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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투수)

last modified: 2019-12-13 22:14:47 Contributors

KIA 타이거즈 에이스 시절
노퍽 타이즈 동네북 시절

KIA 타이거즈 No.20
윤석민 (尹錫敏 / Suk-Min Yoon)
생년월일 1986년 7월 2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구리시
학력 구리초-인창중-야탑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5년 2차지명 1라운드 (KIA)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5~2013)
노퍽 타이즈 (2014)
KIA 타이거즈 (2015~2019)
응원가 싸이 '아버지'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강태원 윤석민(2005~2009) 조태수(2010~2012)
KIA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조태수(2009) 윤석민(2010) 고우석(2011~2012)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
손영민(2010) 윤석민(2011~2013) 송은범(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홍건희(2015.1.~3.)[1] 윤석민(2015~) 현역
2008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이숭용(현대 유니콘스) 윤석민(KIA 타이거즈) 강봉규(삼성 라이온즈)
2011년 한국프로야구 MVP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윤석민(KIA 타이거즈)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2011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류현진(한화 이글스) 윤석민(KIA 타이거즈) 장원삼(삼성 라이온즈)



Contents

1. 소개
2. 선수 커리어
2.1. 신인 시절
2.2. 베이징 올림픽
2.3. 2회 WBC
2.4. 2009 시즌
2.5. 2010 시즌
2.6.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7. 2011 시즌
2.8. 2012 시즌
2.9. 2013 시즌
2.10. 2014 시즌
2.11. 2015 시즌
2.12. 은퇴
3. 연도별 주요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평가
6. 야구 외

1. 소개

KBO 리그 KIA 타이거즈 소속의 우완 투수.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의 트리플 A 노퍽 타이즈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2015년 다시 KIA로 복귀하였다. 한국 내에서 역대 등번호는 20(2005~2009) - 28(2010)[2] - 21(2011~2013) - 20(2015~)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 한국프로야구을 대표하는 우완 에이스 투수. 그러나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부상과 경기별 기복으로 인해 윤석민을 리그 탑급 투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는 평가 항목 참조. 반면에 용병투수를 제외한 국내파 선발투수 중에서는 모든 요소를 감안해도 리그 탑급이라고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2000년대 후반기 국내 최고의 우완 중 하나로 과거 빅3라고 불리던 배영수, 박명환, 손민한이 부상으로 차례차례 몰락한 뒤,[3] 프로야구판에 뛰어난 우완 '선발'은 찾기 힘들게 되었다. [4] 선발 로테이션에 끼어 꾸준히 던져주는 우완 투수들은 대부분 해외파인 상황에서, 송은범과 함께 국내파 우완의 자존심을 세울 기대주로 떠올랐다.[5]

어려 보이는 외모로 '석민 어린이' 등의 별명을 얻었고, 2007년 팀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때 윤석민상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그 외 별명으로 윤공황, 윤섹서, 윤복서, 노폭전드, 윤졸도(윤스운), 형저마, 강타자, 90억센시오 등이 있다.

2. 선수 커리어

2.1. 신인 시절

성남에 있는 야탑고등학교를 나왔으며[6], 2005년 2차 1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는데 이때는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투수는 아니었다. KIA 타이거즈의 성공적인 스카우팅 사례 중 하나.

2006년 구속이 붙으면서 서정환의 벌떼야구의 중심축으로 혹사활약하며 본격적으로 우수한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2007년 시즌에 팀의 선발투수 부족으로 선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윤석민상 수상 2008년 시즌에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으로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 방어율왕을 차지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2. 베이징 올림픽

임태훈을 대신하여 나가게 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소위 윤노예 모드에 들어가서 부진하던 한기주, 오승환을 대신해 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사실 올림픽 때의 투구내용 자체는 훌륭한 편이 아니였다. 소위 말하는 분식회계가 많았다. 이대호가 윤석민을 살렸다!!라고 했을 정도.

당시 대표팀 감독 김경문이 윤석민 뽑는 것을 반대하다가, 평가전에서 참패하고 기술 위원들의 설득으로 임태훈 대신 넣었다고. 허구연의 방송사고로 드러났다.

2.3. 2회 WBC

2회 WBC에서 중국전 선발로 무실점 호투했다. 이후 멕시코전, 일본전에서 계투조로 활약하며 방어율 0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고 베네수엘라와 펼친 4강전에서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베네수엘라 타선을 6⅓이닝 7안타 2실점으로 틀어막아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4. 2009 시즌

2009년 시즌에 들어가자마자 안습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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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광주 삼성전 9이닝 1실점 승패없음(결국 그 경기 패)

초반 방어율이 4점대인데다 기아 방어율이 6선발 평균 2점대의 다른팀 에이스 선발급 포스를 내뿜고 있어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게다가 기아 타선이 이상할 정도로 윤석민 등판일에는 파업을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윤석민 등판일의 성적이 가장 나쁘다. 그야말로 안습의 절정을 달렸다.

