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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last modified: 2015-04-03 11:24:08 Contributors

왼쪽 유채 초상화는 이른바 "챈도스 초상화"로, "제1 이절판(the First Folio)"[1]에 실린 오른쪽 초상화의 원형이라고 한다.

Contents

1. 개요
2. 설명
2.1. 시인으로서 셰익스피어
2.2. 극작가(Playwright)로서 셰익스피어
2.3. 언어창조자(?)로서 셰익스피어
2.4. 작가 전반
3. 비판
3.1.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4. 셰익스피어는 가상인물?
5. 기타
6. 작품 목록
6.1. 장시, 혹은 시집들
6.2. 4대 비극
6.3. 5대 희극
6.4. 역사극
6.5. 비극
6.6. 희극
7. 각종 매체의 셰익스피어
8. 관련 항목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e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
"여기 덮인 흙을 파헤치지 마시오 /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2]

1. 개요

William Shakespeare
창을 휘두르는 윌리엄[3]
(1564년 4월[4] ~ 1616년 4월 23일[5])

영국의 시인이며 극작가. 소설가는 아니다. 참고로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데, '셰익스피어'가 정확한 발음 표기이다.

표기에는 Shakespear, Shakespere의 바리에이션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서명이 3가지 서로 다른 철자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작 셰익스피어 본인은 서명할 때 'Shakespeare'(현재 가장 공식적인 철자)로 쓴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끝에 e를 뺀 Shakespear를 선호하여 쓴다. 이것은 그의 서명의 철자 중 하나이다.

2. 설명

영문학의 神. 미문학의 절대 고독자. 모든 영미권 고등학생들의 공적. 언어의 마술사란 별명도 셰익스피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금은 개나소나 붙이는 별명이지만 그리고 반 유대인 정서를 문학의 경지로까지 승화시켰다. 먹어랏! 샤일록!!
대한민국에서 알려진 서구권 문학가로서의 네임드는 당연 최강.

인도하고도 안 바꾼다고 한다. 이 말이 나온 토머스 칼라일의 '웅숭배론'을 보면 제국주의적, 인종폄하적 시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도 없이는 살 수 있으나 셰익스피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인도도 영국 없이 잘 살 수 있는데 그런데 정작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도 아니었고, 흔히 아는 '영토로서의 인도'와 '인도에 넘쳐나는 물질적 부'와는 좀 다른 개념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인도 제국 참조. 하지만 어쨌거나 수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인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이 나쁜 개드립임이 자명하다. 그럼 타고르하고 대영제국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면 영국인들의 기분은? 또한 셰익스피어 대신 찰스 디킨스를 가진 게 더 행운이라고 하는 영국인들도 있다 카더라.

1580년대에 극단에 들어가서 1594년 "시종장관 극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1599년에는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을 세워[6]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1585년부터 1592년 사이에는 여신에게 납치되어 소울스트림을 건너 에린을 탐험하느라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은 없다. 작품구상을 위한 이계여행?

