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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단폭격

last modified: 2015-01-20 02:55:17 Contributors

絨緞爆擊
Carpet bombing


크고 아름다운 B-52의 융단폭격.B-52, B-1, B-2의 융단폭격 모습


하늘에서 폭탄 비 가 내려와(...)


큰 편대를 이룬 대형폭격기들이 융단을 까는 것처럼 지상에 불벼락을 깔아대는 행위. 이름만 보면 그냥 영역을 불벼락 융단으로 뒤덮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조준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해당 영역에 골고루 깔려야만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무작정 폭탄으로 난자(?)하는 건 아니고 설정된 지역에 골고루 떨어지도록 면밀하게 미리 조준해서 폭격한다.

이런 전법이 나오게 된 이유는 (당시에 유도 기능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기에) 폭탄을 정확한 위치에 맞추기 위해서는 급강하폭격같은 방법밖에 쓸 수 없었는데, 여기서 발상을 전환해서 "폭탄을 목표물에 맞추지 못한다고? 그럼 아예 그 일대를 싹 날려서 목표물과 같이 파괴하자!"란 생각을 한 것이 시초다.

현재는 미군이 주로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시초는 영국이다. 초기에는 다른 군대와 마찬가지로 영국군도 폭격기 편대가 낮에 이륙해서 표적을 조준하여 폭탄을 투하하였지만 폭격기들은 폭격기들대로 적 요격기에게 탈탈 털리고, 당시의 열악한 조준기 탓에 폭탄은 폭탄대로 죄다 빗나갔다. 그래서 아예 적 요격기의 위협이 덜한 밤에 폭격을 하는 한편, 한 번에 엄청난 수의 폭격기 편대를 출격시켜서 표적뿐만 아니라 그 일대, 혹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쑥밭으로 만드는 전술을 사용했다.

의외로 이 당시 미군은 융단폭격을 해도 표적지역 일대를 뒤덮는 것보다는 최대한 표적을 정조준하여 핀포인트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군의 랭카스터 폭격기 같은 것과 달리, B-24B-17은 덩치는 더 큰 주제에 폭탄 탑재량은 절반 가량밖에 안 되었다. 표적을 핀포인트 공격할 것이므로 폭탄을 대량 투하할 필요는 없고, 대신 표적을 확인하려면 표적이 보이는 낮에 폭격해야 하므로 달려드는 적 요격기에 맞서기 위해 폭탄 탑재량을 늘리는 대신 방어기총을 늘리는 쪽을 택한 것. 물론 핀포인트 폭격이란 것이 영국군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쪽도 한 번 출격에 수 십대의 폭격기가 떼지어 날아다녔기 때문에 영국군보다 투하하는 폭탄 숫자가 적다 뿐이지 당하는 입장에선 똑같이 죽을 맛이었다. 몸 전체를 골고루 두들겨 맞는거나 급소만 정확하게 조금 덜 두들겨 맞는거나

독일이나 일본은 애당초 이런 대형 폭격기가 없었기 때문에 융단폭격은 꿈도 못 꿨다.[1]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세계 도처에 을 널리 재배하기 위해 곳곳을 쑥밭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는 한국전쟁베트남 전쟁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이 융단폭격이란 전술 자체가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어쨌든 그 목표지역 부근 전체를 폭격하는 것이므로 그 임팩트에 비해 사실 효율은 매우 낮다. 이를테면 공장 하나 부수는데 실제로는 폭탄 두 어발만 명중해도 충분하지만 명중률이 그렇게 안나오니까 수십대의 폭격기가 떼지어 날아가는 것. 당연히 수 십대의 폭격기가 출격하려면 생산비, 유지비가 엄청나게 깨진다. 게다가 폭격기만 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폭격기들이 적진에 침투하기 위해서 적 전투기나 대공망도 무력화 해야 하므로 융단폭격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필요한 자원과 인력은 더 크다.

또한 피아구분이 당연히 안 되게 때문에 위험요인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융단폭격을 퍼붓는 것은 고의적인 학살로써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렇게 표적 일대를 폭탄으로 도배하는 융단폭격은 민간인과 건물, 문화재 등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재앙.

