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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last modified: 2017-11-14 20:22:5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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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교리
2.1. 경전
2.2. 야훼
2.3. 메시아 사상
2.4. 선민사상
2.5. 율법과 금기
2.6. 근본주의 유대교
3. 역사
3.1. 이집트의 아톤 신앙 기원설(?)
3.2. 고대 유대교
3.3. 바빌론 유수와 이후
3.4. 성전 유대교
3.5. 랍비 유대교
4. 다른 종교와의 관계
4.1. 기독교
4.1.1. 정치/역사적 관계
4.2. 이슬람교
4.3. 기독교, 이슬람교와의 교리적 관계
5. 세계의 유대교
5.1. 카발라

1. 개요


유대교 신앙을 상징하는 메노라와 다윗의 별.

유대인의 민족종교. 현재 약 1400만여명의 신자가 있고 3500여년 전부터 존재하던 신앙이며, 현존하는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됐다.[1]

기본으로는 셈족 종교, 즉 족에서 갈라져 나온 종족들이 만든 종교 중의 하나. 유대교기독교(= 크리스트교) → 이슬람교순으로 만들어졌고 교리와 세계관도 이에 영향받았다. 일례로 이슬람교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도를 '성서의 백성'이라고 부르면서 인정하고 성모의 처녀 수태와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의 예언자로 다룬다. 꾸란과 성경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오는 것도 그 예시라서 유대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근본이다. 기독교 성경의 일부인 구약은 원래 유대교 경전에서 가져 온 것이고 꾸란도 구약을 차용한다.

그 외에도 에티오피아 등지에는 유대교다운 관습이 민족상·종교상 전통에 많이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는 문화상으로도 유대교와 적지 않게 관계했다고 주장하는 지역이기 때문. 유대인 항목을 참조.

2. 교리

2.1. 경전

유대교의 경전은 보통 십계명(데칼로그라 부른다)과 구약성경으로 알려진 '타나크'가 있다. 때문에 서양권에서는 구약성경을 '히브리 성경'이라는 말로도 많이 부른다. 구약성경에서도 처음의 모세오경[2]인 율법서 토라를 대단히 권위있게 여긴다. 또 유대교 전승에는 토라를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토라는 유대인들이 가장 극진히 아끼는 종교 서적이기도 하다. 토라 항목 참조.

또 신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는 대신 서기 2세기부터 집필된, 구약 율법 규정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이자 구전 율법[3]의 집합인 탈무드를 토라에 준하는 종교 경전으로 삼고 있다. 탈무드가 중요한 이유는 토라 율법에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유대교 전통에 대한 이전 세대 최고 지식인 랍비들의 분석과 함께 무수히 많은 일화들과 신앙을 고취시키는 다양한 이야기들, 의견들을 기록하고 유대인들의 실생활에 율법을 체계적이고 유화적으로 적응시키는 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2.2. 야훼

주신은 야훼라고 부르지만, 어디까지나 이렇게 부르는 방식은 일단은 추정일 뿐이다. 신의 명칭을 인간이 함부로 불러서는 안되었던 데다가 고대 히브리 문자에는 모음이 없어서 자음4개로 표기(보통 YHWH로 표기한다)하며 영문으로도 YHWH이며 라고 쓴다. 과거에는 주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i)와 뭔가 연관이 있을거라 생각하여 여기의 모음을 따서 여호와라고 불렀지만, 학자들이 연구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일단 야훼로 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야후가 맞는 발음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 4개의 글자를 가리켜 테트라 그라마톤Tetra grammaton(네 글자)이라 칭한다. 이윤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 번역의 각주에서 '테트라 그라마톤'을 '사자성명(四字聖名 네 글자의 신성한 이름)'이라 시역(試譯, 시험삼아 번역함)하였는데, 이 시역은 시역으로 그쳤고 그 후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꽤 그럴 듯하긴 한데

