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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last modified: 2017-08-04 05:31:11 Contributors



위의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유재하가 유난히 목이 굵고 길었다고 한다. 보통 목이 짧고 굵은 사람이나 얇고 긴 사람은 많아도 목이 굵으면서 긴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문세가 실제로 유재하를 처음 봤을 때 무척 신기해했다고.

柳在夏[1]
1962.06.06~1987.11.01
한국 남자 싱어송라이터.

Contents

1. 소개
2. 앨범 목록
2.1. 1집 사랑하기 때문에
2.2. 추모 앨범
2.3.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2.3.1.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자 중 대표적인 뮤지션


1. 소개

제 동년배 작곡가 중에서 유재하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운 이가 있을까요?
댄스 음악의 질적 성장 시기를 서태지를 기준으로 나누듯, 한국 대중음악은 유재하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 방시혁

한국 발라드의 아버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상 손꼽히는 전설적인 천재 가수

'천재는 요절한다'의 사례 중 하나이자 사랑하는 여인을 먼저 두고 떠난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가진 비운의 음악천재

1962년 6월 6일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2]에 진학하였다. 순수음악[3]을 전공하였지만 대중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작곡과 작사, 편곡 외에도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의 연주에 능통했던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 가요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웠다.

한양대 재학 중에 '조용필위대한 탄생' 의 키보드 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조용필은 나중에 유재하의 대표곡이 되는 사랑하기 때문에 를 자신의 7집 앨범에 먼저 취입했다.

한양대 졸업 후 1986년에는 김현식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하였으며 1987년 8월에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했다.

최고의 히트곡이자 명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사실 조용필 앨범에 먼저 수록되어있다. 7집 발매 당시인 1985년 '위대한 탄생' 의 멤버였던 23살 새파란 청년 유재하의 재능을 꿰뚫어본 조용필이 '''너 곡 좀 써봐라 라고 이야기하고 유재하가 감격해서 10곡 이상을 작곡했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한 곡만 쓰여서 유재하가 실망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에피소드는 이후 유재하가 참여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도 똑같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3집을 준비중이던 김현식이 멤버들에게 곡 좀 써오라고 하니까 그때 조용필에게 주었던 자작곡 10여곡을 다 가져다줬는데 형평성 맞춘다고 멤버당 한 곡씩만 넣어서 유재하가 삐져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나갔다고 라디오 스타 김현식 특집에서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이 밝혔다. 이때 김현식이 받은 곡도 희대의 명곡이자 유재하 1집의 수록곡인 <가리워진 길>. 그리고 유재하의 대타로 급히 영입된 박성식이 김현식 3집때 내놓은 곡또한 희대의 명곡인 <비처럼 음악처럼>. 음악 천재들이 따로 없다.

어쨌든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싶었던 유재하는 돈 800만원을 들여서 자신이 모든 곡의 작곡, 작사, 편곡을 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내놓는다. 사실 이 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가창력 미달을 이유로 출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의 평론가들은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한 유재하의 앨범을 높게 평가하지 않고 "이상한 노래" 정도로만 치부했다. 당시에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TV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에는 PD들에게 사전에 테스트를 받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테스트에서도 가창력 미달을 이유로 번번히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에는 팝송이나 클래식 음악을 고상한 문화예술로 치는 반면 가요는 대중 오락의 한 종류로만 치부하는 분위기였고 클래식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던 유재하가 대중 가요를 만든다는 건 고상한 문화 음악을 포기하고 질낮은 가요로 투신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유재하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 여성의 증언에 의하면 "학교 때려칠까..." 라고 유재하가 말하기도 했었다고. [4]

이 외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 유재하의 앨범 녹음 과정을 참관했던 여성의 증언에 따르면[5] 무척 수줍어하고 조용한 인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술을 조금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면서 쾌활해지는 성격이었다고. 유재하는 술만 마시면 말도 많아지고 피아노가 있는 술집에 가면 끝도 없이 즉흥 연주를 계속했다고 한다. 주인들이 나중에 참지 못하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한편 김현식의 소속사 사장이자 유재하를 데뷔시킬 뻔했던 동아기획 사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재하의 성격을 개그맨에 비유할 정도로 밝고 쾌활한 타입이라고 소개했고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이 처음 보면 '바람둥이'같이 보일것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면모를 소개하기도. (...)

