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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last modified: 2018-08-12 00:35:10 Contributors

파나마운하.jpg
[JPG image (Unknown)]


사진은 파나마 운하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고대 ~ 중세
2.1.1. 중국의 대운하
2.1.1.1. 수양제의 대운하
2.1.1.2. 명나라의 대운하
2.2. 근대
3. 한국
3.1. 현대 이전
3.2. 현대
3.3. 북한
4. 기타
5. 운영중인 운하
6. 계획, 건설 단계의 운하
7. 참고항목


運河
canal

1. 개요

선박의 통행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 영어의 Canal은 선박의 통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수로도 뜻하지만, 우리말의 운하는 한자의 뜻대로, 선박이 지나다닐 목적으로 조성한 수로만을 뜻한다. 선박 운행 목적이 아닌 강이나 호수의 유량 조절 목적으로 만드는 인공 물길은 방수로(放水路)라고 따로 부른다.방수로가 운하로 전락(?)한 사례가 있어서 문제일 뿐.

2. 역사

2.1. 고대 ~ 중세

인류의 역사에서 해상 운송은 언제나 육상 운송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 예를 들어, '그나마' 육상 운송에서 좋은 효율을 보인 사례가 바로 '사막의 배'라고 불렸던 단봉낙타[1]인데, 한 마리가 500kg 정도의 짐을 운반할 수 있다. 반면 콜롬버스가 타고 신세계를 탐험했던 산타 마리아 호의 배수량은 80톤. 짐을 얼마나 싣는지는 항행목적에 따라서 다르지만 10%만 짐을 싣는다고 해도 8000kg이 넘는다. 여기서 벌써 10배가 넘어가건만, 이동내내 가축의 식료도 감안해야하는 육상운송과 달리, 선박운송은 선원의 식량만 감안하면 되기에 유지비도 저렴, 거기에다 속도조차 선박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니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다. 현대에는 철도의 등장과 함께 육상 운송 기술의 발달로 운송 속도에서는 육상 운송이 해상 운송을 앞질렀으나, 아직도 장거리 운송에 있어서는 해상 운송이 경제성 면에서 육상 운송을 압도, 국제 교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상인이나 운수업자의 입장에서는 "바다가 육지를 가로막았다"기보다는 "육지가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는 쪽이 현실에 가까웠던 셈. 그러다보니 폭이 좁은 육지로 분리되어 있는 두 수계(水系)가 있으면 아 저 땅을 개발살내서 물길을 연결하기만 하면 운송비용을 아껴서 떼돈을 벌겠지?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운하가 건설되어 있는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킬 운하 등등은 모두 고대(파나마 운하 같은 경우에는 대항해시대)서부터 운하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었다.[2]

조운을 수로에 의지하던 고려-조선도 서해에 항해 난코스가 많아[3] 이를 피하기 위한 운하를 파려고 한 적이 있다. 태안반도에는 조선 태종 때는 실제 공사까지도 들어갔었으나 운하가 개통되진 못하였다. 그러다 인조 때 운하성공사례가 나오니 바로 안면도. 안면도는 본래는 안면이었지만, 김육이 이 곳에 운하를 파면서 자연스럽게 안면가 되었다.[4]

하지만 아무래도 건설 기술에 한계가 있다보니 필요성은 필요성에 그칠 뿐, 실제로 운하가 완성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드물다는 말은 없다는것이 아닌 법.

2.1.1. 중국의 대운하

2.1.1.1. 수양제의 대운하

인해전술의 원조인 중국에서는 양자강과 황하를 연결하는 대운하를 팠다. 지도를 펼쳐보면 이건 뭐 어떻게 저 두곳을 연결할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상상이 안가는 대륙 스케일을 과시한다. 참고로 이 1억 5000만의 인부가 2700km에 걸쳐 땅을 깍아낸다는 제정신이 아닌 대역사를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수양제. 이 공사비용 부담에 더해 뒤이은 고구려 원정 실패 크리로 나라도 말아먹고 자기도 살해당했다...하지만 그의 희생(?)을 바탕으로 뚫린 이 대운하는 이후 중국을 희대의 먼치킨으로 만드는데 지속적으로 힘을 보태주었다. 진짜로. [5]
다만 당시의 대운하는 말 그대로 양자강과 황하를 연결한 것에 그칠 뿐이다. 왜냐하면 강물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운하를 비스듬하게 대각선으로 팔 수 밖에 없었고, 2700km라는 정신나간 길이를 갖게 되었다. 또한 강물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운송선이 운행할 때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게다가 운하가 낙양까지밖에 가지 않기 때문에, 낙양에서 장안까지 운송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지형이 험하고, 수도에 쓸 식량을 나르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 양이 너무나 엄청나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송나라가 변량으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해결이 되었다.