4월 17,18,19일의 3연전에서는 타선이 폭발해서 25점이 나왔지만 윤석민 등판일인 18일에는 달랑 2점만 나오는 안습함까지....(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게다가 연이은 한기주퐈이야로 날려먹은 경기가 꽤 되는 상황이 되자(4월 21일~26일, 6일 연속으로 8회 이후에 실점), 결국 조범현 감독은 선발에서 부진(?)한 윤석민을 마무리로 내리기로 결정한다.

...근데 마무리가 되어도 안습. 5월 1일 경기에서 한기주의 퐈이야에 이은 4:4 상황에서 등장, 한화 타선을 4⅓이닝동안 6삼진 퍼펙트로 완벽하게 틀어막았으나...타선의 삽질이 이어지며 이번에도 승수 쌓기는 실패했다. 어휴...
그리고 어린이날에 결국 미묘하게 퐈이야하면서 결국 패전투수. (...)결국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서야 최희섭김상현의 도움으로 시즌 첫 승을 기록하였다.

마무리로서 제법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서재응과 이범석의 부상으로 인해 선발로테이션에 문제가 생기자 5월 29일 선발로 복귀했다. 하필이면 상대투수가 봉중근이라... 좀 흔들리는 감도 있긴 했으나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를 챙겼다. 조범현 감독은 이제 다시 마무리는 안한다고 못박은 만큼 남은 시즌은 선발로 등판할것으로 보인다.

부상당해 2군으로 내려간 방화범을 대신해 세일러 유가 마무리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윤석민은 다시 선발로 복귀,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 호투하며 부활을 알렸다.

이후 후반기에도 호투를 이어가며 연승행진 중. 기아 타선이 좋고 본인의 투구가 좋으니 진짜 남은 등판 경기 다 이겨서 10승 찍는거 아니냐는 설레발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2009년 8월 12일 롯데전에서 7이닝 무실점 5탈삼진으로 시즌 6승을 거두며 팀과 자신의 연승 행진을 이어가는데 성공. 8월 18일 히어로즈 전에서는 5이닝 1실점 승리, 8월 23일 SK전에서는 7⅔이닝 1실점으로 8승째를 올리며 10승 설레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8월 30일 두산전에서는 7이닝동안 피안타 2개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기아 타선이 미친듯한 병살을 때려내면서 1:0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2007년의 윤석민이 되살아나....나 했는데 8회 초에서 최희섭의 적시타와 장성호의 만루홈런, 김원섭의 백투백 홈런으로 기아가 대거 6점을 뽑아내면서 역전에 성공, 시즌 9승째를 거뒀다. 이로써 등판 9연승을 이어가는 한편, 방어율에서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못하는 김광현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9월 5일 두산전에서 3이닝 10실점하는 최악의 피칭을 하며 방어율왕 타이틀 수성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2007년 무리하면서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은 이후 후반기로 가면서 체력과 투구 밸런스에 악영향이 심각한 것 같다. 결국 MRI 촬영결과 어깨에 부종이 확인, 시즌 아웃이다. 다행히 포스트 시즌에서는 투구가 가능한 듯.

그리고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기다렸다는 듯 복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기아의 2연승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6차전에서는 5이닝 3실점을 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해설, 선배투수, 본인까지 한목소리로 '너무 급했다'고 평했을 정도로 일찍 승부를 보려는 조급한 피칭을 했다. 물론 지금까지 윤석민의 성장세를 봐서는 이런 아픔을 겪고 더 성장하는 케이스라, 만약 다음 포스트시즌 경기 때는 무서워질지도 모른다.

2.5. 2010 시즌

성적이 나쁜 건 아니지만 순 제멋대로인 스트라이크존에 제대로 적응 못하고 투수코치가 데스기모토로 바뀐 탓인지 부진하다. 5월 9일에는 뜬금없이 마무리 등판까지 했다.
5월 26일 잠실 LG전에서는 ⅔이닝동안 8실점으로 관광당했다... 충격이 오래 갈듯 할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5월 11일 광주 넥센전에서 2년만에 완투승을 거뒀지만, 류현진의 17K 탈삼진쇼에 아쉽게 묻혀버렸다.
2010년 6월 19일, 18일 있었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완투직전에 윤상균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강판당했다. 왠일인지 그날부터 기아는 연패를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7월에 접어들어도 연패행진이 멈추지 않다가 7월 9일에야 겨우 16연패를 끊었다.
그리고 강판 후에 분노를 이기지 못해 라커룸에 오른손을 내리쳐서 새끼손가락 골절. 전치 6주.[7]

8월 15일에는 2대 1 상황에서 등판, 볼넷과 송구 실책으로 1점을 내준 직후 홍성흔의 타석에서 던진 직구가 손등을 강타해 홍성흔이 시즌아웃이 돼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는 기아와 롯데는 4강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중이었고, 홍성흔은 그런 롯데타선의 중심축이었던 선수였다. 게다가 홍성흔은 타점 신기록 경신이 상당히 유력한 상태였기도 했다.

