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윤상

last modified: 2015-04-09 01:22:40 Contributors

  • 이 항목은 한국의 가수 윤상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의 인물 윤상을 찾으신다면 윤상(삼국지)를 참조하세요.



Contents

1. 생애
1.1. 성장과정
1.2. 데뷔
1.3. 소속사와의 갈등
1.4. 병역 문제
1.5. 제대 후
1.6. 유학
1.7. 흑역사
1.8. 제작, 프로듀싱, 기타 작업
1.9. 방송
1.9.1. 레전드급 라디오 DJ
1.9.2. TV 출연
1.9.3.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2. 음악
2.1. 작법
2.2. 사운드덕후
2.3. 멜로디
2.4. 보컬
2.5. 태도
3. 기타
4. 인물/인간관계
5. 음반
5.1. 참여 OST


10년 뒤의 성시경
이름 윤상 (尹相 [1] / YOONSANG)
본명 이윤상 (李尹相)
출생 1968년 5월 11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2]
신체 178cm[3], 60kg, O형
가족 무녀독남, 배우자 심혜진[4],
아들 이찬영, 이준영
학력 욕대학교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데뷔 1990년 <이별의 그늘>[5]
소속사 오드뮤직
소속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별명 발라드의 조상[6], 윤마담, 상느님, 발라드의 원조
뮤지션들의 뮤지션
사이트 공식사이트

탑 작곡가 -> 탑 아이돌 -> 본좌 싱어송라이터 + 프로듀서 + 엔지니어 다 해본 남자.
다시 말하자면 음악인으로서의 포지션(순수하게 노래만 다루는 점에서)은 다 거친 마스터.



1. 생애

1.1. 성장과정

깔끔한 귀공자풍 외모 덕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유년 시절이 좀 어둡다.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아주 어렵게 자라지는 않았으나 나이차가 많은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서 할머니와 삼촌들이 키웠다. 당시에는 이혼이 손가락질 받을 일이라서 주위의 편견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매우 많았던 듯. 외갓집에 가면 친가 욕하고, 친가에 가면 외갓집 욕하는 상황을 어릴 때부터 겪으며 마음 고생이 있었던 듯 하다. 그래서 지금도 대립이 너무 싫다고. 아버지쪽에서 자신을 좀 부담스러워했다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자라면서 아버지와의 접촉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본인도 아버지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즈음해서 좀 적응을 못 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날 음악 선생님이 내 준 “곡 완성하기 숙제” 를 해 가게 되었고, 이를 본 선생님이 “너 뭐 음악 따로 배웠어? 없어? 그런데 이런 걸 하다니 대단한데” 라고 칭찬을 들어 어렴풋하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란듀란을 들으면서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를 동경해 삼촌을 통해 기타를 득템.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뮤지션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격한 반대로 미술학원에서 벼락치기 입시 공부를 해 경희대학교 요업공예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공부하려 들어간 대학이 아닌지라 적만 걸어 놓고 밴드 하고 신촌블루스에서 알바하고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그 덕에 고교시절부터 빠질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과 친분이 생겼다. 나중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를 제의받았지만[8], 까마득한 형님들이 너무 잘 해주는 게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도망갔다고...

손무현과 함께 김완선 백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기도 했다. 옛 영상을 찾아보면 뒤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보다 자세한 그의 성장과정은 신문에 직접 연재한 에세이에서 볼 수 있다.

1.2. 데뷔


윤상의 리즈시절 1991년말 모습. 1992년무렵 MBC FM4U에서 '밤의 디스크쇼' DJ 하던 시절이다.

본래 충암고등학교 시절 창학[9], 김학인과 함께 하려던 뉴웨이브 밴드 Papermode를 위한 데모테잎이 돌고 돌다가 김현식의 손에 들어갔고, 그 테잎에 수록된 “여름밤의 꿈” 이 김현식의 앨범에 수록되며 작곡가로 데뷔했다.[10]

이를 시작으로 김민우, 강수지, 변진섭 등에게 히트곡을 제공하면서 프로듀서,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본인은 딱히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찮게 김민우 앨범 녹음 중, 김민우의 보컬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드보컬 식으로 불러준 것을 당시 EOS 사운드 프로덕션 광수 사장 김광수[11] 사장이 듣게 된다. 윤상에게 “너는 얼굴도 되고 분위기나 목소리도 좋으니 한번 가수 해 봐라” 라는 제의를 한다. 윤상은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당시 김광수 사장이 제시한 금액이 평소 가지고 싶었던 장비를 다 구입하고도 남는 금액이라 수락해서 1990년 “이별의 그늘” 로 데뷔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탑 클래스 아이돌.[12] 하지만 본인은 연예인보다 전문 스튜디오 뮤지션이 꿈이었고,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

모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얼떨결에 가수 데뷔를 했는데 거기에 딸려온 연예인이라는 짐을 벗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는.”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당시 방송을 안 하면서도 자기 음악을 하는 김현철이나 015B와 비교해 자신이 너무 속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판매량으로만 가치가 판단되는 것도 싫었던 듯. 다만 지금은 세월도 흐르고 가족도 있으니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1.3. 소속사와의 갈등

1집의 엄청난 성공 후, 윤상과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꽤 심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는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 + 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고 역시 광수 사장 가차없다,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었던 것.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걸 하고 있나..."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13]

덕분에 2집은 1992년1993년.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괴이한 형태로 나오기도 했다.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다.