주변 민족이 믿었던 신들을 모두 악마라 칭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초기에는 "유대인은(다른신이 가짜인 것은 아니지만) 야훼만 믿어라. 다른 민족 신이 너희를 챙겨줄 것 같냐"(일신 숭배) 였던 것이 변질되어 "야훼 이외의 신은 다 악마이거나 우상"(일신론) 인 신학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2.3. 메시아 사상

유대교는 메시아라고 하는 구세주 사상을 가지고 있다. 메시아는 기름을 군주의 머리 위에 붓는 유대 전통에서 비롯된 '기름부음 받은 자'(Anointed one) 이라는 뜻이며, 원래는 기름부음 받은 모든 유대인 군주[4]를 말했지만 바빌론 유수 이후로는 미래에 나타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적으로부터 구원하며 황금시대(메시아 시대)를 열 특별한 통치자를 의미하게 된다. 메시아가 다스리는 유대 민족의 세상은 지상에 인류애와 영광이 가득하며 전쟁이 사라지고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유대교는 아직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예수 시대에 유대교의 높으신 분들은 예수가 신의 아들을 사칭한 거짓예언자로 보았고 이 때문에 예수가 로마군에 의해 공개처형 당하는데 열광적으로 찬성하였다. 그러나 진짜 저런 이유로 예수와 유대교가 사이가 나빴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예수의 제자들과 초기 추종자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유대인이었던 것 등 기독교는 원래 유대교의 한 교파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는(로마 제국 지배하의 팔레스타인)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넘치도록 많았다. 복음서에도 예수를 죽이라고 외치는 군중들은 사실 제사장들이 돈을 주고 데려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예수가 거짓 예언자라는 주장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분열되면서 사이가 벌어지면서 나온 이야기로 추정되며, 이 주장 때문에 유대인들은 중세 시대 내내 크리스트교 사회에서 박해당했다. 참고로 극단적인 유대교인들은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았는데 이스라엘 국가가 다시 재건됨은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현대의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

2.4. 선민사상

유대교는 대표적인 선민사상을 가진 종교이기도 하다. 이점이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이면서도 민족을 초월한 세계종교가 된 기독교, 이슬람교, 바하이교와 비교되는 부분. 야훼는 모든 민족을 지배하지만 그중에서 특히 유대인들을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 그리고 토라를 통해 선택된 선민으로 뽑았으며, 타민족들은 유대인들이 타락할 경우 그들의 징벌을 위해서 사용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메시아도 오직 유대인들을 위해서만 오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선민사상 자체는 수많은 민족들에게 존재하는 것이라 크게 특별한 점이 없으나, 현대에 와서도 시오니스트 및 극우 유대교 정통파에게 이용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2.5. 율법과 금기

율법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금기나 규정이 빡빡한 편이다.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은 무려 613개나 되며(...) 하레디같은 극정통파 유대인들은 최대한 많이 지키려고 한다. 안식일 같은 유명한 율법 외에도 옷에 술을 달아야 한다는 규정이나 혼방 섬유를 입으면 안된다는 규정부터, 부부간 성관계나 생리 후에는 부정하므로 씻고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식의 세세한 규정들이 매우 많다.

당장 이들이 성경을 필사하는 규정만 봐도 이 율법이 얼마나 빡쎈지 잘 알 수 있다(...)