2.1. 시인으로서 셰익스피어

당대에 언어로 구성되는 모든 것에 통달하여 시도 능했다. 오늘날 모든 서사가 따른 기본 기술을 정립시켰으며 4대 비극으로 유명하지만 희곡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를 섭렵한 천재. 제목만 남은 작품을 포함해 희곡 38편, 소네트 154편, 그리고 장시 2편 등이 전해진다. 영국의 르네상스 초기에 이탈리아의 시형식 칸초네가 토머스 와이엇(Thomas Wyatt)에 의해서 영국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14행시 5음보(Pentameter) 정형시인 소네트가 영국의 모든 작가들이 쓰기 시작했고(문학=소네트 수준), 시드니(P. Sidney), 스펜서(E. Spenser) 같은 위대한 작가를 낳는다. 이 때 들어온 소네트의 형식은 이탈리아의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정립한 것이어서 페트라르칸 소네트 (Petrarcan sonnet) 라고 부른다. 페트라르칸 소네트는 그 시작부터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찬미였기에, 100년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클리셰[7]가 난무하게 되었고, 1590년대 후반 인기가 식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이 진부해진 소네트 형식으로 참신한 내용을 담아내면서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그 명성을 전한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종전의 소네트와는 다른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소네트 형식을 만들어낸다. 페트라르카 소네트는 1개의 옥텟(octet, 8행의 묶음)과 1개의 섹스텟(sextet, 6행의 묶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8행에서 볼타(volta)라 하여 시상의 전환이 일어나고, ABBA ABBA CDC CDC의 각운 구조(Rhyme Scheme)을 따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3개의 콰텟 (quartet, 4행의 묶음)과 하나의 커플릿(couplet, 2행의 묶음)으로 이루어져있으며, ABAB CDCD EFEF GG의 각운 구조를 따른다.그래서 이런 소네트들을 따로 분류하여 셰익스피어(식) 소네트(Shakespearean Sonnet)라고 한다. 본인 이름 = 장르인 수준.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것은 기존의 페크라르칸 소네트 형식으로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내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페트라르칸 소네트의 내용은 연인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 찬미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연인에 대한 찬미가 주된 내용을 이루기는 하나, 페트라르칸 소네트와의 차별점은 어느 정도의 논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연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만 했던 페트라르카식의 소네트와는 달리 (모든 페트라르카식 소네트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거나, 연인의 아름다움을 영원화永遠化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변증법을 사용한다. 전술했듯이,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는 3개의 콰텟과 하나의 커플릿으로 이루어지는 데 이중 앞의 두개의 콰텟 (즉, 앞의 8줄)이 정명제 (thesis)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콰텟 (다음 4줄)이 반명제 (antithesis)의 역할을 하며,[8] 두 명제의 대립이 커플릿 (마지막 2줄)에서 종합 (synthesize)되어 합명제 (synthesis)로 결론을 맺는다. 각운 구조 또한 이러한 변증법적 구조를 뒷받침한다. ABAB CDCD EFEF GG. 앞의 12줄에서 마치 변증법에서 정명제와 반명제가 서로 대화를 하듯 (변증법 Dialectic의 어원이 대화 Dialog임을 생각하라) 서로 다른 각운이 번갈아서 등장하던 것이, 정과 반의 합이 일어나는 커플릿에서는 하나의 각운으로 통일된다. 플라톤이 철학 (즉, 논리) 로부터 시를 추방한 이래 거의 최초로 철학과 예술, 논리와 감성을 종합하고자 하는 시도인 셈.

2.2. 극작가(Playwright)로서 셰익스피어

희곡 쪽에서는 '시간의 일치', '장소의 일치'를 깬 것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시간의 일치란 희곡이 진행되는 시간이 2시간이라면 극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도 2시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장소의 일치란 무대의 장소가 희곡이 끝날 때까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배경이 거실인 희곡이라면 끝까지 거실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규칙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게 고정관념이었다고 한다[9]. 따라서 그것을 깬 셰익스피어는 비평가들의 날카로운 비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희곡들이 셰익스피어의 방식을 따라간다는 것을 보면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3. 언어창조자(?)로서 셰익스피어

어떻게 보면 매우 건방진(...) 느낌일 수도 있지만, 당시 엄청나게 많은 신조어들을 만들었다. 영어사(The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를 배우다보면 셰익스피어가 만든 어휘들이 꼭 나온다. 그의 희곡에 나온 2만 단어 중에 2천 단어는 새로운 단어였다. "가령 우리가 입만 열었다 하면 열 마디 가운데 한 마디는 신조어라고 생각해 보라."(by 빌 브라이슨) 셰익스피어 시대에 만들어지는 신조어들을 셰익스피어의 신조어(Shakespearean neologisms)라고 한다.보통 영국에서는 Shakespear language라고 부른다. 영국인도 못알아듣는 셰익스피어말 또 다시 본인 이름을 영어영문학과 학생들에게 남겼다. 사전 어원에 별다른 말이 없고 1600년 전후의 연도만 뜬다면 백프롭니다.

Shakespearean neologisms의 예
  • 살과 피(flesh and blood, 혈육)
  • 마음의 눈(in the mind's eye, 기억)
  • fashionable(우리가 아는 그 단어)
  • 더러운 행실(foul play, 반칙)
  • sanctimonious (신실한 체 하는)
  • bedazzle (현혹시키다, 매료하다)
  • unearthly (숭고한)
  • SWAG (!)
당대 영어는 문법 책도 라틴어로 나오던 수준이었다. 비슷한 시기 간행된 유명한 킹 제임스 성경과 함께 영어발전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2.4. 작가 전반

