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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last modified: 2018-01-24 00:52:27 Contributors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李大浩)
생년월일 1982년 6월 21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신체 193cm, 120-130kg, A형
취미 골프,게임
가족 배우자 신혜정, 딸 이효린, 형 이차호
종교 불교(대한불교조계종), 법명:삼소(三笑)
학력 수영초-대동중-경남고-(영남사이버대)
포지션 1루수, 3루수, 투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4번)[3]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2001~2011)
오릭스 버팔로즈(2012~201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4~2015)
시애틀 매리너스(2016)
롯데 자이언츠
응원가 롯데 시절
입장시 : 해리 벨라폰테 《Day-O》, 체리필터《오리 날다》사이렌
타격시 : 장나라《겨울일기》, 자우림《하하하쏭》
오릭스 시절 응원가는 이승엽의 오릭스시절 응원가의 재탕(...)[4]

2010년 한국프로야구 MVP
김상현(KIA 타이거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윤석민(KIA 타이거즈)

2006, 2007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태균(한화 이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한화 이글스)
2010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상현(KIA 타이거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최정(SK 와이번스)
2011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최준석(두산 베어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2006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래리 서튼 (현대 유니콘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심정수(삼성 라이온즈)
2010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김상현(KIA 타이거즈)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최형우(삼성 라이온즈)

2005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정수근(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홍성흔(두산 베어스)
2008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정수근(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안치홍(KIA 타이거즈)

2006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김태균(한화 이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이숭용(현대 유니콘스)

2006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이종욱(두산 베어스)

2009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상
한화 이글스 상조회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봉중근(LG 트윈스)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1루수 스트 나인 수상자
쿠보 히로키
(소프트뱅크 호크스)
이대호
(오릭스 버팔로스)
사무라 히데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보유 기록
경기당 연속 홈런 9경기 (세계 최다) [5]

Contents

1. 개요
2. 선수 경력
2.1. 데뷔부터 2005년까지
2.2. 2006 시즌
2.3. 2007시즌
2.4. 2008시즌
2.5. 2009시즌
2.6. 2010시즌
2.6.1. 2011시즌 연봉협상
2.7. 2011시즌
2.8. 20112시즌: 일본프로야구 진출
2.9. 2013시즌
2.10. 2014시즌
2.11. 2015시즌
2.12. 2016 시즌: 메이저리그 도전
2.13. 2017시즌: 롯데 복귀
3. 플레이 스타일
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5. 김태균과의 평행이론
6. 별명
7. 응원가
8. 야구 외
9. 연도별 성적


1. 개요

조선의 4번 타자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영화배우야구 선수로, 이승엽 이후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 한국프로야구에서 유일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 2회 (2006년, 2010년) 달성.
  • 타격 8개 부문 중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관왕(2010년) 달성. 도루는 불가능하니까 8관왕은 포기하자...였는데 2011시즌에 LG(4월 28일)와 한화(10월 4일)를 상대로 도루 성공!! 타격 8관왕을 향해 전진!!
  • 2007년 4월 21일(상대투수 정민태,최초),2010년 8월 20일(상대투수 홍상삼) 사직구장 장외홈런 기록 보유.
  •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타점왕. 이 해 오릭스 버팔로즈유일한 타이틀 홀더이며 동시에 일본에 진출한 한국리그에서 뛰던 한국인 선수로서는 최초로 타이틀 홀더가 됨. 참고로 최초의 한국인 타이틀 홀더는 백인천(1975년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선수 경력

2.1. 데뷔부터 2005년까지


받아랏! 등심 패스트볼! 누..누구세요

원래는 위에 나와 있듯이 투수 출신이다. 경남고 시절 2000년 캐나다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 추신수, 김태균, 정근우 등과 함께 출전해서 에드먼턴을 제패했다. 참고로 저 선수들은 모두 절친한 친구 관계이며[6], 추신수정근우는 이대호와 같은 부산 출신이다. 또한 추신수정근우는 둘 다 부산고등학교 동기생이다. 추신수와 이대호는 수영초교 동기동창이었으며, 이대호는 경남고 출신.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롯데 자이언츠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 해 1차 지명은 추신수가 받았지만, 추신수미국으로 건너가 마이너리그를 거친 후 2005년에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추신수미국행에 대해서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섭섭한 대우 및 턱없이 낮게 부른 계약금 때문에 여러가지 실망이 겹쳐 내린 선택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당시 롯데 자이언츠가 그렇게 막장은 아니었으며 시애틀 매리너스의 계약금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한 것은 추신수 항목 참조.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앞에는 신생 팀 SK 와이번스가 2차 1순위 우선지명 3장을 들고 있었는데 이대호를 거르고 택한 선수가 투수 김희걸, 형식[7], 내야수 김동건. 이들 중 현재 1군에서 모습을 비추고 있는 선수는 김희걸밖에 없다. 근데 김희걸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후에도 두꺼운 선수층에 밀려서 1군서 패전처리나 하는 중이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런 김희걸도 2014년에는 애니콜 소리 들을 정도로 애매한 상황에 마구잡이로 등판 중이다

롯데 자이언츠에 우완투수로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으나 덩치에 비해 공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전지훈련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구속이 더 떨어지게 되자 우타자로 전향하였다. 그 외에도 속사정이 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이대호에 대한 기대치는 투수 쪽보다 타자 쪽이 높기도 했기 때문이다. 불우한 가정사를 알던 이상구 당시 롯데 단장이 계약금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 주기 위해 투수로 입단시킨 후, 바로 부상을 핑계로 타자로 전향시킨 사정도 있다. 이상구 단장이 칭송받는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 이대호의 회고에 의하면 '몇 달만에 잡는 방망이가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며, 10개를 던져 주었는데 그 중에서 8개를 담장을 넘겼다고 한다.

입단 첫 해인 2001년에는 2군에서 주로 하위 타선에 배치되었다가 펠릭스 호세9월 18일 마산 삼성전에서 참교육 "헤이! 영쑤!"사건을 저지르며 잔여경기 출장 정지 크리를 먹었고,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이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대호를 1군으로 불러들였다. 고로 호세 때문에 1군에 데뷔하게 된 것. 다음 날인 2001년 9월 19일 1군에 처음 등록되어, 4번 타자로 첫 데뷔를 했다. 그러나 신인 1년차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결국 2001년 1군 6경기에 출장하여 8타수 4안타 1타점에 그쳤다.

당연히 같은 해에 입단하여 신인왕을 먹은 동갑내기 김태균에 비해 초라한 성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2002년 시즌 중 감독으로 부임한 백인천. 이대호가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살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위해 그에게 지시한 것이 쪼그려뛰기[8]사직 야구장 스탠드를 오리걸음으로 오르내리기. 이런 무식한 훈련을 수행한 이대호는 당연히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후 계속 재활 치료를 해야 했다. 이 때 부상으로 운동량이 떨어지고 실의에 빠진 이대호는 술과 야식, 그리고 쿵쿵따[9]으로 세월을 보내 지금과 같이 30kg 정도 체중이 불었다 한다. 여기에는 자신과 같은 부류인 최준석과 열심히 야식을 먹은 것도 컸다고...[10][11] 그래도 2002년에는 1군 74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78에 8홈런 32타점을 기록해 신인 2년차 + 타자전향 2년차 치고 나쁘지 않았다. 당시 2001년에 26홈런을 때려 낸 조경환2002년에 삼진 머신이 되어 버린 후 7월에 박남섭 등을 상대로 SK 와이번스트레이드되었고, 용병이라고 데려온 로니모 베로아는 끔찍하게 삽을 퍼다가 그 해 4월 30일웨이버 공시되면서 방출당하는 등 롯데의 공격진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에는 무릎 부상 때문에 1군 54경기 출전에 그치며 .243 4홈런 13타점으로 홈런과 타점이 반토막나고 말았다. 양상문 감독이 취임한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이대호는 풀 타임 출전을 하면서 점차 타격이 성장세를 그리게 된다. 타율은 낮았지만 파워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2004년 .248 20홈런 68타점을, 2005년엔 .266 21홈런 80타점을 기록하며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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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사진은 2004년[12] 당시 매기마당의 모습. 페레즈, 박기혁등 추억의 이름들이 보인다.

이 시기 이대호는 어느 머리 큰 포수만큼이나 갈마 아재들에게 미친 듯이 까였다. 아무래도 밑에서 두 번째는 돈을 날린 것 같다.

2.2. 2006 시즌

실력이 만개한 것은 강병철 감독 산하의 2006년. 당시 이대호는 불어난 체중을 빼기 위해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에 들어가 식이요법과 운동에 매진했다. 매일 산을 타면서 정신수양도 하고 살도 뺐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강 감독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못해서 오히려 강 감독이 이대호를 만나러 그 절로 찾아갔던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고.

