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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토 준이치

last modified: 2014-10-16 18:41:42 Contributors


가와사키 프론탈레 No.20
이나모토 준이치(稲本 潤一, Junichi Inamoto)
생년월일 1979년 9월 18일
국적 일본
출신지 카고시마 현 아이라 군
포지션 미드필더
신장 181cm
프로 입단 1997년 감바 오사카 입단
소속팀 감바 오사카(1997~2004)
아스날 FC(임대)(2001~2002)
풀럼 FC(임대)(2002~2004)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2004~2006)
카디프 시티(임대)(2004~2005)
갈라타사라이 SK(2006~200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2007~2009)
스타드 렌 FC(2009)
가와사키 프론탈레(2010~)
국가대표 83경기 5골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3. 기타

1. 개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경기장 건설사 사장[1] 안현수
한 때 일본 축구를 이끌어갈 천재 중 하나로 각광받았던 선수다.

2. 선수 생활

1997년 17세 6개월이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J리그에 데뷔했고 데뷔 한 달 만에 골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 FIFA 청소년 월드컵 주축 멤버로서 일본의 준우승에 일조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면서 본격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여러 유럽 팀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2001년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날 FC로 임대되었다.

그리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 벨기에전에서 역전골, 러시아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맹활약으로 일본의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끌며 한국의 축구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아스날에서 이나모토는 전혀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고, 월드컵이 끝난 후 풀럼 FC로 임대된다.
그리고 풀럼에서 이나모토는 인터토토컵 결승전 1차전에서 골을, 2차전에서는 일본인으로서는 최초의 유럽 무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같은 활약에 고무된 풀럼 측에서도 완전 이적을 시도했지만, 정강이 부상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하며 워크퍼밋 발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결국 2004년 친정팀인 감바 오사카로 복귀해야 했다.

얼마 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이적, 다시 잉글랜드 무대로 돌아갔고 이후 카디프 시티로 임대되어 뛰었다.
그리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벤치 멤버로서 전 대회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터키 쉬페르 리가갈라타사라이 SK로 이적했는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7년 5월 독일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9년, 프랑스 리그앙의 스타드 렌으로 이적했지만 주전 경쟁에 실패하며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2010년 1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하면서 J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대표로 선발, 자신의 세 번째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3. 기타

아스날에 입단할 당시 재일교포설이 돌기도 했으나 아스날에서 벤치만 달구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아스날 입단 후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면서 유니폼만 많이 팔리는 현상이 나타나자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하면 유럽 축구팬들에게 유니폼 팔러왔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박지성맨유 이적 발표 후 한국에서 유니폼 팔러온 선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2004년 아스날이 하이버리 대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새로 짓자 이나모토가 판 유니폼으로 새로운 경기장을 지을 수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축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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