당시 자신이 살고있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왕이 죽고 나라가 엄청난 혼란에 빠지는 묘사가 꽤나 자주 사용된다. 당시 여왕이던 엘리자베스 1세(1558년 즉위, 1603년 사망)가 나이는 많고 후계자가 없어서 민심이 꽤나 불안했는데 이를 자신의 극에 반영한 것. 사실 유명한 글로브 극단의 소유주가 된 것 등등은 제임스 1세 덕이 많다고 한다. 시종장관 극단을 왕실 극단(King's Men) 극단으로 승격시키는 듯 세익스피어에게 돈을 많이 투자하기도 했다. 그렇게 예산을 마구 써서 의회에게 광역도발

은근히 개그센스가 있으며 현대인에게도 대부분 통할 정도. 그의 희곡들을 보면 시대를 앞서가는, 또는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와 전개가 일품이다. 시대를 앞서간 조교물(…)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썼으며, 또한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에서는 네토라레에도 도전하였다. 훌륭한 도전정신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그야말로 영문학사 전체에서 꼽히는 명대사. 다만 명대사라는 것은 확실하며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적다. 사실 지금도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사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가 이거다 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Be라는 단어 자체가 영문학적으로도 너무나도 많은 뜻을 복합해서 품고있는 단어이며, 은유적인 의미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끝이 없다. 연극계의 영원한 숙제[10][11]

그의 극본은 판본마다 텍스트가 제각기 매우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폴저 도서관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제1 이절판을 최대한 많이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같은 제1 이절판이라도 내용이 제각기 다르다![12]

서구권 학생들, 특히 고등학생들에겐 그저 귀찮은 숙제를 안겨주는 때려잡을 놈일 뿐. 특히 그의 책은 요즘 사용되는 문체가 아닌 고어체로 적혀 있어서 영어가 제2국어인 외국인들은 그렇다 쳐도 현지인들마저도 이게 무슨 의미인가 알아보는데 고생을 해야 한다. 거기다 시적인 표현을 매우 즐겨 사용한다. 우리로 치자면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으로 많은 고등학생들을 괴롭히는 정철 같은 존재. 실제로 캐나다에서 고교시절을 보낸 어떤 회원은 "난 셰익스피어 ㅅㅂㅅㅋ라 해도 됨. 햄릿 우아아앙!!"이라(…) 절규하여 주위를 훈훈케 하였다. 미국 고교에서도 셰익스피어 관련 수업시간이라면 교실의 대다수 학생들의 동공이 풀리고 유체이탈하는 장관을 볼수있다.[13] 그러자 몇 년 전부터 미국식 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을 '스파크노츠'의 사이트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현대어로 바꾼 걸 볼 수 있으며 분석[14]까지 자세하게 되어있는 내용을 업로드해서 큰 각광을 받고있다. 하지만 그대신 베오울프가 들어왔다. 우와아아앙?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뿐만이 아니라, 연기나 연출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골치아픈 존재. 특히 4대 비극 같은 경우에는 배우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작품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대사가 상당히 긴데다가, 대부분의 번역이 거의 문어체에 가까워서 대사는 간지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관객들은 연극을 볼 때 대사를 따라가기가 매우 고통스럽다. 게다가 햄릿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긴 대사가 연달아 독백으로 나온다면??? 웬만한 역량이 아니고는 관객들은 보다가 지겨워서 하품만 하게 된다.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배우는 물론이고 연출자 또한 각고의 노력을 해내야 하는데, 충분한 연습과 연구가 없다면, 배우는 그저 대본을 읊는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업계에서는 대사에 배우가 먹혀버린다라고 표현할 정도. 연출자 또한 관객들의 집중을 유지시키기 위해 배우나 무대에 이런저런 색다른 시도를 많이 요구하기도 한다. 아마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안톤 체호프만큼이나 두렵고 무서운 존재. 그래도 체호프만큼은 아냐

3. 비판

이처럼 영문학, 연극계와 세계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고 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명작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도 사람인 만큼 작품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인생 자체가 그렇게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고[15] 그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이랬다 라고 정리하는게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개인사나 사상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애매해질수 밖에 없으니 그에 대한 비판은 조심해서 들어야한다.