1.4. 병역 문제

1987년 신검을 받고 1급 판정을 받았는데,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 연기를 해 오다가 1992년 5월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해 병역면제를 받았으나 이민처리 되었는데도 계속 국내활동을 하는 바람에 추적을 받았다. 당시 주변 상황과 맞물려 잠적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국적을 포기하고 육군 연예사병으로 자진 입대하였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회사에서 압박을 넣었다는 얘기가 있다.[14] 복무 당시 차인표이휘재의 흑역사인, 관객 수가 적어서 예비군들에게 공짜 표를 뿌렸던 반공 영화 알바트로스의 OST를 작업했다……안습

1.5. 제대 후

제대한 후 1996년 Renacimiento을 발표하는데, 신곡은 딸랑 2개고 나머지는 자신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하고,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 말로 바꾼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 이게 왜 나왔냐 하면, 계속 윤상을 따라다니던 일본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 격이다. 위에 서술한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15] 이것도 덕분에 판매량은 좀 망했어요… 같은 해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인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 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낸다. 아마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 지금은 상당한 레어템이 되었다.

1998년,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insensible을 발표.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된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 안녕…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1.6. 유학

2003년 즈음해서 Berklee College of Music[16]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유학을 갔다. 당시 그냥 프로듀싱/작곡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나 제작과정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갔다고 한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 이상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나이 어린 것들(…) 하고,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 모양.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다.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연예인 간지는 없…. 유희열 데뷔 초기 모습이라 카더라 암튼 고생도 많이 했다. 처음에 버클리 음대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 나중엔 그래도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한다.

이 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는데, 부인 심혜진 씨가 필수 교양과목 등 본인 전문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여보 숙제 해줘” 라고 해서 니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니가 우리 할 수 있을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드립을 쳐서 결국 해 주고...유학 중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쓱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안습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17] 아무튼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나고 해서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다.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이 와중에 누들로드 OST 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다. 이유는 돈 벌려고...안습 다만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다.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 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오세요 저리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거야..."라고 유학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가 있다(...)

참고로 유학 전 SM 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 이미지는 그냥 실력 없는 댄스가수들이나 양성하는 악의 축 이미지라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다. 윤상이 이제 자기음악 못 하는 거냐며 걱정도 많았는데[18],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고, SM은 이미지 쇄신 + 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 특히 윤상은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SM에게 유학 계획을 밝혔고 SM은 이를 승낙해 줬다.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BoA, 동방신기 등의 소속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

1.7. 흑역사

이 분의 가장 큰 문제는 음악에 있어서 장인 소리를 듣고 완벽주의자 소리를 들으며 월드뮤직을 지향하고 표절설에 대한 전면적 항변을 한 사람이 빼도박도 못하는 표절곡이 있다는 것. 이건 병역비리와 더불어 윤상 팬들도 커버를 못하는 병크이자 윤상 최대의 흑역사이고 최근까지도 까이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별의 그늘”이 히사이시 조의 “천공의 성 라퓨타”와 비슷한 것은 어떻게든 팬심으로 커버를 치거나 김동률 역시 같은 곡을 표절했던 전과(…)가 있기에 물타기를 한다고 쳐도, 변진섭에게 준 로라사이토 유키의 곡과 100% 같은 곡이다. 인용이나 일부 표절도 아니고 곡 자체를 송두리째 베낀 인간이 한국에서 월드뮤직의 대명사이자 선구자라는 것은 한국가요계 전체의 흑역사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한국 가요계가 표절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였고, 표절 논란에 자유로운 작곡가를 찾기가 힘든 시기였지만, 김태원, 신해철같이 엄청난 다작을 하면서도 표절과는 전혀 거리가 먼 아티스트도 있는 반면에[19], 입만 열면 월드뮤직을 부르짖고 일본 가요를 졸로 보는 발언을 한 윤상이 일본 곡을 송두리째 베낀 경력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20] 타이거JK처럼 한국 힙합의 리더라 자칭하지만 수십 곡의 표절곡, 무단 샘플링, 뮤비, 컨셉까지 모조리 베껴온 가수보다는 양반이지만, 그런 사례로 이 분을 실드칠 수는 없다.

