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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래

last modified: 2015-04-13 20:23:36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가수
1.1. 약력
1.2. 한국 최고의 여성 랩퍼?
1.3. 관련 항목

1. 대한민국가수

본명 : 윤미래
생년월일 : 1981년 8월 31일[1]
키/몸무게 : 162cm, 46kg
가족 : 배우자 타이거 JK, 아들 서조단
소속 그룹 : MFBTY [2]
소속 레이블 : 필굿뮤직
트위터

미국 텍사스 출생.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미국인 흑인 아버지 토머스 J. 리드(Thomas J. Reid)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윤미래는 한국 이름이고, 너태샤 섄타 리드(Natasha Shanta Reid)라는 영어식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외에 T, 타샤, GEMINI 등의 다른 네임으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1.1. 약력

DJ를 했던 아버지[3] 덕분에 음악을 많이 접하며 성장했다. 1995년 타운의 멤버를 모집하던 정연준에 눈에 띄어 1997년에 한국에서 데뷔. 당시 만 15세에 데뷔했지만 19살이라고 속여서 활동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 알앤비를 동시에 소화시킬수 있는 보컬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4]

업타운을 잠시 떠나 애니와 함께 타샤니라는 2인조 여성 듀오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이 시절에 부른 노래로는 루하루, 경고 등이 유명하다. 이후 다시 업타운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중 2000년 대마초 파문에 휘말린 업타운이 2001년 해체수순을 받자 솔로로 전향. 2001년에 1집인 As Time Goes By를 내놓아 큰 히트를 치며 솔로로 자리매김했다.

타이거 JK와는 업타운 시절부터 친해졌으며 2007년에 결혼하여 2008년 3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들 조단을 낳았다.

타이거 JK가 인터뷰에서 한 말에 따르면, 흠 잡으려고 해도 흠 잡을 데가 없어서 어지간히 기가 센 남성 랩퍼들도 윤미래한테는 음악적으로 아무런 찍 소리를 못한다고.http://www.dcnews.in/etc_list.php?code=succeed&id=16579

슈퍼스타K3의 심사위원을 맡았지만 음악적 감수성이 높은 때문인지 다른 심사위원에 비해 냉철한 평가멘트가 부족하여 심사위원으로서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2011년 9월 미국의 MTV의 뮤직 웹사이트 MTV Iggy가 선정한 세계 최고 여자 래퍼 톱 12에 선정되었다. # 윤미래를 소개하기를 한국 힙합계의 여왕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5]

2011년 12월 타이거 JK와 함께 MBC 로고송을 불렀다. MBC 50주년 로고송 조단 & 타이거JK & T

카투사들 중 의정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서 복무하는 인원들은 가끔 볼 수 있다. 부대 후문으로 나오면 보이는 제법 큰 마트가 있는데, 여기에 윤미래와 타이거 JK가 가끔 나타난다. 조단을 데리고 나올 경우도 있다. 가끔 여기 없는 물건을 사러 홈플러스에 들른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담도 있다.

2010년 즈음부터 미국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012년 6월 발매 될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새 앨범 타이틀곡에 저스틴 비버와 함께 피쳐링 참여 한 것이 발표되었다. *

2014년 12월 25일 개봉한 북한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다룬 영화 더 인터뷰 OST에 참여했다...가 아니라 무단도용당했다!! OST 사용 합의를 보는 과정에서 합의가 중단되어서 없던 일이 되었던 건인데 결국 정작 영화에서는 쓰인 것. 정작 더 인터뷰는 한국에선 개봉되지도 않았고 정식적으로 볼 수 있는 루트는 전부 막혀 있었지만... 볼 사람들은 알아서 다 본다 곡명은 Pay Day. 관련기사 윤미래 측은 그래서 현재 소니 픽쳐스를 상대로 소송 준비중. 소니가 남북한 전부 쌈싸먹네...

1.2. 한국 최고의 여성 랩퍼?

'대한민국 5대 여성 랩퍼는 윤미래, T, 타샤, GEMINI, 그리고 조단 엄마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힙합 리스너들에게도, 일반 대중들에게도 윤미래는 '한국 최고의 여성 랩퍼'라고 불리우고 있다. 한국의 힙합음악은 역사가 짧기도 하고 대중들에게 여전히 생소하기도 하여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음악 세계가 아주 작은 편인데, 거기다가 여성 랩퍼는 힙합의 본토 미국에서조차 전설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Lil' Kim이나 Missy Elliot 정도일 정도로 결코 넓은 저변을 지니고 있지 않다.