우선 당시 기준으로 그다지 관념도 없고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표절 논란인데, 대표적인 예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바지선에 올라 탄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하는 부분으로, 토머스 노스가 번역한 루타르크의 '웅전'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관한 부분을 표절한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극찬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인 시대와 문화, 공간의 보편성도 예외인 사례가 있는데, 로라 보나한이라는 인류 학자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티브족을 찾아가서 햄릿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왕의 유령이 나타난 부분에서는 그럴 수가 없고, 그저 악령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형이 죽자 아내를 취한 내용에 대해 당연하고 잘 했다는 반응 등, 저자와 실험자의 의도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쪽 부족의 풍습이나 관념에서는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 티브족이 야만스럽고 미개하다고 본다면 우리나라만 봐도 고구려의 형사취수제도가 있었다. 당연히 티브족은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 어떤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

'줄리어스 시저'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생을 다룬 극을 썼는데 사료 고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창작소설이기 때문에[16] 이견이 많다. 오히려 세상에는 실제 역사보다는 셰익스피어의 창작된 역사 쪽이 더욱 유명하다. 그 유명한 "Et tu, Brute?(브루투스 너마저?)"도 여기서 나왔다. 수에토니우스의 저술에서 나온 "내 아들아 너마저도냐"에서 영감을 받은 대사인듯. 위의 브루투스가 자신의 배은망덕한 암살 가담을 합리화하며 한말인, "카이사르를 사랑하지 않은게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다."도 셰익스피어의 창작이다.

인종차별주의자[17]나 여성차별주의자라는 설도 존재.

물론 역시 반론 또한 존재한다. 여성차별주의자라는 설만 하더라도,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을 보자면, 역으로 페미니스트였다는 설도 존재. 베니스의 상인만 보더라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자이며, 이외에도 여성이 극에서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거나, 찌질한 남주 대신 일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건 딱히 여성차별주의자라거나 페미니스트라고도 하기 힘든 것이, 걍 당신이 뭘 생각하든, 그런 쪽으로 해석한 누군가가 이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오늘날까지 학자들을 공밀레시키고, 파고 파도 계속 무한히 나오는 것이 셰익스피어다. 아무튼 당신이 뭘 공부하더라도 이 작가와 연관시킬 수 있다.

단순히 작품 내용만이 아니라 인간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소시민을 수탈하고 탈세까지 서슴치 않았던 악덕지주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건 당시 기준으로도 문제가 된 행위.# 이것이 사실일 경우 인간적으로는 천하의 개쌍놈이었던 것 같다. 허균도 그렇고 예술성과 인성은 비례하지 않는 모양이다 작품과 개인은 따로 보자고 하며 쉴드치는 의견도 있지만, 문제는 그가 보인 이 악행이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비슷하다는 점으로 연구진이 발표한대로 그의 삶이 작품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때 아내에게 물려준 유산은 두 번째로 좋은 침대 하나였다. 물론 아내는 법적으로 따져서 자기 몫을 챙겼긴 했지만. 처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쓴 것에 비해서 실제로는 아내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았던 듯.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둘째 딸에게 유산으로 은수저만 주었다는 것은 거짓이다. 비록 큰 딸에게 집을 포함한 많은 재산을 남긴건 사실이 맞지만 둘째 딸에게도 1억원 정도[18]의 유산과 은 그릇을 남겼다. 참고로 셰익스피어가 죽기 직전에 둘째 딸이 결혼을 했는데 이 결혼이 굉장히 막장이였기 때문에[19] 유서를 여러번 바꾼적이 있다.

후대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20]조지 버나드 쇼도 셰익스피어를 깠다. 물론 그들 역시 대문호의 입장에서 일종의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모양.

3.1.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 제 1부에서 현재 성녀로 추앙받는 잔 다르크를 마녀, 악녀, 요부, 패륜녀로 묘사했다.[21]