1.8. 제작, 프로듀싱, 기타 작업

최근엔 눈에 띄지 않아 한 물 간거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윤상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정말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1990년대 가요차트 1위 곡들을 싹쓸이했다.[21][22] 다만, 1997년에 공동제작한 혼성 듀오 알로 (Halo)는 대박 망했다. 지금까지도 윤상 오덕(…)들을 빼고는 아는 사람이 적지만, 당시 알로가 불렀던 ‘랄랄라,’ ‘잠자는 숲속의 왕자’ 등은 지금 들어도 윤상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촘촘한 편곡이 돋보이는 귀여운 댄스 팝. 유희열이나 주변 사람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아깝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랄랄라'는 윤상 20주년 기념 앨범에서 소녀시대가 참여해 다시 불렀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 는 아이유 정규 2집에서 부활한다.

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과 데뷔곡 ‘사랑합니다’ 를 담당했다. 당시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던 SM으로의 이적 이후에는 BoA, 소녀시대, 동방신기, 천상지희 등에게도 곡을 주었거나 지금도 주고 있다.

그 외 손가인[23][24], 아이유 그리고 윤종신[25], 유희열(토이)[26], 성시경[27] 등의 작업에 참여 중이다. 유희열 윤종신 빼고 윤상 동년배의 뮤지션들이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아이돌과 접점이 별로 없는데 반해 특이한 점. 윤상 특유의 페이소스를 아이돌이 부르는 것도 그렇고. 윤상의 곡이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유의 경우 음악 방송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 주거나 뮤비 찬조출연 등 전폭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아이유에게 “아빠” 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아이유 아버지랑 동년배라고….(그러면 아이유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1세 연상이네?) 근데 처음 만났을 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유부남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뮤비에 출연했는데 배역이 자그마치 박보영의 연인이다!!!!! 나이차가 20년이 넘는다!!! 덕분에 뮤비 내용이 '아빠랑 사귀네' '근친상간이네' 하는 드립이 나왔다(...) 소속사에서는 “아빠만큼 나이차가 많은 커플 이야기다. 뮤비 제대로 본거임? ” 이라며 해명했다. 이주노?

아이유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아이유 3집 Modern Times에서는 손가인와의 듀엣곡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제공했고, 2014년에 발매된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서는 윤상이 故 김현식에게 주었던 '여름밤의 꿈'을 리메이크했다.

S.E.S.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5집에 수록된 히트곡 달리기[28]도 사실은 노땐스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2014년에는 East4A와 공동작업으로 레인보우 블랙에게 'Cha Cha'를 제공했다.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데뷔한, 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 첫 걸그룹 러블리즈의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다(나머지 4곡은 데뷔 전 멤버들의 솔로곡).

1.9. 방송

1.9.1. 레전드급 라디오 DJ

라디오 DJ 경력도 풍부한데, 한동안 “윤상의 음악살롱” 을 진행하며 윤마담이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2010년 4월 19일부터 2013년 4월 30일까지 약 3년 동안 KBS 제2FM에서 오전 11시~12시에 상의 팝스팝스 진행을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보다 록 중심이라면 윤상은 좀 더 소녀스러운(...) 올드팝이나 월드 뮤직을 곧잘 틀어줬다.

이외에도 유희열이 진행하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성시경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등에 게스트로 꽤 많이 끌려오곤 했다. 특히 성시장님 성시경은 전임 시장 유희열[29]과 함께 그를 자주 초대했었다. 특히 음도의 고정게스트 중 한명이었던 이준오는 성시경과 더불어 윤상 빠심을 인증한 바 있기 때문에(...) 심현보 조태준 안습 하지만 지금은 유희열, 성시경 둘 다 라디오 DJ를 관두다 보니(...) 별밤에 게스트로 출연해 주신다면... 하지만 윤디도 별밤을 그만두었다.

그외에도 2013년 12월 10일에는 컬투쇼에도 친히 강림 출연했다. 이 때 윤상은 초창기 음악을 하고 싶어 故 김현식에게 찾아갔던 일화라던가, 부인 심혜진과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때 "윤상 심혜진" 등이 인터넷 검색엔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뒤에, 음반 작업을 위해 버벌진트에게 자리를 넘겼다가 현재는 최다니엘이 진행한다.

1.9.2. TV 출연

그런 거 없다 예전에 아이돌 시절 시달린 것도 있고, 본인이 무대 체질이 아니라며 TV방송은 많이 나오는 편이 아니다. 예능은 더더욱 나온 적이 없다가 2012년말 '1박 2일 시즌2'에 '가사도 음악회' 편에서 유희열, 윤종신과 함께 출연했다. 지구가 멸망하려나 밴드명은 '유희열과 등대지기(...)'[30] 윤종신에 따르면 머리도 길고 허리도 길었다(...) 카더라 윤종신에 따르면 그의 리즈시절은 문민정부 전이었다고(...) 그리고 성시경은 깨알같이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라며 성대모사를 쳤다. 3인방이 서로 폭풍디스하는 부분도 만만찮은 재미. 그리고 주원에게 빠진듯(...)