유재하가 천주교 교회에 다녔는데 교회 앞에 레코드 가게 주인에게 당시 유재하가 앨범 내기 전에 데모 테잎을 들려주었다고 하는데 가게 주인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이 가장 괜찮다고 했고 유재하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참고로 유재하는 다니던 천주교회 무덤에 묻혔다).

안타깝게도 유재하는 1집을 발표한 직후인 1987년 11월 1일에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웬일인지 잘 가지 않던 동창회를 갑자기 간다고 나섰는데 술 취한 친구가 몰던 차를 얻어타고 돌아오다가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가 나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만 25세였다. 유재하가 죽기 직전 그를 만났던 사람에 의하면 유재하는 1집의 완성도에 아쉬워했고 2집 앨범은 더 좋은 앨범을 만들겠다는 그의 강한 의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도 단 한 번 뿐이었는데 바로 아래의 KBS의 젊음의 행진에 나와 1집 앨범 수록곡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을 부른 영상이다.

젊음의 행진에 나온 처음이자 마지막 방송 모습. 방송에 꼭 나가고 싶어했던 유재하는 알고지내던 한영애에게 "누나 나 방송나가!" 라고 자랑했다고 한다.[6]

'사랑하기 때문에' 의 기타 연주는 유재하가 한 것인데 동갑내기 친구였던 종진에 의하면 원래 유재하는 기타를 칠 줄 몰랐고 본인이 먼저 기타를 배웠는데 나중에 배운 유재하가 기타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주위 사람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악보가 없는 외국 기타리스트의 기타 연주를 순전히 하루만에 귀로 캐치해서 연주했다고 한다.

보컬은 약간 음정이 불안정하고 어눌하긴 하지만 그것조차 매력이라고 평가받는다. 유재하의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에이, 이 정도는 나도 부르겠다'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불러 보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유재하 특유의 어눌하고 담백하고 순수한 느낌은 잘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노래 방식이기 때문. 이에 대해서 가수 박정현도 유재하의 음악을 듣고 단지 기교가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 지금 나오고 있는 발라드는 모두 유재하 모방이라는 평까지 듣는다. 1집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지금 들어도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고 단아한 앨범이다. 어눌하지만 솔직한 보컬, 절제를 아는 악기, 가슴 시릴 정도로 쓰라리고도 담백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2012년 12월에 새로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되었다. [7]

MBC 창사 47주년 특집 MBC FM4U의 '한국 대중 음악, 시대를 걷다' 에서 음악 평론가 진모는 "대한민국의 발라드는 이영훈에 와서 문이 열리고 싱어송라이터의 세계, 즉 창작과 작곡 편곡의 세계로 발라드의 지평으로 올린 사람이 유재하이다" 라고 평했다.


수록곡 중 하나인 '우리들의 사랑' 악보, 현재 불려지는 가사와는 다른 부분이 보인다.

당시까지 작곡, 작사를 맡는 싱어송라이터들은 흔했어도 편곡까지 혼자서 맡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신중현이나 조용필 같은 거장들도 하기 힘든 작업을 한 앨범을 통째로 25살의 남자가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유재하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악기를 혼자서 연주했다. 피아노, 기타 등 혼자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거의 혼자 맡았다. 오늘날 그가 수많은 후배 가수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런 예술 작품을 만드는 정성스러운 자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 반주 역시 유재하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후배들이나 지인들을 섭외해 녹음을 했다고 한다. 당시 유재하 앨범의 반주를 연주했던 후배들은 처음에 대중 음악의 반주를 녹음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그래서 '이런 거 해도 되나? 걸리면 학교에서 짤리는 거 아냐?' 식으로 걱정도 많았다고. 유재하는 그런 후배와 지인들을 다독여주면서 앨범 녹음을 끝냈다.

명곡 <사랑하기 때문에>의 중간에 들어가는 깔끔하고 가슴 쓰라린 기타 연주나 <우울한 편지>의 우울한 피아노 간주는 2012년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 조용필, 이문세, 김현식 같은 선배들이 가수들이 왜 그렇게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는지는 앨범 한 장으로 명료하게 드러난다.