물론 이 사람은 잉글랜드 사람이고, 당시 잉글랜드 입장에서 잔 다르크는 눈엣가시같은 적장이기는 했지만, 침략자가 아닌 방어자인 다르크를 악역으로 묘사한 것은 정신승리용 왜곡이나 비뚤어진 애국심에 의한 묘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우선 잔 다르크가 활약한 백년전쟁을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침략했다고 생각해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려고 일으킨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와 비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유럽 왕가 특유의 혈연관계에서 비롯된 왕위 계승전쟁이 그 시작이었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침략-방어 개념으로 파악해선 안된다. 게다가 백년전쟁이전 잉글랜드의 플랜태저넷 왕조가 프랑스 지역에 가지고 있던 광대한 영지를 프랑스 왕이 계속 침략해 뺏어갔던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누가 침략자고 누가 방어자인지조차 헷갈리게 됨으로 다르크에 대한 당시 영국인들의 인식(잉글랜드 왕의 프랑스 왕위계승을 좌절시킨 마녀)이 딱히 왜곡됐다 표현하는 것에도 오류가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왕실과 귀족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노르망디처럼 프랑스 내부의 영국령이 아닌 브리튼섬 본토의 백성들은 프랑스의 백성들과 문화적 동질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적다. 특히 헨리 5세는 그 전의 잉글랜드왕들이 프랑스어를 주로 쓰던 것과 달리 종종 영어를 쓰며 자신이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드러냈고 이를 바탕으로 잉글랜드 출신의 장궁병 위주의 농민 병사들에게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그런 구심점이 없다가 다르크가 등장하여 샤를을 추대하며 프랑스인들을 자각시켰다. 특히 잔 다르크를 비롯한 왕세자를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은 대륙에 상륙한 이질적인 잉글랜드군의 약탈에 대해 이골이 난 상태였으며(물론 프랑스군의 용병들도 심심찮게 약탈을 하곤 했다. 다르크의 동료인 라 이르는 약탈꾼으로 악명이 있었으며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 때 그녀가 생존 당시 점령지의 약탈을 금지시키고 약탈한 물건을 바친 스코틀랜드인 병사를 꾸짖었다는 증언이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왕이 프랑스 왕으로 추대되는 것 자체에도 반감을 가졌다.

한편 다르크를 잉글랜드에게 넘긴 친잉글랜드 프랑스인이었던 부르고뉴파는 정치적, 경제적인 이해관계, 왕세자파에 의한 공작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었을 뿐 역시 잉글랜드와는 큰 동질감이 프랑스에 비해 부족했으며 결국 다르크의 죽음 이후에 잉글랜드가 불리한 걸 보고 잉글랜드를 배신하고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따라서 백년전쟁을 단순히 기존처럼 국가 간의 분쟁으로만 보는 시각을 지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왕실 내부의 갈등과 이해 관계로만 보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비판을 셰익스피어의 탓으로 돌리는건 다수 무리다. 잔 다르크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것이 기껏해야 19세기인데 16세기 영국 대중들이 잔 다르크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을리는 없고 대중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극작가가 이런 생각을 거스릴수도 없다.

아무튼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이 작품을 두고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작가가 썼다는 주장도 나왔었는데, 이건 그 무렵 잔 다르크의 시성이 추진되고 영국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났기 때문에 책임회피라는 분석도 있다.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가 굉장히 잔혹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필력과 묘사 때문에 다른 작가가 썼다고 주장한 것과도 비슷했던 양상.

가장 큰 문제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 희곡을 역사적 진실과 혼동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극단, 극장, 단체인 셰익스피어 글로브의 트위터에는 잔 다르크의 기일에 오늘은 잔 다르크가 파문되고 이단자로 선언되어 화형된 날임(…)이라는 고인드립까지 쳤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잔 다르크가 명예회복된 날과 시성된 날은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2]
그 1년 뒤에 한 셰익스피어 전문 블로거 겸 대학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잔 다르크의 화형을 축하하고 기념하며 바베큐를 언급했다. # 이른바 통구이 드립.[23]

단순히 영미권이 아니라 한국의 경우에도, 한 카페에서 잔 다르크 역을 맡은 배우[24]가 자신의 마녀 연기를 보러 오라고 자랑하며 글을 쓰는가 하면, 또다른 카페에서는 한 회원이 연극을 보고 잔 다르크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장면과 처형 장면을 인상깊은 장면으로 꼽는가 하면 그리고 신나는 투로 잔 다르크 화형식을 거행했죠~라고 감상문을 남긴 바 있다.

4. 셰익스피어는 가상인물?

이 사람도 만만찮게 음모론에 휩쓸린 사람. 그의 대한 개인적인 사료가 부족하기에 아직도 그의 정체는 영국 문학사에 큰 숙제 중 하나.