2012년 5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나와서 '방송에서 라이브로 이렇게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후로 조금 뜸하다가 2014년 꽃보다 시리즈 후속 꽃보다 청춘에 출연하였다. 감성변태 유희열맹꽁이 이적과 함께 졸지에 페루로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떠났다. 윤상은 여타 출연자(유희열, 이적)들과 달리 잠자리, 화장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윤상의 불면증으로 인한 것이라한다. 20년전부터 술을 꾸준히 마신 후 잠에 들었다고 할 만큼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으나 최근 몇달 전 부터 가족과 건강을 위해 끊었다며 심할 때는 약을 복용하며 견딘다고 한다.[31] 이 사실을 들은 이적은 인터뷰 도중 짜증을 낸 형에게 미안해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본인의 한계점에 부딪치며 넘어서려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다.

1.9.3.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최근에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
평소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진 않지만 무표정하고 냉정하게 짚을 것은 죄다 짚어 주는 편이라 독설 멘토로 위상을 날린다(...). 누군가가 말하길 다른 독설들은 그냥 기분 나쁘고 말거나 개인 취향으로 넘길 수 있지만, 윤상의 악평(?) 은 엑스레이로 스캔당하고 벌거벗겨져서 밑천이 탈탈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

너무한 것 아니냐, 윤상이 저럴 줄 몰랐다, 반전이다 하는 말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윤상을 알아온 사람들에게는 크게 놀랄 것 없다. 보통 때는 소심하고 유하지만, 후술하는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에 음악에 대해서는, 본인 작품에 대해서도 치열하고 진지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사람인데다가 작곡/제작 경력만 쳐도 20년이 넘어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32] 게다가 딱히 평 중에 억지춘향이거나 틀린 말을 한 것도 없다. 덕분에 방송 후 멘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보니 멘티들이 다들 각잡고 초긴장 상태로 앉아있었다 카더라.

얼마 후 절대동안 이승환, 이름이 정반대인 윤하와 같이 놀러와에 출연했었는데, 여기에서 털어놓길, "악평을 한 참가자의 이유가 된 태도 등은 방송에 다 나오지 않고 자기가 악평하는 것만 나와서 자기만 나쁜 사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집에서 간식 먹으면서 방송 보다가 목에 걸려서 쿨럭쿨럭...그리고 같이 출연하는 이승환에게 전화해서 2시간을 투덜거렸다고. 근데 녹화가 좀 길어지면 피곤해져서 배로 까칠해지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다. 역시 발라드 최적화 병약 인텔리 체력...

2. 음악


윤상은 주변의 동료 뮤지션들에게 "완벽주의자"로 각인되어 있다. 윤상이 발표한 정규 앨범이 적은 이유다.[33]

그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들이 뮤지션들의 뮤지션, 반음계의 왕자님, 살아있는 신디사이저와 디지털 사운드 활용 매뉴얼.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대중적 인기보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높은 편이다. 들으면 “어 윤상꺼지?” 하고 알 수 있는 본인의 작곡 특징과 감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웬만한 엔지니어 쌈싸먹을 정도로 음향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기 때문.

2.1. 작법

대부분의 경우, 음악가들은 멜로디나 주 진행 코드를 잡은 후 편곡 작업을 진행한다. 개중에는 이 작업을 분업화해서 아예 리듬섹션 현악섹션 편곡 등은 세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윤상은 이 작업을 거의 반대로 진행한다. 일단 전체적인 사운드 (간단히 말해 주 멜로디의 반주)를 잡고, 그 뒤에 어울릴만한 주 멜로디를 작곡해 올리는 식.[34] 참 쉽죠? 윤상 음악에서는 사운드가 멜로디를 만듭니다!!!

말은 쉽지만, 윤상이 이렇게 사운드를 만드는 수준은 그냥 여기에 현악을 넣고~ 여기에 베이스를 이렇게 치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기, 음향, 주파수 조절, 시간차, 서라운드, 각종 이펙트 등을 고려해 장인/엔지니어에 가까운 집요함을 보인다. 사운드 소스부터 자가제작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스테레오로 틀어 놓으면 편안하고 여백이 많은 발라드풍 가요로 들리지만, 헤드폰이나 좋은 음향장비로 들으면 신디/미디/이펙트로 할 수 있는 소리를 전부 뽑아내 곡 전체에 퍼즐처럼 꽉꽉 채워 놓았다. 좀무. 예를 들어 윤상의 “악몽” 같은 경우, 스테레오로 듣다가 헤드폰으로 들으면 가히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lN2U2MnayNM
유희열이 라디오 천국에서 앨범 insensible을 추천하며 붙인 설명. 2분 50초부터 곡과 함께 설명을 해 주는데 윤상의 장인정신을 알 수 있다.
[35] 별 생각 없이 들으면 윤상 맨날 똑같은거네...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번 제대로 들어보면 그런 걸로 까기 미안할 정도로 엄청나게 공이 많이 들어간 빈틈없는 사운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빌딩 건축을 음악 작업이라고 할 때, 보통 빌딩 하나를 만드는 데 설계, 자재조달, 인테리어, 전기배선, 시공 등이 전부 분업화되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진행하는 반면, 윤상은 설계 자재조달 시공 인테리어 전기배선 죄다 혼자서 처음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서 빌딩을 짓는 셈. 흠좀무. 사운드나 곡의 구조에 대해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법이다.