김현식 등 당대 음악 선배들이 유재하를 그토록 아꼈던 이유는 당시 기준으로 대중음악계에서 최초의 음대 출신(게다가 명문대) 음악가 후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대중음악계의 환경이라는 건 개인의 음악성과 음악을 만드는 기본기는 전혀 딴판이어서 대부분의 대중 가수들은 일부를 빼놓고는 악보를 그려서 작곡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가수도 있었던 시대였고 제대로 된 음악 교육 기회 없이 그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삘' 로만 음악을 해야 했던 이러한 현실에서 한양대 음대 작곡과 출신이 대중 가요를 한다고 나타났으니 선배들 입장에서는 대중음악계에 큰 기대주였던 셈.

특히 김현식같은 경우는 아주 유재하를 무척 아꼈다. 김현식은 후배들을 주먹으로 조지면서 이끄는 스타일이었는데, 종진이나 태관 등 당시 봄여름가을겨울 멤버였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재하는 항상 그 구타와 집합의 대상에서 열외였다고 한다. 평소 가요계 군기반장이자 성질 있기로 유명한 김현식이 얼마나 유재하를 높게 평가했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김현식은 기묘하게도 딱 3년 뒤인 1990년 11월 1일에 병으로 유재하를 만나러 갔다.[8] 즉, 김현식과 유재하의 기일은 같다. 이 두 뮤지션에게 바치는 헌정곡으로 2004년 에픽하이가 '11월 1일'이라는 노래를 정규 앨범에 수록했다. 두 뮤지션의 기이한 인연을 모르는 젊은 음악 팬들도 해당곡을 듣고 비화를 알게된 케이스가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막상 유재하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신문에는 짧은 뉴스로 젊은 신인 가수의 사망을 알렸을 뿐이었다.(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유재하 사망 직후 라디오에서는 갑자기 '사랑하기 때문에'와 '지난날'이 정말 물릴 정도로 많이 나왔다. 생전에 크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망 이후 오히려 인지도가 올라가며 뒤늦은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더욱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신승훈이나 윤종신, 김현철 같은 가수들이 유재하의 영향을 받아 그의 음악을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유재하라는 가수는 세상을 뜨고 없었다. 이문세의 경우에는 유재하가 생전에 전혀 유명한 가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라디오 방송에서 울면서 뉴스를 전했다.[9]

대한민국 대중음악사가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그의 음악적 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음대 작곡과 출신답게 그의 음악은 기존의 대중음악과는 사못 다른느낌을 주는데 쉽게 말해 기존 대중가요가 일률적으로 가졌던 소위 '뽕끼' 가 그의 음악에서는 완전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노래 대부분이 다소 슬프고 애잔한 느낌을 주지만 이전의 가요처럼 신파조는 아니다. 오히려 슬프지만 무언가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 가요 발라드계의 양대 원조격인 이영훈의 음악들조차 사실 저 '뽕끼' 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 '뽕끼' 라는 것이 다소 신파적인 멜로디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순전히 단점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만 유재하의 경우 한국 가요계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장르를 그 어린 나이에 새롭게 길을 텄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단순하게 봐도 조용필이라는 전무후무한 황제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던 가요 지평에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 이어지던 발라드의 두 시초라는 거에 대단한 점이 있다. 이문세-변진섭-신승훈으로 이어지는 발라드 계보의 스타트는 이영훈과 유재하라는 의견도 존대한다.

후배 가수들, 특히 발라드 가수들에게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한국적 발라드는 거의 대부분 그의 영향을 받은 셈. 위에도 언급했지만 사실 한국의 소위 발라드는 지금도 유재하 1집과 이영훈이 전곡을 작사/작곡한 이문세 4집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10]

  • 이적은 작곡, 작사, 음악을 대하는 자세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수 중 하나가 유재하라고 한다.
  • 유희열이 클래식 음대를 진학하게 된 계기가 유재하라고 한다. 게다가 유재하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있지 못했으리라고 그에게 존경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 유영석은 유재하에 대해서 놀라움 질투와 존경을 한 번에 느낀다고 한다.
  • 김동률은 유재하의 죽음으로 한국 발라드 계열의 음악은 100년은 퇴보되었다고 말할 정도고 신승훈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일부러 11월 1일을 자신의 데뷔날로 잡았다.
  • 윤종신라디오 스타에서 '이 사람의 노래를 듣고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마음 속의 라이벌로써 그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특히나 작사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는 이야기를 하였다.

