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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특수전사령부

last modified: 2015-04-12 17:37:4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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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특수부대
국 군
 정보사 육상 / 해상 
육 군
 특전사 / 707 
해 군
 UDT/SEAL / SSU 
공 군
 CCT / SART 
해병대
 해병수색대 
경 찰
 경찰특공대 



안 되면 되게 하라!

귀신같이 접근하여, 번개같이 타격하고, 연기같이 사라져라.

보아라 장한 모습 검은 베레모
무쇠같은 우리와 누가 맞서랴
하늘로 뛰어 솟아 구름을 찬다
검은베레 가는 곳에 자유가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 길이 지킨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부대 용사들
아-아- 검은베레 무적의 전사들[1]

-검은 베레모
특전사
ROK-SF.png
[PNG image (Unknown)]
陸軍 特殊戰司令部
ROK Army Special Forces (ROK-SF)
사자 부대
ROK-SWC.png
[PNG image (Unknown)]
特殊戰司令部 本部
ROK Army Special Warfare Command (ROK-SWC)


Contents

1. 개요
2. 편제
2.1. 공수특전여단
2.2. 제707특수임무대대
2.3. 국제평화지원단
2.4. 특수전 교육단
3. 역사
4. 해외 활동
5. 특징
5.1. 공식 특수부대
5.2. 계급별 특징
5.3. 훈련
5.4. 장비
5.5. 휘장
6. 기타
6.1. 탑팀
6.2. 해체된 부대
6.3. 어두운 과거
6.4. 출신 인물


1. 개요

대한민국 육군특수부대이자 육군본부 직할의 기능사령부이다. 유사시 육·해·공의 다양한 루트로 적진에 깊숙히 침투하여 게릴라전, 정찰, 정보수집, 직접타격, 요인암살 및 납치, 인질구출, 주요시설 파괴, 항폭유도, 병참선 교란, 민사심리전 등 각종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내부로 무장공비들이 침투했을 때 벌어지는 대(對)침투전(대간첩작전)에서 주도적으로 적을 잡거나 소탕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사령관은 중장, 부사령관은 소장으로 홈페이지 군단급 부대로 분류된다. 실제 전투원들의 대부분은 보병정보 병과로 분류되나, 특수부대라는 특성상 인원 수는 보병사단을 예하에 여럿 거느린 동급 군단보다 훨씬 적다.

특수전사령부의 준말인 '특전사'라고 통상 줄여 부르지만[2], 예전엔 딱딱한 어감의 '특전사'란 명칭보다는, 입에 잘 붙는 어감의 '공수부대'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려 왔다. 심지어 요즘도 한국군의 '공수부대'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특전사를 말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다만, 특전사를 '공수부대'라 부르는 것은 엄밀한 군사용어가 아닌 편의상의 일상용어이다. 특전사는 미국의 공수사단처럼 대규모 공수 작전을 벌이는 정규전 공수 부대가 아니다. 특전사는 적진에 소규모 단위로 분산 침투해서 게릴라전 등의 특수전을 벌이는 특수전 부대이다. 대한민국에서 공수 훈련, 낙하산 하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부대가 특전사라서 생긴 관습적인 호칭이다. 참고로, 특수전사령부나 특전사로도 검색해도 모두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타국 특수부대는 일반적으로 병과가 독립된 특수전 병과인데 반해 대한민국 특수부대는 병과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속 전투원인 부사관과 병의 병과 역시 형식상으론 보병으로 분류되고 일부 정보병과도 섞여 있다. 다만 일반보병(111 XXX)과는 달리 특기번호가 112나 113으로 시작한다. 해군 UDT/SEAL의 작전병력은 다수의 부사관에 소수의 병으로 구성되어 있고, 해병수색대는 병 중심의 부대인 반면, 특전사는 철저히 부사관 위주의 부대라는 차이점이 있다.

2. 편제



특전사는 특수전 사령부 예하 1·3·7·9·11·13 여단으로 총 6개의 공수특전여단과 사령부 직할 대테러 부대인 제707특수임무대대, 파병 전담 부대인 국제평화지원단, 양성기관인 특수전 교육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2.1. 공수특전여단


후보생 시절 차출되거나 지원하여 707특임대국제평화지원단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이 공수특전여단에 무작위로 배치된다.
각 여단은 홀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터 13까지 5를 제외하고 홀수로 1·3·7·9·11·13 총 6개의 여단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낙하산을 이용해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여 게릴라전이나 정찰이나 정보 수집, 비정규전 수행 등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 각 여단에는 특수임무대가 존재한다. 707특임대와 비슷하지만 707특임대는 테러 진압을 맡는 반면 여단의 특수임무대는 초동조치 임무를 맡는다는 점이나 여단 특수임무대는 각 공수특전여단 소속으로 여단마다 존재하지만 707특임대는 사령부 직할의 부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공수특전여단 항목 참조

