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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군수사령부

last modified: 2014-12-20 16:34:52 Contributors

1절
겨레 위한 충정으로 일어선 우리
영광된 나의 조국 빛을 내리라
필승의 군수지원 우리의 사명
번영의 내일 위한 국군의 동맥
후렴
장하다 대한의 군수의 요람
영원 무궁 빛내리 군수사령부
2절
조국의 평화 위해 일어선 우리
내 나라 지키는 민족의 방패
우리의 군수지원 승리뿐이다
새 역사 창조하는 칠성용사들
군수사령부가(歌) 듣기
역시 기행부대의 부대가(部隊歌) 답게 전투적인 내용이 약하다.

陸軍軍需司令部
Republic of Korea Army Logistics Command

자대배치 결과 발표날에 육군훈련소와 향토사단 신교대 훈련병들을 설레게 하는 단어이지만 막상 사령부 본부에 가는 인원이 드물다(...)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편성
4. 군수지원사령부와 차이점
5. 군 생활
5.1. 공통 사항
5.2. 사령부
5.2.1. 본부근무대대
5.2.2. 헌병대
5.3. 예하 탄약창
5.4. 기타 예하부대
6. 출신 유명인물
6.1. 사령관
6.2. 장교 및 사병

1. 개요

대한민국 육군군수를 책임지는 육군본부 직할의 군단급 사령부. 애칭은 칠성대. 사령관은 중장이다. 홈페이지

해병대 군수지원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해병대 간부들이 사령부에 파견되어 있다. 한강 이남 후방지역 전국에 예하부대가 산재되어 있다(일부 예하부대는 수도권 모처에 있다). 경례구호는 대전권의 모든 육직부대의 경례구호인 '충성'. 애칭이 칠성대인 이유는 병기와 병참, 수송 등 군수 지원과 관련된 7개 병과를 아우르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칠성부대'인 강원도 화천의 7사단과 헷갈리면 안 된다).

2. 역사

1960년 부산 양정동에서 '군수기지사령부'로 창설되었다. 당시 초대 사령관은 후에 대통령이 된 박정희 소장. 후에 '군수사령부'로 개편되었다. 1964년에 동래구 연산동으로 이전했다가 1974년에 남구 대연동으로 이전하여 2007년 2월까지 그곳에서 주둔하였다.

과거 군수사 예하로 있던 항만단이 국군수송사령부로 넘어가고 여러 정비창, 보급창이 통폐합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2007년 2월부로 부산 남구 대연동(경성대학교 옆에 있었다)에서 현재의 위치(대전광역시 유성구)로 이전하였다. 대전지하철 모 역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 거리로 예전에는 육군교육사령부의 터였다. 사령부 본부지역에 있는 연못이 교육사 시절에 조성된 것이다. 대전권 부대라 사령부 본부가 자운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군수사사령부는 자운대 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운대에서 멀지 않은 대전 유성구 모처에 있다.

부산 시절에는 과거 계엄령 발령시 부산지역 계엄사령부가 설치된 부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향토사단 같은 전형적인 위수부대가 아닌, 기행부대치고는 비상위수임무를 지녔었다고 볼 수 있다. 군수사가 1960년에 창설되었지만 부산지역 향토사단인 모 사단이 1970년에야 창설되었기 때문. 당시에는 부산의 몇 안되는 군단사령부급 상급부대였다. 게다가 현 군수사의 모태인 군수기지사령부 자체가 제2관구사령부(부산지역)을 계승한 부대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2관구사령부는 1960년에 해체되어 군수기지사령부로 재창설되었으며, 해체된 2관구사령부는 1974년에 '53사단'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2관구사령부를 계승했다는 부분은 군수사 자체에서는 아예 없는(...) 역사로 취급하는 듯. 사령부 정훈실에서조차 이 부분을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다. 군수사 인트라넷 사이트에서도 이런 얘기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전으로 옮겨진 지금은 지역 위수임무가 없다. 부산 시절에도 향토사단 중심의 지역 위수임무 체계가 자리 잡힌 1990년대 이후로는 이미 사실상 부산 지역에 대한 위수임무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3. 편성

예하부대로 탄약지원사령부, 종합정비창, 종합보급창이 있다. 탄약지원사령부 예하의 x개의 탄약창이 있으며, 종합정비창과 종합보급창에 각각의 예하 정비창과 보급단이 있다. 평시, 전시에 후방에서 군수지원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대여서 군사보안상 자세한 위치와 편제에 관한 설명은 군사기밀이다.[1] 특히 사령부 본부지역은 전군에서 손꼽히는 중요군사보안시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대개방 행사때 본근대 막사는 개방해도 본청건물은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아무튼 사령부나 예하 탄약창이나 가급 보안등급 부대인 건 똑같다.