15kg가량 감량하고 돌아온 이대호는 선구안이 비약적으로 개선되면서[13] 타율, 타점, 홈런 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1984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이만수가 세운 이후 22년 만의 트리플 크라운. 이때서부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괴물 신인 투수였던 류현진도 트리플 크라운을 석권했던 터라 MVP는 류현진에게 뺏기게 된다. 여기에 30대도 아니고 20대 홈런왕이라고 까인 건 덤. 나이가 아니다! 2006년은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고타저였던 해로서, 이대호의 홈런이 26개로 역대 최저 2위의 기록이었던 반면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이 2.23이었고 18승과 탈삼진 1위를 먹었던 터라….

게다가 류현진을 앞세운 한화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을 거두었다. 이에 반해 이대호는 팀이 7위였던 탓에 류현진에 비해 관심이 덜했기 때문에 류현진에 MVP를 넘겨야 했다. 이 때문에 투수 트리플 크라운보다 더 어렵다는 평이 많은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도 상당히 저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1루수 골든글러브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해 늦여름에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하지만 타율 0.409에 10타점(당시 국대 총 타점의 1/4)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 대한민국도하 참사로 불릴 정도로 졸전한 탓에 묻혀버리게 되고 이대호는 점차 병역 압박을 받게 된다. 다행히 이 병역 문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해결했다.

2.3. 2007시즌

2007년에는 2006년의 대활약 때문에 볼넷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삼진 수는 2006년과 같은 55개인데 볼넷은 전년도보다 42개나 증가하여 97개가 되었다. 2007년에도 홈런, 장타율, 출루율 등의 주요 지표가 모두 성장세를 보이며 1루수 골든글러브 2연패[14]. 당시 이대호 한 명만 거르면 나머지를 편안하게 갈 수 있던 롯데 타선에는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6년만 해도 홈런 2위인 펠릭스 호세라도 있어서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 타선의 밸런스 자체는 정수근[15], 강민호[16], 박현승,이승화 등이 분발했던 2007년이 오히려 좀 더 나았긴 했다. 2명 빼고 다 삽질 vs 1명 빼고 다 똑딱이 이 와중에 522 대첩에서 연예인 야구 수비를 선보이며 실질적인 522 대첩의 시발점이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에게 있어서는 손민한과 함께 8888577이라는 암흑기에 롯데를 견인한 두 쌍두마차[17]이자, 롯데 타선의 상징에 가까운 존재다. 실제로 이대호가 부진하면 롯데 타선이 전반적으로 무게감이 크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2.4. 2008시즌

2008년에는 초반 타점머신으로 잠깐 군림하였으나, 여름에 들어서자 타격 감각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며 '역시 봄데였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였다. 결국 4월 초 1위를 달리던 롯데 자이언츠는 올림픽 브레이크 직전 잠시 5위로까지 추락. 2007년에 비해 크게 불어난 체중과[18] 당시 홈런과 장타율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던 김태균과 포지션이 겹치는 문제 등으로 올림픽 대표 선발에 여러 잡음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 직전 올스타전에서 기적적으로 타격 감각을 회복한 이대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경기에서 홈런 3개, 10타점, 0.360의 타율을 기록하였고, 특히 장타율이 0.760에 달하는 등 큰 활약을 보여주며 한국 야구팀을 준결승으로 이끌었다. 준결승까지 극도의 부진을 보이던 이승엽의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 이대호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준결승 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준결승과 결승에서의 이승엽의 결정적인 홈런으로 인해 묻힌 감이 있다. 사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가대표 성적에서 이대호가 이승엽보다 홈런은 적었지만 타율은 월등히 좋았다. 안습.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혜택까지 받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롯데의 8888577을 끝내며 데뷔 최초의 포스트 시즌을 경험하지만,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4위 팀 삼성 라이온즈에게 3연패를 당해 탈락하고 만다. 펜스 직격 안타를 치고 2루에서 새색시 슬라이딩을 보여주며 아웃되어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2008 시즌은 타율 0.301, 18홈런, 94타점(리그 3위), OPS 0.879(리그 7위)를 기록했다.

2.5. 2009시즌

2.6. 2010시즌

2.6.1. 2011시즌 연봉협상

2010시즌에 타격 7관왕과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2개나 달성하면서 연봉의 대폭적인 인상이 기대되었고 본인도 상당한 인상을 바라는 듯 했지만 롯데 구단 프런트 어디 안 갔다. 그래서 이대호 본인은 7억 원을 요구 했으나 롯데 측은 6억 3천만 원을 제시했는데, 사실 그전까지 5억대를 제시하다가 연봉 조정신청 구단 측에서 갑자기 액수를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결국 2011년 1월 10일 이대호 선수 본인이 연봉 조정 신청을 KBO에 제출했다. #기사1
#기사2

당시까지 연봉 조정 신청에서 선수가 이긴 사례가 딱 1번 밖에 없었다는 것과 이대호 본인의 2010시즌 활약이 유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후 추이가 주목되었다.

그리고 끝내 2011년 1월 20일 약 4시간이 넘는 장기간 회의 끝에 6억 3천만 원으로 연봉이 결정되었다. 팀내 최다 실책(12개)[19], 4위에 그친 팀 성적, 선수단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관련기사

연봉조정위 내에서의 의견 갈림은 3(롯데):2(이대호). 조정위원들은 양측의 자료가 빈약함을 이야기 했는데, 선수협에 의해 공개된 이대호의 제출 자료는 실제로 상당히 빈약한 내용이었다. 롯데팬 커뮤니티에서 만든 것보다도 퀄리티가 낮을 정도. 성적에 관해서는 사실상 기본 스탯 제시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번 연봉조정위의 판정의 핵심은 '연봉 고과선정'의 정당성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후폭풍이 나오는 것이 애초에 선수 본인은 자신의 연봉고과 산출에 대한 근거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연봉 협상 때도 자신의 대략적인 연봉고과 순위만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조직과 개인이 정보 만을 가지고 싸우라고 하는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 때문인지 대리인 제도 즉, 에이전트에 대해 기사가 나왔다. 야구 관중수는 600만을 넘기는데 KBO 운영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었으니….
선수 승률 5%…부각되는 대리인 제도
'연봉조정 패배' 이대호, 뒤에 보라스가 있었다면…
추신수와 연봉조정신청 집중분석

이번 패배에 대해 이대호는 누구도 연봉 조정 신청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선수측 승률이 상식 이하로 떨어지는 현 연봉조정 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타격 7관왕이 진 마당에 이길 선수가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이번 연봉조정에서 롯데가 승리해서 7,000만 원을 아낄 수 있었지만 내년 FA에서 이대호가 롯데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할 이유가 확 줄어듬에 따라서 국내 잔류시에도 이대호의 선택폭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팀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2010 한국 최고의 타자를 이런 식으로 대우해 놓고도 의리 운운하기는 어려울 테니.
눈앞의 7,000만 원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팀 운용을 꼬집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를 단적으로 정리하는 기사도 있었다.참 롯데스럽다.

이에 롯데팬들은 격분하였고, 롯데 팬 중 나름대로 네임드인 블로거 lezhin이 이대호 연봉 정상화 운동을 시작하였다. 문제제기 모금시작

같은 해 옆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연봉 조정 신청이 있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투수 와쿠이 히데아키의 연봉조정신청이 그것인데, 일본쪽 조정위원회는, 구단제시(현상유지)2억 엔과 선수 제시 2억 7천만엔을 놓고 2억 5300만 엔이라는 자체적인 사정결과로 중간점을 찾아줬다. 게다가 이쪽은 이대호같이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것도 아니고, 14승 8패 방어율 3점대 후반이라는, 후반기 들어 급격히 무너져서 연봉고과가 떨어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성적과 타구단의 연봉고과대우를 비교해서 객관적인 사정으로 절충해줬다는 점에서 한국 연봉 조정과는 사뭇 달랐다. KBO도 이런거 좀 보고 배워라
또한 조용준 용인발전센터 책임연구원은 <한국프로야구 연봉조정제도의 경제학적 균형에 관한 연구>에서 이대호의 2011 시즌 적정 연봉은 10억 890만 원이라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은 이대호와 비슷한 성적을 낸 2003년 이승엽의 연봉 6억 3000만 원과 그동안의 물가상승률, 여기에 프로야구의 규모 확대를 프로야구 중계권료 상승분으로 파악해 이대호의 적정 연봉을 계산했는데, 물가상승률과 프로야구 중계권료 상승분 등을 고려해 이승엽의 2003년 연봉 6억 3000만 원은 2011 시즌 이대호와 비교할 때 10억 890만 원이 된다는 분석이었다. 관련글

결국 이 후폭풍은 상당해서, FA할 때에도 롯데에 남겠다던 이대호의 뜻이 결국은 바뀌고 말았다. 이대호 "롯데 떠날 수도 있다"