2.2. 제707특수임무대대


후보생 시절 뛰어난 후보생들이 차출되거나 지원하여 갈 수 있다. 사령부 직할 부대며 평시 주 임무는 대테러 작전이지만 전시에는 요인 암살 등 각종 특수임무를 수행한다. 자세한 사항은 제707특수임무대대 항목 참조

2.3. 국제평화지원단


해외파병의 경우 한국군은 특전사가 주축이었다. 물론 육군이나 해병대에서도 함께 파병을 가는 경우도 있으며 청해부대처럼 해군이 주축인 파병부대도 있지만 주로 특전사가 해외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파병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특전사는 특수임무단(흑룡부대, 舊 5공수특전여단)을 국제평화지원단(온누리부대)이라는 이름의 파병전담부대로 개편하였고 활발한 국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레바논의 동명부대 필리핀의 아라우부대 아프간의 오쉬노부대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자세한 사항은 국제평화지원단 항목 참조

2.4. 특수전 교육단


특전사 부사관후보생은 과거 논산에서 5주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거여동에서 공수교육, 신분화 과정을 받았으나 경기도 광주시에 특수전 교육단을 세우면서 15주의 모든 양성과정을 특교단에서 받게 된다. 육군 부사관 후보생들이 논산에서 5주훈련을 받고 익산으로 배출되는것과는 다르게 한곳에서 모든 훈련을 다 받는다. 초급반과정까지 더하면 총 26주를 여기서 보낸다. 공수 교육 및 자세한 사항은 특수전 교육단 항목 참조

3. 역사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각종 유격부대와 첩보부대를 통합한 제8240부대 출신 장교 20여명과 일부 병사를 기간요원으로 차출 하여 초대지휘관 백문오 대령을 중심으로 1958년 4월 1일 제1전투단을 창설 한다. 같은 해, 제1전투단 요원들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美 육군 특전단 (U.S. Army Special Forces; The Green Berets)의 제1특전단(1st Special Forces Group)으로부터 공수교육과 특수전 위탁교육을 받았고, 이듬해인 1959년 제1공수특전단으로 부대를 개칭했다. 그 뒤 1969년에 제1공수특전단과 동해안 경비 사령부 예하 2개의 유격여단을 통합하여 특수전사령부를 창설하였다.

특전사는 한국군 공수교육과 특수전교육의 본거지였을 뿐 아니라, 한국군 최초의 전투용 스키훈련 실시(1963) 등 여러 훈련 분야에서 '한국군 중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특수전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여러 타 특수부대들에게도 특전교육단 위탁교육을 통해 각종 훈련을 꾸준히 교육시켜주고 전파시켜주는 역할도 해왔다. 그래서 육군 특전사는, 해상/해중 침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해군 UDT/SEAL과 함께, 한국군 특수전 교육훈련의 양대 메카이자 학교라고도 불리운다.

1960년대부터 흑산도 대간첩작전과 울진/삼척지구 대간첩작전, 괴산 연풍리 대간첩작전, 북평지구 대간첩작전, 서귀포 대간첩작전 등 각종 대간첩 작전에 투입되어 무장공비들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파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의 예하로 배속되어 참전하여 장거리 정찰임무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사령부가 창설되어 독자성이 강화된 후엔 특전사 대원들로만 구성된 '공수지구대'가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에 편성되기도 하였다.

맹호 지구대 백마 지구대
 1970. 3. 8   대위 김영국 등 1/20명 최초 파견   1970. 3. 22   소령 박상철 등 2/30명 2개팀 
1970. 3. 28 소령 이진백 등 3/30명 3개팀 1970. 4. 15 대위 최수일 등 1/20명 2개팀
1970. 4. 19 대위 박영수 등 1/20명 2개팀 1970. 5. 10 대위 이영길 등 2/50명 3개팀
1970. 5. 10 대위 박광주 등 2/30명 3개팀 1970. 6. 2 대위 김진철 등 1/20명 2개팀
주요임무
장거리 정찰·수색, 적교란 및 기습작전, 목표지역 사전수색·정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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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공수특전대1.jpg
[JPG image (Unknown)]
월남전 적진에서 작전중인 백마부대 배속 특전사 대원들 베트남에 파병된 특전사 대원들

1970년대에는 부대 증편이 이루어졌는데 기존엔 3개 여단이었으나 1970년대 들어 다수의 여단을 창설, 70년대 후반 마지막 제13공수특전여단이 창설됨으로써 총 7개 여단으로 늘어났다. 1976년엔 북측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 대한 보복작전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특전사 예하의 3,7여단이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1979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1980년)에 투입되어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을 지나,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행사의 경호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또한 수해와 붕괴사고를 비롯한 각종 재난, 재해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어 수색, 인명구조, 부상자 치료 및 복구사업에 활약을 하였으며, 그 외에도 한강 수중정화 활동 등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국민의 부대로서의 특전부대의 위상을 점차 회복하였다.

