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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시

last modified: 2015-12-02 19:26:4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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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山市

Contents

1. 개요
2. 기후와 지형
3. 역사
4. 인문
5. 교통
6. 관광과 산업
7. 행정구역
8. 기타

1. 개요

폭격 하는 곳, 즉 원산폭격
Wonsan-si-Map.jpg
[JPG image (Unknown)]

원산이 락원이지~[1]

북한 남동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면적 314.4㎢. 원래 함경남도 소속이었으나 1946년 소련군정에 의해 강원도로 넘어가 현재는 강원도(북한)의 도청 소재지이다.

2. 기후와 지형

평양직할시과 비슷한 위도에 있지만, 산맥과 바다의 영향으로 비교적 기후는 온화한 편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원산만에서는 이류(移流)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안개일수 자체는 적어서, 안개가 끼는 날은 1년 평균 9일에 불과하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항구도시치고는 바람이 약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하는 곳 중 하나이다.

해안선이 단순한 동해안의 다른 항구도시와는 달리, 원산만은 주변이 갈마반도(사진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반도)와 호도반도, 그리고 여도(麗島), 신도(新島), 웅도(熊島), 황토도(黃土島) 같은 여러 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선시대에도 천혜의 항구가 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대충 보면 포항이랑 비슷하다

한편 원산과 평양을 잇는 평양-원산선(원선)은 한반도에서 가장 동서 거리가 짧은 곳이다.

3. 역사

1437년(세종 19년) 덕원군이 설치되었으며, 8년 후 덕원부로 승격되었다. 1880년에 개항했는데 러시아식 명칭은 포트 라자레프(Port Lazarev)로 불리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원산부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개항장 지역만을 원산부로 남기고, 잔여지역(면 지역)을 덕원군으로 분리시켰다. 이 때 안변군 영풍면이 편입되어 풍상면, 풍하면으로 분리 설치되었다. 이후 1942년 덕원군 적전면, 현면을 원산부에 편입하고, 덕원군의 남은 지역인 덕원면, 북성면, 풍상면, 풍하면을 문천군에 편입시킴으로서 덕원군은 폐지되었다.

사실 원산은 천혜의 항구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하기 전까지는 덕원부 원산촌이라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880년 일본이 강화도 조약으로 강제로 개항한 3대항구에 들어갔으며, 경원선을 부설하고 공업지대를 조성해서 흥남과 함께 일제강점기시절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자 항구로 성장했다. 곡령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한반도가 광복을 맞자 원산은 38선 이북지역이여서 북한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한국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1950년 10~12월 사이 잠시나마 UN군의 세력에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다시 전세가 역전하여 북한이 원산을 다시 점령하게 되었고, 이후로도 현재까지 북한의 지배하에 남아있다. 하지만 원산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지역이며, 한국전쟁이 개전하기 전까지는 정유시설을 비롯한 각종 화학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므로 한국전쟁이 개전된 다음부터 종전될 때까지 지속적인 폭격과 함포사격을 맞았다. 때문에 원산의 구시가지와 대부분의 시설은 사라졌으며, 원산의 철도시설도 완파되었다. 그래서 원산의 철도시설은 전후에 복구 및 이설된 곳이며, 원산역도 외곽으로 이전한 상태다. 자세한 내용은 원산폭격을 참조하기 바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다음에는 사실상 완전한 공터에서 다시 시가지를 조성하였으나 2011년인 지금까지도 과거의 영화를 완전히 되찾지는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현재 인구 36만으로, 남한 강원도 도시들보다 인구가 훨씬 많다. 통일 이후 강원도함경남도와의 분쟁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만약 남한의 주도 아래 통일이 될 경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규정한 이북 5도 체계 하에서 원산시는 엄연히 함경남도 소속 도시이므로 통일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하지 않는 한 원래대로 함경남도로 귀속될 가능성이 높다.

4. 인문

1924년 당시 조사에 따르면 원산 토박이는 40%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외지 출신으로는 함남 외에 평남, 강원, 경기 출신자들이 많았다. 광복 당시 종교상황으로는 천주교개신교 신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 중 하나인 원산학사가 세워지기도 했었고, 1903년에는 루씨여학교가 세워져 공산화 전까지 여성교육에 큰 역할을 했다.

