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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last modified: 2015-04-04 13:48:23 Contributors


울산 현대 감독
윤정환 (尹晶煥 / Yoon Jong-Hwan)
생년월일 1973년 2월 16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173cm
유스팀 금호고등학교 (1988~1990)
동아대학교 (1991~1994)
소속팀 유공 코끼리/부천 SK (1995~1999)
세레소 오사카 (2000~2002)
성남 일화 천마 (2003)
전북 현대 모터스 (2004~2005)
사간 도스 (2006~2007)
지도자 사간 도스 유스팀 코치 (2008)
사간 도스 코치 (2009~2011)
사간 도스 (2011~2014)
울산 현대 (2014~)
국가대표 경력 38경기 3골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2002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플레이 스타일
3. 지도자
3.1. 사간 도스
3.2. 울산 현대


J2리그에서도 최약체였던 사간 도스J리그로 승격시키고, 1위로 만들고, 전국구 강팀으로 끌어올린 명장.
그리고 아직은 이른 편이지만, 울산 현대 팬들로부터 조민국이라는 최악의 존재를 바로 잊어버리게 한 울산 현대 보드진 신의 한 수.
철퇴왕 2세

1. 소개

광주광역시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출생으로 북성중학교, 금호고등학교, 동아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현역 은퇴 이후, J리그사간 도스의 감독으로 2014년 8월 8일까지 재임했다.

2. 선수 시절


현역 시절의 활약상.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로 뽑혀 대표팀의 플레이 메이커로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조직력을 중시하던 당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밑에서 헝가리 출신의 요제프, 그리고 당시 무명이었던 김기동, 이을용, 故 정춘 등 미드필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외에 1997년~1998년에 유공 코끼리/부천 SK에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로는 남기일, 조성환(2014, 2015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등이 있다.

이 시기 유공 코끼리는 니폼니시와 윤정환으로 대표되는 팀이었다. 비인기 팀이었으나, 니폼니시와 윤정환 때문에 팬클럽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포터 탄생의 큰 역할을 한 것이 고종수였듯이, 유공 코끼리(부천 SK) 서포터 탄생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윤정환이다. 당시 '유공-부천 경기는 표값이 아깝지 않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윤정환이 팀에서 갖는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여담으로 당시 니폼니시 감독은 윤정환에게 별다른 전술적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알아서 잘한다고.

이렇게 부천 SK에서 1999 시즌까지 활약한 후 당시 불어 닥쳤던 J리그 진출 열풍에 합세해 이적료 150만 달러에 2000년 J리그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였다. 세레소 오사카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당시 세레소의 주축이었던 일본 국가대표 출신의 모리시마[1]정윤이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포지션이 수비 쪽으로 밀리며 대한민국에서와 같이 인상적인 활약은 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는 윤정환이 보기드문 유형의 선수이지만 일본에서는 흔한 유형의 선수인 것도 한몫 했다.

그러다 2003년 다시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으나, 감독과의 불화에다가 세레소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앙에는 터줏대감 신태용이 버티고 있던 탓에 활약은 미미하였다. 그 후 2004년에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고, 2006년에 당시 2부리그 팀이었던 사간 도스로 이적한 뒤 2008년 3월에 은퇴하였다.

2.1.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전형적인 클래식 10번, 필드의 사령탑, 패싱마스터, 플레이메이커.

엄청난 시야와 패스 정확도+속도를 자랑하면서 화려하고 창의적인 스루패스를 쫙쫙 뿌려준다. 볼간수도 잘해서 빠른 드리블로 제끼기보다는 정확한 드리블로 지키는 드리블도 수준급이었다. 또한 셋피스에도 뛰어나서 프리킥으로도 골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위의 하이라이트에서 볼 수 있듯 중거리 슛에도 능한 킥에 관해서는 만능, 마스터였다

그러나 느린 발에 몸싸움이 안되는 약한 피지컬과 172cm의 단신으로 제공권에 문제가 있으며 특히 적은 활동량과 빈약한 수비력[2]이라는 양날의 검과 같은 선수였다. J리그에서는 잠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긴 했지만 전형적인 공격몰빵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그래서 윤정환을 중심으로 팀을 짤 수 있는 클럽팀에서는 몰라도 당시 강한 피지컬과 빠른 발을 중심으로 하던 한국 국대에서 윤정환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현역시절 '체력이 약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한국축구계가 스테미너와 힘, 몸빵 등을 모두 '체력'이라고 지칭하면서 졸지에 스테미너가 약한 선수 취급을 받았는데 윤정환은 몸싸움이 약하고 활동량이 적은 선수지 스테미너가 약한 선수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축구계는 닥치고 피지컬이었던 시절이라 윤정환 같은 소위 테크니션이라는 선수들이 종종 체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반쪽짜리 선수 취급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윤정환이고 이후에도 문식, 고종수, 심지어 안정환까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축구계는 체력에서 스테미너와 힘을 2002 한일월드컵 준비과정에서야 비로소 구분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 선수.