1996년엔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4. 해외 활동

동티모르에 파병된 모습 이라크에서 사격훈련 중인 모습

특전사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아랍에미리트, 남수단, 필리핀 등의 지역에 평화 유지를 포함한 여러 임무를 가지고 해외 파병에 앞장서서 참여하고 있다.

특전사의 해외파병은 개인이 아닌 부대단위(대개 대대 단위)로 간다. 2000년대 초반에 이라크로 파병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병의 경우는 개인단위로 파병에 지원한 병력이 다수).
이라크 파병 때 민사,경호 임무와 부대경비 임무가 있었는데, 경비부대는 임무에 맞게 편제가 아래와 같이 재편성되었다.

계 급 하사, 중사 상사 소위, 중위 대위 소령
직 책 전투원 지역대 행정보급관  부중대장, 지역대 정작장교   중대장  지역대장
 파병 직책   분대장, 부소대장   행정보급관, 주임상사  소대장 중대장  사단 참모 

미국 등 타국의 각종 특수부대들과도 상호 위탁교육 등 교류도 활발하다. 예전부터 동남아 등의 여러 국가들이 특전사의 교육단에 위탁교육을 들어와 특수훈련을 배워갔으며, 2011년엔 아랍에미리트의 초청으로 각종 특수전 훈련을 UAE에 전수해주러 특전사 대원들로 이루어진 '아크부대'를 편성하여 파견가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몽골네팔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훈련장에서 연합훈련을 하기도 한다.

네팔 히말라야에서 각국 특수부대 베테랑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국제 고등산악훈련과정에서 한국 특전사 대원들이 연달아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 소속 특전사 대원들이, 세계 파병부대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UN 국제 체력경연대회, UN 국제 사격 대회, UN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휩쓸어서 대한민국 특전사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기도 했다.

2013년 11월엔 남수단에 한빛부대로 파병 나가 있던 특전사 대원들이, 새벽에 인근지역의 NGO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한인들이 AK소총으로 무장하고 침입한 무장강도단에게 목숨을 위협받는다는 긴급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하여 무장강도들을 제압하고 재외국민들을 무사히 구출해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유엔 연락장교인 마이크 채드윅 호주군 대령으로부터 "구출작전의 정석을 보였으며 남수단임무단(UNMISS)의 성공적인 작전사례가 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기사

5. 특징


  • 특전부사관의 의무복무기간은 임관 전 후보생 훈련기간(3개월)과 임관 후 자대생활(4년)을 합쳐서 총 4년 3개월이다.
  • 특전병은 전투중대에 배속되지 않는다. 80년대까지 중대 전투원으로 팀에 소속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혀 없다.
  • 여성 특전부사관은 사령부 본부 예하에 있는 여군중대로 배속됐었으나 여군중대가 해체되고 여러 부대와 부서에 분산 배속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 남성 특전부사관의 경우 707특임대나 국평단에 지원하지 않는 이상 각 공수특전여단 중 무작위로 배치된다.
  • 육군사관학교출신 장교는 소위때는 배치되지 않고 중위때 배치되는 인원이 한 기수당 8명 정도 된다.
  • 비육사 출신은 소위로 임관할 때 특전사로 지원한 인원 및 체력이 좋은 인원 위주로 선발해서 배치된다.
  • 2012년부터 일반 부사관 및 일반 병들도 특전부사관으로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도 부관, 의무, 통신 병과의 경우 일반부대에서 전입 가능했다.[3]
  • 주특기는 정작, 폭파, 화기, 의무, 통신 5가지로 분류되며, 후보생때 희망 주특기를 조사하지만, 적성검사에 따라 결정된다.
  • 특전사는 일반 보병 부대와는 편제가 다른데, 분대와 소대가 없고 최소 단위가 중대(팀)다. 규모 순서대로 5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규 모     중대     지역대     대대     여단     사령부  
지휘관 대위 소령 중령 준장 중장