5. 교통

경원선, 강원선이 통한다. 북한 정권 수립 후 평양과의 사이에 평양원산간 고속도로가 뚫렸다. 평양-원산 구간은 북한에서도 나름 고속버스가 흥했던 구간이기도 하다. 평라선 철도는 화물 물동량 처리하기에도 벅찬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평양-원산 사이를 2시간만에 주파할 수 있으니까.... 한편 광복 당시의 원산역은 건물만 남긴 채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평양 순안공항에 이은 산국제공항안변군에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초기 계획했던 갈마반도의 군사 공항인 원산 갈마 비행장을 옮기고... #

6. 관광과 산업


광복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해안으로 놀러 간다고 하면 으레 원산으로 가는 것을 생각했었다. 경원선을 타고 가면 되니까. 원산의 송도원(松濤園) 해수욕장은 분단 전에는 한국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했다. 마역의 명사십리 해수욕장도 유명하다. 부산해운대는 그때까지만 해도 콩라인이었다. 강릉? 철도도 없는 그 깡촌?

1990년대 북한이 경제난을 겪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원산은 한국전쟁 이후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기 때문에 일본산 중고 가전제품, 자전거, 자동차 등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이 시기 원산의 영화는 고작 중국산 식료품과 잡화류, 잘 해봐야 썩어빠진 중국산 자전거나 자동차따위를 수입하는 정도인 신의주나 다른 국경 연선 도시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6년에 일본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보복으로 경봉호니가타항 입항을 불허하면서… 망했어요. 개인 사업차 원산을 자주 방문했던 한 탈북자유령도시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래 원산은 "김정은 (계획)도시"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이 "원산을 제2의 평양으로 개발하라"는 교시를 내렸다고 한다. 송도원에는 2013년 현재 김정은의 7성급 별장이 있으며, 송도원 청년야외극장과 1960년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가 있어 체제선전에 사용되고 있다. # 물론, 특권계급을 위한 곳이다. 데니스 로드먼이 놀러간 그 휘황찬란한 별장이 여기로 추정되었다. # 외국인 호스텔 구역을 지었다.

인근 문천군 덕원면(구 덕원군 덕원면)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원[2]과 수도원 소속 가톨릭 신학교(덕원 신학교)가 있었다. 원래 덕원과 원산 일대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원산교구에서 분리된 덕원수도원자치교구였다. 분단 이후에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 인근에 수도원을 재건했으며, 원산에 남아 있는 당시의 건물은 원산농업학교로 쓰이고 있다. 성당은 헐렸지만 신학교 건물들은 개조된 채 남아있다.


조선 최초의 스키장(신풍리 스키장)이 생긴 곳도 여기였다. 1903년 개항 후 핀란드인 두 명이 신풍리에서 스키를 탄 것을 시초로 1926년조선총독부도국 국우회에 의해 원산 신풍리 스키장이 개발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대회 역시 1930년 2월 16일 원산 신풍리 스키장에서 개최된 제1회 전 조선스키선수권대회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마식령[3]에 대규모 스키장을 세우고 평양 일성 광장에서 10만 군중 대회#까지 벌이면서(…) 김정은의 치적으로 삼을 모양이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는 스키장 자재 수출을 금지했다. # 연산군인가?

조선에 골프가 처음 들어온 것도 여기. 1900년, 고종 37년 황실의 고문으로 온 영국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원산 바닷가의 세관 구내에서 6홀의 코스를 만들어 놓고 골프를 즐겼다. 현재도 송도원엔 골프장이 있다.

명승지 일람
  • 도원해수욕장

  • 사십리해수욕장 - (외국인용) 호텔 2개를 지었다고 한다.
  • 동방식(東方式)공원

한편 광복 당시까지는 한반도 유일의 정유시설인 탠다드 정유공장, 철도차량공장 등이 들어선 공업도시이기도 했다.