만일 훈련소(신교대)에서 자대배치 받을때 '육군군수사령부'가 뜨면 십중팔구 탄약창 행이며 운 좋은 몇명만 본근대나 기타 예하 보급단으로 갈 뿐. 특히 육군훈련소나 후방 향토사단 신교대에서 '육군군수사령부'로 분류되었고 특기가 소총수라면 '나는 탄약창 경비소대 행이다'고 복창하자(...). 사령부 경비소대 소총수들은 전원 직접선발대상이라 선발 면접을 보지 않는 이상 사령부로 배정될리가 없다. 탄약관리병 등 탄약 관련 특기병들도 군수사로 분류되면 거의 100%로 탄약창 탄약중대 행이다.

4. 군수지원사령부와 차이점

흔히 군수지원사령부(군지사)도 역시 군수지원부대라 군수사 예하 부대로 착각하기 쉬운데 이들 부대는 정작 각 야전군 및 2작사 예하이다. 하지만 작전상으로는 각 야전군 및 2작사 예하이지만 업무상으로는 사실상 군수사 예하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군수사는 고차원적인 군수지원 및 탄약관리 및 배분, 군 장비의 중정비 등을 담당한다. 반면 군지사는 부식(군 식량) 및 장병피복 배분, 경장비 수리(이동장비 정비) 등을 담당한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병사들 피부에 와닿는 먹을 것(맛스타, 건빵등), 입을 것(팬티, 양말)은 군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병사들이 피부로 와 닿는 군수지원은 군수사령부 예하부대가 아닌 각 군수지원사령부 예하부대가 담당하는 셈. 여담으로 군수사 본부의 병사들 맛스타나 보충지급 양말, 속옷 따위는 군수사에서 자체적으로 주지 않고 부근에 있는 53군지단(2작사예하 5군지사 예하부대)에서 가지고 온다고. 예하부대(대개 탄약창)도 주둔지 관할 군지단이 보급해준다.

하지만 전투복, 속옷, 활동복과 같은 군수지원도 결코 군수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전투복, 속옷, 활동복와 같은 피복류도 기획은 군수사가 담당하며, 활동복의 경우 군수사 본근대 병사들의 스티커 설문조사를 거쳐 선정된 것이다. 그리고 군지사 창고에서 불출되는 전투복, 속옷 등도 결국에서는 군수사 예하 보급단에서 불출받은 것이고, 전방지역 한정으로 군지사 예하 탄약대대(ASP)에 있는 탄약들도 결국은 군수사 예하 탄약창에서 불출받은 것.

5. 군 생활

5.1. 공통 사항

후방의 전투근무지원부대, 즉 군수지원(병참)부대이다보니 훈련이 적다. 있는 훈련이라고는 유격(그것도 레펠타기 등은 안전상의 이유로 생락된다), 혹한기, 창급(직할대 경우 대대급) 전술훈련, 예하부대의 경우 군수지원훈련(사실은 평상시 임무가 심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도 유격은 2박 3일짜리고, 혹한기는 밖에서 텐트치는 거 없고 막사나 창고에서 취침하는게 다반사. 일선 전투부대처럼 전시에 부대이동을 하지도 않고[2], 평시임무와 전시임무가 거의 일치하는 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나도 군수지원하느라 바쁜 부대 타 전투부대로 배속 전환되지 않는 이상 적진으로의 돌격 따위는 없다 자기 부대만 지키면서 전시상황에서의 작업을 하는 것이 주 임무이므로. 농담삼아서 하는 말이지만 전쟁나면 죽어도 부대 내에서 죽으니까 찾기는 쉬울거라고들 할 정도. 하지만 사령부 본청 처부 행정병은 을지 프리덤 연습와 같은 때가 되면 컴퓨터를 하루종일 두들기는 훈련, 아니 야근을 하겠지[3] 야근하다 죽을 뻔 했지...