1개 중대는 최대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대를 이라고도 부른다. 팀장은 대위. 부중대장은 소위 또는 중위이고 몇몇 중대는 부사관 선임자(상사 이상)가 부중대장을 맡는다. 보통 1개 중대가 10명 안밖이라 지휘 인원이 매우 적고, 일반 보병과는 전술이 달라 적응이 어렵고, 부사관들의 경험과 체력을 따라가지 못해 무시당하는 장교들이 많기 때문에 장교들 사이에선 필수 진급 코스임과 동시에 장교들의 무덤이라 불린다. 편제상 중위 계급을 달고 있어도 일반 전투원 취급을 받으며 심지어 특전사에서 병과 부사관만 한다는 위병조장을 소위 계급을 달고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부사관과 장교 사이의 알력이 매우 심해서, 체력이 약한 초임장교들은 산에서 훈련중 탈진하면 선임 담당관에게 구타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요즘은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라, 상·원사와 중·소위도 서로 존대한다. 간혹 개념없는 장교가 부사관들을 무시하면 훈련때 군장을 무겁게 싸준다. 농담이고, 그러기 전에 장교가 부사관을 무시하면 그 위의 장교들이 알아서 처리해준다. 근데 애초에 보통 소위들이 사령부로 전입오면 사령관이 농담식으로 부사관들한테 앵기지 말라 그러고 이후에 발령 여단으로 전입오면 여단장이 면담자리에서 한번더하고 이게 중대까지 쭉 타고 내려온다. 이런일이 있어서 소위들은 일단 트집안잡히려고 막내하사한테도 존대를 해주고…선임하사[4]가 하는 말은 무조건 따른다. 물론 이것도 1년~1년반 정도 짬이 차면 자신이 전입한 이후에 전입 온 부사관들을 후임처럼 대하고 그전부터 있던 부사관들 하고는 장난치면서 논다. 그래도 어느정도 짬 차이나는 부사관은 존대한다.

같은 중·소위지만 포병의 전포대장은 지휘 병력이 120명 정도나 되기에, 팀 전투원에 불과한 특전사 부중대장과 비교하면 같은 계급임에도 실질적으로 엄청난 권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만, 특전사 장교는 그만큼 관리해야할 인원이 적기때문에 오히려 군생활은 편하다고 한다.[5]

탐색격멸훈련중인 3공수특전여단 대원들 길리슈트 차림의 특전사 저격수들

부사관체계라 부사관은 무조건 6개월 동안 영내생활을 해야하며, 이후에 독신자숙소(BEQ, BOQ) 생활을 한고, 부대 30분 거리에 집이 있다면 지휘관의 허락을 받아 생활할 수 있다. 기혼자나 장기복무자는 군인아파트에서 생활한다.
갓 전입온 막내 하사는 '이등병'(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영내 생활은 병들 처럼 생활관 청소, 중대원 전투화 닦기, 중대 훈련 군장 결속, 경계근무 등을 한다. 기수로 서열을 나누다보니 전부 간부임에도 2년의 영내생활(현재는 6개월)을 마치고 영외거주자가 되야 간부 다운 취급을 받았다.영내 2년 시절에는 영외거주 기념으로 모포말이도 했다.

타군과는 달리 하사 최저 복무기간만 채우면 전원 100% 중사로 진급했었다.[6] 장기복무는 지원자가 적어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하고, 상사 진급도 엄청 빨리 한다.[7]문제는 훈련강도를 못견디고 의무복무만 하고 나가 떨어지는 인원이 과반수라는 게 문제지. 그러나 특전사 편성이 일반부대와 달라 심한경우 상사임에도 하사때 직책 그대로인 경우가 있다. 다만 같은 직책이라도 부담당관에서 정담당관이 될 뿐이다.[8]

5.1. 공식 특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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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식적인 특수부대는 비공식 음성부대인 HIDUDU를 제외하면 특전사와 UDT 이 두 부대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와 해군 특수전전단 이외의 정예부대들, 예를 들어 공군 특수부대는 항공기 지원이나 구조, 해군의 SSU는 해난 구조, 이런 식으로 좁은 범위의 보조적인 임무를 담당하고, 기타 특공대와 각종 수색대들은 직속부대인 군·사단에 소속되어 해당 군·사단의 지역 안에서 제한된 특수 임무 및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 즉 국가 전략적인 차원의 독자적인 특수작전을 담당하는 한국 특수부대는 육군 특전사와 해군 특수전전단 뿐이라는 것.
합동참모본부 특수전과의 답변에도 나와있듯 합참에서 인정하는 특수부대도 육군 특전사와 해군 특수전전단 이 두 부대뿐이다. 특수부대 논쟁 종결자

5.2. 계급별 특징

  • 병·부사관

각각 특전병특전부사관 항목 참조

  • 장교

드라이슈트 차림의 대원들

소위의 경우 모두 非육사 출신[9]이며, 초등군사교육반 교육중 병과를 보병으로 선택하고 지원하거나, 체력이나 성적이 좋으면 차출 될 수 있다. 물론 원하지 않는데도 배정될 수 있다. 살려줘어어어어어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특전사 부중대장 정원이 급증한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기수가 학군 42기, 학군 43기, 학사 43기, 학사 44기, 학사 45기, 학사 46기 등이다.
소위때부터 특전사 생활을 하면[10] 대부분 1차 중대장까지만 하고 고등군사교육반에 입교하고 타부대에서 2차 중대장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소령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위들은 고군반 교육을 받고 1차 중대장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2차 중대장을 타부대하거나 특전사에서 할 수도 있다.