7. 행정구역

광복 당시 88개 동으로 구성되었다. 해방 직후 남한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바로 북한 치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신의주시 등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왜식 지명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 춘일동(春日洞) - 시청 소재지 카스가
  • 해안로1가~6가동(海岸路一街~六街洞)
  • 욱1~3가동(旭一~三街洞) 아사히
  • 수1~2가동(壽一~二街洞) 코토부키
  • 행동(幸洞) 사이와이
  • 중1~3가동(仲一~三街洞) 나카
  • 본1~5가동(本一~五街洞) 모토
  • 천1~4가동(泉一~四街洞) 이즈미
  • 영동(榮洞) 사카에
  • 경동(京洞)
  • 명치동(明治洞) 메이지
  • 녹동(綠洞) 미도리
  • 대화동(大和洞) 야마토
  • 명석동(銘石洞)
  • 상동(上洞)
  • 광석동(廣石洞) 히로이시[4]
  • 산제동(山祭洞) 야마마츠리
  • 남촌동(南村洞)
  • 신흥동(新興洞)
  • 북촌동(北村洞)
  • 상리1~2동(上里一~二洞)
  • 남산동(南山洞)
  • 용동(龍洞)
  • 교하동(橋下洞)
  • 중리1~4동(中里一~四洞)
  • 하촌동(下村洞)
  • 장촌동(場村洞)
  • 신촌동(新村洞)
  • 포하동(浦下洞)
  • 와우동(臥牛洞)
  • 송흥동(松興洞)
  • 송하동(松下洞)
  • 신풍동(新豊洞)
  • 두방동(斗方洞)
  • 두산동(斗山洞)
  • 중청동(中淸洞)
  • 당상동(堂上洞)
  • 당중동(堂中洞)
  • 당하동(堂下洞)
  • 무라동(武羅洞)
  • 삼태동(三台洞)
  • 낙수동(洛水洞)
  • 중평동(仲坪洞)
  • 신동(新洞)
  • 송상동(松上洞)
  • 송중동(松中洞)
  • 용계동(龍溪洞)
  • 용주동(湧珠洞)
  • 관풍동(館豊洞)
  • 내원산동(內元山洞)
  • 세동(細洞)
  • 장흥동(長興洞)
  • 견산동(見山洞)
  • 지경동(地境洞)
  • 포평동(浦坪洞)
  • 사둔동(沙屯洞)
  • 춘악동(春岳洞)
  • 춘산동(春山洞)
  • 현동(峴洞)
  • 방하산동(訪霞山洞)
  • 용평동(龍坪洞)
  • 성라동(星羅洞)
  • 성북동(城北洞)
  • 두남동(斗南洞)
  • 여도동(麗島洞)
  • 웅도동(熊島洞)
  • 신도동(薪島洞)

8. 기타

소설가 복거일이 대단히 좋아하는 북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일제강점기가 1987년까지 지속된다는 설정의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의 처가가 원산에 있었고, 송도원이나 근처의 금강산, 설악산봉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는 주인공이 2050년대 원산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육군사관학교평양에 있던 것으로 설정) "원산 괭이갈매기"라는 실업야구단의 팬이 되었다는 설정이 있다. 주인공이 조선으로 타임슬립후 위엄을 보일 때마다 쓰는게 괭이갈매기의 빨간 모자.

최인훈색인의 주인공 고준도 원산 출신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유일한 기뢰부설함인 원산함(MLS-560)은 이 도시에서 이름을 땄다. 함경남도 원산시민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남북통일서울, 평양, 원산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을 통일 한국의 대 수도권으로 설정하여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므로 만약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엄청난 발전을 할 도시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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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런데 이건 좀 은근 많이 써먹던 소재로, 가곡 명태에선 살기 좋다는 원산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 [2]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남자 수도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요청으로, 독일에서 진출해 왔다. 본래 서울 백동(現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자리)에 있었다가 덕원으로 올라갔고, 이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자리를 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많은 수도자들이 순교했다. 공지영 마리아 작가의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 [3]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 문천군 덕원면~풍상면 사이에 위치하는 고개
  • [4] 미국 CIA가 발행한 1945년 원산지도에는 '코세키'로 훈독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일본식 지명이 아니란 소리. 아래 산제동도 '산사이'로 읽으므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