  • 양피지를 만들기 위해 양이나 소를 잡는다. 단 이때 1년 미만의 동물을 잡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몸에 흠이 있는 동물의 가죽 또한 양피지로 쓸 수 없다. 1년 이상이되 몸에 흠이 없는 동물의 가죽으로 양피지를 만들고 이것을 이어서 두루마리를 만든다.
  • 성경을 필사할때는 항상 필사자 옆에 사람 두명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필사자가 구절을 쓸때마다 이를 읽어주고, 잘못 썼을 경우 바로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 아도나이(주님)가 들어가는 글씨를 쓸 때는 반드시 기존에 쓰던 펜을 버리고 새로운 펜으로 바꿔서 써야한다.
  • 만약에 글씨를 잘못 썼을 경우에는 칼로 긁어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써도 상관없지만, 아도나이를 잘못 썼을때는 해당 두루마리를 전부 버리고(!) 새로 필사해야한다.
  • 이렇게 '깨끗한' 성경으로 인정받은 두루마리는 절대로 손으로 직접 만져서는 안되고 은으로 만든 손모양의 포인터를 짚어가면서 읽어야 한다.
  • 성경을 보관할 때에는 두루마리를 끈으로 묶고, 그 위에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씌우고, 나무함에 담은 다음에 성궤를 상징하는 전용 보관함 안에 두어야 한다.

워낙 먹는것도 제약이 심하다. 카슈룻(Kashrut)이라고 불리는, 이슬람권의 할랄 푸드와 비슷한 코셔 푸드가 있는데 할랄 푸드보다 더 제약이 심하다.[5] 김종철이 지은 <이스라엘에는 예수가 없다>라는 책을 봐도 지은이 자신이 직접 만난 유대교도들의 까다로운 음식 제약을 쓴 바 있다. 한국에 온 유태교인들이 한국에서 절대로 다른 거 먹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싸온 코셔 푸드만 죽어라 먹고 간다고 한다. 그 중에는 한국 대기업에 사업 관련으로 와서 한국 기업인들이 마련한 한식이니 중식,일식,양식 죄다 거부하고 끝내 코셔 푸드만 고집하던 이도 있다고.

그러나 미국이나 서구의 경우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갖 나라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살고있고, 그 상당수는 정통적인 코셔 룰을 지키지 않고 있다. 대체로 돼지고기만 피한다거나, 유제품과 고기를 함께 먹지 않는다거나 하는 기본적인 룰만 지키고, 또는 코셔 룰을 알고는 있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고 그냥 다 먹는 유대인도 많다. 심지어 잘 먹는다.(...)

유대교의 음식 규정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코셔 푸드 참조.

그 외에 유대교의 주요 명절로는,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기독교부활절 기간과 겹친다.), 40년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초막절[6], 하만에 맞써 모르도카이와 에스더가 유대인의 절멸을 막은것을 기념하는 부림절[7], 유다 마카베오가 그리스인들에게서 독립을 쟁취한 마카비 전쟁을 기리는 하누카(특이하게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기간이다.) 등이 있다.

유대교의 종교적 선생 개념인 랍비는 오래전부터 율법에 따라 남자만이 될 수 있었다.[8] 하지만 근현대에 오면서 진보파 유대교를 중심으로 여자도 랍비로 임명하거나 여자 아이에게도 전통적 성인식(바트 미츠바)을 해주는 등 혁신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하레디를 비롯한 많은 극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여전히 변화에 크게 배타적이다.

2.6. 근본주의 유대교

하레디 유대인들이 대표적. 그야말로 이슬람 극단주의랑 판박이다. 사회적으로 짐만 되는 세력들이 계속 인구수를 불리고, 여성 장교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세속 사회를 경멸하고 파괴하려 들거나 유대교 율법만을 극단적으로 지키는 걸 진정한 유대교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초강경 극우 유대교를 이스라엘의 국가정책으로 쓰자고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나선다.

자세한 것은 하레디 항목 참조.

3. 역사

3.1. 이집트의 아톤 신앙 기원설(?)

흔히 최초의 유일신 종교가 유대교라고 생각하는데, 그 전에도 있었다. 기원전 1350년대의 이집트파라오였던 아케나톤(개명하기 전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이 다신교인 종래의 이집트의 종교를 금지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삼아 숭배하는 태양=아톤의 교의체계를 만들었다. 이걸 세계 최초의 유일신 종교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게다가 세계 최초의 종교개혁인 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유대교를 확립한 모세가 사실은 아케나톤 때의 태양신 아톤의 사제거나 그 추종자로서 유대인들의 조상인 히브리인들에게 그런 유일신 사상을 변형하여 전파한 게 유대교가 된 거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여럿 된다. 대표적인 학설로 프로이드의 저작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가 있다.