육사 출신 장교가 특전사에 오려면, 1차 소대장 이수 후 중위 계급으로 부중대장이나 정작장교를 맡거나, 대위 계급 이후에나 올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부중대장으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한 기수당 8명 미만)
특전사 소위 직책은 부중대장이 전부인데, 지휘통솔을 중요하게 여기는 육군사관학교의 특성상 처음부터 비지휘보직에 해당되는 보직을 부여 받을 수 없어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군에서 우대 받는 육사 출신 중대장보다 오히려 소위때부터 특전사 생활한 비육사 출신 중대장이 생활이나 훈련, 체력 등에서 부사관들에게 훨씬 인정받는 문제가 발생한다.(물론 예외도 있다. 군생활은 하기나름)

특전사 부중대장을 하게 되면 1차 중대장까지 특전사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1차 중대장 보직 수행 후 고군반을 가게 되며 이때 일반 보병 전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보통 노력으로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고 차후 일반 보병부대로 전출간 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육사출신 장교들이 소령, 소령(진)이상 부터오는 경우가 많다.

5.3. 훈련

혹한기.jpg
[JPG image (Unknown)]
혹한기 훈련 모습 천리행군 중인 특전부사관 초급 교육생

특전사 하면 떠오르는 천리행군(약 400km)의 경우, 사실 단순한 행군이 아니라 3주간의 내륙종합전술훈련 후 도보로 복귀하는 훈련으로, 마지막 1주간의 행군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내륙전술훈련 3주간 이동 거리만 해도 300KM가 훌쩍 넘어간다고 한다. 가끔 매스컴에서 잊을만하면 천리행군중인 부대원들의 물집잡힌 발을 보도하는데, 사실 내륙종합전술훈련에서 이미 아작난 발들이다.

1998년 4월 1일,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에서 천리행군중이던 5공수특전여단(현 국평단) 부대원들이 갑작스런 폭우에서 폭설로 이어지는 악천후로 인해 저체온증으로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널리 알려진 훈련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중대장대위 1명(학군 30기. 1992년 임관), 중사 1명, 하사 4명이 사망했는데 지휘관의 판단 실수와 민간인을 피해 항상 야간에 험한 산지에서 훈련하던 탓이 크다. 또한 조난 초기에 사령부에 보고가 올라가서 가장 인근지역 여단인 13 여단이 구조출동을 위한 준비를 했지만 특전사령관이 '5여단의 일은 5여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여 구조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뒤늦게 고어텍스가 보급되었다.

2014년부터 특전사 천리행군의 방식과 성격이 크게 변하게 되었는데, 특전사 초임하사들이 자대배치 전 특전교육단 초급반 때 천리행군을 엄격한 자격교육 수료제처럼 시행하는것으로 바뀌었다. 마치 지옥주처럼 7일간의 천리행군 동안 잠을 안자는 무박으로 강행군하고, 중도 포기자는 모두 퇴교시키는, 즉 일종의 살아남기식 자격훈련으로 바뀐 것이다.

특전병들은 비전투원이기 때문에 천리행군을 필수로 받지 않아도 되지만, 천리행군 지원자에 한해서 위와 같은 무박 지옥주 방식으로 훈련을 실시하고, 천리행군을 끝까지 완주하여 이수한 자는 전투특전병이라는 칭호와 함께 포상휴가와 상장 등 여러 혜택을 받게 된다.

적성 장비와 복장으로 훈련 중인 모습

그 외에도 활동 지역의 특성에 따라(적 후방지역) 적 장비에 대한 사용법도 익히는데, 적성화기(AK나 RPG류), 차량, 기계화 차량에서부터 넓게는 전동차나 기차의 조작도 간단하게 배운다고 한다. 2009년 실제로 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이 장기화되자 일부 특전사 부사관이 투입 되었고, 서울 지하철 7호선의 명물로 알려진 '빨간 넥타이' 기관사 역시 특전사 출신이다. 육·해·공 부사관 중에도 기관사 교육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철도노사의 대규모 파업이 있으면 투입된다.

적 후방지역 침투와 작전 수행을 위해 육·해·공의 다양한 훈련을 하는데, 공중은 강하 훈련, 해상은 해상침투훈련, 지상은 각종 산악훈련과 침투, 비트 구축, 은거, 생존, 타격, 사보타지, 도피·탈출 등의 훈련을 받는다.