거기다가 밝혀진 바로서 가방끈이 심하게 짧아 (초급학교 중퇴) 대필 논란에도 휘말려있다.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현 사회의 학력지상주의에 의해 생겨난 억지주장이라며 아직도 시끄럽다. 사실 영어로 된 책을 보면 '문법학교(Grammar school)' 중퇴라고 나와있는데 이것은 귀족자제들에게 그리스, 로마 고전을 가르치던 학교를 말한다. 이름이 문법학교라고 번역되지만, 사실은 귀족학교라고 보는 게 맞다. 현재에도 그래머 스쿨은 영미권의 사립학교 이름으로 자주 쓰인다. 중세 이후에 세워진 이러한 형태의 학교에서는 당대 지식의 기반을 이루는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의 문법을 포함한 '자유과목(Liberal arts)'의 기초를 모두 가르쳤다. 당시의 교육 현실을 생각해보면 대학을 졸업한 완전한 지식인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축에는 들어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당시에는 거의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로도 거의 번역되지 않았던) 그리스-로마의 고전 희곡에서 많은 설정을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에 있어서 알기 힘든 동시대의 외국 언어, 지리, 사회상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는등, 도저히 무학의 무명 연극배우 출신이 이런 대작들을 썼다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작품을 쓰고, 셰익스피어는 이름만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신분이 드러나길 꺼리지만[25] 대단한 필력을 가진 지식인이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이 가상인물설의 요지이다.

그 후보자로는

  • 프랜시스 베이컨 - 유명한 철학자인 그 사람 맞다. 대학자였기 때문에 작가로 알려지길 꺼렸다고. 근데 움베르토 에코
  • 리엄 스탠리
  • 리스토퍼 말로: 르네상시 시대에 매우 유명한 희곡 <파우스트 박사(Doctor Faustus)>의 작가. 젊은 나이에 천재소리를 들었으며 임브리지 대학의 석사를 취득했다.[26]
  •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
  • 엘리자베스 1세
  • 제임스 1세
  • 셰익스피어는 한 사람을 칭하는 이름이 아닌, 일종의 서클 같은 것으로 그들이 내놓은 필명이 셰익스피어다.

등등이 있다. 물론 이 설들에도 여러가지 반론[27]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실은 저 너머에.

또다른 주장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쓴 실제 초판은 매우 거칠고 조악했으나, 시대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갈고 닦여져 지금과 같은 주옥같은 문장으로 재탄생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 판본이 여러가지나 되고 햄릿 같은 경우 저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도 상스럽거나 단순한 욕설로 나온 판본도 있으므로. 이 내용은 히스토리 채널에서도 다룬 바 있다.

스티븐 핑커 셰익스피어: 최초의 위대한 심리학자

5. 기타

  • 서양권 전체에서 제일 많이 상연되는 그의 작품은 리처드 3세라고 한다. 왠지 한국에서는 듣보잡인 듯하지만.

  • 현재 영국에서 웬만큼 거장 취급 받는 배우들(스크린/무대를 막론하고)은 상당수가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역사가 시작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 출신이다. 예를 들면 이언 매켈런 경.

  • 현 시대의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알 파치노가 특히 셰익스피어 덕후다. 베니스의 상인 등 여러 영화를 비롯, 브로드웨이와 미국 대도시에서 연극을 올린 것도 여러번이고, 심지어 1994년에는 리처드 3세를 만드는 다큐멘터리 <뉴욕 광시곡>[28]까지 감독/출연했을 정도이다. 2012년 현재 리어왕까지 찍고있다니 뭐, 할말 다했다.

  • 태양계에 있는 행성을 선회하는 위성들의 이름들은 달을 제외하면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하지만, 천왕성의 위성들은 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유래한다.

  • 2014년 4월 26일, 세계적인 영국 극작가로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4.26 ~ 1616.4.23)의 탄생 45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대적인 축제 행사가 열렸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Stratford-Upon-Avon에서는 음악, 거리 공연, 스토리텔링, 연기, 춤 등 다양한 연극의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셰익스피어 생애를 따라 여행하는 "Cycle Shakespeare's way"를 테마로, 셰익스피어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의 출생지인 Stratford-Upon-Avon에서부터 그의 무덤이 안착된 Holy Trinity Church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그가 거주하며 극작가로써 활발히 활동했던 London에서는 2014년 한 해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Globe Theatre에서 성대한 박람회를 열어,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을 재현한 공연, 해설, 전시회 등을 제공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넘겨줄 수 없다.”라고 남긴 유명한 말처럼, 그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되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빈도수가 가장 높은 나라인 한국에서는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및 협회, 대학로 연극인들이 대규모 ‘셰익스피어 문화축전’ 주최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네 달에 걸쳐 릴레이 연극을 펼쳤다.