다만 유대교가 태양신 아톤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을 그대로 믿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유대인들의 선조가 과연 집단으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는지 자체가 불확실하거니와, 노예 생활을 실제로 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이집트에서 유대인들의 선조가 나왔는지 말이 다르다. 중동에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리 대단한 민족이 아니었기에, 구약성경 외에는 자료가 별로 없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나마도 구약성경은 한참 후대의 것이라 그냥 대입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몇몇 일화에 대해서는 심지어 출애굽기를 쓴 사람마저도 전승은 전해지되 무슨 의미인지 몰라 견강부회하여 해석한 것이 있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아케나톤의 사제, 혹은 추종자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은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 즉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는지, 했다면 어떻게 이집트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무의미한 가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크나톤의 아톤신앙은 유일신앙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단일신앙인데 이것은 복합적 단일신앙 안에서 오로지 한명을 주신으로 삼아 섬기는 신앙으로 원래 이집트는 상-하이집트및 군소 노모스(원시국가)가 각기 다른 신을 섬기는 가운데 아몬-라=태양을 주신으로 삼는 다신교계였지만 아케나톤은 이 아몬=라를 거부하고 오로지 아톤-라의 단일계로서 사상적 통일을 시도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에서 올림푸스 12신앙이 제우스신앙으로 간추려진 거의 선구적 모습이다.
그러므로 다신교체계가 단일신교체제로 바귀엇다고 해서 다신교가 없어진것은 아니다. 실제로 아케나톤의 수수께끼 같은 실각과 죽음으로 그 아들 투탕카멘(이집트식으로 표기하면 투트-앙크-아몬)의 대에 이르러 재빨리 아몬-라 신앙으로 회귀하고 만다.

3.2. 고대 유대교

모세의 유명한 이집트 탈출을 기원으로 고대 유대교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광야 중심, 성막[9]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으며 가나안에 정복전쟁을 통해 정착하고 왕정 시대가 개막된 후에는 세워진 성전과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의 상징인 언약궤, 토라를 중심으로 유대교 율법에 따른 신정 정치를 시행했다.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각각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3.3. 바빌론 유수와 이후

일반적으로 바빌론 유수는 유대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바빌론 유수 참조.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오고, 무너졌던 첫번째 성전을 다시 세운 뒤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외세 침략은 계속되었고, 그리스계 셀레우코스 왕조에 맞선 종교적 투쟁인 마카비 전쟁, 로마 제국의 침략 속에서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3.4. 성전 유대교


고대 성전 유대교 시절의 사제 복장. 왼쪽은 제사장, 오른쪽은 대제사장의 복장이다. 대제사장은 '야훼의 성결'이라고 히브리어로 쓴 금띠를 두른 흰색 모자를 쓰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을 단 판결패를 가슴에 차고 어깨받이를 한 채로 세마포 속옷과 금색,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배실로 짠 조끼와 허리띠를 착용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러 갈때 금방울을 겉옷에 달아 제사장임을 알게 했다.

서기 70년 이전까지의 고대 유대교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들이 치르는 제사 중심의 종교였다. 제사장들은 야훼를 섬기는 복잡하고 독자적인 종교의식(동물을 희생하는 번제와 소제, 속죄 제사, 화목제사 등)을 주관하고 매일 거행했으며, 유대 민족에 대한 재판권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유월절 등의 명절이 되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물을 바치러 오곤 했다.