단 상대적으로 음악적 성과가 적기 때문에 (1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뒤에 기량이 떨어진 가수들과 비교되며) 아쉬움이 더해진 약간의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 활동 이전부터 조용필, 김현식 등 거장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런 그가 겨우 1집밖에 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당연히 동료 가수들의 아쉬움이 더해졌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작곡/작사 능력에 비해 가창력이 아쉽다는 평도 있는데 늘 같이 묶이는 가수가 가창력 본좌인 김현식과 김광석이라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다. 특히 이 둘은 힘 있는 보컬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유재하와 대비되는 면이 있다.[11]

그가 죽고 10년이 지난 1997년, 조규찬 등이 참여한 그의 추모 앨범인 "다시 돌아온 그대를 위해"가 제작되었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우울한 편지' 가 실리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유재하의 앨범이 '가창력 미달' 으로 금지곡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 실린 곡들은 사실 유재하 자신의 자전적인 사랑 이야기로 유재하가 곡을 바친 주인공은 바로 해당 앨범의 기악 파트 중 바이올린, 오보에, 플롯을 담당한 김애란이라는 여성 연주자라고 한다. 대학교 1학년때 그녀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

2010년 10월 10일 1박2일 방영분을 통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이 방송되었다(한국 위키 참조 및 인용했다).

2011년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의 5월 26일 방송분에서 박정현이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를 불렀다. 나는 가수다 스포로 그녀가 이 노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잔잔하게 이 노래를 소화해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정현은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선물받은 것이 <유재하 1집> 이었고 그때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고 <나는 가수다> 방송 중의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2011년 6월 28일 KBS의 명작스캔들에 유재하편이 방송되었다.

2012년 11월 2일 방송된 KBS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땡스 투 유재하> 특집을 방영하여 유재하와 관련 있는 가수들을 초청해 유재하가 만든 노래 전곡을 TV 방송 최초로 공연했다. 이 방송에 출연한 이적의 말에 따르면 라디오 방송을 제외하고는 TV에서 유재하의 노래 전곡을 방영한 적이 없다고 한다.

2013년 7월 20일 KBS의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유재하 특집을 방영하였다. 문명진이 '사랑하기 때문에'를, 조원선이 '우울한 편지'를, 홍경민이 '지난 날'을, JK김동욱이 '가리워진 길'을, 하동균이 '그대 내 품에'를, 모어찬스가 '그대와 영원히'를 불렀다.

2014년 10월 29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에서 유재하를 주제로 한 유재하이기 때문에 특집을 방영했다. 일단은 토크쇼가 베이스다 보니 친구들(김광민, 장기호)이 들려주는 그 에 관한 트리비아(EX: 목소리가 맹구같았다.)들과 나머지 게스트 (조규찬, 박원)들이 들려주는 유재하에게 영향을 받은 점 + 바치는 노래까지 해서 재미와 감성을 둘 다 잡는데 성공했다.

유재하 하면 그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도 유명하다. 바로 앨범에서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연주한 '김애란'이라는 여인과의 사랑이야기로, 당시 유재하는 대학교 입학 당시 이 여인에게 반해 끈질기게 달라붙은 끝에 마침내 마음을 얻어 연인이 되었는데, 연애는 순탄치 않았고 여자친구가 유학을 가는 등 균열도 있었지만 사이좋게 만났고 '사랑하기 때문에'와 기타 수많은 명곡들은 그녀를 위해 유재하가 만든 노래들이다. 여자친구 역시 유재하의 노래를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며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단단한 것만 같던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는데, 유재하가 25살이라는 젋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해 버렸기 때문. 이에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 계속 방 안에만 틀어박혀 우는 등 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다못한 그녀의 부모님이 외국여행을 추천했고, 외국 여행 중 한 카페에서 익숙한 음악이 나오는데 바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주인에게 어떻게 이 노래를 얻었는지 묻자 한국인 유학생이 준 노래인데 너무나도 애잔해서 틀어놓았다고 하고, 이에 그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은 결혼했다고 한다.)