이런 작법의 예로, 아래 두 곡을 차례대로 감상해 보자:
http://www.youtube.com/watch?v=mD35N3fCK44
윤상 - Tango for Uno


강수지의 “잊으라니”가, tango por uno에 주 멜로디를 만들어 올린 곡이다.


2.2. 사운드덕후


윤상 딜레이/윤상 리버브로 불리는 특유의 딜레이와 리버브 이펙트를 사용한 몽환적 사운드와 비트가 전매특허급. 딜레이와 리버브는 울림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이걸 다 계산해서 무난하게 들리도록 곡 안에 가공하고 배치하려면 백분의 1초까지 계산해가며…하 생략. 덕분에 윤상은 다작을 하지 않는 편이며, 앨범 하나 작업하고 나면 건강이 바닥을 친다. 안습. 낮밤 바뀌고 신경쓰느라 잠 안 와서 술먹고 자고 간 나빠지고 담배 늘고 스트레스 받고…흑흑. 우울증 치료제와 알코올의존증 증세까지 달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었다.[36] 상느님 건강 좀 챙기소서 ㅠㅠ

그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과 예민함은 무시무시해서 전집 기념앨범도 리마스터링 했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더 좋은 음질을 위해서가 아닌, “그 시대에 유행하는 사운드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ㄷㄷㄷ. 실제로 많은 뮤지션들이 엔지니어나 믹싱 관련 윤상의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이렇게 사운드에 예민해서 그런지 세션보다는 자신이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프로그래밍에 많이 무게를 두는 편이다. 유희열은 '윤상 음악은 일단 드럼에서 끝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를 프로그래밍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감탄할 정도. 세션들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믿고 세션에 심지어 곡의 주요 편곡방향을 맡겨버리는 요즈음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완벽하게 곡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요하게 밀고 나가는 윤상의 곡들은 훨씬 더 섬세하고 철저한 구상을 느낄 수 있다. 노래가 아닌 연주부분을 들어보면 이런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37]

https://myspace.com/yoonsangmusic/music/song/play-with-me-original-mix-57525882-62529680?play=1
NYU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Play with Me. 아기 옹알이 몇 개와 장난감 소리를 3분 남짓한 시간동안 얼마나 다양한 이펙트롤 먹여 가공하고 배치했는지 들어 보자.[38] 곡은 3분이지만 옹알이를 이렇게 다양하게 가공하려면 엉덩이 부을 정도로 며칠 밤낮을 컴 앞에 앉아 있었을 거다.

2.3. 멜로디


이렇게 엔지니어스러운 접근을 하면 감성적인 부분이 모자라는게 일반적이지만 윤상은 상당한 멜로디메이커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로 사용하는 멜로디가 죄다 남들은 까다로워서 기피하는 마이너 코드. ㄷㄷㄷ. 덕분에 사운드나 기술 같은거 몰라도 조금만 들으면 윤상 작곡임이 티가 팍팍난다. 곡이 말을 해요 안녕하세요 윤상입니다

다만 멜로디가 최근 유행하는 곡들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거나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아닌 지라, 아이돌 가요로서는 크게 히트한 곡이 많지 않다. 덕분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윤상은 맨날 똑같은거 한다는 망언도 한다. ㅠㅠ

2.4. 보컬


성량이 풍부하거나 감정적인 보컬은 아니지만,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잘 살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특히 완급 조절은 무시 못 할 수준. 나지막하고 담백해서 쉬운 것 같지만 막상 부르면 원곡 같지가 않다. 단적으로 뮤지션 신해철 왈, "윤상은 노래 잘 하는데 자기가 그걸 모른다."

2.5. 태도


이번 앨범만 해도 얼마나 팔릴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가요는 후지다, 가요는 팝에 비해 별로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딴 소리가 안 나오게 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된다. 이건 돈을 벌려는 사람에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오히려 판을 소비하지 않는 층을 상대로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요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말고 이런 가요도 있으니까 들어봐라 하는 입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똑똑한 게 아니니까. 나의 자존심의 문제이고, 욕심의 문제다. 나는 모든 에너지가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상업적인 가수와 작업할 때는 충분히 상업적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히트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 ’09 매경 인터뷰

당시에 나에게 장르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완성도가 문제였다. - ’09 보다 인터뷰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고, 대부분의 히트 음악가들은 정점을 찍고는 대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 적당히 베스트 앨범 좀 내 주고, 적당히 예전 히트곡 모아서 라이브 뛰고 가끔 방송 좀 나오고 하는 일이 많은데, 윤상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그 태도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현역으로 본인 작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아이돌 가수 작업들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해서는 꼰대질이 없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전자음악가들과 끊임없이 교류는 물론 작업도 같이 해 나가고 있다. 음악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장르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닥치는대로 듣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2pac, Jay-Z, 제드, 데이비드 게타 등 요즘 시류의 음악들도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듣도보도 못한 남미, 유럽, 히말라야 월드뮤직까지 챙겨듣는 굇수.