2.7. 2011시즌

2.8. 20112시즌: 일본프로야구 진출

9경기 연속 홈런을 계기로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2011년 시즌을 소화할 경우 FA 신청이 가능했으며, 즉 2012시즌에 해외 진출이 가능했다. 해외 진출에 대해 체력과 수비 문제 때문에 미국보다는 일본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솔직히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 쪽은 기대치가 높았던 김태균의 거한 삽질로 학을 떼고 있었고, 센트럴 리그 쪽 큰 손들은 수비가 결점인 용병타자를 영입할 여력이 안 되었다. 또 추신수와의 인터뷰를 보면 본인 역시 해외진출을 내켜하지는 않는 듯 했다. 다르빗슈와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국내에 남을 경우 롯데 잔류와 이적 여부는 2011년 연봉협상 이후로 결정나게 될 만큼 미묘해졌다. 그전까지는 롯데의 아이콘적인 존재이므로 어디 가면 큰일나며 롯데 구단 역시 확실한 대우로 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연봉협상에서 보여준 태도 때문에 상황은 급변했다. 이대호가 의리로 남을 명분 자체가 없어졌다 라는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이대호가 2007년에 역대 최고 대우를 받을 때와 비견되어 이상구 단장이 칭송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11년 7월, 한신 타이거스에서 이대호의 영입을 노리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 또 2011년 포스트시즌 종료 이후 일본의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2년간 5억엔(당시 한화로 약 75억 원 정도)의 조건으로 영입준비 중이라는 기사도 뜬 상황이었다. 오릭스는 금액 부분은 부인했지만 팀내에서 타격을 보강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따라서 이대호가 FA 신청시 그를 영입하겠다는 방침이 정해진 듯했다.#물론 롯데는 무조건 잡는다고 말했지만 자금력이나 연봉협상의 문제 등의 문제가 있고 이대호가 롯데 우승 빼고 한국에서 타자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큰 무대인 일본에 진출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많았다. 단 변수라면 이승엽이나 김태균 같은 뛰어난 타자들이 대지진, 원자력 사고 이후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점. 이대호 입장에서는 2012년에 아이를 얻기 때문에 이점이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1,2

결국 2011시즌 종료 후 이대호는 FA를 선언하였고 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인 11월 19일까지도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해외진출이 유력해졌다."100억원도 NO" 이대호, 롯데와 FA 협상 결렬

우선협상 기간 동안에 이대호가 사인하지 않고 해외진출에 무게를 둔 것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한 쪽은 "100억도 안 되면 어쩌라는 거냐"고 말하는 롯데 잔류 지지파,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롯데 구단 믿지 말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 때 나갔다 와라"고 말하는 해외 진출 지지파. 잔류를 지지했던 팬들은 원래 예상했던 4년에 60억+알파를 크게 넘어선 4년간 연봉 80억에 옵션 20억이 통큰 배팅임을 강조한다. 또한 롯데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나 팀을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강조했던 이대호이기에 팬들이 잔류를 기대했다는 점 또한 강했다. 이게 반대로 해외진출로 무게가 실리자 배신감을 느낌 팬들이 지금까지의 인터뷰 등이 거짓이며 언플이라고 비난을 했던 것.

반대로 해외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팬들은 위에서 설명되었던 2011시즌 연봉 협상을 기억하는 쪽이었다. 타자로서 그야말로 따라올 자가 없을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그를 7000만 원 아끼자고 연봉조정신청까지 가게 한 팀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야구팀을 그저 돈 벌이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구단에 끌려다닐 필요 없이 야구선수로서 더 넓은 무대로 도전해보라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이대호가 그야말로 전성기라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 제대로 성공한 타자를 보고 싶어하는 열망도 이에 포함되었다.
또한 이러한 팬들은 "60억+알파를 크게 넘어섰다"는 수식어에 비교적 덤덤한데, 이는 저 60억이라는 액수 자체가 2004년 심정수가 가진 기록이며 다시 말해 7년 전의 액수이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과 커져가는 야구판을 생각했을 때, 80억+20억이 7년 전의 FA 최고 대우였던 60억 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배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2004년 심정수의 60억중 옵션과 계약금을 제외한 금액은 40억 원이다. 옵션이 20억이었다는 말이다. 순수 연봉이 7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때 이대호에게 제안한 연봉 10억원은 롯데가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였을 것이다.

물론 물가 상승률이 6년간 50%씩, 100%씩 뛰진 않는다. [20] 당시 심정수의 60억은 돈성이라 불리는 삼성이 어마어마하게 거품을 뿌린 금액이었다. 생활물가지수 상승폭인 28%로 심정수의 연봉을 기준으로 FA 이대호의 소위 '적정가'를 환산한다면 약 77억 가량이 된다. 때문에 한해 1개 야구단의 운영비가 300억 정도로 추산되는 한국프로야구의 규모상 연봉 10억, 총액 100억이라는 액수는 구단 입장에선 충분히 무리한 수준이며, 롯데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이라고 봐야 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 팬 커뮤니티에서는 대체 얼마를 더 주어야 자존심을 세워 줄 수 있느냐고 이대호를 깠다. 해도 너무했다는 것. 사실 돈과 더 큰 꿈을 위해서 해외진출을 하겠다고 이대호가 공언한 상태였다면 100억이든 뭐든 롯데팬들은 배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대호는 당시까지 어느 인터뷰든 소위 말하는 '성골' 부산 토박이 경남고 출신 롯데맨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협상 최종일까지 모든 롯데 팬들은 대충 롯데는 65억 + @를 내놓을 것이고 이대호의 요구선은 80억이라고 생각했다. 80억 초과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결국 롯데는 지를 FA는 지른다는 전례대로 100억의 그야말로 더 이상 해줄 수가 없는 최고의 대우를 했다. 허나 이대호는 도장을 찍지 않았다. 팬들에게 완전히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당시 겨울 SK와의 협상을 포기하고 깔끔하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발표했던 정대현이 이대호와 비교되면서 롯데가 이대호의 FA에 신경쓰느냐고 다른 선수들을 신경쓰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왔던 상태라 비난이 거세졌다.

물론 그동안의 롯데가 보여줬던 행보 때문에, 롯데는 처음부터 이대호를 잡을 생각도 없었고, 저 80억+20억이란 제시금액도 실제로 줄려는 돈이 아니라 욕먹지 않기 위해 언론에 공개하기 위한 언플용 수치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대호의 인터뷰 기사에서 100억을 제시했다는것이 확인되는 것으로 종결. 그것도 첫 만남에선 식사만, 둘째 만남에서 바로 100억을 제시했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음모론이 헛소리라는걸 말해주는 것. 이대호와 짜고 치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는데 이대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불리해질 언플에 협조해주는게 말이 되는가? 100억 찼다고 욕을 먹고 있는 마당에 본인 입장에선 사실대로(사실은 아니지만)70억 제시했다고 하는게 여론에도 좋았을 것이다.
이대호의 인터뷰 : 맨 밑에서 2번째 질문

일본 스포츠호치에서 오릭스가 이대호에게 최대 3년간 8억 5천만 엔, 우리돈으로 129억 정도 되는 액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것은 롯데가 제시한 최고대우를 넘어서는 수치였다.[21]

어쨌든, 언론에서는 롯데도 이대호도 딱히 욕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롯데로서는 할 만큼 제안을 했다고 보고, 이대호도 역시 일본 제안이 좋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외국 진출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 의사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 이대호 본인도 FA협상 과정에서 구단이 보여준 성의에 감사한다고 직접 언론에 밝혔으니 만큼 롯데의 제안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22]


결국 오릭스 버팔로즈와 2년간 총액 7억엔(105억 원)에 계약을 매듭지었다.

시즌 성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 시즌 2


2.9. 2013시즌

2.10. 2014시즌

이대호/2014 항목으로.

2.11. 2015시즌

2015 시즌에도 꾸준한 활약을 하였으며, 특히 일본시리즈에서 16타수 8안타(!)에 2홈런 8타점으로 맹활약하여 팀의 2년 연속 우승에 이바지하였고, 본인도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2.12. 2016 시즌: 메이저리그 도전

시즌 종료 및 프리미어 12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 여러 설왕설래가 오가던 끝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윈터 미팅 당시에 비해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으나, 본인은 미국 무대 진출에 의의를 둔 것으로 보인다.

2.13. 2017시즌: 롯데 복귀

시즌 종료 후인 2017년 1월 23일에 롯데 자이언츠와 4년 150억에 계약하면서 국내로 복귀했다.

3. 플레이 스타일

KBO를 대표한 우타 빅뱃 타자.

