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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나 라이더

last modified: 2015-03-12 12:25:03 Contributors



리즈 시절. 1992년 《드라큘라》 출연 당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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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최근 모습. 나 아직 안 죽었다. 이것들아. 그냥 평생이 리즈시절

본명Winona Laura Horowitz(위노나 로라 호로위츠)

Contents

1. 어린시절
2. 초기 아역 시절
3. 성인 연기자 시절
4. 절도 사건과 공백기
5. 2006년 이후
6. 트리비아

1. 어린시절

미국배우. 1971년 10월 29일 미네소타위노나라는 도시에서 히피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히피들은 자식의 이름을 괴상하게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눈치 챘겠지만 위노나 라이더도 부모가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준 케이스. 이후 10살 때까지 히피 사회에서 자랐다.

원래의 성인 호로위츠에서 라이더(Ryder)로 바꾼 계기는 첫 영화 출연작인 《루커스 Lucas》(1986)에 출연했을 때였다. 라이더의 에이전트가 영화 크레딧에 어떻게 이름을 올릴지를 요청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미치 라이더'라는 록가수의 성을 따서 라이더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10살이 됐을 때, 라이더는 도시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나서, 몇몇 동급생들에게 폭행을 당하게 된다. 보이시한 외모를 오인한 탓이었다. 그 이후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서 학습하다가 1983년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American Conservatory Theater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연기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2. 초기 아역 시절

1985년이 되던 해, 그녀는 《데저트 블룸 Desert Bloom》이라는 영화를 위해 연기장면이 기록된 비디오를 오디션에 보낸다. 배역을 따내는데는 결국 실패했지만, 이를 인상깊게 본 감독인 데이비드 셀처(David Seltzer)에 의해 1986년 드디어 《루커스 Lucas》(1986)에 캐스팅 된다. 분량은 작았으나, 첫 영화출연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출연한 《스퀘어 댄스 Square Dance》(1987)를 통해 '인상적인 데뷔' 등의 호평을 얻는다. 하지만 라이더를 널리 알린 작품은 바로 팀 버튼 감독의 《틀쥬스 Beetlejuice》(1988)이라 할 수 있는데 첫 작품인 《루커스》에서 라이더를 인상깊게 본 버튼이 캐스팅한 것이다. 나 데이비스, 릭 볼드윈, 이클 키턴 등과 출연한 영화는 대박을 쳤고, 라이더도 주가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이후 리스천 슬레이터와 함께 열연한 《헤더스 Heathers》(1988)를 거쳐, 1990년에는 한때 연인 관계이기도 했던 조니 뎁, 그리고 팀 버튼과 다시 만나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을 찍게 된다. 이 영화는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3》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휴식을 이유로 취소하였다.[1] 그 대신 동년에 가족 코미디인 《머메이드 Mermaid》(1990)에 리스티나 리치, 셰어와 함께 출연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라이더는 이 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에 지명되지만, 수상은 실패하였다.[2]

3. 성인 연기자 시절

1991년에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지상의 밤 Night on Earth》(1991)을, 그리고 1992년에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Dracula》(1992)[3]를, 그리고 1993년에는 자신이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1993)에 출연하는 등 거장들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핫한 배우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순수의 시대》는 셸 파이퍼,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 라이더는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아카데미 동부문에 노미네이트[4] 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배우로서의 라이더에게 대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어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1994)에 벤 스틸러, 이선 호크와 함께 출연했다. 셋 다 이때가 리즈 시절.. 소위 X세대라고 불리던 당시 청년층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내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바로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1995)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지명되기도 했으나, 역시나 수상은 실패.[5]

동년에 출연한 《아메리칸 퀼트 How to Make an American Quilt》(1995)에서 한차례 흥행, 비평면에서 실패를 겪으며 승승장구하던 행보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배우 데뷔 이후 라이더는 꾸준히 소위 거장들과 비평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당대의 배우였다.