때문에 윤석민은 롯데팬들에게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 중. 일각에선 공 하나로 롯데의 4강을 날려버리고 주먹한방으로 팀의 16연패를 이끄는 대단한 투수라고 평하기도(...) 빈볼 논쟁이 나오기도 했지만 롯데, 기아 모두 빈볼이 아니라는 입장이고, 특히 피해자인 홍성흔은 사과 전화를 한 윤석민에게 경기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신경쓰지 말고 잘해라라고 말해주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이기도 했다.#기사

8월 19일 경기에서 마무리로 등판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8월 2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구원등판하여 또다시 조성환의 머리에 공을 맞춰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분노한 사직 구장 롯데 팬들의 오물 및 물병 투척으로 경기가 10여분정도 지연되었다가 재개되었다.

이 때 롯데팬들의 분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는데 이는 단순히 롯데팬이 극성이기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다. 해당 경기 시점에서 롯데와 KIA의 4강 경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 + 2010시즌 윤석민이 던진 몸에 맞는 볼이 총 3개인데 3개 모두 롯데 중심 타자들(강민호, 홍성흔, 조성환)에게 맞았다는 것[8] + 8회말에 등판해서 9회말 2아웃까지 절묘한 제구로 5타자 연속으로 삼진 및 범타로 처리를 하던 중이었다는 것이 합쳐지는 바람에 엄청난 결과가 돼버렸다.

조범현 감독은 3만 관중이 "내려가" 콜을 하는데도 굴하지 않고 계속 윤석민을 던지게 했고, 윤석민은 이대호를 고의사구[9]로 거른 후 가르시아를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고 내려갔다.

경기 결과는 KIA가 7:5로 승리. 이후 경찰들의 경호를 받으며 구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후에도 큰 파장이 있었다.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조

결국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기사
한편 메이저리그의 한 멘탈 코치가 윤석민의 소식을 듣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기사

그리고 공황 장애로 내려갔다면서 뜬금없이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들었다.공황장애가 그렇게 가벼운 병이었나?[10]

그리고 9월 14일 다시 1군에 올라왔다#기사

하지만 역시 후유증이 남아있었는지 9월 15일 서재응에 이어 8회 등판 ⅔이닝 4실점하며 084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사구논란과 그 후의 부진 때문에 광저우 아시아게임 최종 엔트리에 든 것을 비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2014년 6월 16일 조성환이 은퇴를 선언하자 이 사건이 다시 재조명 되었다.[11]

2.6.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 11월 13일 대만전 7회에 선발 류현진을 구원등판하러 나왔는데... 알고보니 당일 출전선수 명단[12]에서 빠진 상태였다. 때문에 주심이 윤석민을 퇴장시키는 바람에 1구도 못 던지고 쫓겨나고 대신 봉중근이 급히 올라왔다. 프런트의 초대형 병크.

이 과정을 심판이나 위원회가 민감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재경기 내지 몰수패라도 나올 상황이었다는 점[13], 대만측에서도 윤석민을 퇴장시킨 후에도 이런저런 항의를 하며 제스쳐를 취했다는 점, 비록 크게 리드해나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분위기가 매우 미묘해지는 바람에 등판투수의 기복에 문제가 있을수 있었다는 점[14] 등 큰 문제가 될 뻔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런 사건이 윤석민과 인연이 생겼다는 것이 하필이면... 이다. 그에게 유독 10시즌에 이런저런 사건사고 많았다는 점이 이 사건을 더욱 주목시켰다.

이일로 기아갤과 야갤에선 윤종범, 윤유령, 윤투명, 윤실종, 윤미아, 윤난입, 윤톨이, 윤누락, 윤나가, 윤간인, 윤난입, 윤리건, 윤명인간, 윤유령투수 등 온갖 별명을 얻어 김별명 못지않은 윤별명으로 등극하였다.

그래도 18일 중국전에는 제대로 나와서 150km 가 넘게 공을 뿌리며 호투했다. 그리고 19일 결승전에서는 류현진의 뒤를 이어 5이닝 7k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류현진이 4이닝 3실점으로 흔들렸지만 휘둘리지 않고 호투
야갤러들 마저 공황甲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특히 7회의 3타자 연속 삼진은 이 경기의 백미.
일부 프야매 유저들은 2만PT 벌었다고 좋아했다.

2.7. 2011 시즌


2011년 11월 7일, 류현진과 함께 스캇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

2.8. 2012 시즌

2.9. 2013 시즌

2.10. 2014 시즌

2013 시즌 종료 이후 FA를 선언하면서 해외 진출을 꾀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FA 선언 선수들이 전부 계약한 가운데 이듬해 2월이 넘어가도록 계약소식이 들리지 않으면서 국내유턴 설 등 여러 루머들이 돌았다.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6월 중순 기준으로 방어율이 리그에서 밑에서 4위이고 이닝당 피홈런수는 리그 1위(...)이며 6월 17일 기준으로 아홉경기 연속 피홈런을 맞는 등전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마이너리그 시즌이 모두 끝난 시점에서는 딱 크보급 투수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정도. 10경기 연속 피홈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겪었다.