거포라기 보다는 중장거리형 교타자 쪽으로 분류될 때가 많다. 그의 타격 메커니즘은 슬러거들과는 전혀 다르며, 차라리 양준혁이나 김동주에 비교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고타율의 컨택형 타자이지만 워낙 힘이 좋아서 장타가 양산되는 것. 이승엽처럼 공을 띄우는 능력이 타고났다 든지, 타구의 탄도가 여타 슬러거들처럼 높은 편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코스의 공에 대응해 배트 중심에 공을 맞춰냄으로써 질 좋은 라인드라이브를 생산해내는 타자.

그러나 트리플 크라운 2회가 증명하듯, 2006, 2007년 연속으로 3할 3푼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한 타격과, 2006년부터 크게 성장한 컨택트 능력을 바탕으로 정말 승부하기 어려운 타자 중 하나이다. 실제로 MBC ESPN(현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8개 구단 선수를 상대로 "9회말 2사 만루, 가장 상대하기 싫은 타자는?"에 19표로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08, 2009 시즌에는 2006 ~ 2007시즌의 '이대호와 여덟난장이'급의 괴물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똑딱질만 하고 있다가, 2010년 도루(0개)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다시금 리그를 지배하는 타자가 되었다.

본인도 자신을 홈런 타자라고 인식하지 않고 교타자 내지 중장거리 타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백번천번 맞는 말로 그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2008~2009시즌을 살펴보면 홈런을 의식해 스윙이 어퍼스윙으로 변했고 밀어치기보다 당겨치기가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대호는 홈런을 의식하면 오히려 성적이 나빠졌다. 2010년 홈런이 늘어난 것은 결혼 후 심리적 안정감과 체력 관리가 잘 되어 타구 비거리가 5~10m 정도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투수로 시작한 데다가 백골프의 삽질 때문에 2000년대 초반에 손해를 봐서 한국프로야구 커리어 통산 스탯은 높지 않은 편이지만, 이대호가 대폭발한 2006년 이후로 통계시점을 잡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2000년대 후반 5년으로 한정할 경우 통산 타율 3위(0.325), 홈런 1위(142), 타점 1위(492), OPS 2위(0.983, 1위는 페타지니인데 이분은 2시즌), WAR 1위(28.46)으로 2000년대 초반을 이승엽, 심정수 등이 대표한다면 후반은 이대호가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으로 한정하여 타자들의 순위를 매겨보면 이대호는 출장경기수, 타율, 장타율, OPS, 안타, 타점, 홈런, 득점, 루타에서 1위이며, 출루율은 2위, 볼넷은 3위로, 고타율에 선구안도 나쁘지 않고 잘못 걸리면 넘겨버리는 타자가 부상까지 잘 안 당해서 꼬박꼬박 출장까지 하는 그냥 악몽 그 자체. #

위에 서술했듯이 거구이면서 유연성이 탁월하여 고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로 KBO의 우타 빅뱃 계보를 김동주로부터, 국가대표 야구팀의 타선 중심을 이승엽으로부터 잇고 있다. 김태균과는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로, KBO에서 뛸 때의 전체적인 커리어 스탯을 비교하면 데뷔 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김태균이 처음에는 투수였던 데다가 부상과 살이 쪄서 적응으로 초반에 고생한 이대호에 비해 누적 스탯상 우위에 있다.
하지만 이대호는 리그를 지배했던 2006, 2007, 2010시즌이 워낙 임팩트가 크고, 밑에도 써있듯 2000년대 후반부터 보면 이대호의 우위. 김태균의 일본 리그 시절이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데 비해 이대호는 2012년에는 타점 1위, 홈런 2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2013년 시즌도 3할 타율에 20+홈런을 기록하면서 이 둘의 비교는 점차 좋은 떡밥이 되고 있다. 실제로 두 선수의 누적스탯이나 비율스탯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이는 wRC+, wOBA 등의 세이버 스탯으로 놓고 봐도 큰 차이가 없다.

단점은 3루 수비시 매번 롯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던 좁은 수비 범위. 박기혁이 대신 잡아준 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뛰어ㅄ아 이것 때문에 박기혁은 점점 더 말라간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그 박기혁은 아시안게임 대표가 되는데 실패하여 결국 2011년에 입대하고 만다.

사실 송구나 정면 타구 대처는 수준급이고 전진 수비도 생각하는 것만큼 둔하지는 않다. 문제는 좌우 한발 범위를 자랑하는 좌우 수비(...). 실제로 황재균이 롯데로 트레이드 되어 온 뒤 처음 출장한 경기에서 평범한 수비를 펼쳤음에도 롯데팬들은 슈퍼플레이를 본 양 신기해 했다.

2010시즌 1루수 붙박이로 결정되었으나, 3루수를 맡길 예정이었던 정보명의 부상으로 다시 3루수로 나섰다. 이때 롯데의 내야수들을 다 테스트 해보았으나, 결국 이대호의 3루 수비가 가장 나았다.

물론 다른 팀의 3루수들에 비하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대호의 수비범위는 수준 이하로 좁다[23]. 이는 그 공간을 대신 커버해야 하는 유격수에게 엄청난 수비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야기된 내야수비의 불안정은 팀 전체의 수비 리듬과 투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3루를 제하면 있을 곳이 1루와 지명타자밖에 없는데 지명타자는 이미 홍성흔[24]이 리그 최강의 수위타자로서 버티고 있으니 1루 밖에 선택지가 안 나왔다.

하지만 이대호 이외에 마땅한 3루수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멀리 갈 것 없이 2007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롯데의 3루수 기록을 보면 이대호가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25] 그리고 이범호를 잡지 못한 이상 단기간에 정상적인 수준의 3루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는 이대호를 3루수로 기용해 온 것. 그리고 이대호가 3루수를 맡음으로 인해 왼손잡이라서 1루 수비밖에 안되는 박종윤을 1루수에 돌리거나 블래스 신드롬으로 내야 송구에 문제가 있는 김주찬을 1루에 세워 공격력 강화를 꾀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모든 문제의 악의 근원은 그동안 뽑은 유망주 중에서 제대로 된 3루수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키워내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한 롯데의 코치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2010년 황재균을 사 오고 나서야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참고로 1루를 볼 때는 그런 대로 수비도 잘 하고, 포구는 수준급이다. 게다가 덩치가 커서 내야수들이 송구할 때 겨냥하기 좋다 즉, 야수들에게 확실한 타게팅을 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최희섭의 경우 역시 높이 뜨는 악송구 등에도 196cm라는 큰 키로 잘 대처할 수 있는 점 등 1루수가 체격이 크면 유리한 점도 많다. 수비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었으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2014년 지명타자 전업 전까지 대부분 1루수로 경기를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수준은 갖췄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몸무게 때문에 다리가 무척이나 느리다. '중견수 키를 넘기는 1루타' 또는 '우중간(좌중간)을 가르는 1루타'같은 다소 황당한 장면을 제법 자주 보여준다(…). 사실 이런 모습은 대부분의 거포형 타자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다. 장타력도 갖췄는데 발까지 빠르면 그게 사기다. 스타디움 히어로에 나오는 전설의 499(…)가 아닌 이상 이런 타자는 없다.

게다가, 코스가 라인 쪽으로 붙거나 외야수들 사이를 정확히 가르지 않는 한 펜스직격이나 원바운드 후 펜스를 맞추는 타구는 투바운드 이상 혹은 구르는 타구보다 타구속도가 빨라서, 외야수가 어지간히 어버버하지 않는 한 진루하기 어렵다. 특히 펜스 직격타구 같은 경우에는 치는 사람도 홈런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서 설렁설렁 걸으니 더더욱. 게다가 사직구장의 펜스 높이는 국내제일이다. 그래도 이대호가 느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홈런을 많이 친다
8회 이후로 1~2점 차로 점수차가 적게 날 때 이대호가 출루하면 발 빠른 대주자로 교체되는 경우도 많다. 본인도 "자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 타점이 줄어드는 셈이니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동료들이 '좀 빨리 들어와라'고 하면 "어쨌든 살았다 아이가"라고 받아쳤다나(…).

근데 발이 확실히 느리긴 한데, 몸이 대책없이 불기 전인 2007 시즌까지는 그래도 간혹 가다가 도루를 시도했고 종종 성공하기도 했다. 밑에도 서술되어 있고 홍성흔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홍성흔에게 포수 미트를 놓게 한 대사건 중 하나가 이대호의 도루 성공이었기도 했고, 2007시즌 5월에는 괜히 도루하다가 부상당해서 봄데모드 재현에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의 체형으로 변한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는 이대호의 도루시도는 올스타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그런데 2011 시즌에는 2개 성공했다.