5.4. 장비


개인 장비는 육군 보병들과 비슷하다. 육군 보병들이 사용하는 K1A 기관단총이나 K2 자동소총 등을 사용하며 K2 자동소총K201 유탄 발사기를 장착해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K3 기관총의 경우에는 특전사에서도 사용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K7 소음기관단총같이 보병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장비도 사용한다. 또한 국산 무기 외에도 해외 업체에서 제작한 무기도 사용하는데 제707특수임무대대에서 사용하는 MP5MP9이 그 예이다. 2014년 M110을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M32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 장비의 경우 보병들과 동일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보병들이 보급받는 장비들과는 별개로 특전사 전용 장비들이 지급되기도 한다. 헬멧의 경우에는 보병들이 사용하는 구형,신형 헬멧을 사용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특전사 전용 헬멧이 보급되며 탄조끼같은 경우에도 일반 부대에 보급되는 물품이 아닌 특전사 전용이 있는 것도 한 예이다. 전투복의 경우에도 다른 군이 입지 않는 특전사 자체 전투복을 입는다. 다만 이 경우에는 공군 특수부대같이 다른 특수부대에서도 입기는 하지만 항상 먼저 선보이는 것은 특전사이다.


해외 특수부대의 경우에는 도트사이트같이 총기에 부착하는 악세사리의 효율성에 주목하고 잇따라 채택해 사용하였지만 특전사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다. 도트사이트같이 총기에 부착하는 악세사리들은 육군의 정식 보급품이 아니기 때문에 총기에 뭐 하나라도 다는 것은 보급품을 개조해서는 안 된다는 육군 규정을 어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제707특수임무대대나 각 여단 정찰대의 대테러 인원에게는 이오텍에서 개발한 홀로그래픽 도트사이트가 보급되었고 후에 제707특수임무대대에는 추가로 동인 광학에서 개발한 도트사이트가 보급되었지만, 다른 대원들은 이런 것을 보급받지 못했다.

다만 몇몇 대대에서는 대대장의 도움으로 총기에 악세사리를 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엄밀히 말하면 규정을 어기는 것이다. 때문에 특전사 대원들은 평소에는 총기에 악세사리를 달았다가 검열이 나오면 모두 해체해 총기를 원상태로 복구해 놓고 부착물은 숨겨야 했었다. 대원들에게 총기 개조를 허가하며 선택권을 주는 해군UDT/SEAL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9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전인범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장비에 대한 소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전인범 중장이 특전사령관으로 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전 사령관은 특전사 대원들에게 도트사이트나 손잡이 등을 정식 보급으로 해주었다. 또한 대원 개개인게 총기에 악세사리를 달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등 장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특수전에 걸맞는 장비들도 사용 중이다. 폭파를 위한 폭파 장비나 침투 장비 등 임무 수행에 도움을 주는 장비들을 보급해 사용 중이다. 다만 특전사는 인원은 많은데 예산은 부족하다보니 특전사 장비 부족이나 노후화가 심각한 실정이다. 간 투시경의 경우에는 일부에게만 보급되며 주 침투 방법인 고공 침투에 필수인 낙하산도 부족하다고 한다.댓글에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여럿 보이지만 알아서 걸러내고 보자 특수부대이지만 특수부대다운 무기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특전사. 특전사도 이러한 문제점을 아는지 차근차근 개선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위에서 언급한 대로 M110을 비롯해 K2 자동소총의 개량형인 K2C를 보급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국산 저격총인 K14 저격소총도 보급되었다. 또한 부무장으로 K5 권총의 개량형인 LH9 권총도 보급하고 있으며 M1911 권총도 재도입해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6. 기타

특전사는 온갖 여러가지 임무들을 추가로 맡고 있기 때문에 타국 특수부대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각종 국가행사나 지역행사, 외국 VIP들의 방한때마다 경호 및 각종 시범을 보여주는 것도 특전사이고, 심지어는 한강 바닥의 쓰레기를 건져내는 수중 정화 작업에도 매년 한두 차례씩 동원될 정도이다. 정말 고생하는 분들이니 최소한의 경의는 잊지 않도록 하자.

처음 전입온 장교들은 일반적인 부대의 지휘체계와 특전사의 지휘체계를 혼동한 나머지 일반 부대에서 대위가 부사관 대하듯 하대를 하는 등의 행동으로 개념없다고 찍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갓 전입 온 육사 출신의 대위가 지역대 행보관에게 "행보관, 나 좀 나갔다오게 배차 한대만 내요." 했다가 타 중대의 선임 중대장한테 쪼인트 까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장교들도 전투 보직은 병과가 모두 보병이지만, '특전' 병과가 따로 있던 과거에는 장교의 출세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보니 기갑이나 포병, 심지어는 정훈 병과임에도 불구하고 특전사로 전출와서 부중대장 같은 직책을 이수한 경우도 많았으며, 실제 사례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나, 차지철 전 대통령경호실장 등은 원래 포병병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특전사로 전입와서 근무를 한적이 있다. 이처럼 특전사 복무가 장교의 진급 필수코스가 된 것은 사실 제5공화국의 실세인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으로써 특전사를 이용해 권력을 잡은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어두운 과거 문단에서 설명할 것이다.