고대 유대교의 성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최초의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 왕이 세웠다고 알려진 제1성전이었다. 과거의 성막과 달리 건물이었기 때문에 규모도 훨씬 커져서, 제사장용 물두멍과 금촛대, 떡상이 열개로 늘어났으며, 야훼의 세우심과 능력을 상징하는 두개의 놋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를 설치했다. 그러다 586년 바빌론의 3차 침공 때 첫번째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그러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왕에 의해 바빌론 유수가 끝나고 두번째 성전이 지어지는데, 이 때 건축 지휘를 맡았던 즈룹바벨의 이름을 따서 즈룹바벨 성전이라고도 한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때라 물자도 풍부하지 못했고, 일꾼을 구하기 힘들 때 지어져 솔로몬 시대의 제1성전에 비하면 여러모로 스케일이 작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 두번째 성전은 기원전 167년에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에게 크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에돔 출신의 헤롯 왕이 이민족 출신 개종자인 자신을 싫어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기원전 20년경에 다시 한번 성전에 대한 대규모 개축을 시도하는데, 9년간의 건축으로 외관은 완성했지만 헤롯왕이 죽을 때까지 성전은 완공되지 못하였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까지도 성전 개축은 계속되었다고. 이를 '헤롯 성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전의 성전에 비해서 규모가 엄청났고 역대 성전 중 가장 웅장하게 만들어졌으나 후술할 로마와의 전쟁에서 서쪽 벽(현재의 그 유명한 통곡의 벽)만 남기고 다시 한번 파괴되고 만다.

바빌론 유수와 마카비 전쟁 이후 로마가 이스라엘 지방을 점령했고, 이 시기의 유대교 교파는 매우 엄격한 교조주의와 율법주의를 강조하고 상선벌악적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바리사이파[10], 사후세계의 관념을 부정하고 토라만을 신성하게 여겼던 사두가이파, 금욕주의적 종파인 에쎄네파 등으로 나뉘어졌다.

3.5. 랍비 유대교


랍비들의 모습.

유대교의 '랍비'는 선생이란 뜻이다. 예수도 복음서에서 존중받는 의미로 랍비라고 불렸고, 랍비란 유대교에 정통한 현명한 어르신이라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유대교는 자손을 남기는 것을 중시해 랍비는 결혼을 해야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11] 보통 랍비가 유대교의 성직자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원래 유대교엔 성직자가 있었지만 현재는 없다.

유대교의 모든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야 하는데, 서기 70년경에 로마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여기서 유명한 '마사다 요새의 항전'이 있었다.)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12]

결국 이 일로 기존의 성전 중심의 유대교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고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는데, 주목할 만한 변화는...

먼저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제사장들과 성직자단이 저절로 해체되었고, 자연스레 사두가이파와 로마에 대항한 젤로트당 등의 세력은 몰락했다. 바리사이파는 유대교의 명실상부한 주류가 되었고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태에서 토라[13] 공부가 제사를 대신한다고 명망 있는 랍비가 해설한 이래, 랍비와 토라 공부장소(예쉬바), 토라 낭독, 유대 회당(시나고그)[14]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수립되었고, 현대까지 발전해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랍비의 권위도 엄청나게 신장되었으며 이전의 성전 의식 중심의 고대 유대교와 구분하여 '랍비 유대교'라고 불리게 된다.[15][16]

토라 공부와 시나고그(회당) 중심의 랍비 유대교가 확립된 후에도 하시딤과 하레디 등의 극정통파, 개혁파, 진보파, 보수파, 신정통파, 카라이트(토라의 권위만을 인정하는 소수종파)[17] 등 여러 분파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다른 종교와의 관계

4.1. 기독교

4.1.1. 정치/역사적 관계

초기 기독교는 유대 반란으로 인해 유대교와 연계된 것으로 여겨져 로마 제국 정부에게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고, 동시에 유대교도들에게는 이단으로 여겨져 박해를 받았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분리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후 기독교 세력이 강해져 사실상 로마의 국교화 되자 반대로 기독교에 의한 유대교/유대인 박해가 시작 된다. 대부분의 중세 유럽에서는 예수에 죽인죄로 인하여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고리대금업등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직업 등을 차지하면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심지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유럽인 사이의 논쟁이 남아있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개종 아니면 죽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개종한 유대인조차도 종종 박해당했다.