군수부대이지만 신형 전투복 같은 보급품 배분 순위는 하위에 있다. 최전방부터 신형 보급품이 지급되어 가장 후방부대로 진행되는 구조. 후방 지역의 육직부대이다보니 군수사 직할대 및 예하부대에 오는 신병은 전부 육군훈련소 내지는 2작사 예하 향토사단 신교대 출신이다. 고로 보충대 출신은 없다는 것. 다만 장군운전병에 한해 전방 보충대 출신은 간혹 있긴 있다. 이는 타 부대에 있다가 해당 장군의 진급, 전출 등으로 전입오게 된 경우. 장군들의 특권으로 특별히 운전병을 데려올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전투력 우수 병사, 모범병사'(전투프로)의 의미로 사령부 정작과 주관의 '칠성용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육본에서 지정한 '전투프로'로 변경된 상태.

5.2. 사령부

5.2.1. 본부근무대대


예하부대 병사들에게는 파라다이스로 알려진 곳이라지만 일부 공군부대나 계룡대(카투사는 애초부터 비교대상조차 될 수도 없고)보단 꿀의 농도가 약할 수 있다[4]

직할대인 본부근무대(통신병, 운전병이나 선발된 행정병 내지는 위병소 경계병 등)나 헌병대로 자대배치 받게 된다면, 새롭고(낡지 않은) 아름다운 시설에 감탄할지도. 군수사 사령부 주둔지의 별명이 '캠퍼스', 리조트인 이유 업무차 군수사 방문한 육군본부 간부가 "여기는 육본보다 시설이 좋다"며 드립을 쳤을 정도. 본근대는 대대급이라 중령이 지휘한다. 2015년부터 본근대가 대급으로 조정되면서 소령이 지휘하게 되었다.

분대단위 침대형 생활관이며 24시간 온수가 나온다. 2013년 현재 일선 전방부대에 보급이 확대되어가는 1층 침대가 깔린 생활관이 아니라 초창기 형태의 침대 생활관이라 철제 2층 침대이다. 사실 대전으로 이전오면서 본청, 병영막사 등은 새로 지었다고 한다. 병영막사는 대부분의 부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의 막사가 아니라 무슨 고등학교 건물같이 생겼다. 그리고 군 막사치고는 꽤 튼튼하게 지어진 듯. 진도 8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가 되어있다. 기사 그리고 본근대 막사와 본청 건물 등 사령부의 신축 시설은 공병대가 아닌 민간 건설회사가 지어줬다.

다만 부산 대연동 시절에는 대연동으로 옮겨진 1970년대 초반에 건축된 것이어서 시설이 낡은 편이었으며, 침상형 생활관이었다. 침상형 생활관이긴 했지만 관물함이 철제라는 점은 자운대로 이전하기 전 지금의 군수사 자리에 주둔했던 교육사령부의 당시 사정(나무관물대(...))에 비하면 양호했다. 대연동 옛 부지는 2007년 대전 이전 후에도 몇 년 간 방치되어 곽경택 감독의 MBC 드라마인 친구2의 촬영장소로도 쓰이다가 모두 철거되어 2014년 현재 아파트 공사 완료되었다. 해당 아파트 단지 내에 옛 군수사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조그만한 기념비가 세워졌다.

2013년 6월 현재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CD기가 자리해있으며 파리바게트 같은 사제빵을 공수해 와 파는 매점이 있다(2013년 6월 현재 파리바게트 한정 공급으로 확인). 예전에는 신한은행 출장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막사에 헬스장은 물론 최근에는 노래방과 게임기까지 설치되었다. 헬스장은 국방부 근지단 수준은 못되지만, 런닝머신은 물론 웨이트트레이닝용 장비까지 기본적으로 구비할 것은 구비해놓은 상태. 다만 방이 좁아서 약간 답답할 수는 있다. 똥컴급 성능을 자랑했던 사지방 컴퓨터는 최근에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사지방 인터넷 속도 수준은 사회에서 쓰던 수준보다는 느리지만 육군 전체로 보자면 꽤 괜찮은 편. 병사식당은 본근대 막사에 바로 붙어있으며, 육본과 함께 '식사집합'이 없는 극소수 부대 중 하나라 카더라. 본근대 화장실에는 기계식 비데가 설치되어있고 사령부, 복지회관 화장실에는 사회에서 쓰는 것과 같은 전자식 비데가 설치되어있다.