천리행군을 완주한 여군들

특전사령부 직할로 여군중대가 있었는데, 대위급 지대장 1명과 상사급 팀장 2명, 그리고 수십명의 중·하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교는 지대장 혼자다. 이 여군중대는 대테러(스튜어디스, 간호사 등으로 위장하여 안심시키고 적에 게 접근하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인원들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 신요안나 중사를 보면 사실인 듯)가 주임무이며, 특전사 예하 부대의 각종 행사에 파견되기도 한다. 2014년에 여군중대가 해체되고 예하 부대에 분산 배치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전사는 90년대 후반부터 각종 시범 등 대외 행사시 홍보 차원에서인지 항상 특전여군을 앞세우고 있다.

여단 내에 PX 뿐만 아니라 복지회관도 존재한다. 영내 인원은 평상시에는 이용하지 못하지만, 중대 회식을 하거나 당직 근무자에게 보고 하면 이용 가능하다.

매년 하계/동계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3박 4일 운영으로 특전캠프(사이트 접속시 군가 '검은 베레모'가 자동 재생됨)를 운영하고 있다. 특전사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다면 신청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이것을 소재로 훌륭한 힛갤작품도 나왔다. 근데 전혀 특전사 같지 않다.

IWC 단체전에서 1, 2위를 차지한 육군특수전사령부 3공수특전여단과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 장병들

2014년 4월 10일 서울공항 美 복지센터에서 열린 '2014 주한미군 체육대회 IWC(Individual Warrior Challenge)'에서 3여단이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서 707특임대가 2위, 주한미군이 3위로 특전사는 IWC 대회를 통해 한국군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증명했다.

2014년 10월에 있던 5개국 국제 저격수 대회에서 특전사가 꼴지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는데, 나중에 오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스템적 문제로 인해 특전사들은 맞는 총기를 가지고 갈 수 없었고, 그 곳에서 총기와 탄약을 받아서 시험을 했으나, 탄약이 총기에 맞지 않다보니 잦은 기능고장과 안전문제로 인해 아예 특전사는 대회에 참여를 하지 않고 참관자 신세가 된 것.[11]

국방TV 홍보 영상
youtube(SwsssLEizes)

6.1. 탑팀

특전사 탑팀 항목 참조

6.2. 해체된 부대

제27특공부대 항목 참조

6.3. 어두운 과거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특전사는 군사 정권의 권력 찬탈에 이용된 암흑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12.12 군사반란때 계엄군으로 공수부대가 가담했으며, 박정희 정권 말기에 부마민주항쟁때도 공수특전여단 병력이 출동·진압하였다. 특히 12.12때는 주역으로 활동하였으며, 3공수특전여단장 최세창 준장이 부하인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을 시켜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사후 중령 추서)이 사망한다.

전두환이 1공수특전여단장 출신, 노태우가 9공수특전여단장 출신이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결성한 조직인 하나회로 맺어져 있던 이들 중에는 1여단장(박희도), 3여단장(최세창), 5여단장(장기오)이 있었으며, 덕분에 12.12 군사반란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특전사 병력을 거리낌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으로 이미지가 급격하게 나빠졌는데, 3여단, 7여단 소속 특전사 장병들이 빨갱이 진압을 빌미로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폭행하고 학살했다.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계엄군들이 갖고 있던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나중에 진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군사독재 정권의 앞잡이" 내지는 "잔인한 학살자"라는 불명예로 돌아왔다. 지금도 전라도의 나이 드신 분들은 공수부대라고 하면 매우 싫어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들도 사실 피해자라 할 수 있는데, 나중에 진실을 알고난 후 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당시 회고록 같은 자료를 보면 진압 당사자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당했고 한다.

계엄 당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노태우가 여단장으로 있던 9여단은 12.12 사태 때 유일하게 육본 통제하에 두었던 부대였고, 게다가 이 당시의 여단장은 흥기 준장으로 다른 공수여단과는 달리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인데다 성격 또한 우직했고, 참모장까지도 갑종출신이라 전두환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전두환의 신사협정에 속아 회군을 시켜서병크를 저질러서 (사실 아무런 연줄이 없었던 데다 아무도 지휘체계를 무너뜨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알 수 없었다는 측면도 있다.)... 사태 이후 윤흥기 준장은 경질되어 똥군기로 유명했던 이진삼으로 갈아치워졌다.