1996년에 《보이즈 Boys》(1996)에 출연하지만, 또다시 흥행, 비평면에서 참패를 겪였지만 배우 커리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당시 라이더에게는 기묘한 면이 있었는데 흥행력이 결코 좋지 않은, 정직하게 말하면 상업성이 동시대 여배우들보다도 뒤지는데도 유명 감독들의 캐스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출연한 알 파치노가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겸 드라마인 《뉴욕 광시곡 Looking for Richard》에서도 만족스러운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6] 영국국립극장과 왕립셰익스피어극단에서 연출가로 활약하면서 영화 《조지 왕의 광기》로 평단을 흔들어놓은 니컬러스 하이트너 감독과 손잡고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공연한 《크루서블The Crucible》까지, 비평은 괜찮았지만 흥행은 큰 실패를 겪게 되었다.

이후, 장피에르 죄네 감독의 《에일리언 4》에 출연해[7] 연기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영화가 좋지 못한 받아버렸다. 이후 우디 앨런의 《셀러브리티 Celebrity》(1998)에도 출연하는 등 같이 작업한 감독들을 보면 동시대 어떤 여배우보다도 더 많이 거장들과 작업했다.

게다가 직접 영화 제작에 까지 영역을 넓혀 주연 및 제작자를 맡으며 제작한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1999)에서 자신이 간신히 출연을 성사시킨 당시 무명이었던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받게 하기도 했다.

2001년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까지, 하층민에서 귀족까지, 시대극에서 현대극까지, 극사실주의 영화에서 SF판타지까지, 욕망의 화신에서 순진무구한 역할까지 다방면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고 흥행 배우가 아니면서도 거장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였다.

4. 절도 사건과 공백기[8]


최악의 흑역사. 왜 그랬어요.. 위노나 라이더는 이 사건으로 한 방에 무너지고 만다.

위노나 라이더의 가장 병크라 할 수 있는 절도 사건이 2000년 처드 기어와 함께 출연한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 이후인 2001년에 터지고 만다. 사실 라이더가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대중적 인기가 있는 배우라고는 할 수 없었는데 이 사건으로 대중들에게 가식적인 위선자라는 이미지가 말뚝처럼 박히게 된다.

2001년 위노나 라이더는 디자이너 샾에서 고가의 의류와 악세사리의 태그를 몰래 떼고 숨겨 나가려다가 경비원들에게 붙잡혔다. 처음에 그녀는 "다음 배역을 위해 연습 중이었다"라는 개드립을 날렸고, 대중들은 오히려 나중에 그녀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연기자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들으면 억울하다는 "너 지금 연기하는 거지"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사건당시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약물에 취해있는지 의심해 약물 검사까지 했다. 또 당시도 유명했고 지금도 마이클 잭슨 사망사건을 변호할 정도인 유명 형사전문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이는 대중들에게 돈을 이용해서 처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약물검사 결과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일반적인 경우에 처방 받을 수 있는 적정량의 처방이 아니었다. 라이더는 이에 팔 부상으로 의사에게 처방받아 복용했으며 적정량은 의사의 소관이지 자신은 알길이 없는 것이라면서 절도 당시 약기운에 이성이 약해진 상태였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대중들에게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약물과다복용에 대해서는 혐의가 풀렸으나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

또 재판에서 그녀는 검은색의 정숙한 고전적 정장을 입고 창백한 화장을 하고 선처를 호소했는데 이게 오히려 반발을 불렀다. 통계적으로 미녀가 유죄를 받을 확률은 일반적으로 낮지만, 미모를 이용한 범죄이거나 배심원들이 피고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영향을 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혹하게 형량을 메긴다는 결과가 있는데 딱 그 꼴이었다. 자유로운 사생활과 잘나가는 커리어를 밟던 화려한 여배우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연기한다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버린 것이다. 재판도중에 라이더가 이전에도 절도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나와 월경전증후군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매체에서 나왔지만 그녀는 이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걸로 또 이미지 훼손.

