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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last modified: 2018-01-20 06:23:11 Contributors


어머멋?

대한민국만화가. 1988년 허영만의 문하생으로 만화판에 발을 들였고[1] 1993년에 데뷔했다.

Contents

1. 소개
2. 작품 목록
3. 기타


1. 소개

youtube(JdN_PuJexWU)

만화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렸다고 한다. 시작은 학교 신문 네칸 만화였고, 그 이후에도 만화가를 꿈꾸며 미대입시를 준비했는데, 고3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미대를 가지 못했다. 국립대 미술교육학과에 응시했지만, 미대 입시만 준비한 윤태호는 당연히 떨어졌고, 상경해 만화광장 부설 만화학원에 들어갔지만 생면부지의 사촌형집에 얹혀사는게 싫어 노숙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촌이 뻑하면 심부름을 시키는데 한번에 안 시키고 짜잘하게 여러번 나눠서 시켜서 화가 났다나. 그냥 나가라고 돌려말한 것일지도.

노숙을 하는 도중에 만화학원이 대치동으로 이전하면서 윤태호는 우연치않게 은마아파트에서 노숙을 했는데, 그곳에 허영만의 화실이 있었고 여차저차 끝에 허영만 화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이 매우 안습(?)한 것이 원래는 학원장이 소개를 시켜준다고 했었는데 어디 협횐지 회읜지 갔다가 허화백과 대판 싸우고 나서 사이가 안 좋아져서 윤태호를 소개시켜주기가 뭐해지는 바람에 소개를 안 시켜주고 있었다.그 후 허화백의 화실을 알아온 학원 형이 담배갑에 주소를 적었다가 까먹고 버려버려서 그 넓은 아파트 단지를 1동부터 뒤지기 시작하는데 화실은 마지막 3X동에 있었다! 게다가 3X동은 만화 학원 바로 앞에 있었다고(...).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일단 본인이 그린 그림을 들고 화실에 가서 받아줍쇼 했는데 마침 전날 하나 남은 자리에 누가 들어와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윤태호 본인은 만화 화실이라면 실력 있는 사람은 자리가 없어도 받아줄 줄 알았는데 자리 얘길 하면서 거절당하니 아 내 그림 실력이 허접한거였냐면서 이를 갈며 일주일간 폭풍 그림 그리기를 한 다음 다시 허화백의 화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엔 전에 말한 하나 남은 자리에 들어왔던 인간이 그 다음날 바로 도망갔다가 바로 어제 무릎 꿇고 다시 받아줍쇼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어진 윤태호가 다시 학원에 가서 있는데 다음날 화실 경리가 전화가 오더니 그 사람 또 나갔으니 빨리 오라고 해서 겨우겨우 문하생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뭐냐 그 들락날락한 놈은.
팟캐스트 미생 라디오 0회에서 나온 얘긴데 옛날엔 DC의 사건사고 갤러리에 자주 갔었다고 한다. 소재 찾으려고.

허영만의 문하생으로 시작했으나, 허영만의 화실이 너무 바빠서 직접 배울기회도 없고, 개인 연습을 하거나 작품을 준비하기가 어려워서 운학의 화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윤태호는 스스로 "내 피와 테마를 만든 것은 허영만이며 근육(살)을 만든 것은 조운학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만화의 소재나 접근하는 방식은 허영만의 영향을 받았고, 만화를 그리는 기술은 조운학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허영만 같은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자주 얘기한다.

90년대 중반부터 미스터 블루에 '혼자 자는 남편', '연씨별곡' 등으로 남자의 미묘한 애환과 음담과 고전 패러디가 담긴 성인 취향 개그만화들을 그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최초 연재는 월간 점프에서 시작했는데 1화를 내보내고 나서 내가 이런 퀄리티로 밖에 작품을 못 뽑다니!!!! 하며 절망, 편집부에 요청해 접었다고 한다. 사실 영 반응이 별로라 편집부도 반겼다던가.

인지도 제로 수준인 '열풍학원'이나 막가는 감각이 가득한 개그 단편집인 '수상한 아이들'을 내놓기도 했는데, 갑자기 번개라도 맞았는지 스타일이 일변, 부킹에 YAHOO를 그리면서 윤태호의 개그만 알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인기를 얻었다. 그 와중에 초기 스타일에 가까운 만화인 '로망스'를 그리기도 했다.

야후 이후 스토리만 맡아 싸이렌을 내놓지만 별 반응은 없었고 야후 이전 성향에 가까운 만화인 협객난전도 큰 반응은 없었으며, 잠시 학습만화도 그리고 하다가, 전형적인 이원호식 스토리인 주유천하의 그림을 맡아 다시 장편 쪽으로 복귀한다. 2010년 11월부터 한겨레 hook에서 웹툰 《내부자들》을 연재 하고있다.

2008년, 웹툰이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전에 윤태호를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유명해졌다. 이끼를 연재했을 때 윤태호의 나이는 40살이였다. 나이 40살에 만화계에서 빛을 본것이다. 2012년에는 《미생》으로 2012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런던도서전에서 주목했다는 내용으로 네이버 뉴스에 실리기도 했다. 링크

2. 작품 목록

3. 기타

  • 만화가 신문수와 같은 단지에 살며, 신문수가 포토샵 작업을 할 때 모르는 부분을 도와준다고 한다. ** 이제 신문수가 이끼를, 윤태호가 로봇찌빠 등을 그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깊이 고뇌하는 팔팔이와 찌빠가 함정.

  • 손금, 점성술, 사주, 풍수에 능하다고 한다. 이끼의 이장은 관상학적으로 안 좋은 것만 집대성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나.

  • 화실에 출근하자마자 YTN을 틀어 놓고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다른 만화가들이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는 것과는 색다른 취향이다.

  • 그의 만화는 제목에 대한 징크스가 있는데, 2글자 제목은 평단과 팬들의 호평을 받고 대박을 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 야후 이전과 이후 만화간에 차이가 워낙 큰 때문인지, 만화 좀 봤다는 사람들한테조차 혼자 자는 남편이나 연씨별곡을 보여준 후 이게 이끼 그린 사람 거다라고 하면 못 믿는 경우가 보이기도 한다.

  • 만화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인물의 내면에 대해 높은 디테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 작가가 커플 브레이커인지 주인공이 연애에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희망적으로 보이는 미생도 작가의 말에 따르면 안 이어지는 듯 하지만, 시즌 2에서는 작가가 장그래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아싸 만세

  • 야후를 그린 이후에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1998년 야후 이후에 수상한 아이들, 로망스를 그렸지만 야후 이후에 2008년 이끼가 나오기 까지는 10년이 걸렸다.

  • 대학만화 최강자전의 여러 작품의 멘토 교수를 하기도 하였다.
  • 네이버캐스트에 그의 성장과 만화가로서의 데뷔 과정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링크
    • 이 인터뷰를 조석이 직접 방문해서 인터뷰한 내용의 만화가 있다. 링크


  • 미생이 큰 성공을 거두자 캔커피 레쓰비 카페타임 광고와 미생의 드라마화로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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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문하생이 되기 전엔 3개월 정도 노숙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사촌형네 얹혀사는 게 싫어서 여름이기도 해서 친구들과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