유대인 박해가 격해진 시대는 흑사병 같은 사회불안기나 근세의 신, 구교 종교분쟁기로서 흑사병 시대는 흑사병의 원인으로 여겨져 처형되어서 교황이 그런짓 말라고 칙서를 내리기까지 할 정도였고, 종교분쟁기는... 더이상 설명을 생략한다.

이스라엘도 오히려 아랍 나라들 이상으로 기독교 악랄 탄압 국가로 악명이 자자하다. "1967년만 해도 요르단이 여길 지배했는데 차별이 있긴 해도, 그들은 공존을 허락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여길 차지하자, 극우 민병대가 기독교인은 유대인이라도 자주 폭행을 가했는데 경찰도 외면했다. 많은 기독교 유대인은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요르단이 지배하던 시절이 천국이라고까지 말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회복'을 만든 김종철이 예루살렘에서 몰래 만난 유대인 기독교인 노인이 울음을 터뜨리며 들려준 이야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더불어 이스라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대교 극우가 나날이 늘어나면서 이게 되려 이스라엘 미래에 어둠만 주고 있다.

4.2. 이슬람교

이슬람교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과거 무함마드가 정복전쟁 와중에 유대인들을 학살한 적도 있고, 중동 이슬람 지배 하에서 피지배층으로 제한 속에 사는건 기독교권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현대에 와서 이스라엘 문제로 피터지게 대립하는 이슬람권과는 그야말로 원쑤 그 자체가 된 상황. 이슬람권의 반유대주의도 기독교 문화권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며(이슬람 극단주의를 참고),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이스라엘을 여행하면 자국 입국이 안될 정도다.

4.3. 기독교, 이슬람교와의 교리적 관계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선민인 자신들로부터 성경을 훔쳐간 성경 도둑 취급한다. 당대 유대인들은 예수와 율법과 성경을 가지고 논쟁했다가 한명도 빠짐없이 싸그리 탈탈 털렸다.(...) 유대인들이 신약을 인정하지 않지만, 신약에 묘사된대로 탈탈 털린 기억은 남아있어서 어떻게든 기독교의 논리를 깨부수려고 한 결과 발견한게 공관복음 문제였고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아주 잘 써먹고있다. 하지만 예수에게 아가리 파이팅하다가 탈탈 털린 경력은 아무래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유대교의 경전이었던 성경이 예수로 인해 기독교의 경전이 되어버렸으므로 유대교는 기독교를 예수와 함께 성경 도둑 취급한다. 거기다 이슬람교 역시 유대교 입장에서는 알라가 자신들의 신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모세(무사) 같은 예언자들을 차용했다는 이유로 교리적으로 사이비 취급하며 싫어한다.

5. 세계의 유대교

복잡한 역사적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전통이고 생활이다. 실제 유대교 특유의 교리엔 유대인의 민족 전통에 따른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유대인의 민족 특성 때문에도 유대인 외에 신자는 거의 없어 세계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세계 4대 종교 중 2개가 이 종교에서 갈라져 나온 거라 민족종교 중에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 반대로 유대교만 믿으면 혈연이 없어도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기도 한다. 2천년 간을 나라없는 민족으로서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고 박해받으며 떠돌아다녔는데도, 유대인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이 유대교 덕택이다. 이 덕분에 결집력이 강한 편이고, 물론 유대인들이 현대 이스라엘을 세워 국가 기강을 확립해 나가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하도 흩어져 있었는데다 단절의 역사가 2천년이나 되므로, 이스라엘은 공용어를 정하거나 해서 사회적인 기틀을 다져나가는 과정이 식민지가 되어 멸망했다가 다시 부활한 나라들에 비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인도와 한국 등지에도 신자가 있다. 인도에서는 왕이 환영한다고 칙사까지 내렸기에 유대인들은 자기 종교 믿으면서 편하게 살수있었고 아직도 인도계 유대인들은 그 환영사가 담긴 동판을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등 사실 유대인들은 전 세계 각지로 퍼졌기 때문에 웬만한 곳에는 유대인이 다 있으며, 일본에까지 유대인이 흘러와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남아프리카의 어떤 소수민족 원주민이 알고 보니 유대인이었다든지 그런 일까지 있다. 중국에도 유대교도들이 있고 유대교 공동체도 존재한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카이펑의 유대교도 참조.