무엇보다도, 그냥 윤상 이름값으로 적당히 먹고 살아도 되는 타이밍에 다 때려치우고 유학을 갔다. 말이 쉽지 쉬운 결단이 아니다.



3. 기타

90년대 초반에는 오빠부대 아이돌이었지만 의외로 스캔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유인즉슨 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받았던 선물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난 공부 잘하는 애가 좋지 기타 잘 치는 애는 별로야” 라고 해서, 차였다는 것 보다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음악가를 꿈꿨는데 그게 폄하된 것에 충격을 받아 여자에게 거의 맘 닫고 살았다 카더라…라는 건 본인 얘기고, 연애를 안 했을 리가 있나. 신해철은 윤상의 호스트스테이션이라는 드립을 쳤으며 윤종신은 “윤상이 초식남? 유희열과 더불어 초육식남이다” 라고 폭로.

1998년 발매된 “언제나 그랬듯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7살 연하 탤런트 심혜진[39] 씨와 2002년 결혼,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뮤비 촬영하며 배우와 가수로 처음 만났는데 둘이 보자마자 얼마 안 돼서 필이 꽃혔다.[40] 본인 직업이나 유학시 고생한 것 때문에 늘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한때 김현철, 윤종신, 이현우와 함께 노총각 4인방으로 유명했는데 제일 먼저 클럽을 탈퇴했다! 그 다음으로 윤종신, 유희열 순으로... 참고로 부인인 심혜진씨는 탤런트 답게 미인이다. #

20살 어린 쪼꼬미 여가수랑 이름이 정반대이다. 물론 실제 한자 이름으로는 그런 뜻은 아니지만...[41] 윤상이 한참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21살이던 때(1988년) 윤하가 태어났다. 흠좀무. 그리고 윤종신은 20살 신입생, 유희열은 고2, 김동률은 중2(...), 성시경은 10살이었지. 신해철은 이 해에 데뷔했다.

4. 인물/인간관계

윤종신과 더불어 노안인 편이라 2세 위인 이현우에게 형이라 하는 걸 보면 어색하다. 옆에 이승환이나 김장훈이 있다면[42]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신승훈은?[43]

성격은 대체로 소심 만렙 트리플 A형. 그런데 혈액형은 O형(...) 윤종신하고 바뀐 것 같다 혈액형 성격설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 본인의 작업 스타일에 걸맞게(…) 사소한 것에 신경질을 잘 부리는 모양. 왕년엔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앞차 옆차 운전을 열을 올리며 욕했다고 한다. 정작 운전자는 가만히 있는데. 심지어 부인과 연애 중 기사가 터지자 패기돋게 장인 장모 인사를 가기는 커녕 "어...어떡하지;;" 하다가 1년이 흘러 빡친 부인이 미국으로 가 버린 적도 있다 왜 그러세요 물론 지금은 나이도 먹고 가정도 있어서 많이 줄어든 편. 그런데 이런 소심함 덕에 1박 2일에서 귀염 터지는 아저씨를 보여주었다. 조근조근 단호박 돋게 할 말 다 하는 타입. "내가 다시는 너랑 '테레비' 안한다"

같이 있으면 아빠와 아들을 연상케 하는 성시경이 라디오에서 술 마시면 아무나 붙잡고 뽀뽀를 해댄다며 폭로. 그러면서 음도에는 틈만나면 끌고 왔었다. 심현보에 따르면 근래 윤상이 건강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하자 김현철은 "그 친구는 91년 이래로 건강한 적이 없었어"(...)라고 했다고 한다.

혼자 집에서 음주하는 일이 많아 원영, 유희열 등이 독거노인 운운하며 놀렸다.

윤종신유희열, 정재형, 김동률 등 섬세한 예술가 타입 오빠부대 뮤지션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평했다. 정재형은 윤상 짭퉁이라고…. 농담이지만 윤상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발언. 1박 2일에선 발라드의 조상님, 권영길 의원이라며 놀렸다. "그러니까 노태우 대통령때. 문민정부 전이죠!"

옥상달빛의 김윤주는 소문난 윤상 빠. 절대동안메이비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윤상이 출연하자 결혼하고 싶었다며 빠 인증.