PC통신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엔 윤정환 기용 문제가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과 유공 코끼리에서 보여준 화려한 패스 플레이에 매료된 수많은 팬들이 윤정환 위주로 대표팀을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비쇼베츠호에서 함께 핵심 멤버로 활약했던 최용수와 상반되게 차범근호에서 중용되지 못했고,[3] 이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서도 확실한 주력 멤버로는 도약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허정무는 윙백-윙포 4명을 쓰던 한국식 3-5-2에서 윤정환을 사용하기 위해 유상철-박지성의 더블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소속팀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던 윤정환의 플레이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팀전술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실력에도 단 1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지 못했다. 그나마 윤정환의 존재감을 알렸던 건 2002 한일월드컵 직전에 열렸던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안정환과의 콤비플레이로 (일명 투정환 전술) 추가 골을 넣었던 그 때 딱 한 번이었다. 압박전술에 걸맞는 강인한 체력·체격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고, 특히 포지션 교체에 능한 올라운더를 원했던 히딩크 감독에겐 지극히 계륵같은 존재였다. 결국 김병지, 최은성, 최성용, 현영민과 함께 2002 한일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한 멤버가 되었다.[4] 결국 이름값이 있음에도 한번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5] 주로 비교되던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발데라마처럼 활용됐더라면 선수 본인과 대한민국 대표팀 양쪽에 윈윈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3. 지도자

3.1. 사간 도스


2008년 사간 도스와 재계약하지 못하고 은퇴했으나, 구단의 요청으로 프런트에 합류하였고, 2009년 1군 코치로 승격하였다. 2011년 사간 도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디비전 2의 1위로 팀을 끌어올렸고, 사간 도스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디비전 1로 승격하였다.

승격 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2014년에도 J리그에서 1위를 달리던 중, 8월 8일 사간 도스의 감독에서 갑작스럽게 퇴임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여러 억측이 나오고 있으나, 자세한 사항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간 도스의 전력강화부장인 나가이 타카유키와의 마찰이라는 설도 있다. 나가이 타카유키는 사간 도스의 전신인 도스 퓨쳐스부터 시작하여 구단이 휘청거리던 시절에는 무급으로 일을 맡을 정도로 구단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인물인데, 문제는 그 애정이 패싱 축구를 추구하는 개인의 취향과 만나면서 삐뚤어진 방향으로 발현했다는 것. 당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사간 도스였지만 자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패싱 축구를 장기적으로 자리잡게 만들기 위해 윤정환이 체력과 몸빵, 압박을 내세우는 지금의 스타일로 뭔가 성과를 얻기 전에 내친 것이다. 실제로 윤정환의 해임 원인에 대해서는 '전력강화부의 부정적 견해'가 제일 크다는 보도가 있었고, 해임 관련 기자회견에 구단 대표로 나온 것도 저 나가이 타카유키였다. 결국 우승 레이스에 끼어들었던 사간 도스는 5위까지 밀려났고 아챔진출에도 실패했다.[6]

그러나 단장과의 마찰 하나 때문에 1위하는 감독을 시즌 중에 자른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운 관계로 한국인 감독이 J리그와는 다른 압박을 중시하는, 즉 일본 축구보다는 한국 축구에 가까운 스타일로 한국인 감독이 J리그를 우승 할까봐 J리그 연맹에서 사간 도스 구단에게 압박을 넣은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일본에서도 제기되었고 한국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모론일 뿐이니 걸러듣도록 하자. 해임 사태가 터지기 전 사간 도스는 윤정환 감독과 재계약 협상중이었다. 또한 2013년 심각한 적자가 발생했고, 2014년엔 적자폭이 더 커지리란 비관적인 전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간 도스의 처사는 프로 스포츠 클럽으로 전혀 이해받을 수가 없는 행동이다. 무리뉴는 첼시 초기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심각한 감정싸움을 벌였고 파산한 클럽 첼시를 돈질로 유럽 탑 클럽으로 올려놓은 로만에게 자신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달라며 땡깡을 부렸으나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무리뉴가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 감독으로 계속 기용했다. 그러다가 무리뉴가 잘린 시기도 선수단과도 불화를 겪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졸전하며 성적을 내지 못할때 결국 자렸다.