6. 작품 목록

6.1. 장시, 혹은 시집들

6.4. 역사극

6.6. 희극

7. 각종 매체의 셰익스피어

  •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조지프 파인스가 연기했다.
  • 마비노기의 등장 NPC 셰익스피어(마비노기)
  • 팀 포트리스 2에서는 헤라클레스융합(...)되어서 셰익스페라클래스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힘이 센 극작가라고 하며, 2층 건물, 극장 연극, 아메리카 대륙, 로켓 런처를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계단은 못 만들었다. 2010년의 '전쟁이다!' 업데이트 소개에서만 언급.
  • Fate/Apocrypha의 등장 서번트 붉은 캐스터로 등장.
  • 드라마 닥터후에서도 등장. 클래식 시즌 에피소드 <City of Death>에서 언급되는데, 닥터가 햄릿을 읽다가 '이 부분 이렇게 쓰지 말라니까!'라면서 그의 문장력을 비난한다(...) 뉴 시즌 3 'The Shakespeare Code'에서도 등장하는데, 실재하는 그의 희곡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의 실전된 속편, 사랑의 수고의 결실(Love's Labour's Won)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로, 셰익스피어는 딘 레녹스 켈리(Dean Lennox Kelly)가 연기했다. 닥터는 엄청 기대했지만 그는 닥터가 생각한 것과는 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닥터가 인정할 정도로 천재였는데, 그 특유의 문장력은 여전했고, 마사와 닥터의 정체를 눈치만으로 정확히 알아챘다. 거기다 닥터의 사이킥 페이퍼가 통하지 않았었다.
  • 닐 게이먼THE SANDMAN에서는 Dream과 거래를 하여 한여름밤의 꿈을 써냈다. 셰익스피어가 원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영원히 기억되는 것, Dream이 원한 것은 요정들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이었다.
  • 소설 경계선상의 호라이즌에서 셰익스피어를 습명한 인물인 토마스 셰익스피어
  • Epic Rap Battles of History 시즌 1 에피소드 12에 등장해 닥터 수스와 대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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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셰익스피어 사망 7년 후 친구이자 오랜 동료였던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 희곡 18편으로 모아 출간한 극본집. 그 전에도 여러 판본이 나왔지만 이 판은 여러 판을 비교하여 정리한 "정판"이라고 보면 된다.
  • [2] 무덤의 묘비명인데, 자작인지는 확실치 않다.
  • [3] 실제로 셰익스피어 허구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이름을 예명이라고 본다. Shake+speare, 즉 펜촉을 창처럼 휘두르는 자라는 걸로 누군가가 예명을 만들었다는 설
  • [4] 죽은 날과 같은 23일이라는 설이 있다. 정확한건 모르고, 일단 유아 세례는 26일에 받았다. 보통 세례나 할례는 태어난지 9일 만에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17일도 가능성이 있다.
  • [5] 스페인의 대문호인 세르반테스의 사망일과 같다. 다만, 당시 영국은 그레고리력을 채택하기 전이라 둘이 같은 날 죽은 것은 아니다.
  • [6] 본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된 후 교도 혁명이 일어나 올리버 크롬웰이 금욕주의로 독재를 하던 시기에 탄압을 받아 강제 폐쇄당하는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97년에 새로 지었다. 매일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공연한다.
  • [7] 오바된 감정과 절절한 짝사랑 얘기 같은 게 주였다.
  • [8] 정명제와 반명제의 전환이 발생하므로 페트라르카식 소네트의 볼타 (volta)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댜.
  • [9] 현대의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엄격한 제한이기는 했지만, 사실 반드시 어처구니없는 고정관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극 중 장소나 시간을 전환하는 것은 일종의 비약이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면 극의 구조가 엉성해질 수 있다. 너무 교조적으로 해석한 것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긴 했지만 규제 자체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걸작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극적 긴장을 저하하지 않고 장면이나 시간을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 [10] 일단 한국에서 번역된 버전으로만 사느냐 죽느냐(대부분의 번역), 있음이냐 없음이냐(최종철 역),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최재서 역),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이덕수 역), 삶이냐 죽음이냐(강우영 역) 등등.
  • [11] 로완 앳킨슨휴 로리가 등장한 코미디 스케치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편집자가 내용을 줄인답시고 의미있는 말들을 다 쳐내서 생긴 불상사로 묘사되었다.(...)
