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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last modified: 2019-06-01 14:57:20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설치과정
3. 숨은 의미
4. 설치 지역
4.1. 국내
4.2. 해외
5. 사건·사고
6. 반응
7. 논란

1. 소개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사회의 관심을 환원하려는 목적으로 위안부 문제 관련 단체가 설치한 동상이다. 정식명칭은 '평화의 소녀상'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집해과 1000회를 맞아, 2011년 12월 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이 중심이 되어 시민모금을 하여 설치하게 되었다. 2011년 부부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이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정대협을 찾아가 건립을 제안한 것이 계기이다.

2. 설치과정

제1호 동상인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은 관리 주체가 모호하다. 이 소녀상을 설치할 당시에는 '도로점용 허가' 등의 문제가 있어 어려움이 있었는데, 당시 여성가족부가 적극적으로 나섯다. '국가사업과 관계되는 것은 주무부처와 도로관리청이 협의하여 설치할 수 있다'는 도로법 제5조에 근거해 종로구청에 설치를 요청해서 소녀상 설치를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간주하여 별도의 허가가 필요없이 설치할 수 있었다.

'시민단체의 주도로 만들어진/국가사업'이라는 미묘한 특성 때문에 2015년 연말에 위안부 소녀상 철거 논란이 나오자 관리 주체에 대한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여가부는 설치 과정에서 외교부와 종로구청이 반대하여 공문을 통해서 협조 요청을 했으나, 철거는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설치 당시 '국가사업'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주무부처는 여가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주무부처에서 철거 관련 요청 등이 있을 경우 검토할 수 있으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발을 뺐다. 정대협 측은 민간 주도, 시민 모금으로 설치했으므로 정부는 위안부 소녀상에 권리를 행사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아시아경제)


3. 숨은 의미

이하는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설명이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작가가 2013년 한인매체 월드 코리안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소녀상의 조형에 숨겨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국민일보)

  • 기본적인 모습은 당시 소녀들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복을 입은 14~15세의 사진을 참고로 형상화 했다.
  • 댕기머리가 아닌 단발머리인 것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고국을 떠난 소녀들의 결심을 뜻한다.[1]
  • 소녀상의 뜯겨진 머리카락을 소녀가 처했던 황폐한 상황을 표현한다.
  • 어깨 위의 작은 새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며,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남아있는 이들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 주먹을 꼭 쥔 손은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뜻한다.
  • 맨발 :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발을 빼앗겼다는 의미이며, 두 발꿈치가 들려있는 것은 고국 땅조차 편히 밟지 못했다는 설움을 뜻한다.
  • 소녀상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긴 세월이 흐르도록 풀리지 않은 한을 의미한다. 그림자 안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는데, 다음 생에는 한을 풀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 소녀상의 빈 의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자리이다.

4. 설치 지역

4.1. 국내

2015년 시점에서 국내 27개 소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다.
  • 서울 종로구 본대사관 앞 : 제1호로 설치되었으며, 가장 대표적인 위안부 소녀상이다.
  • 창원 : 2015년 8월 13일 설치됐다. 오동동 문화 광장의 광장 입구 시유지에 설치되기로 했다. 창원시민에게 9800만원의 성금을 모아서, 도시비를 지원하여 1억 5백만원으로 제작됐다. 청동 재질로 높이는 154cm 정도. 이 일대는 일제시대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중간 집결지 역할을 했으며, 3.15 의거 발상지이기도 하다. 2015년 시점에서는 유흥가로 변모했는데, 건물주상인들은 영업에 방해를 줄까봐/유흥가라서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설치에 반대하기도 했다.(국민일보)
  • 남해 : 2015년 8월 14일 남해여성인력개발센터 앞에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의 이름을 딴 '숙이공원'을 조성하고 상을 건립했다. 지금까지의 소녀상과는 디자인이 조금 다른데, 조개캐기에 사용하는 호미와 소쿠리를 넣어서 박 할머니의 사례를 형상화 하고 조개를 캐던 어린 소녀들을 일본군이 무자비하게 끌고 갔다는 것을 알리려고 형상화 했다. 박 할머니는 16살 때 남해군 고현면 바닷가에서 조개캐러 가던 길에 외사촌과 함께 끌려갔으며, 나고야를 거쳐 만주에서 7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고 해방 이후 만주에서 7년간 더 생활하다가 고향 남해로 돌아왔다.(국민일보)
  • 대구 : 2015년 8월 15일 설치됐다. 가로 180cm, 세로 140cm, 높이 20cm의 좌대 위에 높이 160cm의 소녀상을 세웠다. 다른 지역의 소녀상과는 달리 1900년대 한국 여성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태극기를 쥐고 있어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징한다. 이병준 조각가가 재능기부를 하여 제작했으며, 추진위가 수천만원을 모금해서 지원했다.(국민일보)
  • 광주 : 2015년 8월 14일 세계 위안부의 날을 맞아, 광주광역시청 앞 시민의 숲 광장에 설립되었다. '착한 사람들의 모임(착사모)'라는 단체가 클라우드 펀딩괴 개인 후원으로 수천만원을 모으고, 안경진 조각가 등이 재능기부를 하였다.

4.2. 해외

  • 미국 캘리포니아 글린데일 : 2013년 건립. 해외 1호 위안부 소녀상이다. 글린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에 세워져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설명하는 석판이 추가되어 있다. 한인 동포 단체 '가주한미포럼'이 주도해서 세웠다. 일본계 주민들의 반발과 로스앤젤레스 일본 총영사관의 반발이 있었으나 건설될 수 있었다.
  • 미국 디트로이트 : 해외 2호 위안부 소녀상이다.
  • 캐나다 토론토 : 해외 3호 위안부 소녀상이다. 2015년 11월 18일 건립되었다. 한국 경기도 화성시와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그리고 토론토 지역 민간단체들의 협력으로 세워졌으며, 당초 캐나다 버나비 시에 소녀상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일본 극우단체의 방해로 추진이 중단되었으모 토론토에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미국의소리)

5. 사건·사고

  • 2012년 일본의 극우 활동가 스즈키 노부유키가 서울 위안부 소녀상 옆에 '다케시마는 일본 공휴의 영토'라는 말뚝을 박는 묶어놓는 테러를 했다.
  • 2015년 스즈키 노부유키얘가 또!가 나눔의 집에 소포를 보냈다. 일그러진 얼굴의 소형 소녀상에다가 '제5종 보급품'이라는 문구와 함께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말뚝이 박혀 있었다.(YTN 뉴스영상)
  • 2015년 광주의 소녀상을 건설하는 사업을 주도한 '착한 사람들의 모임'의 회장 전모씨는 소녀상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기부금 일부를 횡령하여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http://news1.kr/articles/?2450983(참조)

6. 반응

  •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거나, 겨울이 되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털모자, 스카프를 둘러주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7. 논란

  • 일본은 빈 협약(1971년) 22조 '접수국은 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품위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특별할 의무를 가진다.'에 따라서, 위안부 소녀상이 법률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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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는 댕기머리가 일반적이었으며, 단발머리는 1920년 무렵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오엽주(吳葉舟)가 화신상회에서 미장원을 개업하여 유행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