오릭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동시에 유일하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부분이 느린 발. 이대호가 진루하더라도 홈으로 불러들여줄 수 있을만큼 팀의 타격이 좋지 않은지라 차라리 이대호의 타순을 7번 정도로 조정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있다(…). 물론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

그래도 주루로 인해 부상당한 적은 없고, 애초에 언제 뛸지 아무도 모를때 뛰다보니 주루사가 적다. 의외로 주루센스가 좋은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당장 이 이야기가 나온게 일본이다. 심지어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2013에선 이대호의 능력에 주루 4가 들어있다!-

참고로 09wbc LA다저스와 연습경기에서 대주자로 출전한 적도 있다. 이유는 이종욱이 볼에 맞아 교체해야했는데 외야 요원을 다 써 마땅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상보기

여담으로 사직 야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였다[26]. 그것도 2007,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기록했다. 날아간 것은 2010년의 홈런이 더 멀리 날아갔으나, 9경기 연속 홈런에 묻혀버렸다고. 사직구장 바깥에 가면 당시 홈런의 낙하 지점에 이를 기념하는 동판이 있다.

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라이언 사도스키가 2013년 WBC를 앞두고 네덜란드 팀에 제공한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이대호 부분만 발췌. 이 리포트 전문을 보면 선수들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강민호에게 "포구와 블로킹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이용규에게 "오른손잡이인 줄 알 정도로 어깨가 약하다"거나 하는 등. 이승엽이나 김태균에 대해서도 수비와 타격에서의 약점, 특히 시프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대호에 대해서는 '발이 느리다' 이외에 칭찬 일색인 점이 특징.

  •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며 일본 무대 첫 해에도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쳤다. 미국에 진출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3센티미터의 키와 12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운동능력이 좋다. 승부처에서 반드시 피해가야 할 유일한 타자. 중요한 상황에서 강하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했고 타점 찬스를 즐긴다. 다리를 높이 들기 때문에 배트 스피드가 느려 보이지만 95마일이 안 되는 속구는 문제없이 공략한다. 한 번 속은 구질이 다시 들어왔을 때 대처도 잘 한다. 사이드암 투수가 약점. 한국에서는 평균 이하의 사이드암 투수라도 이대호를 잘 잡아냈다.[27] 둔하지만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서 1루 수비도 해낸다.

  • 외야수들이 뒤로 멀리 물러나야 한다. 타구를 앞에만 떨어뜨리면 단타로 막을 수 있다. 내야수들은 보통 위치.

5. 김태균과의 평행이론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라이벌 구도인 김태균과 이대호가 사이클이 같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 이대호가 절정의 타격감과 장타력을 보일 때 치고 올라갈 김태균이 볼넷만 고르다가 김멀뚱이 되거나, 김태균이 알버트 푸홀스 모드 발동하여 스탯을 쌓고 있을때 이대호는 치라는 홈런은 못 치고 안타나 똑딱거린다던지…. 이는 두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봐도 그렇게 보일 정도.

  • 2001년
    한해 먼저 데뷔한 김태균이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이대호는 아예 나오지도 못했다.
  • 2002년
    김태균이 소포모어 징크스로 타율이 .255까지 떨어지며 허우적댈 동안 이대호는 어떻게든 나와서 .278에 8홈런을 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 2003~2005년
    롯데 팬이라면 치를 떨 백골프때문에 이대호가 2할 5푼대의 빈타와 부상에 허덕이는 동안 김태균은 3년 연속 타율 3할대, 출루율 4할대, 장타율 5할대에 각각 31, 23, 23홈런으로 맹활약했다. 그야말로 이대호의 흑역사이자 두 라이벌간 격차가 극명했던 3년.
  • 2006~2007년
    독하게 단련하고 나타난 이대호가 2006년 트리플 크라운을 포함해 3할 3푼대의 맹타를 휘두르는 동안 김태균은 2할 9푼으로 타율이 떨어지고 홈런도 반토막이 났다. 본격적인 이대호 역전시기.[28] 그러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나간 것은 김태균이었고, 그 덕분에 김태균은 병역 면제를 먼저 받게 되었다.
  • 2008년
    초반 타점머신으로 군림했지만 여름부터 축 처진 이대호에 비해 김태균은 도루, 최다안타 빼고 다 5위 안에 들어갈 맹활약으로 다시금 이대호를 제꼈다. 그러나 중요 이벤트였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대호가 맹타를 휘두를 동안 김태균은 집에 있었다(…).
  • 2009년
    이대호가 제리 로이스터감독의 지시로 3루에 들어가면서 수비로 고생하고 손바닥 부상까지 찾아오면서 3할을 못 치는 동안 김태균은 2008년 겨울 푹 쉬고 FA로이드까지 마시며 3할 3푼의 맹똑딱질로 시즌을 마감했다.[29]
  • 2010~2011년
    이대호가 한국에서 돼마왕이 된 동안 김태균은 김지진이 되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 2012년
    반대로 이대호가 일본에서 투신타병에 고생하는 동안 김태균은 4할 5푼을 쳤다(…). 그러나 6월, 이대호가 타점 1위에 등극하는 등 날아다니는 동안 김태균은 부상과 극악의 빠따질로 타율과 출장경기 수가 같이 떨어졌다(…). 과학으로 증명될 일만 남은 듯 또 이대호가 잘하다가 8월 극심한 부진에 빠지는 동안 김태균은 4할을 유지하며 4할타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이대호가 부활하자 김태균의 타율은 .365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이대호는 일본리그 타점왕을, 김태균은 한국리그 타격왕을 차지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시즌으로 볼 수 있겠다.김태균이 일본에서 죽을 쒔으니 이대호는 일본에서 잘 할 거다
  • 2013년
    이대호는 전년도에 비해 홈런과 타점은 그대로였으나 타율은 3할로 올라온 반면, 김태균은 팀과 본인의 안습한 사정을 버텨내지 못하며 겨우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 2014년
    이대호가 많은 기대속에서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였고 세자릿수 안타와 타율 3할을 기록하였지만, 딱 그것 뿐이었고 한국, 일본 양국에서 스탯돼지, 득점병, 비득점권의 악마등 2010년 이후, 소위 돼마왕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온갖 굴욕적인 별명[30]이 붙으며 준먹튀 취급받는 동안 김태균은 비록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의 성격이 강하다고는 하나 타격왕 경쟁까지 하면서 상당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둘의 평행이론은 비단 타격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는데, 이대호의 경우 FA 신청으로 오릭스팬들과 소뱅팬들은 물론이오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온갖 비아냥[31]을 당하면서 팬심이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는데 반해서,[32] 김태균은 비록 한화 한정이긴 하지만(...) 적어도 홈팀 팬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팀 성적은 또 반대로 소프트뱅크는 우승했고 한화는 꼴등했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수준.

여담으로 이대호의 딸 이름이 효린이고, 김태균의 딸 이름도 효린이다.

6. 별명

언론에서 흔히 쓰는 별명은 빅 보이이지만[33] 일반적으로는 돼호, 돼랑이(돼지+호랑이. 이대호의 호를 虎라고 봐서) 등등으로 불린다. 간혹 이대호가 부진하면 바로 돼지로 격하. 밑에 나올 부산우유 CF 때문에 우유돼지 추가. 반면 성적이 잘 나올 때는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리기도 한다.[34] 최근에는 롯데 선수들끼리만 사용하던 "백설공주"라는 별명이 MBC ESPN 중계를 통하여 알려졌다. 저 뜻이 뭔가 하면, 만인을 설 기게 하는 포의 둥이...2007년도에 이대호를 제외한 롯데 타선이 부진할 때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고 부른 것이 '공주'의 원조인듯.# 또 가끔씩 나오는 호수비에 대한 경탄(...)의 의미로 수비요정이라고 불릴 때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끔.(...)
한편 야갤 유행어로는 "이게 사람이야 이대호야"가 있다. 일본에 간 이후 오릭스 팬으로부터 이대포라고 불리는듯.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자 이데온으로도 불리고 있다. 받아라 이대호 건! 하지만 오릭스에서 나가고 팬 영상은 귀신 같이 지워졌다

오릭스가 그리 강한팀이 아니여서 우리나라 처럼 많이 이야기 되고 있진 않지만 나름 이대호의 덩치에 관한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일본 방송 우치무라사마즈 에서 풋살을 할때 덩치 큰 AD가 도와주러 나왔는데 그걸 본 오오타케 카즈키가 "너 이대호냐? 오릭스의 거포."라는 드립을 쳤고 빵 터트렸다. 그리고 그 AD는 끝날때까지 이대호 AD로 불린건 덤.

비득점권에서 홈런을 자주 때려 2ch에서 붙혀준 별명 '비득점권 악마' 추가.

네이버에서 '이대호'를 치면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심지어 본인도 저 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1년 4월 28일 4년 만에 도루에 성공했다! 이젠 도루의 요정 이대호(...) 그리고 베니건스[35]

그리고 2011년 11월 13일 열린 부산고 VS 경남고 라이벌 매치 투수로 나와서 "뱀직구"(!!!)를 선보이자 돼덕스 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대호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등심패스트볼이라고 명명 했다(...) 또 그의 공에 걸리는 테일링은 돼일링, 공이 떨어지면 PORK볼이라고 불린다....