2.1.1.2. 명나라의 대운하

오늘날의 대운하 이른바 징항대운하라고 불리는 것은 명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양제의 대운하가 낙양을 중심으로 두 개의 대각선을 교차시킨 형태였다면, 명대의 대운하는 정말 북경에서 항주까지 직선으로 뚫은 것이다. 이것이 1800km. 이 운하는 실제로는 원대에 만든 것인데, 왜냐하면 원나라는 북경에 수도를 정했기 때문에 북경까지 식량을 운반해야 했다. 하지만 원대에는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고 때문에 운하가 자주 막혔다. 그래서 운하 자체로 기능하지 못하고 바다로 식량을 옮기는 해운을 병행해야만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명대에서였다.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하기로 한 다음 대운하를 보수, 증설하였는데 이 때 비로소 오늘날의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명대부터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한 대운하는 대동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명대에 매년 강남에서 북경으로 실어나르는 식량의 규모가 원대의 운송량이 40배에 가까웠다. 이 운하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2.2. 근대

하여간 중국 대운하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할 만한 중요한 운하들이 완성된 것은 죄다 19세기의 일. 건축기술이 발달하기도 했거니와, 그만큼 해상 물동량이 늘었기 때문. 운하를 파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운하를 파는데 드는 비용보다 커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는 19세기에 정점을 찍은 제국주의중상주의자본주의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라 할 만한 것.

참고로 수에즈 운하는 그냥 평지에 삽질해서 물길만 뻥 뚫는 공사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팠지만, 중간에 이 놓여 있는 파나마 지협에서는 높이 차가 나는 곳마다 갑문을 설치,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조금씩 배가 산을 올라가는 방식으로 운하를 팔 수밖에 없었고,배에 사공이 많았다면 레알 속담 현실화 덕분에 당시로서는 최신기술과 천문학적인 건축비를 총동원하여 가까스로 완공시킨 바 있다.

모든 운하가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와 같이 대양과 대양을 연결하는 운하는 아니며, 강과 강을 연결하거나, 혹은 전혀 물길이 없는 내륙에서 수운(水運)을 활용하기 위해 건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육상 교통이 발달하고 도로망이 잘 갖춰진 현대에는 이러한 내륙운하는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어 사실상 폐쇄되었다.

바다를 건너 대륙을 넘어다니는 화물선은 크고 아름다운 만큼 한번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이 너무나도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비행기가 개발된 지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나, 내륙운하는 최종적으로 강만한 크기의 운하밖에 건설할 수 없기 때문에 잘해봐야 중형급 화물선만 다닐 수 있다[6]. 그것도 근대에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배를 띄우는 것보다 기차나 자동차를 통해 육로로 운송하는것이 더 빠르고 싸다. 특히 기차화물열차가 활성화되지 못한 한국에서는 체감을 못하지만 화력에 따라 속도뿐만 아니라 중형급 배가 수송할수 있는 화물을 한꺼번에 수송할 수 있다는 흠좀무한 이유도 있다.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에는 정말 많은 운하가 있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5개의 운하가 구시가지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 외에도 수많은 운하가 있다. 네덜란드의 운하는 현재도 수운 목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공사를 위해 땅만 파면 물이 나오기 때문에 이 물을 뺄 목적으로 운하를 파기도 한다. 더군다나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나 다름없어서 운하를 파기도 쉽다.

일본에도 오타루 운하처럼 운하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존재하지만 창고가 있는 곳까지 물길을 뚫어 놓은 것일뿐 운하는 아니다. 도쿄요코하마 사이 구간에도 해안선을 따라 수로가 밀집해 있긴하다. 한편 후쿠오카 하카타 구의 '캐널 시티(Canal City)'가 운하를 중심으로 멋지게 꾸며놓은 도시라는 잘못된 정보가 있으나, 캐널 시티는 운하가 파인 도시가 아니라 가운데 물이 흐르는 쇼핑몰이다.

3. 한국

3.1. 현대 이전

고려시대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운하를 파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당시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세곡(세금으로 거둔 곡식)은 해상으로 실어날랐는데, 지형이 복잡한 서해안, 특히 태안 근처에서 가라앉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태안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운하를 뚫으려는 시도를 많이 하게 되었다.

고려 인종 12년(1134년)때 서해 태안 쪽의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굴포운하의 개착을 시도했다. 공사는 무려 500여년간 중지와 재개를 10여차례 반복하여 파들어갔으나 결국 7km 중 4km 정도만 파고 중지되었다.

이후 차선책으로 조선 인조때 안면읍 창기리와 태안군 남면 신온리 사이를 파내는 시도를 한다. 이 공사는 성공하여 1638년에 판목운하가 완공되었다. 이 운하의 개설로 안면곶이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가 되었다.