8월 31일 볼티모어의 40인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국내 리턴설이 다시 떠오르는 중. 윤석민 본인은 내년에도 메이저리그 도전의사를 드러냈다.

자세한 이야기는 윤석민(투수)/2014년 참고.

2.11. 2015 시즌

1년동안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지만 결국 실패하여 친정팀 KIA로 돌아온 해. KIA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

자세한 건 윤석민(투수)/2015년 참조.

2.12. 은퇴

2016년 시즌 종료 후 어깨 웃자란 뼈 제거 수술을 받았고, 그 뒤 재활과 복귀를 반복하며 예전의 기량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2019 시즌 종료 후인 12월 13일에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원래는 지난 5월에 이미 은퇴를 결심했으나 조계현 단장의 만류로 미뤄진 것이었다고 하며, 또한 후배들에게 기회가 돌아가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KIA 타이거즈 53 84 3 4 7 0 0.429 4.29 92 8 38 49 47 40 1.476
2006 63
(5위)
94⅔ 5 6 19
(5위)
9 0.455 2.28 81 5 31 75 26 24 1.141
2007 28 162 7 18
(1위)
0 0 0.280 3.78 161 10 74 104 76 68 1.358
2008 24 154⅔ 14
(2위)
5 0 1 0.737
(5위)
2.33
(1위)
121 10 46 119
(5위)
45 40 1.054
2009 27 119⅔ 9 4 7 0 0.692 3.46 110 9 52 117 52 46 1.287
2010 23 101 6 3 3 0 0.667 3.83 95 5 39 94 48 43 1.297
2011 27 172⅓
(5위)
17
(1위)
5 1 0 0.773
(1위)
2.45
(1위)
137 10 50 178
(1위)
53 47 1.050
2012 28 153 9 8 0 0 0.529 3.12 120 9 41 137 60 53 1.000
2013 30 87⅔ 3 6 7 2 0.333 4.00 91 9 29 76 41 39 1.35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노퍽 타이즈 23 95⅔ 4 8 0 0 0.333 5.74 125 15 31 67 69 61 1.578
KBO 통산(9시즌) 303 1129 73 59 44 12 0.553 3.19 1008 75 345 949 448 400 1.198
MiLB(AAA) 통산(1시즌) 23 95⅔ 4 8 0 0 0.333 5.74 125 15 31 67 69 61 1.578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7년 윤석민상 수상
2011년 정규시즌 MVP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2005년 0완투 0완봉
2006년 0완투 0완봉
2007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08년 1완투
(6위)
0완봉
2009년 0완투 0완봉
2010년 1완투
(6위)
0완봉
2011년 3완투
(1위)
3완봉
(1위)
2012년 3완투 2완봉
2013년 1완투 0완봉
통산 11완투 6완봉

4. 플레이 스타일

여러 가지 구종을 잘 던지는 유형의 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15],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건 일단 본인이 구종을 배우는데 열심이고 실전에서 한번씩 사용해보긴 하기 때문. 일례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훈련 중 임태훈에게 포크볼을 전수받기도 했으며, 2011 시즌에는 팀에 영입된 이범호를 통해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 그립을 전해받아서, 자신만의 포크볼 그립을 만들어 활용해 보기도 했다. 또 팜볼도 아주 가끔씩 던지곤 한다. 때문에 야구를 처음 접하는 라이트 팬들 중엔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을 앞세운 피네스 피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위주의 파워 피처다. 폼이 좋을때 주력 구종은 시속 150km 전후의 포심 패스트볼과 복수의 슬라이더[16]이며 간간이 서클 체인지업을 곁들이는 정도다. 커브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사용 빈도가 낮다.

물론 변화구 위주로 맞춰잡는 피칭도 가능하긴 하지만, 컨디션이나 구위가 좋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며 피칭 내용도 만족스럽게 나오는 일은 많지 않다. 실제로 던지는 구종이 늘어날 경우 윤석민은 오히려 부진했다. 일례로 잘 나갔던 2008시즌에는 전체적으로 패스트 볼의 비중을 높게 가져갔으나 부진했던 2009, 2010시즌에는 변화구 구사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 때문에 2011시즌 초에는 타자들이 아예 패스트 볼은 버리고[17] 변화구에 타격 타이밍을 맞춰서 공략해 들어오곤 했다. 이 시기 구사비율이 높아진 서클체인지업의 경우 장기인 고속 슬라이더과 패스트 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움직임에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직구처럼 보이게 오다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격 리듬을 변화구 타이밍에 맞추고 있어야 공략이 가능한 공이고, 따라서 패스트 볼 구위가 밑밥으로 깔려있어야 타자가 소위 직구-체인지업의 타이밍 이지선다에 걸려서 속아넘어가게 되는데, 지나치게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지고 패스트 볼 비중이 줄어든 탓에 애초부터 타자들이 변화구에 배팅 타이밍을 맞춘채 체인지업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족족 얻어맞게 된 것이다. 감독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점을 지적했고 본인도 이를 인식했는지 패스트 볼에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 내용을 바꿨고 커리어 하이를 맞았다.

