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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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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신의 빠른 발을 알수있는 705 대첩 당시 운명의 홈스틸 성공 후

넥센 히어로즈 No.33
유재신(柳在信)
생년월일 1987년 11월 21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출신학교 사직초-사직중-천안북일고
포지션 대주자, 내야수, 외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 2차 7라운드 56번
(현대 유니콘스)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2006~2007)
넥센 히어로즈(2008~)
응원가 조용필 - 나는 너 좋아[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8번(2008~2009)
팀 창단 유재신(2008~2009) 안규성(2010~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0번(2012~2013)
김성현(2011) 유재신(2012~2013) 김하성(201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3번(2014~)
조용훈(2013) 유재신(2014~) 현역

Contents

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3.1. 2012 시즌
3.2. 2013 시즌
3.3. 2014 시즌
3.4. 2015 시즌
4. 기타

1. 소개

한국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소속 전문 대주자 요원. 그리고 염경엽의 양아들 염재신

아버지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7차전 역전 3점 홈런을 치며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유두열이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아버지가 롯데 자이언츠코치로 있다가 한화 이글스 코치로 옮기게 된 탓인지, 사직중에서 야구 선수를 했는데, 정작 고등학교는 천안북일고로 진학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어쨌든 북일고에서 제법 괜찮은 활약을 선보이며, 2006년 현대 유니콘스가 2차지명 7라운드 전체 순위 56번으로 지명해서 그를 입단시켰다.

처음 2년은 2군에서 지내다가 2008년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무주공산이던 2루수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54경기 93타수 2할5푼8리의 성적으로 주전을 차지하는데는 실패했다. 2009시즌에도 2루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단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2009 시즌 직후 경찰청 야구단에 입단해서 2년간 복무했다. 2011년 퓨처스리그에서 0.264의 기록을 냈다. 빼어난 성적까지는 아니지만, 팀에 복귀해서 한 번 경쟁에 도전할 수는 있을 듯 하다.

3.1. 2012 시즌

4월 중순부터 1군 엔트리에 들었다. 빠른 발로 인해 승부처에서 대주자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원래 3루수를 보고 있던 김민우와 내야백업 지석훈의 부진으로 6월 7일부터 선발 3루수에 투입되었는데, 안정적인 수비 솜씨를 보여주며 구멍 난 3루수 자리를 훌륭히 메꿔주었다. 그러나 6월 15일 롯데전 초반에 어이없는 송구 에러를 연이어 저지르면서 교체당했고, 다음날 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경쟁자인 김민우, 지석훈 또한 그닥 나은 상황이 아닌지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고, 6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는 선발 출장하였다. 김현수의 파울 타구를 악착같이 쫓아가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김병현의 환호까지 이끌어 냈다. 김현수가 좌타자인 데다가 김병현에게 1회 투런 홈런을 쳤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김병현 입장에서는 유재신이 정말 고마운 상황.

그러나 강정호가 6월 말에 봉와직염 부상에서 돌아오고 7월 중순이 되어 다시 유격수 수비를 맡게되자, 강정호의 부상으로 땜빵을 메우던 김민성이 3루수 선발 출전이 시작되고 있어 주전 자리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7월 들어서 김민성이 거의 주전급 스탯을 찍고 있어서...

2012시즌 성적은 85경기 타율 0.235 7타점. 어쨌든 1군 밥은 꾸역꾸역 먹으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대주자 및 내야백업으로도 경기를 꾸준히 출전했다. 정우람 상대로 10구 커트 후 안타라든가, 7월 당시 4할(!)그리고 김시진이 경기 안 내보내서 좋았던 타격감 다 망쳤지만을 기록한 것을 보면 재능은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발이 빨라서 대주자로 나갈시 홈으로 귀환하는 확률이 대단히 높다. 넥센의 영건 중 하나.

3.2. 2013 시즌

2013시즌 준비과정에서 신임 염경엽 감독의 인터뷰와 '강명구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유재신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대주자, 대수비 역할로 2013년에도 꾸준히 1군 엔트리에 들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현재 외야수 수비도 연습하고 있다고한다. 오키나와 캠프 연습경기에서 대수비로 외야수로 들어갔다. 경찰청 복무시절에도 잠시 외야수로 뛴 경력이 있다. 그 외에 1루수 수비도 연습중.

주로 대주자대수비를 맡고있다. 하지만 팬들은 '발만 빠르다'고 하는데...5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서서 팬들을 경악케했다. 하지만 몸에 맞는 볼로 출루. 그리고...박동원의 병살타성 땅볼에도 2루에서 세잎되면서 동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발이 살려낸 경기.

거기다가 5월 2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9회 말 3:3 동점 상황에서 2루 대주자로 나섰다. 서동욱이 볼 넷으로 1루로 걸어나간 다음 김민성이 타석에 들어왔다. 염경엽 감독은 런 앤 히트를 지시했고, 그것이 성공해서 결승점을 올렸다. 얼마나 발이 빨랐는지 김민성의 안타가 3루를 지나갈 때 이미 3루를 지나고 있었다.