축구계의 정점에 위치하는 레알 마드리드 같은 클럽도 성적을 내기 위해 클럽의 철학과 반하는 무리뉴 감독을 데려갔는데-물론 레알이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고 불화만 일으킨덕분에 간단하게 쫓겨났지만-도, 가진 것 없는 일개 시민구단 사간 도스가 단지 단장과의 마찰을 이유로 리그 1위를 달리는 감독을 시즌중에 잘랐다는 게 포인트다. 쥐뿔도 없는 시민구단이 감독의 힘으로 리그 1위까지 달리고 있는데 시즌 종료 후도 아니고 시즌중에 자른다는건 프로스포츠 클럽이 할 행동이 아니다.

3.2. 울산 현대



2014년 11월 20일, K리그 클래식울산 현대에서 조예스 조민국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와 달라면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이에 윤정환 감독은 여러 언론에다 "울산의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으며, J리그의 여러 구단에서도 영입 제의를 받았기 때문에 울산 현대의 제의를 수락할지 고민했다. # 이 무렵 울산 현대에서는 단장을 교체하였다.

이후 보도로는 울산 현대의 구단주 정몽준의 의사가 컸다고 한다.


결국, 2014년 12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5년 3월 8일 공교롭게도 올림픽 대표팀 시절 '영혼의 단짝'이었던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서울과 K리그 클래식 개막전을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 실용주의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아서 2년전 호거슨의 철퇴축구를 그대로 다시 들고 나와서 2:0으로 서울을 누르며 화려한 신고식을 올렸다.
조예스가 될성부른 패싱축구를 천명하며 불과 1년만에 팀의 근간을 많이 바꿔놓았는데, 다행히 철퇴축구의 핵심 멤버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팀을 맡은지 4개월이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원상복구할 수 있었다. 또한 김호곤 감독이 매년 영입을 통해 전력을 업그레드했던 것처럼 현역 아시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제파로프 영입을 구단에 강력히 요청, 철퇴에 날개를 달았다.[7]

3월 15일 첫 원정 경기 상대는 하필 포항 스틸러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남 더비를 치뤘다. 시작 전부터 언론을 통해 선배 황선홍 감독과 언중유골 설전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전반전 포항은 강력한 허리싸움을 걸며 제파로프를 기점으로 한 철퇴축구의 시발점을 적시에 차단하며 울산을 몰아붙이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반 추가시간 단 한번 찬스를 그대로 제파로프가 득점으로 성공시켰고, 후반 시작 2분만에 포항이 무섭게 몰아쳐서 동점골을 얻어내며 경기양상은 한골 싸움에서 차차 난타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윤정환 감독은 김신욱을 투입해 양동현과 장신 타겟 투톱을 세우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적중해 포항은 제공권을 지키기 위해 수미를 내려 중앙을 두텁게 세웠다가 마스다의 중거리슛을 허용하면서 포항은 팀의 공수 밸런스가 무너졌고 결국 울산은 4:2로 대승을 거뒀다.

3월 22일 전남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23일 전북도 인천과 득점 없이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울산은 득실차에 앞서서 리그 단독 선두를 차지했다.
아직 리그 초반이지만 K리그 클래식 팀들 가운데 울산과 전북이 가장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순항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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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일 월드컵에서 출전
  • [2] 수비력도 수비력이지만 애초에 수비가담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 [3] 이는 당시 전술 자체가 중원은 원톱일땐 김도근-유상철 투톱일땐 유상철 혼자 커버하다시피하고 양사이드에 윙을 4명 세워놓고 타겟 머리에 무한 크로스 올리던 전술이라 유상철 자리에 윤정환을 넣는다는 것은 중원을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4] 하지만 윤정환 본인은 히딩크에 대해 전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아니, 월드컵때 1경기도 뛰지 못했을 땐 섭섭한 감정이 있었지만, 이후 감독이 되어보니 피지컬을 중시하던 히딩크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수 지도 등에 관한 부분을 모두 히딩크가 지휘하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지도자로써 현재는 매우 존경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런데 지도자 롤 모델은 역시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라고 한다.
  • [5] 94, 98 월드컵엔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 [6] 그런데 이건 2015년 아챔에 출전하는 K리그 4팀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진짜로 다행일 수도 있다. 만약 윤정환이 사간 도스를 2015년 아챔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하고 2015년에도 계속 사간 도스 감독을 맡았다면 K리그 4팀 중 한 팀은 윤정환이 이끄는 사간 도스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만났을 것이다. 그 팀은 지못미... 예를 들어 광저우 헝다, 전북 현대, 사간 도스,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이렇게 한 조가 되었다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7] 제파로프는 윤정환과 마찬가지로 10번 위치(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플레이메이커 롤을 수행하는 선수다. 나이로 인해 피지컬, 체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플레이메이킹 자체는 K리그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가며 아시아 내로 따져도 꽤 상위권에 들어가는 선수다. 그렇기에 윤정환이 제파로프를 조련하는 방법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이는 현재까지 매우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