신인 시절에 마무리 투수로 뛴 적도 있기에[18] 팀 사정에 따라서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할 수 있다. 하지만 1선발로 꾸준히 뛸 수 있는 선수를 불펜으로 돌려 혹사시킨다는 점에서 전가의 보도 정도로 인식된다. 이게 다 한기주를 너무 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5년 시즌 개막 직전에 마무리 투수 기용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90억짜리 마무리'라는 사치 & '윤석민을 마무리로 돌려도 괜찮을 정도의 KIA의 호화선발진'...이라고 자타가 한 소리로 비아냥을 하고 있다.

5. 평가

보여준 결과보다 박한 평가와 과한 평가 모두 받고 있는 선수[19]

2015년 메이저리그 도전 실패 후 받는 평가는 딱 KBO급 투수. 2014년 마이너리그에서 초반에 대량실점 빈도가 많았고, 중후반 접어들면서 그나마 좀 줄었지만, 10경기 연속 피홈런을 맞는 등 전형적인 홈런공장장으로 전락했다. 슬라이더의 구위 역시 직구의 구속이KBO에서처럼 150전후로 나올때 발휘되는 것인데 130km후반의 직구와 곁들여지는 슬라이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 이외의 경기 내용도 딱히 훌륭하다고는 말 못 한다. 팀에서 정했는지 본인 스스로가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선발로는 경쟁이 없어 불펜으로라도 9월 확장로스터 때 올라오려고 한다는 안습한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마저도 한국 시각으로 2014 8월 31일에 40인 로스터에서 지명할당되면서 무산됐고, 2015년에는 벅 쇼월터 감독이 아예 윤석민은 전력 구상에 없다는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면서 볼티모어도 아예 윤석민을 부르지 않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류현진과 비견되곤 했지만[20] 사실 그에 비견할 만한 성적을 낸 적은 드물다. 잦은 부상[21]과 극심한 기복, 떨어지는 내구성으로 명성에 비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로 보직 전환을 하고도 간간이 클로저로 뛴 것을 감안하더라도 2008 시즌과 2011 시즌을 제외하면 10승 이상을 올린 적이 없고,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도 4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2009년과 2010년 연달아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고 200이닝을 넘긴적은 한 번도 없으며, 2011년에 기록한 통산 최다 이닝도 172이닝으로 류현진의 평균치보다 적다.[22]


2011 시즌 윤석민의 등판 간격. 보다시피 잘 나가던 해에도 4일 휴식 후 등판이 3번 밖에 없고 등판 간격을 길게 조절하며 관리해줘야 했을 정도로 내구성이 취약하다. 잔부상의 원인으로는 서정환 감독 시절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런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지목된다. 하체 힘이 약해지면서 각종 근육계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얘기.[23]

허약한 팀타선 및 윤석민 선발 시 유난히 점수가 안 나는 불운과, 심심하면 클로져로 투입하는 등 팀 사정 등의 요인이 분명 작용한다. RS가 6.22로 리그 1위였던 2011 시즌을 제외한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윤석민의 통산 RS는 4.14로 봉크라이 봉중근의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RS인 4.40보다 낮다.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한 것도 문제로 언급된다. 혹자는 긁히면 류현진보다 낫다고 하지만 사실 긁히기만 한다면 세상에 무섭지 않은 투수가 어디있겠는가. 사실 긁히는 날 가장 무서운 투수로 지목되는건 다름아닌 넥센의 강윤구, 한화의 김혁민등이 있고, 한때 유원상도 긁히면 무섭다고 평가받았다(...). 또 장원준의 경우는 시즌내내 긁히는 날과 안 긁히는 날이 빈번하지만 결국 5시즌 연속으로 10승과 4점대 초반이하의 방어율을 기록해왔다. 물론 이들과 달리 윤석민은 반드시 풀시즌이 아니라도 상당한 기록을 남긴 시즌이 꽤 되는만큼 경기 단위로 기복이 심한 투수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건강한 해와 그렇지 못한 해에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양적인 스탯(다승, 이닝 등)에서 그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은 내구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류현진보다 초반에 무너진 게임의 숫자도 꽤 되는 편. 류현진에 비해 급수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 건 기본적인 투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러한 안정감과 내구성 차이에서 오는 것도 크다.

반론으로 WHIP와 같은 질적 스탯으로만 비교한다면 류현진(1.172), 윤석민(1.198) - 윤성환 (1.279), 장원삼(1.299) - 김광현(1.367) - 장원준(1.455) - 양현종(1.500)이며, FIP으로도 역시 독보적인 1위는 류현진이지만 그 다음이 윤석민이며, 그 아래의 윤성환, 김광현, 장원삼, 장원준등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K/BB도 비슷한 추세. 류현진과 동급이라고 말하기는 무리더라도 통산기록으로 류현진에 비견할 수 있는 KBO 현역투수를 꼭 한명만 꼽자면 윤석민이라고 말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구종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윤석민의 정석 투구 패턴은 패스트 볼과 슬라이더 구위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피칭이다.[24] 오히려 변화구 많이 던지면 게임이 더 안풀리고 보통 잘 풀릴 땐 투피치에 좌타자용 서클 체인지업 정도 추가하는 게 일반적이다.[25] 좋은 구위를 가진 특급 투피치 선발이 한국에서는 충분히 먹힌다는건 KBO 문 연 이래 꾸준히 증명되어온 사실이고, 윤석민은 류현진급은 아닐지언정 제구가 좋은 투수에 속한다. 고저 분할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좌우 코너웍을 공략할 정도의 실력은 충분하다. 퀵모션은 빠른 편이 아니지만 견제 이전 투수만의 시간을 굉장히 짧게 끊어가며 깔끔한 투구폼으로도 유명하다. 투구 후 수비로 전환하는 폼 역시 좋다.