5.1. 카발라

유대교는 또 특이한 신비주의 교리인 카발라로도 꽤 유명하다. 13세기 말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는데, 선악의 원인과 구원에 이르는 길, 아담의 타락을 세피로트와 세비라, 내며의 성스러운 불꽃 등 신비주의적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세피로트의 나무도 참고. 카발라 유대교는 정통파 중의 하나인 하시딤 유대교의 토대를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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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최초에는 다신교로 시작했다. 엘로힘 항목 참조.
  • [2]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3] 유대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토라와 함께 추가적으로 받은 교리라고 한다.
  • [4]다윗이나 솔로몬 왕도 역사 속에서 메시아로 불렸다
  • [5] 단 유대교는 보수파 진보파 가리지 않고 은 자유롭게 허용하는 편이다
  • [6] 이 시기엔 사막의 초막 비슷한 허술한 초막을 지으며 광야의 고난을 기억한다
  • [7] 이때는 다들 정신없이 술먹고 춤추고 놀며 대규모 축제에 정신이 나간다고
  • [8] 재미있는 사실은, 유대교는 어머니가 유대교인이면 자식도 유대교인이 되는, 모계 종교라는 점이다
  • [9] 성막의 지성소 안에는 금촛대와 향단, 떡상과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었으며, 사제 계급만 몸을 씻는 물두멍에서 정결하게 한 후 출입 가능했다.
  • [10]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율법적 위선'의 대명사인 바리새인,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 [11] 예수가 혼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은 이를 주요 근거로 삼는다.
  • [12] 당연히 동물 희생제사 같은 제사 율법들도 드릴 수가 없게 되면서 자연스레 사문화되어 버렸다. 아직도 극소수인 사마리아인들은 드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 [13] '토라'라는 단어는 한국어 성경에서 율법이라 번역하는 단어다. 율법이란 의미도 있지만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등 의미가 좀 미묘하다. 그 미묘한 의미를 번역하기 쉽지 않다 하여 그냥 음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 [14] 물론 회당 자체는 성전이 멀쩡하던 바빌론 유수 이후 시기부터도 있었다. 성전에 가기 힘든, 먼 지방에 사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예배와 모임, 교육을 진행하는 장소로서 기능했다.
  • [15] 하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된 현대엔,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위치에 지어져 있는 이슬람 반석위의 돔(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하고 성전을 재건하여 다시 고대 유대교의 전통 성직자단을 복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시오니즘적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이러한 주장은 대단히 과격한데, 몇몇 유태인들은 실제로 폭탄을 몰래 설치하여 모스크를 부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시 성전이 복구되리라 믿고 아론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과거 유대교의 사제들이 행하던 종교의례를 복구하려고 하고 있다.
  • [16] 그러나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모스크는 칼리프 오마르가 지은 것으로,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신을 만나고 올 때 승천한 지점으로 믿어지고 있으며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다. 만약 정말로 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한다면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전세계의 이슬람교도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헬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진짜로 친미 나라라고 해도 전원 이슬람 통합군으로 세계 대전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모스크 파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 [17] AD 70년 이전 사두가이파와 달리 사후세계를 인정한다는 점과 다른 유대교파와 달리 육류와 유제품을 같이 먹어도 되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유대교 교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