등심 패스트볼


그날 던진 구속이 130km/h가 나오는 위엄을 보이기도.

7. 응원가

이대호가 나오거나 이대호 앞의 타자가 쓰리볼 나씽이라도 되면 상대팀을 향해 "이대혼데~ 이대혼데~" 라는 응원이 있었으나 상대팀을 향한 조롱의 의미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 2008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애초에 2008년 이대호는 2006, 2007년 만큼 압도적인 모습도 아니었기도 하고...그런데 비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잘만 쓰인다. 롯데 팬들의 기대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듯).그런데 정작 신나게 까던 모 구단에서는 어떤 마무리 투수가 등장할때 이것을 똑같이 써먹는다?

롯데 소속이었을 당시는, 이대호 타석이 되면 Harry Belafonte의 'Day-O'에 맞춰 롯데팬이 '대~호~ 대~호~'라고 함성을 질렀다. 이어 이대호 주제가인 체리필터의 '돼지오리 날다'가 나온다. 응원가로서는 2009년부터는 "A Lover's Concerto"에 가사를 입혀 "오~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하는 식으로 쓰였고, 자우림의 "하하하송"에 맞추어 "홈! 런! 이대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응원은 원래 이대호 뿐만 아니라 홈런 타자들(주로 외국인 타자)에게 사용되던 응원이었는데...이대호의 기량이 폭발하고 카림 가르시아에게는 가르시아송이 따로 생기는 등의 경위로 이대호 전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잘 안 어울린다고 많이 까였다. 무릎팍도사에서 이대호편으로 본인이 출현할 때 본인도 응원가가 빈약하는 것보다 본인이 자기 응원가를 모르겠다고 발언하였다. 강민호를 보고 '니는 롯데의 강민호자나. 내는 그냥 이대호고.'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강민호 응원가야 KBO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니 뭐...

8. 야구 외

  • 공식 프로필에는 194cm, 100kg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1년 입단 당시이고 지금 현재는 어느 누가 봐도 120kg을 너끈히 넘는다. 만약 192cm, 100kg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 혹은 마해영과 같음. 그리고 에이로드의 배와 이대호의 배를 비교해보자. 같은 팀의 선수들과 비교를 하면 이재곤이 191cm에 96kg으로 공식 프로필상 4kg 차이지만 누가 봐도 절대 믿을 수 없는 차이다. 다만 알렉산더 카렐린과는 비슷하다. 이건 알렉산더 카렐린이 좀 특이한 경우지만. 종목도 다르고. 2009년 올스타전 하루 전 부산에서 있었던 슬러거 이벤트에서 팬들의 질문에 127kg라고 밝힌 바 있으며,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27일 10대 1 인터뷰 기사에서 몸무게를 공식적으로 밝힘. 총 20개의 질문 중 3개가 몸무게 및 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개중에는 "맞을 각오를 하고 물어보는데 왜 살 안 뺌?"이라는 질문도 있었다. 2012년에는 125kg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듯. 의외로 의식하고 있는지 KBS 다큐멘터리 촬영 때 오릭스에서 낸 기사에 130kg라고 적혀있자 "저 125kg임. 확실히 체크해 주세요 OK?"라고 일어로 구단 직원에게 항변하기도(...). 정말 많이 나갔을 때는 150kg까지 나갔었다고..

    2.jpg
    [JPG image (Unknown)]

  • 그의 체중 변화를 한눈에 볼수 있는 짤.jpg


  • 땅볼치고 온 홍성흔을 비웃다가 갈굼먹고 삐진 이대호[36]

    daehodungchi123.JPG
    [JPG image (Unknown)]

  • 다른 선수들보다 덩치가 배로 크다. 이 짤을 확대해서 3루에 서있는 이대호와 주위 선수들을 비교해보라. 급이 다르다 급이!

  • 한성깔 하는 성격이다. 코치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있을 정도.그거 우째 들어오노

  • 부산우유 전속 광고모델을 맡고 있다. 위에 썼듯이 이 광고 때문에 우유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산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부산우유 라디오 CF에서는 노래까지 부른다!

  • 2009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 특별출연. 특별출연한 야구선수들 중 유일하게 대사가 있다! [37] 영화 내에서도 4번 타자 주제에 병살타나 치고 있다며 까고 있는 설경구를 향해 "마, 딱 봐놨어 니...딱 거 있어라 니능...딱 거 있어!!"라는 대사를 친다.[38] Calm down, take it easy라고 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묻혔다. 장원준은 이 신을 찍다 달려나오다 넘어져 유일한 NG를 낸 사람이 됐다고.. 영화 내에서는 4타수 3병살 친듯...그런데 투수가 오승환이었는데...? 실제로 오승환에게 가장 강한 타자 중 한 명이 이대호. 타율 자체는 10타수 3안타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저 중 두개가 9회에 터진 동점홈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설경구가 너무 했다기 보다는, 사직 야구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에 가깝다.(설경구처럼 그물까지 뚫고 들어가 뭐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 이때 이대호는 '아 연기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슛 들어가보니 설경구가 정말로 사직구장에서 술마시고 욕하는 아재들처럼 레알스런 연기로 순간 이대호의 뚜껑을 열어버렸고, 열이 확 받아 진심으로 대사를 치며 한번에 OK 사인을 받았다고 술회. 나중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설경구를 볼 때까지도 분이 안 풀렸다나...

  •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석, "천만 관객 동원 배우다"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말하고 나서 멋쩍은 듯 한숨을 쉬는거 보면 자신이 생각한건 아니고 대본에 있었던 듯 하지만, 절친한 개그맨 이동엽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종종 저 말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즈음 거대 캐릭터 풍선이 만들어졌다.#

  • 2009년 12월 26일, 신혜정씨와 결혼하였다. # 시즌 중에 사직구장 전광판을 이용해서 영상메시지를 날리고, 이어 3만 관중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그날은 4타수 무안타. 경기도 기아에게 7-4로 졌다. 이대호가 부상으로 신음할 때 정성껏 간호해주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해 준 사람으로, 2001년 롯데 선수단이 임수혁선수 돕기 일일호프를 했을 때 만났다. 처음에는 이대호가 너무 크다며 싫어했으나 적극적인 구애에 곧 사귀기 시작,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였다. 2010년 이대호의 포스를 보면 신혜정씨의 공헌이 큰 듯하다. 이대호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 듯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용됐다고 해 달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 아래 서술한 대로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며 꿈도 가족끼리 외식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소박. 그래서인지 아내와 딸이 야구장을 찾으면 꼭 홈런이나 타점이 나오는 활약을 한다고. 그에 비해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한 형 이차호씨가 야구장을 찾으면 지는 징크스가 있어 아예 보러 가지 않는다고.(...)

  • 여담으로 2010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어떤 초등학생이 "도루는 왜 못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100m를 15초 대에 달려서 도루를 못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홈런을 많이 쳐서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해당 영상 그리고 결국 그 해 홈런을 많이 쳐서 누구보다 많이 출루했다.

  • 추신수가 함께 등장하는 수영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 엄청난 체격으로 고등학생 포스를 자랑하여[39] 누가 봐도 잘 사는 집안에서 잘 먹고 큰 듯하나 어린 시절이 꽤 불우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집을 떠났을 때 할머니가 홀로 키워줬다고 한다. 추신수의 권유로 이대호가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자 삼촌들이 모여서 가족회의를 했고, 그 끝에 다들 롯데 팬인지라 "야구선수가 되도록 한 번 밀어줘보자."로 결론. 그 당시 이대호는 야구선수로 대성해서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릴 생각이었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만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대호가 프로에 입단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친어머니가 다시 같이 살자고 전화도 왔었다고 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삼촌들이 어린 시절에 사직 야구장에 많이 데려갔다고 한다.



  • 수영초 시절. 맨 왼쪽 3번을 달고 있는 아이가 추신수, 왼쪽에서 4번째에 있는 얼굴만 보이는 이대호, 맨 오른쪽의 25번이 이승화이다.

  •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선행 활동이 많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오프 시즌마다 자비로 구입한 연탄을 팬클럽, 동료들과 함께 달동네 독거노인들에 직접 방문하여 배달하고, 독거노인들을 직접 목욕시키거나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하려고 그런다고. 특히 연탄배달은 2006년부터 시작해서 2012년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천사돼지

  • 2011년도 기준으로 마구마구 2010년 KBO 카드 업데이트를 통해, 소속 팀에서 뛰고 있는 현역 타자 중 유일한 엘리트카드를 받았다.

  • 부산우유 광고로 부산우유제품 중 요네뜨라는 광고를 찍었는데...간에 기별이나 가나?