캐스커의 이준오는 소문난 윤상 빠. 얼마나 팬이냐면, 아이돌 관련 사이트인 아이돌로지에 이준오가 추천하는 아이돌 음악 편이 게시되었는데,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추천한 이유에 "윤상이십니다"라고 적었다(...) 그래서 음악도시에서는 성시경과 이준오가 하라는 방송은 안하고 윤상 무한 찬양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성시경은 윤상이 기침도 멋있게 한다고 찬양하기도(...) 무한윤상교

특히 유희열과 각별한 사이인데, 유희열은 ‘데뷔하고 유명해지면 윤상하고 친해지는 게 꿈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윤상 오덕’ '윤상은 예전 노래, 외모 다 안 촌스럽다' '내가 여자였으면 윤상하고 사귀었을 거다' '윤상은 진짜 멋있다' 등의 발언을 했고, 한때 자기 음악색이 모호한 것 같아 고민하던 때 윤상이 “색이 없는것도 네 색이야” 란 말에 용기백배했다고. 유희열은 윤상의 보컬을 매우 좋아해 토이 앨범에도 객원보컬로 자주 기용한다. 뿐만 아니라 그 역시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초대했다. 스케치북에서는 윤상과 함께 사랑하오를 부르며 꽃다발을 바치고 무릎베게를 하고…. 이하 생략. 한때 윤상 공홈에 이런 그림을 그려서 준 적이 있다: http://www.cyworld.com/brilliantv/8097320


015B정석원우리 시대의 음악인들 중 윤상에게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44]

이승환은 윤상의 보컬에 대해서 느낌과 감정을 살리는 면에서는 윤상이 최고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윤상은 이승환의 대표곡들 중 하나인 당부의 편곡과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두 사람이 함께 이소은을 가요계에 데뷔시키는 것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소은을 띄운 건 김동률이었다. 안습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날 위로하려거든'으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5. 음반