이상하게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2010 시즌에 발생했던 몸에 맞는 공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롯데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롯데 타선이 강력했던 2008~2010 시즌동안 61⅔이닝 7승 1패 4세 ERA 2.34를 기록하였고, 홍대갈 트리오가 극강의 위용을 자랑했던 2010 시즌에도 24⅓이닝 3승 1세 ERA 2.59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사구 사건 이후로는 롯데 타선이 크게 약화된 2012, 2013 시즌까지도 맥을 못추고 있다. 윤석민상 운운될 정도로 커리어내내 시련을 겪어오면서 성장한 그이기에 멘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나 對롯데전은 두고두고 멘탈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분명히 윤석민은 국내 야구에서 토종 우완들중에는 군계일학이라 할수 있으며 같은 시기 뛰거나 뛰었던 외국인 우완들 전체와 비교했을 때 상위권에 들 수 있는 투수다. 그렇지만 친기아적인 성향의 일부 악질적 기자들과 일부 과도한 팬들의 지나친 띄워주기로 인해 과대평가가 더해져 그에 대한 반발로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목소리도 생겨났다. 즉, 추켜세우기가 너무나도 지나쳐 그가 좋은 투수임이 분명한데도 과대평가를 받은 선수라는 비난이 함께 나오는 것.

6. 야구 외

원래 등번호는 20번이었으나 2010년에는 28번을 달았다. 그러나 위의 설명대로 안 좋게 작용하자 28번을 반납하고 등번호를 다시 바꾼다. 28번은 윤석민에게 팀 한정 흑역사급 등번호가 되었다고.[26] 정작 국제대회에서는 좋은 의미로 남았다. 28번을 단 이유는 이승호(작은승호)와 진갑용과 등번호가 겹쳤기 때문.

여담으로 마구마구를 아주 잘한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 김현수와 마구마구 대결을 해서 이겼다. 임창용을 가지고 있다고. 김현수는 반칙이라고 했다 근데 어떤 기사에 의하면 마구마구에서 닉네임을 실명으로 쓴다고 한다. 자기 소개를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솔직히 그걸 누가 믿어[27] 심지어 2009년 8월 18일에는 자기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s.m이라는 마구마구 클럽을 만들어서 가입신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초딩은 제외하고.[28] 마구마구에서는 자기 자신을 선발로 사용하는 타이거즈 올스타 덱을 사용하다가 중후반 쯤에 3엘리트를 비롯 괴악한 카드를 교체하는 잡덱으로 변모한다고 한다. 4월에는 이병규 엘리트를 획득(3이닝 10실점한 그날...)하여 엘리트카드를 4장째 보유중. 휴식일에 마구마구에 출몰하여 이벤트성으로 유저들과 플레이한다고 한다.
결국 이 마구마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점으로 인해서 올스타전 시기에 김현수와 함께 켠김에 왕까지출연했다.

가끔가다 까일 때는 윤섹민이라고도 불린다. 싸이에 여자친구가 부적절한 글(...)을 올린 탓에...
덕분에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PC방에서 싸이월드 로그아웃 하지 않은 상태로 나가버렸다가 생긴 해프닝인 듯. ...앞으로 PC방 갈 땐 조심하자.[29] 그리고 현재 별명은 윤석개[30]로 확정됐다.[31][32] 야구 갤러리 한정으로 타팀 팬들에게는 윤복서[33], 윤공황[34] 등으로 불린다. 또한 싸이 때문에 후배 양현종과 함께 까인다.[35]