윤미래는 커리어를 오래 이어왔으니만큼 절대적인 넘사벽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편 거품이라는 의혹 역시 끊이지 않는다. 첫째로는 한국어 가사를 직접 쓰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6] 그래서 업타운 시절에는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종잡을 수 없는 한국어 랩 가사로 인해 온갖 음악 관련 웹진에서 혹평을 들은 적도 많다. 또 변변한 히트곡이 없다는 것도 문제. 최고의 여성 래퍼로 모두가 인정하지만 윤미래의 힙합 솔로곡을 한 곡이라도 외우는 사람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힙합 솔로 음반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앨범이다.

이런 랩퍼로써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도 어떻게 한국 최고의 여성 랩퍼로써 각인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혼자 살아남았기에 1위로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살아남았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자면 애초에 시작이 랩퍼가 아닌 댄스 그룹 멤버였을뿐더러, 업타운이나 타샤니 활동을 비롯해 R&B 위주 솔로 앨범의 히트로 기반을 착실히 다져놓은 상태였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덜어놓은 상태에서 '여성 랩퍼로써의 솔로 앨범'이라는, 한국 음악계에서 보기 힘든 동시에 상업적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시도를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말그대로 맨땅에 랩 밖에 할줄 아는게 없었던 Lexy나 Foxy, MC 혼, 예솔, Steady B를 비롯한 동시기 여성 랩퍼들의 경우 저런 시도를 할 상황 자체를 만들 수 없었다. 끽해야 MC 혼이나 예솔처럼 그룹에 묻어가거나 인디 레이블에서 소규모로 EP 찍어내는 정도. 스테디 B의 경우에도 1집을 낸게 이름 알리고 거의 10년 후인 2009년이었으니 말 다 했다. MC 혼[7]은 DICE라는 인디 밴드로 음악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본업은 아니고, 랩하던 시절 인지도가 낮다가 댄스 가수로 전향한 1집에서 애송이가 히트치며 엄청나게 이름을 알린 Lexy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여성 솔로 랩퍼'는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도박이나 다름없다. 실력 논란이 있긴 했지만 온갖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도 욕만 한 바가지 먹고 실패를 맛본 타이미를 보면 자명. 웬만큼 간큰 기획사 사장이 아닌 이상 아무리 인디에서 찬양받던 이라고 해도 '여성 솔로 랩퍼'라는 카드에 섣불리 지원해줄 엄두를 못내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G-BUS TV 청기백기녀로 은근히 관심을 모으더니 정작 곡은 파묻혀버린 경기도의 딸 키썸도 있고 비트와 밀당하신 힙합밀당녀도 있고

이외 윤미래의 성공 요인을 꼽아보자면 음악적인 지원이다. 즉, 노래나 랩을 아무리 잘 한다 한들 좋은 곡을 만들어줄 이가 없으면 말짱 황이라는 것인데, 윤미래에게는 업타운에서 같이 활동했던 정연준을 비롯해 박근태, 방시혁 같은 강력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손에서 하루하루, 참을 수 없어, 경고, 시간이 흐른 뒤 (As Time Goes By)[8], 메모리즈 같은 명곡들이 쏟아져나왔다는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들이 만들어낸 숱한 히트곡들을 생각하면 그 위상이 얼마나 후덜덜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정리하자면 박자를 타는 능력은 천부적이고 영어 랩에서는 능수능란. 그러나 한글 랩에서는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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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네이버다음 포탈엔 5월 31일이라고 나와있는데 확인바람
  • [2] My Fan Better Than Yours의 약자로 타이거 JK, 비지와 함께 만든 그룹이다
  • [3] 미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부대 내 클럽에서 DJ를 했을 정도로 내공이 꽤 있었다고 한다.
  • [4]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에서 느낀 설움과 기쁨을 다룬 곡이 '검은 행복'인데, 이 곡은 특히 그녀의 음악 커리어에서도 명곡으로 꼽힌다. 중간에 흐르는 나레이션은 아버지가 직접 해주신 거라고.
  • [5] 다만 여기는 이상하게 한국음악을 밀어주기로 유명한 곳. 그래서 농담으로 '인기가요'의 이니셜(…)이라고 하기도 한다.
  • [6] 일단 먼저 자신이 영어로 가사를 쓰고 남편인 JK가 번역해 라임을 맞춰준다고 한다.
  • [7] 그래도 2000년대 초반에는 에이스로 손꼽히며 케이블 음악 채널에도 종종 등장했었다.
  • [8] 참고로 이 곡의 코드진행은 당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알 켈리의 I believe i can fly의 코드진행과 똑같다고 한다. 멜로디가 달라서 표절은 아니고, 당시엔 알앤비 장르 자체가 익숙하지 않던 상황이다 보니 레퍼런스로 삼은걸로 보인다. 성시경이 자신의 라디오에서 알켈리 관련 이야기를 하던중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