2. 앨범 목록

2.1. 1집 사랑하기 때문에


1987년 서울음반에서 초판 발매한 LP판 표지


1987년은 서울음반에서 , 2014년은 킹핀엔터테이먼트에서 재발매한 LP판 표지


1988년 서울음반에서 발매한 초판 CD 표지


1994년은 YBM서울음반에서 , 2012년은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한 CD표지[12]


2001년 재발매한 리마스터링 CD 표지

트랙리스트 [13]

Side A
1.우리들의 사랑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2.그대 내 품에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3.텅 빈 오늘밤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4.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5.Minuet(경음악) (작곡/편곡 : 유재하)

Side B
1.가리워진 길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2.지난 날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3.우울한 편지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4.사랑하기 때문에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정화의 노래(건전가요) (원곡 :장혁) [14][15]
Bonus Track. Vincent(원곡:돈 맥클린)[16]

초판 CD 트랙리스트 [17]

1.지난 날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2.그대 내 품에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3.가리워진 길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4.사랑하기 때문에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5.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6.텅 빈 오늘밤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7.우울한 편지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8.우리들의 사랑 (작사/작곡/편곡 : 유재하)
9.Minuet (작곡/편곡 : 유재하)

  • 1987년에 서울음반에서 초반, 재판을 LP, 카세트테이프로 출시
  • 1988년에 서울음반에서 CD로 출시했다.[18]
  • 1994년에 서울음반에서 다시 CD로 재판매하였다.
  • 2001년에 T Entertainment에서 리마스터링판으로 재발매
  • 2012년에 로엔엔터테인먼트[19]에서 리마스터링하여 다시 또 재판매하였다.
  • 2014년에 킹핀엔터테인먼트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걸처 디지털은 96khz/24bit , 192Khz/24Bit , DSD128[20]로 판매를 하고 LP는 1500장 한정[21] LP로 재발매.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최초의 마스터테이프를 사용해 여러 매체를 거치며 열화된 음원을 바로 잡고 홈레코딩으로 가족들을 위해 불렀던 'Vincent'를 보너스트랙으로 수록했다.
  • LP 초판과 재판, 그리고 CD 초판과 리마스터링판의 표지가 다 다르다. 덕분에 콜렉터들의 수집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 판본마다 표지가 달라서그런지 판본마다 음원 소스도 다른데, 정리하자면 다음 두개로 갈린다.
-1987년 LP, 1988년 초판CD, 2001년판 1차 리마스터링, 2014년판 3차 리마스터링
-1994년 재판CD, 2012년판 2차 리마스터링

1994년 재판 CD가 나오면서 누군가 건드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음질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아예 음원자체가 왜곡되어있다. 전반적으로 초판CD음원이 템포가 늘어져 우울한 느낌이 강해지고, 재생시간이 길어졌으며 아예 몇몇 곡은 음원 자체가 차이가 난다. 이는 의도적인 왜곡이 아닌, CD라는 저장수단이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CD에 이식하면서 잘못 이식되었다는 의견도 있으나 초판엔 LP와 같은 버전이 수록되었고 1994년에 순서를 바로 잡은 재판에서 바뀐 것이다. 애초에 음원 왜곡뿐만이 아니라 아래 기술된 페이드아웃 시점에서 보듯 음원 자체가 다르므로 (오히려 재판이 더 길다!) 실수든 의도적이든 LP 원본과는 다른 테이크의 음원을 사용한 것이다. CD초판과 재판의 음원이 다름은 케이스 후면에 기재된 재생시간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초판이 확연하게 짧으며 2001, 2014년 리마스터링판의 재생시간과도 일치한다.

우리들의 사랑 - 1988 CD초판은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왔다고~'까지, 1994 CD재판은 '오래전부터~'까지 부르고 페이드 아웃
지난 날 - 1988 CD초판 리마스터본은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까지, 1994 CD재판은 '그대와 나의 지난 날~'까지 부르고 페이드 아웃
텅 빈 오늘 밤 - 1994 CD초판쪽이 템포가 느림. 1988년 CD초판은 '나는 어이해~'까지, 1994 CD재판은 '그대 없는 텅빈 밤~'까지 부르고 페이드 아웃
우울한 편지 - 1988 CD초판은 두들기는 소리로 시작, 1994 CD재판은 바로 연주 시작.

대표적으로 Minuet을 1994 CD재판/2012년 리마스터링과 1988 CD초판/2001/2014년 리마스터링으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994 CD재판/2012년본이 템포가 느리고 음높이가 반음정도 올라가 있어 곡에 대한 인상 자체가 꽤 다르다.