시작할 때는 왠지 가십성 사건이었는데 나중에는 미국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생포 임박소식을 밀어내고 위노나 라이더의 재판이 TV뉴스의 헤드라인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디 앨런 감독은 당초 자신의 영화인 《린다 앤 멜린다》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라이더에게 제안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외적인 보험 문제로, 후자는 절도 문제로 인해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고 회고한 적도 있을 정도. 앨런정도 되는 확고한 위치의 감독조차 라이더의 출연은 '도저히 영화사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긴 당시 두 사람은 어지간히 개차반이었다...

결국 절도 사건은 200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480시간, 절도에 대한 배상과 벌금을 선고 받으며 유죄로 결말 지어졌고, 그녀에 대한 형 집행은 2005년에 완료된다.

여하튼 이러한 정신적 문제에서 기인한 여러 절도, 약물 복용 스캔들 등으로 인해 심대한 이미지의 타격을 입었고, 《뉴욕의 가을》 이후 필모그래피는 꾸준히 내리막을 걸었다. [9] 이 기간 영화 출연은 했지만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어 《시몬》(2002)에서 밥맛없는 유명 여배우 니콜라 앤더스 역할로 겨우 카메오 급 조연으로 겨우 영화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고[10] 대중적 이미지와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박살나 버렸다.

5. 2006년 이후

형이 완료된 후 워너브러더스의 《스캐너 다클리 Scanner Darkly》(2006)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해서 칸 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으나 인터뷰 공포증이 생겨 참석하지 않았다. 2007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절도 사건에 대해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아니니까 죄책감 까지는 느끼진 않는다고 말해 또 다시 폭풍까임을 당하게 된다. 이후 메이저 영화에는 거의 출연하지 못하고 저예산 영화나 단편영화에 출연한다.

잊혀져 가던 국내 팬들에게 다시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는 아마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 트렉 Star Trek》(2009)과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블랙 스완 Black Swan》(2010)일 것이다. 전자에서는 비록 카메오 수준에 그치긴 했지만, 절도 사건 침체되어 있던 라이더의 활동을 기대하게 만드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잊혀지고, 늙어가며 결국 발레단 주연을 빼앗기는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얄궃게도 과거의 영광에서 잊혀져 서서히 주연과 멀어지던 실제 배우로서의 삶을 사는 라이더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있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여러모로 배역이 라이더와 똑같은 모습이라, 많은 팬들이 씁쓸해했다.

이후 하워드 감독의 《딜레마 The Dilemma》(2011)를, 그리고 크리스 에반스, 마이클 섀넌, 이 리오타와 함께 출연한 《아이스맨 The Iceman》는 2013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등, 배우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6. 트리비아

국내 팬들에게는 《가위손》과 《드라큘라》 등에서 비춰진 청초한 매력과 나이에 맞지 않는 동안, 그리고 동안에 어울리지 않는 몸매 등, 소위 베이글녀로서[11] 상당한 인기를 끌어모았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여배우 중에서는 유독 단발컷이 잦았던 라이더에게서 나오는 중성적이고, 신비스러우며, 그와 동시에 반항기가 넘치는 그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작은 체구지만 이렇게 대조되는 두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기묘한 분위기의 배우였다.

물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12살 때 익사할 뻔한 경험때문에 생긴 외상. 이 때문에 《에일리언 4》에서 물속에서 촬영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유력 후보라서 자신이 이 역을 맏게 될 것이라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배역은 다른 후보였던 귀네스 팰트로에게 돌아갔고, 이 역할로 팰트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다.[12] 팰트로가 라이더 집을 방문해서 시나리오를 보고 몰래 제작사와 연락해서 역할을 가로챘다는 이야기가 도는데 팰트로 본인 역시 이미 후보에 올라있었고, 라이더가 자신이 후보로 올랐다는 언급을 여기저기 했을 때 팰트로는 예의상 자신이 후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이더가 유력했다 해도 배우를 결정하는 건 감독의 재량인데다 대본을 보고 가로채고 할 것도 없었고 진짜 그랬다간 고소감이다. 결국 라이더와는 사이가 어색해졌지만.