  • 1박 2일의 6대 광역시 특집에 부산을 소개하기 위해 출연. 분명히 모자이크해서 나왔는데 누군지 모두가 알고 있어 갑작스러운 섭외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친화력이 높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게 남들에게 다가서기 힘들어하는 이대호와 이승기 모두 쉽게 친해져 거의 의형제급의 친한 사이가 되어 헤어졌다. 이 와중에 이승기와 이대호 가운데 뻘쭘하게 앉아 있으면서 공기화되어 말 한 마디도 못 하다가 결국 얼마 후 넥센으로 트레이드 된 박정준 지못미

    이 와중에 이대호는 까나리복불복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으며, 예의 황금배트를 노리고 오는 도둑이 있을까봐 불안해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는 복불복으로 짝퉁 방망이 갖다 놨습니다~ 황금배트는 은행에 있습니다~ 부산시내 은행이 100개가 넘으니까 복불복으로~"라고 드립치는 등 예능감을 터트렸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이승기가 "우리가 무릎팍도사보다 먼저 나가는 거야?"라고 했다는 후문. 녹화는 12월 8일에 마쳤고 1월 초에 방영 예정이라고. 이대호의 고민은 살이 쉽게 안 빠져요가 아닐까#


  • 찜질 중이신 대호


  • 애교다리 이대호

  • 그리고 2011년 1월 12일 밤에 무릎팍도사 이대호편이 방송됐다. 고민은 살이 안 빠져요 연봉 7억을 안 줘요 "이 우승을 못 해요." 이건 무릎팍도사 수준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강호동과 쿵쿵따를 하거나 '좀 알고 질문을 하셔야죠~'라고 하는 등 예능감을 적절히 뽐냈다. 이대호의 술회에 따르면 소속팀이 우승했을 때(고등학교 1학년) 후보선수라 우승컵 잠깐 만지고 끝났고, 유소년 대회 우승 시(추신수, 정근우, 김태균 등과 함께 활약한 대회) 우승하자마자 도핑 테스트에 랜덤으로 걸려 환호도 못 지르고 끌려갔다고...광저우 아시안 게임 우승할 때는 임태훈이 이렇게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대호의 고민은 결국 무릎팍도사도 발을 뺌으로 인해서 사상 최초로 무릎팍도사가 해결해주지 못한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계속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2014년 시즌에 이 퍼시픽리그 우승과 재팬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드디어 그의 고민이 해결되었다.하지만 무릎팍도사 찍을 때 소속팀은 롯데였잖아? 안될거야 아마

  • 어지간한 경우(상대가 빈볼을 던졌다거나, 상대가 정대현이라거나...) 외에는 얼굴에서 싱글거림이 떠나지 않는 선수라 이것과 같은 짤방도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이런 시절도 있었다. 마! 니 얼굴 딱 봐놨어!

  • 2011년에 개봉한 영화인 위험한 상견례에선 롯데 어린이 야구단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 어린이'가 등장한다.[40] 실제 모습과 아역 배우의 씽크로율이 상당하다.

  • 2011년 7월 18일 불교 조계종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본래 2006년부터 불교 신도였다고.

  • 여담으로 홍성흔, 김주찬과 더불어 트위터를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롯데 선수다.

  • 2011 MVP 시상식때 2표 받았지만 특유의 능글거림을 뽐냈다. %

  • 2012년 9월에 이대호의 사촌동생 이병호가 슈퍼스타 K4에 지역예선에 출전하여 만만치 않은 가창력을 보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슈퍼위크에 출전하게 되었다.


  • 이대호 라커룸에 나이트 삐끼가 준 명함을 꽂은 적도 있다. 본인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런듯.

  • 2012년 10월 31일, 모든 야구게임에서 이대호의 이름이 이태산으로 바뀌었다. 단 는 야구감독이다에서 "장거포"로 이름이 바뀌는 등 예외도 있긴 하지만.[41] 그래도 신대수가 안된게 그나마 다행이다. 2013년 초에는 이대호의 이름이 돌아왔다.

  • 2012년 11월 4일 이대호의 일본진출 첫 시즌을 되돌아보는 KBS 스페셜이 방영되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1시간 짜리 이대호 먹방(...) 그리고 이대호와 최준석을 지탱해낸 그 위대한 침대에 대한 찬양 그리고 이대호의 딸 효린양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이대호 판박이네." 저런

  • 2012년 12월 11일에는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다. 몰래 온 손님으로는 최준석이 출연했는데, 최준석이 훨씬 웃겼다(...). 서로 훈훈한 모습 보이며 잘 마무리.

  •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소속 안드레 이디어가 2013년부터 맹활약을 펼치면 이대호의 이름을 딴 이디호라고 별명으로 칭송받고 있다. 반대로 못하면 이디형이라고 까인다.

  •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한참 갑론을박이 많을 때 FA 자격을 얻고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이대호와 함께 롯데에서 클린업을 이루던 홍성흔은 팀과 상의하되 1살이라도 젊을 때 갈 수 있으면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의견. 이외에 이대호처럼 FA를 얻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고 한 다른 야구관계자나 선수로는 이종범이 있고, 홍성흔과 비슷한 의견을 낸 건 김병현, 박찬호, 봉중근 등 메이저리그에서 몸을 담은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 이름에 관련된 도시전설이 하나 있는데, 이대호의 형 이름이 '이차호'로, 원래 뜻으로 따지면 이차호가 첫째이니 차호가 '대호'라는 이름을 갖고, 이대호가 둘째이니 '차호'라는 이름을 받아야 하는데, 할머니가 호적 등록 과정에서 한자를 헷갈려 이 둘의 이름을 뒤바꿔버리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 컴투스 프로야구 2012년 피처폰 초기 버전에서는 이대호가 나온 적이 있었다.[42] 다만 업데이트로 인해 바뀌어버렸지만.

  • 싸인받기 굉장히 어려운 선수다. 아이들에게는 웬만하면 싸인을 다해주지만 어른들이 싸인해달라고 하면 짜증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프로야구선수들의 팬서비스관련 게시물에서도 류현진, 추신수, 양준혁과 함께 팬서비스가 별로인 선수 중 한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9. 연도별 성적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 타자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01 롯데 자이언츠 6 8 .500 4 0 0 0 1 0 0 .500 .556
2002 74 255 .278 71 19 0 8 32 27 1 .447 .345
2003 54 152 .243 37 6 0 4 13 8 0 .362 .328
2004 132 444 .248 110 26
(10위)
0 20 68 52 4 .441 .331
2005 126 447 .266 119 16 2 21
(9위)
80
(5위)
53 1 .452 .354
2006 122 443 .336
(1위)
149
(2위)
26
(4위)
0 26
(1위)
88
(1위)
71
(5위)
0 .571
(1위)
.409
(4위)
2007 121 415 .335
(3위)
139
(4위)
29 1 29
(2위)
87
(2위)
79
(3위)
1 .600
(1위)
.453
(3위)
2008 122 435 .301 131
(9위)
23 0 18
(9위)
94
(3위)
73
(10위)
0 .478 .400
2009 133 478 .293 140 28 1 28
(4위)
100
(3위)
73 0 .531 .377
2010 127 478 .364
(1위)
174
(1위)
13 0 44
(1위)
133
(1위)
99
(1위)
0 .667
(1위)
.444
(1위)
2011 133 493 .357
(1위)
176
(1위)
26
(3위)
1 27
(2위)
113
(2위)
76
(7위)
2 .578
(2위)
.433
(1위)
KBO 통산
(11시즌)
1150 4048 .309 1250 204 5 225 809 611 9 .520 .391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12 오릭스 버팔로즈 144 525 .286 150
(5위)
25 2 24
(2위)
91
(1위)
54 0 .478
(2위)
.356
(4위)
2013 141 521 .303
(9위)
158
(8위)
27
(8위)
0 24
(6위)
91
(5위)
60 0 .493
(7위)
.384
(8위)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14 소프트뱅크 호크스 144 566 .300
(6위)
170
(2위)
30
(5위)
0 19
(8위)
68 60 0 0.454
(9위)
0.362
전체 통산 1579 5660 .305 1728 286 7 292 1059 785 9 - -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5년 올스타 MVP
2006년 골든글러브 1루 부문 수상
2007년 골든글러브 1루 부문 수상
2008년 올스타 MVP
2010년 골든글러브 3루 부문 수상
정규시즌 MVP
2011년 골든글러브 1루 부문 수상