前두산 現넥센의 윤석민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던 사이이다. 넥센의 윤석민이 형이자 선배. 심지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어릴때부터 같이 놀던 사이였다고 한다오오 이거슨 운명.. 그러나 문제는 서로가 이름을 몰랐다는 것.. 투수 윤석민은 어릴적 넥센 윤석민에 대해 "그 형은 어릴때부터 덩치가 워낙 크고 힘도 세서 동네 골목대장이었고, 놀다가 동생들이 말 안들으면 많이 때리기도 해서 같이 놀면서도 우리들끼리는 무서워하던 형이었다. 특히 동네에서 같이 야구할 때, 내 방망이를 빼앗아가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슬슬 피한 적도 많다. 그러나 이름은 리틀야구때까지 몰랐다. 지금은 내가 키가 좀 더 크지만 아직도 그 형만 보면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무서울 때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투수 윤석민이 프로되고 나서도 어릴적 이야기를 주변 선수들에게도 많이 해서 소문이 났는데, 넥센 윤석민은 "내가 애들 괴롭히고 그랬다는 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서로 이름을 알게 된 건 같은 해에 리틀야구단에 들어가면서 이름이 호명되어 알게 된 건데, '윤석민'이라는 이름이 두번 불려서 당황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투수 윤석민은 그 동명이인이 본인이 무서워하던 동네 골목대장 형이었다는 게 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충공깽 넥센의 윤석민은 지금의 기아의 윤석민을 "어릴때부터 체격도 작고 말라서 항상 약해보였다."고 기억하며 지금의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이한 사항은 구리 리틀야구 시절에는 넥센의 윤석민(현재 타자)이 투수, 기아의 윤석민(현재 투수)은 그 윤석민과 배터리를 맞추던 포수였다고 한다. 레알 충공깽 사실 중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에도 투수 윤석민이 고등학교 입학한 1학년 때(넥센 윤석민은 2학년)까지 잠시 같은 구리 창고등학교 야구부였으나 윤석민이 분당 탑고등학교로 전학가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계속 다른 팀에서 활동하여 운명적인 인연(이름+동네+학교+야구)인 것치고는 절친급은 아닌 듯하지만, 모 스포츠신문 동명이인 특집에서 함께 인터뷰하면서 서로 더 잘 되기를 응원한다고 한 적도 있으니 사이가 나쁜 건 전혀 아니다.

2011년도의 화려한 성적을 재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야구게임에서 매우 놀라운 성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구마구에선 상급 레어에다가 후에 엘리트 카드가 추가됐으며,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1년에 투타 한장씩만 만든다는 EX 카드로 등장했다.

2011 시즌 중 트위터를 개설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비교적 트위터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글 올리는 속도가 무섭다(...) 비시즌 기간에 글이 많이 올라오니 관심있는 사람은 구경해 보길. 깨알같은 백치미

201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기록한 퀸즈 파크 레인저스[36]윤석영이 윤석민의 6촌지간이다.# 어렸을 때에는 숨바꼭질도 하고 축구도 했던 사이였다고. 그리고 본인은 빡쳐서 자해하고, 6촌 동생은 세계최고의 O형 수비수라 발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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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응? 본격 원근법 무시.JPG 크...크다 무언가가 비교대상자는 김원섭.