전형적인 후방 기행부대 중 하나이다보니 정신적인 면에서는 성가신 곳일수도 있지만 육체적으로는 편한 곳이다. 본근대장 입에서 "너희는 향토사단애들보다도 행복한거야. 걔네들은 예비군 훈련끝나면 밤 늦게까지 장구류를 정비하거든"이라고 말하든지 단위대장(야전부대의 중대장급) 입에서 "야 니들은 전방에 비하면 편하게 군생활하는거야"라는 레파토리가 나올 정도니... 다만 후방의 일부 국직부대와 비교하면 꿀의 강도가 살짝 약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포상휴가는 생각보다 짠 편이며 인원이 부족해 경계근무 등에서 짜증날 때가 있다. 대전이 집인 병사라면 집까지 외박갔다올수 있는 특전을 누릴 수 있지만, 집이 서울이나 부산이라면... 후방이라 점프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만일 걸리면 징계이니 당연히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체 실거리 사격장이 없기에 사격은 인근 사단이나 탄약창에서 한다. 단, 영점사격장은 실내(!)사격장이다. 유격은 2박 3일로, 인근의 모 부대 유격장을 빌려서 쓰며, 조교도 본근대 내부에서 충당한다. 유격장까지 행군 갔다오지 않으며 대형 사제버스 타고 왔다간다. 09년 군번까지만 해도 이등병은 PX이용이 통제되는 등 이런저런 제약을 받았으나 2011년 이후부터 내무생활 군기는 많이 풀어졌다.[5] 2012년 7월부터 육군의 명령하달로 계급별 생활관을 사용하고 있으며, 군수사 본근대대 내부 병사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진급누락[6]을 통해 동기들 또는 친한 1~2개월 선후임끼리 생활관을 사용하고 있다. 동기별 생활관이 아니라 계급별 생활관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기진급한 병사들이 꽤 많은 피해를 입는다.

식수인원이 많지 않다보니 삶은 계란대신에 계란후라이로 나올 때가 있으며, 타 부대에서 이곳으로 와 파견근무해 본 전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 병영식당 밥맛은 상급이라 카더라. 이곳 짬밥은 육군훈련소 짬밥보다 맛있는 것은 확실하며,훈련소 보다 맛없기가 더 힘들다. 육훈도 결국 훈련소 중 최고일 뿐 대체적으로 중,고등학교 직영 급식 밥맛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령부 전역자는 "대전에서 군생활했다"고 하면 "자운대에서 군생활했겠네요" 또는 "육군본부에서 군생활했겠네요." 라는 답변때문에 곤혹스러워한다고. 하지만 "그럼 대전에서 꿀빨고 오셨겠네요"라는 전방부대 출신 지인의 드립에는 정말 변명할 구석도 없다 자운대에서 약 15분거리, 시내에서 10분거리에 있는 부대다. 생각보다 가깝지만, 생각보다 멀고, 사령부 병사나 수송부 병사는 자운대를 밥먹듯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뭐라 할 말도 없다.

사령부이다보니 병사보다 간부가 더 많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민간 공무원 분위기의 군무원들이 바글바글하며, 여기 군무원들 대부분이 현역 간부출신이 아닌 민간 채용출신이다. 다만 군무원들 역시 특히 사령부 처부 행정병한테는 짜증나는 간부이긴 마찬가지. 하지만 군무원이 당직사관 근무서는 경우엔 현역 간부의 경우보단 대체적으로 널널한 편. 당직사관 빡센 정도는 부사관(행보관 등), 경비소대장 (+ 전방에서 갓 전입온 사령부 본청 중위)[7] > 사령부 본청 소위, 중위 >> 군무원[8]

사령부 행정병 중에서 사령부 본청 처부 계원들(당번병 포함)은 향토사단 신교대에서 직접 선발된 자원이며, 본근대 내 대대급, 중대급 계원(주로 육군훈련소 출신 특기병)은 그냥 랜덤으로 굴러들어온 병력.

전방의 일선 야전부대에 비해 여자 볼 일은 있는 부대로, 사령부 본청에 가면 행정직 여성 군무원과 젋은 여성 하사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본근대 병사들은 전방부대 병사들만큼 여자에 대해 굶주린(?!)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여자 보기 쉽고 사회와의 단절이 전방 야전부대보다는 덜한 후방 대도시권 부대의 특성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여자를 보기 쉬운 부대이다보니 병사들 입장에서도 그다지 여자에 신경쓰이는 것도 아니니... 사실 부산 대연동 시절에는 여군소대(!)도 있었다.