LP와 같은 음원이 담긴 CD 초판의 경우 금방 절판 되었고, 1994년에 재판 된 CD가 많이 보급 된지라, 이 음원을 통해 유재하의 음악이 많이 알려졌기에, 2001년 리마스터링 발매시 음원을 왜곡했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2014년판 리마스터링이 나온 이후 2001년판이 오히려 원음에 더 가까운 것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하였다. 1994년 재판CD, 2012년 리마스터링본은 유재하 본인 사후에 왜곡된 것이므로 웬만하면 작자 본인 의사가 반영된 1988년 초판, 2001년판, 2014년판을 들으면 된다. 다만 요즘 인터넷 음원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일반CD포맷(flac 16bit)의 음원들은 음질이 좋은것처럼 들리게 만들기 위해 음원의 볼륨을 높여서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2014년판 리마스터링 음원도 마찬가지이다.[22] 무슨 지거리야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원본에 가장 가까운 음악은 2001년판 리마스터링 음원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 표지는 안개념 이 모든걸 수집하고자 하는 CD 컬렉터에게는 그저 지못미

2.2. 추모 앨범

1997년 김현철의 프로듀싱으로 추모 앨범인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23]가 발매되었다. 김현철이 전체 프로듀싱을 하고 그야말로 후덜덜한 라인업이 가창과 편곡으로 참여한 앨범. 김현철의 프로듀싱 치고는 과소평가받는 앨범이지만 추모 앨범에서 흔히 일어나기 마련인 '보컬/편곡 미스매칭' 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전체 프로듀싱을 한 명의 프로듀서가 담당함으로써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다. 다른 추모 앨범들이 편곡에 힘을 쏟지 않았거나 음악적 역량이 떨어지는 일부 아이돌 내지 댄스 가수를 섭외로 의한 OME 트랙을 꼭 포함했던 걸 보면...

같은 해 발매된 신중현 헌정 앨범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중음악 헌정앨범의 효시격인 앨범으로 꽤 괜찮은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트랙리스트
1.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24]
2. 지난 날 (유영석)
3. 그대 내 품에 (나원주)
4. 텅빈 오늘밤 (신해철)
5.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더 클래식)
6. 가리워진 길 (일기예보&여행스케치)
7. 우울한 편지 (고찬용)
8. 우리들의 사랑 (이적&정재형)
9. 비애 (권혁진&한동준)[25]
10. 그대와 영원히 (이소라)[26]
11. Minuet (인공위성)[27]
12. 사랑하기 때문에 (조규찬)
13. 재하를 그리워하며[28]

2.3.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유재하음악장학재단 홈페이지
사후 유족들은 1집인 "사랑하기 때문에" 의 수익금을 이용해 유재하 음악 장학회를 세우고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재정 문제로 중단되었으나 2006년에 싸이월드의 후원으로 재개되었다. 2013년 역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경연대회 개최가 힘들었으나, 100명에 가까운 이른바 '동문(역대 수상자들)'의 힘을 모아 겨우 개최가 가능하게 되었다. 근데 후원단체가 고정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힘들어질 상황.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그동안 수많은 음악인들을 배출해냈다. 단순히 음악인이 아니라 한국 음악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 그 라인업이 ㅎㄷㄷ한데 조규찬, 유희열, 고찬용 등이 대표적 인물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가 배출한 인물

  • 유재하의 모교인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개최된다.
  • 참가 자격
    • 대학 및 전문대학, 대학원 재학생
    • 본인 또는 해당 팀이 작사, 작곡, 편곡, 연주한 미발표 창작곡으로만 참가 가능

  • 과거에는 수상자에게 앨범 발매를 해주었다. 대표적으로 조규찬과 유희열도 이 기회를 통해 데뷔하였다.