2차 대전 당시의 융단폭격 작전은 연합군이 파리로 진격하는 요충지였던 프랑스의 캉[2] 폭격, 독일 남부의 주요 거점 도시였던 드레스덴 폭격[3]도쿄 대공습이 가장 유명하다. 6.25 전쟁 당시에는 집중 폭격 대상이 수도 서울평양이었는데 정말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4] 평양에서는 아예 지하 생활까지 했다고 하며, 특히 전략 요충지였던 원산은 하도 폭격을 맞아 아예 한국어에 원산폭격이라는 고유명사가 생겼다. 개전 초기에는 미 공군이 B-29를 동원해서 낙동강 근교, 즉 왜관 근처에 융단폭격을 가했으나 폭탄만 낭비하고 끝났다. 심리적 동요? 동강 전선은 여전했다.

현대에는 스마트 폭탄 같은 정밀타격무기가 발달하였으며, 이로 인해 보다 적은 노력으로 한 발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가능해졌으므로 목표물의 위치만 정확히 알면 융단폭격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하지만 정밀타격무기의 값이 아직까지는 엄청나게 비싼데다가 산개한 적군 보병같이 정밀폭격시 손해가 나는 표적이 증가하였고, 목표물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필요성만 생긴다면 폭격기를 아직도 운용하고 있는 미국이나 러시아라면 도심지역에 대해서도 다시 융단폭격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민간인 지역만 아니라면 여전히 미군은 융단폭격을 종종 사용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피해를 주기 위한 것 보다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설사 적 병력이 폭격에 피해를 입지 않아도 이 융단폭격을 당하거나 목격하게 되면 사기가 뚝뚝 떨어진다고. 이라크 등지에서는 아예 너네 알아서 항복할래, 아니면 이런 폭격 맞을래?라고 사전 경고한 다음에 적이 숨어있는 곳 근처의 빈땅에 일부러 융단폭격을 한 번 맛뵈기로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적들은 알아서 GG치고 손 들고 나왔다고....

당신들은 4발 중폭격기가 퍼붓는 융단폭격의 위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공포라든가, 치열하다는 따위의 단어로 표현될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집중폭격의 한가운데 앉아있어본다면, 설사 폭탄에 맞아죽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종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아예 그런 생각조차 사라진다. 공포심이라든가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겠다는 본능조차 마비되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쭉정이의 육신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이다.
- 캉 폭격을 겪은 히틀러 유겐트 사단장 쿠르트 메이어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샤아 아즈나블이 쑥대밭이 된 뉴욕의 야구장에 짱박혀있는 화이트 베이스를 찾느라 초조해진 가르마 자비한테 "쥐새끼를 끌어내려면 융단폭격이 최고지."라며 이 작전을 제안했다. 당연히 가르마는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하지만 샤아의 진짜 속셈은...

웜즈에서는 융단폭격을 하면 진짜 융단을 떨구는데 그게 폭발한다! 그것도 연속으로!, 데미지가 상당해서 제대로 맞으면 원턴 킬당할 수도 있다.

엘소드에서도 쉘링 가디언이 된 모 파란 갑주입은 소년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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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독일도 "우랄 계획"이라는 이름하에 4발 대형 폭격기를 개발시도는 했다. 소련의 산맥까지 갈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발을 주도하던 공군 장성이 사고로 사망한 이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폭격기의 역할을 지상군의 지원에 중점을 맞추면서 강하 폭격기와 쌍발 폭격기 중점으로 방향이 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랄 계획이 성공했다 치더라도 독일의 전쟁수행능력 상 대형 폭격기가 오래 활약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드는 부분.
  • [2] 이 때 연합군이 하도 폭격을 퍼부은 나머지 아직까지도 캉에서는 80년을 넘어가는 문화재나 건축물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 [3] 남부의 보석으로 유명했던 도시로, 별명이 '독일의 프라하'였지만 1945년 이후에는 현시창.
  • [4] 김일성이 1950년 12월 중공군의 도움을 받아 평양을 수복하고 둘러보며 한 유명한 말이 "집 두 채 말고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