남자 관계가 상당히 복잡했던 걸로 유명했었다. 조니 뎁과의 관계는 잘 알려진 사실. 1990년에 약혼했으나 1993년에 서로에 대한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서고 말았다. 약혼이 깨진 후 뎁이 오른팔의 Winona FOREVER 문신을 Wino FOREVER로 바꾼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러니까 문신은 신중하게 합시다. 이후 1993년 울 어사일럼의 데이브 퍼너를 만난다. 3년간 만나 결혼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996년에 깨진다.[13] 당시에는 로커와의 교제로 유명했고 롤링스톤지에서는 "소년들이 위노나 라이더와의 데이트를 위해 로커의 길을 선택한다"는 글을 올릴 정도로 신예 로커와의 염문설이 잦았다.98년에는 맷 데이먼와 2년간 교제하는 등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2001년 절도 사건 이후에는 이런 개인적인 생활도 없고 심지어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이렇다할 스캔들이나 열애설도 없는 상황.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리스천 슬레이터와 함께 《헤더스》의 후속편을 찍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헤더스》는 90년대 청춘 영화의 상징이었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위노나 라이더의 풋풋하고 젊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본인은 아마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순으로 시리즈화 된것처럼 자신들의 소위 리즈 시절이었던 그때의 시절이 퍽 생각나는 모양인듯 하다. 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활동중인 줄리 델피와 단 호크에 비해, 크리스천 슬레이터는 소위 3류 영화에 나오고 있을 정도로 맛이 갔고, 라이더 자신도 상황이 썩 좋지는 않은지라 저 프로젝트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한국에서는 함수정전담 성우KBS에서 방영된 여러 작품들을 맡았는데 시몬, 에일리언 4, 미스터 디즈에서는 이선이 맡기도 했다. SBS에서 방영된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는 때는 은영선, MBC에서 방영된 가위손, 뉴욕의 가을에서는 박영희, 비틀쥬스에서는 박선영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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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위노나 라이더 대신 출연한 소피아 코폴라발연기를 보면... 위노나의 결정이 아쉽기만 하다...
  • [2] 수상자는 우피 골드버그의 《사랑과 영혼》.
  • [3] 앞서 휴식을 위해 대부 3에 예정된 출연을 취소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뜻에서 제작자에게 코폴라 감독을 추천한 것은 물론 프리 프로덕션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 [4] 수상자는 《피아노》의 애나 패퀸.
  • [5] 수상자는 《블루 스카이》의 제시카 랭.
  • [6] 이 작품에서 알 파치노는 위노나 라이더를 주연 중 하나로 앤으로 기용했다. 재밌는 점은 알 파치노가 2002년 영화 시몬에서 극초반에 작중 유명 여배우로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에게 퇴짜 맞는 감독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당시 위노나 라이더는 2001년 절도 사건으로 영화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 [7] 라이더의 오빠가 이 시리즈의 팬인 것도 출연의 한 이유였다.
  • [8] 위키백과에서는 Hiatus라고 표현했다
  • [9] 하필이면 《뉴욕의 가을》도 흑역사급 퀄리티에 제대로 폭망해버려 치명적이였다. 사건 일어날 쯤 개봉한 미스터 디즈도 애덤 샌들러 디버프를 받아 만만치 않았다.
  • [10] 극초반에 등장하는데 10분도 채 등장하지 않는다.
  • [11] 국내 팬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허시에 그렇게 환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글래머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 [12] 참고로 팰트로는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까인다. 후보였던 콩라인의 여왕인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랜칫과 에밀리 왓슨,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등 쟁쟁한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이 출중하지 못한 펠트로가 마치 상을 강탈해갔다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 유튜브의 수상장면 댓글에는 다른 배우가 받았어야 했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자이다, 말하면서 징징대지 좀 마라... 등등 까는 댓글이 거의 반 이상이다.
  • [13] 뜬소문에 따르면 깨진 이유가 그게 작아서 그렇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