----
  • [1] 1990년대 초반 아이돌로 활동하던 시기의 신문기사에서 발췌
  • [2] 초중고 시절을 모두 지금의 은평구 지역에서 보냈다. 은평구가 서대문구에서 분구된 것은 1979년.
  • [3] 동료 뮤지션들인 윤종신, 이승환, 유희열 등과 비교해서도 키가 큰 편...이 아니라 그냥 윤상이 큰거다.
  • [4] 리그베다위키에 등재된 배우와는 동명이인
  • [5] 가수로 데뷔한 건 1990년이다. 실제로 활동 개시한 건 1988년무렵. 단, 위키백과에서는 활동 시작 시점을 1983년으로 보고 있다.
  • [6] 1박2일에서 언급된 바 있다
  • [7] 다만 이준오는 윤상의 팬이라고 한다. 그리고 닮았다. 그런데 성시경과 이준오는 안 닮은 것 같던데
  • [8] 연주 실력도 어느 정도 되었겠지만, 곱상한 외모 때문에 돈맛 좀 보여줄 것 같아서 제의했다고 한다.
  • [9] 작사가. 20+년 지기 친구. 고교 수련회 때 윤상의 기타를 보고 엄청나게 칭찬해준 옆 반 반장이었다. 당시 윤상은 리드기타가 아니라 백킹/리듬기타를 쳤는데 그래서 얘 좀 특이하네…라고 생각했던 듯. 처음에는 박창학은 자기보다 음악도 더 듣고 같이 놀러 다니는데 공부도 잘 해서 짜증; 이 났었다고 한다. 잠시 여고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현재는 전업, 영화/월드뮤직/가사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가사는 전부 박창학에게 맏기고 있으며, 작업 초기단계에서도 계속 같이 하고 있다. 팬들도 인정하지만, 윤상 본인도 “박창학은 나의 반이다.”
  • [10] 당시 윤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열성 팬이었던 데다가, 신촌블루스에서 알바도 했던 것같다. 어느 정도 선은 닿아 있었던 셈.
  • [11] 지금 코어 콘텐츠미디어의 그 김광수 맞다. 이 시절부터 대중에게 먹히는 신인을 발굴하는 능력은 최고로 인정받았다. 근데 지금은…
  • [12] 의외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승환, 신승훈, 신해철도 아이돌 포지션이었다...
  • [13] 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라고 대답.
  • [14] 군 생활도 무리 없이 잘 하고, 소속사와의 갈등도 꽤 있었고…최근 1박 2일 출연에서 동네 주민과 얘기하다 자연스럽게 군대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싫어서 기피한 건 아닌 듯 싶다. 되려 본인도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던 시절에 차라리 군대를 가서 편했던 듯.
  • [15] 윤상은 월드뮤직, 특히 남미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실제로 김형석, 성시경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 명 뮤지션 b-side 곡이랑 진행 비슷한데?” 라고 한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남미 덕후 윤상느님 굳이 많은 사람이 아는 일본 음악을 표절할 필요도 없고, 월드뮤직에 대한 애정도 상당하다. 표절에 대한 무서움도 잘 안다.
  • [16] 김동률이 유학했던 그 대학 맞다. 과거 싸이도 다니다가 중퇴했었다고.
  • [17]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왔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 [18] 본인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했다고 한다.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 카더라.
  • [19] 김태원과 신해철은 스승과 제자 관계로도 유명하다. 스승의 좋은 점을 잘 배웠다. 물론 의도치 않게 나쁜 점도 따라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 [20] 어차피 그런 발언은 표절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난 후에 정신차리고 발언한 말이고, 데뷔 초의 윤상 본인 역시 "작곡가다보니 가끔씩 일본 음악을 듣기도 한다"고 했으니…잠깐, 마지막 문장이 좀 이상한데?
  • [21] 본인 곡 뿐만 아니라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민우의 입영 열차 안에서, 치훈의 추억속의 그대, 강수지급 아이돌이었던 하수빈 등등.
  • [22] 히트곡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가요톱10 1위곡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한곡밖에 없다. 다만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강수지의 '시간 속의 향기', '흩어진 나날들'이 1위를 차지했다.
  • [23] 탱고, 일렉트로니카를 섞은 ‘돌이킬 수 없는’ 을 이민수와 공동 작곡.
  • [24] 이 곡으로 오랜만에 공중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 [25]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을 작곡 및 편곡했다. 둘다 뮤비에 출연한 건 덤.
  • [26] 토이 정규앨범에 몇 번 보컬로써(...) 참여한 바 있다. 이번 7집에는 없는 듯 하다.
  • [27] 2011년 성시경 7집에 수록된 '아니면서'는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이다. 성시경 자신이 맘에 들어하는 곡 중에 하나로 꼽기도 하고.
  • [28] 리메이크 버전은 희망차고 발랄한 곡이지만, 원곡은 인생을 달리기로 비유한 곡으로 좀 우울하다. 윤상도 라디오에서 SES가 많은 곡들 중 이걸 리메이크했는지 모르겠다고.
  • [29] 1대 故 신해철, 2대 유희열, 3대 이소라, 4대 성시경 순이다.
  • [30] 윤종신과 윤상의 추대(...)에 의하여 유희열이 밴드 마스터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도 마스터급으로 졌다 카더라
  • [31] 꽃보다 청춘 2화 中
  • [32] 실제로 함께 오래 활동했던 강수지는, 윤상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일은 없지만 녹음시 정말 깐깐해서 같이 작업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고 한다. 작업하던 여자 가수들 여럿 울렸다던가...
  • [33] 윤종신과 비교해 본다면(윤종신과 윤상 둘 다 가수로서는 1990년에 데뷔) 윤종신은 대략 15집(...)+월간 윤종신 프로젝트까지 많지만, 윤상은 정규 앨범을 24년 간 단 6번 냈다. 물론 15장의 정규 앨범과 월간 윤종신까지 다양한 곡들을 생각해 내고 만들어 내는 윤종신도 역시 본좌다. 무서운 사람들
  • [34] 물론 통기타나 피아노로 기본 멜로디를 잡고 만드는 보통의 방식을 사용할 때도 있다.
  • [35] 이걸 알아내겠다고 1년동안 붙든 유희열도 대단하다(...)
  • [36] 현재는 금주 및 치료중
  • [37] 본인도 그래서 앨범에 인스트루멘털 버전을 같이 넣는 경우가 많고, 본인 작품이나 남의 음악을 추천할때도 주 멜로디보다 반주를 잘 들어줬으면 한다는 코멘트가 많다.
  • [38] 여기 나오는 실로폰 소리는 당시 자택 근처 아이들 놀이터에 있던 실로폰 소리를 윤상이 이웃집에 민폐 끼칠까 소심해하며 새벽에 녹음기 들고 나가 직접 소스를 따 온 것이다.
  • [39] 프란체스카에 출연한 1966년생 배우 심혜진 씨가 아니라, 1975년생의 동명이인 텔런트. 근래들어서는 별도 활동을 안 해서 잘 안 알려져 있긴 하다(...)
  • [40] "앨범 나오면 어디로 보내드림 돼요?" 로 전화번호 득템. 부인도 싫지 않았는지 윤상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태워다 주고 뭐 그랬다 카더라.
  • [41] 윤하는 한자를 潤荷로 쓴다. 下가 아니다. 반면 윤상은 尹相을 쓴다. 역시 이 上도 아니다
  • [42] 프로필 상 67년생이나 실제로는 1963년생이라는 것이 중론. 이승환이 김장훈을 형이라 부른다는 점(...)
  • [43] 신승훈은 프로필 상 윤상과 동갑으로 나오지만, 실제나이로 2세 위라고 한다(...)
  • [44] 참고로 정석원과 윤상은 같은 1968년생. 윤상 - 5월 11일생, 정석원 - 12월 23일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