기록
16경기 연속경기 득점 기록[43]
9경기 연속경기 홈런 기록[44]
2회 한국프로야구 첫 트리플크라운 2회
.350 김현수, 홍성흔에 이어 2년 연속 3할 5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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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설경구, 하지원 주연의 1000만 관객을 모은 흥행영화 해운대에서 롯데 자이언츠 소속 타자로 출연하였다. 아니, 이대호는 야구선수 맞는데? 유일하게 선수들 중에서 (단역이었지만) 대사가 있는 배역을 했는데, 그 역할이 "이대호 선수 역"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흥행하고 난 뒤에,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1000만 관객을 모은 배우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 [2] 롯데 입단 당시의 포지션, 자세한 내용은 하기 내용 참조.
  • [3] 신규창단한 SK 와이번스가 2차지명 1라운드에서 3명을 지명하는 어드밴티지를 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전체 2번으로 지명된 셈. 이대호를 거르고 지명한 김희걸김동건 등이 프로에서 성공했다고 보기엔 힘들기에 SK 입장에선 속쓰릴 만한 선택이라 하겠다.
  • [4] 멜로디는 그대로고 가사만 바뀌었다. 그래도 국내에서도 롯데시절의 응원가보다도 훨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이대호의 활약상 덕분에 일본에서도 듣기 좋은 응원가라는 평을 얻고있다.
  • [5] 2010년 8월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회초 김희걸을 상대로 비거리 125m짜리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시즌 38호 홈런이자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 [6]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정민철 등이 함께 나타났던 92학번 황금 세대를 잇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 [7] 2001년부터 2007년까지 1군에서 단 25경기만 뛰었던 선수. 2군을 전전하다 2007년 11월 5일 위재영, 강혁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 [8] 현대 의학의 연구 결과 쪼그려뛰기는 무릎 관절에 부담만 되고 운동효과는 좋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운동량은 상당하지만 다양한 운동수행 능력을 발달시키는 효과는 미미한 반면 그 효과 이상으로 무릎 관절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쳐 부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선수에게나 일반인에게나 좋은 훈련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무식한 코치들이 훈련을 빙자한 기합으로 많이 써왔다 기합 항목 참조. 오리걸음도 마찬가지.
  • [9] 당시 KBS 일요일은 즐거워의 공포의 쿵쿵따 코너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본인은 쿵쿵따를 즐겨 봤다고 무릎팍 도사에서 술회하였다. 이에 당시 쿵쿵따 MC였던 강호동은 바로 쿵쿵따 대전을 시전했으나 이대호에게 곧바로 발렸다...기보다는 이대호->호랑이->이상해->해질녘 콤보로 당한 걸로 보아 적당히 토스해 줬다고 보는 게 맞을듯. 하여튼 이상해->해질녘 콤보를 본인도 언급한 걸로 보면 확실히 쿵쿵따를 열심히 보긴 본 모양이다.
  • [10] 후일 KBS 다큐멘터리에 나온 바에 의하면 동래구 모처에 자신의 친형인 이차호와 최준석이랑 해서 셋이 같이 살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 방에 있는 더블 침대 하나에 이대호와 최준석이 같이 누워 잤다는 것! 세계 최고의 위대한 침대
  • [11] 카더라에 의하면 이때 최준석이랑 그냥 한두마리 시켜먹은 것도 아니고 무려 5마리를 시켜서 그자리에서 해치웠다고 한다(...)
  • [12] 조성환이 시즌 초 부상을 당해서 나가리 된 적은 2004년 4월 24일 손목부상으로 시즌 아웃 된적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해 9월....
  • [13] 2004~2005년에도 BB/K 비율이 소숫점 후반대로 나쁜 편은 아니었다.
  • [14] 그리고 이것 때문에 김태균은 '김두표'라는 별명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 [15] 술 관련 사고에서 복귀하여 준수한 테이블 세터 역할을 해 줬다.
  • [16] 주전 포수로 뛰며 14홈런을 때리며 가능성을 보여 줬다.
  • [17] 2012년부터는 둘 다 롯데에 없는 상태이다. 손민한은 방출, 이대호는 일본 진출.
  • [18] 선수 본인의 관리 실패도 있지만, 겨울 동안 올림픽 야구 예선 경기에 출장하느라 훈련이 부족했던 면도 있을 듯하다.
  • [19] 애초에 포지션 경쟁에서 밀렸던 것이 아닌 팀의 전력운용 차원이란 것 때문에 3루수를 봤기에 실책이 많은 것.
  • [20] 애초에 물가 상승률만 가지고 선수 연봉의 인상폭을 계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약 3%였지만 생활물가지수는 2004년 대비 28% 상승, 주택매매가는 동기간에 40%가 상승했다.
  • [21] 이대호는 돈보다 롯데가 제시한 4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부담됐다고 한다. 2009년쯤 인터뷰와 달리 이때 이대호는 해외진출에 대한 열망이 몹시 컸던 것 같다.
  • [22] 하지만 2015년 오승환, 정준하와 함께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발언을 보면 롯데애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은 남아있는 모습을 보였다.
  • [23] 간혹 나오는 수비요정호수비는 논외.
  • [24] 다만 홍성흔이 포수 출신이라 발은 느린 편이다. 통산 병살 1위가 이를 증명한다.
  • [25] 물론 2007시즌의 이원석과 에두아르도 리오스가 있었으나 둘 다 공격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 [26] 2011시즌에 당시 LG 소속이었던 조인성과 2014시즌의 황재균이 장외 홈런을 쳤다.
  • [27] 사도스키 리포트에서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관계로만 보면 거의 유일하게 틀린 부분이다. 이대호는 KBO에서의 전성기 동안 사이드암/언더핸드 상대 타율이 3할이 넘는다. 정대현이 이대호의 천적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대호가 다른 잠수함 투수에 강한데 정대현에게만 약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도스키 선발출장한 날에 가뜩이나 득점지원도 못받는 것도 억울한데 리그 최고의 타자이자 팀내 4번타자가 정대현만 만나면 맥을 못추니 충격을 받은 걸수도 있다출루율이나 장타율 포함 공신력 있는 데이터는 추가바람.
  • [28] 이시기가 역대급 투고타저였음을 감안한 조정스탯으로 비교할 경우 김태균은 이 시기 평소보다 부진하지 않았다. wRC+ 수치로 보면 김태균은 한국리그 커리어 평균 155.6에 비해 2006년 161.1, 2007년 159로 오히려 평균보다 더 잘한 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2006년 191.8, 2007년 194.7을 기록한 이대호가 미쳤을 뿐.
  • [29] 다만 김태균은 뇌진탕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그리고 팀도 망해버렸다
  • [30] 단 스탯돼지는 한국에서도 못할 때 자주 불렸던 별명이다. 특히 2011년 초 한창 양승호호가 삽질중일 때 이대호도 똑딱거리며 다소 부진한 감이 있었는데 이때 롯데 팬덤, 특히 꼴갤에서는 스탯돼지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 [31] 안타치면 똑딱거린다고 까이고, 홈런을 치면 솔로홈런이라고 까이고, 멀티 히트를 쳐도 주자 없다고 까인다(...). 심지어는 출루를 해도 후속타자들 타점 올리는데 방해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 [32] 다만 이것은 해외로 나간 선수들에 대한 국내팬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딱히 등을 돌리니 마니 할 정도는 아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전의 팀 팬이 아니고선 바로 비아냥이 나오기 때문. 그리고 이전 소프트뱅크의 4번 타자들을 생각해보면 어떤지 답이 바로 나온다.
  • [33] 결혼까지 했는데도 아직 '보이'이다.
  • [34] 실제 응원에서 자주 쓰이는 문구이며, 최훈의 베이징 올림픽 야구 카툰 정리 편에서 대중화시켰다.
  • [35] 베니건스가 이대호가 도루하면 그날 맥주 공짜 이벤트를 걸었는데 2011년에만 두 번 도루하는 통에.. 그리고 이 여파로 카림 가르시아가 출국하던 날 베니건스에서 맥주를 스무 잔 넘게 공짜로 마시고는 이대호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면서 출국했다고.
  • [36] 사실 이때 홍성흔이 빡칠 만한게 이 게임 전부터 홍성흔은 무안타 행진을 펼치는 중이었다. 거기다 이날 득점찬스에서 병살치고 내려왔었다. 홍성흔이 빡쳐있는 상황에서 이대호가 장난으로 웃다가 한소리 들었던거다.
  • [37] 다른 선수들은 '롯데자이언츠 선수단 여러분'이라고 뭉뚱그려 나오는데 이대호 혼자 따로 배역으로 나온다. 배역은 이대호 선수 역(...)
  • [38] 이 대사 뒤에 '니는 가도 죽고 안 가도 죽어!!!' 도 있었다는데, 이미지를 생각해 편집되었다고...
  • [39] 추신수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야구를 위해 수영초등학교로 전학가서 교실에 갔더니 웬 고등학생이 뒷줄에 앉아 있더라고...감독한테 말했더니 꼭 데려오라고 구박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야구를 권유했다고 한다.
  • [40]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80년대 말.
  • [41] 이쪽은 매우 일찍 바뀌었다.
  • [42] 초기버전 출시 시기가 2011년 시즌 최후반이었다.
  • [43] 2010년 7월 22일 ~ 2010년 8월 14일.
  • [44] 2010년 8월 4일 ~ 2010년 8월 14일 세계신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