2.3.1.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자 중 대표적인 뮤지션

(2회부터 금상 위에 대상이 추가되었다.)
회차연도수상명곡명수상자
1회1989년금상무지개조규찬
은상나의 하늘정혜선[29]
2회1990년대상거리풍경고찬용[30]
3회1991년은상작은 꿈강현민(러브홀릭)
4회1992년대상달빛의 노래유희열[31]
은상키 작은 나무심현보
5회1993년은상그루터기정수월(말로(재즈 뮤지션))[32]
동상당신의 눈빛의 의미이규호
동상겨울이 오면(연주곡)이한철(불독맨션)[33]
동상거울의 노래조윤석(루시드폴)
6회1994년동상연가방시혁(작곡가)
동상가을에는오소영
7회1995년대상나의 고백나원주[34]
금상다가오는 이별김학철(김연우)
8회1996년대상네가 날 볼수 있게정지찬[35]
10회1998년은상텅 빈 냉장고와 구멍난 양말류휘만(CROOVE)
11회1999년금상TELL ME MAMA전지한(피터팬 컴플렉스)
13회2001년금상I wait for you곽유니(키스피아노)
동상이를테면황경석(더필름)[36]
장려상내 마음 속 풍경장세용
14회2002년은상가려진 마음임주연[37]
동상rainy morning박경환(주소년)
15회2003년대상사랑은 했는지허민
금상나 네게로 간다곽은기(은횰)
동상너의 기억임헌일(메이트)
16회2004년대상sweet sorrow스윗 소로우[38]
금상세월은 걸음보다 빠르다파란난장(빌리 어코스티[39])
은상내게정준일
17회2006년은상뒤돌아보다리플라이
동상Love Song오지은
18회2007년대상그대가 불러준 노래울음 큰 새
금상왜일까정동현
19회2008년대상Like A Wonder아르페지오(박원)
장려상가누나박세진(옥상달빛)
20회2009년대상空(공)둘이서 만드는 노래
21회2010년대상하늘하늘
22회2011년대상독백김거지[40]
23회2012년대상얼룩조강지처
24회2013년대상서울여자강민주
25회2014년대상그 때 그 마음으로이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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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풍산 류씨, 그러니까 원래는 류재하가 맞는 이름이지만 당시에 두음법칙에 의한 이름인 유재하로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부친도 언론에 소개될 때는 류씨라고 표기했었다. 만약 요절하지 않고 유재하가 생존했다면 류씨로 표기 해달라고 요청할것 같다.항렬로는 류시원의 조카뻘이다.
  • [2] 정재형, 김형석도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다.
  • [3]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작곡한 곡을 보고 교수가 아무리 급해도 모짜르트를 베껴 오면 어떻게 하냐고 혼을 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음악이 모짜르트만큼 훌륭한 나머지 교수가 착각했다는 뜻이다. 그의 데뷔 앨범에 들어간 경음악인 미누에트를 들어봐도 웬만한 클래식 음악 수준이다.
  • [4] 유재하가 1집을 녹음하기 직전 지인들이 유재하에게 작곡한 음악을 들려달라고 부탁하여 유재하의 음악을 들을때면 항상 유재하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있는 사람들에게 "알아요 형편없죠..." 하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 [5] 명작스캔들 참조.
  • [6] 한영애는 유재하 자신에 앨범에 싣지 않은 2곡을 받은 뮤지션 중 하나, 나머지 한 곡은 이문세가 받았다.
  • [7] 2001년 리마스터판은 기존 표지를 사용하지 않았고, 소리도 원곡의 분위기를 훼손했다는 말이 많았다.
  • [8] 김현식은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슬픔에 빠져 술을 가까이 하다가 간암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9] 이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이유도 있다. 유재하 노래 <지난 날>에서 이문세가 바로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고, 유재하는 죽기 전에 이문세에게 노래를 한 곡 써주었다. 는 아직 모르잖아요가 실린 이문세 3집에 대와 영원히가 그 노래이다.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던 작곡가에게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이문세가 곡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능력을 대변해준다 3집 녹음당시 이문세는 당대 최고가수가 아니라 1,2집의 실패로 인한 아쉬운 가수였다. 이문세의 히트가 3집 이후이니 이문세의 황금앨범(3,4,5집)대열에 그대와 영원히라는 뛰어난 곡으로 서막을 여는데 참여했다고 보는게 맞다.
  • [10] 이문세 4집의 편곡자는 김명곤이다. 김명곤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의 수많은 명반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 [11] 그러나 유재하의 보컬 능력도 매우 좋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른다고 다 좋은 노래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유재하처럼 노래 부르는 가수는 지금까지도 얼마 없다.