실추된 이미지는 2000년대가 넘어서야 간신히 회복 되는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베레모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은 할렘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만큼 위험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정도였다. 때문에 전남 담양에 위치한 11여단에서는 출타시 사복착용을 허용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이미지가 실추되는데 23대 사령관 최익봉 중장이 성군기 위반으로 보직 해임된 것이다. 이분도 하나회 출신이다.
최익봉 중장은 사단장(23사단) 시절이던 2009년에 사단내 여군 부사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사실이 뒤늦게(2012년 3월에) 탄로나서 결국 해임 되었다. 사실 부적절한 관계란 용어는 최익봉 중장에 대한 징계위원회 후 국방부 관계자가 출입기자들에게 뿌린 단어이다. 최 중장이 23사단장 재임시 둘 사이의 나이차이가 30살 정도 났는데, 첫 보도엔 동료 여 부사관의 증언을 참고해 강요된 성관계에 가까웠다는 기사가 나왔었다. 후에 이를 토대로 국방부와 육본의 취재가 수행됐으나 양 측(최 중장 건에 대한 언론보도는 육본에서 맡았다)에선 최익봉 중장에 관한 건 개인사생활에 관한 것이므로 징계위원회의 징계 사유와 징계 결과(불명예 전역이냐 명예전역이냐)를 알려 줄 수 없다 말하였다. 이후론 최 중장에 대한 증언도 죽었다.

6.4. 출신 인물

 성 명  비 고
김상경  특전병 출신
김오랑  육사 25기, 항목 참조
문재인  특전병 출신,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 박정희 정권당시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대학생들을 군대에 처넣을 강제징집 했을 때
 특전병으로 징집 된 케이스였다. 심지어 민주화 운동으로 구치소에 갔다가 나오자마자 징집 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주특기는 폭파였고, 수중침투훈련도 받았다고 한다.
 (특전사의 수중침투 스쿠버 교육은 정식 사령부 해척조 교육과, 대대 해상훈련 기간 때 대대 자체적으로 수영 잘 하는 대원들 뽑아서
 속성으로 스쿠버 요원을 양성하는 대대 해척조 교육이 있는데. 문재인은 병인걸 감안할 때 후자인듯)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사건 때 초소파괴작전을 위한 64명의 결사대(보복조)로 투입되었다는 얘기도 한때 나돌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작전에 실제 투입된 결사대는 전원이 특전사의 부사관장교로만 구성되었고,
 병인 문재인은 직접 참가하진 않고 작전병으로 후방지원을 맡았다. 참고로 당시 결사대장은 김종헌 소령.
박상철  특전병 출신, 항목 참조
이진우  특전병 출신, 김상경이나 이진우가 군생활을 하던 시기에는 특전병들도 부사관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경우가 많았다.
 5.18을 재현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병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는 특전사 장병들의 모습은 절대로 오류가 아니다.
UMC/UW  특전병 출신(추정). 입대를 늦게한 편이라 자랑할만한건 못되는지 잘 언급은 안한다. 마이크 스웨거 출연때 거의 유일하게 언급.

  • 그 외

 성 명  비 고
박남현  육군 수색대 출신, 좀 특별한 부대 나왔다고 하면 다 특전사 출신이라고 쓰는 무지한 기자들 때문에 잘못 알려짐 아니면 기자가 미필이거나
신정환  육군 203특공여단(구 제1공중강습여단) 출신, 위와 같음
기타  영화 표적에서 주인공 류승룡이 특전사 출신으로 나옴
 소설 풀 메탈 패닉양준규 하사가 특전사 출신이라고 한다. 한국 공수부대 출신이라는데,
 한국에서 낙하산을 타는 인원은 특전사 외에도 있지만, 한국에서 공수부대라면 특전사가 떠오르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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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나이'→'전사들', 전인범 특전사령관은 "특전사에 훌륭한 여전사가 많은데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며 "직접 개사 결정을 내렸다.
  • [2] 덕분에 特戰士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 [3] 이 경우 '특전부사관'이 아니라, '특전사 소속 부사관'으로, 사령부나 여단 직할대에 많다. 특전부사관은 병과가 보병뿐이다.
  • [4] 선임 담당관을 말하며, 부사관 부중대장을 선임하사라고 하지 않는다.
  • [5] 장교 부중대장들은 보통 지역대에서 정작장교랑 행정작업을 많이 한다.
  • [6] 이것도 03군번까지 이야기고, 이후 전역하기 몇 달전에 진급하거나, 하사 전역하는 경우도 있다.
  • [7] 같이 위탁교육을 받던 해군 하사가 특전사 상사보다 군번이 2년 빠른 경우도 있었다고...
  • [8] 통신담당관의 경우, 크고 무거운 무전기인 p-999k를 부담당관(조수)이 운용하고, 작고 가벼운 무전기인 p-96k를 정담당관(사수)이 운용한다.
  • [9] 육사출신 소위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첫 자대로 이 곳에 배치되지 않는다.
  • [10] 부사관들은 소위때부터 생활한 장교를 더 인정한다.
  • [11] 이 일 때문에 책임자였던 저격수 학교 부대장이 징계처분을 받아 보직해임까지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