던 신진호를 임대로 팔아먹는게 포항 프런트다. 더군다나 당시 영입에 힘도 없었던 외국인 감독이었던 파리아스가 필요없다고 해봐야 프런트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동국을 안고 가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 [53] 사실 황선홍 이후 한국의 전통적인 대형공격수는 최용수였다. 실제로 황선홍 은퇴 이후 최용수가 원톱으로 나서기도 했고...그러나 미국전 실수로 인해서 이미지가 안 좋았고 나이도 많았던지라 설기현과 조재진에 밀려났다.
  • [54] 그래서 이동국-박주영 투톱의 롤을 바꾸자는 의견도 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