7월 5일 경기에서는 8회말 동점이 된 상황에서 이택근이 안타를 친 뒤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장하였다. 뒤이어 강정호도 안타를 치자 3루로 진루하였다. 이후 LG의 배터리가 김민성을 고의4구로 보낸 뒤 서동욱이 플라이로 아웃된 상황으로 2사 만루 상황에 직면한 상황. 이 때 강정호의 리드폭이 긴 상황에서 봉중근이 2루로 견제구를 던지자 강정호가 시간을 끄는 사이에 홈으로 돌진하여 역대 다섯 번째 삼중도루를 성공시켰다.

후반기 들어서도 대주자의 임무를 수행했으나, 도루실패나 견제사가 몇 번 나와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 4차전에 대주자로 출장하여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3.3. 2014 시즌

1월초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외야수로 발표되었다. 완전히 전업할 모양인듯. 그리고 외야수로 새출발하는 김에, 역시나 외야수였던 아버지 유두열이 선수시절 달던 등번호를 따라서 33번으로 바꿔 달았다. [3]

2월 23일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이태양 투수에게 쓰리런 홈런을 쳤다. 당연히 반응은...#

4월 15일, LG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슬라이딩을 하다 무릎 내측 인대 부상을 당하여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상태다.

이후 7월 11일에 일정상 내려간 하영민을 대신해 오랜만에 등록되었다.

8월 1일 엘지전에서 이택근의 대주자로 나갔으나 2루 도루에 실패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지 않았고 합의판정을 요청했으나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염경엽 감독에게 디스를 받고 2군으로 내려갔다. 염경엽 감독 본인이 직접 언급한 대로, 별 볼일 없었던 자신의 현역시절을 다시 보는것 같아서 더욱 강하게 키우기 위해 문책극딜했다고.

넥센이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면서, 염갈량 작전 야구의 심장으로서엔트리에 합류 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선 대주자로 출장하여, 4차전 7회초에 주장 이택근과 함께 더블스틸을 성공,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쐐기를 박았다.

201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합류했고, 이로써 첫 부자(父子) KS출전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출전한 3차전에 대주자로 나와서 도루실패를 기록하였다. 덕분에 넥센 팬들에게 시즌때의 삽질과 합쳐져 신나게 까였고, 대주자는 해로운 대주자 엔트리 낭비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넥센의 준우승 직후의 기사에서, 2014시즌 중반부터 부친의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면서 마음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이 기사 이후 부친이 위중하다는데 정상적인 멘탈로 야구를 할 수 있을리가 없을 것이라는 옹호 의견도 생겼다. 원래 못했는데요.
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연봉은 2014년 4200만원에서 200만원이 떨어진 2015년 4000만원에 재계약했다.

3.4. 2015 시즌

3월 28일 개막전에서 연장 12회말 대타로 출전했으나, 스크라이크존 한가운데에 오는 공인데도 몸을 비틀어 피하다 삼진을 당하는 몸개그(...)를 보여주어 모두를 아연하게 했다. 바로 다음 타순인 서건창이 끝내기 홈런을 날려 다행히 묻혔다.

4. 기타

  • 별명으로는 유채꽃. 이범호와는 다르다 이범호와는 2008년 군입대 전까지만해도 상당히 훈남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 후에는… 그 때문에 유재신이 3루수로 들어가면 3루에 꽃이 피었다는 드립이 나왔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남창희가 있다.

  • 발은 빠르지만 2013년 7도루 8도실, 2014년 2도루 2도실을 기록할 정도로 주루센스가 좋은 편은 아니다.[4] 여기에 주루사, 견제사도 상당히 많아서 굳이 지명대주자로 1군에 둬야 하는지 넥센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내외야 전포지션을 소화한다지만, 사실 수비포지션이 없다고 할 정도로 수비능력이 떨어지며[5], 그렇다고 타격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1군 철밥통이라서 염재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와 관련해서 유재신이 염경엽 감독토템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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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포지션은 2루수, 3루수고, 2014년부터는 외야수로 전향했다. 다만 대주자 전향 후로는 수비로 들어갈 일이 별로 없는 상황.
  • [2] 넥센의 유재신 안타, 워어어어어어워~x2. 원곡의 '하지만 나는 너 좋아, 사랑할 지도 몰라' 부분에 맞춰 부르면 된다. 문제는 유재신은 전문 대주자이기 때문에 이 응원가는 1년에 2~3번 듣기도 힘든 희귀한(...) 응원가다.
  • [3] 이와 관련하여 이장석 대표는 '33번은 전형적인 거포 타자들의 번호이지 않나. 유재신 선수는 0번이나 99번 같은 번호가 어울리는데..'라고 코멘트박용택은
  • [4] 참고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대주자강명구는 통산 도루111, 도실23 도루성공률 82%를 기록중이다.
  • [5] 내야수 경쟁에서 밀려난 가장 큰 이유가 불안한 수비, 특히 형편없는 송구능력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