워낙 어린이 이미지도 강하고 강민호번저강, 양준혁 등이 워낙 머리가 큰 것으로 유명해서 묻히는 감도 있지만, 의외로 대두의 소유자. 실제로 덕아웃에 있는 사진이나 다른 선수들과 어울려서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머리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미국 진출로 인해 마구마구2014에서는 '박규환fuck you한'이라는 가명으로 바뀔 예정이다.'장석구'일 줄 알았는데 혹은 '김석탁'일 줄 하지만 최근 업데이트 이후 다시 본명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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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홍건희는 2015년에만 등번호를 두 번 빼앗기는 불운(?)을 겪었는데, 2015 시즌 시작 당시 21번을 달고 싶어했으나, 팀 선배이자 21번의 전 주인의 친구인 곽정철에게 빼앗기면서 20번을 달게 되었고, 윤석민이 돌아온 후 또 다시 번호를 빼앗기게 되면서 48번을 달게 된다.
  • [2] 후술하겠지만 28번은 국가대표 선수단에서 달던 번호였다. 2010년 쇄신의 의미에서 28번을 달았으나 정작 해당 시즌에 좋지 않아 바로 번호를 바꿨다.
  • [3] 그나마 배영수는 어느정도 재기에 성공해 에이스는 아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무난히 합류해 10승 이상 책임질 정도는 된다. 손민한은 부상에 FA먹튀, 횡령사건으로 나락에 떨어졌다 NC 다이노스 에서 마당쇠 노릇을 하고 있다. 신인시절부터 혹사에 시달린 박명환은 LG 이적 후 몰락, 2014 시즌부터 NC 다이노스 로 이적했다.
  • [4] 유원상 항목에서도 볼 수 있지만, 팬들의 비아냥섞인 별명에서도 드러났듯 2010 시즌의 유원상의 성적이 순수 국내파 선발중에서 손꼽힐만한 성적이라는 사실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해석은 보는 이에게 맡긴다. 이 시즌 윤석민은 시즌 초 2009 시즌 우승의 주역이였던 유동훈, 손영민, 곽정철 등 불펜요원들이 2경기에 한번 꼴로 블론질을 일삼는 팀 상황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본인의 선발로서의 부진과 함께 부진한 중간계투를 메꾸기 위해 불펜으로 전환되고 갖가지 사건들과 함께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조.) 결국 장기간 마운드에서 사라졌다.
  • [5] 공교롭게도 두 투수 모두 높은 기대치에 비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시즌이 많았고 불펜 알바를 자주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 [6] 인창중 졸업 후 창고로 진학했으나 1학년 마치고 야탑고로 전학했다.
  • [7] 일본의 좌완 투수 스기우치 토시야가 이전에 비슷한 짓을 하다가 부상당한 적이 있다.
  • [8] 전원 3할 타자에 홍성흔의 경우 이승엽의 한시즌 타점 신기록 갱신 가능성까지 있는 상태였다. 조성환은 전 시즌에 채병용에게 공을 맞아 광대뼈 함몰에 전치 8주 판정을 받은 적도 있고.
  • [9] 이 고의사구가 롯데팬들의 분노를 키웠다.
  • [10]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추정되나 기아팬으로 유명한 모 기자가 윤석민을 옹호하겠답시고 공황 장애라고 기사를 쓰는 바람에 팀킬 윤석민만 졸지에... 이에 대해 나중에 윤석민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 [11] 네이버 측에서 조성환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들을 올리면서 이 사건도 같이 올렸다.
  • [12]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24명 엔트리에, 경기당 22명까지 출전 가능하다.
  • [13] 물론 굳이 법대로 하자! 라면 규정상의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원래 이런건 빌미를 잡혀봤자 좋을거 하나 없거니와 조범현 감독도 몰수패 판정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 [14] 우천지연등의 예로도 알수 있지만 타자도 리듬이 깨지지만 이 경우 어깨가 식고, 페이스를 잃은 투수쪽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걸 빌미로 역전이라도 당했었다간 큰일이었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
  • [15] 그 예로 프로야구매니저의 윤석민 카드를 보면 각종 구종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 [16] 높은 아웃 코스에서 주로 사용하여 직구 볼처럼 보이게 하다가 살짝 떨어져서 루킹으로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는데 주로 사용하는 130km 중후반대의 낙폭이 작은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존에서 뚝 떨어져서 헛스윙을 유도하는 낙폭이 큰 140km대의 고속 슬라이더 두 개를 주로 사용한다.
  • [17] 변화구를 지나치게 많이 던지면 투구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직구 제구에 문제가 생긴다. 변화구 비중이 본격적으로 높았던 2010 시즌 윤석민의 직구 로케이션은 전에 비해 공 두 개 정도 높아졌다.
  • [18] 2006년에 특유의 낙차 큰 슬라이더로 붙은 '광주댐'이라는 별명에서 윤석민이 얼마나 믿음직한 마무리였는지 알 수 있다.
  • [19] 빠가 까를 만든다까가 빠를 만든다가 공존하는 예.
  • [20] 굳이 류현진만이 아니어도 국대 3인방하면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을 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2014년 시즌이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그 셋의 차이는 비교불가 수준으로 크게 벌어져버렸다.
  • [21] 윤복서 사건 같이 본인이 망가뜨린 전력도 있다.
  • [22] 류현진은 200이닝 이상 소화한 시즌이 2번, 올림픽 차출이 있었던 2008년과 부상에 시달린 2011년을 제외하곤 모두 180이닝을 넘겼다.
  • [23] 1년에 2, 3번은 근육통으로 2군에 내려갔다 왔다.
  • [24] 아시다시피, 선동열의 투구패턴과 흡사하다. 중요한건 그렇게 던진다고 선동열이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난적이 없다는 것
  • [25] 정확히 말하자면,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날은 전반적으로 제구가 안 되는 날이다. 윤석민의 경우, 플레이트의 좌우를 이용한 코너웍은 빼어나지만 높낮이 제구가 안 되어 통타당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 [26] 그리고 팀 후배 손영민은 자신이 달던 배번 21번을 선배에게 빼앗겼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안습
  • [27] 윤석민이 자기소개를 하자 혹자는 난 이종범이다. 선배한테 인사해야지라고 했다고한다. 설마...!? 같이 마구마구하는 최형우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 [28] 다이어리가 올라온것은 16시 즉 등판하기 2시간전에도 마구마구 생각을..
  • [29] 그러나 일부 팬들은 저건 적당히 둘러댄 변명이고 실제로 파워ㅅㅅ..를 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진실은 뭐 본인만이 알 듯..
  • [30] 16연패 기간내내 KIA 갤러리에서 윤석민 개새끼 해봐라는 꾸준글이 올라왔고 그것이 별명화돼버렸다.
  • [31] 윤석민 본인도 윤석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트위터에서 밝혀졌다... 본래 뜻을 알고 쓰는건지 아니면 2011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면서 석개가 윤석민 개쩔어로 변형되면서 그 뜻인줄 아는건지는 본인만 알듯...
  • [32] 나중에 나쁜 뜻인줄 알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 [33] 문에 주먹질하다가 부상당해 팀 16연패의 단초
  • [34] 공황장애 기사
  • [35] '나 힘들다. 건들지마. 답답하면 니들이 야구해. 정 떨어져'라는 글을 올리고 팬들에게 폭풍같이 까인 적이 있다.(...) 기성용??야알못? 6촌 동생트인낭으로 대차게 까이긴 했었다.
  • [36] 윤석영은 현재 돈캐스터 로버스로 임대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