  • [12] 이는 무대에서 상연을 목적을 하는 희곡의 특성상 관객의 반응에 따라 대본이 수시로 고쳐졌기 때문이다. 리스토퍼 말로의 희곡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존재한다.
  • [13] 덕분에 빌과 테드의 엑설런트 어드벤쳐의 애니메이션판에선 과거로 돌아간 일행들이 셰익스피어에게 이건 미래에 니가 괴롭힐 모든 학생들의 몫이다!라고 싸대기를 갈기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 [14] 단, 영문학 전공 학부생들은 이 사이트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비전공자가 쓴 내용이 많아 문서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 그래도 텍스트 참고에 있어선 여기만한 곳이 없다.
  • [15] 심지어 1585년부터 1592년까지 이 사람이 어디서 뭘 했는지도 모른다.
  • [16] 그 시대에 명종이 나온다. 고대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에는 조기경보 시스템까지 있었으니 이 정도 오버 테크놀러지는 이상할 거 하나도 없음(…). 유럽에도 안티키테라 기계가 있었을 정도라면. 뭐니뭐니해도 오파츠계의 먼치킨 헤론을 무시하나효?!
  • [17] 박홍규 교수의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라는 책에서는 흑인인 오셀로의 묘사의 비판뿐 아니라 템페스트를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주의, 섬의 괴물 칼리번은 식민지의 원주민를 상징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다만 이것 역시 절대적인 분석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본, 이런 새로운 해석도 있을 수 있다고만 알아두자.
  • [18] 당연하지만 현재 돈으로 환산할 경우의 가치고 실제로는 300파운드
  • [19] 교회의 허락을 받지 않아 파문당하고, 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임신시킨 혐의로 법정에 섰다
  • [20] 조지 오웰은 톨스토이가 리어왕의 리어와 늙은 자신이 겹치는 모습에 불쾌해서 그랬을 거라고 조롱하듯이 분석했다. 어딘가 설득력이 있다.
  • [21] 그래서 프랑스와 이스라엘에서는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찢어죽일 천하의 개쌍놈취급한다.
  • [22] 이게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게 한 개인이 아닌 사실상 공식단체, 그것도 듣보잡도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극단이란 곳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한 거다. #
  • [23] 이 인간이 어떤 사람이며 어느 대학에 근무하는지는 구글링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으나 개인정보 악용의 위험과 그로 인한 소송문제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상털이는 하지 말자. 하지만 어쨌거나 이 인간이 이 공개 계정에 쓴 이 트윗으로 트인낭을 시전하여 교육자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의 최소한의 도덕성과 부끄러움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음을 스스로 보인 것은 명백하다. 원본 트윗은 삭제했으나 트윗에 대한 사과에 대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는 모양이다.
  • [24] 2011년판 연극에서 잔 다르크를 맡은 민지영은 아니다.
  • [25] 스토리의 통속적 소재들 때문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차마 이름을 못밝힌다는 설. 한마디로 유명 만화가가 동인물을 가명으로 쓰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 동인질 퀄이 ㅎㄷㄷ하다는 게 함정
  • [26] 셰익스피어가 막 뜨기 직전에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극작가로 말로가 장수했다면 셰익스피어의 자리는 말로가 대체했을 거라는 영문학자의 주장도 많다. 실제로 당시 영국에서 가장 많이 상영된 희곡도 이후에 괴테파우스트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말로의 <파우스트 박사>였다. 29살의 나이로 술집에서 결투를 하다 상대방에게 한쪽 눈을 찔려서 요절했는데 말로의 사망일이 동료 극작가 토머스 키드의 밀고로 추밀원에게 무신론자로 고발되어 법정에 서기 일주일 전인데다가 말로 사망 직후 셰익스피어가 갑자기 큰 인기를 끌어서 셰익스피어는 사실 부상당한 말로가 운둔하면서 쓴 필명이라는 음모론이 굉장히 많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말로는 영국정부와 가톨릭 단체의 이중첩자였으며 그를 찔러 죽인 사람도 그를 감시하고 있던 정부측 스파이였다고 한다.
  • [27] 상기된 말로나 엘리자베스 1세 등 몇몇 후보의 경우 셰익스피어 작품 중 상당수가 그들이 죽은 뒤에 쓰여졌다든지, 베이컨의 경우 극장과는 거의 상관없는 삶을 살아서 소설가가 아닌 극작가로 활동하는 건 굉장한 무리수라든지.
  • [28] 원제는 Looking For Richard이다.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번안제목.
  • [29] 대사에 진짜 마녀들의 주문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실제 이 대사를 한 배우들은 전부 비극을 맞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