대전 현충원 까지 20~40km 행군 갔다올 수 있는 극히 드문 부대 중의 하나이다. 현충원 혹한기 행군을 다룬 기사 행군 코스는 평탄한 편이며, 논산 훈련소의 행군 코스에 비해 난이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자세한 행군코스는 군사보안 상 작성금지. 대전 지역에 눈이라도 내리면 본청으로 통하는 아스팔트 길과 골프장 등 각종 복지시설에 대한 제설에 나서야 하며 가끔 조기기상 크리도 나온다. 전방은 눈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제설이 짜증난다면 군수사 본부는 양이 적어도 디테일(!)을 챙겨야 하니(...).

부산 대연동 시절에는 지금보다는 내무부조리가 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타 병영문화는 주말에 PC방에 외출나갔다오는 등 옛날의 17사단급이었다 카더라.[9] 당시 전역자의 추가바람/수정바람.

2010년과 2013년에 방홍보원 위문공연이 온 적 있다. 두 번 다 사령부 대강당에서 공연이 개최.

2014년 11월에 부대 개방행사를 하였었고, 그 날 부모님이 찾아온 장병은 특별 외출 혹은 외박을 허용해주었다.

5.2.2. 헌병대

본근대 막사 인근에 헌병대 막사가 별도로 있다. 헌병대 병사들의 일과 모습이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본근대 병사들 사이에서는 '군수사 헌병대는 꿀 빠는 것이지 않겠는가'는 의식이 만연하다. 특히 경비소대 병사들은 '다른 부대는 헌병들이 위병소 경계근무 선다는데 이 부대에선 우리들만 뺑이친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대령급 지휘관이 지휘하는 육군의 몇 안되는 헌병부대 중 하나이다. 똑같이 대령급 지휘관이 지휘하는 수방사 헌병단의 규모와 비교하면 수방사 헌병단 쪽이 오히려 안습(?)할 지경(...) 군수사 헌병대가 그 초라한(...) 부대규모에 비해 지휘관 등급이 높은 것은 아마도 과거에 부산 지역을 관할하던 계엄부대였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행부대인데다가 헌병대 규모도 작은 편이라 수방사 헌병단 소속 헌병에 비해서는 편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헌병대 전역자들의 수정바람, 추가바람.

5.3. 예하 탄약창

육군군수사령부'로 분류된 훈련소, 신교대 퇴소병들의 대부분은 예하 탄약창으로 가게 되며, 그것도 경계병(소총수)일 확률이 크다.''' 후방 향토사단 신교대나 육군훈련소에서 탄약창 경계병을 데려가며, 육군훈련소에 일반병으로 입대하면 이런 처지에 놓일 확률이 있다. 탄약창은 보관상 안전문제 때문에 탄약고가 띄엄띄엄 있는지라 주둔지 자체가 엄청나게. 크며, 이곳의 경계근무는 전방의 GOP와 맞먹을 정도로 힘들다. 부대 면적자체가 커서 일부 탄약창은 자체 실거리 사격장과 유격장까지 있다. 게다가 탄약창 내무반에는 구타, 가혹행위와 같은 악습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경비중대 내무군기도 꽤 사납다는 평이다. 만일 사령부 본근대 병사라면 탄약창으로 외박운행갔다온 운전병 아저씨한테서 이런 사실을 전해들을 것이다. 다만 탄약중대(탄약관리병)나 창 본부중대는 경비중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널널하다는 카더라가 있다. 참고로 사령부 본근대 병사 중에서 사고친 자는 탄약창으로 전출되는 경우가 있다. 탄약창 막사시설은 사령부에 비해 상당히 뒤쳐진 편이나 최근 들어 신막사가 생겨나는 중이다. 신형 막사는 대체로 침대형 생활관이다.

탄약창 내 군생활에 대해서는 탄약창 문서 참조. 탄약관리병의 군생활에 대해서는 관련 문서를 참조해도 될 것이다.

5.4. 기타 예하부대

그 외에도 보급단, 정비단(종합정비창 등), 유류지원대 등이 존재한다. 예하의 제2보급단은 육군 최초로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의 민간인이 단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기사 종합보급창은 2000년대 초중반에 침대형 생활관이 마련된 곳으로 전군에서도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6. 출신 유명인물