  • [12] 1988년 초판 CD 하고 표지를 비교하면 다른점이 있는데 , 그림은 초판 CD와 같은 그림이지만 , 유재하 라는 글씨가 1988년에는 세로로 써져 있는데 , 1994년과 2012년에 재발매한 CD 표지는 유재하 라는 글씨가 가로로 써저있고 글씨체도 다르다. 그리고 트랙리스트도 1988년에 발매한 초판 CD는 지금까지 발매한 모든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중 트랙리스트가 유일하게 다르다. 트랙리스트는 아래 항목을 참조.
  • [13] 1988년 초판CD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은 이 트랙리스트와 동일하다. 단 CD의 경우는 A면, B면 구분이 없기에 트랙 순서를 그냥 이으면 된다.
  • [14] 1987년에 발매한 초판/재판 LP에 들어있는데 , 1988년이후 건전가요의무가 폐지되면서 다행히도 초판CD 부터 더이상 수록되지 않았다
  • [15] 들어보면 알지만 정화의 노래는 진짜 "사랑하기 떄문에" 앨범과 완전히 따로 논다. 답이 없다....
  • [16] 2014년 복각판 LP 한정 보너스 트랙 , 그루버스에서 판매하는 2014년 디지털 리마스터링 SD앨범 한정 보너스 트랙
  • [17] 1988년에 발매한 초판CD만 이 트랙리스트다.
  • [18] 사망 후 출시.
  • [19] 구 서울음반
  • [20] 192Khz/24bit 와 DSD128을 구매할려면 그루버스에서 구입을 해야한다.
  • [21] 본래 1000장 한정이었으나 반응이 좋아 500장을 추가 생산했다.
  • [22] 2014년 LP의 경우는 소장하신분이 추가바람
  • [23] 음악 포털 등지에서 1997, 1987을 혼용하고 있는데 이는 1987의 8을 9와 8을 동시에 표현하는 문자로 디자인해 1997년에 1987년의 유재하를 추모한다는 의미의 앨범 타이틀이였다. '~그대를 위해' 등으로 기재된 곳도 있으나 이는 맞춤법에는 맞으나 원 앨범 제목과는 거리가 있다.
  • [24] 배훈이 작사작곡한 오리지널곡. 여러 뮤지션들이 소절을 나누어 부른다. 출연순으로 김현철, 나원주, 유영석, 한동준, 신해철, 일기예보, 김동률, 정재형, 김광진(더 클래식), 이적, 여행스케치, 이소라, 고찬용, 조규찬. 맨 마지막은 역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들의 합창으로 이루어졌다.
  • [25] 한영애 2집 '바라본다(1988)' 에 실린 유재하의 곡.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 와 더불어 유재하가 쓰고 1집에 실리지 않은 두 곡 중 하나다.
  • [26] 이문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 에 실린 유재하의 곡. 한영애의 '비애' 와 더불어 유재하가 쓰고 1집에 실리지 않은 두 곡 중 하나다.
  • [27] 연주곡이였던 'Minuet' 을 인공위성의 아카펠라로 연주.
  • [28] 색소폰으로 연주된 '사랑하기 때문에' 가 배경으로 흐르는 가운데 조용필, 봄여름가을겨울, 이문세 등 여러 뮤지션들이 유재하를 그리워하며 한 마디씩 녹음했다.
  • [29] 장윤정의 '어머나', 슈퍼쥬니어 트로트의 '로꾸거' 등을 작곡한 윤명선씨의 부인이다.
  • [30] 한때 이소라가 몸담았었던 보컬그룹 '낯선 사람들'의 리더.
  • [31] 후에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심사위원이 된다.
  • [32] 현재는 말로라는 이름으로 활동중.
  • [33] 그룹 '불독맨션''지퍼' 를 거쳐 현재는 솔로로 활동. 대표곡으로 슈퍼스타, 바티스투타 등.
  • [34] 정지찬과 함께 자화상이란 그룹으로 활동했었다. 그의 음악은 저평가 되었으나 작곡가, 편곡가로서는 알아준다. 이소라, 박정현, 성시경, 존박, 장나라 등의 노래의 작곡, 편곡에 참여하고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를 편곡했다.
  • [35] 작곡가 겸 가수. 현재 박원(2008년도 유재하 음악제 대상 수상)과 함께 원모어 찬스로 활동 중.
  • [36] '괜찮아'라는 노래로 많이 알려진 가수.
  • [37] '하찌와 TJ' '우쿨렐레 피크닉' 등의 활동으로 알려진 조태준의 부인.
  • [38] 당시 심사위원인 유희열은 "'이렇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룹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탄생하는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결국 나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대상의 영광을 안았던 팀" 이라고 스케치북에 스윗소로우가 출연했을 때 얘기했다.
  • [39] 본명 홍준섭, '파란난장'이란 밴드로 수상하였으나 현재 싱어송라이터로 솔로 활동중.
  • [40] 본명 김정균, 2014년부터 본명 김정균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했다. 김정균a.k.a 김거지 로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