위의 그림에서 (다)가 끝내 파내지 못한 굴포운하이며, (라)가 안면도를 섬으로 만들어버린 판목운하이다.출처

태안군의 면적이 504.94㎢이기 때문에 굴포운하를 통째로 다 팠다면 '태안도(가칭)'가 거제도(378.795㎢)까지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섬으로 도약했을 것이다...

3.2. 현대


2006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한강낙동강 등을 연결하겠다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제시한 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공약의 실현을 놓고 큰 논란이 일어났다. 한동안의 논쟁 이후 2008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이 구상은 포기,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2013년 감사원 감사 결과 4대강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는 별도로, 한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경인운하가 건설되어 개통되었다. 원래는 홍수대비용 방수로 사업이었던 것을 운하로 확대한 것으로, 역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한편 포항시에는 항운하가 존재하는데, 40년 전에 매립된 곳을 다시 파내 물길을 뚫었다. # 앞으로 포항시는 포항운하 및 해수욕장 등을 활용하여 포항을 관광 도시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현재 포항운하 일대를 한 바퀴 도는 람선이 운행중이다. 포항운하 홈페이지

3.3. 북한

현재 남한에서는 이 완전히 죽어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큰 강에서 가깝고 약간 내륙에 있는 도시의 항구 기능을 위해 수운이 어느정도 활성화되어 있다. 한편 황해도 사리원에서는 1954년에 운하가 개통되어 령강, 대동강으로 연결되고, 송림, 남포까지 화물선이 운항한다고 한다.

북한은 동해서해가 서로 막혀서 남한의 제주도 남쪽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에 동서 대운하를 구상한 적이 있다.#

이 운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도 포함된 운하로 엄청난 거리를 단축시키지만 중간에 엄청난 산악지대가 있는 게 문제. 단순히 비교하더라도 경부운하 계획조차 영(嶺, 재/고개)을 넘어가는 반면 이쪽은 태백산맥 북부를 넘어야 한다. 더군다나 김일성조차 내부에서 진행하던 제 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공언하고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던 1990년대라니 현실성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북한지역의 운하로 남한에서 구상된 운하는 이밖에도 경원운하(예성강/임진강/북한강 - 원산)####, 경의운하(예성강부터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을 잇겠다는 것)가 있다. 경원운하의 경우 고도가 높지 않고 험준하지 않아서 비교적 진지하게 학술적으로(통일이 안되어서) 검토되고 있지만, 일단 통일이 되어야 뭐든 답이 나올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중해저터널, 한일해저터널 떡밥과 비슷한 수준의 떡밥에 불과.

4. 기타

근대에 화성 관측이 이루어졌을 때, 1877년 스키아파렐리의 관측이 잘못 번역되면서(이탈리아어로 갈라진 틈, 도랑 등을 뜻하는 'canali'가 영어로 인공적인 수로, 운하를 뜻하는 'canal'로 오역) 화성에 인공적으로 건설된 운하가 있다!는 소문이 과학계를 한동안 뒤흔들었다. 이러한 오역이 화성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는 환상을 대대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했으니 나비효과가 매우 컸던 셈.

당연하겠지만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는 운하가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중해에서 인도양으로 나가기 위해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돌 때나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기 위해 남아메리카를 한 바퀴 돌 상황이 되면 현실에서 운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절감하게 된다고 한다.(...) 본격 교육게임

7. 참고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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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사막에 쓰이던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바로 그 낙타. 쌍봉낙타는 주로 추운 지방에서 쓰인다.
  • [2] 수에즈 운하는 고대 이집트때부터 건설 계획이 있었다!
  • [3] 일단 조수간만의 차이가 너무 심하고, 지형도 정말 복잡다단하다. 여기에는 항해기술이나 선박건조술이 연안 항해에 머물렀던 탓도 있다. 그런 이유때문에 서해안 근해는 난파선의 천국이고, 우리나라 해양 고고학의 성지다.
  • [4] 1970년에 연륙교(連陸橋)인 안면교(安眠橋)가 건설되어 몇백년만에 다시 육지와 연결되었다.
  • [5] 대운하는 중국 남부지방, 즉 장강 이남 지방의 개발과도 맞물려있는데, 개발이 마무리되던 시기와 대운하가 개통된 시기가 큰 차이가 없었던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강남의 물량을 화북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화북지방이 계속 지니고 있었던 부분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 [6] 애초에 관통형인 파나마 운하마저도 폭이 33m라서 그 이상되는 배는 지나갈 수가 없다. 미국 최대 전함이었던 아이오와급이 32.97m로 33m 안쪽에서 끊어버린 것이 이 때문이다. 지금도 폭 33m, 만재배수량 10만톤 이상인 배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