6.1. 사령관

군수사령관은 보병 병과 출신 장성 중에서 군수업무에 특화된 사람이 갈 수 있는 자리이며, 사령관 퇴임과 동시에 전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박정희
    제1대 사령관. 소장 계급으로 사령관을 역임했다.
  • 노재현
    제6대 사령관. 소장 계급으로 사령관을 역임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장관.
  • 양원모
    제31대 사령관. 2007년 2월 사령부가 대전으로 이전할 당시의 사령관. 전역 후 군인공제회 회장을 역임했으나 2011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했다.
  • 이봉원
    제32대 사령관. 사령관 임기 마치고 군수사 역대사령관으로서 드물게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전출갔다.
  • 이상돈
    제33대 사령관. 말년에 육본에 근무하는 절친한 군수담당 장교와 함께 <군수론>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전역 후인 2014년 현재 육군 정책위원장으로 보직되어 육군본부에 대한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윤일병 사건으로 KBS 심야토론 패널로 출연

6.2. 장교 및 사병

  • 손석희 : 사령부 본부근무대 비서실[10] 행정병 복무. 당시 군수사가 부산지역에 대한 부분적 위수 임무도 수행했었기에 조직폭력배와 같은 의심인물을 사찰하거나 심지어 이들을 삼청교육대로 끌고가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 손학규 : 강제징집 후 예하 모 탄약창에서 복무 (2군지사 56탄약대대 출신이라고 한다.)
  • 찬승 : 능률교육 창업자. 군수사 통역장교로 복무.
  • 민욱 :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군수사령부 헌병대 근무헌병 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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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베다위키 문서 뿐만 아니라 한국어 위키백과 해당 항목에도 군수사 예하부대의 자세한 편제사항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통상명칭도 없이 고유명칭만 쓸 정도로 보안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학교 기관들을 예하로 거느리는 육군교육사령부의 경우와 대조적인 것.
  • [2] 탄약창이나 보급창의 경우는 어마어마한 군수물자(탄약 등)를 후방으로 옮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사령부의 경우는 사령부 본부애들이 짐싸들고 후방으로 후퇴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수도권은 이미 북한에 점령당했고 육군본부가 있는 인근 계룡대와 대전광역시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라... 그래서 군수사 예하부대 장병들은 타 부대에서는 해보는 전투준비태세 훈련 중 물자분류 훈련을 한번도 안해보고 전역하는 경우가 많다.
  • [3] 하지만 사령부 본청이 처부가 아닌 사령부 본근대가 처부인 행정병들은 을지 프리덤 연습이니 뭐니하는 것도 사실상 없는 훈련과 마찬가지. 이것은 경비소대, 취사병, 복지회관병의 경우도 마찬가지. 다시 말하면 사령부 본청 행정병에게나 야근 크리를 선사하는 훈련이라는 것.
  • [4] 비록 군수사 예하가 아니더라도 모든 말단부대는 상급부대인 사령부 본부에 대한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 [5] 사실 이렇게 된데는 2010년경에 모 단위대에서 굴비 엮이듯이 잇따라 터진 모종의 사건도 있으며, 2012년에 모 단위대에서 크나큰 사건이 발생하여 내무생활 군기를 엄하게 잡는 자 = 징계라는 어마무시한 명령이 떨어진 뒤로 내무생활 군기는 어느 선을 유지한다. 2010년의 그 사건이 터진 해당 단위대에선 2008년에도 불미스러운 사망사건이 있었다.
  • [6] 2009년까지만 해도 징계 받은 적이 없는 이상 자동진급이었으나 2010년에 전입온(그가 전입온 것도 전임자가 일으킨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었더라) 모 단위대의 모 간부가 진급평가를 FM대로 하는 바람에 체력이 딸린 일부 병사들이 대거 진급누락하는 등 헬게이트(?)가 펼쳐졌다. 진급누락의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조기진급의 기회도 생겼다.
  • [7] 전방의 모 사단에서 갓 전입온 경리장교가 당직섰을 때 전방스타일로 군기잡아 병사들의 원성을 샀으나 이후 그 본인마저 후방 행정부대의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많이 풀어졌다카더라.
  • [8] 모 단위대의 군무원은 그래봤자 병장 전역 출신이면서 군기를 팍팍 잡으려 하고, 지나가다 충성 경례 안하고 그냥 고개숙이는 인사를 하면 불같이 화를내는데, 이 사람이 당직을 서는 날은 괜히 피곤하다.
  • [9] 만약에 이게 사실이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는 병영문화가 빡빡해진 편이다. 이는 아마 대전권 육직부대 특성상 육본에 의한 감찰, 검열받기 쉬운지라 FM대로 굴러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듯. 이와 같은 맥락에서 휴가나 외박에 관한 인사 업무처리도 FM대로 하고 있다.
  • [10] 지금은 없어진 병사 보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